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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공간잇기] 어르신들에게 시간을 묻다
    옛날에 내가 말이야 가난하고 힘들었던 젊은 시절 갖은 어려움을 이겨내고 가족을 먹여 살리기 위해 동분서주하며 살아온 엄주옥 할아버지의 인생 무용담은 20분이 넘어도 도무지 끝날 기미가 안 보인다. 한결같이 왕년의 이야기로 시작하는 어르신만 벌써 여섯 명째, 슬슬 수업이 산으로 가고 있었다. “어르신, 그때 누구랑 같이 사셨고 동네 이웃들은 어떤 분들이었어요?” 나는 인내심의 한계를 느끼며 그가 살던 동네와 그 시절의 생활사를 듣고 말겠다는 의지로 질문 공세를 펼친다. “그때 동네의 모습이 지금이랑 어떻게 같거나 다른지 설명해 주시겠어요?” 발표를 하던 할아버지는 질문을 가만히 듣다 한마디로 상황을 종료시켜 버린다. “몰라요. 그런 걸 다 어떻게 기억하고 사나. 그때는 먹고사는 게 급해서 그냥 살았어요.” 서울 북촌의 안국역 사거리와 탑골공원 사이에 있는 서울노인복지센터에서 70대 이상 어르신을 대상으로 진행한 ‘우리동네, 여행작가’ 수업 시간에 있었던 일이다. 자신이 살던 곳 중 가장 애착이 가는 옛집 사진을 가져와 발표하기로 한 날이었다. 총 13강의 수업 중 세 번의 강의를 통해 일상의 공간과 삶의 기억이 마을의 역사라는 것을 열심히 설파한 뒤였다. 네 번째 수업을 기점으로 일상 공간에 대한 기억을 떠올리고, 사라지거나 변한 동네 이야기를 중심으로 수업을 이어갈 요량이었다. 그날 수업이 어려운 시절을 누가 더 잘 이겨내고 살았는지에 대한 인생 자랑 시간이 될 것이라고는 전혀 생각하지 못했다. 내 부족함을 탓하며 그저 지켜볼 수밖에 없었다. 어르신들과의 만남 북촌에서 두 해 연달아 연구와 전시, 출판을 진행하다보니(4월호와 5월호 참조) 서울노인복지센터로부터 인문학 강의를 맡아 달라는 요청이 들어왔다. 기존에 진행한 연구와 결을 같이 하는 강의이면서 동시에 어르신들이 스스로 누구인지 생각해 볼 수 있게 끔 해달라고 요청했다. “어르신들을 20년 가까이 오래 보았지만, 그분들이 누구인지에 대해 한 번도 궁금해한 적이 없다는 것을 깨달았어요.” 교육을 의뢰한 담당 사회복지사와 센터장은 내 연구 활동 결과물들을 접하고 든 생각이라며 고백 아닌 고백을 했다. 이 센터는 탑골공원에서 하염없이 시간을 보내는 많은 어르신의 주체적인 삶과 활기찬 노후를 돕는 평생 교육 공간으로, 서울시가 2001년부터 운영하고 있는 사회복지시설이다. 설립 초기부터 ‘20년째 열정적인 어르신 학생들’이 많이 있는 이곳은 배움에 대한 열정을 충족할 수 있는 다양한 분야의 수업뿐만 아니라 취미 활동을 위한 기술과 지식을 가르쳐 준다. 글, 그림, 영화 등 각종 아마추어 공모전에서 수상하기도 하는 등 꽤 높은 수준의 프로그램을 이미 섭렵한 분들이 모여 있는 곳이었다. 정중히 거절 의사를 밝혔다. 나는 인문학자도 사회학자도 아니며, 그저 공간 속 시간의 켜에 숨겨진 사람들의 이야기가 궁금해 소규모 연구를 진행하는 연구자라고 설명했다. 어르신들을 강의실에 모아 놓고 각자의 이야기를 얼마나 깊이 있게 끌어낼 수 있을지 자신이 없었기 때문이기도 했다. 그러나 센터의 거듭된 요청과 설득으로 결국 70대부터 90대에 이르는 11명을 대상으로 수업을 하기로 했다. 센터에서 붙여준 수업 제목에 부제를 붙여 목적의식을 뚜렷이 했다. ‘손주들에게 들려주는 우리동네, 나의 시간여행기’, 즉 어르신들이 살던 동네에서의 삶 이야기를 끄집어내면서도 두서없는 옛날이야기가 되지 않도록 전달 대상을 자라나는 손주 세대에 맞추겠다는 의도였다. 이야기할 대상이 명확하다면, 대상의 눈높이에 맞춰 동네의 시간적, 물리적 변화를 더 잘 설명할 수 있을 것 같았다. 