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환경과조경 2017년 9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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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매거진 가격 9,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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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에디토리얼] 다시 보기
잠시, 뒤를 돌아본다. 숨을 고를 수 있고, 오늘을 다른 시선으로 볼 수 있다. 내일을 꿈꾸는 덤을 얻을 수도 있다. 넓은 하늘과 살아 움직이는 구름이 가득한 어느 낯선 도시의 작은 도서관. 과월호 몇 권과 옛 신문으로 여름의 여백을 채운다. 딱 30년 전인 1987년 9월, 거리의 함성과 열망으로 신문 지면에 숨 쉴 틈이 없다. 1987, 지금도 가슴 뛰는 네 자리 숫자. 현대사의 분수령이 된 그해 6월의 민주화 항쟁은 군부 독재를 종식시키고 대통령 직선제 개헌을 일궈냈다. 9월의 지면은 현대중공업을 비롯한 전국 노동 현장의 파업과 12월의 직선제 대선을 향한 정치권 기사로 달아오른다. 통일민주당 김영삼 총재와 김대중 고문이 후보 단일화에 실패한 것도 이 달이다. 강수연, 베니스 영화제에서 ‘씨받이’로 여우주연상을 수상, 국내 전화 1천만 회선 돌파 정도가 이 정치의 계절에서 궤도를 이탈한 이채로운 뉴스다. 그에 비하면 『환경과조경』의 1987년 9월은 참 고요하다. 1982년 7월 계간으로 창간한 지 5년이 막 넘은 시점, 통권 19호다. 정원과 공원은 물론 공동 주택, 분구원, 사찰, 하천에 이르기까지, 좋게 보자면 스펙트럼이 넓고 다르게 말하자면 중심이 없다. 프로젝트 꼭지에는 한국 현대 조경의 대표작 중 하나인 파리공원의 기본계획안이 소개되어 있다. 특집은 ‘국립공원 관리와 이용.’ 창간 발행인 오휘영 선생은 ‘오늘, 조경가는 무엇을 생각하는가’라는 제목의 권두 칼럼에서 조경가가 “관광단지의 개발, 공원 프로젝트, 주거환경의 조경설계, 도시경관 조성”뿐만 아니라 “자연자원의 관리와 보존, 자연환경의 복원”에도 주력해야 한다고 당부한다. 창간 초기에 비해 지면을 메우기 벅찬 편집진의 고민이 그대로 읽히지만, 광고면을 보면 올림픽을 앞두고 우리 조경 경기가 꽤 풍성했음이 한눈에 읽힌다. 지금도 계속되고 있는 (영어식으로 표현하자면) 랜드스케이핑 또는 가드닝으로서의 조경과 랜드스케이프 아키텍처로서의 조경, 이 두 조경 간의 갈등과 불안한 동거는 30년 전 잡지에서도 예외가 아니다. 10년이 흐른 1997년 9월도 대선을 세 달 앞둔 정치의 계절이다. 세 달 후 닥쳐올 IMF 구제 금융 사태의 전야, 기아자동차와 아시아자동차 법정 관리를 비롯해 경제 대란을 예감케 하는 기사들로 지면은 온통 먹구름이다. 김영삼 대통령의 레임덕은 끝을 모르고, 김대중, 이회창, 이인제, 조순의 이름이 연일 1면 헤드라인을 장식한다. 병역 면제로 시끄러웠던 신한국당 이회창 후보의 장남은 소록도에 서 봉사 활동을 시작하고, 정명훈은 KBS 교향악단의 음악감독 겸 상임지휘자로 계약한다. 통권 113호를 맞은 『환경과조경』 1997년 9월호는 길을 잃고 표류하는 느낌이다. 편집 디자인만 놓고 보면 10년 전과 별반 다르지 않다. 지면이 대폭 늘었고 꼭지는 다양하(거나 산만하)다. 무려 20쪽에 달하는 뉴스가 인상적인데, 뉴스와 조금 다른 성격의 ‘조경계 동서남북’도 있다. 조경계의 시사적 이슈를 다루는 만평, 불량 경관을 고발하는 ‘카메라 포커스’가 있는가 하면, ‘공원따라 발길따라’, ‘그리운 내고향’, ‘문화가 소식’ 같은 고정 코너도 있다. 해외 학회 참관기, 녹색 기업 탐방, 대학 동아리 소개뿐만 아니라 조경기술사 합격자들의 소감문도 이어진다. 인터넷 시대 초기인지라 ‘홈페이지 만들기: HTML의 기초’라는 연재물도 있다. ‘전통문화 속에 담긴 조경’이라는 제목을 단 특집의 취지는 “자연을 숭배하던 선조들의 얼과 정신을 다시 한 번 되새겨 보면서 잠자고 있는 우리의 전통적 감각을 … 일깨우고자 하는 데” 있다고 쓰여 있다. 1970년대나 2010년대나 크게 다르지 않은 이른바 ‘전통’론의 한계, 1997년 9월이라고 다를 바 없다. 불과 엊그제 같은 2007년 9월이 어느덧 10년 전이다. 또 한 번의 대선 정국. 한나라당에서는 이미 한달 전에 이명박이 박근혜를 누르고 대선 후보로 선출됐고, 대통합민주신당은 예비 경선을 통해 손학규, 한명숙, 이해찬, 정동영, 유시민으로 후보를 압축한다. 노무현 대통령은 신정아 스캔들의 여파로 변양균 정책실장의 사표를 수리하고, 이승엽은 일본 프로야구에 진출해 통산 5백 안타를 달성한다.로스쿨 시행령이 확정되어 고시에 합격하지 않고도 변호사가 될 수 있는 시대가 열린다. 서울시는 모든 버스 정류소를 금연 구역으로 지정하고, 도봉구는 아기공룡 둘리의 호적등본 발급을 개시한다. 『환경과조경』의 2007년 9월은 표지만 봐도 풍요롭다. 광고의 양이 지금의 몇 곱절이다. 그해 1월 대대적인 디자인 리뉴얼을 통해 표지, 로고, 타이포그래피, 편집 디자인을 혁신했다. 글로벌리제이션 열풍에 동승해 본문의 절반 정도를 (물론 읽는 사람은 거의 없었겠지만) 영문으로 병기하고 있다. 수록된 국내 작품이 무려 여섯 개. 그중 반은 소위 ‘차별화’를 향해 돌진하는 아파트 조경이다. 인천 송도신도시 중앙공원과 경기바이오센터, 2년 후 서서울호수공원으로 완공되어 ASLA 디자인 어워드를 받는 신월정수장 부지 공원조성계획 설계공모 당선작도 이 달에 실려 있다. 자하 하디드의 DDP 설계공모 당선 소식도 뉴스란 한 구석을 차지한다. 이 통권 233호의 특집 주제는 ‘한미 FTA와 조경 산업’인데, 아이러니하게도 여러 외고 필자들은 FTA가 한국 조경에 미칠 영향은 미미할 것이라는 전망을 하고 있다. 정작 조경계를 뒤흔든 것은 FTA가 아니라 다음 해의 글로벌 금융 위기였다. 2008년 세계 금융 시장에 몰아친 한파는 경제 불황, 건설 경기 침체, 조경의 위축으로 이어진다. 2007년 9월, 한국 조경은 곧 닥쳐올 위기를 감지하지 못한 채 ‘조경의 시대’라는 명명이 과장이 아닐 만큼 호황을 구가한다. 아파트 물량이 쏟아지고, 행정중심복합도시, 혁신도시, 기업도시, 신도시의 국제설계공모가 줄을 잇는다. 설계사무소 수가 급증한다. 『환경과조경』 233호가 그 자화상이다. 비만의 후유증처럼 다가온 다음 10년, 한국 조경은 경계를 지켜야 한다는 불안증, 영역을 넓혀야 한다는 강박증을 동시에 앓게 된다. 낯선 도시의 작은 도서관을 나선다. 마침 일몰의 장관이 펼쳐지고 있다. 하늘과 빛과 어둠이 빚어내는 화려한 풍경 속에서 뜬금없는 질문을 떠올린다. 30년 후의 한국 조경은? 『환경과조경』 2047년 9월호가 궁금하다. 이제 익숙한 나의 도시로 돌아갈 시간이다.
