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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에디토리얼] 의자가 공원을 살린다
    이달 지면에는 꼼꼼히 살펴봐야 할 근작들이 넘친다. 이미 여러 매체의 주목을 받은 ‘타임워크 명동 공유정원’은 정원 문화의 감각적 경험과 그 가치를 공유하는 장소 실험이라는 점에서 주목할 만하다. 기획자 조영민(앤로지즈)과 조경가 최영준(랩디에이치)의 협력이 낳은 이 창의적 공간이 도심 라이프스타일을 바꾸는 촉매로 작용하기를 기대한다. 지난해 늦봄 완공된 뉴욕 허드슨 강변의 ‘리틀 아일랜드(Little Island)’는 물 위에 세운 정방형 공원이다. 물 위에 떠 있는 구릉지에 여유롭게 앉아 머무르며 지형을 감각하는 경험이 맨해튼 경관의 역동성과 극적 대조를 이룬다. 부두 교각의 형태에서 착안한 튤립 꽃봉오리 형상의 132개 기둥은 구조체이자 플랜터이며 공원의 표면이다. 디자인과 엔지니어링의 경계를 허물며 미와 성능을 동시에 성취한 기술력이 우리의 시선을 붙잡는다. 지명 초청 형식으로 열린 ‘IFLA 기념정원 설계공모’의 제출작들은 동시대 공공 정원의 가치와 조경가의 역할을 재점검하게 해준다는 점에서 흥미롭다. 유승종(라이브스케이프)의 당선작 ‘사람의 정원, 자연의 정원’은 살아 있는 생명의 세계에 가까이 개입해 미시적으로 관찰하는 섬세한 공간 해법을 제안한다. 한국적 특수성과 세계적 보편성이라는 막연한 개념을 요구한 설계 지침을 비판하는 것처럼 읽힌다. 편집자의 눈을 오래 머물게 한 박승진(디자인 스튜디오 loci)의 제출작 ‘21×129×298’은 한층 더 비판적이다. 21개 원형 패치에 129그루 나무를 심고 298개 의자를 흩어놓은 게 전부인 이 작품은 ‘설계로 쓴 비평’이다. “봐야 할 것은 많고 다리는 아프고 그늘도 부족”한 이 대상지에 필요한 건 “실용적 쓰임새와 (사회적) 가치를 갖는 공간”이라는 박승진의 설명은, 장소 맥락이나 지형 조건과 무관한 거대 서사나 피상적이고 낭만적인 주제를 일관되게 지향하는 최근의 정원박람회 경향에 대한 비평과 다름없다. 이 설계안의 핵심은 298개의 의자다. “앉을 수 있는 장치는 휴식의 질을 좌우한다.……의자는 디자인 이전에 인권이며 보편적 복지의 출발점이다.” “공원의 의자는……사람을 차별하지 않고, 따로 상석이 없다. 사람을 차별하지 않는 의자를 누구나 즐길 수 있는 공원에 놓음으로써 공원의 가치를 찾을 수 있다.” 그가 제안하는 가볍고 단순한 디자인의 흰색 의자는 특정한 지점에 고정되어 있지 않다. “앉고 싶은 곳, 바라보고 싶은 곳을 향해 의자를 두고” 공원의 여유를 즐길 수 있다. “빈 의자, 누군가 앉아 있는 의자, 가까이 놓은 의자, 멀찍이 혼자 놓인 의자, 둥글게 대형을 이룬 의자, 등을 돌린 의자, 사람이 없는 의자”는 각자의 표정으로 말을 걸며 우리와 관계 맺는다. 