그동안 진행한 연구들처럼 전문 연구자가 제3자 관점에서 이야기를 수집하고 분석하는 것이 아니라, 이야기 제공자인 어르신들이 주체가 되어 변화해온 동네를 기억하고 자신만의 목소리로 기록하게 만드는 것을 과제로 삼았다. 연구자는 그저 이 연구를 기획하고 설계하며 원활히 이루어지도록 돕는 역할을 할 뿐이었다. 실패할 수도 있다는 생각이 들었지만 도전해 볼 만한 가치가 있다고 스스로를 다독이며 전의를 불태웠다. 이 호기로운 도전 정신이 좌절과 ‘멘붕’으로 점철되기까지는 그리 긴 시간이 걸리지 않았지만. ...(중략) *환경과조경386호(2020년6월호)수록본 일부 서준원은 열다섯 살부터 대학 졸업 후까지 뉴욕에서 약10년간 생활했다.파슨스 디자인 스쿨(Parsons School of Design)인테리어디자인학과에서 다양한 생활 공간에 대해 공부했고,한국인의 주거 환경에 대한 관심으로 서울대학교 환경대학원에서 석사를 마쳤다. SOM뉴욕 지사, HLW한국 지사, GS건설,한옥문화원,서울대학교 환경계획연구소 등에서 약16년간 실내외 공간을 아우르는 디자이너이자 공간 연구자로 활동했다.한국인의 참다운 주거 환경을 위한 디자인의 본질에 대한 질문을 품고,다양성이 공존하는 도시공간 연구를 위해 곳곳을 누비며‘공간 속 시간의 켜’를 발굴하는 작업을 긴 호흡으로 해오고 있다.
  • [북 스케이프] 반지의 제왕 속 나무수염이 전하는 이야기 2
    톨킨(J. R. R. Tolkien)의 『반지의 제왕(The Lord of the Rings)』에 등장하는 엔트 족(the Ents)은 여러모로 흥미롭다. 그들은 자족적이고 어느 편에도 관여하지 않는다. 하지만 사루만에 의해 자신들의 삶이 위협받자 전투에 참여하기로 한다. 참전을 결정하기 위해 엔트들의 회의인 엔트뭇이 열리고, 호빗 메리와 피핀이 이를 목격한다. 비슷비슷해 보이는 호빗과 달리 엔트의 형상과 색깔, 크기는 각각의 나무만큼이나 다르다. 수염이 나고 옹이가 많아 울퉁불퉁한 매우 늙은 엔트도 있고 팔다리가 미끈하고 건장한 엔트도 있지만, 어린 나무 같은 모습의 젊은 엔팅(Enting)은 없다. 그리고 이들은 모두 엔트 족의 남성형이다. 참전을 결정하고 나무수염은 종족이 너무 적음을 유감스러워한다. 병 같은 것으로 죽은 것이 아니고 단지 오랫동안 엔트의 자식이라고 해야 할 엔팅이 없었기 때문이다. 엔트들은 엔트 부인(Entwives)을 잃었다고 한다. 그런데 엔트 부인들은 죽은 것이 아니고 영영 사라졌다. 이들은 어디로 갔을까? 나무수염의 말에 따르면 세상이 시작된 지 얼마 안 되었고 숲도 광막한 야생이었을 무렵, 엔트와 엔트 부인들은 함께였으나 마음은 같은 방향으로 자라지 않았다. 엔트는 거대한 나무와 야생의 숲, 높은 언덕을 사랑했고, 지나가는 길에 나무들이 떨어뜨려 준 과일만 먹었다. 하지만 엔트 부인들은 작고 연약한 나무와 숲 너머 양지바른 언덕에 마음을 쏟았고, 수풀 사이의 자두나 봄에 꽃을 피우는 야생 사과, 버찌 그리고 여름 물가에 피는 초록색 풀과 가을 들판에 씨를 퍼뜨리는 잡초를 보았다. 질서와 풍요, 평화를 원한 엔트 부인들은 식물이 자신들의 명령에 따라 성장하고 열매 맺고 잎을 피우기를 원했다. 그래서 엔트 부인들은 정원을 만들기 시작했다.1 ...(중략) 각주 1. 이러한 신화적인 최초의 정원에 대한 이야기, 그리고 자연과 인간의 화해에 대해서는 다음을 참조. 질 클레망, 이재형 역, 『정원으로 가는 길』, 홍시, 2012. *환경과조경386호(2020년6월호)수록본 일부 황주영은 이화여자대학교에서 불문학과 영문학을 공부하고,같은 대학 미술사학과에서 풍경화와 정원에 대한 연구로 석사 학위를 받았다.이후 서울대학교 대학원 협동과정 조경학전공에서19세기 후반 도시 공원의 모더니티에 대한 연구로 박사 학위를 받은 후 파리 라빌레트 국립건축학교에서 박사후 연수를 마쳤다.미술과 조경의 경계를 넘나들며 문화사적 관점에서 정원과 공원,도시를 보는 일에 관심이 많으며 이와 관련된 강의와 집필,번역을 한다.생계를 위한 독서를 하기 전에는 다양한 판타지 소설을 탐독했다.