[칼럼] 조경가의 근자감
요즘 자주 듣게 되는 신조어 중 하나인 ‘근자감’. ‘근거 없는 자신감’의 줄임말인 이 표현은 젊은 세대가 주로 부정적인 의미로 쓰는 듯하다. 하지만 한편으론 당찬 용기나 긍정적 허세라고 볼 수도 있지 않을까? 취준생 70만 시대의 대한민국에서 갈수록 조경 영역이 좁아져 간다는 기사와 이 위기에 대처하자는 기고문이 줄을 잇고 있는 조경계. 사회에 첫 발을 내딛는 전국의 조경학과 졸업생들에게 필요한 마음가짐이 바로 근자감 아닐까? 돌이켜보면 이런 마음가짐이 10년 전 이맘때도 필요했다. 졸업을 몇 개월 앞둔 2007년 초여름, 생명공학을 전공하던 동네 친구가 자기가 준비하는 의학 전문 대학원을 소개하면서 다시 고3 수험생의 삶으로 돌아가 자신의 모든 걸 걸기로 했다며 나에게 말한다. “너도 해 봐. 너, 수학 좋아했잖아! 이거 이제 시작이라 빨리할수록 좋아.” 독서실로 돌아가는 친구의 뒷모습을 물끄러미 보다 며칠 전 공개된 조경설계2 수업의 B+ 학점이 떠오른다. 학교에서 살다시피 노력했음에도 생각보다 낮은 학점을 받고 좌절하던 차에 나도 의전으로의 환승 열차에 올라타야겠다는 생각이 스친다. 남은 인생을 좌지우지할 것만 같은 졸업반의 여름 방학이 시작되었고, 가을에 마감하는 대한민국 환경조경대전에 제출할 졸업 작품이라는 거대한 과제가 눈앞에 주어졌다. 아직은 조경의 끈을 놓지 않았기에 그 친구처럼 혼신의 힘을 기울일 것을 다짐해 보지만, 세 달이나 되는 대학 생활의 마지막 방학을 하나의 일에만 집중하겠다는 결심을 하기 전에 여러 생각이 겹친다. 생각의 끝에는 나와 조경의 관계라는 결론이 기다리고 있었다. 세상을 바꿀 수 없다면 세상에 내가 맞는지 안 맞는지 따져 봐야 하는 것이 순리라는 생각이었는데, 문제는 그 방법이었다. 조경과 나는 잘 맞는가? 나와 조경의 궁합이 B+인가? 나는 조경을 잘 하는가? 이 질문들에 답하기 어려운 이유의 본질은 아마도 “계획이나 설계에 정답은 없어”라는, 일종의 정설이 되어버린 긍정과 부정이 모두 가능한 이 명제에서 기인한 것일지도 모른다. 이런 답 없는 좌뇌적 사고를 거부하는 데 익숙하고 절대 평가로 등수 매기는 데 길들여진 우리 한국인에겐 자신의 위치를 가늠하기 어려운 길은 곧 불확실한 길이다. 좌뇌와 우뇌의 용량이 비슷하고 한국에서 평생을 자랐기에 결론은 여전히 알쏭달쏭. 졸업은 해야 하니 조경대전이란 동전을 일단 던져보기로 한다. 앞뒷면을 정하지도 못한 채. 팀이 결성된다. 대상지도 없지만 맥주잔을 기울이며 화이팅을 다짐한다. 팀명은 있어야 한다는 취중 토크 끝에 우연히 꺼낸 이름, ‘우너쉽’—우릴 너무 쉽게 봤어. 예전 광고 카피의 한 토막인 이 구호는 (지금 생각해 보면) 팀원들의 고민과 희망이 동시에 담긴 근자감의 한 표현이었고 여름 방학을 불태울 근자감의 일발 장전이었다. 두 달여의 준비 기간 동안 말도 탈도 많았지만, 그때마다 이 구호를 외쳤다. ‘우너쉽’을 당찬 패기의 허세가 아니라 우리 도시 환경에 대한 오너십으로 승화시키기 위해 대상지를 내집 안마당 보듯 애정을 담아 매만져 나갔다. 의뢰받은 프로젝트가 아니라 내 인생을 점쳐 보고 나 자신을 던져 보는 프로젝트라는 의미가 더해지자 이 프로젝트는 점점 내 것이 되어갔다. 온전히 집중할 수 있었고, 집중으로부터의 배움은 컸다. 다행인지 불행인지 조경대전은 입상의 기쁨과 함께 조경의 끈을 놓지 말라는 동전 앞면의 답을 주었다. 10년이 지난 지금도 가끔 당시의 결과가 동전의 뒷면이었길 바라는 순간이 온다. 그때마다 10년 전의 근자감, ‘우너쉽’의 마음을 되새기며 조경의 울타리 안에 있다. 물론 공모전의 결과나 순위권의 수상 여부가 동전을 긍정의 앞면으로 만들어 준 것은 아니다. 일상의 배경으로만 존재하던 주변 도시 환경을 비판적으로 보며 얻은 도시에 대한 통찰, 팀원들과의 협력과 그것을 통한 배움, 함께 이끌어낸 비전과 조경이 만들어갈 환경에 대한 가능성과 의미가 모두 모여 조경을 더 열심히 해 보자는 다짐의 근거가 되었다고 믿는다. 이 원고를 마무리하고 있는데 마침 10년 전 조경대전에서 같은 팀이었던 후배로부터 까톡, 메시지가 온다. “형, 우리 조경대전에서 했던 프로젝트의 아이디어를 제대로 적용할 만한 공모전이 떴어요. 오랜만에 한번 뭉쳐 볼까요?” 미국의 동부와 서부, 서울에 흩어진 세 명이 다시 10년 만에 ‘우너쉽’으로 뭉치기로 했다. 조경대전을 마친 여러분, 모두 애쓰셨고, 함께 도전을 이어갑시다. 최영준은 서울대학교 조경학과를 졸업하고 펜실베이니아 대학교 설계 대학원에서 조경학 석사 학위를 받았다. 아키프리 인터내셔널(Archiprix International) 본상, 뉴욕 신진건축가공모 대상, 제4회 대한민국 환경조경대전 대상 등을 수상했다. 로스앤젤레스 기반의 설계사무소 Laboratory D+H의 공동 설립자로, 현재 미국, 중국, 한국을 오가며 활동 중이다.
제14회 대한민국 환경조경대전
주최 (사)한국조경학회, (사)한국조경사회, (재)늘푸른, 월간 환경과조경 주관 대한민국 환경조경대전 운영위원회 후원 국토교통부, 환경부, 문화체육관광부, 서울특별시, 한국토지주택공사, 경기도시공사, 올조회, 한국조경설계업협의회 심사위원장 박명권 그룹한 어소시에이트 대표 심사위원 김영민 서울시립대학교 교수 박영준 서인조경 대표 박은영 중부대학교 교수 서미경 해안건축 조경설계실 수석 송병화 세계사이버대학교 교수 이상우 건국대학교 교수 이재연 조경디자인 린 대표 이홍길 조경설계 길디앤씨 대표 대상 숲새마당, 사람 사이를 흐르다 이지현ㆍ김유진 경희대학교 환경조경디자인학과 금상 광장자리, 나누어 잇다 한지민ㆍ이은진 경희대학교 환경조경디자인학과 은상 Be;울 김관수ㆍ김자정ㆍ우진명 동아대학교 조경학과 은상 연 김지한ㆍ최다영 강원대학교 생태조경디자인학과 동상 여백에 풍경을 입히다 이성원ㆍ이호승ㆍ김우진ㆍ윤수민 한경대학교 조경학과 동상 아고라 포 아고라포비아Agora for Agoraphobia 김수민ㆍ신수정ㆍ차윤영ㆍ최은지 가천대학교 조경학과 동상 모란ː장 조상은ㆍ김민수ㆍ김지민ㆍ박성배ㆍ전기성 가천대학교 조경학과 동상 디스트리뷰티드 스퀘어Distributed Square 김병호·박동진·윤선아·김도연 서울시립대학교 조경학과 동상 잔사래 작은 광장 유다성·이효정·이주영·한승희·허아림 한경대학교 조경학과 동상 플로팅 스퀘어Floating Square 전현정·여나경·이아진·류희령 동아대학교 조경학과 장려상 청춘동 광장연구소 김단비·문다솜·김수지·최수정 한경대학교 조경학과 장려상 모이는 곳 광장, 판을 통해 쉬워지다 이서연 서울시립대학교 일반대학원 조경학과 장려상 다운스퀘어Downsquare 김재훈·손원석 경희대학교 환경조경디자인학과 장려상 기억하라 촛불 2017 이수원·박서정·정지원 동아대학교 조경학과 장려상 사회적 현상에 따른 관계의 역설 김민준·윤승렬·최영선·이영록 중부대학교 환경조경학과 장려상 바다, 광장을 품다 이지은·유하림 경희대학교 환경조경디자인학과
[이미지 스케이프] 아름다운 산과 강, 바다와 섬
“아름다운 산과 강, 바다와 섬으로 이루어진 대한민국 국토는 우리 삶의 터전이자 정신과 문화의 뿌리이다. 우리는 이곳에서 고유한 역사를 가진 마을과 도시를 형성하면서 자연과 어우러진 국토 경관을 만들어 왔다.” _‘대한민국 국토경관헌장’ 중에서 다도해. 황해와 남해에 걸친 섬과 반도가 많은 리아스식 해안 주변의 바다. 그렇지만 단순히 섬이 많다고만 말하기엔 너무 부족한, 아름다운 바다. 이번 여름휴가 동안 이 보물 같은 경관을 경험하고 왔습니다. 지난 5월 제정된 ‘대한민국 국토경관헌장’에 담긴 “아름다운 산과 강, 바다와 섬으로 이루어진” 우리나라를 직접 체험하고 온 셈입니다. 달아공원은 통영시 남쪽 끝에 위치한 조그만 공원입니다. 공원이란 이름이 붙어 있긴 하지만 실은 작은 전망대라고 하는 편이 더 정확할 것 같습니다. 그렇지만 이 공원은 통영을 대표하는 8경의 하나로 소개될 만큼 유명한 곳입니다. 통영 일대의 크고 작은 섬들이 펼쳐진 파노라마를 보기 위해 많은 사람들이 모이는 장소입니다. ...(중략)... 주신하는 서울대학교 조경학과를 거쳐, 동 대학 대학원에서 석사와 박사 학위를 받았다. 토문엔지니어링 건축사사무소, 가원조경기술사사무소, 도시건축 소도 등에서 조경과 도시계획 분야의 실무를 담당한 바 있으며, 신구대학 환경조경과 초빙교수를 거쳐 현재 서울여자대학교 원예생명조경학과 교수로 재직 중이다. 주로 조경 계획 및 경관 계획 분야에 학문적 관심을 가지고 있다. * 환경과조경 353호(2017년 9월호) 수록본 일부
베스트블락 스케이트 파크