내가 어느 도시의 시장이라면 당장 박승진의 설계를 살 것이다. 도시를 걷다 마음 편히 앉아본 적이 있는가. 화려한 상업 가로는 물론 레트로 열풍에 힘입어 뜨고 있는 그 많은 ‘핫플’ 골목길 어디에도 눈치 안 보고 잠시 머무를 나의 자리가 없다. 카페에 아메리카노 한 잔 값 내지 않는 한, 편의점에 들어가 생수라도 사지 않는 한, 나를 반기는 빈 의자가 없다. 마음대로 앉아 시간을 보낼 수 있는 의자는 의외로 공원에도 많지 않다. 캠핑용 의자를 챙겨가지 않는 한, 걷기를 멈추고 숨을 돌릴 수 있는, 쪽잠을 즐길 수 있는, 아름다운 노을을 즐길 수 있는 나의 자리가 공원에조차 없다. 공원의 의자는 걷는 사람을 멈추게 한다. 아무것도 하지 않고 가만히 머무르게 한다. 공원의 의자에 기대앉으면 숨을 고를 수 있다. 느긋하게 다음 걸음을 준비할 수 있다. 하염없이 하늘을 바라볼 수 있고, 날씨의 변화를 살갗으로 느낄 수 있다. 원하는 곳으로 의자를 옮기면, 나무 그늘 밑에도, 잔디밭 한복판에도, 호숫가에도 나만의 온전한 시공간을 만들 수 있다. 걷기는 공원에 자유를 주고, 앉기는 여유를 준다. 편하고 즐겁게 걸을 수 있는 산책길은 좋은 공원의 필요조건이고, 여유롭게 앉아 쉴 수 있는 의자는 충분조건이다. [email protected] **다양한 잡지에서 취재와 편집을 경험한 금민수 기자가 이달부터 『환경과조경』에 합류했다.눈치채셨겠지만, 2022년에는 작품 지면에 인터뷰나 비평을 함께 배치하는 기획을 늘려보려고 한다.이달에는 타임워크 명동 공유정원의 조영민과 최영준을 금민수 기자가 만났고, IFLA 기념정원의 유승종을 김모아 기자가 인터뷰했다.리틀 아일랜드를 다룬 평문은 뉴욕에서 활동 중인 조경가 최지수(SOM)가 맡아주었다.
  • [풍경 감각] 환상을 믿어요
    아름다운 작품을 통해 작가를 만난다. 작품에서 느낀 섬세한 온기와 달콤한 다정함, 바람결 같은 기발함을 바탕으로 작가의 모습을 그려본다. 때때로 작가를 실제로 만나게 되면, 마음속에서 늘 그렸던 이와 달라 놀라기도 한다. 작품 속과 실제 사이의 간극이 크고 깊었던 것일까. 그 낙차에서 오는 충격이 상처를 주었던 걸까. “작품을 보고 사람에 대한 환상을 키우지 말아야 한다”고 단언한 이도 있었다. 하지만 여전히 풍경 속의 작가를 믿는다. 작품에 오롯한 진실을 담을 수 있을까. (못나고 부끄러운 점을 포함한) 작가의 모든 면을 보여줄 필요가 있을까. 그렇지 않으리라 생각한다. 작품은 진실의 결정체가 아니라, 자신의 가장 예쁜 모습을 나무 가꾸듯 오래 보듬어 만들어낸 것이다. 그 환상을 뿌리처럼 굳게 믿고 싶다.
