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환경과조경 2015년 10월

정보
출간일 2015년 10월
이매거진 가격 9,000

기사리스트

[CODA] 천변 풍경
길고 긴 여행을 다녀오니 힘들었다고 변명 아닌 변명을 늘어놓은 지 얼마나 지났다고 다시 여행 이야기를 하려고 한다. 지난 8월호 코다 마지막 부분에 이렇게 썼던 것 같다. “아마 올 가을에는 ‘즐거웠던’ 이번 여행을 추억하며 한국의 공원과 거리를 쏘다닐 것 같은 예감이 든다. ‘기억은 단순화와 선택을 능란하게 구사’하기 때문에 그때쯤이면 고달팠던 현실은 생략된 채 감동적인 장면을 이어 붙여 편집한 여행이 남아 있을 것이다”라고 했다. 그렇다. 지금쯤 공원을 쏘다닐 것 같다던 예감이 맞아 떨어졌고, 지난 여행을 그리워할 것이란 예상 또한 그렇다. 예정대로 이번 10월호 특집의 주제는 ‘공원’이다. 편집주간과 편집장은 내가 휴가차 자리를 비운 사이 매년 10월호 특집은 작년 ‘활자 산책’의 바통을 이어 받아 외부 원고 없이 편집부 전체가 원고를 쓴다는 멋진(!) 전통을 만들었다. ‘당신의 공원은 어디입니까’ 같은 열린(모호한) 주제가 정해진 결과 편집부는, 말년 병장인 양다빈 기자부터 신입 사원인 박인수 기자까지 예외 없이 각자의 주제를 찾아 고민을 거듭하고, 편집회의 때마다 생각이 바뀌고, 주말이면 공원을 헤매고 다녔다. 아무튼 다시 여행 이야기로 돌아오자면, 지난 여름 파리에서 이번 호에 소개되는 레퓌블리크 광장을 찾았다. 가보고 싶은 곳이 많아서였는지 이상하게도 파리 시 3구와 11구 경계에 위치한 이 광장 쪽으로 답사 루트를 짜기가 어려웠다. 그럼에도 해외 작품은 가볼 수 없으니 그 사정을 소상히 알지 못한 채 소개되는 것이 늘 아쉬웠던 터라 놓치기는 싫었다. 가까스로 돌아오기 이틀 전 저녁 무렵 광장에 가볼 수 있었다. 도착하고 보니 이곳이 내가 사진으로 미리 본 그 광장이 맞는지 눈을 의심할 지경이었다. 사진 속 광장의 밝은 모습은 모두 햇빛의 장난이었던가. 눈앞에 펼쳐진 광장은 마침 해가 지고 있기도 했지만, 잿빛 바닥에 쓰레기와 낙엽이 함께 굴러다니는 우중충한 모습이었다. 한쪽 계단에 걸터앉아 휑한 광장을 보고 있자니 눈앞의 높다란 동상에는 낙서와 뜯긴 포스터 자국이 가득했다. 동상의 기단에 붉은색 라커로 ‘정의와 보상justice & reparations’이라고 휘갈겨 쓰인 글씨는 음산한 느낌을 주기에 충분했다. 이 지역에 저소득층과 유색 인종이 많이 산다던데, 또 근처에 올해 초 테러가 있었던 주간지 샤를리 엡도 사무실이 있다던데, 그래서 그런지 사람들의 옷차림이나 행동거지가 거칠게 느껴지기도 했다. 동상의 주인이 프랑스혁명을 상징하는 마리안느이고 그 밑에 쓰인 문구가 ‘자유, 평등, 박애’라는 것, 그리고 이 광장이 공화국 헌법이 선포되었고 각종 정치·추모 집회가 열리는 상징적인 장소라는 것은 한국에 돌아와서야 알았다. 광장을 처음 마주한 순간에는 ‘도대체 재작년 리노베이션했다는 이 광장은 무엇이 바뀐 것일까’ ‘과연 이 작품을 게재할 수 있기는 할까’ ‘그런데 이 별것 없어 보이는 광장에 사람들은 꽤 많은걸’, 그런 생각들을 이어가고 있었다. 그러다 탕플 거리 쪽으로 발걸음을 옮기다보니 광장의 북쪽 도로는 보행자우선도로로 광장과 도로 사이의 턱이 거의 없다는 사실을 깨달았다. 그리고 보니 자전거는 광장과 도로의 경계 없이 자유롭게 달리고 있었고, 광장 안에는 넘어지고 구르며 스케이트보드를 연습하는 소년, 소녀들이 유난히 많았다. 탕플 거리를 따라서는 프랑스의 공유 자전거인 벨리브의 스테이션이 설치되어 있었다. 이 광장의 예전 사진을 찾아보니 2011년까지만 해도 마리안느 동상 주변은 자동차가 다니던 도로였다. 보행자나 라이더, 스케이트보더의 입장에서 보면 기존의 교통 광장이 탕플 거리까지 확장된 시민들의 광장으로 돌아온 셈이니 리노베이션은 격변에 가까운 일이었다. 광장 북쪽으로 뻗은 탕플 거리를 따라가면 생 마르탱 운하와 만나게 된다. 이 운하는 영화 ‘아멜리에’ 속 오드리 토투가 물수제비를 뜨던 곳으로 유명하기도 하고 유람선이 떠다니는 운치 있는 관광지라고 한다. 저녁이면 그곳에 젊은이들이 많이 모인다는데, 접근하기 편하도록 광장에서부터 바닥 포장까지 연결한 것을 보니 운하는 어떤 모습일지 궁금했다. 200여 미터쯤 걸어서 도착한 생 마르탱 운하는 생각보다 좁은 수로였고, 물이 깨끗해 보이지도 않았다. 그런데 이 수로의 양변에는 맥주 한두 병을 사이에 두고 젊은이들이 빼곡하게 앉아 있었다. 옷차림을 보아하니 관광객은 아닌듯 싶고 딱 동네 청년들이 마실 나온 분위기였다. 이런 고즈넉한 저녁 분위기의 열쇠는 공간의 스케일에 있는 듯했다. 수로의 턱에 걸터앉으면 발이 물에 닿을 듯 가깝다. 그러니까 가까스로 1차선이 됨직한 도로와 보도 그리고 운하의 수면 높이가 거의 비슷하고 양 편으로 빈틈없이 들어찬 오래된 건물들이 위요감을 형성하고 있었다. 그래서 화려하지는 않지만 쉽게 모일 수 있는 부담 없는 공간이 된 듯 싶었다. 생 마르탱 운하는 인공 운하다. 19세기 초 파리 시민들의 식수 공급을 위해 만들어졌는데, 간선도로를 만들면서 지금은 일부 구간이 복개되어 있다. 이 운하도 개발의 물결에 밀려 사라질 뻔 했다는데 유람선을 띄우고 몇몇 오래된 호텔 등을 보존하는 등 관광자원화 하면서 살아남았다고 한다. 센 강으로 이어지는 이 수로의 복개 구간에는 녹지가 조성되어 있고 광장이나 소공원이 징검다리처럼 연결되면서 산책하거나 자전거를 타고 달리는 파리 시민들의 일상에 얽혀 들어간다. 레퓌블리크 광장 리노베이션 설계안이 광범위한 지역 주민들과 주변 상인들의 요구를 수용해 만들어졌다는데, 일견 평범해 보이는 광장의 모습은 이러한 시민들의 솔직하고 실제적인 요구가 만들어 낸 것이리라. 이런 눈으로 그날 찍은 광장 사진을 살펴보니, 나름 친근함도 느껴지고 뭘 해도 좋을 것 같은 자유로움도 느껴진다. 이제 10월이다. 10년 전 이맘때 청계천 ‘복원’ 사업이 마무리되며 ‘도심 속 자연’이라는 이미지로 새로운 청계천 시대가 열렸다. 덕분에 당시 서울시장은 대통령이되었고, 전국의 지자체에는 생태 하천 조성이 유행처럼 번졌다. 10년 전 청계천프로젝트를 취재하던 나는 이 인공 하천이 개장 10일 만에 전국에서 330만 명의 사람들이 다녀갔을 정도로 대중적 성공을 거두었다는 데 놀랐던 기억이 난다. 요즘도 각종 축제의 무대이자 서울에 가면 한 번쯤 방문하고 싶은 장소로 꼽히는 청계천의 인기는 여전히 전국구인 듯싶다. 그런데 그 많던 청계천 상인들은 모두 어디로 갔을까? 10주년을 맞은 청계천 ‘복원’ 사업. 과연 청계천은 누구의 삶을 반영하고 있을까?
[편집자의 서재] 파크 라이프
이건 순전히 분량 탓이다. 처음에는 기욤 뮈소의 『센트럴 파크』를 쓰려고 했다. 어떤 장르인지도 모른 채, 오로지 ‘센트럴 파크’라는 제목만 보고 장바구니에 담았던 책이다. 동시에 클릭한 책으로는 에릭 오르세나의 『오래 오래』가 있다. 『센트럴 파크』는 336쪽이고, 『오래 오래』는 611쪽 분량이다. 『오래 오래』에는 중국의 원명원, 파리 식물원, 프랑스의 베르사유, 세비야의 정원, 영국의 시싱허스트, 벨기에의 정원, 일본의 고산수식 정원 등이 배경으로 등장하고, 더구나 주인공이 원예가다. 저자는 파리에서 태어나 베르사유에서 자랐고, 경제학자이면서 대통령 문화 보좌관, 최고 행정 재판소 심의관, 국제 해양 센터 원장 등의 경력도 쌓았지만, 특히 국립고등 조경 학교 학장을 역임했다. 가장 마음에 들었던 저자 소개 문구는 “여러 공직을 역임하는 동안에도 매일 새벽 두 시간씩 글을 써가며 왕성한 사회 활동의 경험을 문학으로 승화시켰다”는 대목이다. 혹하지 않을 수 없는 이력이다. 하지만 책의 전체 분량이 만만치 않다. 결국 “사랑과 감동의 마에스트로 기욤 뮈소의 매혹적인 스릴러”란 카피가 앞표지를 장식하고 있는 『센트럴 파크』를 먼저 집어 들었다. 택배가 도착했던 그 당시에 말이다. 하지만, ‘편집자의 서재’에 뭔가를 쓰기 위해서는 둘 중의 한 권을 ‘새롭게’ 펼쳐야 한다. 문제는 시간이 촉박하다는 점이다. 그 때, 불현 듯 10년 전에 읽었던 책한 권이 떠올랐다. 요시다 슈이치가 지은 제127회(무려 127회다) 아쿠타가와 상 수상작인 『파크 라이프』다. 전체 지면은 190쪽이지만, ‘파크 라이프’는 채 100쪽이 되지 않는다. 나머지 90여 쪽은 ‘플라워스’라는 별개의 작품이 차지하고 있다. 더구나 이 책은 열림원에서 2003년 3월(오유리 옮김)에 초판을 출간한 후, 노블마인에서 2010년 3월(이영미 옮김)에 다시 펴냈고, 은행나무에서도 2015년 8월(이영미 옮김)에 새로운 표지 디자인으로 개정판을 발간했다(책값은 7,800원에서 10,000원으로, 다시 12,000원으로 계속 올랐다). 즉, 꾸준히 팔리는, 여전히 읽을 만한 책이라는 의미다. 게다가, 제목이 ‘파크 라이프’라니? 바로 이번 특집을 위한 책이 아닌가. 주저 없이 노란색 건물과 공원이 표지를 장식하고 있는 『파크 라이프』(요시다 슈이치 지음, 오유리 옮김, 열림원, 2003)의 책장을 넘기기 시작했다. 주인공 ‘나’는 거의 매일 히비야 공원의 어느 벤치로 출근한다. 그렇다고 백수는 아니다. 자신이 지정해 놓은 공원 벤치에서 늦은 점심을 먹고 근처 쇼핑몰 미팅에 참석하는 게 중요한 일과다. 지하철에서 실수로 말을 걸었던 여자와 히비야 공원에서 우연히 다시 조우하게 되면서, 공원에서의 만남이 하루 이틀 이어진다. 급기야는 공원을 벗어나 사진 전시회도 함께 보러 가게 되고, 그곳에서 돌아 나오며 소설이 끝난다. 대단한 반전도, 조마조마한 갈등도 없다. 한마디로 사건이 거의 전무하다. 하지만 다음 줄을 읽게 만드는 묘사의 힘이 탁월하다. 빨간 기구를 공원상공으로 띄우는 노인을 비롯해, 저마다의 ‘파크 라이프’를 즐기는 여러 인물들을 바라보는 것도 흥미롭다. 굳이 이유를 따질 필요도 없다. 그들이 왜 그런지를. “‘무언가가 항상 시작되고 있지만 아직 아무것도 시작되지 않는다’는 현대인의 존재의 불안감과, 뒤틀린 유머는 미미한 희망 같은 것을 획득하는 데 성공하고 있다”는 무라카미 류의 심사평에 고개가 끄덕여진다. 책장을 모두 덮고 나면. 그녀와 헤어져서 혼자 히비야 입구로 걸어갔다. 분수 광장 앞 벤치는 약간 지쳐보이는 회사원들로 만원이었다. 예전에 “도대체 왜 모두들 공원으로 몰리는 거죠”하고 긴토 씨에게 물은 적이 있다. 긴토 씨는 평소와는 달리 진지하게 한참을 생각하다가 “한숨 돌리려는 거 아니겠어”하고 시원스레 답했다. 딱 떨어진 대답이었기 때문에 별다른 대꾸 없이 그대로 지나치려 하자, “보라고, 공원이란 장소에선 말이야, 아무 일도 하지 않는다고 누가 뭐랄 사람은 없잖아. 오히려 누굴 붙잡고 권유를 하거나, 연설을 하거나, 뭔가를 하려고 하면 내쫓기지”하고 덧붙였다.1 흥미로웠던 대목 중의 하나다. ‘공원에서 무언가를 하면 쫓겨날 수도 있겠구나’란 생각을, 이 부분을 읽으며 처음 했다. 공원에서 어떤 새로운 걸 할 수 있을까, 공원이란 공간을 좀 더 색다르게 이용할 수 있는 방법은 무엇일까만 고민했지, 공원의 금기에 대해선 생각해 본 적이 없다. 물론 작가는 아무 것도 하지 않을 자유가 허락된 공간이란 점을 강조하고 싶었던 것이겠지만 말이다. “그쪽, 항상 저기 저 벤치에 앉지” 여자가 연못 건너편을 손가락으로 가리켰다. 가지를 쭉 뻗은 소나무 밑에는 확실히 내가 혼자 이곳에 올 때마다 앉는 벤치가 있다. “그쪽, 저 벤치에 먼저 와서 앉은 사람이 있으면 일부러 그 앞을 왔다갔다 하지? 요 며칠 전에도 먼저 와서 앉아 있던 커플 앞에서 일부러 휴대전화를 걸지 않았어? 큰소리로 3분 정도 계속 떠들어서 결국 그 커플이 못 버티고 자리에서 일어났을 때 신나하던 그 표정, 난 아직도 잊혀지지 않는걸.”2 가장 신나하며 읽었던 대목이다. 참, 별거 아닌 부분인데 말이다. 공공 공간에 놓인 공공의 시설물이 순간적으로 한 개인에 의해 사적인 영역화가 이루어진 느낌을 받았기 때문이다. 심리적으로 혹은 순간적으로 말이다. 그리고 그게 왠지 꽤 근사해 보였다. ‘이 공원엔 나만의 벤치가 있다!’ 실제로 긴토 씨의 대답처럼 “한숨 돌리려” 혹은 아무 것도 하지 않기 위해 공원에 간다면 좋은 위치의 벤치를 찜하는 것이 무엇보다 중요하다. 꼭 이 대목 때문은 아니지만, 이즈음부터 벤치 사진을 찍기 시작했다. 틈만 나면. 그렇게 찍은 사진의 일부가 이번호 특집 원고에 실렸다. 곰곰이 생각해본다. 나의 공원이 아니라, 나의 벤치가 있었던가? 나의 ‘파크라이프’는 어떠한가?
시민이 공원을 경영하는 시대, “공원을 부탁해”
철거 예정이었던 폐선부지를 공원으로 만든 ‘하이라인 친구들Friends of the Highline’, 시민의 힘으로 로테르담에 공중 고가 도로를 세운 ‘아이 메이크 로테르담I make Rotterdam’ 등 시민이 경영하는 공원과 공공 공간의 사례는 더 이상 먼 나라의 이야기가 아니다. 우리나라에서도 서울그린트러스트를 비롯해 공원을 활동 무대로 삼고 공원 경영의 길을 개척해 나가고 있는 모임과 단체가 속속 등장하고 있다. 이들의 이야기와 비전을 함께 나눌 수 있는 자리가 마련됐다. 지난 9월 10일 서울 은평구 서울혁신파크에서 공원경영자임포럼심포지엄 ‘Who makes parks? 나와 함께 할 사람들을 찾습니다’가 열렸다. ‘공원경영자임포럼’은 공원 경영이라는 새로운 임무를 스스로 맡은 사람들이 모여 공원과 도시를 이야기하며 현장에서의 경험을 연결 짓는 오프라인 포럼이다. 이강오 어린이대공원 민간 원장, 이호진 방울단 대표, 이민옥 서울그린트러스트 서울숲사랑모임 국장, 조경민 고가산책단 대표, 오성화 서울프린지 네트워크 대표 등 공원에 대한 새로운 상상을 펼치고 있는 다섯 사람들의 이야기가 심포지엄에서 소개됐다. “아이들이 핸드폰을 들여다 보는 시간은 하루에 평균 7시간이나 되지만 야외에서 여가를 보내는 시간은 하루 평균 7분에 불과하다.” 흙과 자연이 좋아 ‘흙형’이라는 닉네임으로 포럼에서 활동하고 있는 이강오 원장의 말에는 빈약한 어린이 놀이 문화에 대한 아쉬움이 묻어났다. ‘어.대.공.(어린이대공원)의 파트너를 찾습니다’란 제목으로 심포지엄의 첫 발표를 맡은 이강오 원장은 그 원인을 매력적인 야외 놀이 공간의 부족에서 찾았다. 그는 외주 업체에 일을 맡기는 오래된 일 방식 때문에 공원 경영이 효율적으로 운영되지 못하는 부분이 많다고 설명했다. 그는 “어린이대공원이 아이들이 야외에서 노는 즐거움을 만끽할 수 있는 공간이 되길 바란다”며 “이 꿈을 위해 어린이대공원에 다양하고 매력적인 야외 놀이 프로그램을 함께 기획하고 실행할 파트너를 찾고 있다. 공원에 대한 참신한 아이디어와 재미있는 상상을 공유해준다면 주어진 예산 내에서 지원할 생각이다”라고 말했다. 방울단은 선유도 전신마취 음악 행사, 서울숲 DIY 트리 페스티벌, 서울역고가 꽃길 거리 등 공원과 공공 공간을 무대로 다양한 문화 프로그램을 기획하고 진행하는 사회적 기업이다. 방울단의 이호진 대표는 “공간에 대한 시대적 필요에 반응하고 앞으로의 수요에 대비하는 일이 필요하다”며 방울단을 꾸려나가게 된 계기에 대해 소개했다. 그는 공간에 프로그램을 기획할 때 ‘이 공간은 용도는 뭐지’, ‘누가 만든 거지’, ‘누가 이용하지’ 등 공간과 사람이 연결되는 맥락을 먼저 찾는다고 했다. 그는 “앞으로는 하드웨어보다 소프트웨어가 중요한 시대”라며 공원은 이제 현재뿐만 아니라 미래에 생길 수요에 대해서도 생각하고 프로그램을 구성해야 한다고 강조했다. 아이들에게 숲을 체험하게 해주고 싶어서 공원을 찾았다가 서울그린트러스트에서 상근 활동가로 일하고 있는 이민옥 서울숲사랑모임 국장은 ‘서울숲에서 제(멋)대로 들이댈 사람 찾습니다’라는 주제로 세 번째 발표를 맡았다. 그는 공원이 처음 개장한 2005년에만 해도 공원 문화가 성숙하지 않아 “공원에서 ~하지 마라”를 강조하는 일명 ‘하지 마라 캠페인’이 주를 이뤘다면 이제는 자유로운 활동을 지원하는 ‘해라 캠페인’을 하고 있다고 밝혔다. 사람들이 공원에서 다양하고 자유로운 활동을 펼침으로써 그 영향이 지역 사회에 확대되기를기대한다는 것이다. 그는 “서울숲의 프로그램이 단순히 공원 내에서의 활동으로 그치는 것이 아니라 지역사회에 영향력을 끼칠 수 있기를 바란다”며 그렇기 때문에 서울숲에서 ‘제(멋)대로’ 들이댈 사람이 필요하다고 말했다. ‘조반장’이라는 별명으로 더 많이 알려진 조경민 대표는 “여러분과 서울역 고가의 분양 상의를 하러 나왔다”며 “낮 동안에는 레스토랑, 밤에는 클럽으로 변신하는 공간이 서울역 고가에 생긴다고 생각해보라”고 서울역고가에 대한 새로운 상상을 이야기했다. 그는 보행 친화적인 도시 계획이 활기찬 거리, 생명력 있는 도시를 만든다는 다큐멘터리 ‘얀 겔의 위대한 실험’의 메시지가 서울역 고가 프로젝트에도 필요하다고 강조했다. “마포석유비축기지를 생각하면 심장이 뛴다.” 마포구주민으로 서울 월드컵 경기장에 사무실을 두고 일하고 있는 오성화 대표는 시민이 만들어 갈 마포석유비축기지의 미래를 이야기했다. 그는 단순히 낭만적인 생각이나 공상으로는 시민이 경영하는 공원을 만들 수 없다고 말했다. 그는 “단순히 수혜 받는 시민으로 남아있는 것이 아니라 엄청나게 복잡하고 지난한 합의 과정을 거친다는 각오로 함께 할 사람이 필요하다”고 강조했다. 공원의 잠재된 사회·문화·경제·생태적 가치를 발굴하고 새로운 미래를 찾기 위해서는 복잡하고 지난한 합의 과정을 기꺼이 맡아줄 공원 경영의 자임자가 필요하다. 이날 포럼에서 다섯 명의 활동가가 발표를 마친 후에도 늦은 시각까지 청년들의 질문과 열띤 토론이 이어졌다. ‘Who makes parks? : 나와 함께 할 사람들을 찾습니다’란 주제로 시작한 심포지엄의 끝에 시민이 공원을 경영하는 시대를 이끌어갈 예비 활동가 들의 모습이 보였다.