네덜란드 로테르담의 도심에 위치한 베스트블락 스케이트 파크Skatepark Westblaak는 공원, 보행자와 자전거 사용자를 위한 도로, 그리고 도시 스포츠를 위한 환경을 하나로 결합한 공간이다. 아스팔트로 매끄럽게 포장된 도로, 공원의 윤곽선을 따라 자리한 교목과 관목, 중심부의 콘크리트 플랫폼이 활동적인 도심 경관을 창출한다. 대상지는 본래 로테르담 중심부에 위치한 산책로로 1998년부터 로테르담 도시 계획국의 관심 대상이었다. 면적이 넓고 입지가 좋은데도 불구하고 산책로 양 옆에 놓인 차선으로 인해 공간 활용도가 좋지 않았기 때문이다. 로테르담 시의회는 이곳을 역동적인 공간으로 만들 계획을 세웠고, 2001년 산책로는 도심에서 스케이트와 BMXBicycle Motocross를 즐길 수 있는 공원으로 재탄생했다. 하지만 2012년 겨울 스테인리스 스틸 구조물이 수명을 다하여 교체해야 했고, 보다 전문적으로 설계한 스케이트 보딩 공간이 필요하다는 의견이 제기됐다. 이에 로테르담 시의회는 얀네 사리오Janne Saario와 함께 베스트블락 스케이트 파크 리노베이션 작업에 착수했다. 새로운 계획의 핵심은 높은 품질의 스케이트 파크를 만드는 것으로, 주변 경관과 조화를 이루며 다양한 사용자 그룹의 요구를 충족할 수 있는 공원을 조성하는 것이다. ...(중략)... Landscape Architect Janne Saario & Marcel Musch Client City of Rotterdam Location Westblaak, Rotterdam, Netherlands Area 3,025m2 Design 2013~2015 Completion 2016 Photographs City of Rotterdam / Jan van de Ploeg, Janne Saario 얀네 사리오(Janne Saario)는 프로 스케이트 보드 선수로 활동한 경험을 바탕으로 세계 곳곳의 스케이트 보딩 환경을 탐구해왔다. 최근에는 2005년 설립한 1인 조경설계사무소 얀네 사리오에 집중해 다양한 스케이트 보딩 환경 조성에 힘쓰고 있다. 대표작으로는 스웨덴 외레브로(Örebro)의 스케이트 파크, 핀란드의 야르벤파(Järvenpää) 스케이트 파크 등이 있으며, 골프 코스 계획과 묘지 설계로 사업 영역을 확장하기 위해 노력하고 있다. * 환경과조경 353호(2017년 9월호) 수록본 일부
72시간 도시생생 프로젝트
지난 7월 20일, 서울시청 다목적홀에서 서울시와 한화가 공동 주관한 2017년 ‘72시간 도시생생 프로젝트’의 수상작이 발표됐다. 본래 최우수작(상금 1,000만 원)을 한 점 선정할 예정이었으나 심사 기준을 만족시킨 작품이 없어, 한 팀에게 수여할 예정이었던 우수상(상금 500만 원)을 ‘일사천리(1472)’ 팀의 ‘1분의 행복’과 ‘동작補(보)슈’ 팀의 ‘정독도서관 꿈다방을 아시나요?’에 수여했다. 한화상(상금 500만 원)에는 ‘레터 엔Letter N’ 팀의 ‘그린 녹턴Green Nocturne’이 선정됐고, ‘일상너머의 풍경’ 팀의 ‘숲의 기억’이 장려상을 수상했다. 박준호 심사위원장은 심사 총평을 통해 “21세기 도시는 군도와 같은 개념으로 만들어지고 있다. 도시가 바다라면 큰 건물들은 섬이다. 72시간 도시생생 프로젝트는 군도 사이의 연결점을 만드는 데 기여하는 일이 아닐까 한다. 이 프로젝트가 나비효과를 일으켜 건강하고 아름다운 도시의 초석이 되기를 바란다”는 소망을 내비쳤다. 올해 6회를 맞이한 72시간 도시생생 프로젝트는 “불꽃 아이디어로 공터를 공감터로!”라는 주제로 진행되었다. 서울 도심의 소외된 마을마당 세 개소(중구 봉래동, 중랑구 면목동, 노원구 공릉동), 노후 쉼터 4개소(중구 회현동, 광진구 광장동, 강북구 번동, 종로구 화동 정독도서관)를 활력 넘치는 쉼터로 재탄생시켜야 했다. 본래 7월 6일 12시에 액션을 시작해 7월 9일 12시에 마무리할 예정이었지만, 올해도 작년에 이어 날씨가 변수였다. 6일 오후부터 폭우가 쏟아지기 시작했고, 결국 서울시는 안전사고 방지를 위해 각 참여팀에게 작업 중단을 권고했다. 결국 72시간의 두 배에 달하는 144시간 동안 액션이 진행됐다. 이에 따른 인건비, 장비 대여료가 추가로 발생해 어려움을 호소하는 팀도 있었다. 구성원이 독특해 눈길을 끄는 팀도 있었다. ‘동작보슈’ 팀은 동작구의 마을 공동체인 ‘마을발전소’ 사람들과 프로젝트에 참여해 계획과 시공을 함께 했다. 참여자 명단에 이름이 없는 주민들도 때때로 현장을 방문해 일을 도와, 주민 참여가 가장 활발히 이루어진 팀이라는 평을 받았다. 민족사관고등학교 재학생과 졸업생, 선생님 등으로 구성된 ‘레터 엔’은 조경이나 건축, 도시 관련 전공자가 없는 팀이다. 설계 기본 프로그램이라 할 수 있는 캐드도 다루지 못했던 항공우주학 전공자, 생물학 전공자, 미학 전공자, 역사 전공자 등이 모여 고군분투한 결과, 불법 주차된 자전거가 즐비한 공간을 야외무대와 자전거 거치대가 어우러진 공간으로 탈바꿈시켰다. 작품의 심사 기준은 장소성과 지속성, 협동성 등 세 가지다. 특히 올해에는 작품 존치를 위해, 관리가 쉬우며 안전성을 겸비한 계획안이 요구되었다. 작품의 지속성을 위해 완성도를 높이는 것이 요지다. 하지만 그 때문일까, 72시간 도시생생 프로젝트의 매력 요소인 “불꽃 아이디어”가 다소 약해졌다는 이야기도 있다. 톡톡 튀는 상상력을 펼친 작품보다 지저분한 공간을 정비하고 활용성을 높이는 데 주력한 팀이 많았다는 의견이다. 2014년부터 조직위원으로 활동해온 이홍선 소장(Factory L)은 “2012년에 시작된 72시간 도시생생 프로젝트는 본래 이벤트성 프로젝트였다. 도시에 활력을 불어넣는 공간을 만들었다 해체하는, 화려한 풍선을 불어서 이목을 집중시키다 72시간이 지나면 뻥 터트려 사라지면 다 같이 그 순간을 추억하며 즐거워하는 그런 프로젝트”였다며 초창기 72시간 도시생생 프로젝트의 취지를 설명했다. 하지만 2014년부터 작품 존치를 위해 “지속성과 안전성 등을 강조하면서 학생보다 기성 작가들의 참여가 늘어나고 획기적인 아이디어가 줄어든 것 같다”며 아쉬움을 표했다. 사실 72시간은 오랜 시간을 견딜 수 있는 튼튼하고 안전한 구조물을 만들기에는 빠듯한 시간이다. 게다가 시공과 관련한 전문 지식을 요하기 때문에, 학생이나 일반인의 참여를 어렵게 하는 문턱으로 작용할 수도 있다. 더불어 시공과 관련된 전반적인 업무를 시공 업체에 전적으로 맡기는 팀이 늘어나고 있다는 문제점도 지적되어 아쉬움이 남는다.
미사강변센트럴자이
LID 설계를 적용한 최초의 기후 변화 대응형 생태 조경 단지 하남 미사강변센트럴자이는 누구나 한번쯤은 방문해 젊은 날의 추억을 간직하고 있는 미사리 카페촌 뒤편에 새롭게 조성된 신도시인 미사강변도시의 한가운데 위치한다. 총 1,222세대 규모의 이 아파트 단지는 계획 초기부터 전 지구적으로 중요한 이슈가 되고 있는 ‘기후 변화에 대응하는 조경’이라는 콘셉트로 하버드 대학교의 니얼 커크우드Niall Kirkwood 교수와 그룹한이 협력해 설계한 프로젝트다. 산업 혁명 이후 현재까지 화석 연료 사용의 폭발적 증가는 대기 중 온실가스 농도의 증가로 이어져 지구 온난화 발생의 한 원인이 되었으며, 이로 인해 열파, 가 뭄, 홍수 등 기상 이변의 발생이 증가하고 극지방의 빙하 면적 감소, 해수면 상승 등 지구의 물리·생태계 전반에 걸쳐 변화가 발생하고 있다. 우리나라의 기후 변화 진행 속도는 세계 평균을 상회하여 지난 100년(1906~2005년)간 6대 도시 평균 기온은 약 1.5℃ 상승했으며, 강우 패턴의 변화로 침수 등에 의한 피해액도 지속적으로 증가하고 있어, 기후 변화에 대응하기 위한 여러 분야의 전략 방안 마련이 시급한 실정이다. 특히 우리나라에서 주거 비율이 60% 이상을 차지하는 아파트 단지의 기후 변화 대응 기술은 점점 중요한 이슈가 되고 있으며, 외부 공간 전체를 디자인하는 조경 분야에서의 중요성은 더욱 높아지고 있다. ...(중략)... 조경 설계 그룹한 어소시에이트, 니얼 커크우드(Niall Kirkwood),한국그린인프라연구소 건축 설계 창조건축 조경 식재 장원조경 조경 시설물 한설그린 건축 시공 GS건설 위치 경기도 하남시 풍산동(미사강변도시 A21블록) 면적 72,755m2 완공 2017. 2. 그룹한 어소시에이트(대표 박명권)는 1994년 창립 이래, 경제 발전의 피로에 찌든 도시인에게 자연과 호흡하는 아름다운 삶의 방식을 제시해 왔다. 그룹한의 디자인은 삭막한 주거 환경의 한복판에 고향에 대한 향수와 어린 시절의 추억, 그리고 자연에 대한 그리움이라는 가치를 구현해 왔으며, 여유와 즐거움이 넘치는 문화 환경을 헌정해 왔다. * 환경과조경 353호(2017년 9월호) 수록본 일부
주거 단지에서 LID 설계를 말하다
지난 7월 13일 미사강변센트럴자이를 만든 사람들이 한 자리에 모였다. 연일 비가 내리다가 다시 강렬한 태양이 대지를 뜨겁게 달구기 시작해, 레인 가든이 실제 어떻게 작동하는지 살펴보기 좋은 날이었다. 설계를 맡은 박명권 그룹한 어소시에이트 대표와 니얼 커크우드 하버드 GSD 교수, 식재를 담당한 장원조경의 신경준 대표와 홍승준 팀장, 김종범 과장, 조경 시공 현장을 담당한 GS건설의 강철현 부장, 그리고 한국그린인프라연구소의 강한민 차장 등이 모여 현장을 살펴보았다. 이들에게 설계 개념부터 시공, 유지ㆍ관리에 이르는 다양한 이야기를 들어보았다.