  • 오퍼레이티드 그라운드 ‘서울형 저이용 수변공간 혁신 아이디어 공모’ 대상작
    하천과 그 일대의 수변은 다양한 문화와 사람이 교류하는 장소다. 시민의 일상에 많은 영향을 미치며, 도시의 이미지를 결정짓기도 한다. 하지만 서울시 내 하천을 포함한 수변 공간은 급격한 도시 개발에 따른 변화를 겪으며 시민의 생활 영역과 동떨어진 공간으로 자리잡았다. 도로와 철로 등 교통 관련 시설, 저수로, 고수부지, 제방 등에 의해 도시와 단절되었고, 활용 방안을 찾지 못해 빈터로 방치된 경우도 있다. 지난해 12월, 서울시는 이러한 도심 수변 공간의 잠재력을 끌어내고자 ‘서울형 저이용 수변공간 혁신 아이디어 공모’(이하 저이용 수변공간 혁신 공모)를 개최했다. 잘 이용되지 않는 수변 공간을 입체적으로 활용하는 방안을 발굴하고, 도시민과 하천의 관계에 새로운 비전을 제시하는 것이 목표다. 중랑천 3개소(노원구 쓰레기 처리시설, 중화1·2 빗물펌프장, 송정 빗물펌프장), 청계천 2개소(용두 유수지, 성동구 거주자 공영주차장), 안양천 3개소(오목 빗물펌프장, 가산 제2유수지, 시흥 유수지), 도림천 1개소(신림 제2공영차고지), 홍제천 1개소(서대문구 재활용센터) 중 한 곳을 대상지로 선정하고, 다음 세 가지 과제를 수행해야 했다. 첫째, 수변 활성화 전략을 세우고 거점 시설을 조성한다. 둘째, 단절 요소를 극복하고 활용할 수 있는 방안을 제안한다. 셋째, 인근 기반 시설의 유휴 공간과 연계할 수 있는 방안을 제시한다. 김승회(전 서울시 총괄건축가), 서영애(기술사사무소 이수 소장), 이장환(어반오퍼레이션즈 대표), 이진오(SAAI 대표), 정욱주(서울대학교 교수) 심사위원은 두 단계에 걸쳐 심사를 진행했다. 1단계에서는 제안 계획서를, 2단계에서는 7주간의 연구 기간을 통해 보다 구체화한 제안 내용을 평가했다. 그 결과 대상에는 조규형·정해랑·박상훈의 ‘오퍼레이티드 그라운드(Operated Ground)’, 최우수상에는 백건일의 ‘워터 파크(Water Park)’와 이대호·이범기·한해미·이재열의 ‘웨이브스케이프(Wavescape)’, 허근일·서자민의 ‘리버사이드 시빅 캠퍼스(Riverside Civic Campus)’가 선정됐다. 이외에도 6개 작품이 우수상을 받았다. ...(중략) *환경과조경386호(2020년6월호)수록본 일부
  • 당신이 몰랐던 철원 ‘DMZ 경, 철원’ 전, 연남장
    지난 5월 1일부터 10일까지 연남장에서 열린 ‘DMZ 경景, 철원’은 접경 지역 철원을 톺아보는 전시다. 전시에는 민통선을 넘나들며 철원 땅을 두 발로 거닌 이들이 참여했다. 그들은 사진기를 들고 시간이 멈춘 듯한 산길을 걸었고, 사라지고 없는 철도의 흔적을 탐정처럼 찾아 다녔다. 비무장지대DMZ는 휴전선을 기준으로 남북으로 각각 2km 펼쳐진 구역을 일컫지만 DMZ 일원은 그보다 아래인 민통선 지역까지를 포함한다. 철원, 파주, 고성, 양구 등 15개 시군의 일부가 여기에 속하는데, 그중 철원은 DMZ 중심에 위치하고 경계부의 넓은 면적이 북한과 인접한다. 일제 식민지기의 철원은 경원선 등 기반 시설이 잘 마련되어 많은 사람이 왕래하고 거주하는 발전된 지역이었다. 