힘의 각축장, 남산의 역사
우리에게 남산은 어떤 의미일까. 누군가에게는 데이트코스로 한번쯤 가봤음직한 남산타워와 케이블카의 기억으로, 누군가에게는 한 시절 안기부가 자리한 어두운 공간으로 기억되기도 할 것이다. 한편 2009년부터 서울시는 한양 도성 복원의 일환에서 남산 회현자락 정비를 추진하면서 문화재와 공원의 접점을 모색하고 있기도 하다. 서울역사박물관은 광복 70주년 특별 기획전으로 2015년 8월 7일부터 11월 1일까지 ‘남산의 힘’ 전을 1층 기획 전시실에서 개최하고 있다. 이번 전시에서는 일제강점기와 근현대 시기를 거치면서 권력 등의 힘에 의해 크게 훼손되었다가 다시 우리 곁으로 돌아온 남산의 변화에 대하여 250여 점의 관련 역사 자료들을 망라하여 생생하게 보여준다. 전시는 ‘목멱, 한양의 안산’, ‘식민통치의 현장’, ‘국민교육장 남산’, ‘돌아온 남산’ 이렇게 4부로 구성되었다. 겸재 정선, 김홍도의 그림으로 만나는 남산 1부 ‘목멱, 한양의 안산’에서는 남산이 한양의 내사산 중 하나로 한양의 수호 산이자 친근한 앞산으로 자리 잡는 과정이 전시된다. 남산은 국가 제사의 공인된 공간이자 민간신앙의 성지로서 조선 초기부터 국사당과 와룡묘, 남관왕묘 등이 자리 잡고 있었다. 또한 아름다운 풍광을 배경으로 관리들의 계회 등 풍류의 장소로도 각광 받았다. 사도세자가 쓴 ‘남관왕묘비명’을 비롯하여, 겸재 정선의 ‘목멱산도’(백납병풍), 김홍도의 ‘남소영도’, 김윤겸의 ‘천우각 금오계첩’ 등 쟁쟁한 조선 화가들의 필치로 남겨져 있는 남산의 모습을 만날 수 있다. 한일합병조약 체결의 현장이자 황국신민의 언덕 2부 ‘식민통치의 현장’에서는 일제의 강점으로 남산이 겪게 되는 훼손의 역사가 펼쳐진다. 1880년대부터 일제는, 임진왜란 때 일본군 주둔지 ‘왜성대(남산 북쪽 일대)’ 지역에 일본공사관, 통감부, 통감관저 등을 설치하였고, 1910년 8월 22일에는 데라우치 통감과 이완용이 한일합병조약을 체결하면서 남산은 국권상실의 현장이 되고 만다. 일제에 의해 가장 심각하게 훼손된 지역은 전망이 좋은 남산 회현자락이었다. 일제는 이곳에 여의도의 두배에 가까운 43만m2의 대지를 조성하여 조선신궁을 세우고 신사참배를 강요했다. 이 밖에도 남산에는 일본인 거류지였던 왜성대에 경성신사, 경성호국신사, 노기신사 등이 있었다. 조선의 정신을 훼손하려는 시도는 이에 그치지 않고, 충신을 기려 만든 장충단을 장충단공원으로 개조하고 그 안에 이토 히로부미를 기리는 사당 박문사를 짓기도 했다. 한편 남산을 일본식 대공원으로 개조하기 위해 우리 전통 소나무 대신 벚나무와 아까시나무를 계획적으로 이식시켰다. 식민통치의 현장 코너에서는 ‘한국합병조약 및 양국황제조칙의 공포에 관한 각서’(1910), ‘경성부남산공원설계안’(1917), ‘조선신궁전경도’, ‘노기신사 수조’ 등 일제의 남산 개조를 통한 황국신민화 정책의 실체를 보여 주는 자료들이 대거 전시되었다. 특히 ‘노기신사 수조’는 남산 내에서 완형을 유지하는 거의 유일한 식민 유산으로 노기신사 터에 자리 잡은 남산원 측의 배려로 이번 전시를 통해 공개되었다. 한국현대사의 압축 공간 3부 ‘국민교육장 남산’에서는 1945년 8.15 광복 이후 현대사를 압축적으로 보여주는 공간으로서 남산을 이야기한다. 해방 이후, 다시 남산은 냉전으로 분단된 나라의 상징 공간이 되어 좌익 집회가 주로 열리는 이념의 무대가 되기도 했고, 조선신궁 자리에는 건국 대통령의 초대형 동상이 세워지고, 국회의사당 부지 조성공사가 진행되기도 했다. 1960년대 이후 거대 도시가 된 서울 속의 남산은 콘크리트 바다 가운데 푸른 섬이 되어갔다. 또한 남산은 국민교육장이 되어 반공을 주창하는 자유센터가 장충동에 들어서고, ‘애국애족’의 동상들이 산 중턱에 무수하게 세워졌다. 또 산 아래에는 국가와 정권 수호의 방패 역할을 했던 중앙정보부와 수도방위사령부가 자리를 잡았다. 특히 41개동 건물의 무소불위 ‘중정’은 ‘남산’이라는 별칭으로 불리기도 했다. 한편 정부의 경제발전 드라이브 속에서 남산은 공원용지 해제를 통해 급속히 개발되었다. 거대한 외인아파트와 각급 호텔이 다수 들어섰고 도로와 터널이 남산을 관통했다. 야외음악당, 도서관, 국립극장 등 시민위락 시설과 함께 남산 케이블카와 전파송신탑(서울타워)도 이때 세워지게 된다. 지나친 개발 정책은 향후 남산에 대한 보호 의식을 점차 싹트게 하였다. 권위주의 공간에서 시민의 공간으로 4부는 1990년대 탈권위주의 시대에 들면서 남산이 ‘자연’, ‘사람’, ‘역사’의 공간으로, ‘우리들의 남산’이 되는 과정과 함께 남산의 아름다운 모습과 남산 관련 최근의 주요 이슈들을 소개했다. ‘남산 제모습찾기 사업’은 권위주의 청산과 자연환경문제가 제기되면서 시작되었다. 안기부와 수도방위사령부가 남산에서 떠나갔고, 경관을 훼손했던 외인아파트가 폭파·철거되었다. 최근에는 자연환경 복원과 시민 휴식 공간 조성을 위한 시설 철거 사업이 오히려 역사의 기억을 지운다는 문제제기가 있기도 하다. 안기부 터를 인권기념관 등 평화의 공원으로 조성하자는 목소리 같은 남산을 되살리려는 다양한 노력들이 오늘도 활발하다. 전시 마지막 부분은 우리의 일상에 깊숙이 자리 잡은 남산을 시민들의 눈을 통해 보는 코너로 마련되었다. ‘추억 속의 남산’이라는 제목으로 시민 공모를 통해 모은 사진 중 30점을 전시했다. 남산의 다양한 역사와 기억은, 남산이 ‘산’이라는 자연에만 그치지 않고 문화,그리고 사회 구성원과 소통하며 지금도 끊임없이 변화하고 있음을 확인하게 한다.
지역과 외지인, 이주와 정주의 수상한 혼탕
1930년대 디자인을 그대로 복원한 가로등과 곳곳의 오래된 집들을 지나며 걷다 보면 마치 시간을 거스르는 듯한 느낌을 가지게 되는 이곳, 일본식 가옥과 이성당 빵으로 유명한 군산 영화동에 버려진 목욕탕을 개조한 미술관이 들어섰다. 오랜 역사의 흔적을 간직한 원도심, 그곳에서 현재를 살아가는 주민들, 그리고 새로이 이사해 둥지를 튼 미술관이 쭈뼛하게 만나게 되었다. 영화동 문화재생 프로젝트 첫 번째 기획전 ‘수상한 목욕탕’은 지역에 문을 두드리고자 이당미술관(관장 정태균)이 마련한 전시다. 이에 레지던시 참여 작가 6인과 지역을 중심으로 전국적인 활동을 활발하게 펼치고 있는 초대 작가 5인의 만남이 이루어졌다. 영화동 문화재생 프로젝트, 그 첫 번째 걸음 군산은 여러 시대의 물결이 퇴적된 곳으로 다양한 층위의 맥락을 지닌다. 고려 및 조선 시대에는 세곡을 운반하는 항구이자 수군의 요지였으며 일제강점기에는 일제 수탈의 주요 현장이 되었다. 군산을 중심 무대로 하는 채만식의 장편소설 『탁류』를 통해 이 시기 사회상을 엿볼 수도 있다. 그런가 하면 한국전쟁 이후에는 군사적 요충지인 이곳에 미군이 주둔하여 미군을 위한 위락 시설인 ‘아메리카 타운’이 조성되는 등 지역사 자체가 전쟁과 점령으로 점철된 한국사를 여실히 보여준다. 여느 개항장이나 비슷한 모습을 가지기도 하겠지만 영화동을 포함한 군산 원도심 지역은 근대의 흔적을 아직까지도 간직하고 있다. 이 때문에 최근 전국적으로 유행하는 지역사 발굴과 관광 코스 조성을 포함하는 지역 개발, 또는 도시재생의 정책적 요구와 맞물려 ‘시간여행거리’로 지정되기도 하였다.이렇게 드러나는 지역사는 상대적 미시사라는 측면에서 우리에게 조금 더 친근하게 다가온다. 그러나 여전히 관광 코스와 더불어 팻말에 새겨진 역사는 한 곳에서 온전히 긴 생을 살아낸 몇몇 토박이 어르신들 외에 대다수 방문자들이 피부로 느낄 수 있는 이야기가 아니며 예로부터 지금까지 지역에 존재하는 이야기들의 층위를 다각도로 반영하지도 못하게 마련이다. 아마도 그 간극을 비출 수 있는 것이 다양한 시선과 표현을 존중하는 문화와 예술인지도 모른다. 이에 이당미술관은 영화동 일대에 문화적 활력을 불어 넣고자 영화동 문화재생 프로젝트를 연례 기획으로 하여 지역을 경험하는 다양한 시선과 걸음을 해마다 새로이 조명하고자 한다. 그 첫걸음으로 레지던시 작가와 지역 작가들이 함께 하는 전시를 마련하였다. 그런데 첫 만남은 언제나 쭈뼛하기 마련이다. 미술관 역시 이곳에 올해 막 둥지를 튼 시점이었고 짧게는 고작 한달, 길게는 세 달 동안 머문 레지던시 작가들도 지역민과의 친화성 여부를 떠나 외지인 신분으로 잠시 머무는 방문자의 입장일 수밖에는 없었다. 이렇듯 전시 ‘수상한 목욕탕’은 지역과 외지인, 이주와 정주의 틈새 사이에서 만들어진 수상한 만남인 것이다. 수상한 목욕탕 참여 작가 강제욱이 담은 군산의 기록에서는 지금처럼 개조되기 이전에 폐허와도 같은 영화장의 모습을 발견할 수 있다. 2008년 이후 사람들의 발길이 끊어져 비둘기들의 휴식처가 되기 전까지 동네 목욕탕 ‘영화장’은 40년 넘게 영화동 주민들의 몸과 마음을 씻겨주었다. 그 목욕탕 위의 2, 3층 객실에서는 각지로부터 온 손님들 역시 여독을 풀었음직하다. 토박이 어르신들, 각기 다른 이유로 기류하는 사람들, 지인을 찾아온 방문객 또는 새로움을 찾는 여행자 등 각기 다른 사람들의 이야기와 만남이 겹겹이 쌓인 곳이 곧 지역이자 장소, ‘곳’이라면, ‘영화장’은 이렇게 무수한 개개인의 역사와 이야기가 교차하고 만나는 곳이었다. 전시 기간 중 연계 상영되는 영상창작단 큐오브이의 ‘영화동 쇼트다큐멘터리’는 이렇게 지자체의 지역사 스토리텔링에 채 담기지 못한 지역 주민 개개인의 생생한 목소리와 이야기를 담고 있다. 이러한 주민의 구술사는 곳곳에 전시된 이곳 영화장의 원 설계도와 함께 작가나 이곳을 방문하는 관람객이 전시를 관람하며 보다 다층적인 서사를 구성할 수 있는 재료가 되어 전시장에 투영되었다. 이 짧은 다큐멘터리가 영화동의 생생한 삶과 역사를 풀어냈다면 참여 작가들의 작업은 추상적인 풍경에서부터 군산을 산보하며 얻은 풍경, 사물과 사회적 관계에 대한 이야기에서부터 자연을 담는 작업까지, 영화동을 방문한 가지각색의 시선과 이야기를 드러낸다. 한국화가 정태균은 모필을 사용해 소박한 필치로 영화동의 정겨운 모습을 그려냈고, 정경화는 모필 대신 죽 필을 직접 만들어 금박이 있는 종이 본연의 성질을 매개로 ‘별이 빛나는 밤’을 화폭에 담았다. 깊이를 가늠할 수 없는 깜깜한 밤의 빛나는 별들은 한없이 그림 앞에 멈추어 있게 한다. 실재와 가상 사이에서 우리의 시각과 인식에 의문을 제기해왔던 박종호 작가는 영화 동어느 식당 안에 걸려있던 액자 속의 군산 풍경을 캔버스 안으로 들이고, 회화작가 주랑은 일련의 이미지, 여행 루트와도 같은 그림을 통해 낡음과 새것 사이 영화동이 지니고 있는 다양한 층위를 드러낸다. 권혁상 작가의 그림에는 고향을 버리지 않고 모정이 뛰어난 참새의 모습에 자신의 삶을 투영한 그의 따뜻한 마음과 애정이 담겨 있다. 조각을 전공한 강제욱과 진나래는 미술관 안팎에서 찾을 수 있는 사물에 사회적 의미를 부여하는 작업을 하였다. 다큐멘터리 사진과 설치를 중심으로 사회 참여적인 작업을 선보이고 있는 강제욱 작가는 최근작 ‘사물들의 우주Thinguniverse’를 통해 사물을 소유자의 모습을 투영하는 거울로 드러낸다. 주변의 사물이 형성하는 관계와 대화가 그의 손을 통해 미술관의 전면 유리에 드로잉되었다. 진나래는 미술관에서 수거한 의자들을 배열하여 사회적 관계의 기표로서 의자를 다루었는데, 이는 그가 ‘사회 조각social sculpture’이라고 부르는 작업 형식의 하나다. 군산 지역을 중심으로 활발히 활동하는 작가들의 작품은 밀도가 높았다. 유기종 작가는 사진과 설치 작업을 통해 한 사람 한 사람, 우리 삶의 여정을 기록하고자하였고, 이주원 작가는 어딘가를 걷는 동작을 낮은 시점으로 화면에 담아 작가가 바라본 주관적인 사회 정체성을 드러낸다. 회화와 설치를 주요 매체로 하는 고나영은 영화동의 특정 순간을 피라미드 안에 담았으며 고보연 작가는 버려지는 폐지와 자연물을 미술 작품의 재료로 하여 폐지 등에 새로운 생명력을 부여하는 작업을 하였다. 그의 작업은 대지가 되고 그 대지 위에 새싹을 피우는 작품은 많은 삶의 무게를 지탱해야 하는 인간의 형상을 담았다. 길이 화하는 동네 작가들의 다채로운 작업들 외에 이번 전시의 하이라이트가 있다면 그것은 단연 오프닝에 마련된 영화동 맛집 뷔페 잔칫상, ‘영화장 셀렉션’이다. ‘길이 화하는 동네’라는 뜻을 가진 영화동에는 이렇게 퍼주고도 남는 것이 있는지 걱정하게 될 정도로 인심 후한 음식점들이 즐비하다. 이들의 대표 메뉴를 모은 지역 맛집 뷔페가 참여 작가와 지역 상인들의 따뜻한 성원과 노력으로 완성될 수 있었다. 레지던시 작가들과 미술관, 그리고 지역의 사람들이 첫인사를 나누는 데에 본 전시의 목적이 있다고 볼 때 자연스레 지역 주민들과 미술관을 서로 소개하고 이을 수 있는 뜻깊은 자리이기도 했다. 일종의 소셜, 또는 네트워크 다이닝이 되었던 셈이다. 첫걸음인지라 모든 것이 어려운 상황 속에서도 이와 같은 주민들의 인심과 작가들의 도움 덕에 전시가 이루어질 수 있었다. ‘지역’이 무엇인지에 대해 우리는 수많은 답을 할 수 있을 것이다. 그것은 행정 구역상 나누어지는 땅일 수도 있고 그 안에 거주하는 사람들일 수도, 또는 사람들이 인식하는 어느 불확실한 경계를 가지는 지점일 수도 있다. ‘수상한 목욕탕’은 지역을 곧 어느 지점과 그 지점 언저리에서 활동하는 사람들의 이야기로 보고 이제 막 선착장에 내려 지역에 둥지를 튼 이당미술관, 유목민과도 같은 레지던시 작가들과 군산을 중심으로 활동해온 작가들, 그리고 영화동 주민들의 아직은 서먹한 만남을 주선하여 그 수상한 혼탕 속에서 영화동 문화재생 프로젝트의 후속 이야기를 상상해보는 자리로 마련되었다. 강물과 바닷물이 만나는 개어귀에서처럼 서로 다른 특성을 가진 물이 만나는 곳에는 새로운 흐름이 일어난다. 군산 영화동에 가득한 다채로운 이야깃거리들이 앞으로 보다 탄탄한 준비와 함께 엮여진다면 이는 해를 거듭하며 더욱 값지게 드러날 수 있을 것이다. 이를 위해서는 지역 및 미술관과 더불어 예술과 문화의 주체인 작가들 역시 상생할 수 있는 곳이 되어야 할 것이다. 군산의 지역민, 그리고 군산을 방문하는 사람들의 서로 다른 특성이 만나 영화동에 어떤 새로운 흐름이 일어날 수 있을 지 귀추가 주목된다. 진나래는 미술과 사회학의 겉을 핥으며 문화 예술계 언저리에서 다방면에 관심을 갖고 게으르게 활동하고 있다. 20대 이후 하고 싶은 일을 하면서 살겠다고 서투른 종합 곡예를 해오고 있으나 결론적으로 반드시 뜻대로만 구르지는 못했다. 작업에 있어서는 주로 진실과 허구, 기억과 상상, 주체와 객체, 존재와 (비)존재, 이해와 오해 사이를 흐리는 일에 관심을 두어왔으며 2012년부터는 아트콜렉티브 ETC(Enterprise of Temporary Consensus)를 공동 설립하여 활동하고 있다. 이당미술관의 레지던시 작가로 ‘수상한 목욕탕’의 기획 협력자로도 참여했다. www.jinnarae.com, [email protected]
[시네마 스케이프] 디올 앤 아이
요즘 설계공모 출품을 준비 중이다. 기존에 진행하던 프로젝트들까지 갑자기 바빠지는 바람에 여유롭게 설계공모에 집중하려던 계획은 보기 좋게 깨졌다. 한쪽에서는 공개공지 녹지 면적이 부족해서 머리를 짜는 중이고 이 와중에 건축 심의 담당자는 말도 안 되는 위치에 벤치를 놓으라고 한다. 담당 스태프는 건축 실무팀과 온종일 통화만 하다 시간을 다 보내고 있다. 다른 한쪽에서는 설계공모를 위해 몇 가지 가능성을 놓고 토론 중이다. 여러 층의 역사가 쌓인 대상지에 어떻게 현대성을 담아낼지, 광역적으로는 어떤 비전을 제시할지를 놓고 논의가 한창이다. 마감이 얼마 남지 않았는데 서로 다른 의견을 설득하거나 절충하면서 계획안은 하루에도 몇 번씩 뒤바뀌고 있다. 실질적인 프로젝트와 설계공모, 녹지 면적 2m2와 서울시 광역 계획, 벤치와 대한제국, 역사와 현대성 등 간극이 큰 키워드 사이에서 방황하는 동안 여름에서 가을로 접어들고 있다. 경관을 만드는 작업은 매번 새로운 사람과 만나서 새로운 조건의 일을 수행해야 하는 일련의 프로세스 자체를 디자인하는 일이다. 홀로 앉아 디자인하는 시간보다 협의하고 수정하고 함께 결론에 도달하는 과정에 더 많은 시간과 에너지가 필요하다. 외적소통뿐 아니라 내부 스태프와의 협업도 중요하다. 영화 ‘디올 앤 아이’는 오트 쿠튀르haute coutre 컬렉션을 준비하는 과정을 담은 다큐멘터리다. 영화를 통해 옷이든 경관이든 새로운 것을 창조하는 작업이란 서로 다른 것과의 충돌에서 융합에 이르는 힘겨운 여정이라는 공통점을 발견할 수 있다. 서영애는 ‘영화 속 경관’을 주제로 석사 학위를 받았고, 한겨레 영화 평론 전문 과정을 수료했다. 조경을 제목으로일하고 공부하고 가르치고 있으며 영화를 삶의 또 다른 챕터로 여긴다. 영화는 경관과 사람이 구체적으로 어떻게관계 맺는지 보여주며 인문학적 상상력을 풍부하게 만들어주는 텍스트라 믿고 있다.
