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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에디토리얼] 잡지의 얼굴, 표지 탐닉
    봄, 바람이 분다. 모처럼 서울 도심에서 약속이 있다면 한두 시간 먼저 출발해 덕수궁에 들르시길 권한다. 국립현대미술관 덕수궁관에서 열리고 있는 기획전 ‘미술이 문학을 만났을 때’(2021. 2. 4.~5. 30.)는 그 어느 때보다 아름다운 시와 그림이 탄생했던 근대기의 풍요로운 문화적 토양으로 우리를 이끈다. 시대의 전위를 꿈꾸며 함께 활동한 시인 정지용, 이상, 김기림, 김광균, 소설가 이태준, 박태원, 그리고 화가 구본웅, 김용준, 최재덕, 이중섭, 김환기 등의 교유와 연대를 그들의 글과 그림을 통해 한 호흡으로 감상할 수 있는 전시다. 화가와 시인이 만나 빚어낸 자유로운 화문(畵文)의 세계를, 그들의 지적, 미적 수준의 결정체인 아름다운 책들을 탐닉할 수 있다. 김소월의 『진달래꽃』, 백석의 『사슴』, 윤동주의 『하늘과 바람과 별과 시』 같은 시집들의 원본도 영접할 수 있다. 잡지 편집자와 디자이너라면 전시장 곳곳에 펼쳐진 근대기 잡지 표지들의 치명적인 매력에 빠져들지 않을 도리가 없다. 당대의 현실과 이상을 고스란히 담은 자화상. 잡지를 편집하는 여러 단계의 과정에서 가장 고민되는 순간은 표지를 결정할 때다. 표지는잡지의 얼굴이다. 잡지 고유의 브랜드 정체성을 표현해야 한다. 해당 호의 콘텐츠를 간결한 이미지와 텍스트로 전달해야 한다. 독자의 상상력을 허용하는 여백의 미도 필요하다. 구매욕을 자극하는 것도 표지의 중요한 역할이다. 표지의 힘을 단적으로 예증하는 잡지로 『뉴요커(The New Yorker)』를 빼놓을 수 없을 것이다. 1925년부터 계속 간행되고 있는 이 잡지는 사실의 전달보다는 해석과 비평을 중심으로 뉴욕의 문화와 시사 이슈를 다룬다. 설명적이거나 선동적인 문구 한 줄 없이 지적이고 유머 넘치는 일러스트레이션과 제호만으로 표지를 디자인한다. 무려 100년 가까이 지켜온 전통이다. 『뉴요커』 표지만 순서대로 모아도 미국 현대사를 한눈에 볼 수 있다. 1982년 7월부터 2021년 3월까지 『환경과조경』의 역사에는 395장의 표지가 쌓였다. 396번째책을 내며 이달에는 그간의 표지를 기록하고 전시하는 특집, ‘표지 탐구’를 마련한다. 오는 8월 출간될 통권 400호를 기념해 『환경과조경』의 발자취를 다각도로 되돌아보는 여러 기획 중 하나다. 2021년의 미감으로 보면 어설프고 촌스러운 표지도 있지만 놀라울 정도로 실험적이고 전위적인 표지도 있다. 한군데 모은 표지들의 이미지와 텍스트를 훑어보기만 해도 한국 조경이 그려온 지형의 주요 지점을 조감할 수 있지 않을까. 다시 만난 옛 친구처럼 반가운 표지가 많은 독자라면 모처럼 추억 여행에 나선 기분이 들지도모르겠다. 표지 대부분이 낯선 젊은 독자라면 봉인된 한국 조경사의 타임캡슐을 열어보고 싶은 탐구심이 들 수도 있을 것이다. 꼼꼼히 살펴보지 않더라도 표지의 제호와 디자인이 몇 차례 크게 바뀐 걸 발견할 수 있는데, 언제, 무엇이, 어떻게, 왜 변했는지 추측해보는 재미가 쏠쏠하다. 표지 이미지들과 함께 배치하는 해설이 추측의 재미를 안내한다. 길지 않은 해설 텍스트에는 김모아, 윤정훈 편집자와 팽선민 디자이너가 꼽은 주목할 만한 표지와 그 선정 이유가 담겨 있기도 하다. 독자 여러분의 시선을 멈추게 한 표지는 무엇일지 궁금하다. 호기심을 불러일으키는 표지가 있다면 책장에 무심히 쌓인 과월호를 뽑아 옛 사연을 살짝 들춰보시길. 창간호부터 2013년 12월호까지는 환경과조경 홈페이지에서 무료로 보실 수도 있다. 특집 뒷부분 ‘책등 탐구’에는 396권의 책등 중 몇몇을 모아 배치한다. 도서관 서가 사이를 산책하면서 나란히 꽂힌 과월호 잡지들의 책등을 넉넉한 리듬으로 훑는 것 같은 즐거움이 이번 달 지면에 있기를 기대해 본다. 참, ‘웃프게도’, 출판계의 편집자와 디자이너 중 책등을 책등이라 부르는 사람은 거의 없다. 주로 ‘세네카’라는 전문 용어(?)가 쓰이는데, 얼핏 라틴어 느낌이 나는 이 말은 등, 뒷면, 뒤 등을 뜻하는 일본어 세나카せなか(背中)에서 왔다고 한다. 이번 396번째 표지의 주인공은 세네카들이다. 역대 『환경과조경』의 세네카 변천사를 한눈에 감상해 보시길. 반팔 차림이 어색하지 않을 5월의 특집 지면은 ‘편집자들’(가제)이다. 반가운 이름 김진오, 조수연, 백정희, 손석범, 김정은, 양다빈, 조한결. 추억 속의 OB 편집자들이 출연 예정임을 넌지시 알려드린다.
