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환경과조경 2015년 3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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출간일 2015년 3월
이매거진 가격 9,000

기사리스트

[CODA] 오답
“『환경과조경』이 토포텍 1TOPOTEK 1(이하 토포텍)을 밀어주는 이유가 뭐죠” 토포텍 특집이 장장 100여 쪽에 걸쳐 수록되었기 때문에 나온 물음은 아니다. 2월호 잡지가 막 서점에 깔리기 시작한 1월 29일 열린 ‘서울역 7017 프로젝트’ 기자회견장에서 공식 발표된 ‘서울역 고가 기본계획 국제지명 현상설계’ 탓이다. 지명 초청된 일곱 명의 작가 중 토포텍의 수장 마르틴 라인-카노Martin Rein-Cano가 포함되었는데, 누가 봐도 시기가 참 공교로웠다. 반응은 크게 두 가지로 갈렸다.첫 번째, ‘저의가 뭐냐’는 의심의 눈초리파. 잡지 리뉴얼 이후는 물론이고 그 전에도 이 정도 분량으로 특정 오피스를 다룬 적이 없는데, 세간의 관심이 집중되고 있는 서울역 고가의 초청 작가가 발표된 시기에 맞춰서 이렇게 상세하게 토포텍을 다룬 의도가 도대체 무엇이냐는 것이다. 두 번째, ‘안 그래도 궁금했다’는 호기심 해소파. 국내 작가 3인(조민석, 조성룡, 진양교)과 MVRDV의 비니 마스Winy Maas는 알겠는데, 장영호Chang Yung Ho(Atelier FCJZ)나 후안 헤레로스Juan Herreros(estudio Herreros), 마르틴 라인-카노의 작품은 제대로 들여다보지 않아서 어떤 성향의 작가인지 궁금했는데, 그중 한 명이 특집으로 다루어져서 궁금증이 일부 풀렸다고 했다. 이외에 ‘서울역 고가와 토포텍이 무슨 관계가 있죠’라고 되묻는 이들도 적지않았다. 2월호의 코다CODA 지면을 통해 김정은 팀장이 밝혀놓았듯, 토포텍 특집은 다섯 달 전부터 이른바 겨울 춘궁기용으로 저장해 놓은 아이템일 뿐이다. “사진은 가을 풍경인데, 왜 대담에서는 겨울철에 방문했다는 대목이 나오는 거죠” 디자인 엘의 작품과 박준서·오형석 소장의 대담이 편집된 교정지를 본 어떤 이가 물었다. 조경 잡지는 12월부터 이듬해 4월까지가 국내 작품 춘궁기에 해당한다. 한겨울 풍경을 선호하는 이들도 일부 있겠지만, 아무래도 겨울철 외부 공간 촬영은 여러 이유로 꺼려진다. 국내 작품 촬영은 이 시기에는 올스톱된다고 봐야 한다. 그래서 9월부터 보릿고개를 넘기기 위한 궁리와 섭외가 시작된다. 토포텍 특집은 단행본 출간 제의가 특집으로 자연스럽게 전환되는 과정에서 우리가 겨울로 미뤄둔 경우이고, 이번호에 실린 디자인 엘의 한국동서발전 신사옥과 엔씨소프트R&D 센터는 미리 섭외와 촬영을 해놓은 케이스다. 판교에 있는 엔씨소프트는 작년 10월 15일에, 울산에 위치한 한국동서발전은 10월 28일에 촬영해 놓았다가 이제야 소개한다. 하지만 대담은 본격적으로 3월호 작업에 돌입하기 시작한 1월 30일에 이루어졌기에, 가을 사진임에도 겨울 이야기가 등장했다. “뭐, 재미있겠네요. 그런데 이런 형식이 전에도 있었나요” 대담자로 모신 오형석 소장(디자인로직)이 섭외에 응하며 던진 질문이다. 최소한 내 기억으로는 처음이라고 답했다. 작품을 소개하며, 그 작품을 주제로 설계자와 또 다른 조경가가 일대일로 이야기를 나눈 경우는…. 가장 비슷했던 경우는, 작년 2월에 실린 김이식 소장(이화원)의 ‘서울시립 북서울미술관 힐 가든’과 그에 대한 허대영 소장(스튜디오 테라)의 비평인 ‘가장 보통의 미술관’ 정도를 꼽을 수 있다. 당시 우리는 허소장을 섭외하며, 이른바 ‘동료 비평’ 콘셉트라고 소개했다. 같이 설계를 하는 입장에서만 할 수 있는 코멘트가 분명히 있지 않겠느냐고 꼬드기면서…. 박준서·오형석 소장의 대담과 마찬가지로 김이식·허대영 소장도 한 테이블에 앉아 오랜 시간 이야기를 나눴다. 다만 허소장이 이야기를 듣고 별도로 에세이를 써 내려간 것과 달리, 이번 대담은 그 자체가 고스란히 지면에 옮겨졌다. “이번호는 왜 유난히 마감 일정이 빠른 건가요” 어느 필자의 하소연이다. 하소연은 정말이지 우리가 하고 싶다. 하필, 설 명절이 마감이 절정으로 치닫는 2월 중순에 떡하니 자리 잡고 있어서다. 빼도 박도 못할 일정이다. 더구나 5일 연휴다. 엎친 데 덮친 까닭은 2월 달이 28일까지밖에 없다는 슬픈 사실이다. 게다가 올해는 28일이 토요일이다. 무슨 일이 있어도 27일에는 잡지가 나와야 한다는 의미다. 지난달보다 5일 빨리 마감을 시작했지만, 일정을 맞추기가 녹록치 않다. 결국 편집주간부터 막내인 양다빈 기자까지 모두가 연휴 마지막 날인 일요일 출근부에 도장을 찍었다. 10년 넘게 잡지를 만드는 동안 2월이 되면 늘 누구에게랄 것 없이 하소연을 쏟아냈다. “도대체 누가 2월 달은 28일로 달력을 만든 거야” “편집주간이 일요일에도 나오세요” 지면에 담기에 적절한 소재는 아니지만, 은근히 많은 이들이 궁금해 한다. 작년 1월호부터 에디토리얼을 쓰며 등장한 ‘편집주간’이란 직함을 갖고 있는 이가, 과연 얼마나 잡지 제작에 실제 참여하고 있는지를…. 구구절절 써놓으면 교정 단계에서 이 대목이 통째로 날아갈 수 있으니, 특집 기획, 필자 섭외, (간헐적으로) 국내 작품취재, 수록되는 모든 원고의 교정 정도를 하고 계시다고, 짧게 답해 둔다. 제목인 ‘오답’은 5문 5답에서 ‘5문’을 생략한 의미이기도 하지만 오답誤答, 즉 잘 못된 대답이란 뜻도 있다. 독자들이 정작 궁금해 하는 것은 이런 시시콜콜하고 시답잖은 뒷이야기가 분명 아닐 터이니 말이다. 언젠가 정색하고, 한 번 답해볼까 한다.
[편집자의 서재] 세상 어디에도 없는 도시의 사람들
텍스트는 많은 이야기를 할 수 있는 것처럼 자신하지만, 사실이 세상엔 언어가 표현할 수 없는 이야기가 너무나도 많다. 때로는 텍스트가 가장 적절한 매개medium가 아니기도 하다. 『세상 어디에도 없는 도시의 사람들Citizens of No Place』은 그러한 “감수성 강한 생각들”을 만화라는 매력적인 방법을 통해 표현한다. 그렇다. 이 책은 ‘만화책’이다. 그러나 결코 쉽지 않다. 이야기는 다음과 같은 도발적인 대사로 시작된다. “잠깐, 자네말은 잔디가 나쁘다는 건가” 당신이 들고 있는 ‘이 잡지’에 가장 많이 나오는, 그래서 이젠 텍스트에 언급조차 되지 않는 그 잔디를 ‘까면서’ 시작한다. 그리고 갑자기 지구가 멸망한다(물론 잔디 탓은 아니다). 살아남은 사람들은 1만 광년 떨어진 곳에 있는 지구와 비슷한 행성을 찾아 떠난다. 시나리오만 보면 영화 ‘인터스텔라Interstellar’가 떠오르기도 하지만, 또 다른 지구를 찾는 일에는 신경 쓸 필요 없다. 중력이 없다는 것, 그런 조건에 맞는 새로운 주거 형태가 필요하다는 것과 같은 플롯plot의 기본 바탕이 되는 설정일 뿐이다. 제2의 둥근 땅을 향하고 있는 ‘노아의 방주 우주선’에서 어린 건축가는 그의 인스트럭터instructor에게 자신이 포인트 클라우드point cloud1 기법을 통해 만들어낸 새로운 주거 형태를 제시한다. 그는 34컷에 걸쳐 복잡한 수식과 ‘있어 보이는’ 다이어그램을 설명하지만, 인스트럭터는 단 두 개의 문장을 덧붙일 뿐이다. “직관적인 것에 대해 그렇게 객관적이어야 하는지 잘 모르겠네. 그냥 마음 편하게 그렇게 하고 싶어서 했다고 인정하면 어떨까” 젊은 건축가의 동공이 확대되며 이야기는 끝이 난다. 여기서 만화라는 매개의 장점을 찾아낼 수 있다. 히메네즈 라이Jimenez Lai는 만화의 형식을 통해 독자들과 소통하려 한다. 텍스트가 아닌 ‘그림과 대사’를 통해 서술과 묘사, 그리고 비판의 경계를 넘나들며 독자가 “책을 읽으면서 등장인물들이 어떤 관계이고 무엇에 관심이 있으며 어떤 생각을 하는지” 다양한 질문을 하도록 유도한다. 많은 설계가가 단편적인 조사 결과를 일반화하고 모듈module화시켜 적용하려는 성급한 태도를 지적하려는 것일까? 아니면 설계를 하는데 있어, 논리가 직관적인 결과물의 ‘설명을 위한 설명’으로 ‘생산(혹은 편집)’되는 현실을 비꼬고 있는 것일까(젊은 건축가는 직관적 결과물을 소개하기 위해 ‘논리’를 끼워 맞췄을 수도 있다)1,187일 하고도 17시간이 지난 어느 날. 이 젊은 건축가는 다시 한 번 인스트럭터를 마주하게 된다. 인스트럭터는 젊은 건축가가 들고 온 ‘단면 위주의 계획’을 비판하며, “(평면은) 전일주의Holism적으로 생각하고, 미래를 계획하고, 현명하게 콘텍스트를 판단할 수 있다”고 말한다. 젊은 건축가의 답변이 이어진다. “하지만 평면은 인간은 절대 경험할 수 없는 신의 시각으로 보게 되잖아요.” 옳고 그름을 떠나 나는 이 순간 ‘통쾌함’을 느꼈다. 물론 평면은 객관적인 평가를 하는 데 있어보다 편리하고, 조건 별로 구분하여 공간을 더욱 잘 알 수 있게 하는 장점이 있다. 그러나 그가 말한 객관성이 진정으로 객관적인가? 평가를 위한 매개가 경험의 질을 보장해 주지 않는 다면 그 매개는 얼마만큼의 가치가 있는 것일까? 분명 흥미로운 평면은 정리된 모습이고, 많은 정보를 담고 있지만 (1인칭 관점에선) 재미없는 모습이 되기 쉬운 것은 아닐까? 그에 반해 흥미로운 단면은 정보가 부족할 수는 있지만, ‘공간에서의 경험’으로서는 보다 많은 가능성을 가진 것이 아닐까? ‘내 이야기’로 돌아오면, 설계를 공부하면서 많은 의구심과 마주하게 된다. 그러나 (단언컨대) 그런 의구심에 대해 적절한 답변을 받아본 적이 없다. 35세의 젊은 건축가 라이도 비슷한 경험을 한 것일까? 그는 그의 의구심을 서로 다른 (그러나 교묘하게 연결되어 있는) 10개의 이야기를 통해 시공간을 초월하며 말 그대로 ‘별 말 없이’ 풀어놓는다. 이 ‘만화책’은 건축을 소재로 하고 있지만, 공간을 다루거나 디자인을 하는 사람들이라면 충분히 공감할 수 있는 이야기들로 채워져 있으며 당신이 들어왔던 것들이 진실이 아닐 수도 있다는 생각을 심어주기에 충분할 것이다. 물론 혹자는 이 글을 읽고 페이퍼 프로젝트paper project만을 진행해 온 나에게 이런 말을 건네려 할 수도 있겠지만. “이봐. 그건 네[니] 생각일 뿐이야.
정원도 지역과의 관계가 중요하다
한국정원디자인학회(회장 홍광표)가 주관하고 예건(대표 노영일)이 후원하는 ‘푸르너스 가든아카데미’가 1월 29일 부터 3월 12일까지 개최된다. ‘푸르너스 가든아카데미’는 증가하는 정원 설계와 시공 수요에 대한 전문성 확보를 위해 지난해부터 시작된 공개 강좌다. 올해 강의는 총 8강으로 구성되었다. ‘제2회 푸르너스 가든아카데미’의 일환으로 지난 1월 31일에는 서교 자이 갤러리 그랜드 홀에서 일본 조경가 특강이 열렸다. 두 개의 강연이 이어졌는데, 첫 강연자인 츠지모토 토모코(츠지모토 토모코 환경디자인연구소 소장)는 ‘가든 르네상스’를 주제로 강연했다. 츠지모토 토모코는 1995년부터 현재까지 츠지모토 토모코 환경디자인연구소를 운영하며 기적의 별 식물관 프로듀서를 맡고 있다. 토모코는 “가든 르네상스는 지역 전통으로서의 원예, 라이프 스타일이 각 지역과의 관계로부터 생겨나는 것을 인식”하는 데에서 시작한다며 “시민들이 협력하면서 친환경 문화를 계승하며 고향을 지켜나가는 것”이라고 설명했다. 그에 따르면 가든 르네상스는 4가지로구성된다. ‘녹지 공간 만들기’, ‘지역성·전통성을 계승하는 공간 만들기’, ‘주민 참여의 친환경 공간 만들기’, ‘순환형 사회구축을 위한 시스템 만들기와 교류 거점만들기’가 바로 그것이다. 토모코는 가든 르네상스를 일본의 섬 아와지에 적용하려는 계획을 세웠다. 아와지 섬 특히 섬의 북쪽 지역은 인구가 점차 줄어 소멸 위기에 처한 지역이었다. 주민들의 참여도가 낮았고 네트워크가 잘 구성되지 않는 등 여러 가지 문제점이 있는 곳이었는데, 토모코는 이를 해결하기 위해 가든 르네상스가 필요했다고 주장했다. 가든 르네상스를 통해 아와지 섬의 지역성을 활성화시키고자 한 것이다. 기적의 별 식물관은 토모코의 강연에서 가장 중점적으로 소개된 사례였다. 토모코는 식물관의 식재 설계를 했다. 이후 이곳에서 아와지 섬에서 유래한 전통 인형극을 공연하고 오페라와 연극, 뮤지컬 등 다양한 문화활동이 이루어졌다. 각종 식물들로 오감을 자극하고 아와지 섬의 지역성과 전통성을 계승하며, 다양한 문화 활동을 통해 주민 참여를 유도하는 등 여러 분야의참여형·순환형 사회 구축을 위한 시스템과 교류 거점을 만들려는 토모코의 노력들이 기적의 별 식물관에서 드러나 보였다. 아와지 섬의 남쪽 지역에도 가든 르네상스를 적용하려고 노력했다. 남쪽 지역에는 신사神社가 여럿 있는데, 토모코는 신사와 신사 사이의 길을 꽃의 거점으로 만드는 계획을 세웠다. 강연에서 특히나 인상 깊었던 점은 식물원에서 무대공연과 결혼식을 할 수 있다는 점이다. 대부분의 사람들은 식물원을 ‘식물을 관찰하고 학습하는 공간’으로만 생각하는데, 토모코는 ‘기적의 별 식물관’을 통해서 ‘식물원’이라는 공간을 재해석했다.두 번째 주제는 ‘지역 특성을 고려한 조경 디자인’이다. 쇼타 타카히사가 강연자로 나섰다. 쇼타 타카히사는 1992년부터 집합 주택, 상업 시설, 의료, 교육 시설, 이벤트 기획 등 다방면의 옥외 공간 토털 디자인부터 공사 감리까지 담당했다. 현재 공간창연空間創硏에서 조경디자인 및 공사 감리를 수행하고 있으며, 랜드스케이프 컨설턴트협회 칸사이지부 간사위원이자 홍보위원장으로 활동하고 있다. 타카히사는 지역 특성을 고려한다는 것은 “그 지역의 풍토나 문화를 디자인에 도입하는 일”이라고 설명했다. 여기서 풍토는 “그 지역의 기후, 지형, 기상, 지질이나 환경, 경관”이며, 문화는 “그 지역에서 살고 있는 사람들의 생활양식이나 전통”이라고 부연했다. 강연은 4가지 조경 디자인 프로젝트를 중심으로 진행되었다. 프로젝트 1은 ‘제30회 전국 도시 녹화 돗토리페어’다. 전국 도시 녹화 돗토리 페어는 돗토리 지역에서 자생하는 식물을 주제로 삼아 사계절의 변화를 사람들이 즐기는 행사다. 타카히사는 어떻게 하면 사람들이 가까운 야산의 아름다움을 재발견하도록 하고, 자생식물을 생활 공간에 도입하는 방법을 알려줄 수 있을까 고민했다. 프로젝트 2는 아리마 온천거리에 건축된 호텔 ‘아리마6채’다. 아리마 온천거리는 일본에서 유명한 천연 온천 마을인데, 아리마 온천거리는 거의 평탄지다. 때문에 로코산의 경사면을 이용해서 조성되었다. 프로젝트 3은 병원의 신설 공사에 수반되는 경관 재정비 사업이다. 아직 계획 중인 곳으로, ‘오사카후립 모자보건 종합 의료센터’다. 이 의료센터의 광장을 살펴본 결과 ‘환자와 병원에서 일하는 사람들의 동선이 불명확’하고, ‘공간의 세분화와 현황 수목의 재활용이 고려되어 있지 않으며’, ‘모두가 휴식할 수 있는 공간이 정리되어있지 않다’는 문제가 도출되어, 불필요한 계단을 철거하는 등 병원 내의 동선을 재정비하였다. 또한 보존해야 하는 수림은 병원에 그대로 두며, 테라스와 같이 사람들이 휴식할 수 있는 공간을 만드는 등의 노력을 했다. 프로젝트 4는 ‘야구장 철거지 상업 시설’이다. 일본 오사카시 남쪽의 야구장을 철거하고 상업 시설로 새로 만드는 프로젝트다. 타카히사는 이 부지에 사람들이 스포츠를 즐기는 상업 시설이라는 테마를 부여하고 작업을 진행하고 있다. 스포츠 관련 시설이 주로 입주할 계획인 이곳은, 현재 공사 중으로 오는 4월에 개장 예정이다. 타카히사는 “부지 주변을 꼼꼼히 살펴보고 분석하여 그 부지의 조건에 맞도록 설계하는 것이 중요하다”는 점을 강조했다. 이날 강연은 지역의 특성을 고려하고 사고하는 행동이 조경 설계에 있어서 중요하다는 걸 새삼 느끼게 했다.