[100 장면으로 재구성한 조경사] 고대 로마의 유산
#60 길 혹은 쿠오 바디스 고대 로마의 이야기를 더 진행하기 전에 우선 시간적·공간적으로 교통정리를 잠깐 해 볼 필요가 있다. 그렇지 않으면 르네상스 시대의 문화유산과 계속 혼동되기 때문이다. ‘고대 로마’라고 하면 지금의 로마 시에만 국한된 것이 아니라 대개는 로마 제국 전체를 일컫는다. ‘대개는’ 이라고 불확실하게 표현하는 이유는 고대 로마가 왕정에서 시작하여 공화정이 되었다가 다시 황제가 통치하는 제국이 되었기 때문이다. 그러므로 ‘로마 제국’이라는 표현 역시 완전하지 않아 ‘고대 로마’라는 총칭을 쓴다. 시기적으로는 기원전 750년경에서 기원후 5세기경까지이나 정치적·문화적으로 크게 위상을 떨쳤던 시기는 대개 기원전 4세기에서 기원후 3세기 정도로 본다. 어림잡아 고조선 시대 후기에서 고구려 미천왕 시기에 해당한다. 제정의 기틀을 닦아놓고 살해당한 카이사르, 로마 제국의 초대 황제로 신의 대접을 받은 아우구스투스, 폭군으로 악명높은 네로 황제, 티볼리에 빌라를 지은 하드리아누스 황제 등이 자주 입에 오르내리는 통치자들의 이름이며 키케로, 타키투스, 비트루비우스, 베르길리우스 등의 소위 인문가humanitas들 역시 이 시대에 속하는 인물이다. 5세기경 게르만족이 동과 북에서 로마 제국으로 침입해 들어오며 제국이 서서히 무너져 내렸다. 우선 동로마 제국, 서로마 제국으로 나뉘었다가 5세기에 서로마 제국은 완전히 멸망하고 만다. 이때부터 고트족, 랑고바르드족, 프랑크족, 반달족 등 게르만의 여러 부족이 유럽에서 영토를 나누어 가지며 국가 체계를 확립하는 춘추전국시대에 돌입하게 된다. 이 시기가 이삼백 년가량 진행되었다. 그러다가 8세기, 프랑크족의 카롤루스 대제가 중원을 평정하면서 프랑스, 독일을 중심으로 한 유럽의 역사가 본격적으로 시작된다. 카롤루스 대제가 세운 프랑크 왕국이 지금 프랑스와 독일의 전신이다. 이로써 유럽의 중심 세력이 알프스 북쪽으로 완전히 이동하게 되었다. 이 시기를 중세라고 한다. 기독교가 정치, 사회, 문화뿐 아니라 개인의 삶과 죽음을 모두 지배하는 시대였다. 이런 상태가 또다시 칠팔백 년 유지되었다. 기독교 문화는 그 이전의 고대 문화와 확연히 차별되기 때문에 고대와 중세 사이에 문화적으로 단층이 형성되었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로마의 별은 참으로 오랫동안 빛을 잃었다. 그러다가 15세기에서 16세기에 다시 화려하게 무대에 등장한다. 이때를 르네상스 시대라고 한다. 고대 로마 시대에는 이탈리아 반도 전체가 로마 제국의 한 행정 구역Dioecesis Italiae이었고 제국이 와해되자 여러 도시 국가들이 우후죽순으로 발생하기 시작했다. 15세기 말경 이탈리아는 마치 퍼즐처럼 여러 과두제의 소국들과 왕국의 집합체로 구성되었다. 베네치아, 피렌체, 밀라노, 사보이아, 로마 교황국, 나폴리 등등 각자 통치자가 따로 존재하는 독립된 국가였다. 이 시기의 중심지는 토스카나 지방의 피렌체였으며 이때의 주역들은 메디치, 비스콘티, 스포르차 등 영향력 있는 가문이었고 레오나르도 다 빈치, 미켈란젤로, 라파엘, 보티첼리, 도나텔로, 벨리니 그리고 지금까지 여러 번 언급되었던 팔라디오 등 기라성 같은 예술가들을 낳았다. 이렇게 로마, 혹은 이탈리아는 역사적으로 크게 두 번 유럽 문화를 지배했으며 고대와 르네상스는 천 년의 시간을 뛰어넘어 유전자를 나누고 있다. 물론 로마 시가 고대 로마의 절대적인 구심점을 이루었으나 로마 시를 둘러싸고 있는 라치오 주와 그 남쪽의 캄파니아 주까지 문화 중심권이 넓게 확장되었다. 특히 캄파니아 주의 나폴리 만을 중심으로 폼페이, 헤르쿨라네움, 파에스툼, 스타비아에 등 여러 도시 문화가 꽃피웠는데 하필 베수비오 산을 등지고 있었던 까닭에 서기 79년 이 도시들은 지도에서 사라져 버리게 된다. 아니 사라졌다가 당시의 모습을 고스란히 간직한 채 다시 나타났다. 문자 그대로 시간이 그 자리에서 멈추어버렸으므로 고대 문화가 어떠했는지를 알기 위해서는 로마 시보다 이들 박제된 화산 도시들 을 엿보는 편이 낫다. 로마 시에는 고대로부터 지금까지 수천 년에 걸쳐 정치, 종교, 문화적 유산들이 켜켜이 쌓여있으므로 이 중 고대의 것을 가려내는 것은 결코 쉬운 일이 아니다. 그럼에도 일단 모든 길이 그리로 통했다는 로마 시를 먼저 잠깐 살펴보기로 한다. 서기 64년, 로마 시에 대화재가 발생했다. 14개의 구가 파괴되었으며 인명 피해도 적지 않았다. 민심이 흉흉했다. 그렇지 않아도 밉상이었던 네로 황제가 불이 난 자리를 정리하고 자신의 황금궁전Domus Aurea을 거대하게 확장하자 민심은 더욱 악화되었으며 네로 황제 방화설이 나돌기 시작했다. 이에 민심을 수습하기 위해 기독교인에게 방화의 책임을 뒤집어씌워 대대적인 학살을 일으켰다. 이 사건을 소재로 한 소설과 영화가 ‘쿠오 바디스’다. 영화에 이런 장면이 나온다. 당시 베드로가 로마에 살고 있었는데 기독교도가 끌려가기 시작하자 무서워 도망을 친다. 성문을 빠져나가 남쪽으로 부지런히 발길을 재촉하여 약 800m 정도 갔을까? 문득 예수님이 나타난다. 놀란 베드로가 “주여 어디로 가십니까(쿠오 바디스 도미네)”라고 묻자 예수님은 “로마로 간다. 가서 다시 한 번 십자가에 못 박히려고 한다”고대답했다. 이에 베드로가 크게 뉘우치고 다시 로마로 돌아가 결국 순교했다는 이야기다. 이때 베드로가 예수님을 만났던 길이 아피아 가도Via Appia Antika다. 지금도 일부 남아있는 고대 로마의 길이다. 고대 로마가 그 넓은 제국을 효과적으로 운영할 수 있었던 이유 중 하나는 도로망이었다. 고정희는 1957년 서울에서 태어나 어머니가 손수 가꾼 아름다운 정원에서 유년 시절을 보냈다. 어느 순간 그 정원은 사라지고 말았지만, 유년의경험이 인연이 되었는지 조경을 평생의 업으로 알고 살아가고 있다. 『식물, 세상의 은밀한 지배자』를 비롯 총 네 권의 정원·식물 책을 펴냈고,칼 푀르스터와 그의 외동딸 마리안네가 쓴 책을 동시에 번역 출간하기도 했다. 베를린 공과대학교 조경학과에서 ‘20세기 유럽 조경사’를 주제로 박사 학위를 받았다. 현재는 베를린에 거주하며 ‘써드스페이스 베를린 환경아카데미’ 대표로 활동하고 있다.
[그들이 꿈꾼 도시, 우리가 사는 도시] 성장하는 도시, 쇠퇴하는 도시
성장기와 쇠퇴기 도시의 얼굴 표정 ‘라이 투 미Lie to me’. 미국 폭스FOX 사에서 방영한 이 드라마에는 ‘기만 전문가deception expert’라는 낯선 직업을 가진 칼 라이트만이 주인공으로 등장한다. 라이트만은 다른 사람의 순간적인 얼굴 표정과 몸짓을 관찰해 그가 진실을 이야기하는지 아니면 무언가를 감추려하는지 가려내는 데 전문가다. 표정과 몸짓을 통해 생각을 읽을 수 있는 이유는 사람의 얼굴 근육이 다양한 자극과 감정에 특정한 패턴을 보이며 반응하기 때문이다. 그리고 적어도 드마라 속 라이트만에 따르면 이러한 반응은 문화와 인종을 초월하여 보편적으로 나타난다. 기억하는가? 르윈스키와의 성추문이 공개되었을 때 축 처진 입꼬리와 바닥을 쓸어내리는 눈빛을 보였던 빌 클린턴 전 미국 대통령의 얼굴을. 그런데 사람의 얼굴뿐만 아니라 도시에서도 다양한 자극과 개발 환경 변화에 따른 미시적인 표정 변화가 나타난다. 특히 성장-정체-쇠퇴의 주기를 반복하는 여러 도시에서는 각 단계별로 특징적인 변화를 읽을 수 있다. 거시적으로 볼 때 도심지는 팽창expansion, 축소shrinking, 혹은 고밀화intensification 세 가지 중 하나, 혹은 그 이상의 표정 변화를 나타낸다. 그리고 이러한 변화를 면밀히 관찰하면 성장기, 혹은 쇠퇴기의 특이점을 발견할 수 있다(그림1). 이를테면 미국 위스콘신-매디슨 대학교의 스나이더Annemarie Schneider 교수는 위성 영상 기법을 이용해 전 세계 25개의 도시에서 1990~2000년 사이에 나타난 팽창의 모습을 분석했다.1 이에 따르면 도시 확장의 패턴이나 밀도 변화에 따라 성장하는 도시는 공통점과 차이점을 갖고 있으며, 이를 더 세분화하여 ‘거대 확산의 도시expansive-growth city’, ‘광란의 개발 도시frantic-growth city’, ‘빠른 성장형 도시high-growth city’, ‘느린 성장형 도시low-growth city’로 분류한 바 있다(그림2). 개인적으로 이 글을 읽는 독자 중 누군가가 앞으로 한국 도시의 표정 변화를 읽어주었으면 하는 바람이다. 해방 이후 큰 도시와 작은 도시, 개항 도시와 내륙 도시, 중화학 산업 도시와 전통 산업의 도시는 각각 어떤 종류의 표정을 보였는지. 중국의 도심지 팽창, 정말 빠른가 도시의 성장과 관련하여 아시아 지역, 특히 중국에서 지난 30여 년에 걸쳐 일어나고 있는 변화는 전 세계 이목을 집중시켰다. 이 기간에 중국은 인류가 경험해보지 못했던 규모의 초대형 도시 개발을 단행해 왔다. 2015년 현재 중국에는 657개의 도시가 있으며 이는 1950년대 초에 비해 4배 이상 증가한 숫자다. 한 연구에 따르면 2000~2015년 사이에 중국 전역에 새로 만들어진 도심지 면적은 약 76만km2에 이른다.2 이는 남북한 영토를 모두 더한 크기의 세배에 육박하는 면적이다. 미국 하버드 대학교의 피터 로우Peter Rowe 교수에 따르면 이러한 크기의 도심지를 만들기 위해 중국은 전 세계 건설 물량의 약 43%를 소모하고 있다. 이는 미국의 약 4배, 독일의 약 10배에 해당한다.3 하늘에서 보면 중국 도시 성장의 상당 부분이 동부 연안에 위치한 세 개의 거대 도시 지역―베이징·텐진 지역, 양쯔 강 델타지역, 주강 델타 지역―에 집중되어 있다. 이들 지역에 있는 도시들은 지난 몇십 년간 스나이더 교수가 묘사한 것처럼 소위 “광란의 개발” 과정을 겪었다. 이를테면 1990년대 말부터 2000년대에 상하이를 방문했던 사람은 도시 전체가 공사판을 방불케 했음을 잊기 어렵다. 1993년 첫 번째 노선에 대한 공사가 시작된 후 상하이는 단 17년 만에 16개 노선과 282개의 지하철역을 포함해 전 세계에서 가장 긴 지하철 네트워크를 자랑하게 되었다.4 150여 년의 역사를 자랑하는 런던 지하철의 입장에서 보면 이는 굴욕적이고 헛기침을 일으킬만한 사건이 아닐 수 없다(그림3, 4). 김세훈은 1978년생으로 서울대학교 건축학과를 졸업한 후 하버드GSD에서 도시계획학 석사와 박사 학위(DDes)를 받았다. 현재 서울대학교 환경대학원에서 도시설계 이론과 스튜디오 수업을 가르치고 있다. 저서로 『신흥도시 개발 모델』, 『도시형태변화분석방법론노트』, 『도시와 물길(A City and Its Stream)』 등이 있으며, 한국, 중국, 동남아시아의 도시 연구와 설계를 함께 진행하고 있다.