하지만 한국전쟁으로 이 같은 흔적은 모두 사라졌다. 이제 사람들은 철원하면 접경 지역, 한국에서 가장 추운 곳, 평야, 철새 서식지 등 단편적 정보만을 떠올릴 뿐이다. DMZ 접경 지역에 관한 연구와 콘텐츠를 지속해서 개발해온 서울대학교 환경계획연구소와 올어바웃(allabout)이 기획한 이번 전시는 철원의 경관과 지형, 일상 공간과 문화, 한국전쟁 이전의 흔적을 통해 엿보는 흥미로운 이야기를 다채로운 형식으로 재현해 선보인다. 철원을 걷는 시선 전시장에 들어서기 전 관람객을 맞이하는 작품은 ‘철원 토포스(topos)’다. 인쇄된 철원 지형을 전시장 바닥에 붙인 것으로, 복잡한 등고선과 생소한 지명이 눈에 띈다. 작품은 사람들이 바닥에 그려진 군사분계선을 넘어 전시장에 들어가게 함으로써 DMZ라는 새로운 땅에 발을 내딛는 느낌을 주고자 했다. 이창민은 사진에 소리를 담는 작업을 선보였다. 그는 어떤 풍경에서 소리가 들리는 순간을 포착했다. ‘이미지 프로파간다’ 속 철원 풍경은 언뜻 평범해 보이지만 잘 들여다보면 관람자의 내면에서 어떤 소리를 불러일으킨다. 불이 붙은 논에서는 마른 풀잎이 타들어가는 소리가, 멀리 탱크가 지나가는 풍경에서는 크고 무거운 바퀴가 마른 땅바닥을 긁는 거친 소리가 들려온다. 소이산, 조망의 공간 소이산은 철원평야 한가운데 야트막하게 솟은 산이다. 해발 352m로 높이는 낮지만 주변을 조망할 수 있어 고려시대에는 봉수대로, 한국전쟁 시에는 미군 기지로 쓰였다. 2012년 민간인에게 개방됐지만 여전히 산의 정상에는 헬기 이착륙장이, 지하에는 폐쇄된 군사 벙커가 자리한다. 조신형의 ‘상상하는 시선’은 소이산에서 보는 다채로운 풍경을 영상으로 기록한 작업이다. 영상 속에는 철책선을 사이에 두고 지뢰 지대와 산책로가 아슬아슬하게 나뉘어 있고, 길을 따라 전시된 철원 주민들의 창작시가 눈에 띈다. 정상에 오르면 논위의 두루미, 평화 전망대, 남한GP, 북한GP, 백마고지 전적지를 한눈에 볼 수 있다. 좀 더 멀리 눈을 돌리면 북한의 산맥이 비현실적으로 가깝게 다가온다. 독일의 건축설계사무소 하이브리드 스페이스 랩(Hybrid Space Lab)은 이 소이산 정상 부근에 가상의 파빌리온을 제안했다. 건축가들이 직접 산을 오르며 살폈던 다양한 조망점을 기준으로 설치된 파빌리온을 통해 소이산이 갖는 상징성은 더욱 두드러진다. 상상으로 복원한 폐허 철원은 일제 식민지기 조선 최초의 관광 목적으로 만들어진 금강산전기철도의 출발점이었다. 당시 금강산 으로 가려면 경의선을 타고 원산으로 갔다가 다시 남쪽으로 내려와야 했는데, 철원역과 금강산 내금강(내금강역)을 바로 잇는 열차가 개설됐다. 덕분에 서울에서 열차를 타고 철원에서 한 번만 갈아타면 바로 금강산에 닿을 수 있었다. 느리게 움직이는 열차 안에서 여행자들은 주변 경관을 여유롭게 감상했다. 하지만 한국전쟁 이후 굶주린 사람들이 철도를 뜯어다 파는 바람에 오늘날 철도는 남아 있지 않게 됐다. ...(중략) *환경과조경386호(2020년6월호)수록본 일부
  • 작품과 관객, 서로를 재료로 삼다 관객의 재료, 블루메미술관, 4. 18. ~ 8. 23.
