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환경과조경 2017년 6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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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에디토리얼] 문재인 정부와 용산공원
용산공원과 관련된 글을 쓸 때면 늘 첫 문장을 이런 식으로 시작했다. “금단의 땅, 미지의 땅 용산 미군기지가 공원이라는 새 옷을 입고 우리에게 돌아오고 있다.” 그러나 이 질곡의 땅은 과연 언제, 어떤 모습의 공원으로 부활할 것인가. 한미 양국이 기지 이전에 합의한 후 30년 가까운 시간이 흘렀지만 용산공원은 안개 속에 갇혀 있다. 1,700만 촛불이 함께 만든 문재인 정부는 이 난제를 어떻게 풀어갈지 주목된다. 돌이켜보면 2012년이 용산기지 공원화 프로젝트의 분수령이었다. 1990년 6월, 용산기지 이전에 관한 한미 간의 기본합의서와 양해각서 체결을 계기로 기지 활용에 대한 다양한 제안이 생산되기 시작했다. 초기에는 공원보다는 임대 주택 건설, 주거 단지 개발, 복합 상업 시설 개발 등이 논의의 주를 차지했지만 점차 주거지 개발론과 공원화론이 대립하는 양상으로 흘렀다. 이전 비용 부담 문제로 소강상태에 들어간 논의는 2003년 5월, 노무현 대통령과 조지 W. 부시 대통령이 용산기지 이전에 합의함으로써 급물살을 타게 된다. 정부 내에 담당 조직과 위원회가 설립되고 다양한 연구와 구상 프로젝트가 줄을 잇는다. 이 과정을 거치며 종래의 주거지 개발론은 자취를 감추고 ‘민족·역사’와 ‘생태’를 키워드로 한 공원화론이 대세를 이루게 된다. 이즈음 공원화 논의를 정부 차원에서 공론화한 최초의 계획인 ‘용산기지 공원화 구상’(2005)이 발표됐고, 참여정부는 ‘용산기지 공원화 선포식’(2006)과 ‘용산공원 조성 특별법’ 제정(2007)을 통해 용산공원 프로젝트의 토대를 마련했다. 공원화 프로세스에 가속이 붙는다. ‘용산공원 아이디어 공모’(2009)와 ‘용산공원정비구역 종합기본계획’(2011)을 통해 공원의 비전과 전략을 세우고, ‘용산공원 설계 국제공모’(2012)를 통해 기본계획안의 밑바탕을 마련한다. 2012년 설계공모는 20년 넘게 계속된 공원화 담론을 디자인 단계로 이행하는 분수령이었다. 그러나 2012년 이후 정작 용산공원은 얼어붙는다. 설계공모 당선작을 바탕으로 진행된 웨스트 8West8의 기본설계가 중단과 재개를 반복하며 공전했다. 참여정부가 시동을 건 일이고 임기 내에 착공조차 시작되지 않는 일이어서였을까. 환경복지를 대표적 공약 중 하나로 내세웠던 박근혜 정부는 용산공원에 철저한 무관심으로 일관했다. 석연치 않은 이유로 한 국회의원이 주도해 설계비가 전액 삭감돼도 수수방관의 기조를 지켰다. 정부 주도 공공사업의 전형을 되풀이하며 사업의 과정을 공개하지 않고 형식적 절차만 챙겼다. 2005년 구상, 2011년 기본계획, 2012년 설계공모를 관통하는 철학이었던 과정 중심적 계획, 열린 계획, 단계별 계획, 시민 참여는 장식적 구호로 전락했다. 반대 여론이 일어나면 정치 공세라고 억울해할 뿐 소통과 대화의 의지없이 4년을 흘려보낸다. 작년에는 국토부가 난데없이 용산공원 내 콘텐츠 선정안을 발표하면서 서울시로부터 ‘토건 시대의 난개발’이라는 비판을 받는다. 여러 언론과 시민 사회도 정부의 일방통행에 반기를 들고 나섰다. 대선 직전인 지난 4월 24일, 문재인 당시 후보는 이른바 ‘광화문 대통령’ 공약의 일환으로 광화문광장 재구성과 용산 생태자연공원 조성 사업을 추진하겠다고 밝혔다. 그는 “앞으로 용산 미군기지가 반환되면 뉴욕의 센트럴 파크 같은 생태자연공원이 조성될 것”이고 “북악에서 경복궁, 광화문, 종묘, 용산, 한강까지 이어지는 역사, 문화, 자연이 함께 어우러지는 문화 벨트가 조성될 것”이라고 강조하며, 용산공원을 통해 “서울은 세계 속의 명품 도시로 거듭나게 될 것”이라고 말했다. 그러나 용산공원 조성은 노태우 대통령 이후 역대 정권에서 항상 추진되어 온 사업이다. 늘 센트럴 파크, 생태 공원, 문화벨트, 명품 도시를 말해 왔다. 오히려 문재인 정부는 용산공원 프로젝트에서 지난 30년 간 가장 소홀히 해온 게 무엇인지 반성하고 교정해야 한다. 전문가의 고민과 계획안은 늘 있었다. 하지만 수사와 구호로만 소비되고 시민의 공감을 이끌어내지 못했다. 결과도 중요하지만 만드는 과정이 더 소중하다. 문재인 정부는 누가 어떻게 만들고 보살펴야 용산공원이 다음 세대를 위한 좋은 선물이 될 수 있을지 시민과 전문가 모두의 지혜를 모으는 참여의 장을 계속 마련해야 한다. 지난 5월 19일부터 소통과 공론화에 방점을 두고 시작된 ‘용산공원 라운드테이블1.0’과 같은 계기를 수시로 만들어야 한다. 또한 문재인 정부는 용산공원을 둘러싼 서울시와의 갈등을 해소해야 한다. 용산공원의 표류 이면에는 중앙정부와 서울시 사이의 공원 조성 주도권을 둘러싼 팽팽한 줄다리기가 있어 왔다. 비단 2016년에만 그랬던 게 아니다. 예컨대 2006년에도 중앙정부와 서울시가 용산공원을 놓고 한바탕 기 싸움을 벌였다. 당시는 대통령-서울시장의 정치적 노선이 2016년과 반대였지만, 갈등 양상은 엇비슷했다. ‘용산공원 조성 특별법’ 제정 과정에서 당시 건교부가 공원 부지 용도 변경권을 갖겠다고 하자 서울시는 부지 일부를 개발해 기지 이전 비용을 충당하려는 것이라며 반발했고, 2007년 제정된 특별법에는 서울시 주장대로 공원을 다른 목적으로 용도 변경할 수 없다는 조항이 명시됐다. 그러나 국가가 주도한다는 의미의 ‘국가 공원’으로 지정됨으로써 서울시는 조성의 주도권을 잃게 된다. 1990년대에는 용산공원 논의를 앞에서 이끈 서울시였지만 노무현 대통령의 참여정부 이후에는 ‘용산공원 평론가’로 위치가 바뀐다. 모처럼 문재인 정부에서는 대통령과 서울시장의 정치 이념이 다르지 않다. 소유권, 기지 이전과 공원 조성 비용 부담, 조성 주도권 등은 정치적 지향이 같다고 해결될 만만한 일이 아니다. 문재인 정부는 협치의 지혜를 발휘해 용산공원과 관련된 서울시와의 대립을 풀어야 한다. 생태 공원, 기존 건축물 재활용 같은 문제는 전문가에게 맡기면 된다. 문재인 정부가 노력해 다루어야 할 또 하나의 의제는 용산공원 영역과 경계의 문제다. 용산기지 본체 부지는 이미 1990년대부터 반환되기 시작해 용산가족공원, 전쟁기념관, 국립중앙박물관이 들어섰다. 이후 한미 협정에 따라 드래곤힐 호텔과 방호 부지가 사우스포스트의 요지를 계속 차지하게 됐다. 미대사관이 메인포스트 북쪽에 들어설 계획이며, 반환될 예정이던 한미연합사 부지도 전시작전권이 이양될 때까지 공원 영역에서 제외된다. 뿐만 아니라 우리 정부의 국방부는 부지를 계속 사용한다. 이대로 조성된다면 정상적인 공원 형태가 아니다. 지금까지 정부는 영역과 경계의 문제를 외교, 한미 관계, 안보, 방위의 차원이라는 이유로 용산공원과 별개로 취급했다. 미국 측의 요구를 그대로 수용했다. 문재인 정부는 오랜 굴절과 질곡을 딛고 귀환하고 있는 이 땅의 기형적 영역과 경계를 놓고 미국과 대화하고 협상하는 외교력을 발휘해 주기 바란다. 국방부 이전 이슈도 검토해 주기 바란다. 공원 계획과 나란히 진행해야 할, 가장 중요하면서도 어려운 과제다.