[그들이 설계하는 법] ‘어.설.자.’는 의심한다
조경작업소 울, 조경사업소 울, 조경작업 소울, 조경작업소 을 가끔 우리 회사 이름 ‘조경작업소 울’(이하 울)을 다르게표기하는 경우를 발견한다. ‘조경사무소 울, 조경공작소 울, 조경설계 울, 조경회사 울’ 등등 아주 다양하다. 가장 기분 좋은 오기는 ‘조경작업 소울’이었고, 가장 신선한(?) 오기는 ‘조경작업소 을’이었다. 표기 오류의 가장 큰 원인은 ‘작업소’라는 단어일 것 같다. 회사 이름에 ‘작업소’라는 단어를 넣은 이유는 설계 프로젝트뿐만 아니라 연구 프로젝트나 컨설팅 프로젝트를 염두에 두었기 때문이다. 단일 프로젝트에 있어서도 설계에만 강조점이 있지 않아서였다. 이전까지 시민단체와 함께 발전시켜 온 주민들과의 의사소통 과정과 방식을 설계 과정에 포함시키고 싶었고 조성 이후의 운영까지를 전체 프로젝트의 범위에 넣고 싶었다. 누군가는 그 전체 과정이 설계라고 할 수도 있겠지만 말이다. 한나 아렌트Hannah Arendt의 『인간의 조건』을 읽고는 회사 이름에 대한 설명을 몇 줄 더 달 수 있게 되었다. 한나 아렌트는 인간이 살면서 하는 활동을 ‘노동’, ‘작업’, ‘행위’로 구분하였다. ‘노동’은 생존과 욕망 충족을 위한 육체의 동작이고, ‘작업’은 자신의 재능을 발휘하여 일의 재미와 일정한 명예를 바라며 수행하는 제작활동이며, ‘행위’는 개인의 욕망과 필요를 넘어 공동체 속에서 어떤 대의를 위해 하는 행동이다. 그런데 근대 이후 모든 활동은 생물학적 필요에 종속된 노동이 되었다. 시를 쓰거나 음악을 만들거나 예술 작품을 만드는 행위도 작업이 아니라 노동이 되었다. 행위도 자유와 개성이 거세되면서 노동이 되었다. 이러한 이유를 들어 “우리 회사 이름의 ‘작업’이라는 단어는 우리의 활동이 노동 이상의 것이 되길 바라는 소망을 표현한 것”이라고 한다면 너무 오글거리려나 가끔은 농담으로 회사 이름을 ‘작업소’라고 해서인지 온갖 작업을 다 한다고 칭얼거릴 때도 있다. 워크숍 준비를 위해 가내 수공업 같은 작업도 하고, 우리가 진행하는 프로그램에 많은 사람들이 참여해주었으면 하는 바람으로 벽에 포스터를 붙이러 다니기도 한다. 요즘 지방 도시의 한 마을에 대한 계획을 수립하면서는 ‘찾아가는 파라솔’이라는 이름으로 동네 공원이나 길에파라솔을 펴놓고 마을에 대한 주민들의 의견을 묻고 있다. 가끔은 공사 현장에서 호미를 들고 초화를 심기도 한다. 이렇게 장황하게 회사 이름을 설명한 이유는, 울에서의 설계에 대한 이해를 구하기 위해서다. 울에서의 설계는 도면에서 끝나지 않는 경우가 많다. 클라이언트와 설계의 범위와 방향부터 논의를 시작하고 주민들과 지속적으로 소통하면서 설계를 한다. 설계가 끝난 이후에도 공사를 관리 감독하거나 주민들의 이용 실태 관찰과 프로그램 운영까지 하는 경우가 있다. 이러한 맥락에서 본 연재를 읽어주기 바란다. ‘어.설.자.’의 의심 이번호에 소개하는 작업은 이제 막 끝낸, 어린이공원 프로젝트다. 지나고 보니 이 프로젝트 진행의 콘셉트는 ‘의심하기’였다. 끊임없이 의심하면서 프로젝트를 진행했다. 클라이언트는 세이브더칠드런이라는 국제구호개발 NGO로, 이들에게 물리적 환경 개선은 생소한 작업이었다. 그래서 이들은 울에게 많은 것을 물었다. 당연히 여기던 것들도 질문을 받으니 생소하게 느껴졌고, 관성적으로 해오던 일에 대해서도 의문을 갖게 되었다. 프로젝트를 진행하면서 만난 놀이운동가들의 놀이와 놀이터에 대한 견해도 우리를 더욱더 의심에 빠져들도록 했다. 보다 근본적인 의심의 이유는 내가 ‘어쩌다 설계를 하게 된 자’, 즉 ‘어.설.자.’여서다. 어.설.자.가 되다보니, 설계 프로젝트를 할 때는 유난히 의심을 많이 한다. 한번도 좋은 설계가가 되겠다고 결심을 해본 적이 없다. 좋은 설계는커녕 설계는 내 적성에 맞지 않다고 생각해 왔다. 노란 트레이싱 페이퍼를 펴놓고 설계안을 잡고 있거나, 울의 구성원들과 구조물에 대해 논하고 있는 내가 문득 문득 낯설다. 조경이 품은 키워드들과 설계와 장소에 대해 이야기하는 것을 좋아해 조경 설계 언저리를 떠나지 않다보니 이리되었다. 첫 번째 의심, ‘아이들 입장에서의 설계?’ 클라이언트인 세이브더칠드런이 요구한 사항은 아이들의 입장에서 설계를 해달라는 것이었다. ‘이제까지 설계했던 어린이공원에는 아이들의 입장이 어떻게 반영되었던가?’ 의심이 시작되었고 의심은 질문을 낳았다. ‘아이들의 입장에서 설계를 한다는 것은 무엇일까?’ 가장 쉬운 방식은 아이들에게 직접 묻는 것이다. ‘네 입장은 뭐니?’ 물론 아이들을 상대로 이렇게 질문할 수는 없으니 질문의 방식을 응용해야 한다. 울에서 해오던 질문의 방식은 설계안이나 시설물을 제안하고 아이들에게 선호를 묻거나, 원하는 놀이터에 대한 그림을 그리게 하는 것이었다. 그런데 그리 별 재미를 보지 못했다. 아이들은 보통 그네나 회전무대 같이 자극적 놀이시설물을 선택했고, 놀이동산에서나 볼 수 있는 시설물로 그림을 채웠다. 또 세이브더칠드런은 아이들의 놀이를 관찰해서 그 결과를 설계에 담아 달라고 했다. 이 또한 어떻게 해야 할지 구체적으로 감이 잡히지 않았다. 아이들이 노는 것을 몇 번 관찰하고는 ‘아이들은 이렇게 노니 우리는 이렇게 디자인했다’라고 말할 수 있는 유의미한 내용을, 일반화 할 수 있는 내용을 도출하기가 쉽지 않기 때문이었다. 울은 어린이 참여와 관련된 문헌을 찾아보고 토론을 하면서 아이들을 대상으로 하는 질문, 그림 그리기, 놀이 관찰에 대해 나름의 답을 도출했다. 먼저 아이들을 대상으로 하는 질문에 대한 것. 많은 문헌이 어린이들은 자신이 노는 것과 말하는 것이 다르므로 아이들의 말을 그대로 믿어서는 안 된다고 말하고 있었다. 문헌에서 드는 예는 우리의 경험과 비슷했는데, 어떤 장소에 데리고 가서 실컷 놀게 한 후 무엇이 제일 재미있었냐고 물어보면, 흙을 가지고 신나게 놀았음에도 불구 하고 시각적으로 눈에 들어왔던 시설물을 말한다는 것이다. 두 번째, 아이들의 그림에 대한 것. 아이들의 그림에 대한 우리의 의심은 정당하다고 결론을 내렸다. 대신 아이들의 그림을 아이들과 대화를 시작하는 도구로, 아이들이 무엇을 아는지, 무엇을 두려워하는지를 발견 하는 도구로 삼기로 했다. 세 번째, 아이들 놀이 관찰에 대한 것. 자료를 찾으니 의외로 놀이 관찰을 강조하는 이들이 많았다. 한국에 도 왔던 독일의 놀이터 디자이너 귄터 벨치히(Günter Beltzig)도, 어린이와 어린이 놀이에 대해 연구하는 영국의 팀 길(Tim Gill)도 놀이터를 설계하는 사람은 놀이 관찰을 해야 한다고 주장하고 있었다. 이들에 따르면 관찰에서 얻은 통찰은 주관적이고 어떤 특정한 상황에서만 가능한 것일 수 있어 이 또한 오류가 있을 수 있다. 그럼에도 관찰이 중요한 이유는 어떤 특정한 ‘사실’의 발견에 있기보다는, 아이들의 생활에 젖어드는 것이 필요하기 때문이다. 울은 스스로 내린 답을 실천으로 옮겼다. 아이들과 그림을 그릴 때는 그림에 그치지 않고 왜 그렸는지 물어보았다. 또 50여 명의 어린이들을 서울숲의 여러 놀이터에서 놀게 하고는 어떻게 노는지도 관찰했다. 여러 활동 중 가장 인상적이었던 건 대상지 옆 어린이집 아이들과 보낸 시간이었다. “마음대로 놀아요!”라는 말과 함께 아이들은 작은 원을 그리며 뛰기 시작했다. 둥그런 원을 그리며 빙글 빙글. 무작정 10분을 뛰고 나서 주변으로 관심을 돌리기 시작했다. 저 구석에 있는 운동기구에, 나무에, 바닥에. 그러다 또 뛰고. 그렇게 20여 분을 뛰고 나서 주변 사물을 이용한 놀이를 시작하거나, “같이 놀자!”하면서 친구를 불렀다. 이 프로그램 이후 내 눈에는 온통 아이들의 뛰는 모습만 보였다. 우리 동네 어린이집에 있는 놀이터에서도 아이들은 뛰었고, 지하철과 음식점에서 만난 아이들도 뛰었다. 아이들은 뛰는 존재였다. ‘저들의 뛰고자 하는 욕망을 받아주자’가 어린이놀이터 설계의 원칙이 되었다. 아이들의 놀이를 관찰하면서 다음의 내용을 발견했고 가능한 한 공간에 담으려고 했다. - 아이들은 다른 아이들의 노는 모습이 보이지 않는 곳에서는 잘 놀지 않는다. 가능한 한 시각적으로 소외된 공간이 없도록 해야 한다. - 지장물이 있는 주변에서 논다. 모래 놀이를 하더라도 모래밭 중심보다는 경계 혹은 기둥 옆에서 논다. - 아이들은 우리의 도시 공간을 ‘놀이’로 재구성한다. 특히 성격이 모호한 공간, 모퉁이 공간, 모서리 공간을 선호한다. 넓은 길을 놔두고 가로의 경계석 위를 위태롭게 걷고, 건물 아래의 자투리 공간은 그들의 훌륭한 아지트가 된다. - 아이들은 스스로 미션과 규칙을 만들며 논다. 대상지에서 만난 한 꼬마는 공원 내 느티나무의 수피를 모두 떼어 내는 걸 그 날의 미션으로 정하고는 돌 조각을 집어 들고 열심히 나무의 수피를 긁어냈다. 또 서울숲에서 만난 꼬마들은 쉬지 않고 바닥의 모래를 퍼서 조합놀이대 위로 올렸다. 마치 그래야만 하는 것처럼. 두 번째 의심, 그네는 있어야 하는가? 이 작업을 진행하면서 ‘고무 포장을 깔 것인가? 그네를 둘 것인가? 조합놀이대를 놓을 것인가?’처럼 놀이터에서 흔히 보는 요소에 대해서도 의심하게 되었다. 놀이운동가들은 놀이 공간 포장재로 다양한 놀이를 유발하는 흙바닥과 모래를 추천하고, 고무 포장은 환경 상의 문제도 있다. 그러나 현장에서 아이들을 만나고 관찰한 결과 모래는 뛰놀기에는 적당하지 않았다. 이에 포장으로서의 모래와 모래 놀이 공간을 구분하자는 나름의 결론을 내렸다. 다음 그네. 가장 요구도가 높은 시설이지만, 많은 공간을 차지하고 주변의 모든 어린이공원에는 그네가 있으니까 과감히 뺐다. 그네를 여러 개 놓아달라는 어린 친구들의 얼굴이 떠올랐지만. 조합놀이대에 대한 답은 쉽지 않았다. 서울시의 창의놀이터를 자문하면서 만난 놀이운동가들의 조합놀이대에 대한 반감이 자기 검열 기제로 작동했기 때문이다. 그러나 아이들의 오르고 싶은 욕망, 하강하고 싶은 욕망을 좁은 공간에서 받아주기 위해서는 조합놀이대가 필요했다. 대신 아이들이 요구한 시시하지 않은 높은 미끄럼, 어른들이 놀이터 만들기 워크숍에서 제시한 숨을 수 있는 공간, 아이들의 뛰기를 방해하지 않기 등등을 고려해서 조합놀이대를 구상했다. 국내외에서 개발된 조합놀이대를 분석한 후, 우리 대상지에 맞는 조합놀이대를 구성해보는 작업을 거듭했다. 안전 규칙이나 기업마다 소유하고 있는 모듈의 문제로 최종 디자인은 시설물 회사에서 했지만 그 과정은 많은 도움이 되었다. 세 번째 의심, 삼각뿔은 정말 불편한가? 한 계절 몰두한 작업. 한다고 했지만 모든 사람이 100% 만족하지 못한다. 어린이들은 나와 허브 향을 맡고 식물에 물을 주면서 신나게 놀아놓고는, “오늘은 안녕!”하며 돌아서는 내 등에 “그런데 이 놀이터에는 왜 그네가 없어요?”라고 불만을 표한다. 그리고 하루의 대부분을 공원 내 퍼걸러에서 보내시는 할머니들은 모든 바닥에 고무 포장을 깔지 않았다고, 허리 돌리기를 놓지 않았다고 얼굴을 볼 때마다 한 말씀하신다. 그리고 어린이공원 옆 어린이집 원장님은 3살 미만 아이들을 위한 흔들말이 없는 게 불만이시다. 그리고 우리의 삼각뿔. 바닥에 변화를 주기 위해 놀이 공간 가장자리에 놓았던 삼각뿔. 이 삼각뿔을 이렇게도 사용할 수 있을까 싶을 정도로 아이들의 좋은 놀잇감이지만, 높이가 그리 높지 않고 포장색이 주변 바닥 포장과 유사하다 보니 걸려 넘어지는 분들이 개장 초기에 많았다. 이후 삼각뿔 주변으로 색을 칠하고 뾰족한 가장자리를 둥글렸지만, 그래도 여전히 불만이 있으시다. 울 구성원들은 주민들의 불만을 표하는 방식에 마음이 상하기도 했지만, 오기도 생겼다. “아이들은 좋아하잖아.” 진실을 알기 위해 현장에서 한 나절 동안 잠복 근무를 했다. 주민들이 어린이공원에 대해 뭐라고 말씀하시는지, 삼각뿔에 대한 반응은 어떤지 듣고 관찰했다. 결론은 불편하다는 것이었다. 그러나 여러 사정으로 없앨 수는 없어, 주민들에게 양해를 구했다. 현장에서 만난 할머니들의 손을 잡고 사죄했다. “저희 생각이 짧았어요. 구분이 잘 되도록 좀 더 색을 진하게 칠하겠습니다. 앞으로 익숙해지시지 않을까요?” 문제의 근본이 해결된 것은 아니고, 우리의 부족함을 아프게 깨달았지만 의심은 해소되었다. 어.설.자의 일, 그냥 하기 사소하게 시작된 질문이 아주 근본적인 것으로 내려앉을 때가 있다. 직장 생활이 재미없어서 시작한 질문이, ‘나란 인간이란?’이라는 질문으로 연결되는 것처럼. 작업을 하면서 생기는 의심도 그렇다. 깊어지고 깊어지면 결국은 시스템에 대한 의심, 굳어진 인식 구조와 실천 방식에 대한 의심으로 귀납된다. 그리고 그래야만한다. 이 의심은 개인적이기도 하지만, 사회적이기도하다. 데카르트 같은 근대주의자들이 인간을 의심하는 주체로 세웠다면, 후기 근대주의자들은 인간이 만든 시스템을 의심해야 한다고 하지 않던가. 도시화가 진행되면서 초기에는 어린이공원을 짓는 게 목적이었다. 1968년 10월 2일 조선일보 기사에는, “오는 1969년부터 3개년 동안 시내 3백2개 동마다 1개소씩 3백 평 내지 1천 평 규모의 어린이공원을 만들겠다”는 김현옥 시장의 포부가 실려 있다. 그런데 기자는 시장의 포부 아래에 그게 가능할지 의구심이 든다는 내용을 덧붙였다. 그 기자의 의구심과는 달리 현재 양적으로는 많은 놀이터를 갖게 되었다. 그러나 질적인 측면에서 모든 놀이터가 너무 뻔하지 않냐고 이야기 한다. 개성 없이 비슷비슷한 놀이터가 만들어지는 데에는 여러 가지 시스템적 이유가 있다. 제도 및 정책의 문제, 조경 산업의 문제, 전문가들의 문제 등등. 그래서 ‘우리의 놀이터는 아이들의 입장을 반영한 것인가?’에 대한 의심은 제도 및 정책, 조경 산업, 전문가들의 설계 방식에 대한 의심으로 이어질 수밖에 없다. 어린이들을 위한 시스템인가? 시스템을 위한 시스템인가? 그러고 보면 전복적인 설계는 머릿속에서 나오는 창의적인 아이디어라기보다는 시스템에 대한 의심에서 시작되지 않을까 싶다. 요가를 시작한 지 2년 정도가 되어간다. 모든 관절이 다른 이들보다 29° 덜 펴지고, 19° 덜 구부려진다고 농담할 정도로, 요가를 시작하면서 얼마나 근육이 굳어져 있는지 발견했다. 얼마나 해야 ‘아등바등 몸짓’을 넘어 ‘요가 동작’을 할 수 있냐는 질문에, 우리 선생님은 몸이 굳어져 온 세월만큼 걸린다고 아주 냉정하게 답하셨다. 요가라는 다른 맥락에 나를 놓지 않았다면, 나는 이렇게 실감나게 굳어진 나의 몸을 의식하지 못했을 것이다. 사고 체계도, 실천의 방식도 마찬가지일 것이다. 맥락 자체를 의심할 수 있어야 한다. 그런 차원에서 세이브더칠드런이, 놀이운동가들이 던진 질문은 요가 동작과도 같았다. 의심을 풀기 위해 책을 보기도 하고 자문을 받기도 한다. 그러나 궁극의 해답은 현장에 있다고 믿는다. 추상적으로 촘촘하게 얽혀진 시스템에서 나와, 그리고 선 지식은 가능한 한 괄호 속에 집어넣고 현장에서 날 것의 대답을 찾기. 그러면서 굳어진 근육이 유연해질 것이라 믿는다. 시민운동가가 아닌 설계자로서의 ‘주민참여’도 그런 차원에서 접근하려 한다. 모든 의심이 해결되는 건 아니다. 그런데 몰두하다 보면 의심, 질문 자체가 익숙해지고 시시해진다. 우리가 어릴 적 품었던 많은 질문들이 어른이 되면서 자연스럽게 별거 아니게 되는 것처럼 말이다. 소설가 김연수는 『소설가의 일』이란 책에서 “지금 뭔가를 쓰고 있다면 그는 소설가”라고 한다. 어쩌다 설계를 하고 있지만, 의심하며 매일 매일 한다. 별다른 결심 없이 시작한 것처럼, 별다른 결심 없이. 김연금은 조경작업소 울을 운영하고 있으며, 커뮤니티 디자인 센터의일원으로도 활동하고 있다. 커뮤니티 디자인, 마을만들기를 일과 활동의 중심으로 삼고 있다. 박사 학위 논문을 발전시킨 『소통으로 장소 만들기』(한국학술정보, 2009), 일상의 경관에서 이루어지는 거시적 구조와 미시적 요소와의 상호 관계를 관찰하고 기록한 『우연한 풍경은 없다』(나무도시, 2011) 등의 저서가 있다.
[조경의 경계를 넘어, 조경 속으로] 자클린 오스티
자클린 오스티는 프랑스 국립 건축 학교École Nationale Supérieure d’rchitecture at the Beaux Arts in Paris와 베르사유의 국립 조경 학교를 졸업했다. 1983년부터 사무소를 개소해 활동하고 있으며 현재 블루아Blois의 국립 조경 학교에서 학생들을 가르치고 있다. 자클린 오스티의 초기 작업들은 매우 프랑스적이며 건축적인 느낌이 물씬 나는 3차원적 공간으로 알려져 있지만, 그녀는 오히려 거대한 부지에서부터 작은 디테일에 이르기까지 대상지와 씨줄과 날줄처럼 긴밀하게 엮어진 듯 한 맥락을 고려한 설계와 섬세한 접근을 강조한다. 그녀는 장소와 디자인을 이어주는 연결고리를 찾는 것이 주된 관심사라고 밝혔다.프랑스의 대표적 조경가로서 입지를 구축하게 해 준 아미앵의 생 피에르 공원Parc St. Pierre 등을 살펴보는 것도 의미가 있겠으나, 이번 인터뷰는 주로 최근 작 파리 동물원 작업을 되돌아보았다(본지 4월호에 소개). 파리 근교 뱅센 숲에 위치해 뱅센 동물원이라 불리던 이곳은 원래 1934년도에 지어진 오래된 시설이었다. 1931년에 열린 국제 식민지 박람회Exposition coloniale internationale는 당시 프랑스가 제국주의적 식민 지배를 정당화하고 국민에게 식민지 문물의 경이로움을 알림으로써 정치적 기반을 구축하고자 열었던 대규모의 전시 행사였다. 뱅센 숲에 수십 개 나라의 건축과 기묘한 문물을 어마어마한 규모로 모아놓았으며 전시가 열린 6개월간 약 900만 명의 방문객이 다녀갔을 것이라고 추산된다. 동물원은 그때 전시된 식민지의 이국적인 동물들을 영구적으로 수용하고 전시하기 위해 지어진 것이다. 덕분에 동물원에서는 아직도 그 흔적을 쉽게 찾아볼 수 있다. 각각의 생물권biozone은 프랑스의 대표적인 식민지들로 구성되어 있다. 동아프리카의 수단, 남미 프렌치 기아나, 인도양의 마다가스카르, 파타고니아 등이다. 또한 마치 엑스포 행사장과 같이 동물들의 공간은 무대plateaux와 분장실loges로 불렸다. 연극 무대의 개념을 그대로 따온 것이다. 콘크리트를 이용한 인조 바위들 또한 이러한 연출적인 면을 더욱 강화해주는 요소다. 자클린 오스티의 리노베이션은 동물원의 전통을 그대로 따르면서도 현재의 흐름을 반영하고 있다. 즉, 오늘날의 동물원이란 신기하고 진기한 생물들을 보여주는 역할에만 머물지 않는다. 80년 전 사람들에게 호기심의 대상이었던 이국적 동물들은 이제 인터넷을 통해 생생히 목격할 수 있는 현지 생태계의 잔상에 지나지 않는다. 따라서 현재 동물원은 아이들의 놀이동산으로 전락하게 되었다. 지구 반대편 낯선 문화에 대한 지적 자극이자 군사·경제적 우월감의 원천이 되었던 식민지 시대의 동물원은 소풍 가고, 놀이 기구 타러 가는 단순 위락 시설이 되어버린 것이다. 이런 시대에 동물원은 여전히 존재 가치를 가지고 있을까? 파리 동물원이 찾는 새로운 의미는 생물다양성과 서식지에 관한 것이다. 최이규는 1976년 부산 생으로 뉴욕에 기반을 두고 실무와 실험적 작업을 병행해 왔다. 북미와 유럽의 공모전에서 수차례 우승했고, 주요 작품이 뉴욕시립미술관 및 소호, 센트럴 파크, 두바이, 올랜도, 런던, 위니펙 등지의 갤러리에 전시되었다. UNKNP.com의 공동 창업자이며, 저서로 『시티오브뉴욕』(공저)이 있다. 현재 계명대학교 도시학부에서 조경 설계를 연구하며 학생들이만드는 것의 기쁨을 알아가도록 돕고 있다.
