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환경과조경 2019년 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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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매거진 가격 9,000

기사리스트

[에디토리얼] 젊은 아시아 조경가들의 참신한 도전
“그들에게서 발견한 … 공통점은 태도와 작업 방식의 참신함이다. … 참신(斬新)의 뜻을 사전에서 확인해 봤다. 새롭고 산뜻함. 그런데 ‘참(斬)’자의 유래가 예사롭지 않다. 고대 중국에서 죄인을 죽이던 극형 틀인 수레와 도끼로 이루어진 글자다. 참신이란 과거를 도끼로 치는, 완벽한 단절을 뜻하는 말이다. 참신함을 유지하는 일은 더 어렵다. 종이 한 장 차이로 참신은 진부가 된다. 진부陳腐. 사상, 표현, 행동 따위가 낡아서 새롭지 못함. 썩은 고기腐를 남들 보라고 전시陳한다는 뜻이다. 어렵게 구한 고기를 자랑하기 위해 다른 사람들에게 계속 꺼내 보여주다 보면 고기는 썩고 악취가 난다. 고기 주인은 썩은 고기에 익숙해져 고약한 냄새가 나는지도 모른다.” 젊은 조경가들의 좌충우돌 창업기를 다룬 특집 ‘설계사무소를 시작한다는 것’을 실었던 2016년 5월호 ‘에디토리얼’에서 몇 구절을 다시 꺼냈다. 마감 전쟁을 치르는 편집실을 뒤로하고 참석한 베이징의 한 워크숍에서 만난 아시아 여러 나라 젊은 조경가들의 공통점도 새로움을 위해新과거를 도끼로 치는斬 참신함이었다. 호주 멜버른 대학교의 질리안 월리스 교수와 RMIT의 하이케 라만 교수가 기획·주관하고 중국 투렌스케이프(Turenscape)를 이끄는 세계적 조경가 콩지안 유가 후원한 워크숍 ‘빅 아시안 북(Big Asian Book): 조경의 새로운 실천’. 내년 봄에 낼 ‘조경 설계+이론’ 책을 기획하기 위해 홍콩중문대의 스탠 풍, 베이징대의 즈팡 왕, RMIT의 알반 매니시와 야지드 닌살람, MIT의 도로시 탕, 워싱턴대의 제프 호우 등의 이론가가 한자리에 모였다. 그러나 이번 모임의 핵심은 이 책에 수록할 혁신적 아시아 프로젝트들을 발표하러 베이징으로 날아온 젊은 조경가들이었다. 서울의 오피스박김, 상하이의 Z+T, 선전의 Lab D+H, 도쿄의 오버랩(Overlap), 싱가포르의 샐러드 드레싱(Salad Dressing), 방콕의 SHMA의 참신한 조경 작업은 식민지 근대화와 파행적 도시화의 유산, 전통에 대한 강박과 피로, 서구에서 수입된 조경 직능의 불안정한 영역과 세대 갈등, 글로벌 경제 시스템으로 인한 외국 스타 조경가들과의 경쟁에 도전장을 내밀고 있었다. 이들과 아시아 조경의 정체성과 미래를 토론하며 보낸 사흘 내내, 기성의 체제가 남긴 똑같은 숙제를 풀고자 참신한 좌표를 모색하며 분투하고 있는 한국의 젊은 조경가들이 떠올랐다. 특집 ‘조경가로 자라기’(2014년 7월호), ‘설계사무소를 시작한다는 것’(2016년 5월호), ‘따로 또 같이, 느슨한 연대를 실천하다(’2018년 5월호)를 통해『환경과조경』이 주목해 온 젊은 조경가들, 그리고 오늘도 밤을 밝히며 한국 조경의 내일을 설계하고 있는 이 시대 이 땅의 많은 젊은 조경가에게 응원의 박수를 보낸다. 기존의 영역과 기성의 틀에 얽매이지 말고 모든 경계에서 꽃을 피워가기를, 진부함을 경계하고 참신함을 이어가며 한국 조경의 새로운 50년사를 열어가기를 기원한다. 1월호의 김호윤 소장(조경설계 호원)특집에 이어, 이번 2월호에는 환경과조경이 주최한 ‘제1회 젊은 조경가’ 공동 수상자인 이호영·이해인(HLD)소장을 특집으로 담았다. 치열한 리서치와 치밀한 디자인을 가로지르며 개념과 실제 설계의 간극을 넘어서고자 하는 이호영·이해인 소장의 참신한 작업들, 큰 반향을 기대한다.