[칼럼] 1.5년 보고서
『환경과조경』의 특집 ‘설계사무소를 시작한다는 것’에 신생 디자인 오피스의 하나로 우리 HLD가 소개된 지 벌써 일 년이다(2016년 5월호 참고). 이번 호 칼럼을 의뢰받고 ‘창업, 그 후 일 년’에 대한 글을 쓰려 했는데 생각보다 쉽지 않았다. 하루하루 조경가로 살아가면서 느끼는 감정의 상당 부분이 푸념 같고, 10주년, 20주년, 30주년을 맞은 선배들 앞에서 감히 경험에 대해 주름잡기도 어렵다. 다들 겪는 어려움에 엄살을 부리기도 싫고, 어쩌다 잘 되고 있는 일로 거드름을 피우고 싶지도 않아 셀프 검열을 하다 보니 점점 손가락만 굳는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괜찮지 않을 때는 괜찮지 않다고 말할 용기가 필요하다는 생각, 어떻게 하고 있는지 궁금한 사람도 있겠다는 생각에 마음을 다잡고 우리의 지난 1년 반을 뒤돌아봤다. 우울할지라도 이야기의 시작을 설계비로부터 하지 않을 수 없다. 단순 비교는 어렵지만, 경험과 풍문을 기반으로 추정해 보면 한국의 조경 설계비는 미국의 절반에 훨씬 못 미친다. 굳이 다른 나라와 비교하지 않더라도 지난 10년간 설계비의 추이를 보면 현재 설계비와 10년 전 설계비 둘 중 하나는 잘못된 것임을 쉽게 알 수 있다. 이런 설계비로 좋은 설계가 나온다면 그건 기적에 가깝다. 보통 그런 기적이 일어나려면 잦은 야근, 아드레날린 펌핑, 자가 복제, 눈속임, 주변의 도움, 그리고 누구에게도 환영받지 못하는 설계자의 오지랖 (이른바 자진감리) 등이 필요하다. 업계에서 조경의 목소리가 왜 이렇게 힘을 잃었을까 생각해 보면, 적은 설계비나 급한 일정 때문에 때로는 토목에 걸친 부분은 토목에게, 건축에 물린 부분은 건축에게 넘겨버리는 와중에 우리가 가진 전문성에 마땅한 시장을 잃은 것 같다. 클라이언트의 장단에 잘 맞춰야 다음 일이 있겠다는 생각에 보고 보조 업무에 너무 많은 시간을 뺏기고 있는지도 모른다. ‘갑 님’들의 요구에 장단을 맞추다 보면 컨설턴트에게 줄 돈이 녹록지 않아서, 있을지 없을지도 모르는 미래의 프로젝트를 담보로 여러 컨설턴트에게 공짜 협력을 구걸하기도 한다. 돈을 비교적 쉽게 벌 수 있는 프로젝트도 있다지만 사실 신생 업체에게는 못 먹는 감인 경우가 많다. 엔지니어링 업체나 기술사사무소만 참가 가능한 일도 있지만, 법적으로 이런 요건이 요구되지 않는 경우에도 괜스레 자질을 의심받는 경우가 있다. 여전히 알음알음 인맥이나 로비가 강한 힘을 발휘한다고 한다. 왜 굳이 ‘자격’이나 ‘실적’을 중시하게 되었는지 이해하지 못하는 건 아니지만, 역설적으로 이런 것들은 강자독식 구도를 견고히 하는 데 아주 톡톡한 역할을 한다. 뭐가 좋은 설계인지 판단할 능력이 없을 때는 이런 기준이라도 있는 게 편하다고 생각하는지도 모르겠다. 이 악순환의 고리를 어떻게 끊을 수 있을까? 이런 이야기를 하고 있으면 누군가 말한다. “자리 잡으려면 5년은 걸리지.” 이건 대답이 아니라 도피적인 화제 전환에 가깝다. 여기에 공감하는 바가 있다면, 그건 이 악순환에서 닭이 먼저냐 달걀이 먼저냐에 대한 논의가 무의미하다는 것 정도일 것이다. 하지만 흑인 운동의 상징적 지도자 엘드리지 클리버Eldridge Cleaver가 말했듯, “적극적으로 해결책이 되려고 하지 않으면, 나도 문제의 일부가 될 수 있다”. 그래서 우리는 노력한다. 설계를 할 때는 낮은 설계비 핑계를 대지 않고 최선을 다하되, 낮은 설계비가 직원들이나 컨설턴트의 공짜 노동으로 이어지지 않도록 설계비 책정은 최대한 꼼꼼하게, 가격 협상은 때론 공격적으로, 과중한 추가 업무에 대한 불평은 최대한 전문적으로 하려고 한다. 나름 평생 ‘독한년’ 소리 듣고 살아온 나에게도 이런 역할이 때로는 쉽지 않은 일이다. 하지만 곳곳에서 함께 싸우는 동지를 만나기도 하고 운이 좋게 훌륭한 발주처나 시공자를 만나서 일이 잘 풀리기도 하니, 계속 싸워나갈 의지가 생기고 희망이 보인다. 설계비 낮다고 구시렁대면서도 자존심일지 책임감일지 모르는 독한 마음으로 도면을 납품하면, 이런 도면은 처음 받아봤다는 칭찬을 듣기도 한다. 특히 상세도면이나 정지계획도, 도면에 달린 각종 노트에 대해서 그런 반응이 많다. 물론 시공자가 우리의 정지계획도나 상세도를 너무 어려워하거나 예산이 없어 결국 시공자가 원래 알던 방식으로 시공되는 일이 허다하지만, 적어도 도면에 전문성이 추가되면 설계비가 달라질 수도 있다는 점은 큰 다행이 아닐 수 없다. 외부적인 문제 말고도, 낮은 설계비와 짧은 설계 기간을 극복하기 위해서 우리 스스로 효율성을 끌어올리는 노력을 하고 있다. 삽질을 줄여야 연구할 시간이 나온다. 이를 위한 방법으로, HLD는 매주 지식 공유 세션을 갖고 있다. 회사 구성원이 돌아가면서 자신의 노하우를 동료에게 전수한다. 이제는 ‘캐신(캐드의 신)’과 ‘포신’, ‘스신’의 비법이 회사 표준이 되었고, 지식 공유 세션의 내용들이 매뉴얼로 쌓여가고 있다. 모든 사람이 모든 툴을 자유자재로 다룰 수 있는 날이 곧 올 것 같다. 인원이 얼마 되지 않는 우리 회사 내부 밑천이 떨어질 때면 외부 인사, 특히 시공의 최전방에 나가 있는 전문가를 모셔 특강을 진행해 압축적으로 현장 지식을 전수받고 있다. 자격증 취득으로는 가질 수 없는 힘을 키워나가고 있다. 함께 설계비 좀 올려 보자. 우리의 먹고 사는 문제나 품위 유지비 벌이의 문제가 아니라 업계의 지속가능성에 대한 문제다. 이해인은 서울대학교와 UC 버클리에서 도시계획을, 하버드 GSD에서 조경 설계를 공부했다. 미국 AECOM과 POPULOUS에서 실무 경험을 쌓았고, 2015년 이호영과 함께 HLD를 설립했다.
시드니 파크 물 재생 프로젝트
1990년대 말부터 2000년대 초까지 계속된 소위 ‘밀레니엄 가뭄’으로 호주는 사상 최악의 물 부족 사태를 겪었다. 시드니 시는 2012년 가뭄 종식이 공식적으로 선포될 때까지 멀리 떨어진 강에서 물을 끌어와 사용해야 했다. 이 같은 상황을 예방하기 위해 시드니 시는 ‘지속가능한 시드니 2030Sustainable Sydney 2030’의 일환으로 ‘분산적 수자원 마스터플랜Decentralized Water Master Plan(2012~2030)’을 시행하고 있다. 레인 가든, 초목 시스템vegetated system, 우수 재활용, 차세대 에너지trigeneration plants 등을 활용해 수자원 소비와 낭비를줄여나가는 것이 목표다. 시드니 파크 물 재생 프로젝트Sydney Park Water Re-Use Project도 ‘분산적 수자원 마스터플랜’의 일부로 진행한 프로젝트 중 하나다. 시드니 시는 호주 정부와 파트너십을 맺어 ‘국립 도시 수자원 및 담수화 계획National Urban Water and Desalination Plan’을 통해 프로젝트를 시행했으며, 이는 시가 진행한 환경 프로젝트 중 가장 큰 규모다. 시드니 시는 호주 남동부의 불규칙적인 강수량 패턴을 토대로 기후 변화를 예측하고, 도시에 필요한 수자원을 원활하게 공급하는 통합적 방법을 제시하고자 했다. ...(중략)... Landscape Architect Turf Design Studio & EnvironmentalPartnership Project Team Turf Design Studio & Environmental Partnershipwith Alluvium, Turpin + Crawford Studio and DragonflyEnvironmental Water and Environment Alluvium Public Art Turpin + Crawford Studio Ecology Dragonfly Environmental Structural Partridge, Arup Lighting and Electrical Lighting Art and Science Irrigation HydroPlan Soils Invetigation SESL Australia Environmental Management A.D. Envirotech Australia Lead Contractor Design Landscapes Client City of Sydney Location St Peters, NSW, Australia, 2044 Area 16,000m2 Design 2012. 2. Completion 2015. 5. Photographs Ehtan Rohloff, Simon Wood 터프 디자인 스튜디오 앤 인바이런멘틀 파트너십(Turf Design Studio &Environmental Partnership, TDEP)은 마이크 혼(Mike Horne)과 아담 헌터(Adam Hunter)가 이끄는 디자인 협업 팀이다. 지난 10년간 독특한 디자인 전략, 숙련된 실무 능력을 바탕으로 다양한 분야의 도시 프로젝트를 수행해왔다. 계획과 설계, 생태학을 엮어 살기 좋은 장소를 만들되 설계자의 의도가 직접적으로 드러나지 않게 하는 데 힘쓰고 있다. *환경과조경350호(2017년6월호)수록본 일부
신장 보러 인민공원