공원 탐닉
언젠가 혼자서 책을 한 권 쓴다면 ‘공원 탐닉’이란 제목으로 쓰리라 마음먹었다. 나름 구성도 짜보았고, 챕터 제목도 끼적여 놓았다. 오래된 폴더를 열어 작성한 날짜를 확인하니 2006년 7월 18일이다. 파일명은 ‘개인 단행본 집필 아이템’. 요즘은 잘 쓰지 않는 신명조 서체만큼이나 생소한 차례 구성안이 모니터에 펼쳐진다. ‘①물: 흐르고 비추는, ②빛: 낯보다 찬란한, ③풀: 흔들리며 유혹하는, ④돌: 단단하거나 무르거나, ⑤흙: 그 자체로 아름다운, ⑥점: 작지만 소중한, ⑦선: 나누고 연결하는, ⑧면: 여백을 넘어, ⑨생: 성장하며 진화하는’ 등 총 9장으로 구성되어 있다. 네이버 아이디로 ‘녹색 여백’을 쓰던 때인데, 그 아이디만큼이나 상당히 작위적이다. 아마 9장으로 구성한 건, 물, 빛, 풀, 돌처럼 한 글자로 된 근사한 단어를 더는 찾아내지 못했기 때문일 게다. 12장으로 구성된 256쪽 안팎의 책이 가장 부담 없고 읽기 편하다는 생각은, 그때나 지금이나 변함없으니까(이런 구성이면 한 챕터가 20쪽 내외여서 적절히 사진이 가미되면 한 호흡으로 읽기 좋다). 실제로 책을 펴낼 때까지 3개를 더 찾아내야 할 텐데…. ‘물’은 일산호수공원을, ‘빛’은 노래하는 분수대를, ‘풀’은 하늘공원을, ‘돌’은 선유도공원을, ‘흙’은 올림픽공원을, ‘점’은 옥상공원을, ‘선’은 양재천을, ‘면’은 공원 전반을, ‘생’은 조경의 이모저모를 소재로 쓰려고 했다. 아마, 지금 쓴다면 경의선숲길과 광교호수공원, 양화한강공원, 서울숲, 서서울호수공원, 여의도한강공원을 어딘가에 포함시킬 테고, ‘흙’은 지형의 아름다움이 아니라 나무와 풀을 품어내는 기반으로서의 소중함에 대해 언급하지 않을까 싶다. 키워드 하나당 공원 하나씩을 매치시켰지만, 특정 공원을 중심으로 쓸 생각은 없었다. 몇 곳이 되었든 구체적인 사례를 바탕으로 내가 지극히 주관적으로 느낀 공원의 매력에 집중할 요량이 었다. 그러니까 ‘물’은 우리가 공원에서 만나는 흐르고, 떨어지고, 솟구치고, 반사하는 각양한 물을 주인공으로 쓰고, ‘돌’은 석재를 비롯해서 다양한 재료의 물성과 맛을 탐닉하는 방식이다. ‘풀’은 나무와 꽃도 포함한 공원의 식물을 이야기하는 챕터로 할애할 생각이었다. 잎 넓은 나무 다음으로 풀을 좋아하긴 하지만, 그라스 류에 대해선 딱히 할 말이 많지 않으니까. 부제는 ‘도시의 녹색 여백, 공원을 만나다’ 정도가 무난해 보였다. 이 ‘공원 탐닉’ 집필 프로젝트는 에피소드 몇 가지만 스케치 해놓고는 더 이상 진전시키지 않았다. 충분히 뜸을 들이면서 진행하려 했기 때문이기도 하고, 더 좋은 (?) 사례를 기다리자는, 좀 대책 없는 설계를 처음부터 했기 때문이다. 더구나 마감 독촉하는 에디터도 없는 책이 아닌가. 이번호 특집 ‘당신의 공원은 어디입니까’란 질문에 충실한 답이 될지는 모르겠지만, 그 때의 구상을 얼기설기 풀어 놓는다. ‘나의 공원’ 이야기는 지난 달 코다에서 충분히 했으니까(궁금하신 분은 『환경과조경』 2015년 9월호, p.143 참조). 미리 쓴 ‘책을 펴내며’ 중에서 여백餘白의 여는 남을 ‘여餘’다. 그러니까 쓰고 남은 흰부분이 여백인 셈이다. 뭐, 빈자리라고 할 수도 있다. 상황에 따라 잉여의 느낌이 들기도 하는데, 핵심은 ‘쓰고 남은’ 면이란 점이다. 그런데, 쓰다가 우연히 남은 것과 쓰면서 일부러 남긴 것과의 차이는 크다. 남은 여백에는 의도 따위가 담겨 있을 리 만무하기 때문이다. 여기서의 여백은 더 채우지 못해 아쉬운 빈 곳이거나, 더 이상 쓸 필요가 없어 방기된 공간이다. 하지만 의도적으로 남겨진 여백은 이야기가 다르다. ‘여백의 미를 잘 살린 작품…’ 운운할 때 등장하는 여백은 보는 이에게 진한 여운을 남겨주기도 하고, 그곳이 여백이 아닌 다른 것들로 채워졌을 때보다 더 큰 완성도를 갖게 해준다. 이우환은 『여백의 예술』(이우환 저, 김춘미 역, 현대문학, 2002)에서 “예술 작품에 있어서의 여백이란, 자기와 타자와의 만남에 의해 열리는 앙양된 공간”이라고 표현하기도 했다.
기억이 머무는 공간, 나의 공원
기억을 찾아서 어렸을 적부터 이십대 후반이 된 지금까지 한 동네에 살고 있는 탓에 동네 공원은 내게 무척 익숙한 공간이다. 이름도 ‘고척근린공원’, 지명이 그대로 이름이 된 참 평범한 공원이다. 익숙하다는 말과 평범하다는 말은 의미도 쓰임도 제법 다르지만 두 단어가 주는 인상만큼은 비슷하다. 평범하니 익숙하고, 익숙한 것이기 때문에 평범하다고 느낀다. 고척근린공원은 그렇게 내게 무척 평범하고도 익숙한 공간이다. 이리 익숙한 공간이라도 막상 공원에서 보냈던 추억들을 하나하나 반추하고 정리해 보려니 꽤나 어렵다는 생각이 든다. 추억이 너무 많아서인가보다. 다섯 손가락에 꼽을 수 있을 만큼이라면 도리어 쉬울 텐데. 그래서 이 산발적인 기억을 정리하는 효과적인 방법을 고안해 보았다. 공원 내의 다섯 개의 장소를 뽑아 순간적으로 튀어 오르는 기억들을 적어나가는 거다. 물론 이 방법이 산란하지 않으리라는 보장은 없다. 그러나 공간을 통해 추억을 더듬는 것이 시간을 되짚는 것보다 기억을 정리하기가 쉽지 않을까 싶다. 참, 이제부터 이야기하려는 다섯 개의 장소가 고척근린공원에 있는 공간의 전부가 아니란 점은 밝혀두어야겠다. 이 장소들을 선정한 기준은 ‘나의 기억이 많이 깃든 곳’이기 때문에 지극히 개인적이고 주관적일 수밖에 없다. 하나, 만남이 꽃피는 정문 공원 진입부인 정문은 초중고생 때 친구들을 만나던 약속의 장소였다. 크고 기다란 모양의 탑이 기준처럼 서있고 그 옆으로 의자 대용으로 쓸 만한 조형물들이 길게 늘어서 있는데, 친구들을 기다릴 때면 그 조형물 위에 앉아 시간을 보내곤 했다. 처음 이 조형물이 생겼을 때, ‘이건 뭔가 이상해’라는 생각이 들었지만 곧 공원의 도입부를 알리기 위한 기념물로 세워 놓았나 보다 하며 대수롭지 않게 여겼다. 사실 정문의 명물은 이기이한 조형물보다 조그만 트럭에서 늘 뻥튀기를 튀기고 있는 아저씨다. 매번 보는 광경이어서 그런지 뻥튀기 아저씨가 없으면 공원에 온 거 같지가 않을 정도다. 공원 가까이에 다가갈수록 탁탁 거리는 기계 소리가 선명하게 들린다. 내게 고척근린공원의 최고 이정표는 동떨어진 섬처럼 자리한 조형물이 아니라 그 앞을 지키고 선 뻥튀기 아저씨다. 둘, 두 얼굴의 놀이터 놀이터에는 꽤 재밌는 추억이 남아 있다. 네 살 즈음이었나. 미끄럼틀을 무서워해서 매번 동네 친구들이 타는 모습을 지켜보기만 했던 나는 친언니의 엄청난 놀림을 받고나서야 미끄럼틀을 타보겠다는 마음을 먹었다. 미끄럼틀이 왜 그렇게 무서웠던 건지는 사실 잘 기억나지 않는다. 단순히 겁이 많아서였던 건지, 어린 아이의 눈에 미끄럼틀이 너무 높고 커 보였기 때문인 건지. 무튼 나는 아주 큰맘을 먹고서야 미끄럼틀을 타는 데 성공했고, 그 모습은 사진으로 남아 아직도 내 앨범에 꽂혀 있다. 고등학교 때 친구들과 삼삼오오 모여 놀던 기억도 빼놓을 수 없다. 밤 9시 즈음부터 11시 정도까지, 학원을 땡땡이치고 놀이터에 가면 반 친구들을 참 많이도 만날 수 있었다. 낮 동안 땀이 나게 뛰노는 아이들의 주무대였던 놀이터는 저녁이 되면 일탈을 꿈꾸는 청소년들의 비행장소가 되었다. 친한 친구들이 아니라도 곧잘 어울려 놀았던 기억이 난다. 그러다보면 종종 눈이 맞아 연애를 하는 애들이 생기기도 했다. 물론 나에게는 해당사항 없음이지만 말이다. 지금도 그런지는 잘 모르겠다. 그러고 보니 놀이터에 마지막으로 가 본 게 언제였더라.
사랑의 떨림이 시작된 공원
동아리를 만든 게 불순한 의도는 아니었으나 대학교에 입학해서 이런저런 활동을 많이 했다. 과대표부터 시작해서 학생회 활동도 일부 돕고, 사진 동아리, 무술 동아리 그리고 지금 다니고 있는 잡지사의 학생통신원까지 하면서 여러 모임을 두루 경험했다. 다 배워보려 시작한 활동들이지만 대학 생활이란 것이 사람들이 모이기만 하면 기승전‘술’로 연결되다보니 참으로 쓸데없이 허송세월 한 것 같은 느낌도 가끔 든다. 그래도 잘한 일 중 한 가지는 군 입대 전 학과 동아리를 만든 것이다. 우리 과에는 과거 학술 동아리가 있었는데 체제가 학부에서 학과로 개편되면서 명맥이 끊긴 상태였다. 이를 안타깝게 여긴 교수님들께서 동아리를 만들면 지원을 많이 해주신다 약속하셨고, 어찌어찌 내가 총대를 메고 동아리원을 모집해 조직 구성, 운영, 행사 진행 등을 도맡았다. 그렇게 몇 개월을 유지하다 2학년을 마치고 군에 입대했다. 어릴 때 학과 동아리를 만들어 운영하다보니 나름 선배들에게 예쁨 받는 후배가 돼 있었다. 한참 윗 기수학번의 선배들도 알게 되고 교수님들께도 신임을 ―어디까지나 개인적인 생각이지만― 얻은 듯싶었다. 하지만 학과동아리를 만든 게 내 대학 생활에 있어 가장 의미 있는 일이 된 이유는 이게 아니다. 복학과 동시에 재학생들과 자연스레 융화되는 장치가 됐고, 그럼으로써 연애를 하는 발판도 만들어 주었다. 그러니 어찌 잘 만들었다 안 할 수 있을까. 동방탈출: 애정의 시작 시작은 언제나 어렵다. 연애도 마찬가지다. 나는 연애를 늦게 시작한 편이다. 동갑내기 친구들보다 군대를 조금 늦게 간 편이라 전역했을 때 나이가 스물넷이었는데, 그해 처음 연애를 했다. 복학하고 얼마 지나지 않아 학과 동아리에 가입한 같은 과 후배를 꼬셨다. 그녀는 지금의 내 여자 친구다. 사실 처음엔 연인 사이로 발전할 줄 꿈에도 몰랐다. 내가 그녀를 갈구는 못된 선배였기 때문이다. 복학하기 전에 학과 동아리 방에 잠깐 들른 적이 있는 데 그때 여자애 둘이 자리를 잡고 앉아 있었다. 나보다 학번이 3년 아래인 꼬맹이들이었다. 한 명은 회장, 한명은 부회장이라고 자신들을 소개했다. 군대에 가 있는 사이 동아리 회원 수가 절반 이하로 줄어 있었는데, 동아리를 만든 입장에서 애정이 있던 터라 그 후배들을 도와 신입생들을 뽑고 가르쳐 다시 활성화시키기 위해 노력했다. 그 과정에 회장과 부회장을 정말 많이 괴롭혔다. 그러다 심하게 감정적으로 서로 격해진 일이 있었는데 이후 화해를 하고 다시 친목을 다지기 위해 공원으로 스터디를 위한 답사 겸 출사를 나가게 됐다. 사랑은 언제나 예고 없이 찾아온다 내 대학 시절 생활권이었던 전주의 중심부에는 덕진공원이 자리하고 있다. 덕진공원의 면적은 약 15만m2로 전주에서 가장 큰 도시 공원이다. 공원 면적의 3분의 2를 연못이 차지하고 있는데, 초여름 연꽃이 만발하면 절경을 이뤄 출사지로 각광을 받는다. 또한 이곳은 후백제 때 견훤이 도성 방위를 목적으로 만들었다는 설과 고려 때 건지산과 가련산을 잇는 비보풍수를 목적으로 만들었다는 설이 함께 전해져 오고 있다. 조선왕조의 발원지로서의 전주와도 깊은 관련성을 갖고 있다. 뿐만 아니라 단오제면 물맞이를 하기도 하고, 축제의 장소로, 그리고 평상시 소풍과 나들이 장소로 시민들이 즐겨 찾는 전주의 명소 중 하나다. 도시 마케팅의 수단으로 하고많은 관광지 중 구색맞추기식으로 공원을 넣는 경우를 심심찮게 보게 된다. 하지만 전주에서 덕진공원은 지역민들이 타지 사람들에게 꼭 소개하는 핫플레이스다. 그 이유 중 하나는 전주내에서 놀러 갈 외부 공간이 마땅치 않다는 데 있다. 전주에서 주거지와 멀지 않은 근교의 손꼽히는 나들이 장소는 크게 전주동물원, 한옥마을, 덕진공원 정도다. 물론 지금은 패턴이 어떻게 바뀌었는지 모르겠으나 불과 4~5년 전쯤에는 그랬던 것으로 기억한다. 이러한 이유로 덕진공원은 그 주변에 위치한 대학교들의 조경학과 졸업 작품에 단골로 등장하는 대상지였다. 그래서 우리는 조경학과 동아리이니 답사를 목적으로 가닥을 잡고 토요일 낮 점심 때 쯤 덕진공원에 모였다. 지금은 조경시공 회사에 다니고 있는 친구 같은 1년 후배와 나보다 키가 작아 신뢰하는 ‘평생 막내’, 회장과 부회장 그리고 신입부원들을 데리고 답사를 빙자한 나들이에 나섰다. 아르바이트를 하는 학생들도 있어 조촐한 인원이었는데 이날 부회장이 조카를 데리고 와서 더 나들이 분위기로 기울었다.어쨌든 격식을 갖춰보고자 각자 카메라로 세 가지 주제를 찍어보라고 후배들에게 미션을 줬다. 이 공원에서 안 좋은 요소, 좋은 요소, 그리고 풍경 사진을 포함해 각자만의 ‘주제 사진’을 하나씩 찍도록 했다. 첫 두가지는 수업 때 들었던 “문제를 해결하는” 설계의 재료를 찾아나서는 과정의 일환이었고 세 번째는 후배들에게 사진 찍는 데 재미를 붙이게 하려는 목적 혹은 그냥 공원을 즐기기 위한 하나의 방편이었다.
미래 지구인들로부터 공원을 빼앗는 몇 가지 방법
‘공원이 있는/없는 미래 2105Our Future With/Without Parks 2105’2를 다루고자 했을 때―공원이 없는 미래라니, 매력적이지 않다고 쉽게 말할 수 있을까― 공원이 없는, 즉 공원이죽은 미래를 그린 수상작들을 만나볼 수 있길 바랐다(그림1). 발칙한 생각이지만 그 편이 훨씬 흥미로울 것 같았다. 누군가의 밥벌이meal-ticket가 될 수도 있는 공원이 죽었으면 좋겠다니. 어쨌든 한껏 기대하고 있던 중에 도쿄에서 문자 하나가 도착한다. “공모전 관련 단행본 작업이 마무리되기 전까지는 자료를 공개할 수 없음.” 공원 이용 실적이 저조한, 공원에 대한 기억이 많지 않은 에디터에겐 좋지 않은 소식이다. 이것 말고는 쓸 것도 없었으니까. 결국 손에 쥐어진 자료라고는 작품 전시 당시 일본 리포터가 스마트폰 카메라로 찍은 저화질의 패널 사진―제목과 메인 조감 이미지, 개념 다이어그램 정도는 알아볼 수 있었다―이 전부. 확실한 것은 ‘만화적 상상’이 엿보이는 11개 공원 시나리오가 도시 인구 밀도, 기후 변화와 해수면 상승, 지진과 쓰나미 등의 재해, 에너지 부족과 같은 전 지구적 문제에 대한 대응의성격을 보이고 있다는 점이다. 그런데 이것으로 뭔가 부족하다. 미처 읽어내지 못한 ‘만화적 상상’이 더 필요하다. ‘누가(수상자) 어떤 이유로 공원을 미래 지구인들로부터 빼앗으려 한 걸까’ 물론 이러한 만화적 상상에도 한계가 있다. 이러한 상상을 좋아한 건축가 히메네스 라이Jimenez Lai는 “만화는 창작을 토대로 해야 성공적이지만 이야기 순서를 유지해야 하는 갈등, 또는 만화 전체에서 모든 것이 이치에 맞아야만 하는 ―즉 등장인물이 동시에 두 장소에 있을 순없다― ‘연속성’이 있어야 한다”고 했다. 어떤 결말을 맺을지 알 수 없는 이야기에도 복수의 타임라인이 존재할 수 없다. 살인 사건을 해결하는 과정에도 똑같은 원칙이 적용된다. 피해자, 사건 장소, 용의자, 모티브, 살해 도구, 추정 사망 시각 등의 희미한 단서를 단 하나의 연속적인 이야기 속에 맞추는 것이 필요하다. 그리고 범죄자의 심리에서 생각하기 시작한다. ‘나라면 어떻게 미래의 지구인들로부터 공원을 빼앗으려 할까’ 이 공원 이야기는 미래 도시와 공원에 대한 복수의 세계관multiverse이 단일 연속선상의 어느 한 순간을 구성하며 하나의 타임라인을 구성하게 될 것universe이라는 “주관적이고 특수한” 만화적 상상을 바탕으로 한다. 즉, ‘공원이 없는 미래’를 그린 공모 작품과 현대 도시를 대체할 새로운 땅에 대한 현재진행형 세계관들을 재구성한 것이다. 상상은 가상을 현실로 만드는 과정이다. 참고를 했든 인용을 했든 아류작이건 반복이든 간에 전에 본 적 있는 것들의 재배치를 이해할 수 있을 까?3 그리고 이 허무맹랑한 이야기의 끝에서 ‘당신의공원’은 어디에서 어떤 모습을 하고 있을까? 프롤로그 이름 없는 어느 은하의 언저리에 자리한 한 술집에 손님(구매자)이 들어온다. 우주 쓰레기 더미 속에 감춰진이 술집에서는 우주 문명에 대한 거래가 빈번하게 이루어진다. 문명 거래는 대부분 고고학자들이 진행하며, 품목은 대개 소유권이 소멸한 공간이다. 그런데 이 소유권을 소멸시키기까지가 참 고되다. 문명권 모두에게 버림받았다고 판단되어야 소유권이 소멸한다. 고고학자가 술집에 들어선다. 드디어 한 문명이 소유권을 포기한 듯하다. 품목명은 ‘인류의 도시 공원.’ Do-or-Die “인간의 창의성이나 동기 부여는 그 상황이 ‘죽음과 같은 극한 상황do-or-die’이 되었을 때에야 비로소 발휘된다.” Clip#1 오늘은 또 뭘 들고 왔지(구매자)? 인류의 마지막 도시 공원(고고학자). 도시 공원? 인류의 주거지 속 낙원이랄까. 인류의 기술 개발이 빠르게 이루어지고, 도시에 인간이 밀려들면서 발생한 문제에 대한 공간적 처방이었다는군. 아무튼 한동안 사람들이 가장 좋아하는 상품이었지. 크기와 형태가 다양했고 보통 녹색 생명이 가득한 공간이었는데, 인류의 시간으로 약 100년 간 아주 잘 팔렸어. 아주 잘 팔렸다면 여기 있을 수 없는 거 아닌가? 소유권이 남아 있는 공간을 거래했다간…. 그건 이야기를 다 듣고 판단하도록 해. 내 얘기가 맘에 들면사고, 아님 말라고.