조경가 이호영 이해인
두 번째 젊은 조경가 탐구 시간이다. 지난 호 특집에서 ‘제1회 젊은 조경가’ 수상자 김호윤을 소개한 데 이어, 2월호 특집에서는 공동 수상자인 이호영과 이해인의 작품 세계를 살핀다. 두 조경가는 국내뿐 아니라 해외에서 쌓은 다양한 문화적 경험을 바탕으로, 서로의 설계를 보완하며 조경과 도시의 새로운 접점을 모색하고 있다. 이번 지면에서는 열 가지 키워드를 통해 그들이 하나의 프로젝트를 시작하고 끝내기까지의 프로세스를 탐구한다. 다이어그램이나 모델링, 지형 조작 등 쉽게 간과되곤 하는 과정의 정교함을 통해 설계에 대한 애정과 끈기를 엿볼 수 있다. 특집을 열고 닫는 두 편의 에세이에는 두 조경가의 독특한 설계 철학과 실험적이면서도 섬세한 면모가 담겨 있다. 특히 다른 언어를 사용하고 다른 문화권에서 살아온 이국의 조경가가 들려주는 에피소드는 형식과 관습에 구애받지 않고 창의적으로 설계 방식을 확장해 온 이호영과 이해인의 모습을 목격하게 한다. 날카로운 질문 대신 유연한 대화로 진행된 배정한의 인터뷰는 학창 시절부터 설계사무소 스태프를 거쳐 현재에 이르기까지 두 조경가의 발자취를 되짚는다. 켜켜이 쌓인 이야기 속에서 HLD의 치열한 리서치와 치밀한 디자인의 뿌리를 찾을 수 있다. 진행 배정한, 남기준, 김모아, 윤정훈 디자인 팽선민 자료제공 이호영‧이해인
크리티컬 인터벤션
“HLD는 이호영과 이해인이 설립한 창의적 디자인 회사다. HLD의 디자인은 공간적 문제와 도전 과제의 해법으로 ‘핵심적 개입’을 제공한다. 핵심적 개입이란 물리적 또는 운영적 측면에서 대상지의 잠재력과 현 상태 사이 빠진 연결 고리를 찾아냄으로써 긍정적 변화를 가능케 하는 조치나 설계적 장치를 의미한다. 우리의 설계는 “이 공간을 사용하는 사람의 삶에 영향을 주기 위해 가장 핵심적인 것은 무엇인가?”라고 질문하는 것에서 시작된다. 우리는 피상적인 외관 개선이나 장식, 스타일 입히기를 지양한다. HLD의 핵심적 개입은 전통적 조경 설계의 범위에 국한하지 않으며, 다양한 분야의 분석을 활용한다. 조경가의 전문적 지식과 기술, 자연의 아름다움에 대한 애정, 그리고 대상지의 맥락에 대한 존중을 통해 촉각적 표현부터 지역적 비전에 이르기까지 다양한 스케일의 아이디어를 구현한다. HLD는 모든 스케일의 프로젝트에서 환경적, 사회적으로 책임감 있는, 근본적 접근을 추구한다.” 앞의 글은 HLD 홈페이지에 쓰인 소개문이다. 앞으로 몇 차례 개정해야겠다는 생각이 들지만, 다시 보아도 이 글은 진심이다. 우리가 하는 설계가 “좀 더 고급스러운 정원을 갖고 싶어요(남들이 좋다고 할 만한 정원을 만들어주세요)” 또는 “땅이 좀 있는데 뭘 해야 할지 모르겠어요(지금은 뭘 원하는지 몰라도 내가 싫어할 만한 것은 하지 마세요)” 같은 사소한 고민1에 답하는 것이 아니라, 크든 작든 좀 더 좋은 사회를 만들기 위한 노력이라는 점을 말하고 싶었다. 대상지가 제 기능을 다하지 못하는 근본적 이유가 있을 텐데, 일을 의뢰하는 사람이나 공간을 관리하는 사람의 의도는 그와 무관한 경우가 생각보다 많다. 그래서 주어진 문제를 있는 그대로 보지 않고, 우리 나름대로 문제를 다시 정의하고 문제의식을 발주처와 공유하는 과정이 필요하다. 간혹 발주처를 설득하지 못하면, 이를 숨겨진 제2의 아젠다로 꿋꿋이 지켜나가기 위한 요령도 있어야 한다. HLD는 우리 일의 본질을 핵심적 개입(critical intervention)이라 표현하는데, 이때 critical은 ‘비판적’이라는 뜻이 아닌 ‘없어서는 안 될’, ‘결정적인’을 의미한다. 