이 작품은 신장Xinjiang(新疆) 보러Bole(博樂) 시에 위치한 인민공원People's Park을 리노베이션한 프로젝트다. 새로운 경관을 창출하기보다 장소가 지닌 특성을 활용해 주민들에게 익숙하면서도 신선한 공간을 제공하고, 도시의 옥외 거실 역할을 하는 공간을 설계하고자 했다. 또한 일반적인 설계 기법과 평범한 재료를 사용해 지나치게 복잡한 공간이 만들어지지 않도록 했다. 이로 인해 각각의 요소가 더욱 명확하게 드러나게 된다. 현 상태를 기저로 장식적인 요소를 지양하면서 경관을 담 담하게 그려냈다. 공존 속의 나눔 대상지는 인민공원의 세 블록으로 원화남로文化南路의 동쪽(F 블록)과 서쪽의 호수(D 블록), 주 출입구(C 블록)다. F 블록은 본래 공원 부지가 아니었는데 잘 형성된 녹지대가 있어 리노베이션 과정에서 공원 부지로 편입됐다. 이곳은 도시의 녹색 통로로 공공 녹지를 연결하는 중요한 역할을 한다. 나무가 밀식되지 않은 곳에 자그마한 구릉을 조성해 산책로를 걷다가 잠시 머무를 수 있는 휴식 공간을 적절히 배치했다. Design R-land Concept Design Zhang Jun Hua, Bai Zu Hua, Zhang Peng,Wang Zhao Ju Development Design Zhang Jun Hua, Wang Zhao Ju,Wang Hong Lu, Zhang Ying, Zhang Guang Wei Construction Documents Design Zhang Jun Hua, Hu Hai Bo,Yu Feng, Ma Shuang, Yang Xiao Hui, Li Wei, Jing Si Wei,Wang Kun, Liu Jing Yi, Zhang Quan Electrical, Water Supply and Drainage Yang Chun Ming,Xu Fei Fei, Li Song Ping, Hou Shu Wei Architecture Yuan Lin, Song Li Ying Structure Xu Ke, Song Zheng Gang, Ma Ai Wu Design Assistance Shen Jun Gang(Bo Zhou City,Xinjiang Province Construction bureau) Builder Bole City, Xinjiang Province Garden Engineering Client Bole City, Xinjiang Province Urban and Rural PlanningBureau Location Bole City, Xinjiang, China Area 13.55ha Design Period 2012. 4. ~ 2012. 12. Completion 2015. 7. 베이징 웬수경관계획설계사무소(源樹景觀規劃設計事務所, R-land)는 중국의 환경 전문 설계사무소다. 2004년 설립된 이래 경관 계획, 공공 공간, 관광·휴양지, 테마 디자인 등 다양한 분야의 프로젝트를 수행하고 있다. 특히 대지 경관 설계와 자문에 많은 노력을 기울이고 있다.대표작으로는 롱후·얀란산(龍湖·灧瀾山), 시산 이하오위안(西山壹號院), 홍쿤·린위수(鴻坤·林語墅), 징터우인타이·탄샹푸(京投銀泰·檀香府), 완커·관청비에수(萬科·觀承別墅), 중예·더시안공관(中冶·德賢公館), 우칭청터우·시허위안(武清城投·熙和園), 신화리안 온천호텔(新華聯溫泉酒店), 자동차 박물관, 웨지화(月季花) 박물관, 베이징 중하이 오일연구개발센터(北京中海油研發中心), 나나야A4지구(阿那亞A4區) 경관 프로젝트 등이 있다. *환경과조경350호(2017년6월호)수록본 일부
런들 몰
호주 남부 애들레이드Adelaide에 위치한 런들 몰Rundle Mall은 지난 40년간 쇼핑, 식사 그리고 여가를 즐기는 장소로 이용되었다. 2012년 애들레이드 시의회는 하셀HASSELL과 아럽Arup에게 시민의 사랑을 받아온 이 공간을 재개발해 줄 것을 요청했고, 런들 몰은 활력 넘치고 번영하는 공간으로 다시 태어났다. 커뮤니티 참여와 지역 경제 활성화 1976년 런들 몰은 보행자 전용 쇼핑 지구pedestrian shopping district로 지정되었다. 현재 상점 700여 개, 사무소 350개, 백화점 3개와 아케이드 15개가 자리하고 있으며, 이 시설들은 면적이 10,000㎡에 달하는 공공 공간으로 연결된다. 하셀과 아럽은 런들 몰의 도시적 환경을 제고하고 다양한 방문객을 유치하고자 했다. 방문자들의 체류 시간을 늘려 지역 경제에 기여하기 위해 협력적 설계 프로세스를 펼쳤다. 이 과정에서 시뿐만 아니라 상점주들과 긴밀히 협력해 방문자의 공간적 요구를 만족시킬 수 있는 장소를 만들고자 했다. 새로운 런들 몰은 급변하는 현대 사회와 발맞춰 성장하고, 단순한 구매 활동보다는 경험을 중시하는 장소로 기능해야 한다. 유동적이며 향후 변화에 유연하게 대처하고 다양한 이벤트를 벌일 수 있는 공간을 위해 ‘플러그 앤드 플레이plug and play’ 인프라를 구축했다. ...(중략)... Landscape Architect HASSELL Collaborators Arup Consultants BB Architects, Disability Consultancy Services,Diadem, Dryden + Crute, Jam Factory, Adelaide Fringe Client Adelaide City Council Location Adelaide, Australia Area 10,000m2 Completion 2015 Photographs Peter Bennetts, Duy Dash(Courtesy of RundleMall Redevelopment Authority) 하셀(HASSELL)은 호주, 중국, 동남아시아와 영국에 사무실을 둔 국제적인 설계사무소다. 좋은 설계는 클라이언트의 요구를 충족시켜야 하며,사람들이 경험하는 공간의 의미, 연계성, 소속감과 관련이 깊다는 철학아래 다양한 프로젝트를 진행하고 있다. 점점 더 복잡해지는 프로젝트를 수행하기 위해 건축가, 인테리어 디자이너, 조경가, 도시설계가 등 전문 컨설턴트로 구성된 통합적 설계팀을 꾸려 혁신적인 디자인 문화를만들어 나가려 노력하고 있다. *환경과조경350호(2017년6월호)수록본 일부
금천 폴리파크
이슈 금천 폴리파크는 4천 세대가 새로 입주하는 동네에 기부채납 방식으로 지어진 공원으로, 아파트 입주민의 앞마당인 동시에 구청의 뒷마당이 되는 곳이다. 금천구 내에 크고 작은 공원이 50여 개나 있음에도 그 공원들의 존재감이 전혀 없다는 사실에서 출발해 폴리를 매개로 한 공원 브랜딩branding을 시도했다. 공원이 조경 설계 과정을 거쳐 탄생하지만 사실 디자인적 요소를 공원 안에서 찾아보기 어렵다는 불만족스러운 시각에서 출발했다고도 할 수 있다. 조경과 건축 사이 건축가와 함께 대화하고 스케치를 하며 건축물의 위치를 정하고, 공원의 프레임을 완성했다. 건축물은 부지에서 볼륨이 가장 큰 요소이며 커뮤니티 활동의 중심이기에 공원의 중요한 경관 요소landscape element가 된다. 공원과 건축물의 경계를 없애는 설계 전략을 통해 건축물은 문화 공간이자 언덕이 된다. 건물에 설치한 폴딩 도어를 열면 실내와 실외의 경계는 더욱 모호해진다. ...(중략)... 기획 프로젝트데이(심영규), UIA 건축사사무소(위진복) 조경 기본 계획 PH6 DESIGN LAB(조윤철) 조경 실시 설계 조경디자인 린 건축 설계 UIA 건축사사무소(위진복) 위치 서울특별시 금천구 독산동 금나래중앙공원, 도하공원(소공원) 면적 19,393m2 공사비 30억 원(소공원 포함) 완공 2016. 11. 조윤철은 피에이치식스 디자인랩(PH6 DESIGN LAB) 대표이며 미국공인 조경가(Registered Landscape Architect)다. 홍익대학교 건축공학부에서 조경 설계와 도시설계를 가르치고 있으며, 미국 애틀랜타 소재 비영리 재단인 그린란드 글로벌 액세스(Greenland GlobalAccess)의 디렉터로서 개발 도상국의 도시계획을 담당하고 있다. 위진복은 한국에서 건축학부를 수료하고 런던 AA 스쿨(AA School)에서 건축을 공부했다. 마이클 홉킨스(Michael Hopkins) 사무소, 리차드 로저스(Richard Rogers) 사무소에서 실무를 경험하고, 2009년부터 서울에서 유아이에이 건축사사무소(UIA: Urban IntensityArchitects)를 운영 중이다. 주요 프로젝트로는 삼성동 업무 시설, 광주유니버시아드 수영장, 독산극장, 광주 운암동 주상 복합, 고려대학교 파이빌 등이 있다. 심영규는 한양대학교 건축공학과를 졸업하고 중앙일보 디지털뉴스룸과건축 전문지 『SPACE』에서 기자로 일했다. 이후 건축 기획사 프로젝트데이(Project Day)를 차려 건축 PD로 전향했다. 전시나 출판뿐 아니라건축가와 클라이언트를 연결하는 플랫폼, 행사 기획 등 비즈니스 플랫폼도 기획하고 있다. *환경과조경350호(2017년6월호)수록본 일부
공원, 기획이 필요한 시대
공원 설계란, 개념을 부여하는 기획부터 이용과 운영까지 고려하는 과정임을 모르는 바 아니다. 그러나 디자이너가 마주하는 현실 세계는 그리 녹록하지 않다. 재능기부 (혹은 열정페이), 층층이 이어지는 갑을 관계 (혹은 협업이 아닌 하도 관계), 분야 간 이해 부족, 지난한 행정 절차 등 체념하고 적당히 타협하게 하는 요소는 많다. 여기 건축가와 조경가, 그리고 코디네이터라는 낯선 조합으로 견고한 관행에 균열을 내려는 사람들이 있다. 지난해 11월 개장한 ‘금천 폴리파크’가 그들의 결과물이다. 햇빛이 따사로운 5월 어느 날, 위진복 소장, 조윤철 대표, 그리고 심영규 PD를 한남동의 조용한 카페에서 만났다. 한동안 그간의 안부를 확인하고 진행 중인 프로젝트의 진척을 보고하거나 상의하는 수다가 이어졌다. 목소리를 가다듬고 공식적인 인터뷰 시작을 알렸다. 진지하게 ‘금천 폴리파크’의 탄생 배경을 설명하며 인터뷰를 시작한 이들은 이내 자유롭게 우리의 공원을 만들고 이용하는 문화에 대한 생각을 쏟아냈다. ...(중략)... *환경과조경350호(2017년6월호)수록본 일부
반포 아크로리버파크
