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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에디토리얼] 기록과 저장의 힘, 조경 아카이브의 가능성
    먼지 쌓인 창고에 방치된 공공 기록물과 개인의 책상 서랍 속에 묻힌 자료를 발굴해 서울의 공원 이야기와 역사를 다시 쓴다. 국내에선 처음이라 할 수 있는 공원 아카이브 전시, ‘우리의 공원’이 개최됐다. 도시경관연구회 보라BoLA가 시정협치 사업으로 진행하고 있는 서울의 공원 아카이브 구축 프로젝트의 성과물 중 하나다. 첫 전시로 10월 13일부터 25일까지 서울식물원에서 ‘공공의 기억을 재생하다, 남산식물원’이 열렸다. 해방 후 조성된 서울 최초의 공공 식물원인 남산식물원의 조성 및 철거 과정 기록과 시민의 기억을 모아 엮은 이 전시는, 전문적 아카이브와 대중적 전시의 교집합을 제시했다는 점에서 주목을 끌었다. 서울숲 이야기관에서 전시되고 있는 ‘시민의 숲을 기록하다, 서울숲’은 시민과 함께 성장해온 서울숲의 시간을 식물, 정원, 사람, 순간의 시선으로 되돌아본다(10월 27일부터 11월 8일까지). ‘공원의 기록을 발굴하다, 남산공원과 월드컵공원’은 11월 10일부터 내년 5월까지 온라인 전시로 열린다(서울의 산과 공원 홈페이지와 서울기록원 홈페이지). 서울의 공원 아카이브 구축과 ‘우리의 공원’ 전시를 이끌고 있는 도시경관연구회 보라는 2018년에 자발적으로 조직된 조경 연구자 집단으로, ‘2019 공원학개론’을 주관하면서 조경 아카이브의 지평을 개척하고 그 가능성을 탐색한 바 있다. 『환경과조경』은 도시경관연구회 보라를 플랫폼 삼아 활동 중인 연구자 일곱 명을 초대해 특집 지면 ‘공원 아카이브, 기억과 기록 사이’를 구성한 바 있다(2020년 3월호). 이 특집이 전하듯, 조경 아카이브는 도시와 경관이라는 “대상이나 사건의 진위를 보여주는 가장 일차적인 자료”이자 그 기록물의 저장소다. “기록은 기록하는 자의 산물이다. 자의든 타의든 순수하게 객관적으로 기술하기 어렵고 기록물을 완벽하게 수집하는 것 또한 불가하므로 기록의 불완전함과 왜곡을 피할 수는 없다. 그렇지만 기록이 의미 있는 이유는 항상 존재한다. 기록의 집적물인 아카이브는 우리의 모습을 객관적으로 바라보게 하고 다양한 해석을 가능하게 한다. 진정성에 기반을 둔 두터운 스토리텔링을 구축할 수 있는 토대이며, 과거와 미래와 소통할 수 있는 매개체로서도 힘을 갖는다”(박희성, 서울시립대학교 연구교수). 이러한 기록과 저장의 힘을 실험하는 첫 시도였다는 점에서 이번 아카이브 전시 ‘우리의 공원’은 의미를 획득한다. 서울기록원, 중부공원녹지사업소, 서울시 통합기록관리시스템에 흩어져 있는 방대한 공공 기록물, 그리고 시민 공모를 통해 수집한 민간 자료를 바탕으로 공원에 용해된 도시의 삶과 문화를 다시 직조해낸 것이다. 클릭 한 번으로 1857년의 보고서와 도면에 접근할 수 있는 뉴욕 공원휴양국의 센트럴파크 아카이브나 24,000점이 넘는 옴스테드의 글, 도면, 사진, 서신, 전기를 디지털로 구축한 미국 의회도서관의 옴스테드 아카이브에 비하면 초보적 단계지만, 도시경관연구회 보라의 노력이 수집과 소장을 넘어 공유와 소통을 지향하는 조경 아카이브 연구로 계속 확장되는 계기가 되기를 기대한다. 2022년은 한국 제도권 조경 직능(profession)과 학제(discipline)가 50주년을 맞는 뜻깊은 해다. 마침 같은 해 가을에는 광주에서 세계조경가협회IFLA 총회와 학술대회가 열리기도 한다. 2022년은 한국 조경을 둘러싼 불안과 피로를 교정하고 조경의 미래를 다시 설계하는 전환점이 될 수 있을 것이다. 