이 결정적 한 방은 처음에는 잘 안 보이지만, 찾고 나면 너무 필수불가결하고 필연적인 것일 때가 많다. ...(중략)... 각주 1. “쓰레기 같은 고민했구나.”무한도전에서 배우 김혜자가 해외봉사를 나가 그곳의 참혹한 현장을 본 뒤,우리네가 한국에서 지지고 볶는 일상의 갈등에 대해 한 말. * 환경과조경 370호(2019년 2월호) 수록본 일부 이호영은 고려대학교에서 원예학을, 서울대학교 환경대학원과 펜실베이니아 대학교에서 조경학을 전공했으며, 조경설계 서안, 미국 에이컴(AECOM), 오피스 ma(office ma)에서 조경과 도시설계 프로젝트를 수행했다. 이해인은 서울대학교와 UC 버클리에서 도시계획을 공부하고 하버드 GSD에서 조경 설계 석사 학위를 받았으며, 미국 에이컴과 파퓰러스(POPULOUS)의 샌프란시스코 지사에서 다양한 조경 프로젝트를 수행했다. HLD는 이들이 설립한 조경설계사무소로, 광범위한 분석과 접근 방법을 통해 대상지의 공간적 가치를 향상시키고, 그 장소를 사용하는 사람들에게 인문·사회적으로 긍정적 영향을 미칠 수 있는 해법을 제공한다. www.hldgroup.net
열 가지 키워드
설계자의 창의적 혹은 논리적 아이디어는 스케치에,프로젝트의 가장 종합적인 모습은 마스터플랜에 나타난다고 생각하기 쉽다.하지만 프로젝트를 시작하고 끝내기까지의 프로세스와 아이디어들은 스케치나 마스터플랜으로는 오히려 설명하기가 어렵다.우리가 그동안 많은 시간을 쏟아 왔던 다이어그램,모델링,지형 조작 같은 과정이나 포장,시설물 같은 결과물을 열 가지의 키워드로 정리해보았다. 01. 아이디어 디자이너는 공간을 바라보는 자신만의 생각의 틀을 바탕으로 아이디어를 발전시켜 나간다. ‘산업으로서의 이콜로지’ 제안의 출발점은 지속가능한 미래는 외부성(externality)발생의 패턴을 찾아 그 고리를 끊거나 전환시키는 방법으로 해결이 가능하다는 아이디어, 이를 뒷받침하기 위한 역사적 고찰이었다. 한편 공간심리학, 지리학, 자연 현상에 대한 과학 지식과 미학, 조경과는 다른 방식으로 공간을 다루는 영화 및 사진 촬영 기법, 무대 연출에 대한 지식은 ‘대구 지하철 참사 메모리얼 설계’와 그 이후의 작업에 큰 밑거름이 되었다. 02. 다이어그램 다이어그램은 때로는 복잡한 콘셉트와 생각을 쉽게 전달하기 위해 만들고, 때로는 다양한 레이어가 겹쳐 있는 공간 구조에서 기능별로 공간을 이해시키기 위한 목적으로 만든다. 다이어그램은 결과물로서만 만들어지는 것은 아니기에 이를 제작하는 과정에서 많은 아이디어를 얻어 프로젝트를 발전시키거나, 설계 오류를 발견하고 수정하는 경우가 많다. 03. 모델링 콘셉트를 발전시키거나 전달하기 위해, 디테일을 연구하기 위해, 1:1 스케일의 모형을 통한 최종 확인을 위해 다양한 재료와 방법으로 모형을 만든다. 04. 지형 조작 땅을 만지는 일은 조경에서 가장 중요한 작업 중 하나다. 인공 지반이 아니라면, 완벽하게 평평한 땅은 없다. 입체적인 경험, 공간의 구분, 우수 관리와 식생 환경 조성 등을 위해 지형 조작 작업은 중요하다. 이 작업은 조경 설계를 다른 분야와 구별하는 가장 결정적 프로세스이기도 하다. 05. 단면 평면이 공간이 어떻게 조직되고 배열되는지를 쉽게 보여준다면, 단면은 각 공간이 어떻게 구축되는지를 쉽게 보여준다. 06. 포장 시각적 흥미로움을 만들어내기 위해 포장 패턴을 디자인하는 경우도 있지만, 외부 공간에서 포장은 시각적인 것 외에 프로그램, 동선, 우·배수, 공간 스케일 등을 함께 생각해야 하는 복잡한 영역이다. 