ASLA Best Books 2014
미국조경가협회Ame r i c a n S o c i e t y o f L a n d s c a p e Architects(ASLA)는 2010년부터 매년 12월 10권의 ‘올해의 책ASLA Best Book’을 선정하고 있다. 주요 이슈를 다룬 책이나 학술적으로 주목할 만한 가치가 있는 책, 또는 이전에는 접하지 못한 주제를 신선한 시각에서 다룬 책 등이 주로 선정되었다. 본지는 ‘2014 올해의 책’10권을 소개한다. 1. 『어반 아큐펑처』 건축가 자이메 레르네르Jaime Lerner는 『어반 아큐펑처Urban Acupunture』에서 도시를 하나의 몸으로 비유한다. 동양의 침술 요법이 신체의 특정 부위를 찔러 특정한 치료 효과를 거두고자 하는 것처럼, 도시 속의 아주 작은 지점pinprick에서의 변화가 도시 전체로 번져나갈 수 있다고 주장한다. 저자가 쿠리치바Curitiba의 시장으로 재직할 당시 새로운 도로 교통 시스템Bus Rapid Transit을 도입하여 도시 전체를 생태 도시화했던 것처럼, 바르셀로나의 라 보케리아 시장La Boqueria Market에서 서울의 청계천 복원 사업까지 세계 곳곳에서 비슷한 현상을 확인할 수 있음을 보여주고자 한다. 2. 『베를린: 도시의 자화상』 베를린은 현대의 그 어떤 도시보다 파괴와 건설이 반복된 곳이다. 『베를린: 도시의 자화상Berlin: Portrait of a City Through the Centuries』은 이렇게 베를린이라는 도시만이 갖고 있는 불안정한volatile 모습을 24개의 삶을 통해 풀어내고자 한다. 중세의 창녀, 제1차 세계대전 당시 유독 가스를 발명했던 어떤 유대인 화학자, 베를린 장벽을 세우는 과정에 참여했던 한 무명의 공산주의자 등 주목받지 못했던 사람들의 삶이 5세기에 걸쳐 그려진다. 이 책은 이들의 삶의 방식, 그리고 그 속에 담겨있던 당시의 문학과 음악을 통해 도시의 본질을 드러냈다는 평가를 받고 있다. 3. 『경관의 재구성: 포토몽타주와 조경』 『경관의 재구성: 포토몽타주와 조경C o m p o s i t e Landscapes: Photomontage and Landscape Architecture』은 조경 설계에 있어서 가장 두드러지는 표현 기법의 하나인 몽타주 뷰montage view를 다룬다. 이 책은 제임스 코너, 아드리안 구즈Adriaan Geuze, 켄 스미스Ken Smith 등을 포함한 영향력 있는 현대 조경가와 예술가들의 작업을 통해 포토몽타주 기법이 어떻게 공간의 개념을 재현하고 간접적인 경험을 제시하는지 보여준다. 뿐만 아니라 초창기의 핸드 드로잉부터 현대의 디지털 방식까지, 포토몽타주를 활용한 경관 표현 기법의 차이와 발전 과정도 담아냈다. 이 책을 통해 재구성된 경관 속에 구축된 이미지constructed image가 어떤 역할을 하는지 확인할 수 있을 것이다. 4. 『변화하는 경관: 재생을 위한 혁신적 디자인』 기후 변화, 천연 자원 개발, 인구 이동과 같은 전 지구적인 이슈는 현대 조경 설계를 논하는 데 있어 빼놓을 수 없는 요소임에 분명하다. 『변화하는 경관:재생을 위한 혁신적 디자인Landscapes of Change: Innovative Designs for Reinvented Sites』은 이러한 사실이 디자인 프로세스에 어떤 변화를 가져왔는지, 어떤 디자인 전략을 필요하게 했는지, 또 어떤 측면에서 조경의 혁신을 일으켰는지 진단한다. ‘인프라스트럭처’, ‘후기 산업시대의 경관’, ‘식재된 건축’, ‘생태주의적 어바니즘’, 그리고 ‘식용 가능한 경관’이라는 주제에 묶인 25개의 프로젝트를 통해 과거와 현대 조경의 차이점을 확인하고, 나아가 미래의 조경을 예측해볼 수 있다. 5. 『상상하는 경관』 제임스 코너James Corner는 『경관의 회복Recovering Landscape』을 포함한 여러 편의 글과 그 실천이라 할 수 있는 뉴욕의 하이라인High Line 프로젝트를 통해 도시에 직면한 문제점을 해결하는 가장 좋은 방법은 산업 유산을 받아들이고 이용하는 것이라고 말해 왔다. 『상상하는 경관The Landscape Imagination: Collected Essays of James Corner 1990~2010』은 지난 20년간 학계에 발표된 코너의 글을 모은 것으로 그동안 조경계에 대두되었던 주요 이슈를 다루고 있다. 코너는 JCFOJames Corner Field Operations의 작업을 기반으로 이러한 글 속에 담긴 생각이 어떤 과정을 거쳐 실제 경관으로 구현되어 왔는지 설명한다. 6. 『멜론 스퀘어』 『멜론 스퀘어Mellon Square: Discovering a Modern Masterpiece』는 ‘현대의 경관: 전이와 변형Modern Landscapes: Transition & Transformation’ 시리즈의 두 번째 책으로 1955년 완공된 피츠버그Pittsburgh의 첫 번째 현대 정원 플라자garden plaza인 멜론 스퀘어의 발전 과정을 담고 있다. 이 책은 광장의 최종 결과물을 보여주는 데 집중하지 않는다. 디자인 발전 단계에 쓰였던 스케치와 식재 디테일, 구현된 모습에서는 느끼기 힘든 섬세한 생각이 적힌 디자인 노트, 나아가 핵심 디자이너들의 개인사까지 담아내며 설계 과정에 있어 어떤 요소가 결정적 요인으로 작용했는지 구체적으로 파고든다. 7. 『차세대 인프라스트럭처』 날이 갈수록 고밀화되고 복잡해지는 현대 도시를 산발적인 도시계획과 임시방편의 기반 시설 정비만으로 지탱할 수 있을까? 또는 그러한 방식으로 탄소 제약 조건과 기후 변화와 같은 전 지구적인 이슈에 대응할 수 있을까? 『차세대 인프라스트럭처Next Infrastructure: Principlesof Post-Industrial Public Works』는 이러한 질문에 답하려 한다. 캘리포니아의 마운트 포소Mount Poso 열병합 발전소에서 서울의 빗물 관리 시스템이나 싱가포르의 다목적 마리나 베리지Marina Barrage 프로젝트까지 희망적인 예를 제시한다. 나아가 이러한 개별 프로젝트가 도시스케일을 넘어 전 지구적 범위에서 얼마만큼의 경제적, 환경적, 사회적 의미를 지니는지 분석한다. 8. 『피플 해비타트: 건강한 녹색 도시를 위한 25가지생각』 미국 국민의 80퍼센트 이상이 도시와 부도심에 거주하는 것으로 조사되었다. 커뮤니티를 올바르게 이해하고 현실에 맞게 재정립하는 일이 그 어느 때보다 중요해졌으며, 인간이 만들어내는 환경 오염 물질에 대한 대처법에도 변화가 요구되고 있다. 『피플 해비타트: 건강한 녹색 도시를 위한 25가지 생각People Habitat: 25 Ways to Think About Greener, Healthier Cities』은 ‘사람들이 걷지 않는 이유’와 ‘녹색’ 하우징과 관련된 가벼운 담론에서 젠트리피케이션gentrifi cation과 같은 복잡한 문제까지 아우르며, 인류와 지구 모두를 위한 거주 생태계ecology of human settlement를 구현하는 방법을 지속가능성의 관점에서 제시한다. 9. 『프로젝티브 이콜로지』 지난 20년 동안 생태는 빠지지 않고 등장한 이슈이며, 이제는 새로운 계획을 수립하는 과정에서 생태주의적 설계를 염두에 두지 않을 수 없는 단계까지 이르렀다. 『프로젝티브 이콜로지Projective Ecologies』는 이러한 시점에 생태를 단순히 자연과학적 사고의 결과물로볼 수만은 없다고 주장한다. 현재 다양한 분야의 연구원, 이론가, 사회 평론가, 그리고 디자이너들이 생태를 보다 넒은 의미와 조건을 함축하는 메타포로 사용하고 있으며, 이는 생태를 기존의 적용 범위를 넘어 정치와경제, 그리고 사회적 함의까지 포함하는 단계에서 다시 정의할 것을 요구하고 있다는 것이다. 이 책은 이와 관련된 연구와 이론을 제시함과 동시에, 설계적인 가능성까지 모색하고자 한다. Gross.Max, JCFO, 숀 렐리Sean Lally, OMA, Stoss, West 8 등의 세계적 조경설계사무소에서 제공받은 이미지들은 책 전반에 걸쳐 현재 생태학적 설계와 관련 이론이 어느 수준까지 도달했는지 확인하는 데 큰 도움이 될 것이다. 10. 『어반 바이크 웨이 디자인 가이드』 NACTONational Association of City Transportation Offi cials에서 출간한 『어반 바이크 웨이 디자인 가이드Urban Bikeway Design Guide』는 미국 내 주요 자전거 도로의 규격, 법 체계, 운영 시스템 등을 조사·연구하여 하나의 가이드라인으로 정리한 책이다. 자전거 친화 도시별 특징과 관련 가이드라인이 담겨 있어 도시계획 과정에서 새롭게 교통망을 정리하거나 추가적인 자전거도로를 조성할 때 발생하는 문제점에 대한 해답을 찾을 수 있도록 구성했다. 다만 수록된 가이드라인이 미국 외의 국가에서 그대로 적용하기 어렵다는 점은 이 책의 한계로 지적되고 있다.
서울역 고가 설계공모 방식과 절차에 관한 논란
지난 1월 29일 서울시는 ‘서울역 7017 프로젝트’ 기자 설명회장에서 ‘서울역 고가 기본계획 국제지명 현상설계’를 1월 29일부터 4월 24일까지 실시한다고 밝혔다. 이와 동시에 장영호Chang Yung Ho(Atelier FCJZ), 후안 헤레로스Juan Herreros(estudio Herreros), 마르틴 라인-카노Martin Rein-Cano(TOPOTEK 1), 조성룡(조성룡도시건축), 비니 마스Winy Maas(MVRDV), 조민석(매스스터디스), 진양교(CA조경기술사사무소) 등 7명의 지명초청자도 공개되었다. 지명자들은 작품 제출 시 건축, 조경, 교량구조세 분야 컨소시움 형태로 참가해야 하며, 당선자에게는 실시설계권(설계비 13억7천2백만 원)이 주어진다. 심사에는 승효상(서울시 총괄건축가, 이로재 대표), 도미니크 페로Dominique Perrault(Dominique Perrault Architecture), 비센테 구알라트Vicente Guallart(Chief Architect of Barcelona City Council), 조경진(서울대학교 환경대학원 교수), 온영태(경희대학교 건축학과 교수), 송인호(서울시립대학교 건축학부 교수, 예비심사위원)가 참여한다. 지난 1월 12일 개최 예정이었던 ‘서울역 고가 전문가 토론회’가 지역 상인들의 반대로 무산되는 등 그간 서울역 고가의 보존과 재활용 자체에 대한 전문가 및 시민들의 논란이 컸던 만큼, 구체적 일정이 발표된 공모전에 대한 우려도 더욱 커지고 있다. 특히 지나치게 빠른 일정이 가장 큰 문제로 지적되고 있는 상황에서, 설계공모 공고와 동시에 지명초청 작가를 발표하는 등 폐쇄적인 공모 절차와 방식에 대한 논란이 증폭되고 있다. 이에 본지는 공모전을 주최한 서울시에 공모의 방식과 초청작가 지명 절차 및 기준 등에 관해 질의했다. 다음은 그에 대한 서울시(담당 도시안전본부 도로관리과)의 답변이다. 공모 방식과 절차 및 기준에 관한 서울시의 회신 “서울역 고가는 수명이 다한 구조물을 보행길로 재생(재활용)하는 사업으로 구조 안전성이 전제되어야 하는 사업입니다. 뿐만 아니라 주변의 많은 역사 문화유산과 연계하고 사람길로 전환에 따른 조경 식재 등 다양한 시설물 설치를 고려해야 하는 사업입니다. 이러한 점을 고려하여 조경, 건축 및 구조 분야의 협업과 창의적인 아이디어 도출 및 세계 저명한 디자이너의 참여를 유도하기 위하여 공모 방식을 지명초청 방식으로 결정하게 되었음을 알려드립니다. 지명초청자는 MP(전문위원)가 본 사업과 유사한 프로젝트를 수행하거나 당선자로 선정된 국내·외 저명한 디자이너를 복수 후보로 추천하고 ‘설계공모 추진위원회’에서 최종 지명초청자 7명을 결정했습니다. 선정 기준은 최근 당선 및 수상 경력, 업종 배분, 국가별 배분, 컨소시엄(구조·조경·건축) 가능 여부 등을 종합적으로 고려하였음을 알려드립니다. 공모 착수와 함께 지명초청자 전원 참가의향서를 받았습니다. 설계공모 공고는 「문화일보」와 「헤럴드경제」 신문 지면을 통해 지난 2015년 1월 29일에 공고하였음을 알려드립니다.” 본지는 이번 공모전의 전문위원(MP)인 김영준 대표(김영준도시건축)를 만나 설계공모의 형식과 절차 등에 대해 좀더 자세한 이야기를 들어 보았다. 김영준 전문위원과의 인터뷰 Q. ‘시민 소통 계획’의 일환에서 추진된 이번 공모전이 다양한 아이디어를 모을 수 있는 ‘공개공모’ 방식 대신‘지명초청’ 방식을 택한 이유와 배경은 무엇인가? A. 첫째, 이 프로젝트는 다양한 안이 필요한 경우가 아니다. (서울역 고가가 안전등급 D를 받은 상황이므로) 프로젝트의 일정상 시급함이 있고 구조적인 문제도 명확하게 드러나 있기 때문에, 이러한 중요한 문제들에 대해 정확하고 전문적으로 접근할 수 있는 사람들을 지명하는 방식을 택한 것이다. 둘째, 이 프로젝트는 과정이 중요하므로, 진행하면서 변화하는 상황과 흐름을 정확하게 전달하며 컨트롤 할 수 있어야 한다. 만약 공개공모 방식으로 진행한다면 불특정한 사람들에게 이러한 변화내용을 전달하기 어렵다. 또한 공모에 참가한 개개인이 이 프로젝트를 얼마나 중요하게 생각하는가에 따라 작품의 질이 달라질 수 있으므로, 우리는 지명자들에게 지속적으로 프로젝트의 중요성을 전달하고자 한다. 만약 공개공모라면 다수에게 이러한 강력한 동기부여를 하기 어렵지 않겠는가. 또한 공개공모의 경우, 응모작의 수는 많을 수 있으나 정작 좋은 안은 소수에 그치는 사례를 여럿 경험했다. 따라서 서울역 고가라는 프로젝트의 상황과 중요성에 적합한 공모 방식을 택한 것이다. Q. 어떠한 절차를 통해 7명의 건축가 및 조경가를 선정하였는가? 지명초청의 경우 대개 참가의향서(RFQ)나 개략 구상안(RFP)을 받는 과정을 거쳐 지명초청자를 선정한다. ‘서울역 고가 기본계획 국제지명 현상설계’의 경우, 참가의향서 공모 공고 및 적격 심사 등의 절차를 진행했는지, 만약 이러한 절차를 생략했다면 그 이유가 무엇인가? 또한 지명초청된 7명의 건축가 및 조경가는 각각 어떠한 기준과 이유로 선정된 것인가? A. 지명을 하는 방법은 여러 가지가 있고, 어떤 방식이 옳다고 말할 수 없다. 이번 프로젝트의 성격상 통상적 업역의 테두리 안에서 작업을 하기보다는, 건축이나 조경의 영역을 넘나들 수 있는 디자이너가 적합하다. 예를 들어, 건축가라 하더라도 조경 쪽으로 한 발 다가설 수 있는 지향점을 가진 사람이어야 한다. 이번 공모에서는 그런 작업에 경험이 있는 사람들을 초청한 것이다. Q. 건축가와 조경가의 안배가 있었나? A. 그간 이런 질문을 상당히 많이 받았다. 조경계 뿐만 아니라 도시 분야에서도 유사한 문제 제기가 있다. 그러나 이제 건축, 토목, 조경 이런 식으로 나누어 자신의 영역을 주장하기보다, 더 큰 건조 환경으로 생각했으면 한다. 일례로 최근 당인리발전소의 경우 각 영역별로 분리되어 서로 소통이 없는 것이 큰 문제다. 이번 공모전을 통해 도시와 접목된, 새로운 지향점을 가진 좋은 사례가 만들어진다면, 여러 건축가나 조경가들에게 전하는 메시지도 있지 않겠느냐. 또한 참여자들에게 건축·조경·구조의 협업을 전제로 작업의 결과를 요청했으므로 다른 분야의 참여자들이 당연히 포함될 것이다. 이제는 조경가들도 도시와의 접목을 지향하는 다양한 선례들을 만들어 보여줘야 한다. Q. 이 프로젝트를 두고 “너무 빠른 진행 과정 자체가 문제”, “과정도 작업의 일부”인데 그것이 간과된 것 같다는 지적들이 있다. 최근 해외 설계공모의 경향을 보면, 공모전 자체가 지역 주민 및 전문가들과의 적극적 소통을 통해 더 나은 해법을 찾아가는 과정으로 기획된다. 즉, 공모의 전 과정에서 이루어진 모든 논의와 경험을 공공의 지식, 공공의 성취로 확대하고있는 것을 볼 수 있다. 앞으로 공모를 어떻게 진행할 것인가? A. 당선안이 바로 실현되는 것이 아니라 중간에 많은 단계를 거칠 것이다. 민간에서 시작된 일과 공공이 하는 일은 좀 다르다. 민간에서 진행하는 일들은 조직을 만들고 틀을 짜는 데 거의 5~6년이 걸린다. 그러나 공공이 하는 일에는 기본적인 틀이 있고, 그 틀에 맞추어 진행된다. 공모는 공모대로 진행하고, 시민들과의 소통도 함께 진행할 것이다. 요즘도 상인회나 관련자들과 지속적으로 회의를 하고 있다. 이러한 논의 결과 중 중요한 내용을 공모에 반영하고, 당선안이 나온 후에도 논의를 반영하는 과정이 있을 것이다. 하지만 이번 프로젝트를 진행하면서 외부 의견을 듣기위해 자문회의를 하면, 할 때마다 매번 논의가 처음부터 다시 시작된다는 점이 어려움으로 다가온다. 프로젝트가 진행되고 있는 상황에서, 회의 때마다 절차의 문제를 지적한다면 자문회의는 계속 겉돌게 된다. 이미 어느 정도 틀이 잡혔다면 그 상황에 걸맞는 논의가 이루어져야 하지 않겠나. 물론 극단적인 상황을 가정한다면, 설계공모의 당선안을 뽑아 놓고 실행하지 않을 수도 있다. 그렇지만 지금은 그러한 이야기를 할 단계가 아니라고 생각한다. 서울역 고가 프로젝트는 단독 프로젝트가 아니라 네트워크 프로젝트라고 생각한다. 지난 기자 설명회에서 17개의 길이 부각되면서 다소 과장된 부분도 있지만, 이 프로젝트는 하나의 긴 프로젝트가 아니라 부분(퇴계로 주변, 한강대로 주변, 서울역 광장, 북부역세권, 만리동, 청파동 램프 등)으로 이루어진 집합체라고 생각한다. 예컨대 이번 설계공모는 ‘서울역 7017 프로젝트’라는 광범위한 재생 프로젝트에서 하나의 수단이다. 이 프로젝트를 통해 공공 프로젝트는 어떻게 진행해야 하는지 틀을 만들어야 할 것이다. 일례로 디자이너들이 설계공모 당선 이후 설계안이 변경될 수 있다는 두려움을 안고 있는 경우도 있다. 단순히 당선안을 결정하고 계약을 하는 것이 공모의 역할이라기보다 그 사이에서 조율을 잘 하는 것이 중요하다. 사회적 합의의 부재 서울역 고가 프로젝트를 둘러싼 논란은 대략 세 가지 방향으로 압축된다. 첫째, 교통 문제나 상권, 노숙자 문제의 대안에 대한 우려. 둘째, ‘서울역 고가가 과연 원형 그대로 보존해야 하는 근대 산업 유산인가’ 혹은 ‘그 유산을 기억하는 방식이 꼭 고가 보존이어야 하냐’는 문제. 마지막으로 빠른 추진 속도와 절차에 관한 문제다. 이 모든 논란에서 가장 선행되는 것이 바로 속도와 과정에 대한 우려다. 주최 측이 강조하고 있는 서울역 고가의 안전 문제가 사회적 합의나 공론화의 부재에 당위성을 부여할 수 있는지, 다른 임시 조치로 소통의 시간을 확보할 수는 없는지 의구심이 들지만, 이제 서울역 고가의 재활용 혹은 공원화는 이번 설계공모공고를 통해 기정사실화된 것처럼 보인다. 주최 측이 밝히고 있듯 ‘과정’이 중요한 프로젝트라면, 공모의 과정 역시 투명하고 좀더 소통적인 공모의 방식을 모색해야 하지 않을까. 최근 해외 여러 설계공모는 그것이 지명초청의 형식이든 공개경쟁의 방식을 취하든 설계지침서 작성 단계부터 지역 주민 혹은 전문가들과 소통하고 협업하며 지역의 문제를 이해하고 대안을 찾아가는 일련의 과정을 공모의 중요한 일부로 삼고 있다. 그러나 2014년 9월 박원순 서울시장의 서울역 고가 공원화 발언 이후, 10월 고가 개방 행사, 11월 서울역 고가 활용 방안 아이디어 공모, 2015년 1월 국제 설계공모 공고 그리고 5월초 당선작 발표까지 그 빠른 속도는 물론, 단계별로 베일을 벗듯이 진행되는 공모 진행은 기존의 공공 프로젝트 추진 방식의 틀에서 벗어나지 못한 것처럼 여겨진다. 추진 상황에 걸맞는 좀더 성숙한 사회적 논의가 이루어지기 어려운 점은 첫 단추가 서둘러 끼워지면서 이미 예견되었던 일이다. 지명초청자들이 적절한가, 혹여라도 주최 측의 의도대로 움직여줄 사람을 찾은 것이 아니냐는 의혹의 목소리는, 사회적 합의 없이 진행되는 과정에서 불거진 불신일 것이다. ‘보행 중심의 도시’와 ‘재생’의 가치만으로 여러 결정과 절차의 당위성을 확보하려는 태도는 서울역 고가 프로젝트에 우려의 시선을 보내는 시민과 전문가들이 소통의 당사자가 아니라 설득과 계몽의 대상에 불과한 것이 아닐까 하는 두려움을 불러일으킨다. 수많은 이해당사자와 관련 전문가들과 사회적 합의를 끌어내며 공공 프로젝트를 진행하는 일은 행정의 틀 안에서 일을 추진하는 입장에서는 상당히 지난하고 비효율적으로 여겨질 수 있겠지만, 그러한 과정이 지금 이 시대의 공공 프로젝트에 필요한 도전이 아닐까.