공원, 상상하는 대로
‘상상하는 대로’ 미래가 변한다면, 공원도 ‘상상하는 대로’ 변해가는 것은 아닐까? 이미 공원은 우리들의 상상과 욕망을 반영하며 변하고 있는 것은 아닐까? 영원히 간직하고 싶은 추억이 많은 공원은 그냥 그대로 그 자리에 있어주는 게 예의가 아닐까? 새로 꾸미고 치장한다고 과연 좋기만 한 걸까 ‘나의 공원 이야기’에 대해 글을 쓰기로 했을 때, 두 개의 상반된 생각이 교차됐다. 변화를 이야기할 것이냐, 추억을 이야기할 것이냐. ‘아, 나의 공원 이야기라니 이게 웬 날벼락이람.’ 예측 불가능한 미래를 대하는 우리의 자세 인간이 예측 가능한 미래는 2045년까지라는 주장이 있다. 2045년이 되면 인공지능이 인간의 지능을 뛰어넘기 때문이라는데, 곧 인간이 통제하지 못하는 사회가 온다는 말 같아서 섬뜩하다. 엘빈 토플러는 “미래는 우리에게 항상 빨리 닥쳐와서 예측이 불가능하다”며 인간이 미래 예측에 어려움을 겪어 왔음을 이야기했다. 과학의 눈부신 발전이 미래 예측의 정확성을 확보하기보다는 오히려 역사적으로 가장 예측 불가능한 미래가 펼쳐질 수 있다니, 모든 사물의 이치를 드러낼 것처럼 자만했던 인간의 능력이 또 한 번 한계에 부딪치게 되는 셈이다. 그렇더라도 신에게 인간의 미래를 맡기는 시대가 다시 도래하지는 않을 것 같다. 인간은 미래에 대한 상상을 멈추지 않을 것이며, 과거 수많은 상상이 현실이 됐듯 앞으로도 수많은 상상들이 눈앞 현실로 다가올 것이기 때문이다. 특히 영화 속 미래에 대한 상상은 이미지 그대로 현실이 되는 경우가 많았다. 그걸 보면 미래는 어떤 모습으로 그리는지도 매우 중요한 부분이라는 생각이 든다. 미래는 예측하는 것이 아니라 그려가야 한다는 말이 더 맞을 듯하다. 현실이 된 상상 2015년을 상상한 영화가 있다. 1989년 개봉한 영화 ‘백 투 더 퓨쳐 2Back To The Future Part 2(1989)’는 주인공 마티가 자신의 아들이 위험하다는 이야기를 듣고, 브라운 박사와 애인 제니퍼와 함께 타임머신을 타고 30년 뒤인 2015년의 미래로 간다. 미래의 아들을 구하고 영화 속 현재로 왔다가 다시 1955년의 과거로 가는 것이 이 영화의 시간적 배경이다. 영화 속 2015년은 기발한 상상력으로 묘사됐다. 주인공이 갈아 신은 나이키 슈즈는 저절로 사이즈가 조절되고 자동으로 끈이 매지는 신발이다. 실제 나이키에서는 2011년에 이와 똑같이 생긴 LED등을 단 ‘NIKE MAG’이라는 제품을 한정 수량 출시했다. 또한 올해에는 자동으로 신발 끈이 매지는 신발을 개발 중이라고 하니 ‘영화 따라잡기’로 미래가 변하는 경우다. 이 영화에는 3D 영화관도 등장한다. 현재는 3D 텔레비전이 보편화 돼 안방에서도 쉽게 볼 수 있지만 당시에는 상상도 할 수 없었던 기술이다. 공중을 나는 호버보드와 플라잉 카는 기술적으로는 가능해졌지만 상용화되진 못했다. 그 외 스마트 텔레비전이나 지문 인식도어, 카메라가 장착된 드론 등은 이미 상용화가 됐으며, 젖으면 자동으로 건조되는 재킷은 아직 상상 속에 남겨져 있다. 영화 속 상상이 현실이 된 사례는 이외에도 수없이 많다. 영화 ‘마이너리티 리포트’에 나오는 손끝 센서로 홀로그램 모니터를 다루는 기술이나 신원 확인을 위한 동공 확인 시스템은 대표적인 사례로 회자된다. 미래 공원, 공룡 정도는 키워야지 공원은 그 잠재성에 비해 상상의 폭이 넓지 않은 듯하다. 조경가들의 상상력 빈곤이 가장 큰 문제겠지만, 공원이 인간의 상상력을 자극하는 데 그다지 매력적인 대상이 아니라는 방증이기도 하다. 영화 ‘쥬라기 시리즈’는 그나마 가장 직설적으로 공원에 대한 상상력을 동원하고 있다. 공룡이라는 흥미 있는 테마를 통해 지구사적 시공간을 뛰어넘는 경험을 제공하는 것이 바로 영화 속 ‘쥬라기 공원’이다.지난 6월에 개봉한 영화 ‘쥬라기 월드’는 9월 현재 역대 4위의 흥행 기록을 세우며 전 세계적인 돌풍을 이어가고 있다. 이 영화는 유전자 조작으로 만든 공룡들을 앞세운 테마파크를 배경으로 지능과 공격성이 진화된 공룡이 인간의 통제를 벗어나면서 사람들이 겪게 되는 위기를 다룬다.
일요일 저녁, 내가 여의도한강공원을 달리는 이유
한강공원은 자연과 인공이, 휴식과 질주가 절묘하게 조합된 이중적인 공간이다. 일요일 저녁 8시, 애써 의식하지 않으려고 해도 ‘월요병’ 증상이 나타나기 시작하고 벌써부터 마음이 초조해지기 시작한다. 과장해서 비유하자면 전투를 앞에 두고 진격하는 적군의 북소리를 듣는 심정이랄까? 게다가 이 적군은 결코 물러서는 법이 없으며 나 역시 더 이상 도망칠 곳이 없다. 몇 시간 뒤면 주말 동안 밀려있던 일거리가 전원 돌격 명령을 내리고 호환마마보다 무섭다는 월요병이 전염병처럼 도시에 유행할 것이다. 월요일을 앞에 두고 배수의 진을 친 일요일 저녁엔 바람 빠진 타이어처럼 느슨해진 마음에 빵빵하게 자신감을 채우고 식은 엔진처럼 삐걱거리는 몸에 기름칠하고 불을 댕길 무언가가 필요하다. 하지만 이미 시간은 오후 8시. 이대로 밤을 보내기엔 너무 아쉽고 하얗게 불태우기엔 부담스러운 시간이다. 그런 저녁엔 가벼운 옷차림을 하고 여의도한강공원을 달린다. 전열을 가다듬고 숨을 고르는 내 나름의 방법이다. 종로에서 뺨 맞고 화풀이하러 한강에 갑니다 벚꽃놀이나 불꽃 축제를 구경하러 1년에 한두 번 정도 갈까 말까 했던 여의도한강공원을 요즘처럼 자주 찾게 된 것은 2013년부터다. 종로에 있는 한 통신사에서 인턴으로 근무하면서 불규칙한 취재 일정과 예고 없는 잦은 회식으로 인해 몸무게가 왕창 늘어나던 때다. 회사 면접을 위해 산 정장 스커트에 더 이상 엉덩이를 우겨 넣을 수 없게 되자 뭐라도 해야겠다는 절박한 심정으로 집 근처 여의도한강공원을 가게 되었다. 나는 늘 사람들이 새까맣게 북새통을 이루는 축제 기간에만 여의도한강공원을 갔던 전형적인 시골 사람이었던 터라 평범한 일요일 저녁, 여의도한강공원에 운동하러 가는 것은 신선한 경험이었다. 도시의 삶을 묘사하는 미드(‘섹스 앤 더 시티’나 ‘프렌즈’ 같은)나 외국 영화를 보면 꼭 한 번은 타이트한 운동복을 입고 공원에서 운동하는 사람들의 모습이 나오는데 그 비일상적인 듯 일상적인 모습을 내가 재현하는 느낌이랄까. 이제는 굳이 살을 빼기 위해서가 아니더라도 여의도한강공원을 달린다. 종로 빌딩숲 한복판, 그 살얼음판 같은 회사에서 구르고 깨지는 게 일이었던 쭈구리 막내인턴에게 이곳의 자연과 한강 풍경은 말없는 위로를 건네고 해방감을 맛보게 해주었다. “종로에서 뺨 맞고 한강에서 화풀이한다”는 속담이 전해지는 것을 보면 오래전부터 한강은 나뿐만 아니라 많은 사람에게 ‘만만한 곳’이자 ‘스트레스를 털어버리는 곳’이었던 것 같다. 조선 시대, 나라의 허가를 받아서 물품을 판매하는 종로 육의전六矣廛의 위세 높은 상인에게는 뺨을 맞아도 아무 소리 못하던 서민들이 한강을 중심으로 형성된 비공식적인 시장인 난전亂廛에서는 큰소리치는 상황에서 속담이 유래했다고 한다. 그러니 따지고 보면 오늘날의 나도 종로에서 뺨맞고 만만한 한강에서 화풀이하고 있는 셈이다. 서울의 도시 문화를 맛볼 수 있는 공원 단순히 자연에서 위로를 얻기 위해서라면 선유도나 양화, 망원, 이촌 쪽으로도 갈 수 있지만 총 12개 지구의 한강시민공원에서 굳이 여의도한강공원을 고집하는 이유가 있다. 나는 보통 여의도로 넘어가는 서강대교와 이어지는 고가도로에서부터 달리기 시작한다.
야외의 맛, 게으른 피크닉을 꿈꾸며
회사를 그만두고 오롯이 백수였던 시절이었다. 출근을 하지 않으니 자유로워진 평일 오후, 한 대학 캠퍼스의 넓은 잔디밭에 나와 앉았다. 그 당시 하늘은 넓고 푸르렀고 눈앞에서 낮게 넘실대는 녹색 풍경이 무척 아름다웠던 기억이 선명하다. 게다가 함께 있던 친구가 바로 그 잔디밭으로 짜장면을 시켰다. 야외인데도 음식이 배달된다는 사실이 무척 신기했고 심지어 그 상황이 감격스럽기까지 했다. 그날 이후 ‘풀밭 위의 식사’는 나에게 여유의 상징처럼 각인되었다. 그런데 누군가 ‘화창한 평일 오후에 자연 속에서 맛있는 식사도 했으니 행복한 기억이겠구나’라고 묻는다면 글쎄, 선뜻 답하기 어렵다. 그 감정은 불안과 낯섦 사이를 오간다. 백수 신분에 ‘아무 것도 하지 않는’ 상태를 자연스럽게 받아들이기 어려웠던 탓일까. 노동이 신성시되는 현대사회에서 이런 강박이 나 혼자만의 것은 아닐 것이다. 작년 가을 서울시청 앞 광장에서 벌어졌던 ‘멍 때리기대회’가 언론의 화제가 되었던 것은 아마도 아무것도 하지 않는, 그냥 ‘쉼’을 견디지 못하는(혹은 인정하지 않는)이들이 많기 때문일 것이다. 사실 이 일을 떠올리게 된 것은 K 때문이다. 이번 특집 주제를 찾느라 고민 중인 나에게 그녀는 공원의 먹거리에 대한 이야기를 꺼냈다. 얼마 전 광교호수공원을 방문한 그녀는 예전에는 놀이 공원에서나 먹을 수 있던 솜사탕과 추로스를 발견한 덕택에 이 공원에 대한좋은 기억을 남겼다는 것이다. 추로스라니! 막대 모양의 페이스트리 반죽을 기름에 튀겨낸 이 스페인 전통요리의 쫄깃한 식감, 그걸 들고 다니던 놀이 공원의 한 장면, 설탕이 솔솔 뿌려져 있어 달착지근하고 끈적끈적해진 손의 느낌까지 여러 가지 기억이 호박넝쿨처럼 끌려나온다. 솜사탕은 어떤가. 고운 설탕실로 만들어진 솜뭉치의 인공적 맛이야말로 야외의 맛이다. 인터넷으로 검색해보니 과연 광교호수공원에서 갖가지 모양의 솜사탕을 들고 있는 사람들의 사진을 볼 수 있었다. 아, 요즘 아이들은 좋겠다. 우리 때는 하얀색과 분홍색의 단순한 솜사탕 밖에는 없었던 것 같은데, 오리, 꽃, 눈사람 등 믿을 수 없는 모양과 세련된 색상의 솜사탕이 있었다. 그러나 안타깝게도 얼마 전부터 솜사탕이 불량식품이라는 민원에 광교호수공원에서 판매가 금지되었다고 한다. 여하튼 K의 주장은 장소와 연결되는 음식, 어떤 공간의 경험을 완성시키는 맛이 있다는 것이다. 미각, 공감각적 경험의 시작 최근 소위 ‘먹방’이나 요리 프로그램의 열풍을 굳이 거론하지 않더라도 많은 사람들에게 음식이 주는 즐거움은 일상적 경험에서 중요한 위치를 차지하고 있다. 특히 야외 활동과 음식은 아주 밀접한 관계를 맺고 있다. 우리가 만약 어떤 장소에 간다면 우선 ‘맛집’부터 검색한다. 혹은 등산을 하는 수많은 중년 남성(?)들은 배낭에 막걸리를 챙겨 넣는다. 산 정상에서 막걸리 한 잔을 마셔야, 아니면 하산 길에 도토리묵에 살얼음 동동주를 먹어줘야 비로소 등산을 마무리한 기분이 드는 것이다. 계곡에서는 백숙, 고속도로에서는 호두과자, 소풍에는 김밥… 예는 수없이 많다. 우리는 음식을 보고 공간을 떠올리고, 어떤 장소에 갈 때 특정한 음식을 맛보길 기대한다. 미각은 공간을 경험하는 사람의 감정에 지대한 영향을 미친다. 술을 예로 들어보자. “알코올은 분위기 설정과 밀접히 연관되어 있다. 우리는 알코올이 우리의 기분을 끌어올릴 것으로 기대하고, 그것은 자주 그렇게 한다. 이완과 흥겨움을 나타내는 표시로서의 알코올은 심지어는 술을 마시기도 전에 몸에 해방을 준비한다.”1 우리가 야외에서 추구하는 미각은 필연적으로 다른 감각과 기억, 정서적 활동과 연관된다. 전통적으로는 화전놀이가 그런 예가 아닐까 싶다. 당시 젊은 남녀나 부녀자들은 추운 겨울이 지나고 봄바람이 불기 시작하면 경치 좋은 곳을 찾아 벌이는 꽃놀이를 기대하며 한동안 설레었을 것이다. 얇고 하얀 찹쌀가루 반죽 위에 진달래꽃이나 장미, 국화의 선명한 꽃잎이 올라간 화전의 맛은 어땠을까. 사실 화전의 맛 자체는 중요하지 않았을지도 모른다. 눈으로 먹고, 분위기로 먹고, 간만에 쐬는 콧바람에 이미 맛있게 먹을 준비가 되지 않았을까. 공원 계획과 음식 도시 공공 공간의 양적 팽창이 한계에 접어들면서 최근 좀 더 활기 있는 공공 공간을 위한 질적 변화에 대한 고민도 늘고 있다. 혹자는 공원에 필요한 것은 미술품이 아니라 음식을 제공하는 시설이라는 이야기를 하기도 한다. 그렇지만 실제 공원을 계획할 때는 음식과관련된 활동에 대한 고려는 크지 않은 편이다. 피크닉장이나 캠핑장이 기본적인 시설로 계획되는 정도다. 미국의 도시학자인 윌리엄 화이트William H. Whyte는 그의 저서 『The Social Life of Small Urban Spaces』(1980)에서 공공 공간에서 사람들의 활동을 끌어들이고 싶다면 음식을 내놓으라고 권고했다. 특히 사람들이 필요로 하는 곳을 예민하게 알아채는 코를 가진 노점상은 사람들을 끌어 모은다. 음식은 사람들을 모으고, 음식이 있는 곳은 사회적 장소가 된다. 몇 개의 접이식 테이블과 의자만으로 커다란 시각적 효과를 노릴 수 있다.
나의 공원은 없습니다
공원은 자본주의 도시의 한가운데에 있지만 토지를 함께 소유하고 사용하는 모순의 장소이기도 하다. … 개인적 욕망보다는 늘 사회적 가치가 우선이다. 우리는 가득하지만 나는 없는 곳, 공원의 리얼리티다. 나의 공원은 없습니다 그동안 쓴 글과 지은 책의 소재 대부분이 공원이고 이런저런 공원의 계획과 설계에도 참여해 왔지만 막상 ‘당신의 공원은 어디입니까’라는 질문에 맞닥뜨리니 숨이 턱 막힌다. 시간의 물성이 켜켜이 쌓인 선유도공원, 하늘을 향해 열린 자유와 해방의 하늘공원, 시적 공감각이 신체를 감싸는 빅스비 파크, 황폐한 숭고미가 새로운 희망과 동거하는 뒤스부르크-노르트 파크 정도가 언뜻 떠오르기는 하지만, 이 장소들의 매력이 나의 삶과 한데 뒤섞이는 것은 아니다. 답사의 대상이거나 연구의 주제이거나 강의의 소재이기는 하지만, 내가 도시를 살아가는 현실과는 거리가 멀다. 숱하게 찍은 내로라하는 유명 공원들의 사진을 다시 보면 전형적인 구경꾼의 시선만 느껴진다. 사진에 담겨 있는 건 그저 조경 잡지에서 본 프레임을 복습하는 모범생의 무표정한 시각, 아니면 스타 조경가의 작품을 앞에 두고 연예인 보듯 들뜬 마음이다. ‘나의’ 공원은 어디인가. 연중행사로 큰맘 먹고 가는 정도지만 그래도 가장 많은 시간을 보냈던 공원은 집에서 멀지 않은 분당중앙공원과 율동공원이다. 이 두 공원에는 적지 않은 추억도 녹아 있다. 아이들의 성장사가 영상처럼 재생된다. 자전거 타기에 성공한 큰 아이의 흥분된 모습이, 갈고 닦은 인라인 스케이트 실력을 뽐내는 작은 아이의 상기된 얼굴이 생생하다. 하지만 소중한 시간과 기억보다 더 강하게 남아 있는 건 획일적인 녹색의 풍경, 다른 어떤 곳으로 탈출하지 못한 무력감, 공원에서도 내일 할 일을 생각해야 하는 피로와불안, 명절 세일 중인 백화점보다 더 많은 운동 인파, 이런 것들이다. 나의 공원은 과연 어디인가. ‘어디인가’를 ‘무엇인가’로 바꿔 보아도 사정은 크게 다르지 않다. 그러나 ‘나의 공원은 없습니다’라는 답은 나만의 공원을 발견하고 또 소유하고 싶은 욕망의 다른 표현이다. 그래서 공원이다 ‘조경비평 봄’의 세 번째 책 『공원을 읽다』(나무도시, 2010)는 역사상 그 어느 때보다 공원이 각광받고 있는 시대에 공원의 여러 숨겨진 단면을 노출시켜 독해함으로써 그 기능과 역할을, 그 이념과 가치를 되묻고자 한 기획이었다. 책의 서문격인 글 ‘그래서 공원이다’의 일부를옮긴다. “… 공원의 어깨는 무겁다. 우리는 공원이라는 단순한 장치가 아주 복잡하고 매우 다양한 방식으로 작동되기를 기대한다. 공원은 아침형 인간이 하루를 여는 조깅코스다. 남편을 출근시키고 아이를 등교시킨 주부가 모처럼 여유를 느끼며 걷는 산책의 장소다. 모니터 앞에서 오전을 시달린 직장인이 햇볕을 쬐며 커피와 독서를 즐기는 카페테리아다. 물론 평범한 가족의 주말 휴식을 공원에서 빼놓을 수 없다. 공원은 또한 유치원 꼬마들의 소풍으로 가득하다.