  • [어떤 디자인 오피스] 안마당더랩 상생의 가치 아래 사람과 자연의 균형을 고민하다
    우리가 추구하는 것들 새로운 관점을 제공하고 시간이 흐를수록 나아질 수 있는 것을 원한다. 대상 자체에 집중하는 대신 가치에 집중한다. 인간과 자연의 균형, 구성 요소 간의 관계성, 규칙 안의 변주를 찾고자 한다. 형태보다는 분위기를 살리고, 따뜻하지만 선명하게 표현하고 싶다. 바람에 흔들리는 나무, 질감, 시간의 흔적, 그림자처럼 공간에 생명을 불어넣는 작은 요소들을 중요하게 여긴다. 나아가 우리의 스타일을 규정하고 끊임없는 질문을 통해 본질에 접근하고자 한다. 존재 이유를 묻다 2016년 안마당더랩을 설립하고 뒤를 돌아볼 틈도 없이 달려왔다. 4년쯤 됐을 때 회의감이 생겼다. 우리가 무엇을 만들고 있는가. 안마당더랩이 만드는 공간이 유지할 만한 가치가 있는가. 우리의 존재 이유를 찾고 싶었다. 조경, 정원설계사무소는 많고, 우리보다 설계 능력이 뛰어난 곳도 많으며, 시간이 갈수록 더 많아질 것이다. 그런데도 안마당더랩이 존재해야 하는 이유는 무엇인가. 우리는 왜 안마당더랩을 유지해야 하나. 끊임없이 질문을 던졌으나 쉽사리 대답하지 못했다. 배운 것이 조경이고 그 기술로 돈을 벌고 있지만, 반드시 조경, 정원설계로 생계를 이어나갈 필요는 없다. 그때 답을 얻고자 우리만의 고유한 핵심 가치를 설정했다. “현재 우리는 매우 복잡한 세상에 살고 있다. 앞으로 수많은 정보와 가치가 쏟아져 나올 것이다. 그런 세상 속에서 우리는 쉽게 잊힌 존재가 될지도 모른다. 우리의 존재 이유는 단순히 미적인 정원을 많이 만들기 위해서가 아니다. 그 이상이 필요하다. 우리의 작업을 통해 공간을, 일상의 질을, 넓게는 세상을 더 나은 곳으로 변화시킬 수 있다고 믿는 것이다.” 지속가능한 상생의 가치 상생(相生)은 공생의 의미도 있지만 공생과 다르다. 상생은 순환을 의미한다. 자연이 스스로 지속가능성을 만들어 가는 것과 비슷하게, 우리도 지속가능성을 키우기 위해서 상생을 핵심 가치로 정했다. 상생은 너와 나, 이쪽과 저쪽이라는 이원론적 이야기가 아니라 이 세상에 존재하는 모든 것을 포함하는 다원론적 이야기이다. 어떤 행동 하나가 이 세계에 존재하는 모든 것을 만족하게 하는 것, 상생이라는 용어 속에는 그러한 뜻이 담겼다. 지속가능성을 이야기하면 지구 환경이 가장 먼저 떠오르지만, 지속가능성이 필요한 지점은 사람마다 다를 수 있다. 그런데 수많은 가치의 지속가능성에 공통으로 필요한 요소는 균형이다. 무엇이든 지나치거나 부족하면 균형이 깨지기 마련이다. 이러한 이유로 안마당더랩이 가장 우선하는 디자인 철학은 균형이다. 정원 설계 의뢰를 받으면, 설계 공간에 공존하는 많은 가치를 파악하고 그 가치들이 서로 상생하며 균형을 찾을 방법을 모색한다. 예를 들어 상업 공간의 경우 심미성을 비롯해 고려해야 하는 다양한 가치가 있지만, 수익성과 회전율을 염두에 둔 테이블 개수를 반영한 계획이 균형 잡힌 설계안이 될 수 있다. 지속가능성을 이야기하면 지구 환경이 가장 먼저 떠오르지만, 지속가능성이 필요한 지점은 사람마다 다를 수 있다. 그런데 수많은 가치의 지속가능성에 공통으로 필요한 요소는 균형이다. 무엇이든 지나치거나 부족하면 균형이 깨지기 마련이다. 이러한 이유로 안마당더랩이 가장 우선하는 디자인 철학은 균형이다. 정원 설계 의뢰를 받으면, 설계 공간에 공존하는 많은 가치를 파악하고 그 가치들이 서로 상생하며 균형을 찾을 방법을 모색한다. 