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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에디토리얼] 공감을 통해 회복탄력성을 설계하다
  • 환경과조경 2018년 7월

지난 517, 전 세계 조경계의 이목을 집중시키며 1년간 진행된 리질리언트 바이 디자인(Resilient by Design: Bay Area Challenge)의 아홉 개 최종 당선 작이 발표됐다. 이 혁신적 공모전의 당선작과 해설 기사를 이번 호 특집 격으로 싣는다. 아름다운 수변 경관으로 유명한 샌프란시스코 베이 일대를 다룬 리질리언트 바이 디자인은 특정 부지의 개발과 조성을 목적으로 하는 일반적인 설계공모와 다르다. 해수면 상승에 따른 피해가 예측되지만 이미 수변까지 도시화가 진행된 역설적 상황. 이 설계공모는 곧 닥쳐올 위험에 회복탄력성(resilience)의 관점으로 대응하는 디자인 이니셔티브(initiative).


리질리언트 바이 디자인은 2014년의 리빌드 바이 디자인(Rebuild by Design)공모전의 연장선상에 있다(환경과조경20148월호 참조). 리빌드 바이 디자인은 2012년 미국 동부를 초토화시킨 허리케인 샌디에 따른 환경적·사회적 재난을 겪은 뉴욕 메트로폴 리탄 지역의 회복탄력성을 향상시키고자 한 초대형 프로젝트였다. 4년의 시차를 둔 두 공모에는 물론 몇 가지 차이가 있다. 리빌드 바이 디자인의 계기가 실제로 벌어진 재난의 복구였다면, 이번 리질리언트 바이 디자인의 초점은 아직 일어나지 않은 재난 혹은 서서히 일어나 눈에 띄지 않는 점진적 재난(본문 13)에 대한 고려다. 또 리빌드 바이 디자인의 핵심에는 연방 정부의 주도와 록펠러 재단의 후원이 있었던 반면, 리질리언트 바이 디자인은 이에 더해 지역 주민의 힘을 매개와 동력으로 삼은 차이도 있다. 전문가의 설계안을 지역 주민이 평가 하는 것에서 한 걸음 더 나아가 전문가와 지역 주민이 함께 설계안을 만들어감으로써 참여 주체 모두의 공감을 얻는 형식을 취한 것이다.


본문에 실은 계획안들의 핵심 내용 외에 이 지면에서 한 번 더 강조하고 싶은 이 공모전의 특징은 지혜로운 공모 과정이다. 설계공모 1단계에서는 참여 전문가의 구성, 역량, 제안서를 평가해 51개 지원 팀 중 10개 팀을 선정했다. 충실하게 준비된 대상지 자료가 사전에 공개되었음은 물론이다. ‘협력 리서치에 방점을 둔 2단계는 10개 참가 팀, 전문 가, 지역 커뮤니티, 지방 정부가 4주간의 공동 연구를 통해 프로젝트 의제를 발굴하고 팀별 대상지를 결정하는 과정이었다. 이 단계에서 주최 측은 지역의 회복탄력성 이슈, 대상지 일대의 지역사와 자연사, 당면한 위협에 대한 조사 등을 모은 사전 연구 자료를 제공했다. 3단계는 협력 설계의 과정이었다. 각 참가 팀은 2단계 협력 리서치의 결과물을 적용하고 지역 주민과 긴밀히 협력하며 팀별 설계 해법을 발전시켜 최종 설계안을 완성했다. 주최 측이 제공한 재무 가이드를 바탕으로 향후 사업 실행에 필요한 재정 전략도 마련했다.