    공감은 상대의 감정과 행동을 이해하는 데 필요한 밑바탕이다. 동물행동학자인 프란스 드 발(Frans de Waal)은 『공감의 시대』에서 공동체의 생존에 필수적인 모든 사회적 가치는 공감 본능에서 비롯된다고 말하기도 했다. 지난 4월 18일 블루메미술관에서 열린 ‘관객의 재료’는 이 공감 본능에 집중해 관객과 작가 사이에 오가는 감정의 교류를 다룬 전시다. 특히 관객의 생물학적 본성에 주목하며 인간의 공감 본능이 작동하는 지점인 ‘재료’에 주목했다. 모든 작품은 재료로 구성되기 마련이다. 물질적인 것, 언어적인 것, 순간적인 것에서 항구적인 것에 이르기까지 그 형태와 종류가 다양하다. 작가에게 선택된 재료는 서로 접합되고, 어떤 이야기와 얽히고, 추상적 구조를 구축하는 등 다양한 방식으로 가공되어 작품이 된다. 그런데 관객의 재료 전은 이외에도 또 다른 재료가 있다고 이야기한다. “소통을 전제로 만든 작품에서 작가는 사실상 다른 재료도 쓰고 있다. 그것은 부피도 없고, 형태도 없고, 측정 가능한 범주도 없다. 어떻게 고정할 수 있는지, 얼마큼 소진되고 발현되는지 예측할 수 없다. 바로 관객이 들여오는 재료다.” 작가는 관객의 존재를 제로에 두기도 하지만, 필요에 따라서 청자 또는 화자의 위치에 올려놓으며 우리가 생각하는 것 이상으로 관객을 재료로 사용한다는 것이다. 실제 전시는 상담 전문 기관인 ‘그로잉맘(growing mom)’의 “인간의 내면에서 일어나는 일의 전제는 그가 가진 ‘재료’의 차이”라는 말에서 촉발되기도 했다. 그로잉맘은 이번 전시를 함께 기획하며 관객이 작품을 보고 느낀 감정을 다시 작가에게 전달해 창작욕과 영감을 불러일으키는 과정을 활성화하고자 힘썼다. 전시는 손경화, 우한나, 유비호, 이병찬, 장성은, 정성윤, 조현, 최성임 등 8명의 현대미술가를 초대했다. ‘안개잠’을 선보인 유비호는 현대인의 상실과 고독에 작은 위로를 보내는 작품을 만들어온 작가다. 인어공주를 모티브로 한 안개잠은 한 여인이 바위 위에 주저앉아 바다를 하염없이 바라보는 뒷모습을 영상으로 보여준다. 울고 있는지 웃고 있는지 표정을 짐작할 수 없기 때문에 누구나 자신 혹은 다른 이의 이야기를 쉽게 투영할 수 있다. 특히 거대한 힘 앞에 무력한 인간의 존재, 잃어버린 것들에 대한 안타까움 등에 대해 생각할 수 있다. 바위 주변으로 몰아치는 파도 소리는 관객 내면 깊은 곳에 묻혀 있던 상념을 끌어 올리는 효과를 낸다. ...(중략) * 환경과조경 386호(2020년 6월호) 수록본 일부
  • [편집자의 서재] 한숨의 기술
    내가 아는 한숨의 기술은 이를테면 이런 것이다. 전 직장에서 선배 옆에 앉아 모니터를 보면서 뭔가를 배우고 있는데 순간 콧구멍으로 큰 숨이 나왔다. 그때의 나는 숨을 코로 쉬는지 입으로 쉬는지 의식도 못했는데, 별안간 들리는 날카로운 목소리에 정신이 번쩍 들었다. “왜 한숨을 쉬어? 내가 답답해?” 당혹스러움에 반사적으로 튀어나온 “아니 그런 게 아니라요”로 시작하는 말을 횡설수설 늘어놓다 상황은 대충 정리됐다. 이야기가 끝나고 내 자리로 돌아와 진짜 한숨을 쉬었다. 누구에게 들릴까 입이 아닌 코로, 들이마신 숨을 옅게 내보내면서. 그때나 지금이나 숨을 크게 쉰 이유는 명확히 떠오르지 않는다. 만성 비염이라 코가 근질거렸던 걸 수도 있었는데. 어쨌든 한 가지 배운 건 누군가 옆에 있을 때는 때론 호흡도 조심해야 한다는 거였다. 많은 숨을 한꺼번에 확 뱉지 말고 살살, 느리게. 자주 가는 동네 책방을 어슬렁거리다 구석에 놓인 『한숨의 기술』을 발견했다. 책을 두른 띠지에는 ‘임소라의 독립책방 폐업기’라고 쓰여 있었다. 임소라 작가에 대해서는 그가 낸 다른 책을 읽어서 이미 알고 있었는데, 서점을 열었다 망했다는 것과 망한 이야기를 책으로 냈다는 건 몰랐다. 