서울역 고가 공원화로 도보관광 네트워크 구축 추진
서울시는 지난 1월 29일 서울시청에서 ‘서울역7017 프로젝트’ 기자 설명회를 열고 서울역 고가 공원화 사업을 공식적으로 발표했다. 시가 발표한 서울역 고가 공원화 사업의 큰 방향은 “17개의 보행로를 신설해 서울역 주변을 역사·문화·쇼핑으로 연결되는 도보관광 명소로 탈바꿈”하는 것이다. ‘서울역 7017 프로젝트’는 두 가지 목표를 제시하고 있다. 17개의 보행로를 신설해 서울역 주변을 연결하는 도보관광 네트워크를 구축하는 것과 이를 통해주변 개발 계획과 연계해 시너지 효과를 창출하는 것이다. 부차적으로 서울역 주변의 녹지축을 연결하는 거점으로서 역할도 기대하고 있다. 서울역은 서소문공원, 숭례문, 서울성곽길 등으로 이어지는 요충지에 자리하고 있으나, 차량 중심 구조로 인해 주변과 연계성이 떨어진다는 문제가 지적되어왔다. 이에 고가를 활용해 서울역 주변을 ‘차량 중심’에서 ‘보행 중심’으로 바꾸어 네트워크를 구축하겠다는 것이 시의 입장이다. 구체적인 계획으로는 먼저, 서울역 광장에서 고가로 연결되는 상하부를 수직으로 연결하기 위해 에스컬레이터 등을 설치하고, 인근 빌딩 3~4층에서 고가로 바로 진입할 수 있는 접근로를 연결한다. 또한 퇴계로 접속 부분 고가는 직선거리에 있는 남대문시장, 남산공원으로 향하는 한양도성이 있는 곳까지 길이를 200~300m 연장하며, 중림동 램프는 북부역세권 개발을 위해 철거될 예정이다. 이는 현재 진행 중인 서소문역사공원 조성 사업과의 연계 가능성을 염두에 두고 있다. 서울역 고가 주변의 아파트 주민과 생업을 잇는 상인들 사이에는 서울역 고가 공원화 사업에 대한 입장에 온도 차가 있다. 거주민들은 주거 환경 개선 및 집값 상승 등에 대한 기대감을 비치는 반면, 봉제 업체와 남대문시장 상인들은 고가를 공원으로 만들 경우 인구 유입이 줄어들고 배달이나 물품을 들여오는 데 시간이 더 들어 생업에 영향을 미친다는 이유로 반대 입장을 표명해왔다. 이러한 이유로 남대문시장 상인들은 대체 교량 신설과 교통 대책 마련을 요구하고 있다.시는 이날 발표에서 남대문상인회가 제기해온 상권침체와 교통 체증에 대한 방안을 제시했다. 교통과 관련해서는 남대문시장을 경유하는 버스 노선을 놓고 광역버스와 공항버스 노선을 퇴계로로 분산시켜 대중교통 접근성을 강화하며, 퇴계로를 서울시티투어버스와 남산순환버스의 코스에 추가할 계획이다. 남대문 인근 도로는 왕복 6차로에서 4차로로 변경해관광버스, 조업차량, 오토바이 주차장 등을 신설하고 보도도 확장한다. 상권 침체에 대한 대책으로는 중림동 봉제 등 토착산업 활성화를 지원하고, 서계동 지구단위 계획구역 보완, 중림동 청소차고지 이전 등의 지원을 강화한다. 또한 서울시와 코레일, 민간 사업자 간 협력 체계를 구축해 서울역북부역세권 개발 사업과 ‘서울역7017 프로젝트’를 연동하며, 오는 12월까지 서울역 일대 종합발전계획을 수립해 도시 계획적 차원에서 지원 방안을 마련할 계획이다. 서울시는 사업 절차에 대한 논란과 반대 여론이 이는 것을 소통 체계가 미흡했던 것으로 판단, ‘시민위원회’와 ‘고가산책단’ 운영을 통해 시민참여형 의사결정 체계를 구축하고, 이해당사자 그룹(남대문상인회, 주변 건물주)과 전문가, 행정이 함께 고민하며 주기적으로 여론을 수렴해 나갈 예정이라고 전했다. 한편, 서울시는 오는 4월 24일까지 ‘서울역 고가 기본계획 국제지명 현상설계’를 추진하고, 당선작을 바탕으로 하여 2017년 준공을 목표로 사업을 시행할 계획이다.
Shared Cities
바르셀로나 현대문화센터Centre de Cultura Contemporàia de Barcelona(CCCB)는 2000년부터 2년마다 ‘유럽 도시 공공 공간 대상European Prize for Urban Public Space’을 개최해 왔다. 유럽 전역에서 재생되었거나 새로 조성된 공공 공간 중에서 잘된 곳을 선별하고, 그 결과를 유럽 곳곳의 주요 미술관 및 박물관에서 공개한다. 건축가와 도시설계가 등의 전문가와 시민이 같은 주제에 대한 생각을 공유할 수 있는 기회를 제공하여 더 나은 도시 경관을 만들어가려는 취지로 기획된 전시다. 여덟 번째로 열린 ‘2014 유럽 도시 공공 공간 대상’에는 194개 도시에서 총 274개 작품이 제출되었고, 그 중 두 개의 공동 당선작과 6개의 특별상, 그리고 19개의 최종 결선 진출작이 선정되었다. 핀란드건축박물관Museum of Finnish Architecture(MFA)에서는 3월 15일까지 ‘공유 도시Shared Cities’라는 제목으로 수상작들의 완공된 모습은 물론, 이러한 공간들이 어떤 과정을 거쳐 새롭게 재구성될 수 있었는지 확인할 수 있다. 본지에서는 공동 당선작 두 작품과 더불어 특별상 일부를 소개한다. 마르세유 ‘뷰포트’ 재생 사업, 공동 당선작 뷰포트Vieux-Port는 유럽에서 가장 큰 항구로서 과거 프로방스Provence 지역의 경제적 기반이었다. 20세기에 접어들면서, 뷰포트는 그 입지적 중요성과 아름다운 항구의 모습에도 불구하고 점차 사람들의 발길이 줄어들었고, 보행자의 안전도 보장할 수 없는 공간이 되어 버렸다. 2009년부터 진행된 뷰포트 재생 사업을 통해 차량의 접근이 제한되고, 보행자의 편의를 위한 여러 가지 시설이 도입되었다. 새로 건설된 부양식 부두floating dock는 다양한 수상 활동의 기반이 되고, ‘그랑드 옴브리에레Grande Ombrièe’라 불리는 1,000m2 면적의 직사각형 캐노피는 뷰포트를 찾는 사람들에게 새로운 경험을 제공한다. 유럽의 많은 항구 도시가 경제적 불황 속에 공공 공간으로서 제 역할을 못하는 가운데, 이 ‘오래된 항구’는 새로운 모습으로 더 많은 사람들을 끌어모으고 있다. 엘체 ‘브레이디드 벨리’, 공동 당선작 비날로포 강Vinalopo River은 스페인의 엘체Elche 지역을 지나면서 그 폭이 매우 좁아진다. 상류로부터 물이 과도하게 유입되거나 폭우가 쏟아지는 날이면 홍수 피해가 발생할 수밖에 없는 구조다. 1970년대 축조된 제방은 이러한 문제를 해결하는 데 성공했지만, 동시에 도시를단절시키는 결과를 낳았다. 2009년에 이르러, 시는 둑을 허물지 않으면서도 단절된 공간을 연결시킬 수 있는 방안을 찾고자 공모전을 개최했다. 당선작 ‘브레이디드 벨리Braided Valley’는 문자 그대로 벌어진 계곡을 다시 (교각으로) ‘땋아보겠다’는 의미를 내포하고 있는 작품이다. 3km의 선형 공원에 건설된 Y자 형태의 다리는 단절되었던 엘체 지역을 단순히 물리적으로 연결하는 것뿐만 아니라, 지역 커뮤니티 활성화에도 긍정적인 영향을 주고 있다. 알타흐 ‘이슬람 장례식장’, 특별상 알타흐Altach는 오스트리아에서 가장 많은 이슬람교도가 살고 있는 지역이다. 커뮤니티가 확장됨에 따라 종교 행사는 물론 장례식을 치를 공간마저 부족하게 되었고, 알타흐 시는 새로운 이슬람교식 장례 공간을 조성하게 되었다. 무살라Musallah(이슬람교 예배당)를 비롯한 모든 장례 공간은 메카Mecca를 향하고 있으며, 5개의 묘지와 죽은 자의 몸을 씻기는 세정소도 마련되어 있다. 9년에 걸친 충분한 자료 조사와 의견 수렴을 통해 완성된 이 새로운 종교 시설은 이민자와 같은 소수 집단의 필요를 충족하는 현대적 공공 공간으로 평가받고 있다. 리폴 ‘라 리라’ 극장 재생 사업, 특별상 스페인 리폴Ripoll 지역 의회는 수년간 버려져 있던 ‘라리라La Lira’ 극장의 새로운 이용 방법을 찾기 위해 지난 2003년 설계공모를 개최했다. 당선된 아란다 피젬 비랄타 아키텍츠RCR Aranda Pigem Vilalta Arquitectes SLP는 ‘라 리라’ 극장의 부식된 벽면을 헐어버리지 않고, 구조체 내부를 보강하는 보존 중심의 설계안을 제시했다. 이 설계안에는 특별한 장식이나 추가되는 공간도 없지만, 오히려 극장이 기존 경관과 쉽게 어우러지도록 계획되었다. 현재 새로운 옷을 입은 극장은 마을의 입구 광장으로 활용되고 있을 뿐만 아니라, 19세기에 조성된 마을 시장과 기차역 주변 상권에 활력을 불어넣고 있다. 런던 ‘라인햄 습지’, 특별상 라인햄 습지Rainham Marshes는 런던의 동쪽 경계를 이루고 있는 범람원으로서 북쪽의 템스 강Thames River까지 이어진다. 이 지역은 런던이라는 대도시에 인접하고 있음에도 불구하고 여전히 중세 시대의 경관적 특징을 유지하고 있으며, 철새 도래지와 희귀 식물의 서식지라는 점에서 국가 차원의 보호가 이루어지는 곳이기도 하다. 시당국은 시민에게 새로운 경험을 제공함으로써 자연스러운 환경 보호 교육이 이루어질 것이라 기대했고, 지난 2006년부터 왕립조류보호협회Royal Society for the Protection of Birds의 협조 하에 벤치와 같은 간단한 시설물부터 조류 관찰대와 같이 적극적인 체험을 유도하는 시설물까지 단계적으로 도입하게 되었다. 런던 시민들은 런던 내에서 이와 같은 특별한 자연 환경을 만나볼 수 있다는 것이 라인햄 습지의 가장 큰 장점이라 말하고 있다. 헬싱키 ‘바아나’ 차 없는 거리, 특별상 핀란드어로 철로를 뜻하는 바아나Baana는 도심 한 가운데를 관통하는 길이 1.5km, 깊이 7m의 철로였다. 2008년에 이 철로의 종착점인 랜시사타마Läsisatama항구가 폐쇄되었고, 바아나에도 더 이상 기차가 오가지 않게 되었다. 시당국은 버려진 철로가 도시 경관을 저해한다고 판단하여 이 곳을 덮어버릴 계획을 진행하지만, 그 비용과 공사 완료까지의 시간을 감당하기 어려웠다. 시민 공청회에서는 보행자와 자전거를 타는 사람들을 위한 공간으로 만들자는 의견이 제시되었고, 자전거 전용 도로와 도심에서 연결되는 보행 슬로프가조성되었다. 일시적인 방책으로 진행되었던 이 계획은 특한 경관의 ‘차 없는 거리’로 전했고, 여전히 많은 사람들이 이용하는 공공 공간으로 기능하고 있다.
[시네마 스케이프] 와일드
영화가 시작되고 5분 만에 나는 후회했다. 그녀가 첫 발을 내디디며 내뱉은 첫 대사처럼. “내가 미쳤지. 내가 미쳤어.” ‘와일드Wild’(2014, 한국에서는 2015년 1월 개봉)는 스물여섯살 먹은 여자 혼자서 자기 몸무게보다 더 무거운 배낭을 메고 지옥의 트래킹 코스라불리는 퍼시픽 크레스트 트레일Pacific Crest Trail(이하 PCT)을 완주한 실화를 그린 영화다. PCT는 미국 서부 태평양 연안의 긴 등산로로 남쪽의 멕시코와 접한 캘리포니아 주에서 북쪽의 캐나다와 접한 워싱턴 주까지 이어지는 장장 4,285km의 코스다. 사막, 눈덮인 고산 지대, 광활한 평원과 활화산 지대까지 인간이 경험할 수 있는 모든 자연 환경을 거쳐야 완주할 수 있다. 실재 인물인 셰릴 스트레이드Cheryl Strayed는 평균 150일 정도 걸리는 코스를 94일 만에 완주했다. 해피엔딩을 알고도 영화를 보는 이유는 결과에 이르는 과정을 통해 얻고자 하는 것이 있기 때문이다. 역경을 딛고 결국 목표를 성취해내는 주인공을 보며 카타르시스를 맛보거나, 인간의 손이 미치지 않은 대자연의 멋진 경관을 관찰자 시점에서 감상하게 될 것을 기대했다. 그러나 영화는 이러한 예상을 빗나간다. 개인적으로 영화가 시작되자마자 후회가 밀려오더니 영화를 보는 내내 답답하고 마음이 무거워졌다. 동행이 있었다면 소주라도 한잔하면서 가슴속 돌덩이를 부숴야 할 것 같았다. 응어리를 품은 채 며칠이 지났다. 카타르시스는 대체로 관객이 주인공의 결핍에 동의하거나 주인공에게 감정을 이입할 때 충족된다. 장 마크 발레Jean Marc Vallee 감독은 주인공이 겪은 과거를 시간 순서로 설명하지 않고 현재의 여정 중간에 행복했던 기억, 지우고 싶은 순간을 파편적으로 교차시킨다. 다 자란 성인 여자가 어린 시절의 기억과 어머니의 갑작스러운 죽음으로 인해 스스로 나락으로 떨어지는 상황을 온전히 이해하기 어려웠다. 왜 그토록 스스로를 바닥까지 내몰았으며 무엇이 그녀를 지옥의 트래킹 코스로 오게 했을까. 평균 150일 넘게 걸리는 코스를 94일에 완주할 때 겪을 법한 육체적 한계에 대한 묘사는 그리생생하지 않다. 발톱이 빠져 피투성이가 된 발을 샌들에 의지한 채 다시 걸을 뿐이다. 그녀의 어깨와 등에 난 상처만으로는 배낭의 무게감을 느끼기 어렵다. 오히려 온전히 홀로인 그녀의 외로움과 그녀 내면의 상처가 그녀가 짊어진 짐보다 훨씬 무거워 보인다. 물리적인 환경을 어떻게 극복하는지 보여주기보다는 내면의 상처를 끊임없이 노출시킨다. 관객은 그녀의 쉽지 않은 여정에 꼼짝없이 동참할 수밖에 없다.