 

1년이 넘는 길고 충실한 설계공모의 과정은 참가자, 전문가, 지역 주민, 이해관계자뿐 아니라 관심 있는 모든 사람의 공감대를 주조하는 회복탄력적 여정이었다고 평가할 수 있을 것이다. 리질리언트 바이 디자인은 닥쳐올 재난에 유연하게 대처할 수 있는 회복탄력성의 모색이라는 점에서도 의미를 지니지만 설계공모 과정 그 자체가 회복탄력적인 프로젝트인 셈이다. 이러한 과정 중심적 접근은 동시대 한국의 현실을 되돌아보게 한다. 거창한 설계 공모를 통해 당선작을 뽑아 놓고도 무관심의 공전을 거듭하고 있는 용산공원, 토건시대를 방불케 하는 속도전 설계공모가 낳은 볼품없는 서울로 7017, 자본과 공공성 사이를 갈팡질팡한 눈치보기식 설계공모가 지역 주민과 당선작 간의 갈등을 증폭시킨 잠실 5단지 재건축 등 최근 여러 설계공모의 난맥상은 공감을 설계하는 과정의 부재에서 비롯된 것이 아닐까.

 

4년 전의 리빌드 바이 디자인과 올해의 리질리언트 바이 디자인을 거치며 회복탄력성은 이제 생태학 연구의 주제를 넘어 동시대 조경이 정면으로 마주해야 할 본격적인 설계 과제로 부상하고 있다. 마침 이달에는 조경 설계를 통해 도시와 경관의 회복탄력성을 실험해 온 스토스(Stoss) 의 근작들을 함께 싣는다. 대표적인 랜드스케이프 어바니스 트로 손꼽히는 크리스 리드(Chris Reed)(스토스 소장)는 김세훈 교수(서울대학교 환경대학원)와의 인터뷰에서 회복탄력성 이슈와 관련해 미래 세대의 조경가에게 다음과 같은 말을 남긴다. “두 가지 생각이 중요하다고 본다. 하나는 우리가 생태 환경으로부터 얻을 수 있는 교훈이 무엇이며, 환경 변화에 대해 경관과 도시가 어떻게 대응하고 있는지를 이해하는 것이다. 또 다른 하나는 조경가가 현대 도시를 변화 시키는 데 어떤 역할을 할 수 있는지 생각하는 것이다. 생태 시스템의 복잡한 원리는 환경에 내재한 변화 가능성을 이해하고 받아들인다. 변화를 거부하고 스스로를 격리하기보다 변화와 함께 살아가고 견뎌내는 특성이 중요하다. 이러한 특성을 보이는 시스템에 대해 우리는 회복탄력적(resilient)’이라고 말한다(본문 83). 자연과 도시 환경의 회복탄력성을 기를 수 있는 설계적 지식이, 회복탄력적 설계를 가능하게 하는 실천적 연구가 필요한 시점이 아닐 수 없다.

 

환경과조경은 전 세계의 디자인 전문지 중 가장 빨리 리질리언트 바이 디자인을 지면에 담는 셈이다. 속도에 욕심을 낸 만큼 부족한 부분이 적지 않을 것이다. 설계안의 보다 상세한 내용, 다단계 공모 과정, 학제 간 전문가 집단의 협력, 공공 기관의 리서치 지원, 지역 커뮤니티의 참여, 기업과 재단의 후원 등 리질리언트 바이 디자인의 전모를 홈페이지(www.resilientbayarea.org)에 공개된 다양한 자료와 섬세한 보고서를 통해 일견하시길 권한다. 회복 탄력성 개념에 아직 익숙하지 않은 독자에게는 본지에 연재된 바 있는 전진형 교수(고려대학교 환경생태 공학부)리질리언스 읽기’ 1~6(환경과조경20166월호~11월호)를 우선 추천한다.

 

지난 6월호로 김호윤 소장(조경설계 호원)그들이 설계하는 법연재가 막을 내렸다. 그간의 수고에 감사드린다. 이번 7월호부터 3 회에 걸쳐 젊은 조경가 최재혁 소장(스튜디오 오픈니스)그들이 설계하는 법을 이어간다. 독자 여러분의 관심과 성원을 부탁드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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