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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칼럼] 조경이상
  • 환경과조경 2018년 1월

2017년 12월 8일, 열아홉 명이 다시 논현동에서 모였다. 미국에서 귀국한 지 얼마 안 된 후배가 뒤늦게 합류했다. 그는 지인들과 인사를 나누고 나에게 다가와 조용히 물었다. “그런데 여기는 뭐하는 모임이에요?”

처음 우리가 모인 것은 2016년 12월 7일이었고, 그때 우리는 열세 명이었다. 여름조경디자인캠프 튜터들의 뒤늦은 뒤풀이 자리였던 것으로 기억한다. 매번 이렇게 술자리에서 감정과 생각을 소비하지 말고 제대로 모여 생산적인 일을 함께 하자고 말했다. 술기운 때문이었는지 모두 상기된 목소리로 꼭 모여서 무엇인가를 하자고 다짐했으나, 그 다짐은 잠시 잊혀졌다.

눈이 왔을 때 우리는 다시 모였다. 우리 대부분은 오롯이 자기 이름을 내세울 순 없어도 분명 자기의 설계를 한다고 할 수 있는 30대 중반에서 40대 초반의 조경가들이다. 우리는 기성세대에 속하지 않기 때문에 기성세대를 비판할 권리를 가지고 있다고 믿었고, 스스로 그 대안이 될 수 있다고 믿었다. 그래서 서로가 같은 생각을 하고 있으리라는 확신을 가졌던 듯하다. 하지만 막상 그렇게 만난 우리는 무척 달랐다. 오랜 시간 이야기를 주고받았지만 서로의 의견에 완전히 동의할 수 없었다. 다음번에는 꼭 모두의 공통된 지향을 찾아내자고 격려를 하고 헤어질 수밖에 없었다. 하지만 다음에 모였을 때도 우리는 모두가 만족할 만한 대답을 찾지 못했다.

우리는 생각보다 이상적이었고 동시에 생각보다 현실적이었다. 생각보다 더 피상적이었고 생각보다 더 순진했다. 그래서 누군가는 실망했고 누군가는 냉소했다. 더 이상 그렇게 많은 인원이 함께 모이지는 않았다. 남은 이들은 공통의 목표가 없어도 최소한 일 년만 매달 모여서 서로의 생각을 나누자고 했다. 모임의 존속이 모임의 새 목표가 되었다. 그런 보잘것없는 목표를 세우고 나니 무엇인가를 이루어야 한다는 강박에서 벗어날 수 있었다.

각자 그동안 혼자 마음에 담아 두었던 주제에 대해 발표를 했다. 그 다음에는 지금 하고 있는 작업을 각자 소개했다. 조경의 정체성에 대한 강의도 있었다. 통의동에서 의미 있는 일이 벌어지고 있다고 해서 가 보았다. 한번은 도시재생을 주제로 이야기를 나누었다. 어떤 날은 날씨가 좋아 밖에서 그냥 맥주를 함께 마셨다. 서울시에서 공공조경가를 뽑기에 우리가 지원해서 활동하자고 제안했다. 우리 중 꽤 많은 사람이 공공조경가에 선정되었다. 푸른도시국의 정책이 궁금해서 어느 사무관을 초청해 설명을 들었다. 각자의 작품과 설계에 대한 생각을 돌아가면서 심도 있게 말하고 들어보았다. 우리는 여덟 번째 모임에서야 모임의 이름을 ‘조경이상’이라 지어 주었다. 우리 중 한 명이 사무실 개소 2주년 파티에 초대했다. 할로윈 파티를 겸한다고 해서 다 함께 참석했다. 그리고 다음에 만나기로 했을 때 그렇게 일 년이 지났다는 것을 깨달았다.

지난 일 년 동안 이룬 가시적 성과는 없었다. 그렇게 날을 세우며 비판했던 현실의 문제도 아무것도 해결하지 못했다. 그럼에도 모이는 인원이 조금씩 늘어났다. 주변 지인들을 초대하다보니 설계의 경계를 넘어 활동가도, 팟캐스트 운영자도 모였다. 자연히 여기서 만난 사람들끼리 함께 일을 하게 되었다. 내가 하기 어려운 프로젝트를 연결시켜 주기도 했다. 어떤 이들은 공동으로 운영하는 사무실 구조를 만들었다. 함께 전시회에 초청을 받아 작품을 전시했고 함께 대학에서 가르치기도 했다. 서로를 비평했고 서로를 상찬했다. 서로를 위로하기도 했고 서로에게 질투를 느끼기도 했다.