그래서 재료, 형태, 색상, 스케일 등을 세심하게 고려한다. 07. 식재 식재는 가장 중요하면서도 어려운 영역이다. 식재는 자연이기도 하고, 공간을 구축하는 재료이기도 하며, 주변 콘텍스트와 상호 작용하는 매개체이기도 하다. 08. 시설물 좋은 공간에서는 포장이나 식재뿐만 아니라 시설물 역시 콘셉트에 맞게 만들어져야 한다. 09. 비주얼라이제이션 비주얼라이제이션은 공간을 이해시키는 가장 강력한 도구이자, 전달하고자하는 공간의 분위기나 이용 측면 등을 보여주는 스토리텔링 수단이다. 10. 메이킹 실제로 만들어지는 것을 목표로 설계를 하는 만큼, 만드는 과정을 이해하고 모니터하는 것은 매우 중요하다. 시공 과정에서 우리의 역할이 생략될 수 없다는 것을 발주처와 시공자가 알게 하기 위해서는 설계자 감리 과정이 좀 더 체계적이고 전문적으로 이루어질 필요가 있다. 시공을 직접 하는 것으로 해결할 수 있는 것이 아니다....(중략)... * 환경과조경 370호(2019년 2월호) 수록본 일부
치열한 리서치와 치밀한 디자인을 가로지르다
영동시장 건너편, 논현동의 한 상가 건물 3층에 입주한 HLD의 오피스를 꼭 2년 만에 찾았다. 이태 전 겨울엔 넓어 보이던 곳이 이제 발 디딜 틈 없이 좁다. 식구가 두세 배 늘어난 이유도 있겠지만, 1:1 스케일로 테스트하고 있는 디테일과 재료가 벽과 바닥에 가득한 탓이리라. 유럽 출장을 마치고 인터뷰 바로 전날 귀국한 이호영, 이해인 소장의 얼굴에는 피로한 기색이 역력했다. 빠듯한 일정이었지만 낯선 도시에서 새해를 맞는 이색적 경험이 오히려 로맨틱했겠다고 묻자, “이호영 소장은 낭만이고 새해고 다 필요 없어요. 언제 어디서나 참 잘 자요”라는 이해인 소장의 답이 돌아온다. 시차로 힘들겠지만 한 네 시간은 인터뷰해야겠다고 분위기를 잡자, 이호영 소장은 특유의 호기롭고 능청스러운 어투로 “문제, 전혀 없습니다. 돌아오는 비행기에서 시차, 완전 정복했어요”라며 응수한다. 인터뷰 자료를 주섬주섬 꺼내는 나의 어수선한 행동을 틈타 두 이 소장은 파리, 프랑스 남부, 바르셀로나 등지로 이어진 이번 여정의 사진들을 꺼냈다. 빠른 속도로 넘어가던 화면, 그러나 발터 벤야민(Walter Benjamin)의 메모리얼인 ‘통로(Passages)’ 앞에서 우리는 한참을 멈출 수밖에 없었다. 프랑스와 맞닿은 스페인 국경 포르트보우Portbou에 있는 작품이다. 나치의 탄압을 피해 망명길에 나섰다 이곳에서 발각되고 모르핀 과다 복용으로 자살한 벤야민을 매개로, 개인의 자유로운 정신을 가로막는 강압과 폭력의 구조를 관람자 스스로 체험하게 하는 역작이다. 벤야민의 마지막 행로와 미완의 학문적 여정, 그리고 이스라엘 출신의 조각가이자 건축가 대니 카라반(Dani Karavan)의 소름 돋을 만큼 철저하게 계산된 디자인으로 이어진 대화가 30분을 훌쩍넘겼고, 나는 인터뷰의 1회전 공이 울리자마자 날리려 했던 송곳 질문을 그만 잊어버리고 말았다. 개념과 실제 설계의 간극을 넘어 -‘제1회 젊은 조경가’ 수상, 다시 한번 축하합니다. “감사합니다. “젊은 조경가 수상하신 데라고 해서요”로 시작하는 작업 의뢰 전화가 벌써 여러 건 오고 있어요.”(이해인, 이하 인) -잘됐네요.『환경과조경』은 이 상이 여러 젊은 조경가의 활동에 보탬이 될 수 있도록 계속 힘을 기울여 보려고 합니다. “벌써 마케팅에 많은 도움이 되고 있습니다. 표지에 얼굴 나오는 게 큰 홍보 효과가 있더라고요. 펴서 보여줄 필요도 없이, 여기 나왔습니다, 하면 됩니다. 전에는 표지에 사람 얼굴 나오면 욕을 하기도 했었는데, 실리고 보니 정말 좋은 거구나, 실감하고 있습니다.”