반포명원 반포 아크로리버파크는 조경 특화 설계로 진행되었다. 대개의 아파트 재건축 프로젝트가 그렇듯 오랜 시간 수많은 수정 작업을 거쳐 완성된 기존 설계안은 분양 안내 책자를 통해 재건축조합과 입주민의 뇌리에 깊게 자리 잡고 있었다. 따라서 조경 특화를 위한 제안 내용은 하나하나 원안과 비교하며 설득해야 했으며, 더 나아가 주변 프리미엄 아파트 단지 조경과는 확연히 다른 차별성을 느낄 수 있도록 해야 했다. 설계의 시작은 조경적 연출을 극대화 할 수 있는 이야기와 테마를 찾는 것이었다. 반포盤浦라는 지명은 마을에 흐르는 개울이 서리서리 굽이쳐 흐른다고 하여 ‘서릿개’라고 부르던 데서 유래했다. 이러한 지역의 이야기와 풍경, 또한 정원에 대한 시대적 욕구를 반영해 ‘반포명원盤浦名園’이라는 콘셉트로 설계를 진행했다. 서릿개의 풍경은 400여 미터에 달하는 공공 보행로인 서리길을 중심으로 어린이놀이터, 마당, 휴게 공간 등의 커뮤니티 공간에 스며들도록 했다. 주동으로 위요된 여섯 개의 클러스터 공간에는 세계의 명원을 현대적 디자인으로 재해석한 정원을 계획했다. 공적인 성격의 서리길주변에는 놀이터와 잔디마당 등 활동적인 공간을 배치했고, 안쪽의 클러스터 공간은 조용한 정원으로 계획했다. ...(중략)... 조경 설계 (주)CA조경기술사사무소(진양교 대표, 정문정 소장, 소진 실장, 문상민 팀장) 건축 설계 에이앤유건축사사무소(주) 시공 대림산업(현장: 김영민 부장, 조흥철 과장, 신유진 과장 / 본사: 이순지 차장) 조경 식재 케이지에코(유지호 소장) 조경 시설물 한설그린(한종휘 소장) 놀이ㆍ휴게 시설물 청우펀, 원앤티에스, 에코밸리, 이음디엔아이 발주 신반포1차재건축주택조합 위치 서울시 서초구 반포2동 2-1번지 일원(신반포1차 재건축) 대지 면적 68,853m2(15개동 1,612세대) 조경 면적 29,934m2(녹지율 43.5%) 완공 2016년 8월 CA는 ‘Common Associates’의 약자로 ‘평범한 사람들의 비범한 설계를 지향하는 설계 스튜디오’를 의미한다. CA조경은 사람과 자연을 소중하게 여기고, 땅의 이야기를 귀담아 들으며 작은 시간 잇기와 단순한디자인을 추구하는 설계 철학을 바탕으로 도시 환경 설계부터 공원, 워터프런트, 광장, 주거 외부 공간에 이르기까지 다양한 규모와 성격의 프로젝트를 수행하고 있다. 주요 작품으로는 하늘공원, 반포한강공원, 청계천 복원, 무주태권도원, 국립생태원 생태체험관, 경상북도청사, KEPCO본사 신사옥, 창원 경상대학병원 등이 있다. 대림산업은 건설 사업 70년의 역사를 가진 기업으로, 국내시공능력평가 55년 연속 10대 건설사 위상을 유지하고 있는 대한민국 대표 건설사다. 2000년 아파트 브랜드 ‘e편한 세상’을 론칭한 후 ‘ACRO’라는 최고급 브랜드의 프리미엄 주거 단지 조성을 핵심 사업으로 이끌어나가고 있다. 대림산업이 지향하는 ‘품질과 실용’을 근간으로 조경 분야에서는 친환경을 바탕으로 예술적이고 창의적인 공간 구현에 힘쓰고 있다. *환경과조경350호(2017년6월호)수록본 일부
[그들이 설계하는 법] 자연과 도시 라이프스타일의 새로운 균형 3
모듈 시스템 셀로CELL · O를 설명하는 세 가지 키워드는 안개 관수, 모듈 시스템, IoT사물인터넷 기술이다. 첫째, 셀로는 수경 재배의 가장 진보된 방법 중 하나인 에어로포닉스(aeroponics)―수경 재배에서 발생하기 쉬운 뿌리의 산소 부족과 배양액의 변질을 방지하기 위해 개발된 재배법― 중에서도 물 입자를 가장 작게 만들어 그 효과를 극대화하는 안개 관수 방식을 사용해 식물의 생장을 돕는다. 이러한 안개를 이용한 관수 방식은 단순 녹화뿐 아니라 수직 농장 등 농업 분야에서 활용이 기대되는 기술이며, 식물과 함께 미세 먼지 등 공기를 정화하는 바이오 필터의 효과 또한 기대되는 기술이다. 둘째, 직관적인 조립식 모듈형 시스템인 셀로는 무한한 이용의 확장이 가능한 동시에 식물을 조립하는 새로운 사용자 경험을 창출한다. 셋째, 제품, 센서, 무선 통신, 데이터 처리 기술이 접목된 IoT 기술은 1차적으로 무선 원격 제어와 식물 환경 모니터링을 가능하게 하며 유지 관리 자동화와 관리 비용 최소화를 실현할 수 있게 한다. 게다가 2차적으로 식물 재배와 관련한 다양한 데이터를 수집하고 분석함으로써 도시 녹화, 도시 농업 등과 연계한 지식 정보 산업으로 확장할 수 있는 가능성이 있다. 셀로라는 제품을 설명하는 세 가지 키워드, 즉 안개 관수, 모듈 시스템, IoT 기술이 각각의 확장성을 가지고 있는 것이다. 지난 연재에서 소개한 셀라CELLA와 셀로는 그 형태와 기능은 다르지만 단위 모듈로 이루어진 모듈 시스템이라는 공통적 성격을 지닌다(자세한 내용은 『환경과조경』 2017년 4월호 “자연과 도시 라이프스타일의 새로운 균형”, 5월호 “자연과 도시 라이프스타일의 새로운 균형 2” 참고). 직관적 조립과 해체가 가능하고 다양한 적용이 가능한 모듈 시스템은 최근 국내외 여러 분야에서 활발히 연구·개발되고 있으며 건물과 그 입면, 가구와 인테리어 시스템 등에 광범위하게 적용되고 있다. 앞으로 모듈 시스템은 최소 단위 (모듈)를 이용해 점점 더 다양한 형태와 기능을 구현하는 동시에 사용자의 요구를 보다 적극적으로 반영하는 방향으로 발전할 것이다. 모듈 시스템이 꾸준히 등장하는 데에는 몇 가지 배경과 이유가 있다. 첫째, 변화의 속도가 점점 빨라지며 우리 삶의 형태 또한 점점 다양해진다. 다양함과 변화에 적응하기 위해서는 큰 것보다 작은 것이 유리하다. 둘째, 재사용과 재활용에 대한 요구가 높아진다. 자본주의 도시에서 발생하는 각종 폐기물 문제에 대한 하나의 대안은 사용-해체-재사용이 용이한 것들을 점차 늘리는 것이다. 셋째, 범용적인 동시에 맞춤형(customized) 성격을 가진 물건에 대한 소비가 증가한다. 자신의 욕망과 요구에 맞게 사용하다 상황이 바뀌거나 싫증날 때 여차하면 되팔거나 다른 용도로 쓸 수 있는 탄력적 물건, 즉 일종의 플랫폼적 제품과 시스템에 대한 요구가 앞으로 더욱 많아질 것이다. 또한 모듈 시스템은 생산 비용 절감과 품질 확보 등 산업적 측면에서도 의의가 있다. 이러한 모듈 시스템에 있어 아이디어와 기획, 디자인과 설계, 제작과 생산 전 과정에 디자이너 혹은 설계가가 보다 적극적으로 참여한다면 지금보다 더 놀라운 제품과 공간이 만들어지고 놀라운 일들이 일어날 것이라 확신한다. 2016년 여름, 필자가 튜터로 참여한 조경디자인캠프에서 김지학, 박선영, 이지은 학생은 ‘클럽 아일랜드(Club Island)’라는 작품을 통해 한강의 인공 섬을 타입별로 모듈화하고 그 조합으로 다양한 경관과 프로그램을 생성해냈다. 2017년 가을, 서울시립대학교에서 강의한 ‘멀티미디어와 조경’ 수업에서는 외부 공간에 설치할 수 있는 ‘무엇’을 주제로 모듈 시스템을 적용한 디자인을 실험적으로 진행했다. 학생들은 몇 가지 최소 모듈로 스트리트 퍼니처, 파빌리온 등을 구현했는데, ‘실제로 만들어도 충분히 많은 사람들에게 사랑받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모듈 시스템은 기술의 발달과 더불어 더 진화하고 발전해나갈 것이다. 도시의 다양한 공간에, 그리고 우리의 일상에 앞으로 또 어떤 창의적이고 혁신적인 모듈이 등장할지 기대된다. 자연 가치 내가 일하는 회사이자 현재 셀로의 최종 개발을 진행하고 있는 세계수프로젝트는 2016년 한국에서 창업한 ‘스타트업’이다. 비교적 적은 자본으로 새로 시작하는 회사를 모두 스타트업이라 할 수 있으나, 일반적으로 통용되는 스타트업은 혁신적 기술과 아이디어를 보유한 설립된 지 얼마 되지 않은 창업 기업을 뜻하며 자체 비즈니스 모델을 가지고 있는 작은 그룹이나 프로젝트성 회사를 의미하기도 한다. 즉 스타트업을 정의하는 가장 중요한 요소 중 하나는 새로운 비즈니스 모델을 개발하거나 새로운 시장을 찾아 나서는 데 주력한다는 점이다. 이러한 스타트업은 이미 존재하는 구조와 틀을 깨고 새로운 변화를 만들고 싶어 한다. 세계수프로젝트는 셀로를 개발하면서 창업 공모전, 창업 지원 사업, 데모데이(demoday)에 참가하는 등 다양한 경험을 하는 동시에 스타트업으로서 가능성을 검증 받았다. 그 과정에서 참으로 다양한 분야의 스타트업을 만나게 되었는데, 분야를 막론하고 그들이 공통적으로 고민하는 한 가지가 있음을 발견했다. 비전 또는 미션이라는 말로 표현되기도 하는 그것은 바로 가치(value)다. ‘우리는 어떠한 가치를 창출하는가?’라는 질문에 답하기 위해 그들은 치열하게 고민하고 끊임없이 무언가를 만들어낸다. 그 가치는 첫 번째 연재에서 언급한 ‘선택의 기준이 되는 중요성’, 두 번째 연재에서 언급한 상상의 질서 속의 ‘실재하는 것과 같은 가치 기준과 체계’와 같은 것이다. 즉 중요하다고 여겨지는 것 또는 나를 포함한 많은 사람이 믿고 따르는 것이 있다면 그것이 바로 가치를 설명한다. 나는, 그리고 우리는 무엇을 중요하다고 생각하는가. 나와 우리가 하는 일은 그 중요함과 얼마나 가까운가. 셀라와 셀로의 개발, 그리고 스타트업을 창업하고 운영하는 과정은 그러한 핵심 가치에 대한 질문과 답을 찾는 과정이었다. 그 과정에서 나의 관심은 도시에 사는 사람들과 그들이 관계하는 자연으로 구체화되었으며 동시에 우리 일상에 한층 가까워진 ‘자연 가치’에 기반한 혁신에 주목하게 되었다. 여기서 이야기하는 ‘자연 가치(value based on nature)’는 자연이 우리가 생각한 것보다 더 우리에게 중요하다는 것, 그리고 더 중요해질 수 있다는 것, 그리고 그것을 증명하고 구현하기 위한 일련의 기준과 체계를 말한다. 자연 가치에서 ‘자연’은 추상적이자 확장적인 개념으로 특정한 사물이나 상태를 의미하지 않는다. 예컨대 자연-인간의 ‘관계’와 그 관계에서 발생하는 ‘현상’ 또는 ‘물질’ 등을 포함하는 광의의 자연이다. 현재 세계 곳곳에서 IoT 기술을 장착한 가정용 식물 재배기, 자동 관수 시스템을 갖춘 에어로포닉스 농업 모듈과 같은 새로운 제품을 통해 보다 쉽고 편리하게, 그리고 더욱 밀접하게 자연을 경험하게 하는 기회를 만들고 있다. 수직 농장이 있는 마트, 식물로 뒤덮인 건물, 자연으로 채워진 호텔과 레스토랑, 지하 공원 등과 같은 혁신적 공간을 통해 일상에서 자연을 보다 가깝게 그리고 자주 접할 수 있는 기회가 열리고 있다. 즉 시간과 공간의 제약을 극복하며 누구나 쉽고 편리하게 경험할 수 있는 자연, 공급자 중심이 아닌 공유하고 연결되어 새로운 수요를 창출하는 수요자 중심의 자연이 새로운 제품, 공간, 서비스를 통해 등장하고 있다. 자연 가치는 이러한 일련의 현상을 관통하는 핵심 가치다. 