당신의 공원은 어디입니까?
진행하는 도중에 케이티 머론이 엮은 『도시의 공원』이 떠오르긴 했지만 처음부터 그 책을 염두에 두진 않았습니다. 그 보다는 바람이 좀 선선해지면 한강공원에 퍼질러 앉아 특집 기획을 빙자해 치맥을 즐기자는 누군가의 바람이 이번 특집의 출발점입니다. 작년인가, 김정은 팀장이 취재차(?) 다녀왔던 서울광장에서 열린 ‘멍 때리기 대회’를 시연해보자는농담도 곁들여졌습니다. 그러면서 자연스럽게 각자의 공원 이용 행태가 하나씩 튀어나왔습니다. 바로 그 자리에서 말이죠. 그런데 요리사가 집에서 요리하지 않는다는 속설처럼, 의외로(?) 공원을 즐기는 이들이 많지 않았습니다. 늘 공원을 모니터 속에서 노려보아서일까요? 특히 조경학과 출신 에디터들의 공원 이용 실적이 저조했습니다. 여기에는 조경학과 출신 편집주간도 포함됩니다. 그동안 너무 조경의 대상지로만 공원을 바라보았다는 자책까지 나오진 않았지만, 공원의 일상성에 주목해야 한다는 데에는 이견이 없었습니다. • 나의 공원은 없습니다 _ 배정한 • 야외의 맛, 게으른 피크닉을 꿈꾸며 _ 김정은 • 일요일 저녁, 내가 여의도한강공원을 달리는 이유 _ 조한결 • 공원, 상상하는 대로 _ 박광윤 • 미래 지구인들로부터 공원을 빼앗는 몇 가지 방법 _ 양다빈 • 사랑의 떨림이 시작된 공원 _ 이형주 • 기억이 머무는 공간, 나의 공원 _ 박인수 • 공원 탐닉 _ 남기준
[재료와 디테일] 중력과 싸우는 흙 쌓기
이십여 년 전 설계사무실 초년병 시절, 내가 할 수 있는 일은 선배들이 다 그려놓은 하얀 트레이싱 페이퍼 뒷면에 먹을 넣는 일이 대부분이었다. 요즘은 캐드에서 폴리라인polyline으로 봉합하고 솔리드solid를 채워 녹지 공간과 시설지의 공간을 구분하는 작업이 손쉬운 일이지만 당시만 하더라도 연필심을 곱게 갈아 모은 뒤 휴지에 묻히고 곱게 발라줘야 하는 극도로 정교하고 시간을 요하는, 초짜들의 시간 죽이기용으론 최고의 작업이었다. 게다가 조금만 삑사리가 나거나 균일한 농도를 맞추지 못해 얼룩이라도 생기면 어김없이 날아오는 선배들의 가르침이 무지막지했다. 그렇게 도면에 먹을 먹이는 작업을 하면서 유심히 살펴 본 평면도의 녹지 공간에는 어김없이 지렁이처럼 생긴 점선들이 있었고 그 앞으로 경관석이라는 이름의 돌덩어리들이 배치되어 있었다. 그 점선들은 흙을 쌓는 모양과 높이를 알려주는 마운딩mounding이라는 이름의 설계 기법이었다. 웬만한 당시 도면들에는 어김없이 이런 계획이 들어 있었고 이렇게 만들어진 장소를 답사 해보면 그 형태와 기법을 쉽게 찾아볼 수 있었다. 당시에는 ‘당연히 이렇게 해야 하는구나’라는 생각으로 별생각없이 받아들이고 몸으로 익히게 되었다. 최근 경기도 인근에 작은 모델 정원을 만들면서 그때 일을 다시 떠올렸다. 터파기를 하며 나온 흙과 나무를 심을 웅덩이를 파내며 만들어진 엄청난 양의 흙이 봉긋하게 쌓여 있었는데, 그 모습에 깜짝 놀라기도 했거니와 예전 마운딩 설계안이 머릿속에 겹쳐졌기 때문이다. 저 많은 흙을 어떻게 처리해야 하나 하는 한숨과 함께 말이다. 흙이라는 재료가 너무 흔해서 쉽게 생각되지만 그 처리가 여간 까다로운 게 아니다. 단위 비중이 돌과 비슷한 몹시 무거운 재료이며, 쉽게 흘러내려서 쌓기도 쉽지 않을뿐더러 면적도 많이 차지한다. 물론 쌓으면 많은 장점이 있다. 이미 단단하게 다짐된 공사장의 지반 위에 성토를 하게 되면 아무래도 흙의 구조가 떼알구조가 되므로 식물들에게 좋은 환경을 제공할 것이고, 자연스럽게 얻어지는 경사면은 단조로운 경관에 입체적이고 풍성한 모습을 연출할 것이다. 이대영은 여기저기 살피고 유심히 바라보기 좋아하는 사람으로 살아가려 노력하고 있다. 만드는 것에 관심이 많으며, 작고 검소하며 평범한 조경설계를 추구하고 있다. 영남대학교에서 공부했고 우대기술단과 씨토포스(CTOPOS)에서 조경의 기초를 배웠다. 조경설계사무소 스튜디오엘(STUDIO L)을 시작하고 작은 작업들을 하고 있다. www.studio89.co.kr
[공간 공감] 명동성당
한동안의 어색함. 성당을 올라가는 계단 아래 모인 일행 모두는 대체로 그런 느낌이었다. 삼 년 만이라고도 했고 오 년, 아니면 그보다 더 되었다고도 했다. 너무 오랜만에 오다보니 이 우뚝 높은 종현鐘峴에 세워진 성당을 무심코 지나쳐 버렸다고. 명동은 이제 우리 세대의 기억에서도 점차 희미해지고 있는 것인지, 상점거리에 넘쳐나는 외국인 관광객들 틈에서 우리말조차 낯설게 들린다. 시가지의 중심을 차지하고서 어느 방향, 어느 지점에서나 랜드마크가 되어주는 유럽의 성당과는 달리 명동성당은 이제 코앞에 다가서서야 비로소그 수려한 존재감을 드러낸다. 주변을 둘러싼 높은 빌딩들, 그 커다란 벽면을 차지하고 있는 대형 광고물들 사이로 백 년이 훌쩍 지난 고딕 성당의 첨탑이 간신히 눈에 들어온다. 1898년, 이 아름다운 연와조 고딕 양식의 성당은 비로소 우리의 역사 속으로 편입되었다. 기록에 의하면 1882년 한미수호조약의 결과로 어느 정도 종교의 자유가 허용되어, 당시 교구장이던 주교 블랑M. J. G. Blanc이 성당 부지로 여기 종현 일대를 매수하여 성당건립을 추진했다고 한다. 1892년 5월에 정초식을 하고, 앞서 약현성당(지금의 중림동성당)을 설계한 바 있는 프랑스 신부 코스트E. J. G. Coste가 설계와 공사 감독을 맡았다. 그런데 당시에는 우리나라에 이러한 서양 건축에 대한 기술자가 없었기에 벽돌공, 미장공, 목수 등을 모두 중국에서 데려와 일을 시켰는데 재정난과 청일전쟁으로 공사가 중단되기도 했다. 그 후 종현 일대에는 가톨릭 관련 시설들이 순차적으로 들어서게 되어 현재는 사제관, 교구청, 계성여고, 수녀원, 가톨릭회관(구 명동성모병원) 등이 본당 주변을 둘러싸는 형태를 가지게 되었다. 이 연재를 위해 factory L의 이홍선 소장, KnL 환경디자인 스튜디오의김용택 소장, 디자인 스튜디오 loci의 박승진 소장 그리고 서울대학교정욱주 교수와 서울시립대학교 김아연 교수 등 다섯 명의 조경가가 의기투합하여 작은 모임을 구성했다. 이들은 새로운 대상지 선정을 위해 무심코 지나치던 작은 공간들을 세밀한 렌즈로 다시 들여다보며, 2014년1월부터 한 달에 한 번씩 유쾌한 답사 모임을 이어가고 있다.
최우수작: 씨실과 날실
우리의 도시 무릇 살아 움직이는 것 중에서 고정되고 영원한 것은 존재하지 않는다. 소중한 문화재가 한 자리에 고정되어 남아있다 해도 주변이 변하기 때문에 도시는 결국 늘 변할 수밖에 없고 우리가 기대어 사는 자연도 성장, 진화, 훼손 등 어떤 형태로든지 변하고 있다. 그동안 우리는 도시를 평가할 때 내적 의미나 가치보다는 외적으로 평가해왔다. 내적인 의미와 가치는 계량화하기 어렵고 가시적이지 않아 이를 효과적으로 활용하고자 하는 이에게 그렇게 매력적으로 다가오지 않았다. 그 결과, 높고 화려한 건물이 가득 찬 도시, 넓은 공원과 온갖 첨단 장비로 무장한 도시를 경쟁력 있는 도시이자 우리가 목표로 하는 도시라고 얘기해왔고 우리는 그것이 정답일 것이라고 막연히 생각해왔다.하지만 진정 그런 도시가 이상적인 것일까? ‘보이는 것’보다는 ‘사람이 만들어가는 삶’과 ‘오랫동안 만들어온 양식’이 공간에 녹아나며 다양한 것을 포용할 수 있는 곳이 바로 도시가 아닐까. 낙산의 역사와 공원 조성 낙산은 내사산을 따라 축성한 한양도성 좌측 청룡에 해당하는 곳으로 과거에 낙타산, 낙산, 타락산 등 여러 이름으로 불렸다. 겸재 정선의 ‘동소문도’를 보면 낙산은 소나무와 잣나무 등 상록수가 바위와 어울려 아름다운 곳이었다. 조선 시대 한양도성은 성내와 성외를 나누는 견고한 물리적 경계이자 사회적 신분을 구획하는 곳이었으나 근대에 접어들면서 견고한 도성에 틈이 생기게 되었다.
낙산공원 재조성
서울의 형국을 구성하는 내사산(남산, 인왕산, 북악산, 낙산)의 하나로 소중한 자연 환경과 문화유산을 지니고 있는 낙산에 조성된 낙산공원을 재조성하는 공모전이 지난 7월부터 8월까지 진행되었다. 지난 2002년에 조성되어 시설이 노후화되고 안전성이 취약해진 공원을 주변 지역과 연계하여 상생·협력·소통할 수 있도록 하고 낙산과 한양도성의 역사적 의미를 되살리는 것이 이번 공모전의 주요 과제다. 지난 8월 27일, 공모전의 최우수작으로 안스디자인의 ‘씨실과 날실’이 선정되었다. ‘씨실과 날실’은 낙산, 한양도성 등 역사 공간 및 현황에 대한 연구와 분석을 바탕으로 역사성이 부각될 수 있는 설계를 지향했다.선형으로 넓게 분포한 낙산공원의 공간 형태를 고려해 구역별로 특화해 설계하고 산의 지형적, 지리적 특성을 고려해 각종 시설물을 배치했다. 또한 서울 시내의 조망 명소를 조사하고 주요 공원 방문자의 특성을 고려해 다른 공간과의 차별성을 느낄 수 있으면서도 기존의 낙산공원과 조화롭게 어울리도록 계획했다. 우수작에는 천마이엔씨의 안이 당선되었다. 심사위원들은 최우수작에 대해 “한양도성에 대한 이해와 기본적인 접근 개념이 양호하며 과거의 흔적을 살릴 수 있도록 노력했다”고 평가했다. 반면, “공간 계획과 사업 실행 계획은 다소 추상적”이라며 구체적인 보완을 요청했다. _ 편집자 주
최우수작: 30 + 30 : 시민의 숲, 다양성의 정원
지난 30여 년 동안 하나였던 숲은 세 구역으로 나뉘어져 성장해왔고 각각 현재와 같은 고유의 특성을 갖게 되었다. ‘30 + 30 : 시민의 숲, 다양성의 정원’은 시민의 숲의 또 다른 30년에 주목하여 다음과 같은 다섯가지의 전략을 채택했다. 양재 시민의 숲 구역에는 ‘숲길, 일상의 숲과 발견의 숲’의 전략을 도입하여 숲과 들, 개울과 물가의 초지, 그리고 정원이 이어지는 짧은 길과 평범한 길을 제공한다. 문화예술공원 구역은 ‘은유의 숲, 구조의 숲’을 테마로 한 경관 식재 기법을 통해 예술과의 조화를 추구한다. 메모리얼 숲 구역은 ‘조용한 경관, 묵상의 숲’의 분위기를 제공하기 위해 동선체계와 숲의 구조를 조정하여 번잡함이 느껴지지 않도록 한다. 이와 함께 대상지 전체적으로는 공원에 대한 인위적 스토리텔링을 배제하고 시민의 숲만의 이야기를 더해갈 수 있도록 하는 ‘함께하는 숲과 기록하는 숲’ 전략과 사계의 다양성과 생명의 다양성이 공존하는 시민의 숲을 목표로 하는 ‘숲 틈, 다양성의 정원’ 전략을 도입했다.
시민의 숲 공원 재조성
서울시가 주최한 ‘시민의 숲 재조성 기본계획(안) 현상설계공모’의 결과가 지난 2015년 8월 20일 발표되었다. 최우수작(당선작)으로는 지·오 조경기술사사무소가제출한 ‘30 + 30 : 시민의 숲, 다양성의 정원’이 선정되었다. 시민의 숲은 노후화된 공간에 대해 부분적으로 정비를 해오며 조성 초기의 정체성이 훼손되었으며, 생태적 측면과 이용의 측면에서도 개선이 필요한상황이다. 이번 공모전은 시민의 숲만의 정체성을 회복하고 나아가 새로운 이야기를 생산할 수 있는 소통의 공원으로 재탄생시킬 독창적이고 참신한 공원 재조성 기본계획안을 찾는 것을 목표로 했다. 첫 조성 후30여년이 지난 시민의 숲의 다음 30년의 비전을 제시하고자 한 당선작은 대상지의 자연·인문·사회적 환경을 바탕으로 한 스토리텔링과 테마를 부여했다는 점과기존 수림의 기능을 최적화하기 위한 소극적·단계적관리 방안을 구체적으로 제시했다는 점에서 좋은 평가를 받았다._ 편집자 주 ※ 우수작은 선정하지 않았음을 밝힙니다.
레퓌블리크 광장
레퓌블리크 광장은 파리 시 3, 10, 11구의 경계에 위치한 광장으로, 그 면적이 3.3ha에 달하는 대규모 공공공간이다. 광장의 중앙에는 프랑스혁명의 상징인 마리안느Marianne 동상이 서 있고, 그 밑에는 ‘자유, 평등, 박애’라는 글귀가 새겨져 있다. 드골 장군은 1958년10월 4일 이 광장에서 제5공화국 헌법을 공포하기도 했으며, 최근에는 샤를리 엡도 테러 사건 희생자들을 추모하는 집회가 열리기도 하는 등 레퓌블리크 광장은 정치적인 상징성을 가지고 있다. 한때 생기 있고 활동적인 도시 광장이었던 레퓌블리크 광장은 현대 이동 수단으로 인한 문제에 직면했다. 대상지에는 매일 114,000명 이상의 지하철 통근자와 관광버스 대열, 주차 중인 택시, 자전거 족, 자동차 운전자, 마을버스 등이 몰려 교통 흐름이 정체되고 단절되어 매우 위험한 교통 환경을 만들었다. 이로 인해 지역적 성격과 도시 맥락적 의미를 잃어버렸다. 2010년 베르트랑 들라노에Bertrand Delanoe 파리 시장은 레퓌블리크 광장을 ‘모두를 위한 광장’으로 재탄생시키기 위한 공모전을 개최했다. 새로운 광장에 대한 요구 사항을 정리하기 위해 지역 계획 워크숍, 청소년위원회, 지역 장애인위원회, 상인, 장인, 전문가 그리고 주민연합회를 망라하는 광범위한 설문조사를 실시해 의견을 수렴했다. 공모 결과 TVKTrévelo & Viger-Kohler 팀의 안이 선정되었다. TVK 팀의 설계안은 대상지를 지나가는 유동 인구를 지속시키면서도 한편으로는 대상지에 머무는 사람들에게 더 오래 머물 이유를 제공함으로써 광장의 사회적 기능을 복구했다. 대상지의 이질적인 구역들을 통합하고 광장의 중핵 주변으로 차량 흐름을 재연결함으로써 다양한 범위의 활동과 도시적 프로그램을 수용할 수 있는 거대한 기능적 공간을 재창조했다. Landscape ArchitectMSP ArchitectTVK Architectes Urbanistes Associate Landscape ArchitectAREAL ClientCity of Paris, Highways Department LocationParis, France Area3.3 ha Completion2013 PhotographsClement Guillaume 마사 슈왈츠 파트너스(Martha Schwartz Partners)는 런던을 기반으로 활동하는 도시조경설계사무소로 35년 이상 세계 20여 개국에서 다양한 규모와 성격의 프로젝트를 진행해 왔다. 도시 경관이 지속가능한공간을 만들기 위한 플랫폼으로 기능해야 한다는 생각을 중심으로 도심활성화 및 재생 프로젝트에 집중해 왔다. 복잡한 도시 환경에 대응하기위해 조경은 물론, 건축·도시계획·원예·시공 등의 다양한 분야의 전문가로 구성되어 있으며, 항상 로컬 디자이너와의 협업을 통해 부족한 부분을 채워가려고 한다.
파펜부르크 도시 공원
정원 박람회는 1980년대 독일 및 오스트리아에서 인기를 얻게 된 이래로 삶의 질과 도시 환경을 향상시키는 것을 목표로 추진되어 왔을 뿐만 아니라, 지역적·정치적 개발 목표를 달성하는 데 있어서도 효과적인 방법의 하나로 인정받고 있다. 특히 주로 사회적 혜택이 충분히 미치지 못했던 지역을 중심으로 개최되는 지방 정원 박람회의 경우에는 낙후된 고장을 매력적이고 쾌적한 공간으로 변모시키는 역할을 하고 있다. 독일 파펜부르크 도시 공원에서는 이러한 정원 박람회의 이점과 혜택을 확장시켜 도시 공원에 필요한 여러 가지 요구 조건을 충족시킬 수 있도록 하는 기능적인 변화가 다양하게 이루어지고 있다. 새롭게 도입되는 경관 요소들은 해양 도시인 파펜부르크가 기존에 지니고 있는 모습에 성공적으로 접목되고 있다(파펜부르크는 조선 산업의 중심일 뿐만 아니라, 원예의 중심이기도 하다. 매년 3천5백만 본의 초본 식물과 2천5백만 개의 오이가 파펜부르크에서 재배되고 있다). 박람회장에서 공원으로 새로 도입되는 공원 설계는 이러한 정원 박람회 개최에서 비롯된 지역의 변모를 뒷받침하고 있다. 단순히 이동을 위한 환승 공간에 불과했던 대상지는 이번 도시 공원 조성을 계기로 파펜부르크 도심의 핵심적 부분으로 자리매김하게 되었으며, 새로운 공간 요소의 추가를 통해 해당 지역을 현대적으로 활성화시키는 효과를 거두고 있다. 보행 네트워크는 공원의 역사적 구조와 기존의 식생을 바탕으로 조심스럽게 현대화되었다. 공원 공간의 전반적인 모습은 이러한 주 산책로와 총림을 통해 규정된다. DesignRMP Stephan Lenzen Landschaftsarchitekten ClientLandesgartenschau Papenburg 2014 gemeinn,Durchführungsgesellschaft mbH LocationPapenburg, Germany Area15ha Design2012~2013 Construction2013~2014 PhotographsJuliane Werner RMP 스 테판 렌 젠 조경설계사무소(RMP Stephan Lenzen Landschaftsarchitekten)는 독일의 본(Bonn) 지역에 기반을 두고 활동하는 조경설계사무소로 쾰른(Cologne), 함부르크(Hamburg), 만하임(Mannheim)에 지사를 두고 있다. 대상지에서 수집된 정보를바탕으로 설계안을 도출하기에 앞서, 스스로 규정한 ‘정원으로의 회귀(return of the garden)’, ‘지속가능한 도시 경관(sustainableurban landscapes)’, ‘건축의 영역에서 조경의 영역으로(from thearchitectonic realm to the realm of landscape)’, ‘건조된 환경과의 대화(dialogue with constructed space)’라는 개념적 접근법을 적용해 대상지와 조건을 해석한다. 이를 통해 단순히 데이터만을 활용한 프로젝트에서는 드러나지 않는 가치와 기능을 갖는 공간을 만들고자 한다.