  • [풍경 감각] 안녕하세요, 감사해요, 잘 있어요, 다시 만나요
    “안녕하세요, 감사해요, 잘 있어요, 다시 만나요.” 이 문장을 읽으며 어떤 멜로디를 떠올렸다면 나와 같은 시기에 유년을 보낸 사람일지도 모르겠다. 중학생 때 방과 후 TV를 틀면 만화 채널에서 애니메이션 ‘아따맘마’의 주제가가 흘러나왔다. “아침 해가 뜨면 매일 같은 사람들과또다시 새로운 하루 일을 시작해”로 이어지는 가사를 들으며 매일 같은 사람들을 보는데 하루가 새로울 게 뭐가 있겠냐고 시큰둥해 했다. 매일 보는 사람 중엔 그 애도 있었다. 가무잡잡한 탓에 다른 애들이 외국인 같다고 놀리면 곧잘 웃어넘겼는데, 가끔은 정말 그렇냐고 물었다. 같은 학교와 학원을 다닌 우리는 운동장 구석에서 자주 빈둥대곤 했다. 언제부터였을까. 매일 보는 그 애와 보내는 날들이 새로운 하루가 된 건. …(중략)
    • 조현진 / 2021년04월 / 396
  • [『환경과조경』 400호 돌아보기] 언제나 지금만 같길 바라
    필자가 이력서에 쓰는 세부 전공은 ‘동아시아 조경의 역사와 이론’이다. 짧게는 몇백 년, 길게는 천여 년 전 사람들의 생각을 읽고 공간을 상상하는 일을 십수 년 하다 보면, 동시대 조경의 이야기가 딴 세상의 것처럼 낯설게 느껴질 때가 있다. 분명 조경을 공부하는데 조경과 한참 멀어졌음을 발견할 때, 불안한 마음을 진정시켜 준 것이 『환경과조경』이었다. 그렇다고 『환경과조경』의 열렬 독자냐. 그건 또 아닌 것 같다. 일부러 열심히 찾아 읽은 적도 있지만, 원하는 것만 보거나 의무감에 보기도 하고, 그냥 지나친 적도 허다했다. 그런데 이런 ‘변덕스러운’ 독자가 비단 나뿐일까. 부침이 있는 독자들을 두고도 한결같이 제자리에서 조경의 주요 이슈를 제공하는 『환경과조경』이 대견하고 고맙다. 21세기 한국 조경, 세계로, 세계로! 이번 ‘『환경과조경』 400호 돌아보기’에서 다룰 순서는 151~200호, 2000년 11월부터 2004년12월까지다. 2000년의 밀레니엄 시대를 지나 21세기로 접어드는 시기로, 조경계에서는 확실히 새로운 변화가 감지되었다. 그리고 이 변화는 151~200호의 『환경과조경』에서도 잘 드러난다. 먼저 외형과 구성부터 살펴보자. 지금까지 몇 차례의 리뉴얼이 있었는데, 151~200호 사이에도 변화의 지점들이 있다. 특히 21세기 들어 처음 출간한 153호(2000년 1월호)에서 형식은 물론 내용까지 큰 변화를 꾀했다. ‘편집자에게 & 편집실에서’라는 코너를 빌어 변화의 주요 지점을 안내하고 있는데, 변화의 목적이 “알차고 내실 있는 정보의 적극적 제공, 우리나라 조경 분야의 국제적 위상을 높이기 위한 것”임을 밝히고 있다. 주된 내용을 몇 가지 꼽아 보면, 첫째, 1985년부터 표지에 사용했던 한글 제호 ‘환경과조경’의 크기를 줄이고 영문 제호 ‘ELA(Environmental & Landscape Architecture of Korea)’를 전면에 내세웠다. 둘째, 표지에 영문 제호를 강조한 것에 이어, 영문 요약 소개 이외에 별도로 한 코너에서 한영문 병기를 시도했다. 