내가 가진 그의 책은 한 도시의 지하철에서 일어나는 이상한 일들을 기록한 것인데, 볼 때마다 너무 웃겨서 적절한 때에 이 지면에 소개해볼까 벼르고 있던 참이었다. 그런데 『한숨의 기술』은 분위기가 많이 달랐다. 제목을 보자마자 한숨에 관한 웃지 못 할 사연이 떠오르기도 했고, 자영업 붐 시대에 무슨 배짱으로 폐업기를 책으로 펴냈는지도 궁금해졌다. 일단 제목의 의미는 한숨을 쉬는 법(technique)이 아닌 한숨에 대한 기술(description)이었다. “책이 안 팔려서, 책을 들여올 돈이 없어서, 책방에 아무도 안 와서, 그냥 막막해서 때마다 코로 마시고 코로 뱉던 한숨을 담배 연기 대신 활자로 담은 글”이라니. 담배 연기는 싫지만 담배 연기 같은 활자라는 표현은 어쩐지 마음에 들었다. 편집자였던 임소라는 직장을 다니던 중 독립출판물을 판매하는 온라인 서점을 오픈했다. 개업과 동시에 회사 대표님으로부터 우려 섞인 권고를 들었다. 대부분의 회사는 겸업을 금지한다는 점, 업무 효율에 미칠 영향, 판매 사이트 운영의 어려움에 관한 이야기였다. 결국 등 떠밀리듯 퇴사하게 되지만 모든 시작이 그렇듯 머릿속에는 잘 될 생각뿐이었다. 그러나 시간이 지나도 수입은 전무하고 모아둔 돈은 금세 동났다. 뒤늦게 연 오프라인 서점도 지속할 수 없게 된 시점에서 그는 책방에서의 시간을 이렇게 기록해 둔다. “내가 겪은 책방의 시계는 분침과 시침이 없다. 초침만 있는데 그 초침의 이름이 기다림인 거다. 난 초침 이름이 기다림일 거라곤 상상도 못 했다. 정말이지 그럴 줄은 몰랐다.” 누가 시킨 것도 아니고 내가 하고 싶어 시작한 일을 궤도에 올리지 못하고 중도 포기하는 경험은 여러모로 쓰라리다. 도와준 주변 사람들에 대한 미안함, 내 선택으로만 이루어진 결정에서 도망쳤기에 실패는 오롯한 내 몫이 된다. 자랑은 아닌데, 망하고 튄 이력이라면 나도 어디서 뒤지지 않을 것이다. 입시, 취업, 인간관계까지 다양하다. 사실 한숨 사건이 일어났던 전 직장은, 졸업 후 탈조경의 모범이 되겠다며 호기롭게 (부모님의 손을 빌려 마련한 보증금으로)독립까지 하면서 다녔던 곳이다. 과한 열정에 비해 능력도 사회 경험도 인내심도 한참 모자랐던 나는 수습 기간 3개월을 겨우 마치고 달아났다. 안 친한 사람들이 물으면 인턴 같은 거였다고 얼버무리기 바빴다. 『한숨의 기술』은 덮어두고 모른척하고 싶은 시간을, 일이 안 된 이유를 조목조목 따져 사람들이 구경하도록 내놓는다. 책방을 운영할 때의 자신이 얼마나 무모하고 준비되어 있지 않았는지, 콘셉트나 운영 방식은 얼마나 모호했는지, 손님을 대할 땐 얼마나 미숙했는지 등을 죽 정리한다. 책방은 망한 채로 남았지만 폐업 후 그가 만든 책들을 보면 이 멋도 없는 무용한 기록이 결국 그 다음으로 나가게 해주는 숨 고르기였다는 걸 알 수 있다. 스스로에게는 더 좋은 책을 만들게 하는 압력이 됐을 테고, 로망을 걷어낸 핍진한 이야기는 누군가에게 필요한 현실적 조언으로, 나 같은 프로 탈주자에게는 소소한 위로의 맛으로 다가왔다. 문득 지난달 진행한 조경협회 40주년 좌담이 떠올랐다. 패널들 사이에 오갔던 회한의 말들, 예전에 부딪혔거나 지금 직면하고 있는 한계를 누군가 슬쩍슬쩍 언급하곤 했다. 언젠가 그런 말들에 대해 좀 더 자세히 캐물을 기회가 오면 좋겠다. 각주 1. 임소라, 『한숨의 기술』, 디자인이음, 2018.
  • [CODA] 디지털 공원