[그들이 설계하는 법] 다양성과 정체성
내가 JCFOJames Corner Field Operations에서 경험한 몇몇 프로젝트의 클라이언트에게는 꽤 명확한 취향과 목표가 있었다. 아이코닉iconic, 랜드마크, 강한 아이덴티티 같은 단어로 자신이 원하는 공간을 설명한 그들은 보다 눈에 띄고 다른 곳과 차별화될 수 있는 디자인을 원했다. 당연히 그들의 요구를 가장 우선순위에 두고 작업을 진행했다. 여기엔 물론 화려하고 과감해 보이는 디자인도 마다하지 않는 JCFO의 스타일이 가미되었다. 이러한 프로젝트에서는 작업의 과정, 개념, 내러티브보다 공간에서 경험할 수 있는 것이 얼마나 매력적인지가 클라이언트를 설득하기 위해 가장 먼저 고려되었다. 반면, 의도한 바는 아니지만, 스튜디오 MRDO가 거쳐온 대부분의 작업은 ‘조성된 공간이 왜 좋은지’ 설명하는 데 힘쓰기보다는 ‘그 땅에 왜 그러한 디자인이 나오게 되었는지’에 초점을 맞춰 왔다. 누가 보더라도 감탄할 만한 공간을 만들려고 하기에 앞서, 대상지의 주어진 조건을 중재하고 이를 디자인 언어로 변환하는 작업이 주를 이뤘다. 불특정 다수가 클라이언트였거나 비교적 그들을 의식하지 않고 나 스스로 원했던 방법론을 따랐던 경우가 많았기 때문에 JCFO에서의 작업과는 그 성향이 확연히 구분된다. 이처럼 스튜디오 MRDO와 JCFO의 프로젝트는 설득해야 하는 대상이 다른 탓에 설계에 접근하는 과정, 결론, 표현 방법이 크게 다르다. 연재의 마지막 회가 될 이번 글에서는 스튜디오 MRDO와 JCFO의 대조적 작업 방식을 소개하고, 이를 통해 나에게 디자이너의 다양성과 정체성은 어떠한 의미인지 짧게나마 이야기해 보고자 한다. 이어 소개할 스튜디오 MRDO의 작업들은 대상지의 특수한 상황 자체가 디자인이라고 볼 수 있을 만큼 주변 맥락이 디자인의 기본 골격이자 핵심 요소로 작용한다. 그러나 JCFO에서의 두 작업은 맥락이 결론을 좌우한다기보다 공간 자체가 전달하게 될 경험에 더 큰 무게를 두고 있다. 스튜디오 MRDO_ 숨은 선 ‘센트럴파크 서머 파빌리온 공모전 2016(Central ParkSummer Pavilion Competition 2016)’은 아키아이디어스(Arquideas)가 주최한 국제 공모전으로, 여름 동안 일시적으로 이용할 파빌리온을 뉴욕 센트럴파크 내부 어디든 대상지로 선정해 제안하는 것이 과제였다. 면적 약 3.4km2의 이 대형 공원은 경계 10km가 도시와 면하고 있으며, 숲, 초지, 크고 작은 잔디밭과 저수지 등 다양한 형태의 녹지 공간뿐만 아니라 운동 경기장, 놀이터, 식당, 야외 공연장 등 매우 다양한 시설을 포함한 거대 도시 기반 시설이자 복합 녹지 시스템이다. 때문에 우리는 어떤 파빌리온을 짓느냐를 고민하기 전에 어떤 땅에 어떤 공간을 디자인해야 하는가를 먼저 결정해야 했다. 파빌리온 자체의 디자인만큼이나 대상지와 디자인이 맺게 될 관계가 중요하다고 여겼으며, 설계하게 될 공간이 주변의 맥락과 세트를 이루어야 공모전의 취지에 부합하는 결론을 내릴 수 있다고 생각했다. 센트럴파크의 수많은 공간 중 재클린 케네디 오나시스저수지(Jacqueline Kennedy Onassis Reservoir)에 관심을 두기 시작했고, 리서치하던 중 현재는 기능을 잃은 길이 720m, 너비 4.8m 댐의 존재를 발견하게 된다. 위성 사진으로나 그 모습을 확인할 수 있는 이 옛 기반 시설은 수면과 비슷하거나 조금 낮은 레벨에 있어, 대부분의 뉴요커도 그 존재를 모를 만큼 공원 이용자의 눈에 잘 띄지 않는다. 수위가 낮을 때만 수면 밖으로 모습을 드러내는 720m의 긴 선과 저수지에 큰 흥미를 느꼈고, 이 선의 존재를 부각할 수 있는 구조물을 디자인하기 시작했다. 작품 제목인 ‘숨은 선(Hidden Line)’은 물론 저수지의 댐을 의미한다. 그 위에 다섯 가지 유형의 파빌리온을 배치해 숨겨져 있던 선을 디자인의 큰 골격으로 활용했다. 버려지다시피 잠겨있던 거대 기반 시설을 뼈대로, 우리의 디자인은 비교적 미미한 간섭을 통해 720m의 선을 전혀 새로운 공간으로 재인식하게 한다. 일 년 중 서너 달 정도 저수지의 수위가 낮아질 때 모습을 드러내는 댐은 이용자의 접근이 가능하기 때문에 공원의 그 어느 공간보다 강력한 경험을 전달하는 축으로 기능할 수 있다. 이용자는 그동안 관망의 대상이기만 했던 거대한 열린 공간, 즉 저수지 한가운데에서 녹지와 맨해튼의 스카이라인을 조망하게 된다. 센트럴파크에서 가장 독특한 이 산책로를 통한 경험은 다섯 가지 유형의 파빌리온―tilted, quiet, sky, open, floating room―을 통해 더욱 풍성해진다. 수위가 낮은 기간을 제외하면 선은 물 아래로 잠기고,파빌리온들은 수면 위의 점선이 되어 육지로부터 격리된다. 그러나 이들은 여전히 보이지 않는 선의 존재를 암시하고 맨해튼의 스카이라인과 병치되며 센트럴파크의 새로운 풍경을 만든다. 플로팅 파빌리온은 다른 네 유형과 기본적인 형태, 크기, 재질을 공유하는 또 다른 유형의 파빌리온으로, 물 위를 떠다닐 수 있는 구조체다. 영화 ‘봄 여름 가을 겨울 그리고 봄’에 등장하는 호수 위의 사찰과 같이, 저수지의 수위가 높을 때 다른 파빌리온으로의 접근은 이 플로팅 파빌리온을 통해서만 가능하다. 이때 파빌리온들은 실제 거리상으로도 맨해튼에서 가장 외딴 장소이자 가장 큰 오픈스페이스를 가진 공간이다. 세상에서 가장 붐비고 혼잡한 도시 뉴욕에서 저수지 위의 점들이 가장 고립되고 외로운 장소가 된다. 우리는 전에 없던 새로운 공간을 디자인했다기보다, 이미 존재하고 있는 장소의 매력을 어떤 방식으로 드러낼 수 있을지, 그 방안을 제시했다. 순천 미술관 프로젝트는 대상지의 물리적 요소를 직접적으로 디자인에 포함하지는 않았다. 하지만 도시의 흐름이 관입되어 공간을 완성한다는 점에서 대상지와 디자인의 관계에 대한 고민이 작업의 시작이자 뼈대가 되었다고 할 수 있다. 스튜디오 MRDO_ 순천 아트월 순천 아트월(Sunchon Art Wall)은 ‘순천예술광장 국제건축공모전 2016(Suncheon Art Platform International Competition 2016)’에 도시 전문가 송민경·김유진, 조경가 조용준, 건축가 지강일·김남주와 함께 참여한 작업이다. 이 프로젝트에서는 먼저 형태적으로 경계를 강조했다. 도시와 미술관 사이에 세워지는 ‘두터운 경계’가 새롭고 독특하면서도, 이 장소에는 그런 새로움이 매우 당연한 제스처라는 점을 보여주는 데 집중했다. 순천 아트월은 ‘벽wall’이라는 단어가 연상시키는 분리나 차별화가 아니라 대상지와 도시, 예술과 일상, 과거와 현재의 연결이라고 설명할 수 있다. 대상지와 도시: 첫 다이어그램에서부터 이 디자인이전적으로 대상지의 맥락에 반응한 결과라는 것을 강조하고자 했다. 대상지의 경계를 따라 선형으로 계획된 매스들을 주변 도시 조직의 연장으로 보았고, 중앙의 비워진 광장 역시 주변 오픈스페이스가 연속되어 형성된 공간이라고 정의했다. 대상지 주변에 오픈스페이스를 제공하는 가장 전형적인 방식은 아마도 중앙에는 건물을, 가장자리에는 공개 공지를 배치하는 형태일 것이다. 그러나 이와 정확히 반대되는 형태인 중정형 배치가 대상지의 가장자리를 주변 도시에 포함시키고 비워진 중앙 광장을 보다 강력한 성격의 커뮤니티 공간으로 작동시키고자 한 우리의 의도에 부합하는 방식이었다. 예술과 일상: 연속된 프레임의 조합으로 이루어진 ‘두터운 경계’ 구조는 도시와 중앙 광장 사이의 물리적·시각적 연결성을 향상해 예술과 일상 활동의 흥미로운 혼합을 유도한다. 사람들은 거리의 낙서와 마주치듯 도시를 거니는 동안 미술관에 설치된 작품들과 조우한다. 대중과 유리된 순수 예술, 그리고 그것을 전시하는 미술관이 이러한 일상적 경험을 통해 도시와 좀 더 적극적인 관계를 맺게 되는 것이다. 월(wall)을 통해 우리가 실제로 추구하고자 했던 것은 ‘열림’이고, 이 열림은‘도시에 열려 있는 문화 시설’뿐만 아니라 ‘일상에 열려있는 예술’을 위한 것이기도 하다. 과거와 현재: 순천 구시가지에는 옛 성벽을 비롯해 사대문, 교차로, 다양한 형태의 필지 등 역사적으로 가치 있는 흔적이 아직 남아 있다. 이러한 도시적·건축적 유물은 순천이라는 도시의 역사적 유형을 보존하고 관찰할 수 있게 해 준다. 우리는 현대 개발 패턴을 반영하는 블록 유형을 사용함과 동시에 옛 순천 성벽의 형태를 차용했다. 여기서 순천의 옛 성벽(old Suncheon wall)과 새로운 예술 장벽(new art wall)은 강한 대구를 이루며, 과거와 현재를 개념적으로 연결한다. 그밖에 ‘세운상가 활성화를 위한 공공공간 설계 국제공모’(2015) 출품작 역시 도시와 세운상가가 만나는 수많은 교점node이 디자인의 주요 골조였고, ‘세종대로 역사문화공간 설계공모’(2016)의 출품작 ‘서울 연대기’에서도 서울이라는 도시와 대상지에 존재하는 수평적 레이어가 설계의 가이드라인이었다. ‘미래의 새로운 아웃라인(Plotting New Outline for the Future, 2017)과 ‘서울 어반디자인 공모전’(2013) 출품작인 ‘하이퍼 랜드스케이프(Hyper Landscape)’에서는 대상지의 능선과 골짜기가 작업의 뼈대가 되어 지형이라는 물리적 현황이 디자인에 직접적으로 관여했다. 대상지의 맥락이 결과에 크게 반영되는 방식의 작업에서 설계 과정에 대해 진지하게 고민했다면, JCFO의 작업에서는 설계 과정이나 이유에서 당위성을 찾기보다는 최상의 결과 그 자체를 내기 위해 노력한 기억이 많다. 어떠한 공간에서 살고 싶은지, 그곳을 어떻게 디자인할지 생각해 본 적이 있다. 내가 살고 싶은 곳은 사실 대상지의 맥락이 철저하게 반영된 공간이라기보다 나의 취향이 반영되어 있으면서도 공간적으로 매력적인 곳이다. 왜 그곳에 연못을 두는지, 왜 여기는 복층이고 저기는 단층인지, 왜 그곳에 천창을 뚫는지, 왜 그런 타일을 쓰는지, 별다른 논리 없이도 공간이 그것을 사용할 나에게만 만족스럽다면 성공적인 디자인이라고 할 수 있다. 이어 소개할 JCFO의 작업에서도 맥락에서 비롯된 논리보다는 의뢰인들의 요구 사항과 공간의 심미성이 디자인의 가장 큰 이유이자 주요 변수로 작용했다. JCFO_ 상하이 타오푸 센트럴파크 상하이 타오푸 센트럴파크(Shanghai Taopu Central Park)는 중국의 신도시 상하이 타오푸 스마트시티의 기반 시설로, 건설과 동시에 실시 설계가 진행 중인 면적 약 1km2의 대형 공원이다. 