셋째, 웹페이지 주소를 변경하면서 업로드 콘텐츠를 확충했다. 21세기를 맞이해 해외 소식을 적극적으로 소개하고 독자의 요구에 맞는 국내 조경 소식을 촘촘하게 전할 수 있는 창구가 되고자 하는 『환경과조경』의 새로운 방향을 읽을 수 있다. 이후 눈에 띄는 또 하나의 큰 변화는 과감한 광고 배치다. 2002년 8월호(172호)부터는 잡지의중간에 상당량 배치했던 각종 광고가 앞뒤로 빠지는 변화를 보였다. 맥락 없이 요란한 디자인의 광고 묶음이 잡지 중간중간 많은 부분을 차지했는데 그 이미지가 너무 강력해서 『환경과조경』의 디자인 콘셉트와 어울리기가 쉽지 않았다. 광고를 정리하니 목차부터 마지막까지 기사 내용에 집중할 수 있어 훨씬 간결하고 깔끔한 잡지로 탈바꿈했다. 섹션 구성에도 큰 변화가 있었다. 사실 『환경과조경』은 태생부터 조경계의 유일무이한 잡지라는 정체성이 분명했는데 그 바람에 다뤄야 할 내용이 너무 많다는 애로사항이 따랐다. 게다가 조경은 범주 자체도 광범위해서 전문지로서 개성을 드러내는 데 한계가 있을 수밖에 없었다.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 ‘Design+Planning’과 ‘Technology & Practice’, ‘Feature’, ‘Reports’, ‘Reader’s Information’의 섹션 구성에서 2003년 3월호(179호)부터 ‘Technology & Practice’를 덜어내고1 『환경과조경』의 색깔을 분명히 하고자 했다. 조경설계의 새로운 지형과 조경이론 형식의 변화는 언제나 내용의 변화를 수반한다. 새롭게 단장한 2001년 1월호(153호)부터 해외 작품과 해외 조경 업체, 해외 대학교, 해외 주요 웹사이트, 해외 잡지의 주요 기사 등에 대한 소개를 보완해 국외 소식과 정보의 비중을 대폭 늘렸다. 물론 이전에도 해외 작품 소개 코너가 없지는 않았다. 당시 3인 체제로 운영되었던 편집부에서 갑자기 늘어난 콘텐츠의 스펙트럼을 어떻게 감당했을까 싶다. 단지 ‘21세기의 출발’이 이 모든 부담스러운 일을 시작하게 하는 명분은 아니었을 것이다. 2000년대 변화의 근원지였던 인터넷 환경이 정보 경쟁력을 부추겼을 것이고, 조경계‘핫’한 해외 소식은 『환경과조경』을 통해 속속 우리에게 전달되었다. 그 가운데 인상적인 기사 하나가 153호에서 발견된다. 현재 『환경과조경』 편집주간으로 있는배정한 교수의 “조경설계의 새로운 지형”으로, 이 글은 향후 같은 필자의 연재 ‘동시대 조경이론과 설계의 지형’과 함께 한국의 조경설계와 학계에 큰 반향을 불러일으켰다.…(중략) *환경과조경396호(2021년 4월호)수록본 일부 박희성은 오랜 시간 동아시아 역사와 이론을 연구하며 한·중·일의 자연미를 꾸준히 탐색했고, 최근에는 근대 동아시아 조경과 역사 도시 경관에 주목하고 있다. 한중 정원과 문인, 자연미의 관계로 석사, 박사학위를 받았다.한국연구재단의 지원을 받아 ‘동아시아 각국 수도 연구’를 수행하고 현재 ‘근대기 서울 주택정원 연구’를 진행중이다. 자연미와 정원에 대한 인문학적 탐구를 넘어 유네스코 세계유산 제도와 운영, 한국 근현대 도시·조경사 등 조경 연구의 지평을 넓히고자 한다. 연구와 더불어 서울대학교와 한국전통문화대학교에서 학생들을 가르치고 있다.
    • 박희성 / 2021년04월 / 396