[100 장면으로 재구성한 조경사] 젠틀맨의 놀이터
#39 ‘하하’의 존재 이유 스토우Stowe 정원이 어느 정도 자리 잡혀 가자 윌리엄 켄트William Kent는 라우샴Rousham 정원과 스타우어헤드Stourhead 정원 작업에 착수했다. 이들은 모두 켄트의 대표작으로 꼽히는 정원일 뿐만 아니라 지금도 영국에서 가장 아름다운 풍경화식 정원을 말할 때 빼놓을 수 없는 작품이다. 조경사를 공부하다 보면 누구나 켄트의 세 대표작, 스토우 정원, 라우샴 정원, 스타우어헤드 정원을 접하게 된다. 당시에 이들 정원은 ‘아방가르드’ 정신의 산물로 이해되었다. 완전히 새롭고 모던한 것이었다. 당시 켄트의 정원을 접한 사람이라면 모두 그의 정원을 따라하고 싶지 않았을까? 이제 자신의 영지를 풍경화식으로 개조하는 젠틀맨1들이 속출하기 시작했다. 1730년대 젠틀맨 클럽의 가장 큰 화제는 ‘정원 만들기’였다. 1739년에 발행된 『커먼 센스Common Sense』2라는 저널에 이런 기사가 실린 적이 있다. “요즘은 젠틀맨이 모이면 인사를 나눈 뒤 바로 ‘나는 요즘 시멘트와 흙을 가지고 노느라 여념이 없네’라고 자랑하기 일쑤다.” 이 무렵 풍경화식 정원은 한국에서 한창 유행하던 골프보다 더 빠른 속도로 확산되었던 것 같다. 이렇게 유행이 되다 보니 본래 스토우 정원에서 추구했던 정치적, 사회적 이상을 담은 이념성이 점점 희미해져 갔다. 누가 정원 건축물을 더 근사하게, 더 많이 세우는가 경쟁이 벌어졌고, 그림처럼 픽처레스크하게 만드는 데 모두들 주력하는 듯싶었다. 각자의 취향에 따라, 예를 들어 페트레 남작Lord Petre (1713~1743)처럼 식물 수집, 재배와 배치에 전념하는 경우도 있었고, 캐롤라인 왕비가 켄트에게 넌지시 언질을 주었던 ‘풀 뜯는 소와 밭 가는 농부의 평화로운 장면’을 그림에 포함시키고자 애쓰는 젠틀맨도 적지 않았다. 후자의 경우를 두고 ‘장식 농장ornamental farm’이라는 명칭이 생겨났다. 영국의 풍경화식 정원이 어마어마한 규모를 자랑한다는 것은 잘 알려져 있다. 작게는 몇십만 평에서 크게는 몇백만평까지 이른다. 그렇다면 직업을 갖지 않고 물려받은 재산만으로도 먹고 살만큼 당시의 젠틀맨이 돈과 시간이 많았다고 하더라도 대체 어떻게 그 넓은 땅에 그렇게 빠른 속도로 정원을 만들 수 있었던 것일까? 대답은 간단하다. 이미 기초적인 풍경이 있었기 때문이다. 새로운 정원의 이상적 모델로 부상했던 ‘목가적 풍경’이 사실은 영국의 전원을이미 지배하고 있었다. 영국은 이미 중세부터 주요한 양모 수출국이었으므로 드넓은 목초지가 있었고 사냥과 목재생산을 위한 깊은 숲을 보유하고 있었다. 영지를 적시며 흐르는 강물이 있었고 강에는 물레방앗간이 있었으며 물을 막아 연못을 만들어 물고기를 길렀다. 이러한 환경은 중세의 장원에 필수적인 요소들이었다. 게다가 이 풍경의 소유주였던 지주 계급의 젠틀맨은 이미 근사한 저택과 비록 ‘구식’이나마 넓은 정원을 보유하고 있었다. 문제는 기존의 정형식 정원을 철거하고 새로 지을 것인가 아니면 그에 잇대어 풍경화식으로 지을 것인가 등이 었다. 보통은 기존의 정형식 정원을 그대로 두고 토지를 더 할애하여 풍경화식으로 꾸미는 경우가 많았다. 본래의 경관이 워낙 훌륭하다보니 스타파주staffage를 배치하고 자연스러운 형태로 연못을 파고 수목을 적절히 심어주면 원하던 풍경이 어느 정도 연출됐다. 본래는 정원과 그 외곽에 펼쳐지는 전원 풍경을 구분하기 위하여 정원 주변에 담장을 두르곤 했으나 자연스러운 풍경을 추구하다 보니 담장이 눈에 거슬렸다. 정원과 외곽의 전원 풍경이 서로 단절되지 않도록 ‘하하ha-ha’라는 ‘선큰담장 시스템’을 도입했다. 하하는 풍경화식 정원의 발명품으로 널리 알려져 있다. 엄밀히 말하자면 프랑스의 데자이에 다르장빌Antoine-Joseph Dezallier d’rgenville (1680~1765)3이라는 바로크 정원가가 처음으로 선보였고, 더 엄밀히 말하자면 이미 1695년에 영국에서 일하던 어느 프랑스 정원가가 선큰 담장을 만들었다고 한다. 이런 사실로 미뤄 보아 프랑스에서는 이미 선큰 담장이 꽤 실용화되었던 것으로 보인다. 엄격한 바로크 정원과 주변의 과수원, 농장을 구분하기 위해 적용했다. 데자이에 다르장빌은 1709년, 『정원 조성의 이론과 실제La Théorie et la Pratique du Jardinage』라는 방대한 내용의 책을 발표하고 선큰 담장의 원리를 설명했다.4 이 책은 1712년 영어로 번역되었다. 스티븐 스위처Stephen Switzer(1682~1745)라는 런던의 정원가가 그 책을 읽고 선큰 월의 아이디어가 썩 쓸모 있다고 여겼다. 당시엔 아직 ‘하하’라는 용어가 없었고 다만 ‘움푹 들어간 담장’으로 설명했다. 스위처는 1718년에 발표한 자신의 정원 서적에서 다르장빌을 인용하고 스케치까지 정성스럽게 그려서 삽입했다. 스위처는 젠틀맨 클럽에 끼지 못하는 정원가였다. 젠틀맨이 모두 두 팔 걷어붙이고 정원을 만들던 시대였으므로 스위처 같은 정원가들은 그늘에 묻힐 수밖에 없었다. 스위처 또한 위탁을 받아 조성한 여러 정원이 있지만 딱히 내세울 만한 것은 없다. 랜슬롯 브라운Lancelot Brown(1716~1783)이라는 젊은 조경가가 홀연히 나타나 스위처가 만든 작품들을 쓸어버리고 자기 방식으로 재구성했기 때문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스위처가 역사에 남을 수 있었던 것은 부지런히 글을 썼기 때문이다. 오랜 실무 경험을 바탕으로 평생에 걸쳐 쓰고 발표한 정원 이론을 묶으니 천 페이지가 넘는 방대한 서적(『Ichnographia Rustica』)이 되었다. 후세의 학자들 사이에서는 스위처의 업적이 과소평가되고 있으니 재평가해야 한다고 보는 견해도 나오고 있다. 어쨌든 윌리엄 켄트의 전임자 찰스 브리지맨Charles Bridgeman(1690~1738)5이 스토우 정원에 처음으로 하하를 도입했고 초기에 그와 함께 일했던 윌리엄 켄트가 이를 정원 전체 경계로 확장했다. 이들의 작업을 옆에서 꾸준히 지켜보았던 호레이스 월폴 경Horace Walpole(1717~1797)6 은 당시의 상황을 이렇게 묘사했다. “정원의 경계를 허물고 그 자리에 도랑을 판 뒤 그 안에 담장을 세운다는 아이디어는 실로 기발했다. 별 생각 없이 산책하던 사람들이 갑자기 움푹 들어간 담장을 만나면 ‘하! 하!’라고 감탄사를 외치지 않을 수 없다.”7 감췄다고 해서 담장이 아예 없어진 것은 아니다. 담장이나 울타리는 본래 방목지에서 풀을 뜯는 양떼들을 보호하기위해 세웠다(이어지는 ‘인클로저-풍경의 사유화 과정’ 참조). 정원 문화가 발달하면서 정원과 전원이 구분되기 시작했다. 이제는 가축이 정원으로 들어오는 것을 막기 위해 울타리로 정원을 둘렀다. 풍경화식 정원에서는 이를 도랑 속에 감추어 마치 정원과 전원이 하나의 풍경인 것처럼 눈가림했고 이렇게 탄생한 하하의 기막힌 눈속임은 지금도 요긴하게 쓰이고 있다. 분노한 환경주의자들이 산업 재벌의 영지에 막무가내로 들어오는 것을 막기도 하고 서민과 권력자 사이의 경계를 ‘민주적’으로 위장하는 데 쓰이기도 한다. 고정희는 1957년 서울에서 태어나 어머니가 손수 가꾼 아름다운 정원에서 유년 시절을 보냈다. 어느 순간 그 정원은 사라지고 말았지만, 유년의경험이 인연이 되었는지 조경을 평생의 업으로 알고 살아가고 있다. 『식물, 세상의 은밀한 지배자』를 비롯 총 네 권의 정원·식물 책을 펴냈고,칼 푀르스터와 그의 외동딸 마리안네가 쓴 책을 동시에 번역 출간하기도 했다. 베를린 공과대학교 조경학과에서 ‘20세기 유럽 조경사’를 주제로 박사 학위를 받았다. 현재는 베를린에 거주하며 ‘써드스페이스 베를린 환경아카데미’ 대표로 활동하고 있다.
[그들이 꿈꾼 도시, 우리가 사는 도시] 도시 밖의 도시, 도시 안의 도시
제기동, 구로4동, 황학동 제기동 약령시장, 남구로역 주변의 빌라 지구, 황학동 중앙시장과 같은 지역을 거닐다 보면, 언뜻 유사해 보이는 서울 내 저층 고밀지의 다채로운 모습에 놀라지 않을 수 없다. 제기동 청량리역에 인접한 약령시장과 청과물시장 일대는 1934년 6월 조선총독부가 제정한 ‘조선시가지계획령’에 따라 서울 밖 교외 주거지로 낙점된 곳이다.1 이후 1980년대까지 지속된 토지구획정리사업을 통해 양호한 주거지 조성을 위한 기반 시설이 들어서지만, 온전한 주거지로 자리를 잡기보다는 1960년대 전후부터 전국의 약재상과 청과물 도소매 상인의 주요 활동 무대로 널리 이용된다(그림1). 황학동에는 한국전쟁 이후 벼룩시장이 개설되었고, 이는 점차 주방 기구부터 각종 식자재와 양곱창을 판매하는 초대형 재래시장으로 성장하게 된다. 여기서는 물품 판매만 이루어지는 것이 아니다. 식당을 개점하려는 자영업자들에게간판과 메뉴, 식자재와 주방 용품을 포함한 원스톱 창업 컨설팅도 제공되고 있다. 하지만 최근 왕십리 뉴타운과 청계천 변 주상 복합 개발, 그리고 동대문 패션 상가의 변용과 함께 황학동은 도심 속 변두리 공간으로 서서히 쇠퇴하고 있다(그림2). 구로동은 개발이 본격화되지 않았던 1960년대 초 서울시 정책에 따라 영등포 부도심권의 커뮤니티 센터—이를테면 불광동이나 수유동과 유사한 기능—로 지정되었다.2 비교적 영세한 주택지가 우선 개발된 후, 1990년대 다세대 주택과 아파트가 집중적으로 들어서면서 서울에서 가장 인구 밀도가 높은 지역으로 남게 된다.3 그럼에도 토지구획정리가 일괄적으로 시행되지 않았기 때문인지 격자형과 자연 발생형 가로가 혼재되어 있고, 과소 필지와 부정형 필지가 다수 남아 있다. 여기까지는 세 지역이 어떻게 서로 다른 모습을 갖게 되었는가에 대한 이야기다. 신시가지로 조성된 서울의 구시가지 세 지역은 이러한 차이점과 함께 흥미로운 공통점을 가진다. 모두 20세기 중반 사대문 밖 ‘신시가지’로 개발된 21세기 서울의 저층 ‘구시가지’라는 점이다. 이들 대상지는 1920~1940년대까지 논밭이었거나 혹은 일부 가옥이 점유하고 있는 미개발지였다. 도심부 인근이라 고용 중심지로부터의 접근성이 좋았고, 넓고 평평한 배후지를 갖고 있어 해방 전후 신시가지 개발을 위한 적지로 여겨졌다. 1940~1960년대 이후 주요 시가지 개발이 시작되면서 다양한 사회적 계층의 사람들이 유입되었다. 현재 다수의 노후화된 주택과 퇴색한 상업 판매 시설이 뒤섞여 있고, 이 지역 안팎으로는 각종 뉴타운과 지식 산업 단지가 개발 중이다. 사람으로 비유하자면 이러한 서울의 구시가지는 기성 세대와 신세대 사이에 있는 ‘낀 세대’다. 수백 년에 걸쳐 역사 문화 자원을 축적한 구도심이나 현대적인 감각으로 단장한 신시가지 사이 그 어디에도 속하지 못한 어정쩡한 주변인이다. 늘 전환기의 위기에 내몰리면서도 구도심과 신시가지가 누리고 있는 각종 혜택으로부터 배제되는 경우가 많다. 사회적으로는 오래 거주한 사람과 철새처럼 떠돌아다니는 사람이 뒤섞여 있어 상인들의 결속력도, 거주지의 사회적 자본도 취약한 편이다. 생활 환경에 대한 만족도가 아주 낮지는 않지만 대체로 쇠퇴가 진행 중이라고 느끼고 있으며, 오랫동안 그 자리를 지켜왔던 판매 시설 임차인들마저도 상권 쇠락에 따른 무력감을 호소한다(그림3). 그럼에도 전면 철거 후 재개발의 대상이 될 만큼 심각하게 낙후되어 있지는 않다. 토지 소유 구조도 매우 복잡하고, 더욱이 최근 왕십리 뉴타운과 같은 21세기형 재개발로부터 20세기의 저층 시가지를 보호해야 한다는 사회적 인식이 널리 퍼져 있다. 신시가지의 구시가지화 이렇게 오늘날 서울의 구시가지는 대체로 전환기의 주변인으로서 정체와 쇠퇴, 그리고 가까운 과거에 대한 향수와 복고가 공존하는 장소다. 그렇지만 이 지역은 ‘개발이냐 보존이냐’는 식의 이분법적 처방전이 요구되는 곳이 아니다. 오히려 나는 이렇게 과거의 신시가지가 오늘날의 구시가지가 되면서 때로는 낙후되고 때로는 새로운 수요에 적응하는 과정을 통해 진정으로 도시다운 특질을 갖게 된다고 믿는다. 도시 공간의 낡음과 닳음, 개별 건축물에 대한 다시쓰기와 고쳐쓰기, 그리고 새로운 용도를 담기 위한 점진적 재개발을 통해 소박하지만 자연스러운 멋과 일상의 격이 자리를 잡을 여지가 생긴다. 이렇게 성숙미를 더해가고 있는 지역의 사례는 국내외 여러 도시에서 찾아볼 수 있다. 미국 맨해튼 동쪽에 있는 브루클린이 그러한 예다. 최근 「뉴욕타임스」에 따르면 ‘브루클린 브랜드Brooklyn brand’나 ‘브루클린 라이프 스타일Brooklyn lifestyle’이 전 세계 여러 나라에서 주목받고 있다고 한다.4 런던에 위치한 복합 문화 클럽인 ‘브루클린 볼Brooklyn Bowl’, 스톡홀름에서 맛볼 수 있는 ‘브루클린 맥주’, 독일과 스위스 등에서 널리 판매되고 있는 ‘브루클린 스펙터클즈Brooklyn Spectacles’ 안경은 브루클린 브랜드가 해외 수출에 성공한 사례다. 더 이상 값비싼 맨해튼에 대한 저렴한 대체재로서가 아니라 재능 있는 예술가나 젊은 창업가, 스타일리스트가 새로운 일에 도전하고 자유로움을 만끽할 수 있는 최적의 장소로 여겨지면서 브루클린은 제2의 전성기를 누리고 있다. 하지만 브루클린이 처음부터 이러한 지역성을 갖고 있던 것은 아니다. 브루클린은 1810년대 맨해튼에서 증기선이 왕래하기 시작하면서 새로 개발된 신시가지다. 더 정확히 이야기하면 지금으로부터 약 200년 전 뉴욕 외곽에 만들어진 신규 교외 주거지이자 지금의 구시가지인 셈이다.5 1920년대 자동차의 대중화와 함께 폭발적인 도시화를 겪었지만, 20세기 후반 지역의 쇠퇴와 함께 각종 폭동과 사회 문제의 진원지로 전락하기도 했다. 이렇게 신시가지가 구시가지로 변하면서 새롭게 형성된 지역성이 오래된 지역성을 대체하고, 부분적인 증축과 재개발이 이루어지게 된다. 나아가 지역을 대표하는 사회적 구성원이 이러한 변화를 주도할 때 비로소 모방하기 어려운 도시의 품격이 발현된다.
[그들이 설계하는 법] 새로운 현실
아카데미의 지원 김정윤(이하 김): 양화한강공원 프로젝트를 마치고 난후, 오하이오 주립 대학교에서 좋은 소식이 들려왔습니다. 글림처 특훈 교수Glimcher Distinguished Professor로 방문해 달라는 내용이었죠? 박윤진(이하 박): 포트폴리오를 제출한 후 파이널 리스트까지 올라갔다는 것을 알고는 있었지만, 막상 초청받고 보니 우리 같이 젊은, 그것도 서울을 중심으로 활동하는 한국 작가에게 기회를 주었다는 것에 무척 감사했습니다. 그 전 초청자들은 피터 워커Peter Walker, 켄 스미스Ken Smith, 마이클 반 발켄버그Michael Van Valkenburgh 등 미국에 주요한 업적을 남긴 랜드스케이프 아키텍트landscape architect들이었습니다. 김: 심지어 우리 다음해에는 아드리안Adriaan Geuze이 초청되었죠? 박: 그렇습니다. 어떻게 보면 우리는 아드리안의 후학인데, 후학이 선학보다 먼저 초청받은 경우네요. 김: 나중에 들은 이야기이지만, 오하이오 대학교의 결정에는 가능성이 보이는 젊은 작가들을 발굴하고 지원하겠다는 의도가 담겨있었다고 합니다. 스토스Stoss의 크리스 리드Chris Reed도 우리의 경우와 비슷한 의도에서 선정되었다고 했지요.아무튼, 친환경 재생 에너지에 관한 스튜디오를 진행했고, 우리의 강연에 상당히 많은 사람들이 모였지요. 대강당이 거의 꽉 찼고, 반응도 상당히 좋았던 것으로 기억합니다. 특히 양화 프로젝트에 관한 질문이 많았고, 당시 건축학과장도 깊은 관심을 보였습니다. 나무를 뽑는 아주 나쁜 랜드스케이프 아키텍트What a bad landscape architect!라고 말입니다. (하하) 박: 힘든 프로젝트를 마치고, 그것의 과정과 결과를 나누는 자리였습니다. 많은 사람들이 격려해 주었고, 이분야에 기여했다는 자부심이 생기는 순간이었습니다. 김: 또한 어너레리움honorarium(상금)도 그 당시 우리 사무실 수익보다 좋았지요? 박: 그렇습니다. 다음해인 2012년에는 호주 멜버른 대학교의 초청을 받아 전시와 특강, 워크숍을 진행했죠. 우리가 싱가포르에서 윌리엄 림William Lim과 출판한 『강남 대체 자연Gangnam Alternative Nature』이 그 계기가 되었다고 했습니다. 서울의 정체성을 한옥이나 과거의 패브릭이 남아있는 강북에서 찾고자 했던 것이 일반적인 연구 동향이었던 반면, 우리는 그것을 강남에서 찾은 것이죠. 싸이의 강남 스타일이 2012~2013년에 유행했으니까, 그 전에 강남을 세계에 알린 셈이네요. 물론, 아주 다른 방식으로 말이죠. 사실 저와 김대표 모두 어린 시절을 강남에서 보냈으니, 매우 자연스러운 결과물이라 할 수 있겠습니다. 아무튼, 멜버른대학교로부터 가족 동반 비즈니스석 티켓, 최고의 숙소와 시급 그리고 귀빈 만찬까지, 싸이 급에는 못 미쳤겠지만, 디자이너로서는 최고의 예우를 받았습니다. 김: 멜버른 대학교의 젊은 교수들이 학장의 요구에 따라 전도유망한 아키텍트를 찾게 되었고, 그 과정에서 우리가 포착되었다고 했지요? 일면식도 없던 초청 담당 교수와 만나 이야기를 나눠보니, 왕슈王澍(당시에 프리츠커상을 수상한 중국의 건축가)도 몇 년 전에 같은 프로그램으로 초청했다며, “너희들도 프리츠커상을 받을 것”이라고 격려를 해주었지요. 박: 그리고 당시 강연도 매우 성공적이었죠? 청중은 400명 이상 왔었고, 청중과의 호흡도 매우 좋았습니다. 호주의 한 설계사무소 대표가 “우리 사무실은 규모가 작아 양화한강공원같은 대규모 프로젝트를 수행할 수 없다”고 했는데, 알고 보니 그 설계사무소는 우리의 3배 규모였습니다. 무척 놀라더군요. (하하) 그리고 당시강연에서 만났던 건축과의 한국 학생들도 우리를 매우 자랑스러워했어요. 김; 네. 바쁜 일정으로 인해 밥 한 끼 사주지도 못했네요. 아무튼, 이 시점에 우리가 수행했던 프로젝트가 상암동에 위치한 SBS 프리즘 타워입니다. 미디어를 다루는 방송국의 속성상 브랜드와 아이덴티티가 중요하게 부각되었습니다. 클라이언트는 미디어 아트와 인테리어 그리고 외부 공간을 다루는 협업 팀 세 곳을 초청하여 지명설계공모를 진행했고, 결국 우리가 당선되었지요. 수퍼 클라이언트 박: 클라이언트의 의도가 흥미로웠어요. 상암동 미디어시티에 위치한 주변 다른 방송국 건물과 비교해 볼 때 건물의 형태, 기능 그리고 외장 등은 최대한 단순하게 설계하되, 외부 공간과 인테리어를 통해 방송국의 아이덴티티를 찾고자 했으니까요. 조경 면적이 200평 정도밖에 되지 않는 정말 작은 공간이기 때문에 보통 관행적으로 하자면 설비나 토목에 끼워 넣어서 그저 나무 몇 그루 심고 마무리했을 만한 땅이잖아요. 우리에겐 이런 작은 공간을 기회의 땅으로 만들어 보고자 생각했던 클라이언트―수퍼 클라이언트(Super Client)―를 만난것 자체가 좋은 시작이었습니다. 김: 특히, 우리의 아이디어 프레젠테이션을 통해 공감대가 형성되었습니다. 박:설계공모 때 우리가 만들었던 초기 아이디어는 무엇이었죠? 김: 우리는 디자인 초기에 먼저 SBS의 목동 본사 건물과 그 주변을 리서치했어요. 민간 기업의 소유이지만 공공재라 할 수 있는 방송을 만들어내는 건물의 랜드스케이프는 방문자에게 확실한 아이덴티티를 보여줄 수 있어야 한다고 생각했기 때문이죠. 그런데 목동 본사는 방송국의 로고만 있었을 뿐 공간적으로는 SBS만의 아이덴티티를 충분히 보여주고 있지 못하다고 느꼈죠. 그래서 프레젠테이션 제목도 ‘조경을 통한 SBS이미지 메이킹’이었습니다. 우리는 이 방송국을 어떻게 하면 공간을 통해 기억하도록 할 수 있을까에 중점을 두어 콘셉트를 잡았습니다. 가장 중심이 되는 공간인 로비 바깥쪽 3m 폭의 길쭉한 땅을 ‘포디엄podium’이라 이름 붙이고 인접한 1층 로비와 연결되어 읽히도록 했죠. 그리고 정문과 후문부에 각각 특징적인 수경과 수직적 조경을 제안하여 미디어 아트와 반응하도록했고요. 박윤진은 하버드 GSD를 졸업하고 Sasaki Associates, West 8 등에서 실무를 쌓고 치치 지진메모리얼 국제설계공모 당선을 계기로 김정윤과 함께 오피스박김을 설립하였다(2004). 미국 보스턴 건축대학교 등에 출강하였고 타이완 쉬이첸대학교(2007), 미국 하버드대학교(2008,2010), 오하이오주립대학교(2011), 호주 멜버른대학교(2012) 등에서교육, 전시, 강연을 위해 초청되었다. 김정윤은 서울대와 하버드 GSD졸업 후 네덜란드 West 8 등지에서 실무를 쌓았다. 네덜란드 조경건축사이며 바허닝엔대학교에 출강하였다. 차세대디자인리더(산업자원부2007), 광교공원 디자인커미셔너(2008), 서울형공공건축가(2011)로 선정되었고 미국 오하이오주립대 놀튼건축대학원이 선도적 조경가에게수여해 온 글림처 특훈 교수(2011)로 임명되어 강의하였다.