예를 들어 상업 공간의 경우 심미성을 비롯해 고려해야 하는 다양한 가치가 있지만, 수익성과 회전율을 염두에 둔 테이블 개수를 반영한 계획이 균형 잡힌 설계안이 될 수 있다. 방향성을 바탕으로 한 완성도 디자인할 때 방향성을 설정하고 그 맥락 속에서 디자인을 발전시키는 과정이 중요하다. 그것을 우리는 ‘완성도’가 높아졌다고 표현한다. 설계에서 단순하게 호오(好惡)를 따지면, 그 기준 자체가 주관적이라서 바른 방향성으로 나아가고 있다는 판단이 어렵다. 가령 이도커피 사유점의 경우 브랜딩 단계에서부터 이름 그대로 ‘사유하다’라는 콘셉트가 정해져 있었다. 정원도 ‘사유’의 개념 안에서 설계해야 하는 프로젝트였다. 이도커피 사유점의 정원은 중정이었고, 모든 좌석이 정원을 바라보게 배치되어 있었다. 중정을 바라보며 사유하게 만들 방법을 찾고자 했다. 방문객이 알게 모르게 자연을 느끼다 돌아갈 수 있으면 좋을 것 같았다. 숲(자연)은 하나의 객체가 중요한 공간이 아니다. 전체의 장면을 하나로 느껴지게 하는 것이 이곳의 중요한 방향성이었다. 숲의 장면을 만들기 위해서는 나무의 선정이 매우 중요했다. 숲에서 자라는 나무들은 생존을 위한 경쟁으로 수관 폭이 좁고 위로 웃자라는 형태를 띤다. 그러한 환경에서 자란 나무가 필요했다. 중정의 크기에 적당하고 이식하기 좋으며 생장 속도가 빠르지 않은 나무여야했다. 발품을 팔아 나무를 직접 찾아다녔다. 우연히 소사나무를 발견했는데, 나무를 보자마자 나도 모르게 ‘찾았다!’라고 외쳤다. 12주의 소사나무를 수형의 특성을 살려 자연스럽게 배치하기 위해 계속 자리를 바꿔가며 숲의 장면을 만들어 갔다. 건축의 제안으로 미스트 장치를 설치해 이른 아침 안개 낀 숲의 모습을 연출했다. 미스트 장치가 작동하는 빈도는 식물의 생육에 지장이 없도록 계절에 따라서 다르게 적용된다. 이 장면을 더 극대화할 수 있는 요소는 무엇일까. 오래전에 봤던 영화 ‘웰컴 투 동막골’이 생각났다. 영화 속 한 장면에서 나비가 나온다. 이 나비는 영화를 시적으로 만드는 요소다. 더 나아가 나비에 관련된 이야기 ‘장주지몽’을 떠올렸다. 장주지몽은 자신이 꿈속에서 나비가 됐는지, 원래 나비였던 본인이 꿈속에서 장주가 됐는지 알 수 없게 됐다는 고사에서 비롯된 이야기다. 물아일체의 경지를 주제로 하는 얘기다. 이곳에 방문한 사람들이 더 깊게 사유할 수 있도록 나비를 불러보기로 했다. 자연스럽게 소사나무 하부 식재 수종은 나비를 불러오는 흡밀 식물을 식재하는 것으로 정리됐다. 어프로치 커피(Approach Coffee) 프로젝트는 영국식 브런치 카페를 론칭하는 작업이었다. 자연스럽게 영국식 정원을 만들어 달라는 요구 사항으로 시작됐다. 초기 조사 분석 과정에서 첼시 플라워쇼, 코티지가든 등 영국 정원의 방향성을 살필 수 있는 자료들을 수집했다. 어느 순간 그 사례들이 영국을 대표한다고 볼 수 있는지 의문이 들었다. 오래전 영국을 방문했을 때 찍은 사진들을 다시 꺼내 봤다. 흔히 생각하는 영국 정원의 이미지는 오래된 전통 정원 혹은 대부분 지방에 위치한 시골 정원의 모습이었다. 도심인 런던의 모습과는 달랐다. 서울과 용산이라는 도심의 한복판에 세워지는 영국 브런치 카페라면 런던 도심의 모습을 담는 것이 맞을 것 같았다. 그때부터 런던 도심 속 풍경의 공통점을 찾기 시작했다. 공통점은 검은색이었다. 