이와 같은 자연 가치 기반의 혁신을 추구하는 세계수프로젝트는 자연과 도시 라이프스타일의 새로운 균형을 비전으로 자연과 도시의 일상이 놀랍게 연결되는 제품, 공간, 서비스를 만드는 회사다. 우리는 자연이 도시의 일상에서 ‘있으면 좋은 것(good to have)’이 아닌 ‘꼭 필요한 것(must have)’이 되기를 바란다. 자연이 우리 삶을 구성하는 하나의 중요한 기준이 되며, 모두가 자연을 즐겁고 건강하게 향유하는 변화를 꿈꾸고 상상한다. 그리고 이러한 자연 가치에 기반한 사고 체계는 셀라와 셀로라는 제품과 시스템을 넘어 자연스럽게 공간과 서비스로 확장된다. 공유 정원 공유 정원(social garden, 가제)은 현재 세계수프로젝트가 기획, 실험 중인 아이디어로 ‘누구나 집이나 직장에서 걸어서 5분 거리에 자연으로 둘러싸인 공간을 이용할 수 있다면 우리의 삶이 보다 풍부해지지 않을까?’라는 질문에서 시작되었다. 우리는 해외 사례 조사를 통해 공간이 부족한 도시에서 자연 환경을 늘리는 다양하고 창의적인 접근이 진행되고 있음을 확인하고, 도시에서 자연을 경험할 수 있는 공간과 그 공간을 이용하는 새로운 라이프스타일의 가능성을 구상하기 시작했다. 서울을 대상지로 진행한 아이디어 구체화 단계에서 우리가 주목한 공간은 도시에서 이용되지 않고 방치된 대표적 공간, 바로 옥상이다. 우리는 지금껏 진행되어 온 정부, 공공, 대형 건축물 중심의 옥상 녹화 방식의 한계를 인식하고 새로운 접근 방식을 모색했다. 공유 정원, 즉 공유 경제를 활용한 도시 정원 모델의 개발이 그것이다. 공유 정원은 ‘중소형 옥상 녹화·옥상 정원’의 ‘보편적 확산’을 위한 환경적, 경제적, 사회적 해결책을 제시한다. 공유 정원 조성의 모듈화 기술을 통해 옥상 공간의 설계와 조성 자체를 모듈화, 표준화, 재사용함으로써 설계와 조성 방식의 변화를 추구한다. 또한 옥상 맞춤형 콘텐츠의 개 발과 함께 옥상 공간을 건물주와 임차인의 폐쇄적 공간이 아닌, 모두를 위한 오픈형 다목적 공유 공간이자 수익성 높은 사업 공간으로 변모시킴으로써 소유와 사용 방식의 혁신을 추구하는 것이다. 현재 공유 정원 1호이자 첫 번째 테스트베드가 세계수프로젝트 기획, 조경설계사무소 HLD 설계, 지오가든 차용준 소장의 시공으로 조성 중에 있다. 약 700여 개의 박스 모듈로 만들어지는 정원과 그 정원을 이용하는 다양한 사람의 다양한 이야기가 기다려진다. “서울의 공원·녹지 면적은 167.65k㎡(행정 구역 605.21km2 대비 27.7%)이나 그중 대부분(75%)이 도시 외곽에 편중되어 집이나 직장에서 걸어서 갈 수 있는 공원·녹지, 즉 생활권 공원·녹지가 상당히 부족한 실정이다.1인당 생활권 공원 면적을 미국과 비교해 볼 때 서울 5.24㎡, 뉴욕 14.12m㎡로 시민 1인당 생활권 공원은 세계식량농업기구FAO의 권고 최저 기준 9.0m2에 크게 미달한다.”(서울통계정보시스템, 2014) 반면 “서울시의 전체 옥상 면적은 166k㎡로 이 중 민간 주도로 보급형 옥상 공유 정원이 가능한 면적은 55k㎡(총 옥상 면적 대비 33%)로 추정된다. 만약 이 모든 옥상 공간이 녹화, 정원화된다면 서울시의 생활권 공원의 총면적 54k㎡와 동일한 규모의 생활 녹지가 새롭게 생겨나는 것이다”(서울정책아카이브, 2015). 공유 정원이 이와 같은 가능성을 열어 주는 하나의 의미 있는 시도가 되기를 희망한다. 자연 감각 자연은 나에게 늘 새로운 감각을 불러일으킨다. 삶이 다르게 느껴지는 그 어떤 순간에 자연이 있었다. 자연은 어제와 다른 나를 발견하는 중요한 매개체다. 그러한 기분을, 감각을 나누고 싶다. 보다 많은 사람들과 함께 느끼고 싶다. 자연을 매개로 하는 새로운 제품, 새로운 공간, 새로운 서비스, 새로운 브랜드와 가치를 계속 고민할 것이다. 새로운 상상을 계속 하고 싶다. 자연과 도시의 일상이 만나는 곳에서. 지금까지 셀라와 셀로, 공유 정원 프로젝트에 대한 이야기를 3회에 걸쳐 소개했다. 지면을 열어준 『환경과조경』, 이 글을 읽은 독자들, 그리고 지금 이 순간 떠오르는 많은 조경인들에게 감사드린다. 개인적으로 궁금한 부분이 있거나 더 듣고 싶은 이야기가 있는 분은 꼭 연락 주시길 바란다. 함께 만나 이야기를 나눌 수 있다면 더욱 좋겠다. 이 글과 관계하는 ‘그들’과 공유하고 싶은 질문으로 ‘그들이 설계하는 법’ 연재를 마친다. 사람들이 생각하는 자연과 조경가가 생각하는 자연의 차이는 무엇인가? 자연은 인간의 삶에 있어서 필수재인가? 조경 설계의 가치는 어디에 있을까? 조경 스타트업이 있다면 어떠한 가치를 기반으로 하는가? 조경 회사의 혁신은 어디에서 발생할까? 딱 한 가지 자연을 가질 수 있다면 그것은 무엇일까? 조경가로서 할 수 있는 가장 작은 일은 무엇인가? 조경가로서 할 수 있는 가장 큰 일은 무엇인가? 조경가로서 상상의 끝은 어디인가? (연재 끝) 백종현은 서울대학교 조경학과와 지구환경시스템공학부, 미국 하버드 대학교 GSD에서 조경 설계와 도시설계를 공부했다. 다목적 조경 모듈 셀라(CELLA)를 개발하여 2014년 레드닷 디자인에 선정됐고, 한국인 최초로 캐나다 국제정원박람회(The International Garden Festival, 2013)에 초청됐다. 2016년 조경 스타트업 세계수프로젝트를 창업하여 자연과 도시 라이프스타일의 새로운 균형점을 모색하고 있다.
[가까이 보기, 다시 읽기] 홍수가 바꿔 놓은 디테일
한적하고 평화로워 보이는 호수 공원이다. 하지만 ―어느 공사 현장이 그렇지 않겠느냐마는― 공원이 만들어지는 과정은 보이는 것처럼 늘 평화롭지만은 않았다. 이번 호에서는 결과를 얻기까지의 과정에 초점을 맞춰 디테일을 다시 읽어보고자 한다. 2016년 초, 공사가 한창 진행 중이던 이 지역에 기록적인 폭우가 쏟아져, 당시 토목 공사가 어느 정도 완성되어가고 있던 호수 일대가 완전히 물에 잠겨 버렸다. 한꺼번에 많은 빗물이 호수로 유입되면서 아직 안정되지 않았던 호수 주위의 경사면들이 무너졌다. 호수의 수위가 상승하자 호수의 물결이 더 활발해져 2차 침식이 일어났고, 물과 함께 떠내려 온 진흙이 배수로와 배수 입ㆍ출구를 막아 복구가 더뎌졌다. 완공을 불과 수개월 앞두고 일어난 예기치 못한 큰 사건이었다. 곧바로 사태 파악에 나섰고, 수변 사면의 피해 상황과 원인에 따라 침식이 일어나지 않은 구간, 호수 밖에서 유입된 우수로 침식이 일어난 구간, 호수 내부의 파도로 침식이 일어난 구간 등으로 피해를 유형화했다. 지형 작업이 끝난 호수는 동서 방향으로 길게자리 잡고 있는데, 관련 시설과 프로그램의 배치에 따라 북쪽의 수변은 활동적인 프로그램 중심의 공원을, 남쪽의 수변은 자연 서식지 중심의 공원을 제안했다. 홍수의 피해는 시설물이나 포장을 위해 단단하게 기초를 다진 구간보다 서식지 조성을 준비 중이던 흙 사면에 집중되었다. 그 결과 북쪽 수변의 일부 구간과 남쪽 수변의 전 범위에 걸친 넓은 구간에서 피해를 입은 것을 확인할 수 있었다. ...(중략)... 안동혁은 뉴욕에 위치한 제임스 코너 필드 오퍼레이션스(James Corner Field Operations)에서 활동하고 있는 펜실베이니아 주 등록 미국 공인 조경가(RLA)다. 서울대학교 조경학과를 졸업하고 동 대학원에서 석사 학위를, 미국 펜실베이니아 대학교에서 조경학 석사 학위를 받았다. 졸업 후 현재 회사에 8년째 근무하면서 Philadelphia Race Street Pier, 부산시민공원, London Queen Elizabeth Olympic Park, Hong Kong Tsim Sha Tsui Waterfront 등의 프로젝트를 진행해 오고 있다. * 환경과조경 350호(2017년 6월호) 수록본 일부
[다른 생각, 새로운 공간] 강만생 사려니숲길위원회 위원장
제주는 곧 한라산이다. 우선 느낄 수 있는 것은 도와 시의 구분이 없다는 점이다. 제주에서의 삶의 영역은 어디에 살던지 간에 섬 전체에 걸쳐 있다. 그러한 사실은 모종린 교수의 지적처럼 제주를 우리나라의 유일한 ‘라이프스타일 도시’로 만든다. 일과 휴식이 지근거리에서 이루어지는 이곳에서, 경관과 자연은 생활의 일부이자 제주인의 굳건한 토대, 정체성을 형성한다. 그 결과 제주도에는 개발 자본뿐만 아니라 새로운 라이프스타일을 추구하는 창조 계층이 몰려들고 있다. 다수의 연예인도 그중 일부다. 욕구의 변화는 지금까지의 소극적 행복 추구를 거부한다. 육지에서는 가능하지 않았던 삶에 대한 적극적 개척이 이루어 낸 제주 문화는 대한민국의 진보적 트렌드를 선도하고 있으며, 동북아 지역의 새로운 도시적 이노베이션을 제시한다. 한편으로는 급격한 도시화에 대한 우려도 점증하고 있다. 어디에서나 볼 수 있는 도로 공사, 신축 건물, 하루가 다르게 바뀌어가는 풍경은 멀미를 일으킬 정도다. 빠르게 소비하고 떠나버리는 제주에 대한 안타까움을 많은 이들이 공유하고 있다. 하지만 개발의 물결 속에서 천천히 음미하는 제주 본래의 모습, 가려져 있던 한라산 문화를 찾으려는 노력 또한 함께 진행되어 왔다. ...(중략)... 최이규는 1976년 부산 생으로 뉴욕에서 10여 년간 실무와 실험적 작업을 병행하며 저서 『시티오브뉴욕』을 펴냈고, 북미와 유럽의 공모전에서 수차례 우승했다. UNKNP.com의 공동 창업자로서 뉴욕시립미술관, 센트럴 파크, 소호 및 대구, 두바이, 올랜도, 런던, 위니펙 등에서 개인전 및 공동 전시를 가졌다. 현재 계명대학교 도시학부에 생태조경학전공 교수로 재직하며 울산 원도심 도시재생 총괄코디네이터로 일하고 있다. * 환경과조경 350호(2017년 6월호) 수록본 일부
[명사들의 정원 생활] 토머스 제퍼슨, 대통령이기보다 정원사이기를 바란 실천적 이상주의자