한국 조경의 시선으로 도시와 경관을 둘러싼 글로벌 이슈를 토론하고 새로운 비전을 세우는 무대를 마련할 수 있을 것이다. 우선, 학회가 중심이 되어 한국 조경의지난 50년을 촘촘히 기록하고 꼼꼼히 저장하는 체계적인 아카이브 작업에 나서야 한다. 지속 가능한 공유와 소통은 기록과 저장의 진정성에 달려 있다. 한국 조경이 쉰 살이 되는 해에 『환경과조경』은 창간 40주년을 맞는다. 2021년 8월호는 통권 400호이기도 하다. 1982년 7월부터 단 한 차례의 결호도 없이 달려온 『환경과조경』은, ‘한국 조경의 문화적 성숙을 이끄는 공론장’, ‘조경 담론과 비평을 생산하고 나누는 사회적 소통장’, ‘동시대 세계 조경의 보편성과 지역성을 수용하고 발굴하는 전진기지’라는 세 가지 비전을 지향해 왔다. 곧 통권 400호를 맞이하는 『환경과조경』은 매달 정보를 전하고 담론을 나누는 한 권의 전문 잡지일 뿐 아니라 한국 조경의 최전선의 충실한 아카이브라는 역할을 새롭게 설정한다. 한국 조경의 다음 50년을 설계하기 위한 필요조건은 곧 지난 50년의 성과와 한계를 충실히 기록하고 저장하는 일이라는 점을 새삼 깨닫는다.
  • [풍경 감각] 먼지 우주
    방 안에서 모든 일을 해야 하는 요즘이다. 영화는 넷플릭스, 여행은 유튜브, 회의는 줌 서비스를 이용하고, 인터넷으로 장을 본다. 그런데 풍경을 감각하는 일은 밖을 나가지 않고서야 힘들다. 눈에 보이는 것은 모두 내 것이라며 창밖 후지산을 호젓하게 누리는 소설가(야마자키 나오코라, 『햇볕이 아깝잖아요』)처럼 풍경을 내다보면 되지 않냐 물을 수 있겠지만, 작업실 주변 가득한 신축 아파트 단지를 내 것으로 생각하기는 어렵다. 작업실 안에서 어떤 풍경을 발견할 순 없을까? 해답을 준 것은 천문학자 칼 세이건의 『코스모스』였다...(중략) *환경과조경391호(2020년 11월호)수록본 일부
  • [비트로 상상하기, 픽셀로 그리기] 파라메트릭 플랜팅 Ⅱ
    수련 Ⅱ 수련은 겨울이 지나서도 계속됐어. 디자이너라면 커피숍에서 우아하게 스케치나 할 줄 알았지. 부모님은 제발 그만하고 공무원 시험이나 보라고 말하셨어. 그런데 괜한 자존심을 지키려다 타이밍을 놓치고 말았지. 이미 내 편은 아무도 남지 않았고, 통장 잔고 바라보며 후회해봤자 마음만 답답해졌어. 정원박람회 때는 그래도 작가 소리도 들었던 것 같은데. 뭐 다들 진지하지는 않았겠지만, 사람들은 내가 작가였다는 사실을 정말 착실하게 잊어버렸어. 마치 서로 굳은 약속이라도 한 듯 말이야. 그리고 이 모든 상황은 결국 내가 ‘포레스트 팩’을 쓰게 만들었지. 분명 혼자 들떠서 미래를 기대하던 때가 있었는데. 항상 이런 식이지. 자발적 동기가 전개되는 과정이라는 건. 결국에는 변질되고 말아. 감상적인 생각에 근거도 없이 뭐든 할 수 있다고 믿지. 고독 나는 고독한 시간에 고립됐어. 참고서도 없이 포레스트 팩을 써야 했지. 세상은 수학 참고서 같은 뻔한 책은 셀 수 없이 찍어대면서 왜 스캐터 프로그램에는 관심이 없는 걸까. 아무도 가지 않은 길 따위를 갈 생각은 없었어. 다 현대 철학이 만들어낸 허구잖아. 20대에 지겹도록 속았다고. 그렇지만 수련은 역시 고독해야 한다는 생각이 들었어. 아무렴 수련은 고통스러워야지. 물론 이것도 1990년대 대중문화가 만든 낭만이라는 걸 알지만 그렇다고 편하게 지낸다고 실력이 늘지는 않겠지. 그래서 렌더링 시간에 배운 도면들을 복습하기 시작했어. 요즘 유행한다는 핏 아우돌프(Piet Oudolf의) 도면들도 찾아봤지. 무턱대고 포레스트 팩의 프로세스와 전통적인 작업 구조를 비교하기 시작했어. 몹쓸 버릇이 도지고 말았지. 이러면 사람들은 또 나를 한심하게 쳐다볼 텐데. 참고서만 있었어도 평범하게 살 수 있었을 거야. 