이민의 정원
마르세유 연안 지역에서 거대한 도심 재활성화 프로젝트가 활발하게 진행되고 있다. 도시와 바다 사이, J4의 옛 부두 위에 유럽과 지중해 문명 박물관MuCEM이 수평적인 볼륨을 드러냈다. 이 박물관의 ‘수직적 성채vertical casbah’는 생-장St. Jean 요새와 대화하고자 하는 열망의 표현이다. 요새의 높은 외벽에 위치한 프로젝트는 수용적 태도를 통해 대상지에서 프로그램을 끌어내는 것이 중요했다. 감각적이고 변증법적인 정원은 그 안에서 자연사 혹은 인간의 역사를 드러내는 지식의 근거를 발견하기 위해 길을 잃어야 하는 ‘항상 열려있는 책livre toujours ouvert’으로 간주되었다. 비정형적인 정원의 모습은 그 자체로 시간의 두께를 표현하고 있으며, 정원에서의 산책은 마치 여행의 이야기처럼 각각의 날짜나 이름에 상응하면서 역사를 재구축한다. 사람과 식물의 도착지인 마르세유의 항구에 솟아오른‘이민의 정원’은 지중해 일대 문화의 교류와 이를 통해 이루어진 식물의 교류를 상기시킨다. 연속되는 15점의 그림(정원)은 과시적인 장식이 두드러지는 것을 거부하고 각양각색의 이파리와 질감, 향기로 인한 다양한 감각적 경험에 중점을 둔다. 다양한 통로와 층은 주의 깊은 방문자나 산만한 산책자 모두에게 개화기와 상관없이 일 년 내내 흥미로운 요소를 보장한다. 이는 관리를 크게 필요로 하지 않으며 관수나 시비, 혹은 식물 병충해 방제 처리가 전혀 필요 없는 드라이 가든의 맥락에서 지중해 식물의 식물학적 컬렉션에 가치를 부여한다. 15개의 정원-산책로 정원-산책로jardin-promenade는 15개의 그림을 전개한다. 1. 오렌지나무 정원La cour des orangers: 지중해의 이미지, 무와히드 왕조(12세기에 세워진 베르베르 인과 무슬림 왕조, 북아프리카부터 이베리아 반도까지 지배했고, 코르도바와 세비야도 이들의 영토였다) 정원의 첫 번째 안뜰, 코르도바 혹은 세비야의 대 모스크의 오렌지나무 정원의 이미지를 연상시킨다. 2. 도금양 정원Le jardin des myrtes: 꽃과 이파리에서 섬세한 향기가 나고, 그 이름이 항상 그라나다의 알함브라를 상기시키는 작은 도금양Myrtus communis 정원. 도금양과 석류나무로 경계를 두른 직사각형 소로가 있는 엄격한 디자인은 이제는 사라진 총독의 위용을 드러내는 화려한 정원을 상기시킨다. 3. 요새의 야생 풀Les salades sauvages du fort: 가혹한 환경의 시련을 극복한 재정복reconquest 식물들에 대해 일종의 경의를 표하는 공간이다. 폐허와 같은 환경에서 저절로 싹을 틔우는 풀들을 위한 정원이다. DesignAgence APS EngineeringSitétudes LightingAgence Lumière Régis Clouzet Mediterranean Vegetation ConsultantOlivier Filippi AgronomistVéronique Mure CollaboratorBiotope, Enviroconsult, Antoine Bruguerolle ClientMinistère de la Culture et de la Communication LocationMarseille, France Area15,000m2(Fort), 6,500m2(Planting) Completion2013. 6. 4. Cost6 millions euros PhotographsAgence APS, Agence Lumière 발랑스에 기반을 둔아장스 아페에스(Agence APS)는 베르사유 국립조경학교에서 학위를 받은 3명의 조경가인 장-루이 니델(Jean-LouIs Knidel), 질 오투(Gilles Ottou), 위베르 기샤르(Hubert Guichard)가 1997년 공동으로 설립했다. 현재 아장스는 조경, 건축, 조명, 생태, 원예등 다양한 분야를 아우르는 8명의 팀으로 구성되어 있다. 다양한 관여(intervention)를 고민하는 아장스 아페에스는 ‘조경가-도시설계가’ 문화를 통해, 프랑스 남동부의 대조적인 지리적 영역에 기꺼이 헌신하면서 다양한 규모의 연구와 프로젝트를 진행하고 있다. 변화하는 거대한 경관과 토지, 자연, 도시, 혹은 문화재적이고 상징적인 거대한 대상지, 공공공간이 아장스의 시각과 사고를 구축하고 형성하는 영역이다. 그들의 작업은 맥락적, 시적, 감각적인 전개를 중시한다. 이는 생태적이지만 이용과 사회적 실천에도 주의를 기울이며 기억을 드러내기 위해서다.
[칼럼] 공원에서 표정 짓기
“공원엔 잘 가지 않고 산에 다닌다”고 답하고 나서 몇 초 후에 자주 다니는 도봉산이 국립‘공원’이라는 사실이 떠올랐다. 또 다시 몇 초 후 집 근처에 벤치와 간단한 운동기구, 분수, 연못 등이 있는 곳이 ‘초안산근린공원’이라는 사실도 떠올랐다. 거의 매일 걷기 위해 가는 중랑천변 산책로도 어쩌면 공원일지 모른다는 생각까지 하게 되었다. 공원에 자주다녔고 공원 가까이에 살고 있는데 왜 공원에 다니지 않는다고 했는지 스스로 물었다. 나름의 답은 공원에 대한 선입견이 있다는 것. 우선 공원이라고 하면 큰 규모의 인공 조림이 떠올랐고, 여의도공원이나 선유도공원 또는 뉴욕의 센트럴 파크 같은 곳이 생각났다. 하지만 여의도공원은 가본 지 20년이 넘었고(그러니까 그땐 여의도광장이던 시절), 선유도공원은 5년이 넘었고, 뉴욕엔 가보지도 못했다. 공원에 대한 선입견은 하나 더 있다. 공원에 있는 사람들은 여유로워 보인다는 것. 70대 할아버지가 농구복에 헤어밴드까지 하고 신중하게 드리블을 하다가 슛은 지나가는 사람이 제일 많을 때를 골라쏜다. 통 넓은 바지에 헐렁한 티셔츠를 입은 30대 여성이 철봉에 매달려 발을 버둥거린다. 길게 매달리지 못하고 이내 떨어지지만 한번 키득거리면 그만이다. 강아지를 데리고 나온 노부부는 지나가는 사람들이 강아지가 예쁘다고 칭찬해 주기를 바라는 표정이다. 돗자리를 깔고 싸온 음식을 먹는 커플은 그 시간, 그 장소에 같이 있는 것에 만족하는 표정이다. 벤치에 앉아 지나가는 사람들을 구경하는 치들은 관심과 무관심의 적절한 조화를 찾고 있다. 무관심한 표정은 매사에 무기력한 사람처럼 보이게 하고, 지나치게 관심을 갖고 다른 사람을 쳐다보면 오지랖이나 주책으로 보이기 십상인 것을 알고 있다. 분수대에서 놀든 공을 차든 모두 편안하고 여유 있어 보인다. 집 근처 초안산근린공원의 풍경이다. 여유로운 모습은 공원에 있는 사람들이 남들 보라고 일부러 짓는 표정이나, 단순한 선입견이 아닌 공원이 주는 표정이다. 공원이 있기에 생기는 여유다. 나무, 꽃, 잔디, 분수, 벤치, 간단한 운동기구가 주는 표정이다. 이런 것들이 있는 곳에서 사람들은 젊음을 과시하고 싶은 마음이 되고, 몸을 움직여 보고 싶은 마음이 되고, 남들에게 관심을 주고 싶은 마음이 되는가 보다. 공원은 이런 이유로 필요할지도 모르겠다. 규모에 상관없이…. 집 근처 공원에 갈 땐 어떤 옷을 입을지, 뭘 신을지 고민하게 된다. 모두가 여유로워 보이는 공원에 맞는 차림을 하고 싶어서 신경을 쓴다. 운동복 광고지에 나오는 여자처럼은 입지 않되 어쩐지 활동적이고 혼자만의 시간을 즐기는 여자처럼 입으려 노력하고, 공원에 나가면 이번엔 표정이 신경 쓰인다(사람이 많은 곳에서 지나치게 자신을 의식하는 것은 직업병이다). 공원과 날씨에 어울리는 표정을 지으려고 노력하지만 모르는 사람들만 있는 곳에서 은은한 미소를 지을 수 있는 천성이 아니라, 괜히 혼자 퉁명스러운 표정이 된다. 도대체가 공원과는 어울리지 않는 표정이라고 혼자 생각한다. 공이나 훌라후프라도 들고 나왔어야 한다고 후회할 때도 있다. 그래서 산에 간다. 산에 갈 땐 스스로에게 강요하는 표정이 없다. 뭘 입을지 뭘 신을지 고민하지도 않는다. 그냥 가장 편안한 옷과 신발, 물 한 통이면 그만이다. 도봉산에 가는 날은 주로 평일 낮이라 산을 오르는 사람이 거의 없다. 있다고 해도 계속 올라가거나 계속 내려가야 하기 때문에 어딘가 앉아서 누군가를 쳐다보는 사람이 거의 없다. 그저 발 디딜 곳을 쳐다보거나 멀리 있는 봉우리를 간간히 보며 걷는다. 그럴 때 마음이 편안하다. 몸이 가벼울 땐 도봉산정상인 자운봉까지 가지만 주로 우이암이라는 봉우리까지 쉬지 않고 걷는다. 우이암에는 나만의 자리가 있다. ‘숨자’라고 이름도 붙여 두었다(‘숨은 자리’라는 뜻이다). 숨자는 무심코 지나치면 보이지도 않는, 한 사람의 엉덩이만큼의 빈 공간이다. 다리는 펼 수 없고 아래는 낭떠러지다. 다리를 접어 턱밑으로 바짝 당겨 앉아서 의정부, 상계동, 노원 등의 동네를 내려다본다. 가져간 물을 마시고 바람을 맞으며 앉아 있으면 참 좋다. 바람이 시원하고 눈앞이 시원하다. 숨자에는 바람이 잘 지나가서 땀도, 근육의 피로도 금세 날아가 버린다. 혼자 산에 오르게 하는 어떤 집착도 잠시나마 날아가고 몸과 마음이 뽀송해 진다. 그럴 때, 숨자에서 혼자서 바람을 맞고 있을 때, 내 표정이 어떤지 모른다. 미간은 펴지고 눈은 평소보다 가늘어지고 볼이나 턱은 밑으로 쳐지고 입은 살짝 벌어져 있지 않을까 싶다. 아니면 바람이 당겨줘서 눈 코 입이 평평하게 펴져 있지는 않을까? 숨은 자리에 자주 가고 싶은 걸 보면 본적 없는 그 표정을 제일 편안하게 느끼는 듯하다. 공원엔 가고 싶지만 사람이 많은 곳에서 어떤 표정을 지어야 할지 모르는 사람들을 위해 숨을 수 있는 빈 공간이 많은 공원이 있는 건 어떨까? 산에 가보면 자신만의 자리에서 얼굴을 수건으로 덮고 누워 있는 사람들을 종종 본다. 공원에서 어떤 표정을 지어야 할까 고민하는 사람이 나 혼자는 아닌 듯하다. 공원이 공공의 장소이기도 하지만 빈 공간이기도 했으면 좋겠다는 사람들에게 평일의 국립‘공원’을 추천한다. 평일에 못가는 사람들은 주말 오후 3시 넘어서 가면 한적한 곳을 발견할 수 있다. 그곳에서 남들도, 자신도 모르는 표정 하나를 발견해 보는 것도 공원이 주는 즐거움일 듯하다. 윤진성은 스무 살부터 연기를 하고 있다. 마흔을 넘기고는 여기저기서 연기 워크숍 강사를 더 많이 하고 있다. 일 년의 반 정도 일을하고, 일이 없을 땐 도봉산 국립공원, 수락산(거의 국립공원 수준이다), 관악산, 제주도의 한라산 국립공원 언저리를 오르거나 걸으며지낸다.
[에디토리얼] 당신에게 공원은 무엇입니까?
이번 호 특집 ‘당신의 공원은 어디입니까’는 겨울과 봄이 팽팽하게 줄다리기를 하던 어느 오후에 구상되기 시작했다. 벌써 두 계절 전이니 꽤 철저하고 제법 정교한 기획일 거라 오해하시면 안 된다. 답답한 공기와 마감의 긴장으로 충만한 편집실에서 날이면 날마다 배달 음식 시켜먹으며 궁상떨지 말고 우리도 우리가 매달 다루는 근사한 공원 같은 곳에 가서 따스한 햇살 높은 하늘 벗 삼아 여유로운 시간을 가져보자는, 낭만을 빙자한 푸념이 그 발단이었다. 그나마 ‘단톡’으로 나눈, 회의를 빙자한 ‘집단 잡담’의 부산물이다. 요즘은 어느 직장에서건 얼굴과 얼굴을 마주하고 엄숙하게 앉아서 하는 회의가 줄어들고 있다고 한다. 카카오톡을 비롯한 여러 모바일 메신저가 회의용으로도 널리 쓰인다. 심지어 학과 교수 회의도 카톡으로 한다. 장학금 배분, 졸업생 사정, 논문 심사 같은 묵직하고 예민한 안건을 메신저로 다루는 시대! 『환경과조경』도 예외는 아니다. 에디터 모두가 둘러 앉아 진지한 표정 지으며 하는 토론의 횟수는 갈수록 줄고 있다. 처음에는 어색하고 뭔가 찜찜한데, 몇 번 하다 보면 대면보다 부드럽고 대화보다 빠른 장점에 이내 길들여진다. 손쉽게 파일을 주고받을 수 있는 이점도 있다. 이모티콘의 힘을 빌려 표정도 관리할 수 있다. 마샬 버먼의 책 제목을 패러디하자면, “모든 견고한 것들은 카톡 속으로 사라진다All That Is Solid Melts into Kakaotalk.” 논리를 압도하는 재기와 발랄, 숙고를 뛰어넘는 순발력의 진격. 일순간에 휘발되곤 하는 이 과정에서 때로는 ‘득템’을 했다며 서로 흥분하고, 기막힌 아이디어를 건졌다며 기뻐한다. 이런 풍경에 심각한 의문의 부호를 단다면 시대착오거나 촌스러움일까. 진단은 사회학자나 심리학자의 몫으로 돌린다. 정작 우리 편집부에게 중요한 건 이번 특집 ‘당신의 공원은 어디입니까’가 매우 느슨한 카톡 회의의 생산품이라는 점이다. 치밀한 취재와 치열한 토론을 괄호 안에 잠시 숨긴 기획. 괜찮다! 괜찮을까 괜찮겠지…. 전문 분야로서의 조경은 기능, 미학, 생태, 구조, 운영 같은 무거운 숙제들을 공원의 켤레로 삼아왔지만, 원래 공원은 여유와 여백의 대명사 아닌가. 그래, 공원은 자유로운 곳, 아니 적어도 자유로워야 하는 곳이니까 느슨해도 괜찮을 거야. 다음 문단에서 지난 몇 달 간의 자유로운 ‘집단 잡담’을 대략 간추려 본다. ‘서울에 사는 일곱 사람, 그들의 공원 이야기’라는 부제를 단 책 『더 파크』가 나왔다. 케이티 머론이 엮은 『도시의 공원』의 가벼운 한국판 변형? 여행, 도시, 건축을 휩쓸고 간 대중적 유행이 이제 공원으로 옮겨가는 조짐일까. … 라이프스타일 전반이 집에서 길로 향하고 있다. 물론 공원도 넓은 의미의 길이다. 삶이 집을 벗어난다는 건 개발 시대를 지탱시켜 준 가족과 스위트 홈 개념의 변화와 해체를 뜻한다. … 집 안에서 집 밖으로 일상이 옮겨가고 있다. 모든 종류의 만남을 집 밖에서 하며 산다. 여가 시간의 반 이상을 집이 아닌 곳에서 보낸다. 가족 모임도 식당에서, 공부도 카페에서. 우리에게 허락된 대표적인 집 밖 공간인 공원에서 사람들은 실제로 무엇을 하며 사는가. 공원에서의 삶을 소프트하게, 그러나 현미경으로 관찰하는 특집, 괜찮다. 그래, 의미 있다. … ‘1인 가구’가 급증하고 있다. TV 프로그램 ‘나 혼자 산다’는 결코 남의 이야기가 아니다. 통계청의 자료에 따르면 2013년의 1인 가구 비율은 이미 전체 가구의 26퍼센트다. 지금 20대인 사람이 40대가 되는 2035년이 되면 35퍼센트에 달할 전망이다. 1인 가구가 핵가족조차 제치고 가장 많은 가족의 형태가 된다. 이건 문제가 아닌 현상이다. 이런 인구학적 변화에 따라 도시의 라이프스타일은 물론 도시의 형태와 구조도 바뀌지 않을 수 없다. 공유를 키워드로 하는 주거 형식과 주택 형태의 실험이 이미 진행되고 있다. 공원도 변할 것이다. 변할 수밖에 없다. ‘두 번째 집, 공원.’ … 박해천, 전상인, 고미숙, 이런 필자들이 좋지 않을까. 『혼자 산다는 것에 대하여』의 사회학자노명우도 빼놓을 수 없다. 보스턴에서 열린 전시회 ‘에머랄드 네트워크: 도시 공원의 유산 되살리기’나 일본에서 진행된 설계공모전 ‘공원이 있는/없는 미래 2105’도 엮어 보자. 그렇다, 멋진 기획이 아닐 수 없다. … 아예 단행본으로 돌려서 대박을 꿈꾸는 게 더 낫겠다. 1만 부 돌파하면 동남아, 5만 부는 유럽, 10만 부면 미국 횡단! … 진정하고, 우선은 특집으로 간다. 과연 이 시대의 사람들에게 공원은 무엇인가. 나의 공원, 일상의 공원, 인생의 공원을 묻는다. 제목은 ‘당신의 공원은 어디입니까’로 간다. … 필자 후보로 올렸던 인문학자나 사회학자 말고 우리가 직접 쓰자. 조경물 오래 먹은 우리만의 시각은 진부하지 않을까. 편집부가 총출동해 여름 한 계절을 온통 투자했지만 반응은 시원찮았던 작년 9월호의 ‘활자 산책’ 특집처럼 되지 않을까. 그래도 간다. 우리 전원이 조경 잡지 에디터가 아닌 동시대 도시를 사는 보편적이고 평균적인 한 개인의 시선을 가지고. … ‘괜찮다! 괜찮을까? 괜찮겠지’를 다시 몇 달 간 반복하면서 엄청난 양의 말풍선으로 모니터 한 구석이 도배됐다. … 드디어 마감이 코앞이지만 우리에게 남겨진 건 의문문 단 하나다. 당신의 공원은 어디입니까? 그들의 응답을 듣지 못한 채 몇 시간 후면 발트 해연안의 에스토니아로 떠난다. 유럽조경학교협의회ECLAS 컨퍼런스에서 돌아올 때는 그들의 공원 이야기가 이미 인쇄소를 거쳐 10월호에 담겨 있을 것이다. 대부분 한 개인의 경험과 사정을 바탕으로 풀어낸 이야기지만, SNS를 점령하고 있는 노출증적 자기 취향 고백과는 다를 것이다. 동시대 도시를 사는 우리가 공유할 수 있는 이슈가 적지 않게 녹아 있을 것이다. 즐겁게 읽어주시고 독자 여러분도 ‘당신의 공원은 어디입니까’에 응답해 보시길 기대한다. 본문 속 필자의 글처럼 ‘나의 공원은 없습니다’밖에 떠오르는 게 없으시다면, 이렇게 물음을 바꿔보셔도 좋을 것 같다. 당신에게 공원은 무엇입니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