    누구나 한 번쯤 아날로그 붐에 휩쓸리고 싶어지지 않나. 레트로 열풍에 알맹이가 없다는 진단도 있지만, 레코드판이나 카세트테이프, 종이책, 만년필과 같은 것에서 낭만이 느껴진다는 사실은 부정하기 어렵다. 시류에 탑승해 지난해 봄, 일본 여행을 앞두고 손바닥만 한 필름 카메라를 샀다. 변덕스러운 성정을 고려해 중고로 저렴하게, 작동법이 어려우면 구석에 처박아 놓을 게 빤하니까 반자동 모델로. 피사체야 다양했지만 가장 찍고 싶던 건 나라 사슴공원의 사슴들이었다. 여행 계획을 세우며 블로그로 탐방한 사슴공원은 디즈니가 그린 세계 같았다. 사슴과 노래하고 춤추는 건 무리지만, 그럭저럭 어울려 함께 걸을 수 있다. 사슴이 허락만 한다면 (센베이 모양의 먹이를 대가로) 등허리를 쓰다듬고 사이좋게 사진을 찍을 수도 있다. 게다가 그 배경이 도시에서 흔히 볼 수 있는 공원이라는 점이 멋졌다. 우거진 나무와 너른 잔디밭도 있지만, 사슴의 발길은 아스팔트 도로나 자판기와 오토바이가 서 있는 상점 앞에도 서슴없이 닿는다. 그 풍경이 자연과 사람이 공존하는 그럴듯한 예처럼 보였다. 차곡차곡 쌓은 환상은 예상치 못한 지점에서 부서졌다. 도시와 자연이 뒤섞인 유토피아 같은 모습은 상상 그대로였는데 사슴이 달랐다. 그들은 커다란 눈을 착하게 뜨고 다가왔다. 그리고는 먹이를 갈취했다. 150엔을 주고 산 먹이가 순식간에 동이 났다. 이번에는 좀 더 잘해봐야지, 다시 산 먹이를 가방에 숨기고 태연한 척 걷는데 사슴무리의 시선이 나와 일행을 계속 쫒아왔다. 순간 그 크고 예쁜 눈이 섬뜩하게 느껴졌다. 100미터쯤 걸었을까 또다시 사슴 패거리에게 붙잡혀 주머니와 가방을 수색 당하고(옷 주머니와 가방에 머리를 들이밀고 샅샅이 뒤지는데 반항하면 물리거나 걷어차인다) 다시 빈털터리가 됐다. 기대와는 달랐지만 그래도 그곳에서 카메라 롤을 가장 많이 돌렸다. 어쨌든 동물원 철창 속에서 기운 없이 거니는 사슴보다야 훨씬 ‘진짜’다운 사슴을 만난 기분이었으니까. 얼마 전 인터넷에서 이 사슴들이 공원을 탈주했다는 소식을 접했다. 코로나 바이러스의 확산으로 관광객이 줄어 먹을 것이 부족해지자 어쩔 수 없이 도시로 향한 것 같다는 분석이 잇따랐다. 공원에서 장장 2킬로미터를 걸어야 닿을 수 있는 나라 역, 그곳에 쓸쓸히 선 사슴의 눈은 착해 보이지도 섬뜩해 보이지도 않았고 그냥 척척해 보였다. 비슷한 일이 태국에서도 일어났다. 원숭이의 도시라 불리는 롭부리 한복판에서 원숭이 수백 마리가 패싸움을 벌였다. 원인은 역시 관광객 감소로 인한 먹이 부족. 결국 사슴공원도 원숭이의 도시도 우리만 없을 뿐 거대한 관광 산업 시스템으로 동물을 사육하는, 유토피아를 빙자한 동물원이었구나. 어쩌면 가방과 주머니를 헤집던 행동이 갈취가 아닌 구걸이었을지도 모르겠다. 항상 있을 때는 모르다가 없어지면 아쉽다. 문화생활이 삶을 맛깔나게 해주는 조미료 같은 건 줄 알았는데, 막상 미술관이며 도서관이며 공연장이며 죄 문을 닫으니 너무 적적하다. 대안으로 온라인 콘서트나 VR 미술관 등이 등장했지만 영 구미가 당기지 않는다. 가상(혹은 증강)현실에는 음악과 예술 작품이 있지만, 스피커에서 소리가 터져 나올 때마다 발밑을 꽝꽝 울리는 진동과 고요한 가운데 이상한 방식으로 집중력을 높여주는 백색소음이 없다. 하나하나 따지다보니 실재하는 진짜 공간에 발을 딛고 서있다는 감각은 내 문화생활을 좌지우지하는 꽤 중요한 요소라는 걸 깨달았다. 하지만 개인의 취향이 시대의 흐름을 거스를 수는 없는 법, 가상현실로 즐기는 문화생활을 일상화하기 위한 노력은 계속될 테다. 그렇다면 언젠가는 미술관, 도서관, 공연장을 넘어 공원 역시 디지털화되는 날이 올까. 바람, 풀숲, 햇빛, 주변을 지나는 사람들의 인기척 등 어떤 공간의 감각을 0과 1로 완벽히 구현할 수 있을까. 고민을 이어가다 문득 공원의 생존 여부는 공간이 아닌 역할의 문제라는 결론에 닿았다. 나무와 잔디밭, 광장, 벤치를 보기 좋게 버무린 그림 같은 풍경에 주목한 공원은 언젠가 사슴을 잃은 공원처럼 그 한계를 드러낼 것이다. 코로나 시대 이미 집 안에 갇힌 사람 중 몇몇은 공원 대신 액정 속 ‘동물의 숲’1을 방문하고 있다. 시대의 변화를 고려하며 “휴게 기능을 넘어 문화, 복지, 소통 등의 가치를 어떻게 공원에 도입할지 고민”2하는 일이 디지털 공간이 공원을 대체할 수 없게 만드는 힘이 될 것이다.