프로젝트의 콘셉트는 ‘새로운 자연(New Nature)’으로, 타오푸라는 새로운 도시가 필요로 하는 현대적 의미의 자연을 재구성하는 것이 그 목표다. 절토와 성토를 통해 구성되는 구릉과 골짜기는 움직이는 구름, 흐르는 물과 같은 자연을 닮았다. 또한 동양의 붓글씨나 춤사위 같이 전통적이고 문화적인 맥락과도 연결되는 형태로 디자인되었다. 나는 공원 전체의 콘셉트와 구성이 완성되어 세부적이고 구체적인 디자인이 시작되는 시점에 본격적으로 투입되었기 때문에, 디자인의 내러티브나 개념을 만들기보다는 디자인된 공간이 어떻게 작동하고 어떤 경험을 제공할지에 초점을 맞추며 작업했다. ‘곡선으로 이루어진 크고 작은 언덕과 골짜기’라는 큰 틀 내에서 구체적인 동선과 마운드 구성을 시작으로, 각종 시설물을 디자인하고 이를 도면에 옮기는 작업을 약 1년에 걸쳐 진행했다. 일곱 개의 놀이 시설을 디자인했는데, 모두 주변의 구릉 지형에 반응하도록 설계해야 했다. 이는 오히려 경사지를 적극 활용한 놀이터를 디자인하기에 매우 좋은 조건이었다. 경사도는 이용자의 행태를 결정하는 역할을 한다. 비워진 평지가 불특정하고 다양한 프로그램을 수용할 수 있다면, 경사지는 기어오르기, 매달리기, 미끄럼타기, 조망하기, 올라타기 등 조금 더 구체적이면서도 활동적인 행태를 끌어낸다. 이 공원의 놀이 시설은 모두 그러한 행태를 더욱더 적극적으로 끌어내도록 설계되었으며, 그중 몇몇은 일상에서는 하기 힘든 공간적 경험을 전달한다. 예를 들어 슬로프 플레이(Slope Play)는 언덕 한편에 놀이 시설이 삽입된 다른 놀이터들과는 달리 언덕 한가운데를 관통하는 길이 놀이 공간이 된다. 앤털로프 캐년Antelope Canyon같이 곡선형의 켜가 층층이 쌓인 좁은 골짜기를 통과하는 체험은 특히 어린이들에게 흥미로운 경험이 될 것이다. 타오푸 센트럴파크는 총 열 개 블록으로 이루어져 있다. 그중 남쪽 네 블록의 지하에는 각종 문화·상업 시설이 입지한다. 이러한 시설과 오픈스페이스를 어떤 방식으로 연결하는가 또한 매우 중요한 과제였다. 지상과 지하를 잇는 각종 구조물과 선큰 플라자는 이용자에게 그곳이 입구임을 강하게 인지시키며 활동의 거점으로 작동하게 한다. 그중 몇 개의 공간에는 보다 역동적인 공간감을 더하기 위해 전형적인 수직 동선의 입면과는 조금 다른 형태의 앉음벽을 제안했다. 선클 플라자의 아래에서 위로 올라갈수록 앉음벽의 폭이 점진적으로 넓어져 상층 경관과 지층 구조물이 흥미로운 방식으로 섞인다. 이러한 방식을 바로 뒤이어 진행한 ‘상하이 슈헤완 도시 공원(Shanghai Suhewan Urban Park) 공모전’에서 보다 적극적으로 이용했다. JCFO_ 상하이 슈헤완 도시 공원 공모전 이 프로젝트는 2017년 차이나 리소스(China Resources)라는 중국의 국영 개발 기업이 주최한 지명초청 설계 공모로, JCFO는 세 팀 중 하나로 초대받았다. 이 디자인은 JCFO 내부에서는 좋은 평가를 받았으나, 상업 시설 면적이 부족하다는 이유로 클라이언트의 선택을 받지 못해 스터디 디자인에 그친 안이다. 대상지는 약 5만m2로 그리 넓지는 않지만, 슈헤완이라는 상하이의 행정 중심지 한가운데에 있어 상당한 잠재력을 지닌 곳이다. 클라이언트는 이 오픈스페이스가 대규모 상업시설로 개발될 곳이기 때문에 주변의 랜드마크로 작동함과 동시에 강력한 정체성을 가진 공간이 되어야 한다고 주문했다. 주변 상업 시설과 블록을 연결하는 지하 공간과 보행교를 반드시 설계해야 했고, 방문객의 자연스러운 유입을 고려한 수직 동선 설계도 필요했다. 또한 2차선 도로로 인해 두 덩이로 나뉜 대상지에는역사적 건축물을 비롯해 존치해야 하는 시설물이 다수 있어 제약 사항이 상당히 많았다. 나는 클라이언트가 무엇보다도 ‘일상의 공간과는 차별화된 독특한 공간’을 원한다고 생각했기 때문에 정적이고 차분한 디자인 언어는 처음부터 배제하며 작업을 시작했다. 차이나 리소스라는 클라이언트에게 이 공모전 프로젝트에서만큼은 예산에 대한 고려가 우선순위가 아니기에 다소 화려하고 역동적인 디자인을 실험해보고 싶은 마음도 컸다. 먼저 존치해야 할 시설을 피해 큰 동선과 디자인의 기본 골격을 만들었다. 보행교와 지하 공간이 연결되는 지점 또한 우리가 임의로 바꿀 수 없기 때문에 디자인의 큰 형태를 정하는 데 결정적 역할을 했다. 스튜디오 MRDO의 작업에서도 주변 맥락이 디자인의 큰 방향을 결정했지만, 그 경우에는 설계의 개념 및 전략과 직접 연결된다는 점에서 두 작업 방식은 확연히 다르다. 슈헤완 공원의 맥락은 단순히 물리적으로 수용해야 하거나 배제해야 할 대상일 뿐 그것이 개념으로 연결되지는 않는다. 디자인이 완성된 후에야 만들어낸 피치카토(pizzicato, 바이올린 등의 현을 손끝으로 튕겨 연주하는 기술)라는 개념은 도시의 전형적 격자 구조와 대비되는 곡선 형태의 디자인이 이 지역의 새로운 아이콘이 될 수 있음을 이야기한다. 그러나 이 설계의 장점을 가장 잘 설명할 수 있는 것은 개념이나 맥락이 아니라 공간 자체다. 타오푸 센트럴파크에서 선큰 플라자를 디자인할 때 이용한 언어를 이곳에서 더 적극적으로 활용했다. 점진적으로 넓어지고 좁아지는 앉음벽의 폭은 대상지 전체를 더 입체적이고 역동적으로 보이게 한다. 지하 레벨은 크게 네 덩이의 선큰 플라자와 지하도로 구성되는데, 각각의 선큰 플라자는 대상지 주변의 교점이나 주요 시설물을 향하고 있다. 리듬감 있게 변화하는 지하 공간의 폭은 긴장과 이완이 반복되는 음악의 선율처럼 극적인 시퀀스를 전달한다. 보행교 역시 지하 공간의 형태와 흐름에 맞추어 머물고 통과하는 장소의 조합을 고려해 디자인했다. 특히 다리의 기둥을 뒤집어진 언덕 형태로 디자인했는데, 이는 영화 ‘아바타(Avatar)’에 나오는 공중에 떠 있는 섬들처럼 비일상적 체험을 제공하는 주요 구조물이다. 지상 레벨과 선큰 플라자가 연결되는 곳은 입구 광장으로, 나머지 공간은 잔디광장이나 정원으로 조성하여 도시 광장과 근린공원의 기능을 함께 수행할 수 있도록 디자인했다. 이 프로젝트는 조경가로서 접하기 쉽지 않은 입체적공간 설계를 다루어 볼 수 있던 좋은 경험이었다. 무엇보다도 슈헤완 공원은 얌전하고 정적이었던 과거의 내 작업에서 완전히 벗어난 디자인 언어를 사용하는 계기가 되었다는 점에서 개인적으로 큰 의미가 있다. 디자이너의 정체성 설득 대상에 따라 명확히 달라지는 디자인을 보면 확실히 결과물의 주인은 디자이너가 아니라 클라이언트라는 생각이 든다. 그러므로 의뢰인의 취향이 제아무리 제각각이라 한들 이를 존중하고 만족시키려 노력하는 것은 디자이너의 당연한 의무일 것이다. 다양한 언어를 구사하는 디자이너는 다양한 요구를 들어줄 수 있다. 그러나 디자이너로서의 정체성 혹은 고유성은 남과 자신을 구분 지어 자신의 가치를 높일 수 있는 매우 중요한 조건이다. 아직 그 경지를 경험해 본 조경가가 아니기에 다소 막연한 이야기이겠지만, 좋은 디자이너란 자신만의 뚜렷한 정체성 안에서 다양한 색을 보여줄 수 있는 디자이너일 것이다. 이런 측면에서 나의 위치를 설계 인생 위에 놓고 보면아직 사춘기 같은 단계가 아닐까 생각한다. 아직 외부의 요구에 휘둘릴 때가 많아서인지 그런 요구를 만족시킬 수 있었다는 것만으로도 디자이너의 소임을 다했다 싶을 때도 있다. 하지만 조경을 안지 이제 10년 남짓한 나는 자신만의 확고한 디자인 정체성 혹은 일관성을 확보한 디자이너는 분명 아니다. 내가 중심에 있으면서도 다양한 클라이언트를 설득할 수 있는 날이 오기나 할까 싶으면서도 이 일을 계속해서 하다 보면 굳이 애쓰지 않아도 언젠가 자연스레 다가올 일인 것 같기도 하다. 문제는 어떠한 중심, 어떠한 정체성을 가진 디자이너가 될 것인가다. 지금의 미숙한 단계를 벗어나려 성급히 애쓰기보다 아직은 좀 더 다양한 방법으로 다양한 분야를 접하며 다양한 프로젝트를 경험하고 싶다. 그러다 보면 내가, 우리가 좀 더 확고히 흥미를 갖고 집중할 만한 방향을 발견할 수 있을 것이며, 그러한 방향이 나와 스튜디오 MRDO의 색을 좀 더 독특하게 만들어 주리라 믿는다. 완성된 작업의 주인은 우리가 아닐지라도 디자인의 방법론과 색은 물리적 결과보다도 더 가치 있는 우리만의 무형 자산으로 남을 수 있으리라 기대한다. 세 달간의 연재를 마친다(연재 끝). 전진현은 스튜디오 MRDO(Studio MRDO)를 공동 설립해 조경뿐 아니라 더욱 확장된 영역에서 디자인을 실험·연구하고 있다. 서울대학교 조소과 졸업 후 서울대학교 환경대학원과 하버드 GSD에서 조경학 석사 과정을 마쳤다. GSD 입학 전 신화컨설팅에서 근무했고, 현재 제임스 코너 필드 오퍼레이션스(James Corner Field Operations)에서 조경 디자이너로 일하고 있다. 보더스: DMZ 지하 대중목욕탕(Borders; Korean DMZ Underground bath house Competition), 세종대로 역사문화공간 설계 공모, 서울 도시 디자인 공모전 등 다수의 공모전에 당선되었다. www.studiomrdo.com
[가까이 보기, 다시 읽기] 형태와 기능의 통합 2