(이호영, 이하 영) -지난 연말 시상식 때, “13년 전의 토론회 ‘조경가로 산다는 것’이 계기가 되어서, 그때 내뱉은 다짐을 실천하기 위해 열심히 조경 설계해 왔다”는 이호영 소장의 수상 소감이 참 인상적이었어요. 당시 지면(『환경과조경』 2006년 1월호)을 다시 펼쳐들고 한참 정독했어요. 그때의 문제의식, 잘 실천되고 있나요? 함께 일하는 동료와 스태프에게 비전을 주지 못하는 선배 소장들을 당시 토론회에서 과감하게 비판했었는데요. “어디서 그런 용기가 나왔었는지…. (웃음) 시간이 흐르면 핵심만 기억에 남잖아요. 아직까지 정확히 기억에 남아 있는 건 개 념과 설계의 간극에 대한 문제의식뿐입니다. 신입 시절에 느끼기에 설계를 이끌어가는 개념이 실제의 설계와 전혀 관계가 없는 거예요. 예를 들자면, 하이브리드 같은 개념 있지 않습니까. 그런 개념은 애당초 설계와 관계가 없거나, 아니면 모든 설계가 그런 개념과 관계되는 거죠. ‘행복한’ 공원? 세상에 행복하지 않은 공원이 어디 있나요. 소장님이 일주일 끙끙대며 개념을 잡았는데 실제 설계 내용과는 별로 연관이 없고, 갑자기 비약이 일어나면서 밤 한번 새면 딱 설계가 나오는 프로세스, 아 이건 뭔가, 그런 의문을 해소할 길이 없었어요. 이런 건 설계가 아닌 것 같다, 개념이란 건 무조건 시공에서 디테일로 연결이 돼야 한다, 적어도 비약은 없어야 한다, 그런 문제의식이 강했습니다. 이런 생각을 토론회에서 말해야 할지 말지 고민이 많이 됐어요. 그런데 말을 해야만 앞으로 내가 실천하고 해결하겠구나 싶어서 청중들 앞에서 꺼냈죠. 그랬더니 조금씩이라도 답을 구하기 위해 애쓰게 되더라고요. 10년이 넘은 지금, 최소한 나는 이런 이유로 이렇게 설계했다는 말은 할 수 있게 된 것 같습니다.”(영)...(중략)... * 환경과조경 370호(2019년 2월호) 수록본 일부
두 조경가의 실험적 탐구 생활
대규모 디자인 스튜디오, 특히 몸집이 큰 다국적 스튜디오에서 디자이너로서 재능을 인정받는 것은 무척 어려운 일이다. 수많은 층위의 조직 문화 속에서 당신의 아이디어, 나아가 당신과 의뢰인 사이에서 벌어지는 일에 대한 책임과 공적(credit)의 범위를 분명히 하는 일은 매우 어려우며, 이는 당신이 해외에서 모국어가 아닌 다른 언어를 사용하며 일하는 경우 더욱 복잡해진다. 출장이 빈번하고 바쁜 상사의 입장에서, 그룹이 내놓은 온갖 훌륭한 성과가 누구에게서 비롯된 것인지 알아내는 것은 쉬운 일이 아니다. 하지만 그 속에서도 확연히 두드러지는 사람이 있기 마련인데, 이는 그들이 큰소리로 이야기하거나 관심을 끌기 위해 노력하기 때문이 아니라, 그들의 작품과 아이디어가 가진 힘이 강력하기 때문이다. 이호영과 이해인은 모두 이러한 성격의 재능과 열정을 가진 부류라 할 수 있다. 이들의 디자이너로서의 재능과 리더로서의 역량은 의심의 여지가 없다. 우리는 눈치채지 못했지만 내심 기대했던 바는, 언젠가 이 둘이 연애를 시작하는 것이었다. 이제 그들이 삶의 동반자로서 훌륭한 디자인을 해내고 있다는 사실을 알게 되어 매우 뿌듯하다. 파트너십으로 서로의 능력과 성향을 보완한 둘의 디자인은 매우 관념적이면서도 진지하고, 섬세한 디테일을 지향하면서도 유머러스하고 흥미롭다. 이해인이 에이컴(AECOM)에서 수행한 여러 프로젝트 중 중국 상하이의 번드 일대를 재개발하는 공모(상하이 번드 국제금융센터 설계공모)가 기억에 남는다. 당시 건축가가 이미 계획안을 완성한 상황이었지만, 클라이언트는 조경 계획을 만족스러워하지 않았다. 