정말 슬픈 일이지. 설계 이야기는 안 하고 또 푸념만 잔뜩 늘어놨네. 이제는 정말 포레스트 팩 얘기를 할 거야. 그렇다고 핏 아우돌프가 나에게 DM을 보내진 않겠지만 말이야. 진정한 식재 설계 심각하게 고민하기 시작했어. 진정한 식재 설계란 뭘까. 심지어 침대에 누워 닌텐도를 하면서도 고민했지. 그리고 작가 자격을 잃은 내가 뭔가 정리된 얘기를 해도 되는지 망설였어. 세상은 서로에게 권위를 부여하고, 인가된 권위만이 스스로를 보호할 수 있기 때문이야. 하지만 그런다고 답이 나올 리 없고 비굴하게 죽기는 싫어서 그냥 말하기로 했어. 슬픈 일이지. 나는 진정한 식재 설계는 ‘이미지의 연출’일지도 모른다고 생각하게 됐어. 좀 갑작스럽긴 하지만 작가마다 특정 이미지가 있고 그 이미지를 계속 반복하더라고. 핏 아우돌프는 자기 스타일 설계를 백 번 반복하고 안드레아 코크란(Andrea Cochran)은 샌프란시스코 스타일을 백 번 반복하는 거지. 그래서 식재 설계에선 맥락이 중요한 거 아닌가 생각하게 됐어. 그제야 복잡한 생각을 떨쳐내고 순수하게 미학적 관점에서 내용을 정리할 수 있었지. 물론 어디까지나 포레스트 팩으로 할 수 있는 내 세계 안에서 말이야. 이제 수련의 결과를 소개해야겠네. 아직 미완성이지만 진정한 파라메트릭 식재 설계에 대해 말이야. ...(중략) *환경과조경391호(2020년 11월호)수록본 일부 나성진은 서울대학교와 하버드GSD에서 조경을 전공했다.한국의 디자인 엘,뉴욕의 발모리 어소시에이츠(Balmori Associates)와 제임스 코너 필드 오퍼레이션스(JCFO)에서 실무 경험을 쌓았고, West 8의 로테르담과 서울 지사를 오가며 용산공원 기본설계를 수행했다.한국,미국,유럽에서의 다양한 경험을 바탕으로 귀국 후 파트너들과 함께 얼라이브어스(ALIVEUS)라는 대안적 그룹을 열었다.
  • [공간잇기] 가족을 통해 바라본 서울 시간 여행기
    할머니, 옛날이야기 해주세요 어린 시절 큰댁에 가면 뜨뜻한 아랫목이 있는 할머니 방에 사촌들과 모여 앉아 “옛날 할머니 어릴 적에”로 시작하는 이야기를 들었다. 할머니의 젊은 시절 경험에 바탕을 둔 이야기였다. “열여섯 살 되던 해 집안끼리 혼사가 정해졌는데, 글쎄 어느 날 학교에 갔더니 교실 문밖에 어떤 신사 한 분이 나를 찾는다고 반 친구들이 까르르 웃으며 난리였지. 나가보니 네 증조할아버지가 ‘내가 네 시아비 될 사람이다. 얼굴 한 번 보러 왔다’고 그러는데, 친구들 앞에서 얼굴이 어찌나 화끈거리고 창피하던지. 쥐구멍에라도 들어가고 싶었다구.” 할머니는 덕성고녀(현 덕성여고)에 다니던 시절을 말할 때마다 얼굴이 발갛게 피어오르며 수줍은 십 대 소녀가 됐다. 듣고 또 들은 이야기지만 그런 할머니를 보는 게 재미있어, 턱 받치고 바닥에 엎드려 또 이야기해 달라 조르곤 했다. 옛이야기를 듣는 일은 어머니와 함께한 어린 시절에도 흔했다. 어머니는 시내에 볼일을 보러 갈 때면 나를 꼭 데리고 다녔다. 내 손을 잡고 새로운 장소를 갈 때마다 그곳에 얽힌 본인의 이야기를 해주었다. 시장에도 자주 갔는데, 종로 조계사 근처를 지날 때면 “여기가 엄마가 나온 고등학교가 있던 곳이야”라며 번쩍이는 고층 건물 쪽 어딘가를 손가락으로 가리켰다. “어디요?” 학교라고는 흔적도 찾을 수 없는, 눈 비비고 봐도 빼곡한 고층 건물뿐인 풍경에서 어머니가 무엇을 보는지 알 수 없었다. 학교는 강남으로 이전해 흔적이 없어진 지 오래라고 했다. “이 큰 길에 엄마가 등하교 때 타던 전차가 있었어. 엄마랑 엄마 단짝 친구 명희 아줌마랑 맨날 타고 다니면서 집에 갈 때 저기서 내려 시장 구경도 했단다.” 전차가 다니던 길이라니! TV 시대극, 아니 박물관에서만 보던 그 전차가 다녔다니 신기했다. 