  • [COMPANY] 정원문화연구소 자연의 가치를 배우는 유아 교육 프로그램을 개발하는 기업
    정원문화연구소는 2010년 제이하우스(JHaus)를 전신으로 정원 문화를 확산시키고자 설립된 비영리 연구 기관이다. 다양한 정원 교육 프로그램을 연구·개발하는데, 그 일환으로 교재를 발간하고 아카데미와 가든센터를 운영하고 있다. 최근에는 네이버스토어에서 ‘가든아이’라는 정원 용품 상점을 운영 중이다. 김정하 소장(정원문화연구소)은 국내에서 정원 붐이 일기 전부터 아이들을 대상으로 한 정원 놀이 교육 프로그램을 개발하고 보급해 왔다. 서울숲 녹색공유센터, 과천시 청소년수련관, 안산시 다문화글로벌센터, 서초 한우리정보문화센터, 석현초등학교 병설 유치원에서 꼬마정원사 프로그램을 운영하며 아이들에게 정원 일의 기쁨을 가르쳤다. 누리과정 및 표준보육과정에 적용할 수 있는 유아 전문 연간 교육 프로그램을 개발하는가 하면, 정원놀이사, 정원놀이교육사 교육 프로그램 개발·운영, 민간정원전문자격 등록 및 관리 등 정원 놀이 전문가 양성에도 힘쓰고 있다. 정원문화연구소의 프로그램은 일회성 체험에 그치지 않는다. 일정 기간 동안 규칙적으로 정해진 시간에 수업하며 정원에 대한 이해를 높이는 점진적 교육 과정을 지향한다. 여기에는 “정원 프로그램의 목표는 식물과 지속적으로 교감하고 돌보는 행위로 공감, 창의 실천 능력을 길러주는 것”이라는 김 소장의 의지가 반영되어 있다. 만 2세부터 5세까지의 아이를 대상으로 매주 한 번씩 만나 1년을 함께하는 커리큘럼을 마련했는데, 개발에만 1년여의 시간이 걸렸다. 개발 후 프로그램을 보급하는 일도 만만치 않았다. 당시 유아 교육 시장에 정원 교육 프로그램 보급로가 구축되어 있지 않았기 때문이다. 유치원과 어린이집을 직접 공략해야 했는데, 일일이 방문하기에는 한계가 있었다. 현재는 현장에서 쌓은 노하우와 전국 수백 명의 영업 교육사를 기반으로 네트 워크를 구축해 정원 교육의 씨앗을 퍼뜨리는 중이다. 아이들을 위한 정원 용품도 끊임없이 개발하고 있다. 최근에는 캡슐에 씨앗을 담아 조제약 봉투 형식으로 포장한 ‘캡슐씨앗’을 개발하고 특허를 출원했다. 작은 씨앗을 집기 어려운 아이들을 고려해 씨앗을 캡슐에 넣어 땅에 바로 심을 수 있게 한 제품이다. 약을 떠올리게 하는 외형은 아이들의 흥미를 불러일으킬 뿐 아니라, 몸과 마음이 아플 때 약을 먹듯 마음에 병이 들거나 위안이 필요할 때 식물을 찾았으면 하는 김정하 소장의 바람을 전한다. 캡슐은 물에 잘 녹는 수용성 재료로 제작되어 흙에 집어넣고 물만 주면 누구나 쉽게 식물을 키울 수 있다. 아이들을 대상으로 한 제품인 만큼 안전사고를 대비해 캡슐에는 일절 코팅 처리를 하지 않았으며, 먹어도 탈이 나지 않는 씨앗을 넣어 혹시 모를 위험에 대비했다.
  • [PRODUCT] 기하학적 선형이 돋보이는 벤치 ‘노바’ 다면체 알루미늄 캐스팅이 연출하는 입체감
    일상 속 외부 공간에 아름다움과 편안함을 더하는 조경 시설물 기업 ‘예건’이 창립 30주년을 맞아 새로운 벤치 시리즈를 출시했다. 현대 도시 경관과 어우러지는 단순하고 명쾌한 디자인의 제품들을 선보였는데, 그중 ‘노바Nova’는 기하하적 선형이 돋보이는 알루미늄 캐스팅 벤치다. 접은 종이에서 모티브를 얻어 납작한 직육면체를 몇 번 접은 것처럼 다리 기둥을 디자인했다. 옆에서 보면 알파벳 N을 뒤집은 듯한 형상이다. 벤치의 형태를 결정하는 이 알루미늄 뼈대는 예리하게 세공된 다면체다. 각각의 면이 조금씩 방향을 달리하면서 빛을 다양하게 반사해 벤치가 더욱 입체적으로 보이게 한다. 이용자의 몸이 닿는 좌판과 등받이에는 목재를 사용해 쾌적성을 높였다. 이외에도 파이프와 목재가 조화돼 만드는 자연스러운 곡선이 특징인 바제Base, 플랜터와 의자를 겸하는 육각형 벤치 헥사Hexa 등 실내외 어느 공간이나 잘 어울리는 다양한 제품을 개발했다. 이달 열리는 2020 대한민국 조경·정원박람회에서 이 같은 신제품들을 직접 만나볼 수 있다. TEL. 031-943-6114 WEB.www.yekun.com
    • / 2020년06월 / 38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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