미국 조경의 아버지, 토머스 제퍼슨 미국 3대 대통령 토머스 제퍼슨Thomas Jefferson은 국가 이상과 민주주의의 이념적 기초를 다진 정치가로 평가된다. 건국의 아버지로도 불리는 그는 정치뿐만 아니라 예술, 과학, 교육, 원예, 건축, 조경 등 실로 광범위한 분야에서 탁월한 업적을 남긴 다재다능한 인물이었다. 하지만 그는 화려한 정치가의 길보다는 농부 혹은 정원사로서의 삶을 더 선호한 듯하다. 부친과 장인으로부터 광대한 농장을 물려받은 그는 평소 신념이기도 한 ‘자영농 중심의 민주주의 국가’ 실현을 꿈꾸며 농부이자 정원사로 살기를 바랐다. 스스로를 조경가라고 한 적은 없지만 제퍼슨은 조경landscape architecture이란 용어가 생기기 전부터 조경가로 활동한 이로 평가된다. 당시 신생국 미국에서는 대농장 등에서 이탈리아나 프랑스식 기하학적 정원이 유행하고 있었을 뿐 조경에 대한 별다른 인식이나 시도를 찾아보기 어려운 상황이었다. 고전적 미와 낭만주의 전원 이상에 매료된 제퍼슨이 특별히 심취했던 것은 팔라디오식 건축과 영국의 풍경화식 정원이었다. 제퍼슨의 자연관과 정원관 자연에 대한 제퍼슨의 생각은 크게 기독교, 정치 철학, 과학이라는 세 가지 다른 출발 지점을 갖는다. 자연은 인간의 이성적 관찰로 가치를 탐구하고 지적으로 체계화하는 대상으로서 인간 사회와 삶을 향상시킬 수 있는 합목적적 자원이라는 것이 제퍼슨을 비롯한 당시 엘리트들의 기독교적 자연관이었다. ...(중략)... 성종상은 서울대학교에서 조경을 공부한 이래 줄곧 조경가의 길을 걷고있다. 연구소와 설계사무소에서 기획부터 설계, 감리에 이르는 실무를두루 익힌 후 지금은 서울대학교에서 조경을 가르치고 있다. 주요 작품으로는 93 대전세계엑스포 조경계획 및 설계, 인사동길 재설계, 용산국립중앙박물관 조경설계, 신라호텔 전정 설계 및 감리, 선유도공원 계획및 설계, 용산공원 기본구상, 2013 순천만국제정원박람회장 마스터플랜, 천리포수목원 입구정원 설계 등이 있다. 최근에는 한국 풍토 속 장소와 풍경의 의미를 읽어내고 그것을 토대로 풍요롭고 건강한 삶을 위한조건으로서 조경 공간이 지닌 가능성과 효용을 실현하려 애쓰고 있다. *환경과조경350호(2017년 6월호)수록본 일부
[이미지 스케이프] 하늘을 걷다
오늘 하늘 보셨나요? 바쁜 일상에 쫓기다 보니 잠깐 고개 들어 하늘을 보는 것도 못하고 삽니다. 늘 우리 위에 있지만 평소에는 잘 인식하지 못하는 그런 게 하늘인가 봅니다. 그나마 조경을 전공한다는 핑계로 공식적으로 공원에서 가끔 하늘을 보는 호사를 누립니다. 주변의 다른 전공 교수님들이 꽤 부러워하십니다. 이번 사진은 ‘북서울꿈의숲’입니다. 잘 아시는 것처럼 ‘드림랜드’라는 놀이동산이 대형 공원으로 탈바꿈한 곳입니다. 설계공모 때 명칭은 아마 강북대형공원이었을 겁니다. 지금은 서울 북부 지역을 대표하는 공원으로 지역 주민들에게 큰 사랑을 받는 곳입니다. 개장 초기엔 드라마 ‘아이리스’ 촬영지로 유명세를 타기도 했습니다. 아직도 전망대에는 이병헌과 김태희 브로마이드가 있습니다. 이젠 뭐 둘 다 유부남, 유부녀. 이 공원에는 멋진 곳이 많지만, 제가 가장 좋아하는 곳은 글래스 파빌리온 앞에 있는 창포원과 그 주변 공간입니다. 선큰sunken된 창포원에서 잔디 쪽을 보면 산책로 너머로 바로 하늘이 보입니다. 마치 산책로 뒤로는 아무 것도 없는 것처럼. 도시를 멀리 떠나와 있는 느낌이 들어서 그런지 거기 앉아 있으면 정말 기분이 좋아집니다. ...(중략)... 주신하는 서울대학교 조경학과를 거쳐, 동 대학 대학원에서 석사와 박사 학위를 받았다. 토문엔지니어링 건축사사무소, 가원조경기술사사무소, 도시건축 소도 등에서 조경과 도시계획 분야의 실무를 담당한 바 있으며, 신구대학 환경조경과 초빙교수를 거쳐 현재 서울여자대학교 원예생명조경학과 교수로 재직 중이다. 주로 조경 계획 및 경관 계획 분야에 학문적 관심을 가지고 있다. * 환경과조경 350호(2017년 6월호) 수록본 일부
[시네마 스케이프] 카페 소사이어티
어릴 적만 해도 공원에 가는 일이 특별한 행사였다. 양장점에서 맞춘 옷을 입고 동생과 브라보콘을 들고 어린이대공원 분수 앞에서 찍은 초등학교 시절 사진이 여러 장 있다. 중학교 교복을 입고 남산 팔각정 앞에서 찍은 사진과 덕수궁에서 찍은 가족사진도 남아 있다. 공원이 일상과 가까워진 것은 결혼 후, 아이들을 키우면서부터다. 집 근처 보라매공원에서 첫 아이가 걸음마 연습을 했다. 아이들이 자전거나 롤러 블레이드를 처음 배운 곳도 공원이다. 아이가 밥 먹기 싫어하면 밥에 김을 묻혀 만든 간단한 주먹밥을 싸들고 공원에 가곤 했다. 뛰어노는 아이 입에 밥을 물려주며 시간을 보내다 빈 도시락을 들고 돌아오는 길이 뿌듯했다. 아이들은 청소년이 되자 나와 공원에 가는 대신 친구들과 어울려 테마파크나 극장에 갔다. 나는 동네 친구와 가끔 운동하러 공원에 들르지만 요즘은 미세 먼지 때문에 그마저도 시들해졌다. 가까운 들과 산으로 소풍 다니던 우리 경우와 달리 서구에서는 일찍이 공원이 기획되었다. 도시 공원은 19세기 영국에서 왕실 정원이 개방되며 처음 생겼지만, 공원하면 제일 먼저 떠오르는 대표 선수는 뉴욕의 센트럴 파크다. 한 번도 뉴욕에 가보지 않은 사람도 센트럴 파크 이미지에 친숙하다. 마천루를 배경으로 키 큰 나무와 드넓은 잔디밭, 뛰노는 아이들과 조깅하는 세련된 뉴요커들. 이 전형적인 공원 풍경이 19세기부터 21세기까지 이어지고 있다. 놀라운 사실은 거대한 센트럴 파크 전체가 조작된 자연이라는 점. 원래 자연이 풍성했던 곳을 공원으로 만든 것이 아니라 황폐한 진흙땅에 동산을 만들고 나무를 심고 바위를 옮기고 연못을 만들었다. 어떻게 이런 일이 가능했을까. ...(중략)... 서영애는 조경을 전공했고, 일하고 공부하고 가르치고 있다. 인생에서 가장 빛나는 순간에 가고 싶은 공원, 한 도시를 상징하는 공원, 도시와 함께 진화하는 공원, 그런 공원을 우리는 가지고 있는가. 이번 글은 2017년 5월 27일 선유도공원에서 열린 ‘공원학개론’ 중 필자가 강의한 ‘공원은 발명되었다’의 내용을 짧게 줄인 셈이다. * 환경과조경 350호(2017년 6월호) 수록본 일부
[예술이 도시와 관계하는 열한 가지 방식] 혼종적 내러티브의 집합체
어린 시절 가지각색의 와펜이 촘촘히 박힌 친구의 걸 스카우트 띠가 부러워, 수행 활동에 따라 학교에서 지급하는 와펜을 ‘반칙’으로 구하려 했던 적이 있다. 친구와 함께 수소문한 결과, 동네와 조금 거리가 있는 일명 ‘배다리’란 곳에 가면 수십 가지 종류의 걸 스카우트 와펜을 구할 수 있다는 정보를 입수했다. 신이 나서 원정을 가기에 이르렀다. 그런데 문제는 배다리가 정확히 어디인지 알 수가 없었다는 점이었다. 물어물어 찾아가려 했지만, 어른들은 한결같이 그저 이 근방이다, 심지어 같은 자리에서도 여가 배다리다, 저가 배다리다, 하는 것이었다. 결국 가게를 찾지 못하고 나중에 부모님 차를 타고 가서야 와펜을 구할 수 있었다. 부모 없이 동네를 떠나본 적이 별로 없던 시절 겪었던 혼란이었지만, 성인이 되어 지역 기반 예술 프로젝트를 위해 다시 배다리를 찾았을 때도 상황은 마찬가지였다. 행정 구역 상에 존재하는 이름이 아니었기에 당시 프로젝트를 같이 하던 작가들과 함께 ‘배다리’가 어디인지 지역 주민에게 지도를 그려달라고 부탁했다. 주민들이 그린 배다리의 영역은 제각기 달랐다. 이로 인해 우리는 ‘지역’이란 무엇인지 각자가 생각하고 있던 정형적인 무언가에 대해 의구심을 가질 수밖에 없었다. 그런데 곰곰이 생각해보면 그것은 비단 배다리만의 문제는 아니었다. 이모네 가게가 있던 ‘석바위’ 역시, 정확히 석바위가 어디냐 하면 도통 명확한 경계를 그려낼 수 없었다. 그것은 분명 어떤 위치 감각은 있지만, 어디까지가 그 동네이고 그렇지 않은가는 결국 개개인의 기억과 인식에 따라 다르기 때문이었다. 나에게 있어 석바위는 이모네 가게가 있던 곳 근방이지만, 누군가에게 석바위는 그곳이 아니라 그 근방 다른 곳일 수 있는 것이다. 이는 내가 자란 이 동네만이 아니라, 행정 구역보다는 마을이나 동네 이름이 더 친근했던 시절 전국 어느 곳에나 해당되는 이야기일 것이다. ‘◯◯구’, ‘◯◯동’과 같은 행정 구역이 좌표의 영역이라면 ‘◯◯마을’이나 ‘◯◯동네’는 인식의 지도인 셈이다. 그리고 그 인식의 지도는 사람들 개개인과 그들 사이에 형성되는 상대적이고 유동적인 정보이자 기억, 내러티브의 집합체인 것이다. ...(중략)... 진나래는 미술과 사회학의 겉을 핥으며 다방면에 관심을 갖고 게으르게 활동하고 있다. 진실과 허구, 기억과 상상, 존재와 (비)존재 사이를 흐리고 편집과 쓰기를 통해 실재와 허상 사이 ‘이야기-네트워크-존재’를 형성하는 일을 하고자 하며, 사회와 예술, 도시와 판타지 등에 관심이 있다. 최근에는 기술의 변화가 만들어내는 지점에 매료되어 엿보기를 하고 있다. 2012년 ‘일시 합의 기업 ETC(Enterprise of Temporary Consensus)’를 공동 설립해 활동했으며, 2015년 ‘잠복자들’로 인천 동구의 공폐가 밀집 지역을 조사한 바 있다. www.jinnarae.com *환경과조경350호(2017년 6월호)수록본 일부
미술관, 정원을 말하다
우리는 고즈넉한 자연 풍경을 두고 느림의 미학에 대해 이야기하곤 한다. 빠름을 추구하는 현대 사회의 흐름 속에서도 식물은 정직한 속도로 묵묵히 자라난다. 그래서인지 사람들은 여유를 찾고 싶을 때 공원을 방문하고, 정원이나 작은 화분을 가꾸며 심신을 달래기도 한다. 왜 자연 속에서는 시간이 느리게 가는 것 같은 착각에 빠지게 될까? 이 같은 자연이 만들어내는 새로운 시간성에 주목한 전시가 블루메미술관Blume Museum of Contemporary Art(BMOCA)에서 개최됐다. 4월 1일부터 6월 25일까지 열리는 ‘정원사의 시간’ 전이 바로 그 주인공이다. 2013년 4월 파주 헤이리 예술마을에 개관한 블루메미술관은 전시뿐만 아니라 다양한 교육 프로그램을 통해 대중, 지역 사회와 소통하는 비영리 사립 미술관이다. 특히 소통의 과정을 중요시 여겨 느린 호흡으로 현대 미술과 사람들 사이의 관계를 만들어내는 데 힘쓰고 있다. ‘정원사의 시간’ 전은 블루메미술관의 설립자인 백순실 관장의 바람에서 출발했다는 점에서 의미를 갖는다. 평소 정원 가꾸기를 즐기는 정원사이기도 한 그는 “식물에 의해 건물의 표정이 변하는 것을 보며 정원의 가치에 눈뜨게” 됐고, 이번 전시를 통해 정원 가꾸는 일의 가치와 의미가 보다 널리 퍼져 나가기를 바랐다. 강운, 김원정, 김이박, 임택, 최성임 등 다섯 명의 작가는 회화, 드로잉, 설치 예술 등 다양한 방식을 통해 정원에서 식물을 기르는 행위에 대해 이야기한다. ...(중략)... *환경과조경350호(2017년 6월호)수록본 일부