그런데, 불과 몇십 년만에 어떻게 이렇게 흔적 하나 없이 모두 사라진 걸까? 마음 한편에 숙제처럼 자리잡은 작은 의문이 점점 커지기 시작했다. 이야기 속 장소 할머니와 어머니의 이야기 속에는 서울의 낯선 옛 풍경, 동네, 골목길, 이웃과 마당, 젊은 시절의 할머니와 할아버지, 어린 시절의 아버지와 어머니, 그리고 내 기억에 없는 증조할아버지와 증조할머니가 늘 살아 숨 쉬고 있었다. 서울이라는 공간 속 시간의 켜와 사람들의 이야기라는 화두는 어린 시절부터 자연스럽게 나의 관심을 끌기 시작해, 성인이 될 때까지 더욱 깊숙이 뿌리내렸다. 사람은 수많은 공간에서 다양한 이웃과 관계 맺으며 다양한 공동체에 속해 살아간다. 개인이 처한 사회적, 경제적 상황에 따라 공동체 안에서의 관계 맺기는 다른 양상을 띠게 된다. 정치적, 행정적 상황은 개인의 삶의 터전에 큰 영향을 주어 공동체 내에서 형성된 관계에도 직접적 영향을 미칠 수 있다. 2014년부터 꾸준히 공간, 시간, 사람을 연구하고 이를 문화·예술의 형태로 발표한 공간잇기 활동은, 유년시절의 경험에서 비롯된 공간 철학에 바탕을 둔 도시에 대한 진지한 탐구 과정이라고 할 수 있다. 2019년, 한 문화예술재단의 후원을 계기로 시작한 연구 전시를 통해 연구 활동에 깊이를 더하고 내연을 확장할 수 있었다.1 연구 전시를 준비하는 과정은 시작부터 난감했다. 그동안은 지역에 대한 연구를 진행하고 그 다음에 지도, 그림, 사진, 이야기 글, 영상, 전시, 출판 등 내용을 가장 잘 표현할 수 있는 발표 방식을 택했다. 그런데 이번엔 전시를 위한 연구를 해야 하는, 기존의 틀을 뒤집는 도전이었다. 재단은 그간 진행해온 공간잇기 연구의 확장 선에서 연구 철학이 잘 보이는 도시 공간 연구를 자유롭게 ‘연구 전시’하면 된다고 설득하며 내게 ‘연구 작가’라는 타이틀을 붙여줬다. 주제를 찾는 데만 해도 오랫동안 헤어 나오지 못할 것은 정해진 수순이었다. 나만의 그곳, 서울 대상지는 내가 태어나고 자란 서울로 정했다. 5대째 서울 토박이인 가족들이 살아온 각기 다른 서울의 시간과 공간을 연구하기로 했다. 서울이라는 대도시 속 소시민들의 미시적 생활사를 연구하기에 이만큼 라포(rapport)가 형성된 대상은 또 없었다. 도시 공간 연구자이자 도시 구성원으로서 가족들이 공유하는 구체적이고 실재적인 이야기에 집중하고, 서사 속 마을의 모습과 공동체의 이야기를 발라내 서울의 공간을 새롭게 바라보고자 했다. 가족 중 누구와 어떤 시대, 어느 동네의 이야기를 풀어갈지 고민했다. 사회적, 경제적, 도시계획적 배경을 바탕으로 어떤 집에서 어떤 생활을 하며 살았는지에 중점을 두고 부모, 형제, 일가친척, 위로는 조부모와 증조부모에 이르기까지 친외가에 대한 기본 조사를 진행했다. 가족 구성원을 섭외해 여러 차례 공간에 대한 심층 인터뷰를 진행하고 사료 조사와 함께 그들이 살던 동네를 답사했다. ...(중략) *환경과조경391호(2020년 11월호)수록본 일부 서준원은 열다섯 살부터 대학 졸업 후까지 뉴욕에서 약10년간 생활했다.파슨스 디자인 스쿨(Parsons School of Design)인테리어디자인학과에서 다양한 주거 공간에 대해 공부했고,한국인의 생활 환경에 대한 관심으로 서울대학교 환경대학원에서 석사를 마치고 박사를 수료했다. SOM뉴욕 지사, HLW한국 지사, GS건설,한옥문화원,서울대학교 환경계획연구소 등에서 약16년간 실내외 공간을 아우르는 디자이너이자 공간 연구자로 활동했다.한국인의 참다운 생활 환경을 위한 디자인의 본질에 대한 질문을 품고 다양성이 공존하는 도시 공간 연구를 위해 곳곳을 누비며‘공간 속 시간의 켜’를 발굴하는 작업을 긴 호흡으로 해오고 있다.