지난 연재에서는 미국 시카고에 위치한 네이비 피어Navy Pier의 디테일에 주목했다. 흥미 있는 형태form의 디자인이 어떻게 공간에 부여된 프로그램, 즉 기능function과 연관되는지에 주목하며 특히 포장과 가구 디자인에 초점을 맞추어 논의해 보았다. 그 논의를 연장하여 이번 연재에서는 구조와 건축에 관련한 디테일을 살펴보고자 한다. 설계 초기 단계에서부터 네이비 피어의 진입 지역에 교목을 정형적으로 열식하여 이용자에게 그늘을 제공하는 한편, 관문과 같은 공간의 전환을 연출하고자 했다. 문제는 피어가 토양이 없는 인공 지반이기 때문에 구조인 슬래브 위에 수목을 식재하기 위해서는 그 위에 거대한 플랜터를 얹어야 한다는 점이었다. 지면과 같은 높이에 수목 터널을 만들기 위해, 수목을 식재하기 위한 보강 구조물인 트리 터브tree tub를 설치하게 되었다. 트리 터브는 쉽게 설명하자면 수목을 식재할 공간을 만들어 주는 그릇 또는 통이다. 이를 설치하기 위해 기존의 콘크리트 슬래브와 기둥 구조물을 트리 터브의 모양대로 잘라내야 했다. 사람 크기의 기계톱으로 기존 구조물을 잘라내고 부수어, 기중기로 이를 들어내는 작업이 진행되었다. 트리 터브의 모양대로 네모반듯하게 잘린 슬래브에 콘크리트 트리 터브를 지탱하기 위한 철제 구조물을 설치했다. 철제 구조물은 각각 트리 터브의 크기와 모양에 맞추어 제작된 것으로, 피어의 중심 구조인 빔beam에 고정해 트리 터브를 지지하는 역할을 한다. 설치된 철제 구조물 위에 트리 터브를 올리고, 필요한 방수와 배수 공사 후 비로소 계획한 모습대로 수목을 식재할 수 있었다. ...(중략)... 안동혁은 뉴욕에 위치한 제임스 코너 필드 오퍼레이션스(James Corner Field Operations)에서 활동하고 있는 펜실베이니아 주 등록 미국 공인 조경가(RLA)다. 서울대학교 조경학과를 졸업하고 동 대학원에서 석사 학위를, 미국 펜실베이니아 대학교에서 조경학 석사 학위를 받았다. 졸업 후 현재 회사에 8년째 근무하면서 Philadelphia Race Street Pier, 부산시민공원, London Queen Elizabeth Olympic Park, Hong Kong Tsim Sha Tsui Waterfront 등의 프로젝트를 진행해 오고 있다. * 환경과조경 353호(2017년 9월호) 수록본 일부
[다른 생각, 새로운 공간] 김상환 방천골목오페라축제 추진위원장
‘대프리카’의 화염이 본격화되기 전인 지난 6월, 대구의 한 평범한 골목이 밤마다 오페라로 물들었다. 슬리퍼 끌고 반바지 입고 나간 동네 길. 그 일상의 환경에서 만난 ‘카르멘’은 그야말로 눈부셨다. 누군가에게는 첫 경험일지도 모를 ‘투우사의 노래’와 ‘하바네라’는 강렬했다. 거리에 앉거나 선 사람들에게 손에 잡힐 듯 가까운 배우들, 모든 자리가 R석이었다. 무대가 된 메타세쿼이아 나무와 주변의 무덤덤한 3층짜리 콘크리트 건물들이 그날따라 그렇게 멋있게 보일 수가 없었다. 게다가 훌륭한 음향 반사판이었다. 차 없는 거리는 하늘로 열린 아레나였다. 화이불치華而不侈, 오페라 축제지만 사치스러움은 느껴지지 않았다. 그날 밤 모인 수백 명의 사람들은 아스팔트에 신문지를 깔고 앉아 ‘카르멘’에 취했고, 우리의 상상은 어느덧 세비야의 골목길을 내달리고 있었다. 방천골목오페라축제는 그야말로 골목의 축제였다. 같은 콘텐츠라도 건물 안에 있던 것을 밖으로 끄집어내면 완전히 다른 이야기가 된다는 사실을 적나라하게 보여주는 사례다. 오페라하우스 건설에 드는 뻑적지근한 비용을 고려하면, 왜 이제껏 골목이 오페라의 무대가 되지 못했을까 오히려 의구심이 들 정도였다. 공연장 하나를 짓는 비용으로 방천골목오페라축제는 수백 년간 열릴 수 있을 것이다. 이탈리아 베로나Verona가 2,000년 전에 지은 원형 경기장을 사용해 매년 도시 인구의 두 배에 달하는 50만 명을 끌어들이고 있는 예나, 미국 매사추세츠의 작은 마을 레녹스Lenox의 탱글우드Tanglewood 잔디밭에서 벌어지는 유명한 클래식 음악 축제를 굳이 들먹이지 않더라도, 한국의 지방 도시 골목 오페라의 사업적 타당성과 미래는 무척 밝아 보였다. ...(중략)... 최이규는 1976년 부산 생으로 뉴욕에서 10여 년간 실무와 실험적 작업을 병행하며 저서 『시티오브뉴욕』을 펴냈고, 북미와 유럽의 공모전에서 수차례 우승했다. UNKNP.com의 공동 창업자로서 뉴욕시립미술관, 센트럴 파크, 소호 및 대구, 두바이, 올랜도, 런던, 위니펙 등에서 개인전 및 공동 전시를 가졌다. 현재 계명대학교 도시학부에 생태조경학전공 교수로 재직하며 울산 원도심 도시재생 총괄코디네이터로 일하고 있다. * 환경과조경 353호(2017년 9월호) 수록본 일부
[정원 탐독] 이슬람 정원의 상징
문명의 발달과 정신 Civilization=Spiritual. 역사학자 엠마 클라크는 인류가 문명과 정신의 세계를 분리할 수 없는 관계로 함께 발전시켜 왔다고 말한다. 문명의 발달은 그곳에 사는 사람들의 정신을 단단히 움켜쥐고 흥망성쇠를 같이 해 왔다. 이 정신의 세계를 대표하는 것이 바로 종교다. 인류의 문명지마다 그들만의 종교가 발생했던 이유 또한 여기에 있는 셈이다. 그런데 사람은 쉽게 잊고 변형시키는, 한결같음을 유지할 수 없는 존재다. 그래서 잊지 말고 끊임없이 기억하게 할 장치가 필요했고, 그것이 우리가 종교적 건물, 조각물, 예술품 속에 무수히 상징을 새겨놓은 이유기도 하다. 다시 말해 종교의 상징들은 ‘신이 여기에 있다’를 말해주는 것으로, 이 상징을 통해 변형되려는 우리의 마음을 다잡으라는 의미다. 유럽인들은 그들 정원의 정신적·디자인적 뿌리를 중동의 페르시아 정원으로 본다. 중동의 정원 문화를 수천 년 역사를 통해 흡수했기 때문이다. 그런데 중동의 정원 역사를 말하는 것이 쉬운 일은 아니다. 정치, 역사, 지리적으로 세계에서 가장 복잡다단한 지역인 중동을 몇 줄로 요약하기 쉽지 않기 때문이다. 아주 개략적으로 본다면, 중앙아시아와 맞닿아 있는 지금의 이란 땅에서 발생한 고대 페르시아 문명과 이라크가 있는 아라비아 반도에 세워진 바빌로니아 왕국을 그 근본으로 볼 수 있다. 6세기 무렵 엄청난 변화가 생기는데, 바로 중동 전체를 종교의 힘으로 통합시킨 선지자 모하메드가 창시한 이슬람의 탄생이다. 물론 이곳에 처음부터 정원 개념이 발달했던 것은 아니었다. ...(중략)... 오경아는 방송 작가 출신으로 현재는 가든 디자이너로 활동 중이다. 영국 에식스 대학교(The University of Essex) 리틀 칼리지(Writtle College)에서 조경학 석사를 마쳤고, 박사 과정 중에 있다. 『시골의 발견』, 『가든 디자인의 발견』, 『정원의 발견』, 『낯선 정원에서 엄마를 만나다』 외 다수의 저서가 있고, 현재 신문, 잡지 등의 매체에 정원을 인문학적으로 바라보는 칼럼을 집필 중이다. * 환경과조경 353호(2017년 9월호) 수록본 일부
[시네마 스케이프] 덩케르크
영화가 가진 특별함은 무엇일까? 서사를 전달하지만 소설과는 다르고 이미지를 보여 주지만 사진과는 다른 특별함. 그것이 궁금하다면 주저 없이 이 영화를 추천하고 싶다. 전 세계인에게 결과가 알려진 덩케르크 철수 작전. 크리스토퍼 놀란 감독은 시공간을 확장하거나 압축하여 상황을 재구성하는 방식으로 영화라는 매체의 특성을 드러내고 있다. 1940년, 제2차 세계대전 초기, 영국과 프랑스 연합군은 독일군에게 밀려 프랑스 덩케르크 해변에 고립된다. 도버 해협만 건너면 영국 땅이다. 군사를 지원해도 번번이 실패하자 연합군은 기상천외의 작전을 세운다. 해변에 고립된 40만 명 가까운 아군을 탈출시키는 것. 실어 나를 배가 턱없이 부족하자 영국군은 민간인의 배를 징발한다. 작은 어선에서 초호화 요트까지 예상보다 많은 배를 모으고, 구축함과 함께 벌인 9일간의 대규모 철수 작전은 역사상 유례없는 성공을 거둔다. 이것은 역사적 사실을 요약한 것이지 영화 줄거리가 아니다. ...(중략)... 서영애는 조경을 전공했고 일하고 공부하고 가르치고 있다. 요즘 개봉한 좋은 영화들을 뒤로 하고 ‘덩케르크’를 한 번 더 봤다. 여러 편의 영화를 보는 것보다 좋아하는 영화를 여러 번 보는 것을 더 좋아한다. 가슴 졸이느라 놓쳤던 새로운 장면도 보이고 결과를 알고 보니 감동은 배가 되었다. 여름을 좋아하지만 올 여름은 유난히 덥고 길게 느껴진다. 여름엔 역시 극장이 최고다. *환경과조경353호(2017년 9월호)수록본 일부
[예술이 도시와 관계하는 열한 가지 방식] 도시의 잠복자들
“난 우리가 좀 더 청춘에 집중했으면 좋겠어.” 최근 이 한 문구를 둘러싸고 논란이 일고 있다. 원작자 김정민 씨가 과거 자신이 속한 인디밴드 앨범 표지에 썼던 이 문구가 점점 퍼지면서 유사 문구로 패러디되기 시작했고, 이어 현대백화점 유플렉스가 이를 홍보 문구로 사용한 것이다. 상업적 목적으로 해당 문구를 사용하면서도 어느 누구도 원작자에게 사용 문의를 하거나 로열티를 지불하지 않았다. 소규모 자영업자의 경우 그러려니 했지만, 대기업조차 출처도 밝히지 않고 아무런 사전 협의도 없이 해당 문구를 홍보와 매장 인테리어에 사용하는 것을 보면서 원작자는 문제를 제기하기로 결심했다. 이는 자주 회자되는 어떤 무형의 것을 속담이나 출처가 불분명한 유행어와 같은 공공재로 인지하고, 그것을 창작자의 입장에 대한 고려 없이 얼마든지 자신의 이익을 위해 가져다 쓸 수 있다고 생각한 데에서 비롯한 일이다. 어쩌면 누구든지 누군가의 창작물을 끊임없이 쉽게 퍼다 나를 수 있는 인터넷 문화가 한몫하고 있는지도 모른다. 물론 최근에는 인터넷 게시물조차 원작자의 의지에 따라 배포 가부 여부가 결정됨에도 불구하고 말이다. ...(중략)... 진나래는 미술과 사회학의 겉을 핥으며 다방면에 관심을 갖고 게으르게 활동하고 있다. 진실과 허구, 기억과 상상, 존재와 (비)존재 사이를 흐리고 편집과 쓰기를 통해 실재와 허상 사이 ‘이야기-네트워크-존재’를 형성하는 일을 하고자 하며, 사회와 예술, 도시와 판타지 등에 관심이 있다. 최근에는 기술의 변화가 만들어내는 지점에 매료되어 엿보기를 하고 있다. 2012년 ‘일시 합의 기업 ETC(Enterprise of Temporary Consensus)’를 공동 설립해 활동했으며, 2015년 ‘잠복자들’로 인천 동구의 공폐가 밀집 지역을 조사한 바 있다. www.jinnarae.com *환경과조경353호(2017년 9월호)수록본 일부
유럽에서 가장 쿨한 도시, 리스본