건축가의 계획은 여러 블록으로 이루어진 대상지에 중층 건물 몇 동을 클러스터 형태로 배치하고, 지상에 중정과 경관 코리더landscape corridors를 조성하는 것이었다. 건축물의 콘셉트는 직설적일 만큼 명확했지만, 이를 경관 계획으로까지 연계하지는 못했다. 건축가는 건물들을 ‘토막(chops)’으로 묘사했는데, 이는 평면도에 정사각형으로 표현되며 때때로 네 개의 작은 정사각형으로 나누어진다. 또한 토막은 건물의 수직성을 강조하는 동시에 건물을 다양한 높이로 분해하는데, 토막 옆면의 가로세로 비율은 우리에게 익숙한 전형적인 형태의 사각 돌 도장과 아주 비슷하다. ...(중략)... *환경과조경370호(2019년2월호)수록본 일부 아키 오미(Aki Omi)는 오피스 ma(office ma)의 창업자이자 크리에이티브 디렉터로, 20년 이상 현장을 경험하며 수준 높은 작업을 수행했다. 대규모 사무소에서 일했을 뿐만 아니라 중소기업의 소규모 작업에도 참여해 서로 다른 방식이 지닌 가치를 깊이 이해한다. 디자인 전 과정에 대한 열정으로 응축적인 동시에 무한한 확장성을 지닌 회사를 설립했다. 자신만의 독특한 문화 융합적 관점을 바탕으로 아름다움, 단순함, 디테일에 대한 끝없는 열정을 실험하고 있다. 스티브 핸슨(Steve Hanson)은 오랜 친구이자 디자인 파트너인 아키 오미와 함께 창의적이고 멋진 공동 작업 공간 오피스 ma에서 일하고 있다. 25년 이상 조경 분야에서 일하며 미국과 아시아에 많은 작품을 만들었고, 1990년대 디자인 분야에서 가장 핫했던 기업에서 근무한 적이 있다. 설계, 저작, 멘토링 활동을 통해 공간에 대한 그의 열정을 확인할 수 있다.
삼거리공원 명품화사업 설계공모
‘삼거리공원 명품화사업 설계공모’의 당선작이 지난 2018년 12월 13일에 발표됐다. 천안시는 지난해 9월 ‘삼거리공원 명품화사업’ 추진을 위한 설계공모를 개최하고, 12월 11일 심사를 진행해 7개 출품작 중 4개 작품을 수상작으로 확정했다. 최우수상에는 도화엔지니어링+건화+그룹한 어소시에이트+공간종합건축사사무소 팀의 ‘천안삼거리 흥흥’이 선정됐으며, 우수상에는 CA조경기술사사무소+동일기술공사+송림원+AAG 건축사사무소의 ‘능수야 버들은’, 장려상에는 경호엔지니어링종합건축사사무소+그린포엘의 ‘천안숲’, 입선에는 조경설계 비욘드+유신+우영환경개발+건축사사무소 에스파스의 ‘억석흥회’가 선정됐다. 삼거리공원은 천안흥타령춤축제, 농기계자재박람회 등 주로 각종 일회성 행사의 개최지로 활용되어 공원보다는 행사장으로 인식되어 왔다. 게다가 녹지율은 25%에 불과해 근린공원의 기능을 충분히 수행하지 못한다는 지적도 제기되고 있다. 이에 천안시는 공원 재조성을 위한 설계공모를 진행했다. 근린공원 개념을 탈피해 지역 정체성이 반영된 공원을 조성하는 것이 공모의 목표였으며, 천안삼거리의 역사성·장소성 재해석, 삼거리의 정체성이 담긴 역사·문화 자원을 활용한 공간, 세 개의 테마 길, 지역적 특성을 고려한 생태 환경 복원 등에 대한 내용이 설계 주안점이었다. ...