특히 오래된 양식의 건물과 석재 포장이 주를 이루는 구도심에서도 간판, 표지판, 각종 시설물 대부분 검은색을 사용한다는 점이 눈에 띄었다. 오래된 건축 양식과 대비되는 검은색, 공간에 생기를 불어넣는 초록 식물들의 조화가 런던의 이미지라는 생각으로 공간의 컬러 가이드를 만들어 설계를 진행했다. 손으로 만드는 과정 설계를 진행하면 3D 프로그램을 통해 작업을 많이 한다. 빠르게 공간감을 검토할 수 있고 클라이언트의 이해를 돕는 이미지를 다른 방법보다 손쉽게 뽑을 수 있기 때문이다. 하지만 가능하면 직접 손으로 만들어 보는 과정을 거치려 한다. 그 이유는 모델을 만들거나 일대일 목업을 만드는 과정에서 깨닫는 것이 반드시 있기 때문이다. 몇 가지를 경험담을 소개한다. 첫 번째는 새로 지어지는 현대식 한옥의 난간과 전통 공간에서 쓰인 취병을 재해석해서 풀어본 프로젝트다. 창덕궁 후원에 가면 볼 수 있는 취병의 본래의 쓰임은 관목류 덩굴성 식물 등을 심어 가지를 틀어 올려 병풍 모양으로 만든 울타리다. 밖에서 내부가 보이는 것을 방지하고 공간을 분할하는 역할을 하면서 경관을 조성하는 기능을 한다. 이러한 취병을 설계에 반영했는데, 전에 만든 경험이 없었기에 공사 전 대나무 살의 간격과 매듭 방법을 목업을 통해 검증하고 도면에 적용해 공사를 진행했다. 이 아이디어로 건축이 설계했던 유리 난간을 대신하게 됐다. 두 번째는 지형 조작이 중요한 프로젝트였다. 공간의 크기가 작아 실제로 미리 지형을 만들어 볼 수 있는 기회가 있었다. 대부분 프로젝트는 3D 프로그램을 이용해 지형을 검토했는데, 지형의 공간감을 실제 스케일로 느껴보는 것과는 차이가 있을 수밖에 없다. 이 프로젝트에서는 직접 흙을 파내면서 지형을 먼저 미리 만들고 공간감을 느낀 다음 그 지형의 높이를 레벨기로 측정해 도면에 반영하는 방식으로 진행했다. 물론 주변 환경까지 모형으로 만들 수는 없기에 현장에서의 공간감은 또 다를 수 있다. 하지만 이 작업을 통해 설계의 방향성이 틀리지 않았다는 점은 확신했다. 디자인 빌드를 하는 이유 우리는 자본주의 시대에 살고 있다. 자본주의에서는 효율성과 생산성이 중요하다. 현대인은 효율성과 생산성을 높이기 위해서 업무를 분업화했다. 이로 인해 보람은 잃었다. 그렇다면 보람은 어디에서 오는가. 우리는 어떤 일을 하든 ‘내가 했다’ 또는 ‘우리가 했다’라는 점을 중요하게 여긴다. 철저하게 분업화한 과정(하나의 공간을 만드는 데 기획, 설계, 시공이 분리 발주되는 과정)을 통한 결과에서는 보람을 느끼기 어려웠다. 정말 가치가 큰 프로젝트에 참여해도 수많은 전문가와 실무자 중 하나일 뿐이었다. 그 안에 우리 것은 없었다. 누구의 것도 아니었고 심지어 실무자들의 이름도 남길 수 없었다. 오로지 발주처의 것이었다. 분업화의 효율성은 인정하지만 그 안에서 더 큰 가치와 의미를 발굴하는 것이 필요하다. 만들기의 중요성에 관해 묻는다면 공간을 만드는 전 과정에 참여했을 때 조금 더 보람이 있기 때문이라고 답하고 싶다. 직접 식물을 심고 돌봄을 통해 식물의 생활사를 보고 세상의 이치를 깨닫기도 한다. [email protected] 안마당더랩(Anmadang the Lab)은 상생의 가치 아래 균형, 단순, 조화, 대비, 스토리, 실용성, 합리성 등 다양한 디자인 철학을 담아 외부 공간을 기획, 설계, 시공하는 디자인 작업실이다. 새로운 관점을 제공하고 지속가능한 것에 관심이 많다. 좋은 공간이 우리의 삶을 개선시킨다고 믿는다.