포르투갈의 도시는 우리에게 낯설다. 이 나라 어떤 도시에 대해서도 국내 교육 과정에서 제대로 다룬 기억이 없다. 수도 리스본이나 제2의 도시 포르투를 전문적으로 연구한다는 사람도 좀처럼 만나보지 못했다. 물론 단편적인 지식은 적지 않다. 15~16세기 대항해 시대에 브라질, 앙골라와 모잠비크, 인도 서부와 동티모르를 아우르는 거대한 제국을 건설한 해양 강국이자, 알바로 시자라는 천재 건축가, 그리고 루이스 피구나 크리스티아누 호날두 같은 세계적 축구 스타를 여럿 배출한 나라. 그럼에도 지난날의 영광을 뒤로한 채 경제 위기에서 벗어나고자 발버둥치는 EU의 경제 열등생. 이런 단편적 지식에도 불구하고 이 나라의 도시계획사 혹은 수도 리스본의 도시 공간에 대한 우리의 지식은 빈약하기만 하다. 최근 리스본이 전 세계의 주목을 받고 있다. 영국 일간지 「가디언」은 기사 “어떻게 쇠락하던 리스본이 ‘쿨’한 도시로 거듭났나?”에서 리스본을 “힙hip하고 저렴cheap하고 혁신적인innovative” 도시로 표현했다. 지난 7월 AESOP 컨퍼런스를 계기로 직접 목격한 리스본도 놀라우리만큼 근사했다. 도시 전체가 패치워크처럼 얽힌 랜드스케이프 작품으로 읽힌다. 골목 여기저기서 들려오는 포르투갈 전통 음악 파두fado는 시적 감성마저 불러일으킨다. 근사한 현재보다 가까운 미래에 더 찬란한 변화가 예견되는 곳, 로마 시대의 골목과 18세기의 도시 격자를 배경으로 젊고 생동감 있는 문화가 꿈틀대는 곳. 이와 함께 관광화, 명소화에 대한 우려가 교차하는 곳이 리스본이다. ...(중략)... *환경과조경353호(2017년 9월호)수록본 일부
2017 뮌스터 조각 프로젝트
2017년은 베니스 비엔날레, 카셀 도쿠멘타Kas sel documenta와 함께 10년마다 열리는 공공 예술 축제, 뮌스터 조각 프로젝트Skulptur Projecte in Münster(이하 뮌스터 프로젝트)가 열리는 특별한 해다. 올해로 5회째를 맞이한 뮌스터 프로젝트는 인구 30만 명밖에 되지 않는 독일 소도시, 뮌스터를 공공 미술의 천국으로 만들었다. 그리고 지금 뮌스터는 전 세계에서 온 ‘매혹적으로 늙은, 짜릿하게 젊은’ 사람들로 가득하다. 뮌스터가 조각전을 넘어서 공공 예술 축제로 여겨지는 것은 그 시작과 특별한 전시 방법 때문이다. 사실 뮌스터는 예술 도시와 거리가 멀었다. 1975년에 뮌스터 시는 카셀 도쿠멘타에 출품된 헨리 무어Henry Moore의 작품을 공공장소에 설치하고자 했지만 빗발치는 시민들의 항의에 취소하게 된다. 현대 조각의 아버지라 불리는 헨리 무어의 작품도, 시민에게는 흉측한 덩어리에 불과했던 것이다. 그 대신 조지 리키George Rickey의 ‘세개의 회전하는 사각형Drei rotierende Quadrate’을 설치했지만 한층 더 추상적인 형태로 인해 논란은 더욱 극대화되었다. 이에 주립 미술관장 클라우스 부스만Klauss Bussman은 시민들이 현대 조각을 쉽게 접할 수 있는 묘안으로 뮌스터 조각 프로젝트를 구상, ‘20세기 조각의 역사’라는 제목으로 첫 번째 전시를 열었다. ...(중략)... *환경과조경353호(2017년 9월호)수록본 일부
제24회 조경디자인 캠프
지난 7월 10일부터 21일까지 한국조경학회가 주최한 ‘제24회 조경디자인캠프’가 서울대학교 환경대학원에서 진행됐다. 이번 조경디자인캠프는 이유미 교수(서울대학교)가 교장을, 송영근 교수(서울대학교)가 교감을 맡아 ‘놀이 도시-공공 공간의 유희적 역할Ludic City-Playful Uses of Public Space’라는 주제로 이끌었다. 총 14개 대학 38명의 학생이 참여했으며, 각 분야의 전문가와 함께 다양한 맥락과 이용자의 관점에서 현대 사회에서의 ‘놀이’를 분석하고 실험적 공간과 프로그램을 설계했다. 본격적인 스튜디오 진행에 앞서 4일간 전상인 교수(서울대학교)의 ‘시각도시에서 오감도시로’, 안영노 문화예술기획가의 ‘공공장소가 테마파크가 되는 방법’, 홍보라 디렉터(갤러리팩토리)의 ‘랜드스케이프 디자인과 공공미술: 새로운 가능성’, 이우향 사무국장(서울그린트러스트)의 ‘공원아 놀자!’, 양수인 대표(삶것 건축사사무소)의 ‘처음 들어 이상하지 않은 생각에 희망은 없다’ 등 특별 강연이 진행되어 ‘공공 공간의 유희적 역할’을 입체적으로 이해하는 시간을 가졌다. 이어 학생들은 사례지 답사를 통해 주어진 대상지를 직접 분석하고 공공 공간이 어떤 유희적 역할을 해낼 수 있는지 스스로 파악해나갔다. ...(중략)... *환경과조경353호(2017년 9월호)수록본 일부
제14회 대한민국 환경조경대전 시상식
지난 8월 23일 대한민국 환경조경대전 운영위원회는 문화역서울 284 RTO관에서 ‘제14회 대한민국 환경조경대전’ 시상식을 개최했다. 이날 경희대학교 학생으로 구성된 네 팀이 대상과 금상을 비롯해 본상을 수상해 이목을 모았다. 올해 신설된 지도교수상 역시 경희대학교의 서주환 교수에게 돌아갔다. 이번 대한민국 환경조경대전의 공모 주제는 ‘광장의 재발견’이다. 그 어느 해보다 ‘광장’이 사회적으로 크게 주목받았던 것을 고려해 ‘광장’을 핵심 키워드로 제시했다. 그 결과 총 77개 작품이 접수됐으며, 심사 결과 본상 16개 작품과 입선 13개 작품이 선정됐다. 대상은 이지현·김유진 팀(경희대학교)의 ‘숲새마당, 사람 사이를 흐르다’가 선정됐으며, 금상은 한지민·이은진 팀(경희대학교)의 ‘광장자리, 나누어 잇다’, 은상은 김관수·김자정·우진명 팀(동아대학교)의 ‘Be;울’과 김지한·최다영 팀(강원대학교)의 ‘연’이 수상했다. ...(중략)... *환경과조경353호(2017년 9월호)수록본 일부
[편집자의 서재] 쿠드랴프카의 차례
변덕스러운 계절이었다. 몇 달간 에어컨 없이는 잠들 수 없는 폭염이 계속되더니, 몇 주 전부터는 장맛비가 내리기 시작했다. 불볕더위도 끝인가 싶어 숨을 돌리는 순간 이번엔 습하고 뜨듯한 바람과 언제 내릴지 알 수 없는 소낙비가 정신을 차릴 수 없게 한다. 어정쩡한 날씨 때문일까, 이맘때쯤이면 (그다지 좋아하지도 않으면서) 꼭 찾게 되는, 등골을 서늘하게 할 공포 영화나 소설이 생각나지 않았다. 납량 특집이라는 문구로 치장한 TV 프로그램에도 별 흥미가 생기지 않고, 악령에 씐 인형(악령이 들지 않으면 이상할 정도로 괴기하게 생겼다) ‘애나벨’을 다룬 영화가 제법 재밌다는 이야기에도 극장에 가야겠다는 생각이 들지 않았다. 대신 이번 여름은 범죄 수사 드라마에 빠져 살았다. 검찰 조직 내부의 비밀에서 촉발된 것으로 보이는 살인 사건을 풀어 나가는 검사와 그 주변 인물을 다룬 드라마 ‘비밀의 숲’. 이야기의 큰 축을 이루는 사건과 긴밀한 연결고리를 갖는 작은 사건들이 정교하고 촘촘하게 배열되어 잠시도 눈을 뗄 수 없게 한다. 매회 새로운 증거가 등장하고, 그에 따라 의심스러운 인물도 매번 바뀐다. 시시각각 변하는 등장인물들의 눈빛, 왠지 어떤 의미를 담고 있는 것 같은 작은 손짓이나 행동들이 주인공 황시목 검사의 시선과 별개로 나만의 추리를 펼치게 했다. 너무 집중한 탓에 한 회가 끝날 때마다 온몸의 힘이 쭉 빠져나가는 듯한 기분을 느꼈다. 마지막 회를 보고 난 뒤에는 ‘단짠단짠’의 법칙처럼 가볍게 즐기며 볼 수 있는 이야기가 그리워지기도 했다. 그래서 오랜만에 책장에서 꺼내든 『쿠드랴프카의 차례』, 요네자와 호노부 ‘고전부 시리즈’의 세 번째 책이다. 『빙과』, 『바보의 엔드 크레디트』, 『쿠드랴프카의 차례』, 『멀리 돌아가는 히나』, 『두 사람의 거리 추정』 으로 구성된 ‘고전부 시리즈’에는 흔히 추리 소설의 소재로 사용되는 살인 사건이 없다. 대신 ‘왜 금요일마다 2학년 학생들이 돌아가며 같은 책을 대출하는 걸까?’, ‘책상 위에 올려둔 발렌타인 초콜릿이 어디로 갔을까?’ 등 일상생활 속 작은 미스터리를 풀어나가는 과정을 담고 있다. 엄청난 비밀을 파헤치는 이야기는 아니기에 긴장감은 덜 하지만, 덕분에 출퇴근길 지하철에서 짬짬이 시간을 내 읽을 수 있는 부담 없는 책이기도 하다. 하지만 사람이 다치거나 죽는, 자극적인 소재 없이도 충분히 재미있는 이야기를 만들어낸다. 그 힘은 섬세한 심리 묘사에 있다. 일반적인 추리 소설이 범죄를 파헤치는 과정과 트릭에 집중한다면, ‘고전부 시리즈’는 범인이 사건을 저지를 수밖에 없었던 이유, 그로 인해 초래된 씁쓸한 결말, 추리 과정에서 드러나는 등장인물의 내면과 변화에 집중한다. 첫 번째 이야기인 『빙과』에서 “안해도 되는 일은 안 한다. 해야 하는 일은 간략하게”(각주1)를 주장하던 주인공이 스스로 귀찮은 사건에 뛰어드는 모습은 다섯 권이나 되는 시리즈를 후루룩 읽고 싶게 만든다. “무미건조한 학창시절도 괜찮다고 생각하던 소년은 친구들을 만나면서 고교 시절이 좀 더 장밋빛이 되어도 좋지 않을까 생각하며 한층 성장한다. 지금 이 시절을 십 년 뒤에도 후회하지 않을 시간으로 만들려고 조금 더 노력하게 된다. 시간은 회색 토양에서 장미를 피우고, 추억을 아름답게 만든다. … 고전부원들이 『빙과』에서 찾아낸 진짜 진실은 그러한 깨달음이 아닐까.”(각주2) 『쿠드랴프카의 차례』는 ‘고전부 시리즈’ 중 치밀한 심리 묘사가 가장 돋보이는 편이다. 이야기는 카미야마 고등학교의 학원제를 배경으로 시작된다. 주인공 호타로를 비롯해 고전부원들은 실수로 문집을 200부나 찍게 되어 골머리를 앓는다. 그리고 그 와중 각 동아리의 핵심 물품이 ‘쿠드랴프카의 차례’에 따라 도난당하는 ‘십문자 사건’이 발생한다. 사건에 뛰어드는 등장인물의 모습들이 장마다 다른 시점으로 그려지는데, 이 과정에서 아무 관련 없을 것 같은 작은 에피소드들이 ‘열등감’이라는 키워드를 통해 하나로 뭉치는 것을 발견할 수 있다. 모든 면에서 자신을 앞서 나가는 무네요시에 대한 지로의 열등감이 ‘십문자 사건’을 벌이게 했고, 아이코가 고전부원인 미야카와 말다툼을 벌인 이유는 자신의 작품이 결코 하루나의 작품을 뛰어넘을 수 없다는 사실에 괴로웠기 때문이다. 매번 추리 대결에서 호타로에서 패배해 온 사토시는 이번에도 호타로보다 먼저 ‘십문자 사건’을 해결하지 못한다. “자기한테 자신이 있을 땐 기대란 말을 쓰면 안돼. 기대란 건 체념에서 나오는 말이야”(각주3)라는 사토시의 대사는 그가 얼마나 오랫동안 열등감에 시달려왔는지를 한눈에 보여준다. 전 편인 『바보의 엔드 크레디트』에서 호타로에게 자신의 재능을 자각해야 한다고 말하던 이리스의 말을 생각나게 하는 대목이기도 했다. 아쉽게도 ‘고전부 시리즈’는 2015년에 발간된 『두 사람의 거리 추정』을 끝으로 멈춰서 있다. 호타로가 고등학교를 졸업할 때까지 이야기는 계속된다고 했던 작가의 말을 믿으며, 요네자와 호노부의 또 다른 작품인 『여름철 한정 트로피컬 파르페 사건』을 읽어보려 한다. 제목처럼 달콤하고 시원해 늦더위를 날려줄 신선한 이야기가 담겨 있기를 바라며. 1. 요네자와 호노부, 권영주 옮김, 『빙과』, 엘릭시르, 2013, p.12. 2. 박현주, “해설, 장밋빛 추억은 시간의 조카”, 위의 책, p.254. 3. 요네자와 호노부, 권영주 옮김, 『쿠드랴프카의 차례』, 엘릭시르, 2014, p.374.