아크로리버파크, 고급 주거 단지 조경의 새 장을 열다
한강변에 자리한 반포 아크로리버파크는 대림산업에서 야심차게 내놓은 아파트 브랜드의 첫 번째 단지다. 아크로리버파크는 수준 높은 아파트 조경이란 무엇인지 고민하며 설계와 시공 모두에 각별한 공을 들인 고급 주거 브랜드다. 그 결과 입주민들의 호응뿐 아니라 전문가들 사이에서도 입소문이 난 상태. 대림산업에서 각각 설계와 시공을 담당했던 이순지 차장과 김영민 부장(현재 국립세종수목원 공사 부장), 두 파트너를 현장에서 만나 그 성공 비결을 들어 보았다. 설계대로 시공한다 이순지 차장은 남다른 공간을 만들어낼 수 있었던 첫 번째 이유로, ‘설계대로 시공한다’는 원칙을 들었다. “우리나라에서는 설계를 그대로 구현하기보다는 시공하기 편한 디테일로 바꾸는 경향이 있다. 또 놀이터나 수생ㆍ육생 비오톱과 같이 법적으로 들어가야 하는 시설들이 똑같은 디자인으로 귀결되고, 식재는 늘 심는 하자 적은 수목을 택하다보니 어딜 가든 비슷비슷한 공간이 만들어진다.” 이러한 획일적인 아파트 조경을 벗어나기 위해 CA조경과 함께 철저하게 특화 설계를 하면서 그간 보아왔던 선진 사례 못지않은 공간을 만들고자 했단다. 관행을 뛰어넘는 일은 의지만 있다고 되지 않는다. 김영민 부장은 설계사무소에 프레젠테이션을 요청해, 여러 협력사들이 시공 전에 설계의 개념을 공유하는 과정을 거쳤다고 설명했다. “식재, 시설물 등 여러 파트의 소장들이 각자 나름의 생각이 있었겠지만, 설계 의도를 파악하는 시간을 가진 덕택에 정확한 시공을 할 수 있었다.” ...(중략)... *환경과조경350호(2017년 6월호)수록본 일부
용산공원의 미래를 그리는 새로운 시도
용산공원에 대한 관심이 다시 높아지고 있다. 지난 5월 19일 국토교통부(이하 국토부)는 전문가와 국민이 함께 용산공원의 청사진을 그리는 ‘용산공원 라운드테이블1.0(이하 라운드테이블)’의 첫 번째 행사를 개최했다. 5월부터 11월까지 총 여덟 차례의 공개 세미나를 개최할 뿐만 아니라 용산공원 프렌즈 그룹으로 성장할 청년 프로그래머도 양성할 계획이다. 그간에도 용산공원에 관한 국민들의 의견을 수렴하려는 공청회, 세미나, 포럼, 설문 조사 등 다양한 시도가 있었지만, 그렇다 할 성과는 얻지 못했다. 과연 라운드테이블은 그동안의 시도와는 다른 결과를 얻을 수 있을까? 라운드테이블 진행을 맡고 있는 박영석 대표(플레이스온)를 만나 이야기를 들어보았다. 두터운 논의를 얇고 밀도 있게 올해 초, 독일에 머물고 있던 박영석 대표는 국토부 관계자에게서 걸려온 한 통의 전화를 받았다. 국토부가 용산공원 기본설계와 조성 과정의 다양한 이슈를 전문가와 함께 토론하고 국민에게 공개하는 프로젝트를 준비하는 중이라는 것이다. 관계자는 박 대표가 ‘플레이스온Place_On’과 도시 공간 연구 집단 ‘빅바이스몰Big by small’을 통해 수행한 노들꿈섬 공모, 마을만들기 사업 등에서 쌓은 노하우가 좀 더 유연한 방식으로 국민과 소통하는 방법을 찾는 데 도움이 될 것 같다며 라운드테이블의 실무를 부탁했다. ...(중략)... *환경과조경350호(2017년 6월호)수록본 일부
[편집자의 서재] 희랍어 시간
수영을 처음 배우던 날의 기억이 생생하다. 기대와는 달리 몸이 자꾸만 가라앉았다. 키 판을 쥔 손의 힘을 빼라는, 그러면 몸이 저절로 떠오를 거라는 선생님의 조언이 아무 도움도 되지 않았다. 물을 잔뜩 먹었고 결국 돌아오는 셔틀버스 안에서 울음이 터졌다. 같은 버스에 탄 처음 보는 아이들이 나를 위로해줬다. 고맙다기보다는 창피했다. 도망치고 싶었다. 아마 그때 내게 필요했던 건 울지 말라는 말이 아닌 혼자만의 시간, 또는 혼자 있을 수 있는 공간이었을 것이다. 종종 여백이 주는 따뜻함에 대해 생각한다. 차량이나 상가에서 흘러나오는 소음이 적어 이어폰 없이 걸어도 좋았던 파주 헤이리 예술마을이나, 말없이 긴 시간을 함께 걸어도 어색하지 않았던 친구와의 하교 길, 전철이 한강을 건널 때면 핸드폰이나 신문에서 시선을 옮겨 창밖을 바라보는 사람들의 모습. 채우지 않고 비워두는 공간이나 시간은 내게 작은 위로로 다가온다. 한강의 소설 『희랍어 시간』도 그랬다. “어두운 곳에서 글을 쓸 때 윗문장에 아랫문장을 겹쳐 쓰지 않으려고 가능한 넓게 간격”(각주1)을 둔 것 같은 문장들은 여백이 많은 시를 떠오르게 한다. 마음만 먹으면 단숨에 읽어 내려갈 수 있을 것 같지만, 단단하지만 아름답게 정제된 문장을 읽다보면 절로 호흡이 느려진다. 시를 읽듯이 문장들을 곱씹다 보면 사람들이 북적이는 출근길 지옥철도 금방이었다. 『희랍어 시간』은 점차 시력을 잃어가는 남자와 말하는 법을 잊어버린 여자의 이야기다. 눈과 입. 세상을 받아들이는 감각과 자신의 생각을 표현할 수 있는 방법을 잃은 (혹은 잃을 예정인) 둘은 서서히 세상에서 고립되어 간다. 아니, 스스로를 고립시킨다는 표현이 더 적절할지도 모르겠다. 남자는 10대 시절부터 가족과 함께 독일에서 이민 생활을 했다. 은연중에 행해지는 인종 차별은 그를 고독에 빠뜨렸고, 그러던 중 찾아온 첫사랑은 그의 메마른 삶에 생기를 불어 넣었다. 하지만 행복도 잠시, 어리석은 실수로 사랑은 끝나버리고 그는 한국에 홀로 돌아와 희랍어 강사로 일한다. 여자는 문자의 형태, 단어가 주는 느낌, 심지어 발음할 때의 입 모양까지, 언어의 모든 것을 사랑하는 인물이다. 아이러니하게도 이런 그녀는 학창 시절 이유 없이 실어증을 앓는다. 다행히도 낯선 언어인 이탈리아어를 접하며 기적처럼 실어증을 극복할 수 있었다. 하지만 몇 년 뒤, 어떤 전조도 없이 다시 실어증이 찾아온다. 이혼 후 하나뿐인 딸의 양육권을 박탈당한 그녀에게 말하는 법을 되찾는 일은, 딸을 되찾을 수 있는 가느다란 희망이었다. 그녀는 학창 시절의 기억을 떠올리며 희랍어 강좌를 신청한다. 희랍어 수업은 남자와 여자가 유일하게 만나는 시간이다. 하지만 시선이 부딪치거나 둘 사이에 대화가 오가는 일은 없다. 다른 학생이 여자가 시를 썼다고 알리자, 궁금해하며 여자에게 다가서는 남자의 행동은 오히려 역효과를 불러일으킨다. 예상치 못한 상황에서 쏠린 관심이 부담스러웠던 여자는 아무런 말도 없이 강의실을 박차고 나가고, 급히 따라 나간 남자는 사과한다. 소설이 중반부를 넘어가도록 닿지 않던 둘은 이야기의 마지막에 다다라서야 서로 마주한다. 그들은 언어나 표정 대신 “기척”으로 소통한다. 방안은 어둡고 사방은 고요하다. 안경을 써도, 쓰지 않아도 똑같이 느껴질 어둠 속에서 남자는 자신의 이야기를 풀어놓는다. 그는 이야기에 대한 감상이나 답을 강요하지 않는다. 다만 가끔씩 “…내 말이 들리나요?”, “…거기서, 듣고 있나요?”(각주2) 물으면 여자가 다리나 손을 움직이며 소리를 내 자신이 거기에 있다는 것을 알려온다. 『희랍어 시간』의 문장처럼 긴 여백을 두고 드문드문 이어지는 이야기 속에서 둘은 서로에 대해 이해하고 공감한다. 남자는 “문득, 그럴 수밖에 없는 듯, 어둑한 공기 속에 떠오른 그녀의 희끗한 얼굴을 향해 다가선다. 견딜 수 없이 떨리는 왼팔을 들어, 처음으로 그녀의 어깨를 안는다.”(각주3) 마감을 앞둔 토요일, 많은 사람들의 걱정과 기대 속에 서울로 7017이 개장했다. 인터넷 뉴스로 현장 사진을 보던 나도 저녁 7시 즈음 회현역으로 향했다. 만리동광장에 설치된 공공 미술 작품 ‘윤슬’에서 진행되는 개장 특별 프로그램 ‘윤슬 사용법’을 보러 가는 길에 고가도 구경할 셈이었다. 고가에 진입한 지 오 분도 지나지 않아 후회했지만 말이다. 이십여 분간 구경한 것이라곤 내 앞에서 걷는 사람들이 입은 티셔츠 등판에 그려진 무늬와 가끔씩 길을 가로막으며 등장한 거대한 콘크리트 화분이었다. 만리동광장에 도착해 관람한 ‘윤슬 사용법’은 내게 충격을 주었다. 스테인리스 스틸 루버 아래 선큰 공간, 공간을 이루는 2,800개의 계단 위를 무용수와 어린이 퍼포머가 오가며 퍼포먼스를 펼쳤다. 상대의 동작을 따라하거나 쫓는 등 놀이처럼 느껴지는 퍼포먼스에 공연을 보던 어린이들도 자연스럽게 그 무리에 끼어들어 놀기 시작했다. 비어있는 공공 공간에 행동을 유발할 수 있는 촉매제를 던져 사람들을 퍼포먼스에 자연스럽게 끌어들이고 싶었다는 안무가의 의도가 성공적으로 표현된 것으로 보였다. 웅장한 느낌을 주던 선큰 공간은 단 십여 분 만에 아이들이 얼음땡이나 공놀이를 하는 놀이터로 바뀌어 있었다. 그 장면을 보고 있으니 이번 호의 프로젝트 중 ‘금천 폴리파크’의 소개 글 일부가 떠올랐다. 공원을 설계한 조윤철 대표는 “세부적인 공간은 이용자들의 계절별 이용 행태나 햇빛의 방향에 따라 만들어가는 것이기에 복잡한 구성이나 소모적인 개념, 어휘는 배제”했고, “결국 공원의 풍경을 완성하는 마지막 퍼즐은 공원을 즐기는 사람들의 다양하고 여유로운 모습일 것”(각주4)이라고 말한다. 갓 개장한 서울로 7017의 성공 여부를 따지기엔 아직 이르지만, 조금만 사람이 몰려도 정체되는 구간은 이미 너무 많은 것을 담고 있는 것 같아 버거워 보인다. 걷기 위한 길이지만, 어딘가에 여백을 두어 시민이 점차 바꾸어나갈 수 있는 가능성을 남겨 놓았다면 어땠을까 아쉬움이 남는다. 1. 한강, 『희랍어 시간』, 문학동네, 2011, p.148. 2. 위의 책, p.169. 3. 위의 책, p.181. 4. 이번 호의 “금천 폴리파크” 참고.
