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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유청오의 핀테스트] 라면과 사진 유청오 조경사진가 (blueophoto@naver.com)
입력 2020-08-05 12:15 수정 2020-08-05 12:1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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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는 맛은 잘 본다. 말 그대로 싱거운지 조미료가 많은지 비린지 텁텁한지 시큼한지 누릿한지를 들어간 재료와 함께 곧잘 알아맞힌다. 평생 차려진 밥상을 먹어온 탓인데 이쯤 되면 온갖 비난이 쏟아져도 도리가 없다. 그래도 아주 가끔은 도전정신을 발휘해 몇 가지 차려 먹는다. 하지만 말 그대로인 도전은 쟁취하기 쉽지 않다. 어설픈 손놀림으로 벌여진 것들(?)을 버리기 아까워 꾸역꾸역 삼키게 된다. 누군가의 말대로 입이 아니라 받아먹는 ‘주둥이’다. 


혼자 있을 때 만만한 것이 인스턴트식품이라 이것저것 해봐도 역시 라면만한 것이 없다. 대파가 약간 있으면 좋고 계란은 더욱 좋다. 물은 눈대중으로 조절하는데 너무 적다고 판단되는 정도가 적당하다. 자박하게 밥을 말아 먹을 생각이다. 인스턴트는 짜고 단맛이 좀 과해야 맛있다. 특히 배고플 때는. 그 이후의 과정은 모두 적당하게 하면 된다. 적당히 끓었을 때 스프와 면을 넣고 적당히 보글거리다가 면 색이 밀가루 빛을 살짝 잃었을 때 불을 끄고 먹으면 된다. 덜어서 먹든지 냄비채로 먹던지 상관없다.


야외에서 일을 보다가 출출하면 생각나는 것이 라면이다. 입맛은 없는데 끼니를 위한 의무감이 들었을 때 라면과 밥 한 공기는 아주 적절하다. 다만 늘 분식집 라면은 왜 내가 끓인 것과 다른 맛이 나는가에 대한 의문은 남아있었다. 재료가 다른 것일까. 아니면 불 맛이 다른 것일까. 아니면 분식집 인테리어가 달라서 그럴까. 비밀의 열쇠는 끝내 얻지 못했다. 사람 손으로 비슷한 용기에 같은 재료를 넣은 라면의 맛이 왜 다른가 말이다. 미스터리다. 


“사진은 별것 없잖아요. 그냥 누르면 되니”


별안간 들은 이 말에 엉뚱하게도 라면이 생각났다. 말 그대로 조리예시 대로 끓이면 되는 라면처럼 정해진 대로 누르면 찍히는 사진 아니냐는 소리다. 한편으로는 맞는 말이기도 하다. 하지만 다른 음식은 한 번도 맛본 적 없이 한평생 라면만 먹어온 사람과 대화하는 듯한 답답함은 반박의 의지를 지워버렸다. 수많은 사람들이 매일 사진을 찍는다. 카메라가 가리키는 대로 찍기도 하고 터치 몇 번으로 변하는 컬러에 질감에 감탄하기도 하고 확대 했다가 드넓게 파노라마로 찍기도 한다. 그것은 분명 자신의 사진이다. ‘내’가 찍은 사진이니까. 그러니 본인이 끓인 라면이 가장 맛있다고 하면 대놓고 할 말이 없다. “제가 가본 분식집 라면은 드셔보셨어요?” 라고 되묻고 싶지만 속으로 삼킬 뿐이다.


분명 -내가 느꼈던 분식집 라면처럼- 프로 사진가는 사진의 다른 맛을 보여줘야 한다. 그것이 사진을 업으로 하는 사람의 몫일지도 모른다. 입맛에 맞도록 조리예시 대로 찍을 수도 있고 자극적인 맛으로 승부할 수도 있다. 맛있는 요리는 맛뿐만 아니라 분위기처럼 숨은 이야기가 있다. 사진도 한 장에 이야기가 존재해야 한다. 이야기가 있는 사진 한 장에서 사람들은 공감하고 감동하고 소통한다.


때로는 정성들인 사진일지라도 보는 이에게 별것 아닐 수도 있다. 음식점의 음식을 평가할 때 냄비며 각종 조리도구는 무엇을 썼는지 가게 인테리어는 어떤 재료와 테마를 적용했는지로 평가할 수도 있고 플레이팅으로 혹은 주방장의 생김새로 평가할 수도 있다. 다만 “입에 들어가는게 다 똑같지 뭐”라고 하는 사람에게는 설득의 여지가 없다. 


조경사진 촬영에서도 마찬가지다. 식물의 생김은 어떠한지 설계 시공자의 생각은 어땠는지, 시설물의 생김은 어떤지, 빛의 방향은 어떤지, 바닥의 패턴은 어떤지, 그리고 촬영해야 하는 포인트는 어떤지 등 무수히 많은 판단과정을 거쳐서 그저 ‘누르는’ 것이다. 음식재료를 고르듯 카메라의 기종을 선택하고 탁월한 맛을 내기 위해 렌즈를 선택하고 나아가 필터를 덧댄다. 그리고는 끓여내듯이 셔터스피드와 조리개를 정성스럽게 조절하다보면 음식이 익어가듯 셔터버튼을 누르는 것이다.


단지 누른다고 끝나지 않는다. 플레이팅을 하듯이 암실작업으로 하나하나 골라 밝혀내고 지워내고 컬러를 덧대어야 완성으로 나아간다. 얼마나 큰 크기의 접시에 담을지 고민 하듯이 내어 걸을 곳을 감안해서 출력한다. 오직 사진을 맛보고 음미할 누군가를 위한 한 장의 사진을 위한 과정이다. 손님을 모시듯 모든 과정에서 정성을 다하는 것이다. 


쉬운 음식은 라면이라는 등식은 맞기도 하고 틀리기도 하다. 누구나 끓일 수 있다. 그러나 누가 끓이느냐 어디에서 끓이느냐 무엇으로 끓이느냐에 달려있지 않을까. 그러나 오해하지 마시라. 사진가는 라면이 아니라 요리를 만드는 사람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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보내다 ⓒ유청오

 

 

유청오 / 조경사진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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