(중략)... *환경과조경370호(2019년2월호)수록본 일부 최우수상 천안삼거리 흥흥興馫 도화엔지니어링+건화+그룹한+공간종합건축사사무소 우수상 능수야野 버들은泿 CA조경+동일기술공사+송림원+AAG 건축사사무소 장려상 천안숲 경호엔지니어링종합건축사사무소+그린포엘 입선 억석흥회億昔興懷 조경설계 비욘드+유신+우영환경개발+건축사사무소 에스파스 주최 충청남도 천안시청 위치 충청남도 천안시 동남구 삼룡동 291-4번지 일원 설계 대상삼거리공원(근린공원) 전체 면적192,169m2 공모 방식일반설계공모 총 사업비 447억 원 예상 설계비 1,659,9십만 원(부가가치세 및 손해배상보험료 포함) 심사위원장 조세환(한양대학교 도시대학원) 심사위원 구태익(연암대학교 환경조경학과) 김선미(LH공사, 조경) 김충식(한국전통문화대학교 전통조경학과) 최병관(공주대학교 건축학과) 정건희(호서대학교 건축토목환경공학부) 신지훈(단국대학교 녹지조경학과) 이상태(SH공사, 환경·생태) 예비 심사위원 이진희(상명대학교 환경조경학과) 한봉호(서울시립대학교 조경학과) 시상 최우수상(1팀): 기본 및 실시 설계권 우수상(1팀): 2천 5백만원 장려상(1팀): 1천 5백만원 입선(1팀): 1천만원 진행 윤정훈 디자인 팽선민 자료제공 천안시청 및 수상팀
[삼거리공원 명품화사업 설계공모] 천안삼거리 흥흥
천안삼거리는 한양과 경상도 그리고 전라도로 통하는 옛 삼남대로의 분기점이다. 예부터 길손을 재워주는 원과 주막이 즐비하여 많은 사람이 모이는 길목이었으며, 능수버들 군락지의 유래가 담긴 설화, 천안삼거리 흥타령 등 고유한 역사를 간직한 땅이다. ‘천안삼거리 흥흥興馫’은 대상지에 깃든 옛 기억을 모티브로 삼아 옛길과 주변 풍경을 되살리고, 땅의 기억과 현재의 가치, 미래의 비전 간 역동적인 상호 작용을 이끌어내고자 한다. 문화 전략, 삼남길 삼남길은 다채로운 문화 프로그램이 열리는 한양길, 너른 평야가 있는 호남길, 수려한 자연을 감상할 수 있는 영남길 등 세 개의 테마 길로 구성된다. 세 길은 옛 삼남대로의 역사적 향취를 불러일으키고, 공원 안팎의 분산된 여러 길을 잇는 네트워크이자 다양한 이벤트를 수용하는 공간으로 기능한다. ...(중략)... *환경과조경370호(2019년2월호)수록본 일부
[삼거리공원 명품화사업 설계공모] 능수야 버들은
천안삼거리는 한양과 경상도, 전라도를 잇는 옛 삼남대로의 중심으로, 길을 따라 길손들이 묵고 쉬어가던 원院이 있던 곳이다. 근대로 넘어오면서 길은 자동차가 다니는 대로가 되고 원은 너른 벌판이 펼쳐진 삼거리공원이 되었다. 그간 삼거리공원은 무분별한 개발로 인해 장소성과 과거의 아름다운 풍경을 많이 잃었지만, 삼기제와 버드나무 군락이 아직 옛 모습을 간직하고 있다. 콘셉트와 전략: 로, 제, 원 과거 천안삼거리는 로路, 제堤, 원園으로 구성되어 있었다. 이 공간을 모티브로 한 세 가지 전략을 토대로 옛 천안삼거리의 이야기에 현재 시민들의 이야기를 더한 열린 공원을 조성한다. 첫째, 도로 확장으로 소실된 삼거리와 차도로 단절된 공원에 새로운 로의 골격을 만들어, 사람들을 끌어들이는 진입 광장과 다양한 이야기를 담은 테마 길을 계획한다. ...(중략)... *환경과조경370호(2019년2월호)수록본 일부
[삼거리공원 명품화사업 설계공모] 천안숲
삼거리공원은 차도로 둘러싸여 주변과 분리된 섬 같은 곳이다. 이러한 공원을 주변과 연결하고, 다채로운 기능의 공간을 더해 천안을 대표하는 공원으로 새롭게 탈바꿈시키고자 한다. 먼저 삼거리공원의 경계부에 보행교를 조성하고 보도를 확장시켜 주변과의 연계성을 강화한다. 또한 삼거리공원이 문화, 활기, 여가 활동이 가득한 도심 속 휴양 공원이 될 수 있도록 너른 잔디밭과 광장, 자연을 테마로 한 여가 공간 등을 조성한다. 이러한 주요 공간들은 공원 내 시민의 활동을 증대시키는 기반으로 기능할 것이다. 세 개의 테마 길과 경계부 전략 옛 삼남대로(한양길, 호남길, 영남길)의 흔적을 토대로 주요 동선의 골격을 계획한다. 한양길은 개발 예정인 주거 지역과의 연계를 고려해 도시경관길로 조성하고, 동측대로와 인접하게 배치한다. 영남길은 자연마당 속 삼거리숲길이 되어 방문객을 아름다운 자연 공간으로 안내한다. 호남길은 공원 주 진입로로 기능하고, 정원과 예술, 시민 문화를 담은 삼거리정원길이 된다. ...(중략)... *환경과조경370호(2019년2월호)수록본 일부