  • [북 스케이프] 기억과 기록 사이, 핀치콘티니가의 정원
    어떤 정원은 인물이나 사건을 기리는 장소가 된다. 이는 대개 실재하는 공간이지만 은유나 상징으로도 그 역할을 충분히 한다. 많은 경우 정원은 즐거움을 위한 곳이지만 어떤 때는 은둔과 회피의 장 혹은 기억과 각성의 매개체가 된다. 이탈리아의 소설가 조르조 바사니(Giorgio Bassani)의 자전적 소설 『핀치콘티니가의 정원Ⅱ (giardino dei Finzi-Contini)』(1962)에 나오는 정원은 앞서 말한 정원의 특징을 모두 지닌다.1 소설은 반유대주의적 인종법이 통과되고 파시즘의 광풍이 몰아치기 시작한 1938년의 이탈리아 페라라(Ferrara)를 배경으로 한다. 유대인 차별이 점차 심화되던 때 페라라의 부유한 유대인 가문 핀치콘티니의 몰락과 이에 대한 회상이 주요 내용이다. 소설의 화자 조르조(작가와 이름이 같다)는 유대인 문학도로, 한나 아렌트(Hannah Arendt)가 “어두운 시대”라고 표현한 이 시기 집단주의의 광기 속에서 상처받고 모욕받는다. 유대인들이 사회에서 배제되는 시기에도 핀치콘티니 가문의 정원은 낙원과 같다.2 세상은 유대인들에게 문을 닫는데, 오랫동안 닫혔던 핀치콘티니가의 정원이 유대인들을 위해 열린다. 테니스 클럽 입장이 금지되면 친구들을 정원으로 초대해 테니스를 치고 피크닉을 즐긴다. 오후의 산책도 너른 정원에서 하면 그만이다. 공공 도서관에서 유대인이라는 이유로 쫓겨난 조르조는 그보다 더 훌륭한 핀치콘티니 저택의 도서관에서 졸업 논문을 쓴다. 핀치콘티니가의 정원은 외부 상황에 크게 영향을 받지 않는 자족적 세계다. 이 핀치콘티니가의 정원은 조르조에게 완전하고 안온한 세계와 미콜 핀치콘티니라는 다다를 수 없는 연인을 동시에 은유한다. 핀치콘티니 가문의 아이들은 어릴 때부터 담장 안에서 보호를 받으며 자랐다. 개인 교습을 받고, 시험을 치러 오거나 시너고그(유대교 회당)에 갈 때만 다른 아이들을 만나는 미콜은 그 자체가 닫힌 정원이다. 소년 시절, 미콜은 조르조에게 담장 안으로 들어오라고 권하지만 조르조는 갈 수 없었다. 10여 년 후에야 핀치콘티니의 정원에 들어가 점차 미콜과 가까워지지만 결국 그녀의 마음을 얻지는 못했다. 조르조에게 핀치콘티니가의 정원, 그리고 미콜이라는 정원은 끝끝내 다다르지 못한 이상이다. ...(중략) *환경과조경391호(2020년 11월호)수록본 일부 황주영은 서울대학교 협동과정 조경학전공에서19세기 후반 도시 공원의 모더니티에 대한 연구로 박사 학위를 받은 후파리 라빌레트 국립건축학교에서 박사후 연수를 마쳤다.미술과 조경의 경계를 넘나들며 문화사적 관점에서정원과 공원, 도시를 보는 일에 관심이 많으며,이와 관련된 강의와 집필, 번역을 한다. 그러는 동안수많은 책을 사거나 빌렸고, 그중 아주 일부를 읽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