[조경의 경계를 넘어, 조경 속으로] 파올로 뷔르기
이탈리아와 맞닿은 스위스 남단의 작은 도시 카모리노Camorino에는 커다란 유리 온실 식물원을 방불케 하는 뷔르기 스튜디오가 있다. 넓은 잎을 드리운 열대 식물 사이로 띄엄띄엄 놓인 큰 테이블, 햇빛이 살랑거리는 나무 그늘 아래 회의를 여는 모습이 이채롭다. 부인이 운영하는 시공 회사도 함께 입주했다. 디자인-빌드형태로 작업해 온 탓인지, 파올로 뷔르기 프로젝트의 눈에 띄는 특징은 우선 단단한 완성도다. 간략하게 정제된 형태에도 불구하고 심심하게 느껴지지 않는 것은 ‘풍부한 미니멀리즘’으로 요약될 수 있는 모더니즘적 장인정신 덕분일 것이다. 나아가 파올로 뷔르기의 작업이 평범한 미니멀리즘에 비해 탁월한 이유는 각각의 프로젝트에서 강한 지역성 또한 느낄 수 있기 때문이다. 미니멀리즘과 지역성이 이처럼 드라마틱하게 만나는 사례는 흔치 않다. ‘억지스럽지 않은 무위無爲의 디자인’, ‘대상지의 핵심적 가치에 집중한 깊이’, ‘스스로를 드러내려 애쓰기보다는 그 너머의 무엇을 상상하게 하는 미스터리한 공간’. 그의 작업에서 일관되게 체험할 수 있는 짧은 감상평이다. 험준하고 압도적인 스위스의 경관 덕분일까? 주위 환경에 딱 들어맞게 설계한 그의 프로젝트에서 느껴지는 대상지에 대한 깊은 존중은 종교적인 수준이라 할 만하다. 그가 크게 영향을 받았다는 루이스 바라간Luis Barragán이 색채를 통해 빛을 매만졌다면, 뷔르기는 소재의 물성을 통해 빛을 조율하고 주변을 드라마틱하게 만든다. 카르다다Cardada 산 정상의 전망대에서 석양을 반사하는 티타늄 난간과 한 스위스 디자이너의 개인 정원에 놓인 잎갈나무 목재 벤치의 간소함에서 느껴지는 감동은 경솔함이나 과도함의 양 극단에 치우치지 않은 ‘깨어있는 디자인이란 무엇인가’에 대한 근본적인 질문을 던진다. 뷔르기는 “처음 스케치를 시작할 때 프로젝트의 방향이나 클라이언트의 요구, 형태에 대해 고민하지 않는다. 그저 대상지가 내 소유의 땅인 것처럼 여긴다”고 말한다. 또한 시간을 두고 드로잉을 묵혀가며 몇 번이고 돌아보고 자신이 진정 원하는 것을 찾아나간다고 밝히고 있다. 번잡함과는 거리가 먼 그의 공간에서 각각의 요소는 하나같이 묵직한 존재감을 발산한다. 마치 자연의 그것처럼, 뷔르기의 대지는 극도로 경제적이며 불필요한 것이 없다. 그는 ‘지평선’이라는 개념을 통해 결국 동양 조경의 ‘차경借景’을 말한다. 독립된 각각의 장소보다 그 사이의 관계가 더 중요하다는 것이다. 평범하고 무의미하게 느껴질 수 있는 중성적인 경관을 해석하는 틀로서의 ‘조경’과 무언의 경관을 대화하는 공간으로 전이하는 ‘과정’이 바로 뷔르기 디자인의 핵심이다. 그리고 그 해석의 요체는 경관의 변화, 즉 흐름을 느끼게 하는 데 있다. 사람은 끊임없이 움직이는 존재다. 투시도라는 수단에 익숙해진 우리는 기본적으로 ‘픽처레스크picturesque’한 정적인 사고에 머물기 쉽다. 뷔르기가 강조하는 ‘움직임movement’의 디자인은 그러한 매몰된 시각에 대한 비판적 사고의 결과다. 그의 공간에는 항상 시퀀스가 있다. 연결과 단절, 그리고 통과되는 공간. 벽, 혹은 이어짐. 짧은 멈춤과 이동. 그는 이러한 내러티브를 통해서 디자인을 이야기하고 공간을 재발견한다. 한편, 외부에 노출된 조경 공간이 건축과 근본적으로 다른 점은 시간의 변화에 민감하다는 점일 것이다. 조경가가 다루는 대상이란 대개 세월에 의해 빠르게 침식되고 어느샌가 그것을 담고 있는 거대한 경관에 흡수되어 버리기 마련이다. 따라서 조경가는 설계 단계에서부터 ‘낡음’과 ‘쇠락’에 대해 미리 생각하지 않을 수 없다. 아마도 조경에서 ‘진짜’와 ‘가짜’의 구분은 ‘제대로 나이 들어갈 수 있느냐, 아름답게 늙어갈 수 있느냐’ 하는 질문에 달려있을 것이다. 억지로 현재를 유지하려는 몸부림이야말로 가짜의 선명한 표상이기 때문이다. 내일이면 바래버릴 반짝이는 것에서 진정성을 느끼기는 어렵다. 시간의 흐름에 순응해야 진짜가 될 수 있다. 뷔르기의 작품들은 ‘인간은 시간의 흐름과 변화를 체험해야만 살아 움직이는 현재를 느낄 수 있다’는 교훈을 웅변하고 있다. 뷔르기는 스스로 움직이는 시간과 쇠락하는 것들에 대해 다음과 같이 말한다. “제디자인을 사람들에게 설명하기는 어려운 일입니다. 제가 놓은 하나의 돌이 원하는 모양이 되는 데 오십 년 정도는 걸리기 때문입니다.” Q. 루이스 바라간으로부터 많은 영향을 받았다고 말한 적이 있는데? A. 멕시코의 건축가 바라간은 많은 작품을 남기지는 않았지만 소수의 작품이 역설하는 바가 무척 깊어 많은 사람들에게 영향을 미쳤다. 그의 작품은 극도로 압축된 언어로 표현되어 있으면서도 동시에 굉장히 시적이고 강하다. 나는 수십 년 전, 멕시코시티에서 그와 조우할 기회가 있었다. Q. 그의 작품 중 당신에게 특별히 중요한 의미가 있는 작품은? A. 멕시코시티의 개인 주택이자, 목장인 쿠아드라 산 크리스토발Cuadra San Cristóbal과 엘 페드레갈El Pedregal Gardens을 들 수 있겠다. 그 곳은 이제 사라져 버려 불과 몇 장의 흑백 사진으로만 남아있다. 정원은 사라지고 건물이 들어선 곳이다. 당시 그곳을 둘러볼 수 있었던 것은 큰 행운이었다. 요즘에는 어느 곳을 막론하고 개인 정원에 들어가는 것이 무척 힘들다. 그의 집과 사무실, 작업실 등에서 받은 감동이 내 기억 속에 아직도 선명하다. 루이스 바라간의 마지막 작품 중 하나인 길라르디 하우스Gilardi House 또한 인상 깊게 남아 있다. Q. 나는 당신 작품의 특징을 ‘간소한 풍부함richness in simplicity’으로 요약했다. 바라간과도 닿아 있지만, 스위스의 자연 환경 때문인지 왠지 도가적인 분위기가 느껴진다. A. 도가적이라 함은 어떤 것인가? Q. 『장자』에서는 신발이 발에 꼭 맞으면 신발을 느낄 수 없다고 하였다. 당신의 작품은 그야말로 미니멀하지만, 동시에 풍부한 감정과 짙은 감수성이 느껴진다. 다시 말해, 작품에서 많은 것이 느껴지지만, 그렇다고 많은 요소가 설계되지는 않았다. 최소한의 수단으로 상당히 많은 성취를 이루었다. 대상지에 꼭 맞는 듯한 당신의 작업에서 상당한 감명을 받았다. A. 사실 당신이 파악한 것이 나의 철학이기도 하다. 아마도 그건 다양한 분야에 대한 나의 호기심에서 오는 것일 수도 있다. 특히 몬드리안 등의 예술 작품에서 큰 영향을 받았다고 본다. 예술가는 대개 처음엔 대상에 대해 낭만주의적이지만, 점차 그것들을 압축해간다. 브랑쿠시Constantin Brâncuși도 마찬가지다. 그는 사람의 머리를 주제로 한 연작을 20년 넘게 꾸준히 발표했다. 극도로 정제되고 간략화된 아티스트로서의 태도가 내가 조경에서 추구하는 것이다. 작은 정원이든, 큰 프로젝트이든 나는 항상 그러한 경계를 탐색하고 그 경계가 정확히 어디인지를 찾아 헤맨다. 이 꼭지를 연재하고 있는 인터뷰어 최이규는 1976년 부산 생으로, 그룹한 어소시에이트 뉴욕 오피스를 이끌며 10여 차례의해외 공모전에서 우승했고, 주요 작업을 뉴욕시립미술관 및 소호, 센트럴파크, 두바이, 올랜도, 런던, 위니펙 등지의 갤러리에전시해 왔다. 저서로 『시티 오브 뉴욕』(공저)이 있다.
[재료와 디테일] 보이는 물과 보이지 않는 물
조경사에서 접하는 이집트 정원의 장방형 연못, 이탈리아 빌라 정원의 노단식 분천, 프랑스의 기하학적 수로 등 인류 문명과 함께 한 수많은 물의 모습은 애초부터 ‘보이는 물’1이었을까? 아니면 자연이 만든 ‘보이지 않는 물’2일까? 경관용 꽃과 나무를 가꾸고 물고기를 기를 수 있도록 조성한 인공적 수경 공간이었을까? 아니면 농사에 필요한 물을 자연적으로 공급하고 흘려보내기 위한 기능적 수로일 뿐인가? 아마도 이 두 가지는 굳이 분리할 필요가 없는 합목적의 결과물일 것이다. 스테이트타워 남산, 서울시 중구 회현동2가에 있는 이오피스 빌딩의 외부 공간에서 ‘보이는 물’과 ‘보이지 않는 물’을 살펴보자. 공개 공지인 이곳은 정방형 매스와 유리 파사드의 단순한 건축과 그에 걸맞은 단정한 외부 공간으로 예사롭지 않은 수 공간 디테일을 볼 수 있다. 두 개의 물이 기능에 따라 하나는 잘 보이는 곳에, 다른 하나는 그 모습을 볼 수 없는 곳에서 공존한다. 습관적으로 ‘보이지 않는 물’은 뚜껑을 덮어 가리고 ‘보이는 물’은 치장하기 바쁜데 둘 다 여름 한 철 바삐 기능할 뿐 겨울만 되면 하릴없이 건조할 따름이다. 이 두가지 물은 분리할 이유가 별로 없다. 화강석 뚜껑(땅에 파묻힌 U형 측구의 덮개)을 열어 버리고, 거울못의 모서리(수조 마감부)를 잘라 측구 수로관 쪽으로 길만 터주면, ‘보이지 않는 물’과 ‘보이는 물’이 동시에 기능하지 않을 까, 하는 생각도 해 본다(그림1). 이대영은 여기저기 살피고 유심히 바라보기 좋아하는 사람으로 살아가려 노력하고 있다. 만드는 것에 관심이 많으며, 작고 검소하며 평범한 조경설계를 추구하고 있다. 영남대학교에서 공부했고 우대기술단과 씨토포스(CTOPOS)에서 조경의 기초를 배웠다. 조경설계사무소 스튜디오엘(STUDIO L)을 시작하고 작은 작업들을 하고 있다. www.studio89.co.kr
[공간 공감] 합천영상테마파크
이번 달의 대상지는 합천영상테마파크다. 천만 흥행영화 ‘태극기 휘날리며’를 촬영할 목적으로 조성된 곳으로, 이후 근현대를 배경으로 한 여러 영화와 드라마의 촬영 장소로 쓰이고 있다. ‘공간 공감’은 주로 외부공간을 설계적 언어로 풀이하고 있는데, 이번에는 질적 관점보다는 독특한 공간 성격에 대한 단상을 모아보았다. 영화 세트장은 기본적으로 내부 지향적이다. 이 공간안에 들어서면 바깥 세상을 잊고 오로지 기획자가 준비한 주제에만 몰입하게 된다. 차경에 익숙한 조경가에게는 당황스러운 면이 없지 않다. 외부 경관의 간섭을 찾아볼 수 없는 위요된 공간 속의 도시는 확연히 무대로서의 분위기를 자아낸다. 방문객들은 이 페이크fake의 경관과 디테일에 몰입할수록 공간에 빠져드는 재미를 느끼게 된다. 오래된 건축물의 파사드, 간판, 전봇대, 벽보, 낡은 가로등에 이르기까지 특정 시대를 재현하기 위해 신경 쓴 요소들이 즐비하다. 이러한 페이크의 소품은 영상물의 시대 고증과 무대 미술 수준을 드러내며, 동시에 방문객에게 추억을 떠올리게 하는장치가 된다. 국립민속박물관 내의 추억의 거리와 유사한 전시 콘셉트라고 할 수 있다. 몰입과 페이크의 경관 외에도 이곳은 시간과 생활의 축적에 의한 장소성이 발생하지 않는다는 특징이 있다. 연출된 1960~70년대 풍경이 향수를 자극하지만 사람들이 이용하지 않는 공간이기에 공허한 느낌마저 전해진다. 카메라 프레임 안에서는 살아 움직이는 배경이지만 실제 풍경에선 그러한 느낌을 가질 수 없는, 확실히 2D를 위한 공간이다. 시간이 흐를수록 특정 드라마나 영화에 의해 부여되었던 장소성이 약화된다고도 할 수 있다. 새로운 장소성은 또 다른 영화나 드라마에 의해서 충전될 수밖에 없다. 따라서 계속 촬영 장소로 활용되면 장소의 생명력이 유지되지만 그렇지 않은 경우 폐허가 되기 십상이다. 정욱주는 이 연재를 위해 작은 모임을 구성했다. 글쓴이 외에 factory L의 이홍선 소장, KnL 환경디자인 스튜디오의 김용택 소장, 디자인 스튜디오 loci의 박승진 소장 그리고 서울시립대학교의 김아연 교수 등 다섯 명의 조경가가 의기투합했고, 새로운 대상지 선정을 위해 무심코 지나치던 작은 공간들을 세밀한 렌즈로 다시 들여다보고 있는 중이다.
Popular Vote: Cambridge University Library Landscape
장식 패턴을 매개로 한 통일감 있는 공간 구성 1920년대에 자일스 길버트 스코트 경Sir Giles Gilbert Scott은 군 병원과 크리켓 필드로 사용되고 있던 대지에 캠브리지의 새로운 캠퍼스를 계획했다. 그리고 그 중심에는 도서관이 자리 잡았다. 동쪽의 캠 강River Cam을 향한 직선의 축은 클레어 칼리지Clare College를 관통해 도서관 정문의 드높여진 기단에 닿는다. 한 세기 동안 캠브리지 대학교의 확장이 계속되면서, 이제 캠퍼스는 도서관을 넘어 서쪽으로 넓게 펼쳐진다. 때문에, 원래 캠퍼스의 중심부로부터 클레어 칼리지를 거쳐 진입하도록 계획되었던 극적인 경험은 퇴색되어 버렸다. 도서관 주위로 큰 면적을 차지하게 된 주차장들로 인해 이웃 건물들과 함께 형성하던 균형감과 리듬이 깨지고 소외된 면이 있다. 도서관을 이용하는 사람은 차와 자전거들을 피해, 상당한 면적의 아스팔트 위를 걸어야 한다. 장애인이 이용할 수 있는 동선은 더욱 심하게 꼬여 있다. 지식의 성전을 나서자마자 차량으로 번잡한 외부 공간은 이용자를 당황스럽게 만든다. 도서관의 출입문을 경계로 안과 밖 사이의 상황은 급작스런 변화를 보인다. 내부는 캠브리지의 특권 의식을 드러내는 디자인 요소들로 가득하다. 각종 패턴과 장식들은 도서관에대한 강렬한 인상을 줌으로써 이용자의 경험을 풍부하게 한다.우리는 현재 출입구에서 멈추어 있는 도서관 영역의 경계를 외부공간 landscape으로 이전했다. 정문의 살에 조각된 패턴을 모티브로 삼아 표면을 구성함으로써, 내부와 외부의 연결을 꾀하였다. 패턴은 경사로, 계단, 조형 요소folly, 앉음벽 등으로 분화된다. 만나고, 연구하고, 잠깐 멈춰 쉬는 장소로서, 접근성 또한 향상되었다. 식물들은 패턴 위로 자연스럽게 웃자라며, 위요감과 야생의 맛을 느끼게 한다. 추가되는 소형 건물pavilion은 외부 공간에서 벌어지는 전시 행사를 위해 사용된다. 이것은 도서관이 대중을 대면하는 장public face을 확장시키고, 방문자와 상시이용자들 모두가 부담 없이 들러 차를 마시고, 아름다운 캠퍼스의 풍경을 즐기는 곳이다. 이곳의 길들여진 자연은 도서관 이용의 경험에 생동감을 주며, 도서관과 캠퍼스 사이의 새로운 경계가 되며, 또한 도서관의 기능이 외부로 확장될 수 있는 가능성을 열어준다.