[CODA] 디지털 세상, 아날로그 취향
대학에 다닐 때, 학교 앞에는 작은 사회과학 서점이 있었다. 그 서점의 문에는 늘 흰색 대자보가 붙어 있었는데, 거기에는 각 동아리의 약속 장소와 시간이 빼곡하게 적혀 있곤 했다. 삐삐를 들고 다니던 시절이라, 어스름해질 무렵이면 누군가 메모판에 적어 놓은 약속 장소에 삼삼오오 모여들곤 했다. 지난밤에 적어 놓은 메모인줄 모르고 엉뚱한 술집에서 하릴없이 사람들을 기다린 적도 있다. 요즘 같으면 단톡방에 주소와 지도를 올리며 시간과 위치를 공지할 테니, 정말 호랑이 담배 피던 시절 이야기다. 동아리에서 공연을 올릴 때면, 학교 앞 서점들은 단골 광고주였다. 그러나 대학을 졸업할 무렵에는 대학가의 작은 서점들이 대형 서점에 밀려 문을 닫기 시작했고, 몇몇 선배들은 학교 앞 서점을 살리기 위해 후원을 하기도 했다. 그 시절 학교 앞 서점은 대학을 중심으로 한 지역ㆍ문화 공동체의 일원이라는 일종의 연대감이 존재했다. 그러나 이후 많은 학교 앞 서점이 사라졌다. 나도 대형 서점에 포인트를 쌓기 시작했다. 출판 업계에 종사하면서도 바쁘다는 핑계로 오프라인 서점보다 온라인 서점을 더 자주 이용하고, 때때로 아마존 같은 글로벌 온라인 서적 유통망을 이용하기도 한다. 여전히 종이책의 책장 귀퉁이를 접거나 밑줄을 그으며 보는 것을 선호하지만, 더 이상 종이책을 쌓아둘 공간이 없다는 이유로 혹은 여행갈 때 짐을 줄이기 위해 이북e-book을 구매하기도 한다. 2002년에는 우리나라에서 가장 역사가 긴 서점이라는 종로서적이 문을 닫았다. 이후 몇몇 대형 서점이 오프라인과 온라인 서점을 제패하는 듯했다. 이미 오프라인 서점은 대형 쇼핑몰이나 영화관 등과 결합했고, 서점 내부는 문구류나 디자인 용품 매장과 카페가 큼지막한 공간을 차지하는 엔터테인먼트 공간으로 변모했다. 동네 서점에는 사망 선고가 내려진 듯했다. 디지털 세상에서 종이책이 예전과 같은 영화를 누릴 수 없다는 것은 명백해 보인다. 그런데 이상한 것은 요즘 소위 핫한 동네에는 어김없이 작은 서점들이 생기고 있다는 사실이다. 이런 독립 서점에서는 대형 서점에서는 눈에 띄지 않는 독립 출판사의 책들을 볼 수 있다. 책방 주인의 관심사에 따라 서점마다 다른 색깔의 책들이 모여 있고, 한 사람을 위한 책을 처방해주는 서점도 있다. 홍대 주변이나 이태원에는 연예인이나 아티스트가 서점을 열고 책을 큐레이팅하기도 한다. 내가 사는 망원동에도 작은 동네 서점이 서너 개는 되는 것 같다. 이런 책방들은 핫한 장소로 인스타그램이나 블로그 등에 소개되기도 한다. ‘길’들이 인기 있자 서울시에서는 최근 책방길 11선(망원, 홍대앞, 연남, 이대앞, 해방촌, 이태원, 경복궁, 종로, 혜화, 관악, 강남)을 홍보하고, 책방길 지도를 만들어 배포하기도 한다. 역대 최대 규모로 흥행했다는 올해 서울국제도서전에는 20여 개 독립 서점이 참가했다. ‘서점의 시대’라는 기획전을 통해 작은 서점들은 독자의 마음을 잘 읽었다는 평가를 받았다.(각주1) 물론 이러한 작은 서점들이 대형 유통망이 쥐고 있는 헤게모니를 가져올 수 있다거나, 하다못해 ‘생존’ 이상의 수익을 내고 있다고 보기는 어렵지만, 종이책과 서점이 사양 산업으로 치부되는 요즘, 책을 파는 작은 공간에 대한 관심은 무엇을 의미할까. 사람들은 정보의 바다에서 사실은 선택지가 줄어들기를 간절히 바라는 욕구를, 작은 공간에서 면대면 접촉을 통해 해소하고 있는지도 모른다. 거기에 지역을 토대로 한 유대감, 혹은 세련된 취향을 공유하고 독특한 문화를 소비한다는 만족감이 덧붙여지지 않을까. 비단 책과 서점만의 문제가 아니다. 최근 지드래곤이 USB 앨범을 내면서 ‘이것이 음반인가 아닌가’ 하는 논란을 일으켰다. 그런데 한편에서는 영영 역사 속으로 사라진 줄 알았던 레코드판이 다시 인기를 끌고 있다. 최근 디지털에 비해 더 많은 비용이 소요되는 아날로그에 대한 관심이 다시 자라고 있다. 실리콘밸리와 같이 아날로그를 파괴한 디지털 테크놀로지 업계 종사자들은 “낮에는 코딩을 하지만 밤에는 LP레코드판을 모으고 수제 맥주를 만들고 보드게임을 하고 낡은 오토바이를 수리”한다.(각주2) 저널리스트 데이비드 색스는 『아날로그의 반격』에서 디지털 라이프가 일반화된 오늘날 아날로그가 다시 유행하고 있는 현상은 일부 힙스터에게 국한된 일시적인 트렌드나 노스탤지어가 아니라고 설명한다. 아날로그가 디지털보다 훨씬 더 잘하는 영역에서 반격이 시작되었다는 것이다. 그런 증거는 도처에서 발견된다. 다시 책 이야기로 돌아가 보자. 종이책/잡지 출판의 어려움을 이야기하면, 사람들은 디지털 콘텐츠를 판매해 돌파구를 찾으라고 권한다. 그런데 이상한 것은 많은 출판사, 매체들이 디지털 인프라를 구축하고 독자적인 콘텐츠를 생산하거나 종이책을 디지털화했지만, 아직까지 명백한 성공 사례는 나오지 않고 있다. 아니 투자비를 회수하거나 뚜렷한 수익을 낸 사례를 들어보지 못했다. 일례로 한때 태블릿 PC용 전자 잡지가 만들어져서 시장의 변화를 예고했지만, 지금은 태블릿 PC 자체의 인기가 시들하다. 하지만 이것이 국내에 한정된 이야기라고 생각했다. 그런데 다양한 사례를 수집한 데이비드 색스는 전자책의 성장 가능성을 충분히 인정하지만, “음악 업계에서 MP3가 했던 일을 출판 업계에서 전자책이 해낼 거라는 섣부른 예측은 점차 빗나가는 듯하다”고 평가한다. 디지털 콘텐츠를 읽는 것과 종이 매체를 읽는 경험의 차이는 무엇일까? 『아날로그의 반격』에서는 「뉴욕타임스」를 담으로 둘러싸인 정원에 비유한다. 하이퍼링크나 경쟁 신문들에 의해 주의를 빼앗기지 않는 환경에서 읽기 때문이다. “종이에 인쇄된 뉴욕타임스를 읽는 것은, 세상의 나머지 소식들을 함께 전달하는 디지털 플랫폼에서 뉴스를 읽는 것과는 다릅니다.” 그러면 종이로 만든 조경 잡지를 보는 것은 디지털 콘텐츠와 비교해 어떤 장점이 있을지 생각해보자. 우선 배터리 잔량이나 와이파이 연결 걱정을 할 필요가 없다. 그리고 로딩을 기다리지 않고도 손으로 훌훌 넘겨가며 고해상도 사진을 자유롭게 볼 수 있다. 책장에 가지런히 꽂아두면 인테리어 효과도 훌륭하다. 그리고 마치 책방 주인이 권해주는 책을 읽듯이, 수많은 정보 중에 엄선되어 잘 배치된 콘텐츠를 보면서 만족감을 얻을 수도 있다. 혹시 자신의 글이나 작품이 실렸다면, 남에게 선물하기도 좋다. 물론 디지털 콘텐츠라면 링크를 보낼 수도 있다. 하지만 종이 잡지에는 쉽게 휘발되지 않는 물리적 실체가 주는 ‘진짜’라는 느낌이 있다. 디지털 세상에서 한 달 한 달 종이 잡지를 만들다보니 아날로그에 대한 관심을 일시적 트렌드가 아니라 균형을 찾아가는 현상으로 읽고 싶어진다. 보고 싶은 것만 보게 되는 요즘이다. 1. 이대희, “서울국제도서전 성공의 의미는?”, 프레시안 2017년 6월 30일. 2. 데이비드 색스, 박상현ㆍ이승연 옮김, 『아날로그의 반격: 디지털, 그 바깥의 세계를 발견하다』, 어크로스, 2017. 이하 모두 같은 책에서 인용.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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