[CODA] 말맛과 글맛
고민은 지난 5월호 특집 ‘빅데이터와 도시’에서 시작되었다. 한 필자가 보내온 원고에서 기획의 냄새가 물씬 풍겼다. 건축, 도시, 조경 계획 분야의 연구자와 실무자들에게는 낯선 딥러닝에 관한 내용을 다룬 글이었다. 글쓰기라면 건조한 논문이 익숙한 필자임이 분명한데, ‘-습니다’나 ‘-요’ 같은 격식, 비격식의 종결 어미를 섞어 높임법을 구사하고 있었다. 그리고 아주 쉬운 비유와 사례를 곁들였다. 분명 가볍지 않은 내용을 독자에게 친근한 목소리로 이해시키려는 구성 전략처럼 보였다. 원고를 앞에 두고 한참을 고민했다. 『환경과조경』은 아주 예외적인 경우를 제외하고 ‘해라체’로 문체를 통일하고 있다. 이는 청자(독자)를 높이지도 낮추지도 않는 방식으로, 일종의 무표정한(중성적인) 표현법이다. 독자와 일정 정도 심리적인 거리를 유지하면서 정보를 적절한 무게로 전달할 수 있기 때문에 전문지에 어울린다. 독자를 높이지는 않지만, 독자 외에 다른 이들을 높이지도 않는다. 높여 표현하기 위해 ‘-시-’나 ‘께서’, ‘님’ 따위를 쓰지 않아서 글이 간결해진다는 장점도 있다. 평소의 원칙에 따라 원고를 모두 ‘해라체’로 바꿔놓고 보니 이상하게 딱딱한 느낌을 지울 수 없었다. 결국 필자가 원래 보내온 대로 원고를 복구했다. 그런 ‘삽질’을 해놓고 보니, 높임말을 고수하고 싶어 하는 필자들이 종종 있다는 사실이 떠올랐다. 그래서 우리가 ‘해라체’를 쓰는 좀 더 명확한 근거를 마련해야겠다는 생각에 오히려 높임말을 쓰고 싶어 하는 구체적인 이유가 알고 싶어졌다. 일분일초가 아까운 마감 기간임에도 불구하고 태평양 건너에 살고 있는 필자에게 메신저로 말을 걸었다. “이번 원고에서 높임말을 쓰신 이유가 친절하고 쉽게 느껴지는 전달을 위한 전략인가요?” “음… 말씀하신 이유 외에도, 서양 언어에서 상하관계보다는 친소 관계에 따라 표현을 달리 하기도 하고, 반말인 ‘thou’가 점차 사라지고 일종의 존칭인 ‘you’만 남는 현상을 보면서 한국어도 그렇게 되었으면 하는 바람이 있었어요. 또 문어文語인 ‘해라체’와 입말 사이의 괴리가 지나치게 크다는 생각도 있었구요.” 몰랐다. 영어에 높임말이 없는 게 아니라 한국어에 반말이 존재하는 것이다. 이 대화는 우리 언어가 우리 사회의 수직적 상하 관계를 반영하고 있음을 상기시켰다. 말투 혹은 글투의 차이가 은연중에 우리에게 어떤 영향을 미치는지 궁금증이 증폭되었다. 논문을 뒤져보니 흥미로운 주장을 찾을 수 있었다. 인지철학자 김광식 교수(서울대학교 기초교육원)는 한국 사회에 널리 퍼진 수직적 문화를 바꾸기 위해 ‘반말공용화’를 제안하고 있다.(각주2) 그는 한국 사회에서 윗사람은 공공연하게 반말을 하고 아랫사람은 높임말을 하면서 실질적 불평등을 낳고 있다고 진단했다. 그리하여 아랫사람이 반말을 할 수 있어야 몸에 밴 순종의 문화를 걷어낼 수 있다는 급진적(?) 주장을 펼친다. 그래서 문어체 반말을 구어체 반말로 사용할 것을 제안하고 있다. 예를 들면 “너는 대통령이다”라고 쓰거나, “너는 대통령인가?”라고 쓰고 말하자는 것이다. 김광식 교수의 주장에는 말의 형식이 말의 내용보다 행동 방식을 바꾸는데 더 중요하다는 생각이 담겨 있다. 그렇다면 현재 『환경과조경』의 편집 원칙은 사회적 평등을 실천하고 있는 셈인가? 하지만 만약 내가 “주간, 에디토리얼 원고를 빨리 주시오”라고 말한다거나, 혹은 김모아 기자가 나에게 “코다 원고는 아직인가?”라고 말한다면?! (과연, 말할 수 있기는 할까) 김광식 교수의 말처럼, 머리로 이해한다고 몸까지 저절로 움직이는 것은 아니다. 여기서 한 가지 흥미로운 것은 내용과 형식의 관계다. 『환경과조경』의 여러 원고 중에도 이러한 관계를 생각해 보기에 적절한 사례가 있다. 바로 주신하 교수의 ‘이미지 스케이프’다. 이 연재 꼭지는 『환경과조경』에서 거의 유일하게 고정적으로 높임말을 쓰고 있다. 서정적 분위기가 물씬 풍기는 사진 한 컷과 짧은 글로 이루어진 지면이다. 편집자 P는 ‘이미지 스케이프’의 원고를 ‘해라체’로 바꿔본 적이 있다고 고백했다. 문체를 바꾸면 어떤 변화가 있을지 궁금해서 애써 바꿔보았더니, 참 사소한 내용처럼 느껴지더라는 것이다. P는 “이 경우는 형식이 내용을 지배하는구나, 내용보다 형식이 더 중요하구나” 깨달았다고 한다. 높임말이라는 형식으로 인해 다정한 느낌, 혹은 친절한 감성이 전달된다는 것이다. 그의 말을 듣고 있자니 ‘감성’을 얹어서 전달하는 ‘다정한 『환경과조경』’은 어떨까 상상해보게 된다. 최이규 교수의 인터뷰 꼭지, ‘다른 생각, 새로운 공간’은 완전히 다른 차원의 사례다. 이 지면에는 교정의 원칙을 뛰어넘는 구어가 표현된다. 분명 문법에는 어긋나지만 인터뷰이의 이야기를 직접 듣는 것처럼 생생하게 울려 퍼지는 문장을 보고 있으면, 들고 있던 빨간 펜을 내려놓게 된다. 어느새 이번 호도 마감이다. 이번 달도 간결하고 무게 있는 글, 다정한 글, 펄떡이는 활어 같은 글들을 가다듬어 한 권의 잡지로 세상에 내놓는다. 독자 여러분에게는 어떤 글이 마음에 가닿을지 궁금하다. 1. 이 제목은 문체에 관한 단서라도 얻어 볼까 해서 자료를 뒤지던 중 발견한 한 문학 평론에서 빌려온 것이다. 민명자, “말맛과 글맛”, 『수필시대』 3, 2008, pp.280~288. 2. 김광식, “한국사회에 반말공용화를 묻는다: 인지문화철학자의 반말 선언”, 『사회와 철학』 28, 2014, pp.25~40.
[PRODUCT] (주)토인디자인의 퍼걸러, ‘자연을 담다’
최근 주거 단지에서 이웃 간의 소통을 중요하게 다루는 사례가 늘어나고 있고, 보다 원활한 소통을 위해 단지에 퍼걸러를 많이 설치하고 있다. 이러한 시대적 흐름에 부응하기 위해 퍼걸러도 오늘날의 스타일에 맞추어 다양한 변화를 시도하고 있다. 일반적으로 퍼걸러는 목재나 철재를 사용하며 직선적이고 정형적인 형태로 디자인된다. (주)토인디자인은 이러한 기존의 이미지를 버리고 자연에서 영감을 얻어 새로운 퍼걸러 디자인을 제시했다. (주)토인디자인이 새롭게 런칭한 브랜드 ‘유레스트U-rest’는 자연에서 얻은 자유로운 느낌을 담은 퍼걸러 ‘자연을 담다’를 선보였다. ‘자연을 담다’는 미래적일 뿐만 아니라 실용적인 디자인을 추구한다. 앞으로도 (주)토인디자인은 다양한 유레스트 디자인을 제안하며 퍼걸러 디자인의 트렌드를 이끌어 나갈 것으로 기대된다. TEL. 02-533-3720 WEB. www.toinpld.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