Joint 1st Prize: The-Cave
(Archi) Tectonic Landscape 텍토닉적 사건, 지질학적 규모의 변화로서 뜻밖의 틈unexpected crack은 문화와 자연을 잇는 심미적이고 숨겨진 비움의 공간이다. 이 틈이 변방frontier으로 여겨져서는 안 되며, 충분한 가능성을 가진 공간, 즉 기회로 인식되어야 한다. 지식을 대변하는 장소로서의 도서관은, 문명 그 자체와 동의어다. 반면, 숲이란 진정한 자연의 이미지로서, 지식과 대비되는 경험이 일어나는 곳이다. 케이브The-Cave는 그 간극에 존재하는 공간으로서 지식과 경험의 매개 공간이다. 케이브는 지식과 경험 간의 사이 공간이다. 케이브는 지식이 경험되는 곳이다. 케이브는 사람들이 강의와 컨퍼런스, 회의, 이벤트, 전시, 콘서트, 워크숍 등을 공유하는 곳이다.케이브의 입구는 다섯 군데의 접근 통로access chimneys로 구성된다. 무장애 원칙에 의해 조성되는 이 통로들은 진출입의 기능을 수행하면서, 화재 등의 비상 시 대피로로도 사용된다. 케이브를 통한 이용자들의 이동은 덕트와 케이블 상부로 설치된 독립적 플랫폼에서 이루어진다. 지하의 철근콘크리트 구조물은 지오텍스타일 패브릭과 골재, 배수관으로 이루어진 외부배수 체계로 구성된다. 지상보다 높여진 구조물은 강철과 유리 소재다. 덧붙임 건축의 이름으로 정의되는 공간을 정의하는 것은 사람의 활동이다. 동시에, 자연nature이란 오직 인간이 그것을 심미적 대상으로 관조할 때만이 경관landscape이 된다. 동굴이란 사람들의 활동에 의해 건축이 된다. 동굴은 심미적 공간으로 인식될 때 경관이 된다. 동굴은최초의 문화적 건축이며, 인간의 경관이다.
Joint 1st Prize: Farm Walk
캠퍼스 농장 고전과 모던이 기묘하게 합쳐진 캠브리지 도서관 건물은, 건장하면서도 날카롭고, 권위적이면서도 둔탁하지 않으며, 금욕적이면서도 풍성하고, 냉엄하면서도 껍데기를 벗어 던져 버린 듯한 멋진 작품이다. 하지만 친근하기보다는 사뭇 압도적인 것도 사실이다. 특히 중세의 수도원을 연상시키듯 엄숙하고, 지나치게 형식미에 치우친 정적인 외부 공간은 한 세기가 지난 요즘의 분위기와 쓰임에 맞지 않다. 곳곳에 배어있는 불필요하게 엄격한 엘리트주의, 과도한 포장 면적, 부담 없이 앉아 쉴 수 있는 공간 및 야외 회합 장소 부족 등의 문제들을 관찰할 수 있다. 팜워크는 이에 대해 캠퍼스 농장이라는 극단적인 프로그램적 처방을 투여함으로써, 도서관이 비단 연구자만의 전유물이 아닌 대학 안팎 다양한 층의 시민들을 위한 공적인 장소가 될 수 있다는 가능성을 제시했다. 그렇지만 기존의 몇몇 사례에서 볼 수 있듯이, 하나의 단일 경작물로 전체 공간을 구성함으로써 기념성을 확보하려는 의도, 그로 인해 또다시 제도적인 유지관리의 틀이 필요해지는 상황은 원치 않았다. 타자화된 시각적 대상으로서의 농업 경관이 아닌, 프로그램적 수단으로서의 작물 정원이 타당하다고 판단했다. 도서관의 각 부분과 실에 대응하는 주제를 바탕으로 한 다원성을 기본으로 커뮤니티가 자립적으로 운영할 수 있는 평범하고, 부담 없고, ‘쉬운’ 외부 공간을 제시했다. 지역 사회를 위한 도서관 음식이란, 인간의 본능에 가장 충실한 매개체다. 상아탑의 딱딱함을 내려놓을 수 있는, 모두를 위한 공간을 만드는 데 있어, 음식을 함께 키우고 나누는 것보다 효과적인 수단은 없어 보인다. 작물을 돌보고 계절의 변화를 느낄 수 있는 매번 새롭고, 동적이며, 변화하는 장소. 책을 읽거나 명상에 잠길 수 있으면서도, 시각과 촉감으로 영감을 주고, 생명력의 강인함을 느낄 수 있는 장소. 도서관과 대학뿐만 아니라 지역 사회 전체에 봉사할 수 있는 장소로서의 캠브리지 도서관이 팜워크가 꿈꾸는 장소다.
Joint 1st Prize: Around The Library
접근 높은 삶의 질과 자연적 면모, 유서 깊은 기념비적 건축물이 서로 조화를 이루며 공존하고 있는 모습이 바로 캠브리지의 핵심적 전통이다. 자일스 길버트 스코트 경Sir Giles Gilbert Scott이 디자인 한 건축물이 캠브리지 라는 도시적 스케일에서 차지하는 상징성은 반드시 유지되어야 한다. 그러나 이 건물의 금욕적이고 압도적인 존재감은 이용자가 가까이 접근함에 따라 절충되어야 한다. 따라서 우리는 도서관 주위로 새로운 전이 공간threshold을 만들고, 새로운 이미지를 생성해야 할 필요를 느낀다. 이러한 중간적 공간은 대상지의 출입로를 재정의하게 될 것이다. 외부 공간에 대한 개입은 건물의 약점을 보완하는 방향으로 진행된다. 새로운 장소와 새로운 이용 방식을 둘러싼 가능성들은, 도서관을 둘러싼 문화적·사회적 활동들을 촉진시키는 수단이 된다. 이것은 두 개의 이질적인 도시적 맥락과도 일맥상통한다. 즉, 캠브리지 캠퍼스의 남쪽은 사뭇 흩어진 독립 건물들로 구성되어 있는 반면, 동쪽은 캠브리지 도심과 연결되는 부분으로서, 밀도가 높고, 중정이나 중앙 광장을 가운데 둔내향적인 대학 건물의 집합으로 이루어져 있다. 우리는 이러한 도시 형태urban morphology를 현대적인 언어로 새롭게 쓰려 한다. 1950년대 카슨Casson과 콘더Conder의 시즈윅Sidgwick 캠퍼스 계획과 동일한 생각이라 할 수 있다.
Cambridge University Library Landscape Design Competition
영국 캠브리지 대학교 도서관과 건축학부가 공동으로 주최한 ‘캠브리지 대학교 도서관 조경 설계공모Cambridge University Library Landscape Design Competition’는, 1930년대 자일스 길버트 스코트 경Sir Giles Gilbert Scott이 디자인 한 기념비적 건축물을 둘러싼 전반적 외부 공간에 대한 개선을 목표로 한다. 영국의 6개 법정 자료 보관 기관 중 하나이면서, 광범위하게 축적된 자료를 바탕으로 세계적인 연구 기관으로서의 면모를 유지하고 있지만, 대학 구성원들의 일상적인 삶의 장소로서의 매력과 사회성을 결여하고 있다는 지적에 따른 것이다. 구체적으로는, 진입 동선과 경험의 변화, 환경의 질에 대한 신선하고 예기치 못한 아이디어 제시, 창의적이고 탈관습적인 접근 등이 과제로 제시되었다. 2013년에 시작된 공모전은, 지역 주민과 학생들을 주축으로 한 워크숍을 시작으로, 2단계로 나누어 진행되었다. 예비 단계로 시행된 지역 워크숍은 대학 안팎의 다양한 그룹들과 이해 당사자들, 캠브리지 대학교의 각 학부로부터 의견을 모으기 위한 과정으로서, 20여 개의 안에서 뽑은 아이디어와 요구 사항들은 공모전 규정집을 구성하는 토대가 되었다. 단계 공모전은 개괄적인 아이디어를 심사하는 단계로서, 영국, 프랑스, 스페인, 중국, 미국, 한국 등으로 구성된 8개 팀이 후보자로 선정되었다. 2단계에서는 아이디어를 심화시키는 한편, 캠브리지 대학교의 교수진 및 도서관 사서, 행정 책임자들과의 협업을 통해 현실성을 높이고, 디테일을 발전시키는 데 무게가 실렸다. 동시에, 캠퍼스의 사회적, 기술적, 문화적 요소들을 세심하게 고려할 것이 요구되었다. 이 기간 중, 1단계 당선자들이 현지에 모여 대상지를 직접 조사하고, 서로의 안을 발표하고 리뷰하는 워크숍이 진행되었다. 설계에 필요한 기초 자료로, 대상지 캐드 도면, 교통·토지소유·경사·도시계획 부문의 도면집, 기후·토질·지질·생태 등 환경 관련 보고서, 고지도와 현장 사진, 건물 및 디테일 도면, 각종 역사 자료등이 제공되었다. 공모전의 운영 비용은 피터 볼드윈Peter Baldwin과 리스벳 라우싱Lisbet Rausing의 기부금으로 조성되었다. Joint 1st Prize Around The Library Simon Rubin & Blandine Touzeris Joint 1st Prize Farm Walk Group Han Associates, New York Office Joint 1st Prize The Cave G226-Arquitectura Popular Vote Cambridge University Library Landscape Atomik Architecture
Finalist: Presidio Gateway
많은 사람들이 이용하는 공공 공간은 대개 그 주위를 둘러싼 문화, 생태, 그리고 경관과 유기적으로 통합되어 있다. 우리는 이러한 선례에 따라 깨끗한 자연 환경을 조성하고 문화를 담아내는 동시에 선언적이면서도 대상지를 존중하는 새로운 프레시디오 게이트웨이Presidio Gateway를 제시하려 한다. 이러한 계획이 성공을 거두기 위해서는 프레시디오는 물론, 크리스 필드Crissy Field, 골든 게이트 브리지Golden Gate Bridge, 알카트라즈Alcatraz, 그리고 샌프란시스코San Francisco 시 등 독특한 환경과의 세밀하고 유려한 통합이 요구된다. 또한 민간 행사를 위한 대규모 시설은 물론 사색 및 휴식을 위한 친밀한 공간을 제공할 수 있어야 한다. 이를 위해서는 과거에 존재했던 것, 현재 존재하는 것, 그리고 미래에 존재할 수 있는 것 사이의 대화가 물 흐르듯 자연스러워야 한다. 즉, 과거와 현재를 바탕으로 미래에 예상되는, 그리고 예고 없이 닥쳐오는 모든 변화에 시의적절하게 대응해야 한다는 것이다. 대상지의 비범한 환경이 자아내는 우아함에서 비롯된 절제된 디자인 접근법은 대상지가 가진 군사 기지로서의 전통과 이에 자부심을 갖고 군에 복무했던 사람들을 기리는 한편, 지역 주민 모두를 끌어들이는 것을 목표로 한다. West 8의 설계안은 프레시디오의 현재를 받아들이고 이 땅의 역사를 기리며 새로운 프레시디오가 나아갈 방향을 제시하고 내실을 강화한다. 이는 프레시디오 자체가 지니고 있는 역동성을 넘어서려하는 것이 아니라 오히려 이를 보완하게 되는 셈이다. 이 허브는 모두를 환영한다는 민주주의적인 개념을 바탕으로 구상되었으며, 프레시디오의 새로운 모습을 지속적으로 발굴해나가는 과정의 촉진제가 될 것이다. 프레시디오를 일상적으로 보며 살아가는 인근 주민이든, 이곳을 처음 방문하는 이웃 마을 꼬마든, 옛 영웅을 회상하는 참전 용사이든, 혹은 샌프란시스코의 매력에 사로잡힌 방문객이든, 프레시디오를 찾는 모든 사람들은 각자 자신들을 매혹시키는 순간을 마주하게 될 것이다. West 8은 네덜란드 로테르담을 기반으로 뉴욕과 벨기에에 지사를 둔도시·조경설계사무소다. 1987년 설립된 이래로 대규모 도시 및 환경설계 프로젝트에서부터 워터프런트, 공원, 광장, 정원, 시설물에 이르기까지 다양한 규모와 성격의 프로젝트를 다루고 있다. 복잡한 디자인 이슈를 해결하기 위해 조경가, 건축가, 도시설계가, 산업디자이너 등 70명이 넘는 다양한 분야의 전문가들이 함께 일하고 있으며 종합적이고다학제적인 접근을 통해 디자인 프로젝트를 수행하고 있다. 주요 작품으로는 로테르담 쇼부르흐플라인(Schouwburgplein), 암스테르담 보르네오 도시설계, 런던의 업무단지 치스윅 파크(Chiswick Park), 스위스 이베르돈레반 2002 엑스포, 거버너스 아일랜드 등이 있다.
Finalist: Arcs & Strands
비전 1996년 프레시디오Presidio가 군사 기지에서 공공 공간으로 변신하던 무렵, 이곳은 미국의 국립공원 체계의 정체성을 규정하는데 나름의 역할을 할 것으로 기대됐다. 우리는 도시 환경 속에서 국립공원의 중요한 역할에 대한 이해를 바탕으로 풍요로운 문화와 역사, 그리고 강렬하고 놀라운 자연 환경이 교차하고 있는 대상지를 위한 현대적 비전을 제시하고자 한다. 아크 & 스트랜드는 이 지역이 지닌 풍요로운 문화적 역사와 그 속에 깊이 자리하고 있는 ‘주도하기presiding’와 ‘참여하기engaging’라는 두 가지 근본적 경험에 집중한다. 주도하기 새로운 프레시디오 파크는 방문객들이 역사적 경험을 기억하고, 현재를 만끽하며, 샌프란시스코 만에서 펼쳐지는 생동감 넘치는 활동을 주도해나갈 수 있도록 유도한다. 이러한 경험을 통해 방문객들은 새로운 시각으로 프레시디오를 바라보며 평화로운 순간을 경험하게 된다. 나아가 프레시디오의 경이로운 자연을 관리하기 위한 우리의 집단적·개별적 노력에 대해 다시금생각하게 될 것이다. 참여하기 프레시디오 파크는 다른 국립공원들과 비교해 프레시디오 지역 주민들뿐만 아니라 이 지역을 방문하는 외부인들에게도 접근이 용이한 편이다. 보다 많은 사람들을 프레시디오의 문턱으로 인도하는 동시에 이들이 이러한 독특한 공간을 적극적으로 경험하게 하려면 대중과 함께 공원을 만들어가는 과정이 반드시 필요하다. 스노헤타(SNØHETTA)는 1989년에 설립된 건축·조경설계사무소다.스노헤타의 작업은 공간에 물리적 변화를 주는 것뿐만 아니라, 이러한물리적 변화를 통해 장소성을 불어넣고, 더 나아가 그 공간을 이용하는사람들의 삶의 질을 향상시키는 것을 목표로 한다. 이들은 초학문적인접근(transdisciplinary approach)을 통해 디자인의 최신 경향을 그들이 설계하는 공간 속에 담아내고자 노력한다. 스노헤타는 이집트의알렉산드리아 도서관 설계공모 당선을 시작으로, 노르웨이 국립 오페라극장, 뉴욕 타임스퀘어 재조성 사업, 그리고 샌프란시스코 현대 미술관확장 사업 등에서 그 디자인 철학을 펼쳐왔다.
Finalist: YoUr Gateway Park
대상지는 프레시디오 퍼레이드 그라운드Presidio Parade Ground와 크리시 필드Crissy Field 사이에 위치한다. 새롭게 조성되는 프레시디오 파크는 이 지역의 시간적·물리적 연결 고리이자, 프레시디오와 골든 게이트 브리지Golden Gate Bridge, 알카트라즈Alcatraz, 트랜스아메리카 피라미드Transamerica Pyramid 등의 공간을 이어주는 심리적 연결 고리psychic link가 되어야 한다. 유어 게이트웨이 파크YoUr Gateway Park는 대상지에 인접한 공간에 내재된 특징들을 하나로 묶어주는 ‘사회적 추이대socio-ecotone’로 기능한다. 추이대ecotone는 두 가지 식물군 사이에 있는 점이 지대를 말한다. 이 지대는 매우 넓은 범위로는 두 식물군의 특징이 점진적으로 혼합된 모습으로 나타날 수도 있고, 식물군 이외의 환경적인 변화에 따라 전혀 다른 모습을 형성할 수도 있다. 사회적 추이대는 대상지에인접한 두 공간의 엮어주는 결합 조직으로서 대상지의 사회적 가치와 같은 지역 특성을 엮어주는 역할을 한다. 추이대가 인접 지역의 식물군의 영향을 받아 새로운 생태계를 형성하는 것처럼, 이 사회적 추이대는 지역의 도시 맥락적 가치를 더욱 강화한다. 기존의 프레시디오에는 인공적으로 형성된 공간과 자연적으로 형성된 공간이 공존한다. 두 공간 모두에서 찾을 수 있는 일련의 U자 형상들은 그 크기는 물론, 대지 위에 놓여 있는 방향도 제각각이다. 수평선을 바라보기도 하고, 대상지 안으로 숨어들어가는 모습을 보이기도 한다. 유어 게이트웨이 파크는 U자 형상을 그대로 받아들이는 전략을 통해 주변 자연 경관과 일련의 흥미로운 프로그램을 담아내려 한다. U의 닫힌 부분은 공간을 아우르는 울타리enclosure가 되는 동시에 활동의 초점이 된다. 열린 부분은 대상지 너머의 수려한 경관 자원과, 게이트웨이 브리지와 같은 경관을 향한 일종의 도약대로 기능한다. U는 자석이면서 프레임이고, 외부 경관으로의 도약대이면서 모든 활동의 중심이 된다. 유어 게이트웨이 파크는 크게 3가지 경관 프레임워크를 통해 역동적인 사회적 공간, 생동하는 생태계, 그리고 다양한 프로그램이 가득한 레크리에이션 공간을 구현하고자 한다. 올린(OLIN)은 1976년 로리 올린(Laurie Olin)과 로버트 한나(RobertHanna)에 의해 설립되었다. 올린은 조경가, 건축가, 프로젝트 매니저,그리고 도시설계가로 구성되어 있으며, 현재는 로리 올린을 비롯한 12명의 공동 대표가 활동하고 있다. 현대 경관의 복잡한 상황을 고려하여,지역의 커뮤니티와 건축물이 자연 경관과 잘 어울리도록 세심하게 조율하는데 집중하고 있다. 올린의 대표작으로는 뉴욕의 브라이언트 파크, 로스엔젤레스의 폴 게티 센터 등이 있다.