  • [모던스케이프] 혼란과 잡거의 도시
    한국의 인천과 부산, 중국의 상하이와 칭다오, 일본의 요코하마와 나가사키. 이들 도시의 공통점은 도시 여행자에게 외국인 거류지가 만든 ‘이국적인 근대 풍경’의 경험을 제공한다는 것이다. 이른바 개항장이라고 불리는 도시에서 볼 수 있는 독특한 풍경인데, 서울의 상황도 크게 다르지 않았다. 지금도 그러하지만, 외국인이 국가 경계를 넘나들고 거주하려면 국가 간의 합의가 전제되어야 한다. 조선의 경우 1876년 조일수호조규 체결을 시작으로 11개국의 열강과 수호통상조약을 맺으면서 국경의 빗장이 열렸고, 이후 미국과 영국, 러시아, 독일 등 아홉 국가의 공사관 또는 영사관이 서울 정동 일대에 들어서게 된다. 그런데 중국과 일본 양국은 다른 서구 열강과 달리 정동이 아닌 다른 지역에 자리를 잡았다. 사실 일본은 조선과 가장 먼저 조약을 체결했지만, 조선 정부는 공사관은 물론 일본인이 도성 안에 주거하는 것조차 불허했기 때문에 일본 공사관은 돈의문 밖에 자리해야 했다. 그러다 임오군란 때 공사관이 화재로 소실되고 일본 측 피해 보상 문제를 다룬 제물포 조약을 맺으면서 비로소 도성 안으로 입성하게 된다. 1896년 현재 신세계 백화점 본점 자리에 영사관을 신축하고 진고개(지금의 충무로2가)와 주동注洞(남산 예장자락 일대)을 중심으로 일본인의 거주가 허가됐다. 남산 북사면에서 시작된 일본인 거류지는 훗날 용산과 이촌까지 확장된다. 반면 중국인이 서울에 정착한 배경은 또 다르다. 그들은 수백 년간 지속한 양국의 관계를 명분으로 가장 먼저 들어와 가장 오래도록 남아있는 부류였다. 19세기 말 서구 열강이 우리나라와 교섭을 시도하는 상황에서 청국은 자신들과의 오랜 관계가 흔들릴 수 있다고 생각했기 때문에, 전통적 사대 관계를 강조하면서 한편으로는 군대와 상인을 이용해 조선에 대한 새로운 주도권을 잡고자 했다. 청국 군대가 임오군란 등의 폭동 진압을 돕는 것을 시작으로 한국 정부에 초권력 행세를 했다면, 화상華商은 자국 군대와 결탁해 조선의 국가 재정에 개입하고 상권을 장악하는 역할을 했다. 화상들은 뒷배에 군대를 두고 있어서 조선인 중심의 기존 상권을 파고드는 데 거침이 없었다. 그들은 종로 등 기존 상권을 점거하면서 조선인들과 종종 마찰을 일으켰지만, 결국 중국 공관인 총판조선상무위원공서(總辦朝鮮商務委員公署, 이하 상무공서)를 중심으로 거대한 타운을 형성하게 된다. 1883년 9월 지금의 주한중국대사관 자리에 건립된 상무 공서는 원래 무위대장(武衛大將) 이경하(李景夏)의 집이었으나, 상무공서의 초대 상무위원인 진수당(陳樹棠)이 매입하여 지은 것이다. 그 이전에는 조선 후기에 중국 사신을 접대하고 숙소로 이용했던 남별궁(이후 환구단 자리)에서 영사 업무를 처리했었다. *환경과조경406호(2022년 2월호)수록본 일부 참고문헌 박희성, “1910~1920년대 경성부 華僑 토지 소유 분포와 변화 양상”, 미발표 논문. 강진아 외, 『개항기 서울에 온 외국인들』, 서울역사편찬원, 2016.