처음에 우리가 찾고자 한 공통의 지향은 일종의 ‘운동’과 같은 성격의 무엇이었는지도 모르겠다. 한국의 조경에는 운동이 있었던 적이 없다. 68혁명의 열기에 동참하기에 우리 사회는 아직 성숙하지 못했었고, 1987년에 찾아온 민주화의 폭풍 속에서도 조경은 아무것도 하지 않았다. 어쩌면 우리는 최소한 건축이라는 옆 동네에 나타났던 청건협의 뜨거운 사회적 외침이나 4.3그룹의 세련된 문화적 담론과 비슷한 것을 흉내 내고 싶었는지도 모른다. 고작 목소리를 높일 때라고는 기득권이 침해될 때나 더 많은 몫을 달라고 요구할 때뿐이었던 비루한 조경의 모습이 부끄러웠다. 하지만 우리에게 과거를 비판할 권리가 있다면 그 정당성은 과거의 성공과 과오에 있어 우리가 아무런 역할도 하지 않은 데 있을 뿐이다. 그런 자각 때문에 우리는 일종의 강박처럼 일 년간 모였던 것일 수도 있다. 방황에 가까웠던 지난 일 년을 마무리하는 자리에서 그토록 찾고자 했지만 찾지 못했던 지향이 희미한 형태로 드러났다. 그것은 극렬한 문제의식도, 변화를 위한 공동의 전선도, 새로운 도약을 위한 자각도 아니었다. 조경을 하고 있지만 조경의 틀에 얽매이지 않고 자유로워지는 것. 미래를 위해 현재를 희생시키지 않으며 지금 여기서 우리가 할 수 있는 일을 찾아나가는 것. 이것이 우리가 지난 일 년 동안 모이며 깨달은 우리의 지향이었다.

이번 모임에서 우리는 너무나도 쉽게 다음에 함께 하고 싶은 일 몇 가지를 찾았다. 첫째, 조경하는 사람들의 전시를 기획하기로 했다. 그 경험을 토대로 2022년 광주에서 세계조경가협회 컨퍼런스가 열릴 때 베니스 비엔날레만큼 멋진 콘텐츠를 미리 준비해 놓자고 다짐했다. 둘째, 곧 만들어질 용산공원을 시민이 제대로 주체가 되어 기획하고 가꿀 수 있도록 조직을 만들고 활동해나가기로 했다. 셋째, 우리 다음의 세대를 위해 지방의 조경학과를 돌며 특강을 개최하는 계획을 세웠다. 모두가 이 일의 주체일 필요는 없다. 주체가 될 권리만큼 주체가 되지 않을 권리도 있다. 그래야 나의 꿈을 강요하지 않으면서도 같은 꿈을 꿀 수 있다. 펠릭스 가타리가 말했다. “연대할수록 우리는 달라져야 한다.” 그말 그대로다. 우리는 연대할수록 서로 달라지고 그 다름이 우리를 연대하게 만드는 이유이자 힘이다.

나는 기대와 의심이 섞인 눈빛으로 나를 바라보는 후배에게 대답했다. “만일 조경을 하다가 네가 무엇인가 재미있고 의미 있는 아이디어가 생기고 그 일을 하고 싶은데 같이 할 사람도, 마땅히 이야기할 데도 없으면, 여기서 같이 하면 돼.”


김영민은 1978년생으로, 서울대학교에서 조경과 건축을 함께 공부했고 하버드 GSD에서 조경학 석사 학위를 받았다. 미국의 SWA Group에서 6년간 다양한 조경 설계와 계획 프로젝트를 수행하면서 USC 건축대학원의 교수진으로 강의를 했다. 동시대 조경과 인접 분야의 흐름을 인문학적인 시각으로 읽어내는 데 관심이 있으며, 설계와 이론을 넘나드는 다양한 활동을 펴나가고 있다. 『랜드스케이프 어바니즘』을 번역했으며, 『용산공원』 등 다수의 공저가 있다. 최근에는 설계 방법론을 다룬 저서 『스튜디오 201, 다르게 디자인하기』를 펴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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