Finalist: The Observation Post
메인 포스트Main Post와 크리시 필드Crissy Field를 연결하고 있는 대상지는 샌프란시스코에서 가장 아름다운 전망을 감상할 수 있는 곳으로 역사 유산 또한 풍부하다. 따라서 대상지 계획은 ‘경관’의 아름다움을 살리고 구역 간의 ‘연결’을 강조하는 데 중점을 뒀다. 프레시디오 공원의 독특한 점은 국립공원이면서도 지역 주민을 위한 근린공원이라는 점이다. 따라서 지엽적인 차원에서 대상지를 주변 지역과 연결할 뿐만 아니라, 더 넓은 차원에서 주변 도시와 연결해 다양한 방문자를 초대하고자 한다. 프로젝트의 목표 이 프로젝트의 목표는 세 가지다. 첫 번째는 공원 내 메인 포스트와 크리시 필드와의 연결 지점을 더욱 분명하게, 방문하고 싶을 만큼 매력적으로 만드는 것이다. 이를 위해 대상지에서 메인 퍼레이드 그라운드Main Parade Ground, 이스트 비치East Beach, 유서 깊은 비행기 착륙장(크리시 필드)으로 연결되는 세 개의 주요 연결관문을 만든다. 두 번째 목표는 다양한 프로그램을 확충함으로써 방문객이 몰입할 수 있는 환경을 만들어내는 것이다. 대상지 주변의 거대한 인프라스트럭처와 광활한 풍경, 점차 확장되고 있는 건물군은 충분한 공간과 시각적으로 중요한 위치를 선점하려고 경쟁하고 있어 방문객의 시선을 분산시킨다. 따라서 새로운 프레시디오 파크는 방문자들의 시각적 포커스를 건물과 인프라스트럭처에서 풍경과 오픈스페이스로 옮길 필요가 있다.세 번째로 경관을 구조화하고 강화해서 새롭게 재조명하고자 한다. 대상지에 인접한 여러 풍경을 통합하고 야생 동·식물과 사람 모두에게 살기 좋은 서식처를 만들 것이다. 여러 건물과 풍경이 모이는 대상지는 옵저베이션 포스트bservation Post, 즉 공원의 ‘관측소’로기능할 것이다. 우리는 대상지에 있던 기존의 감시 초소를 ‘관찰’이라는 목적을 보다 효과적으로 수행할 수 있는 새로운 구조물로 대체할 것이다. CMG는 케빈 콩어(Kevin Conger), 윌레트 모스(Willett Moss), 크리스 길라드(Chris Guillard)가 설립했다. CMG는 ‘지역 사회를 위한 경관을 창조한다’는 기치를 걸고 골든 게이트 내셔널 파크 컨서번시(Golden Gate National Parks Conservancy), 내셔널 파크 서비스(National Park Service), 프레시디오 트러스트(Presidio Trust)와 함께 여러 프로젝트를 진행해왔다. 가장 최근의 프로젝트로 프레시디오익스체인지(Presidio Exchange)와 크리시 리프레시(Crissy Refresh)등이 있다.
Winning Proposal: Presidio Point
샌파블로 만과 샌프란시스코 만의 전경을 조망할 수 있는 고지대에 자리한 프레시디오 초원의 새로운 공원은 아름다운 풍경을 자랑한다. 대상지는 두 주요 축이 교차하는 지점에 자리한다. 한 축은 남쪽의 숲이 우거진 언덕으로부터 북쪽의 만으로 이어지고 다른 한 축은 태평양에서 샌프란시스코 시로 이어진다. 세 가지 원칙 이러한 대상지의 지형과 기능에 따라 크게 세 가지 주요 원칙을 설정했다. 먼저 천혜의 풍경이 360도 파노라마로 펼쳐지는 경관을 그대로 살리고 확장하고 강조한다. 특히 만 인근의 낮은 지대, 크리시 필드의 높은 지대, 크리시 필드 습지대, 동쪽 먼 곳의 마리나Marina 구역 등 어느 지형 및 구역에서 바라보더라도 경관을 잘 감상할 수 있도록 지형차를 이용한다. 절벽Bluff 지역은 기존의 절벽과 급경사면을 살려 다듬는다. 두 번째로 중심점에서 뻗어나가는 축을 연결하고 연장한다. 대상지 구조는 앤자 대로Anza Esplanade와 벼랑길Cliff-Walk, 이 두 개의 축을 중심으로 짜였다. 앤자 대로는 메인 포스트Main Post를 만으로 연결하며 벼랑 길은 서쪽의 크리시 필드와 동쪽의 습지 지대를 잇는다. 방문객은 이 두 축을 통해서 극적인 경관을 감상하며 다양한 프로그램을 연속적으로 경험할 수 있다. 세 번째로 대상지가 갖고 있는 역사적, 생태적 가치에 따라 사회적, 문화적 경험을 창출할 수 있도록 프로그램이 잘 짜인 환경을 조성한다. 대상지의 역사적 가치는 방문객의 동선에 맞춘 교육 프로그램과 스토리텔링을 통해 더욱 풍부해질 수 있다. 또한 프레시디오 포인트는 세 개의 생태적 단위로 새롭게 구성된다. 첫 번째 단위는 앤자 대로와 소칼로Zocalo 주변 고지대로서 기존의 해안 자생 참나무Coast Live Oak를 회복시킨다. 두 번째는 야생화 초원과 풀밭으로 이루어진 해안가 고원초지 지대로 이곳에는 여러 오솔길이 조성되고 벤치가 마련된다. 세 번째는 해안 절벽 지역으로 바람에 강하고 비탈진 곳에 잘 자랄 수 있는 관목류가 자라게 된다. 제임스 코너 필드 오퍼레이션스(James Corner Field Operations)는뉴욕에 기반을 둔 도시·조경설계사무소다. 대규모 도시설계 프로젝트나 포스트 인더스트리얼 사이트부터 작지만 섬세한 디테일을 요구하는디자인까지 다양한 규모의 작업을 수행하고 있으며, 주요 작품으로 뉴욕 시의 하이라인과 프레시 킬스, 라스베이거스의 시티 센터, 중국 칭하이 지역의 도시설계 마스터플랜, 시애틀 워터프런트의 마스터플랜, 필라델피아의 레이스 스트리트 피어, 산타 모니카의 통바 파크, 홍콩의 침사추이 워터프런트 등이 있다. 모든 설계에 있어서 사람과 자연의 생태를 연구하고, 생기 넘치고 역동적인 공공 영역 디자인을 구현하는 데최선을 다하고 있다.
NEW PRESIDIO PARKLANDS PROJECT
공원이 된 요새, 프레시디오 새로운 공원을 초대하는 이 땅은 전 세계에서 가장 아름답기로 손꼽히는 도시의 한가운데 위치한다. 세계적인 랜드마크이자 엔지니어링의 금자탑이라 불리는 상징적 구조물을 정면으로 마주하고 있다. 대상지를 360도로 둘러싼 바다, 산, 항구, 섬, 문화재, 도시의 마천루까지 온갖 경관 요소들을 직접 바라볼 수 있는 경관의 구심점이기도 하다. 또한 내만內灣의 잔잔한 낭만과 태평양의 변화무쌍함을 그대로 느낄 수 있는 이상적인 워터프런트이기도 하다. 이 땅의 풍요로움은 자연 자원 때문만이 아니다. 공원상부의 산지 쪽으로는 두 세기 넘게 군사적 요지로 기능해 온 거대한 규모의 군부대가 온전히 보존되어 있고, 동편으로는 어린이 과학관으로 쓰이는 수려한 외관의 근대 건축물과 고풍스러운 정원이 짙게 배인 문화적 자산의 아름다움을 뽐내고 있다. 시민들에게 이미 가장 사랑 받고 있는 대표적인 수변 공원이 서쪽 경계에 맞닿아 있기에 오픈스페이스의 연결성까지 담보하고 있는, 자연과 문화 그리고 접근성의 삼박자가 맞아 떨어지는 공원 입지다. 게다가 이 새로운 공원의 터는 동시대 공원의 새로운 영역인 인프라스트럭처와의 공생을 통해 태동할 신선한 땅이기도 하다. 공원의 위치는 샌프란시스코 시 다운타운 북서부의 금문교 남쪽 땅으로, 공원 하층이 될 북쪽 수변으로는 활주로를 공원화한 크리시 필드Crissy Field 공원과 크리시습지Crissy Marsh가 접해 있고, 공원 상층이 될 남쪽 둔덕의 배후에는 프레시디오Presidio라는 옛 군사기지 터가 있다. 공원 하층의 생태 거점과 상층의 역사 문화단지를 갈라놓았던 금문교의 진입 고가도로Doyle Drive를 지상에 터널화하면서 생긴 터널 상부 인공의 땅이 바로 새 프레시디오 공원New Presidio Parklands이 들어서게 될 부지다. 스페인어로 군사적 요충지를 뜻하는 프레시디오는 샌프란시스코 만 남측 입구부의 구릉지로, 미6육군본부가 자리했던 곳이자 샌프란시스코 시 전체의 시발점이 되는 역사적 장소다.1 서쪽으로는 태평양 방향으로, 동쪽으로는 샌프란시스코 만의 내부로, 양 방향의 수평선이 열려있는 이점에 힘입어 군사적 요지로 쓰여 온, 환상적인 전망을 제공하는 땅이다. 대형 공원(약 7km2), 도심과의 근접성, 워터프런트라는 여러 가지 측면에서 용산 미군기지 공원화의 모델 중하나로 국내에도 알려진 바 있다.2 용산공원에 빗대어보면, 남산타워와 같은 도시의 아이콘인 금문교가 정면으로 보이고 한강과 같은 샌프란시스코 만이 내려다 보이며, 강변북로가 용산공원 부지와 이촌한강공원을 갈라놓듯 101고속도로(Doyle Drive)가 프레시디오와 크리시 필드를 갈라놓는다. 용산기지의 사우스 포스트에서 시작되어 이촌동 아파트 단지와 강변북로 상부로 공원의 부지가 마련되었다고 상상하면 이 대상지를 이해하는 데 도움이 된다. Winning Proposal Presidio Point / James Corner Field Operations Finalist The Observation Post / CMG Landscape Architecture Finalist Your Gateway Park / OLIN Finalist Arcs & Strands / SNØHETTA Finalist Presidio Gateway / West 8
다섯 발의 소리 없는 총성
동갑내기 조경설계사무소 소장 두 분을 한 테이블에 모셨다. 둘은 같은 시기에 조경학과를 다녔고, 우연이지만 같은 해(2005년)에 오피스를 설립했다. 그리 다르지 않은 환경에서 조경 교육을 받았고, 설계 실무를 익혔고, 그 경험을 바탕으로 자신의 디자인 오피스를 몇 개월 차이로 오픈했다. 섭외가 끝난 후 맞장구만 난무하게 되는 것은 아닐까 염려했지만, 기우였다. 비슷한 관점에서 동어반복을 하지 않을까 걱정했던 예상은 다행히 보기 좋게 빗나갔다. 둘은 화법도 상이하다. 고스란히 옮겨야 할까, 조금이라도 정제된 표현으로 (속칭) 마사지를 해야 할까, 고민이 컸다. 이어지는 대담 내용은 그 고심의 어정쩡한 결과물이다. 엔씨소프트 R&D 센터(이하 엔씨 사옥)에서 오전 11시에 만난 우리는 그날 오후 4시가 넘어서야 작별 인사를 건넬 수 있었다. 게다가 둘은 에디터가 떠난 이후에도 뭔가를 정산(?)해야 한다면서 만남을 이어갔다. 생뚱맞은 제목인 ‘다섯 발의 총성’은 오형석 소장의 코멘트에서 따왔다. 조각 미남의 대명사인 브래드 피트가 ‘머니볼’이란 영화에서 이렇게 말했다고 한다. “머리에 한 방을 쏠래? 가슴에 다섯 방을 쏠래” 때로는 빙빙 돌려서 말하는 것보다, 단도직입적으로 말하는 것이 좋다는 의미였다. 비평이든 비판이든 조언이든, 뭔가 이야기를 거들려고 나왔다면 솔직히 서로 느낀 점을 터놓고 이야기해야 한다는 다짐으로도 읽혔다. 오소장은 원래 머리에 딱 한 발만 쏘겠다는 마음으로 나왔다고 했다. 모질게 마음먹고…. 이어지는 구구절절한 대화를 끝까지 읽다보면 왜 ‘가슴에 다섯 발’로 타깃이 바뀌었는지 느껴질 것이다. 무엇이든 확실하게 이야기하는 것이 좋지만, 옳고 그름의 문제가 아니라 다름의 문제니까! 하나, 빗나간 불발탄 안타깝게 (혹은 다행히) 첫 번째 총알은 과녁을 빗나갔다. 불꽃 튀는 접전 없이 둘은 쉽게 의견 일치를 보았다. 지하 1층에 자리 잡은 피트니스 센터의 중심에 떡하니 자리 잡은 선큰 가든의 색다른 시도에 대해서만큼은 이견이 없었다. 박준서 소장은 건축 설계가 계속 바뀌는 과정에서 “왜 만들었는지 이해하기 힘든 공간이 몇 군데 있는데, 그중의 하나가 바로 이곳”이라는 부연 설명을 했다. 사진으로만 보면 완벽한 실내 공간처럼 보이지만, 이곳은 외기에 노출된 곳이다. 문을 여는 순간, 세찬 바람이 먼저 다가와 인사하는 곳이다. 오형석(이하 오): 엔씨 사옥은 시작 단계부터 박준서 소장에게 이야기를 지겹게 많이 들었다. (웃음) 그런 과정을 감안하고 보면 정말 고생을 많이 한 점이 눈에 선하게 보인다. 얼마나 큰 애착을 갖고 있는지도 절절히 느껴진다. 그런데, 디자인 코드는 확실히 나와 다르다. 둘러보고 나서 가장 마음에 들었던 곳은 식물을 전혀 활용하지 않은 지하 1층 피트니스 센터의 선큰 가든이다. 내가 흔히 ‘조경가들의 착한 감성’이라고 표현하는데, 조경 설계를 하는 이들은 대부분 자연을 최대한 끌어들이려고 한다. 이용자들이 조금이라도 생활 공간 가까이에서 쾌적한 자연을 느낄 수 있게 해주려고 골몰하는 것이다. 하지만 난 생각이 조금 다르다. 조경가라고 해서, 자연을 무기로 내세운 디자인만 해야 할까? 당연히 그런 설계가 좋은 디자인이라고도 여기지 않는다. 정말 좋은 디자인은 다른 디자이너에게 영감을 줄 수 있는 디자인이어야 한다. 물론 식물을 이용해서도 얼마든지 그런 영감을 줄 수 있겠지만, 식물이라는 틀에 갇혀서는 안 된다. 그런 점에서 피트니스 센터의 선큰 가든은 신선한 시도라고 할 수 있다. 무엇보다 이곳에서는 긴장감이 느껴진다. 여기는 지하층이어서 하늘을 곧바로 쳐다 볼 수 없다. 그런데 박소장이 설계한 투명한 물이 하늘을 고스란히 지하로 가져왔다. 순환하고 있는 물이 마치 고여 있는 것처럼 보이게 처리한 점과은은한 조명 연출도 돋보인다. 활동적인 피트니스 센터와 대비되는 정적인 공간이 이용자들에게 분명 좋은 영향을 줄 것이다. 게다가 이곳은 외기가 통하는 곳이어서 바람도 느낄 수 있다. 땀 흘려 운동하고 쐬는 바람이 얼마나 시원하겠는가. 풀 한 포기 없는 공간이지만, 확실히 색다르다. 바로 이런 디자인을 조경가가 해야 한다. 보기 좋은 나무만 심을 것이 아니라. 2005년 가을, 박준서는 숲을 사람들의 삶 가까이로 끌어들인 총체적 삶의 환경으로서의 ‘경관(landscape)’을 구현하겠다는 꿈을 실천하고자 디자인 엘을 설립했다. ‘Link Landscape with Life’가 모토다. 그는 설계가 설계 자체로만 그치지 않고 현실 공간으로 구현되어야 그 진정한 가치가 발현된다고 믿고 있다. 서울대학교 조경학과를 졸업했고, 동 대학원에서 석사 학위를 받은 후 박사 과정을수료했다. 삼성에버랜드, 서인조경 등에서 실무 경력을 쌓았다. 2005년 봄, 오형석은 새로운 조경 문화를 고민하던 젊은 조경가 7인과 의기투합하여 만든 프로젝트그룹을 기반으로 디자인로직을 설립하였다. 만 10년 동안 디자인로직을 이끌며 새로운 외부 환경에대한 실험을 끊임없이 시도하고 있으며, 또 다른 디자이너에게 영감을 줄 수 있는 디자인을 갈구하고있다. 경원대학교(현 가천대학교) 조경학과를 졸업 후 한양대학교 공학대학원 환경조경학과에서 석사학위를 받았고, 서인조경과 가원조경기술사사무소에서 실무를 익혔다.
엔씨소프트 R&D 센터
얼마 전 친구와 술 한잔 하며 이런 저런 얘기를 나눴다. 학교에서 다양한 외국의 사례를 중심으로 강의했던 이 친구는 요즘 학생들과 함께 국내의 실제 사례 답사를 시작했다고 한다. 그리고 여러 공간들을 돌아보며 우리가 진정성 있는 조경 공간을 만들어 내고 있는 지 의문이라는 얘기를 했다. 조경 공간이 실제 이용하는 사람들에게 얼마나 좋은 감흥을 끌어내고 있는지에 대해서도 확신을 갖지 못하겠다는 얘기를 나눴다. 조경가들이 너무 새로운 것, 놀라운 것, 유행을 따르는 것 등을 지향하면서 정작 그걸 이용하는 사람들의 눈높이는 간과하고 있지 않은가 하는 생각이 들었다. 어쩌면 우리는 그런 욕심 아닌 욕심에 취해 정작 공간을 이용할 사람들이 갖고 있는 보편적이고 일상적인 감흥에 대해서는 별다른 고민을 하지 않았던 건 아닐까?이 건물의 외부 공간을 설계하면서 우리가 고민했던 부분이 바로 이런 것들이다. 비록 놀라운 설계 어휘를 쓰지는 않았지만 진심으로 이곳을 찾는 이들이 공감하고 정 붙일 수 있는 공간을 만들고자 애쓴 이야기를 여기 풀어놓고자 한다(이 멘트는 도둑이 제 발 저린 연막일 수도 있다) 첫 만남과 재설계 이 공간은 오래전의 PF사업자 공모로부터 시작되었다. 본격적인 설계는 그 훨씬 이후인 2008년도에 착수했다. 그러나 시작은 썩 좋지 않았다. 처음 건축과 함께 설계를 시작했을 때 외부 공간은 다른 프로젝트에 비해 좁았고, 층층이 잘게 나뉘어 있어 눈에 잘 들어오지 않았다. 게다가 수시로 변경되는 건축 기능과 외관때문에 조경 공간은 갈피를 잡지 못했다. 왜 그런 경우 있지 않나? 입에 넣었는데 삼켜지지 않는 음식 같은 프로젝트. 평면을 놓고 끄적이고는 있는데 이게 뭘 하는 건지도 잘 모르겠고, 그렇다고 클라이언트가 확실하게 원하는 게 무어라고 말해주지도 않는 참으로 답답한 설계가 진행되었다. 클라이언트 측에서 요구한 것은 ‘분명한 개념’이었지만 그 분명한 개념이라는 게 다른 프로젝트에서는 그렇게 잘 잡히더니 왜 이 공간에서는 잡히지 않는지…. 그렇게 첫 설계를 매끄럽지 않고 아주 힘들게 마무리 지었다. 당연히 클라이언트도 썩 마음에 들어하지는 않지만 그냥 무난한 정도로 받아주었다. 조경설계 디자인 엘 건축설계 DMP종합건축사무소 시공 GS건설 조경시공 금강조경 발주 엔씨소프트 위치 경기도 성남시 분당구 삼평동 668번지 외 2필지 대지면적 11,531.10m2 조경면적 3,242.09m2 완공 2013
한국동서발전 신사옥
경사진 대지를 만났을 때 두 가지 반응이 떠오른다. 난감하거나 기쁘거나. 대지가 넓고 건물이 차지하는 면적이 작으면 기쁘다. 그러나 대지는 작은데 거기에 앉아야 하는 건물이 거대하면 난감하다. 동서발전 프로젝트는 후자였다. 게다가 건물이 모나게 생겼다. 동서발전 사옥은 비교적 대지의 크기도 작았고, 크게 보면 삼각형에 가까운 형상을 가지고 있었다. 두 면은 도로에, 그리고 한 면은 인접 부지에 접한 대지였다. 거창한 설계 개념을 떠올리기 전에 이 프로젝트는 처음부터 끝까지 문제 해결이 과제의 전부였다. 물론 설계라는 행위 자체가 문제 해결의 과정이긴 하지만, 이 경우는 발등에 떨어진 불을 끄는 수준이었다. 경사진 땅에 앉은 날카로운 건물 한국동서발전은 발전소를 건설·운영해 전기를 만들어 내는 일을 담당하는 곳이다. 그래서 에너지가 튀어 나올 듯한 형태로 건물이 만들어졌다. 물론 모양만 그런 것이 아니라 그 안에 담고 있는 여러 가지 기능과 태도가 역동적인 공간으로 기획되었다. 또한 이 에너지를 국민들이 이용하는 것인 만큼 건물 또한 주민들에게 많은 부분을 열어주어 이용할 수 있도록 배려하고 있다. 동서발전 사옥은 어느 방향에서 보더라도 한쪽으로 기울어진 모양을 가진 날카로운 이미지의 건물이다. 그 평면 형태 또한 역동성 있는 평행사변형을 기본 형태로 가지고 있어서 땅과 만나는 방식이 매우 격정적이다. 우리는 이 다이내믹한 평면 형태가 대지를 온전히 지배하기를 바랐다. 좁은 공간이기 때문에 사선의 형태를 완화하려는 노력은 자칫 이 공간의 정체성을 오히려 뭉그러뜨리는 전략이 될 수 있다고 판단했기 때문이다. 그래서 사선이 지배하는 형태를 디테일에까지 철저하게 적용하고자 했다. 건물에서 시작된 사선의 형태는 이 땅이 허락하는 범위 안에서, 사람들이 움직이는 흐름을 방향 삼아 끊임없이 뻗고 꺾였다. 조경설계 디자인 엘 건축설계 삼우종합건축사사무소 시공 현대산업개발 조경시공 현디자인 발주 한국동서발전 위치 울산광역시 중구 북정동 222-2 일원(우정혁신도시 내) 대지면적 30,323.0m2 조경면적 7,702.12m2 완공 2014 디자인 엘은 분당에 사무실을 둔 조경설계사무소다. ‘LinkLandscape with Life’를 사무실 작업의 모토로 삼고 그 첫글자를 따 이름 지었다. ‘엘’은 10여명 내외의 설계가들이 모여 작업하고 있으며, 현재 박준서 소장이 대표를 맡고 있다.올해로 설립 10년째를 맞이하는 ‘엘’은 그림으로만 존재하는설계, 지어지지 않는 설계를 지양하고 실체적으로 구현될 수있는 설계를 하고자 한다. 그리고 그 가운데 그 땅에 살고 있는 사람들에게 적합한 설계 해법을 찾고 그들의 마음을 울릴 수 있는 경관과 공간을 찾으려 노력하고 있다.
[칼럼] 가르치기와 가리(르)키기
“뭐 가르치냐”는 물음에 “설계 가르킨다”고 하자이내 지적이 돌아온다. ‘가르치다’는 (지식이나 기술을)깨닫거나 익히게 하는 것이고, ‘가르키다’는 (무엇을)짚어 보이거나 알리는 것이란다. 맞다. 그런데 설계를 가르칠 수는 있는 건가? 가르친다면 무엇을, 어떻게, 왜 가르쳐야 하는가? 돌아보면, 우리의 선배들은 손이 좋았다. 그만큼 교육 방법도 명확했던 것 같다. 좋은 드로잉이 좋은 설계로 인정받았다. 그런 설계가로 성장하기 위해서는 반복과 숙련이 요구되었다. 칭찬보다는 잘못을 지적하는 훈육을 통해 성장을 유도했다. 도제식에 가까웠다. 오래전부터 훌륭한 디자이너들을 배출한, 뼈대 있는 교육 방식이기도 했다. “발로 그려도 이것보다 낫겠다”면서 밤새워 그린도면을 찢어버렸다거나, “아닌 것 같은데” 한마디에 달포 가까이 고민한 결과가 물거품이 되었다는 일화들은 이런 교육 과정의 단면을 보여준다. 아 닌 것 같다면 ‘왜’ 아닌 건지? 설계 수업은 교육자의 취향과 경험을 배우는 건지? 같은 질문보다는 “괜찮은데” 정도의 사인을 얻기 위해 교수의 스타일과 취향을 파악하는 선택을 했다. 이런 과정을 통해 어떤 이는 의식 있는 설계가로 성장했지만, 어떤 이들은 좌절하고, 어떤 이들은 앙금을 가졌다. 이들 가운데는 갑이 되어, 잘해야 을이나 병인설계가를 좌지우지하는 위치가 되었다. 설계를 배우는 것이나 가르치는 것은 쉽지 않다. 설계라는 작업 자체가 녹녹치 않기 때문일 것이다. 늘 새로운 것을 고민해야 하고 개인적 시간을 줄여야하는 고단함이 있다. 그 고단함의 대가가 큰 것도 아니다. 자긍심이 이를 상쇄하곤 하지만, 앙금을 가진 갑 앞에서는 무기력해진다. 게다가 일감마저 줄어드는 상황이 그들을 떠나가게 한다. 이들에게는 절실한 것이 어떤 이들에게는 병풍이 되기도 한다. 설계 시장이 불황인데 “설계를 왜 이렇게 많이 가르치느냐”는 말을 가능하게 하는 배경이 된다. 대학의 커리큘럼이 모두 직무와 관련되어야 하는 건가? 그렇다면 독립적 업이 없는 미학이나 역사, 생태학 같은 과목은 가르치지 말아야하나? 조경 분야가 설계 시장이 어려워지면 다른 부문은 좋아지는 제로섬 게임인가? 혹시 자신의 이해관계를 위해 집단을 동원하는 것은 아닌가? 아카데미즘으로서 조경의 지향을 거론하기 이전에 드는 우문들이다. 교육의 성과를 취업률로 평가하는 시대인 것은 분명하다. 취업을 위해서는 실무에서 요긴한 실시설계, 시공과 적산 등을 더 많이 가르쳐야 한다는 주장이 설득력을 얻는다. 취업을 위해서는 조경기사가 필수고, 기사 시험에 합격하려면 설계 기법 연습이 더 필요하다고 강조한다. 아직까지 기사 실기는 제도판과 T자를 이용한 수작업이기 때문이다. 사십 년 전부터 해오던 선 긋기, 심벌 그리기, 방위와 범례 그리기, 스케치 등이 지속되고 강조되는 이유이기도 한다. 학생들은 기법 훈련에 많은 시간을 할애하지만, 사고 과정은 생략된다. ‘어떻게’ 그리는지는 알지만, ‘왜’ 그리는지는 모른다. 간혹 이런 단순 반복 작업을 왜 시키느냐고 묻는 학생도 있지만 찻잔 속의 태풍이다. 교육받은 시대의 프레임 안에 있는 교육자와 학생 사이에는 삼사십 년의 시간 차이가 있지만, 교육 내용은 거의 같다. 늘 실무를 의식한다고 하지만, “실무에 나온 학생들이 할 줄 아는 게 없다”는 오래된 불만은 여전하고, 학교가 철지난 것을 가르친다는 불만도 제기된다. 삼사십 년 된 조경 교과서들이 시대의 변화를 반영하지 못하고 있다는 지적이다. 겸허하게 받아들일 수 밖에 없다. 조경은 시대 변화와 함께 그 역할과 정의가 변화해왔기 때문이다. 변화하는 시대와 경향에 관심을 가져야 하는 것은 조경의 운명이다. 그러나 조경은 변하지 않는 본질이 있다고 믿는 교육자는 불편하다. 본질을 가르쳐야지 경향을 가르치려 하냐고 힐난한다. 기본을 탄탄히 하라는 뜻으로 이해할 수 있지만, 그 기본이 삼사십년 전의 방법이라면 동의하기 어렵지 않은가교육은, 교육자들이 교육받은 시대의 프레임 안에 있는 것이 아니라, 학생들이 성장해서 활동할 시대를 염두에 두어야하는 것 아닌가. 꿈을 가르치기 위해서는 교수도 꿈을 꾸어야 한다. 같은 이유로 설계 교수는 설계 참여를 통해 최소한의 설계 감각을 유지하는 것이 필요하다. 그것이 설계 교수의 아이덴티티이자 경쟁력이고 학생들에게 도움이 되는 길이다. 그러나 쉽지 않다. 주당 수업 부담은 많고, 설계에 참여할 수 있는 기회는 많지않다. 논문보다는 공모전이나 작품 발표, 전문지게재를 통해 실적을 평가받고 싶어 하지만, 공모에 당선된다고 해도 인정 실적은 SCI 논문의 1/10에 불과하다. 설계를 연구 실적으로 인정하지 않으려는 실증적 평가 관행도 건재하다. 게다가 실기 실적이 논문에 비해 수월하지 않느냐는 위협구가 날아온다. 설계 시장에서는 “교육이나 하지 왜 설계에 참여하느냐”고 곱지 않은 시선을 던진다. 그러는 사이 설계가로서 경쟁력은 사라진다. 이미 대학에 오면서 예고된 일이었을 것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설계는 생각이라고, ‘왜’ 그래야 하는지, 적어도 “아닌 것 같다”면 ‘왜 아닌 것 같은지’를 설명할 수 있어야 한다는, 논리를 가져보려는 노력이 한낮 학생들을 부추기는 관념의 유희로 치부되는 것은 참담하다. “설계는 답이 없다”는 전가의 보도를 휘두르며 설계를 경험과 취향의 세계로 몰고 간다. 그렇다면 힘센 사람의 취향에 맞추는 것이 우리가 가야 할 길인가? 거의 모든 교과목이 그렇듯이, 설계 과목이 모두를 설계가로 키우는 것은 아니지 않은가. 그렇게 될 수도, 될 필요도, 되어서도 안 될 것이다. 누구는 좀 더 잘할 수 있고, 누구는 조금 못할 수도 있지만, 열등감과 앙금을 남기는 것은 경계해야 한다. 그것은 당사자뿐만 아니라 분야의 발전을 위해서도 전혀 도움이 되지 않기 때문이다. 가장 젊은 날, 거의 대부분의 시간을 바쳐 공부한 자신의 전공에 대해 자긍심을 가지지 못하고 앙금만을 가진다면 얼마나 불행한가. 여러 교과목의 관계성을 이해하고 공유할 수 있는, 왜곡되지 않은 교육이 자긍심을 가지게 해야 할 것이다. 조금 못하더라도 학생의 생각을 읽으려 애쓰고 그 생각이 발전 할 수 있게 돕는 것이 필요하다. 그 생각이 자의적이라면 논리를 가질 수 있게, 개인적이라면 다수를 위할 수 있게. 그것은 위계적이고 훈육적인 ‘가르치기’가 아니라, 서로 다른 눈높이에서 같은 방향을 ‘가리키는’ 것이다. 설계 수업이기에 할 수 있고, 설계 수업이기에 필요하다. 최정민은 순천대학교 조경학과 교수로, 설계 실천과 교육 사이의간극을 고민 중이다. 대한주택공사에서 판교신도시 조경설계 총괄 등의 일을 했고, 동심원조경기술사사무소 소장으로 다양한 프로젝트와 설계공모에 참여했다. 제주 서귀포 혁신도시, 잠실 한강공원, 화성 동탄2신도시 시범단지 마스터플랜 등의 설계공모에당선되었다. 조경비평 ‘봄’ 동인으로 현실 조경 비평을 통해 조경담론의 다양화에 기여하고 싶어 한다.
[에디토리얼] 조경(가)의 탄생
세상에서 가장 하기 싫은 건 공부가 아닐까? 적어도 나는 그렇다. 시험, 입시, 자격증, 학위, 취직, 승진 같은 인생의 짐에서 어느 정도 해방된 다음부터는 더 하기 싫은 게 공부다. 아주 가끔은 공부를 ‘하고 싶다’는 욕망이 꿈틀거리기도 하지만 결코 지속가능한 감정은 아니다. 그래도 직업은 못 속여서 공부를 ‘해야 한다’는 의무감으로부터 자유롭지는 않다. 그래서 방학 때면 오히려 이 의무감에 족쇄를 채우기 위해 세미나라는 멋진 이름으로 포장된, 일종의 집단 행동을 하곤 한다. 이번 겨울에는 ‘조경의 탄생’이라는 허세 가득한 세미나 제목을 달아놓고 대학원생들과 함께 조경이 근대적 전문 분야의 하나로 성립되던 19세기의 상황과 쟁점을 되짚어 보았다. 허구한 날 조경의 위기 타령을 반복하는 최근의 분위기가 오히려 위기인 것 같아 거꾸로 조경 태동기의 사정을 살펴야겠다는 게 하나의 이유였고, 때마침 이 시기와 관련된 새로운 연구 성과가 최근 활발하게 발표되고 있다는 게 또 다른 이유였다. 대표적인 조경 역사 저널 『Studies in the History of Gardens & Designed Landscapes』 34권 4호(2014년)의 특집 ‘조경(가)의 기원’에 실린 일곱 편의 논문, 그리고 최근 19세기 조경의 역사와 이론에 관한 새로운 시각의 탐구를 전개하고 있는 조셉 디스폰지오Joseph Disponzio의 글 몇 편을 읽었다. 짐작하시겠지만 재미있는 내용은 아니다. 그러나 새롭게 발굴된 사실史實 몇 가지에는 독자 여러분도 흥미를 느끼실 것 같아 간단하게 정리해 본다. 첫째, 우리가 ‘조경가’로 번역해 쓰고 있는 영어 ‘랜드스케이프 아키텍트landscape architect’에 해당하는 표현이 적어도 19세기 초 프랑스어에 존재했다. 18세기 말과 19세기 초에 영국 풍경화식 정원landscape garden을 프랑스에서 유행시킨 건축가이자 풍경화가였으며 엔지니어이기도 했던 장-마리 모렐Jean-Marie Morel이 자신의 새로운 업역을 표현하기 위해 정원사 대신에 건축가를 경관과 결합시킨 합성어 ‘아르시텍트 페이자지스트architecte paysagiste’ 라는 직업명을 1804년부터 사용했다. 둘째, 프레더릭 로 옴스테드Frederick Law Olmsted는 프랑스어 표현 ‘아르시텍트 페이자지스트’에 영향을 받았을 가능성이 크다. 1858년의 센트럴 파크설계공모 당선 이후인 1859년, 옴스테드는 사례조사를 위해 유럽의 공원을 순회하던 중 파리에 머물렀고 불로뉴 숲을 여덟 차례 이상 방문했다. 당시 불로뉴 숲의 개선 계획 책임자였던 아돌프 알팡Jean Charles Adolphe Alphand은 불로뉴 숲은 물론 자신이 담당하고 있던 파리의 도시 개조·정비 프로젝트를 옴스테드에게 소개했는데, 그는 파리의 조경국Service de l'architecte paysagiste(Office of the Landscape Architect) 소속이었다. 이 조직 명칭을 확인할 수 있는 것은 알팡의 전임자였던 루이-쉴피스바레Louis-Sulpice Varé가 근무하던, 1854년의 불로뉴숲 도면 직인이 최초다. 따라서 옴스테드는 자신이 랜드스케이프 아키텍트라 지칭되던 1860년대 이전에 이미 파리에서 랜드스케이프 아키텍트에 해당하는 프랑스어 명칭, 그리고 대형 공원과 ‘도시개선’ 프로젝트를 담당하는 랜드스케이프 아키텍트의 직무 영역을 인지했을 것이다. 셋째, 1860년 4월, 맨해튼 155번가 위쪽으로 도시를 확장하는 계획 책임자로 옴스테드와 그의 파트너 칼베르 보Calvert Vaux가 ‘랜드스케이프 아키텍트’로 임명된 것이 미국에서 전문가의 직함으로 랜드스케이프 아키텍트가 명시된 최초의 기록이다. 이는 랜드스케이프 아키텍트에게 주어진 최초의 담당 업무가 공원의 설계가 아니라 도시의 계획이라는 점을 뜻한다. 이제까지는 센트럴 파크 조성책임자였던 옴스테드와 보가 1863년 5월 14일 공원위원회에 사직서를 제출하면서 그들의 이름 앞에 랜드스케이프 아키텍트라고 쓴 것을 첫 기록으로 보는 게 일반적이었다. 이러한 몇 가지 사실은 초창기 조경(가)의 전문성과 업역에 대한 다양한 해석을 초대한다. 예컨대 랜드스케이프 어바니스트인 찰스 왈드하임Charles Waldheim은 ‘건축으로서 조경’이라는 글에서 옴스테드는 경관과 건축가의 합성어인 랜드스케이프아키텍트가 랜드스케이프 가드너보다 대중적으로 더 호소력을 지니고, 조경이 정원을 넘어 도시의 계획과 개선을 다루는 전문성을 지닌다는 것을 알릴 수 있으며, 건축과의 잠재적 갈등을 완화시킬 수 있다고 생각했을 것이라는 주장을 펼친다. 그러나 이러한 적극적 해석은 논쟁적이다. 조경의 역사에서 건축이나 도시를 둘러싼 갈등과 충돌은 150년이 지난 지금도 여전하기 때문이다. 랜드스케이프 아키텍처landscape architecture라는 용어의 사회적 공인은 이 분야의 업무 영역에 대한 이해에서 비롯되지 않았다. 오히려 옴스테드를 필두로 한 출중한 전문가들이 랜드스케이프 아키텍트landscape architect라는 직명으로 대규모 공공 프로젝트에 참여하고 성과를 거두면서 사회적인식을 얻게 된다. 그럼에도 19세기 말과 20세기초의 여러 기록에서 조경 전문업profession과 학제discipline의 불안정성을 둘러싼 고민과 논란을 반복적으로 읽을 수 있다. 그것은 조경(가)이라는 용어의 문제였다기보다는 조경(가)이 다루는 대상과 업무의 정체성이 부족했기 때문일 것이다. 지금도 사정은 크게 달라지지 않았다. 오히려 위기라는 말이 진부해질 정도로 조경의 정체성은 점점 모호해지고 있다. 겨울 세미나를 마무리하는 토론에서 개진된 의견 몇 구절을 옮긴다. “작은 느낌표와 커다란 물음표를 동시에 얻었다.” “당시에 새롭게 등장한 전문분야를 지칭할 적절한 용어를 찾으려 고심하던 옴스테드의 ‘머뭇거림’은 어쩌면 조경의 정체성을 가장 명확하게 보여주는 사건일 것이다.” 세상에서 가장 하기 싫은 것 또 하나는 글쓰기가 아닐까? 적어도 나는 그렇다. 다른 달보다 사흘이나 짧은 2월에 닷새짜리 기나긴 명절까지 겹쳐 에디터들과 디자이너들은 연휴 마지막 날임에도 밤샘 사투를 벌이고 있다. 다른 필자들의 글을 다듬고 고치는 건 거의 마무리되었고, 누구나 가장 하기 싫은 일, 자기 글 쓰는 일이 아직 남은 것 같다. 나야 이제 여느 달보다 지루한 에디토리얼을 겨우 끝냈지만…. 야식으로 시킨 치킨과 맥주가 도착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