[삼거리공원 명품화사업 설계공모] 억석흥회
옛 천안삼거리는 자연적으로 발생한 길로,지형에 순응하며 주변 공간을 유기적으로 연결하고 있었다.일대에 원院과 같은 주막들이 자연스럽게 생겨나‘떠들썩하기는 천안삼거리’라는 말이 만들어질 정도로 많은 사람이 이곳을 오갔다.상인부터 선비,왕까지 이용하는 이 길목에서 다양한 계층이 어우러지고,흥타령이나 능소 설화 같은 고유한 지역 문화가 움텄다.하지만20세기 초 일제의 도로 근대화로 천안삼거리는 직선화됐으며,현재는 대로에 둘러싸여 사람과 자연으로부터 단절된 채로 남아 있다.삼거리공원은1968년 도시계획시설로 지정된 이래 정체성을 상실한 채 사실상 방치됐다.두 개의 길이 만나며 피어나던 문화와 정취를 찾아 볼 수 없으며,들판을 따라 느린 걸음으로 걸으며 바라보던 풍경도 없다.현재는 천안흥타령춤축제,농기계자재박람회장으로 연중8일만 활발하게 이용되고,녹지율은20%에 그쳐 근린공원으로서의 역할 또한 제대로 수행하지 못하고 있다.과거 흥성했던 천안삼거리의 위상을 되찾고 이곳을 다시 사람들이 찾는 곳으로,자연이 이어지는 곳으로 만들고자 한다. ...(중략)... *환경과조경370호(2019년2월호)수록본 일부
송산그린시티 개발사업 남측지구 조경공사 설계공모
송산그린시티는 시화방조제 건설로 생긴 간척지 일대에 조성되는 신도시다. 한국수자원공사가 추진하는 송산그린시티 개발사업은 사화호의 자연환경을 보전하고, 관광·레저·주거가 한데 어우러진 도시를 조성해 신도시 일대를 서해안 산업 벨트의 거점으로 육성하는 데 목표를 두고 있다. 이를 위해 약 1,653만 평에 이르는 대규모 부지는 동측지구(2011~2019, 1단계), 남측 지구(2017~2025, 2단계), 서측지구(2019~2030, 3단계)로 나뉘어 단계별로 개발될 예정이다. 지난해 9월 개최된 ‘송산그린시티 개발사업 남측지구조경공사 설계공모’(이하 송산그린시티 남측지구 조경 설계공모)는 송산그린시티 2단계 개발사업의 일환이다. 약 두 달간 진행된 공모에 5개 팀이 참여했고, 지난 12월 14일 그 결과가 발표되었다. 당선작에는 서안알앤디+동부엔지니어링+서호엔지니어링 팀의 ‘그린 기어 파크’가선정됐다. 그린 기어 파크는 송산의 옛 지도에 나타난 지명인 뜰, 골, 마루를 회복해 대상지가 지닌 땅의 기억을 회복하는 경관 계획을 수립했으며, 시화나래길, 형도, 우음도, 공룡알화석지 등 주변과의 생태 네트워크 구축을 통해 친환경 산업 도시를 만들고자 했다. 우수작에는 동일기술공사+삼안+신화컨설팅 팀의 ‘송산 남다른 길’, 가작에는 도화엔지니어링+동심원 조경기술사무소+한국종합기술 팀의 ‘워라밸 플랫폼’이 선정됐다....(중략)... * 환경과조경 370호(2019년 2월호) 수록본 일부 당선작 그린 기어 파크Green Gear Park 서안알앤디 디자인+동부엔지니어링+서호엔지니어링 우수작 송산 남다른 길 동일기술공사+삼안+신화컨설팅 가작 워라밸 플랫폼 도화엔지니어링+동심원 조경+한국종합기술 주최 및 주관 한국수자원공사(K-water) 위치 경기도 화성시 송산면, 남양면 일원(송산그린시티 남측간석지) 설계 대상 남측지구 공원·녹지 개요: 공원 4개소, 녹지 18개소 등 1,342천m2(특별계획구역 내 공원 2개소 23천m2 제외) 공모 방식 제한공개공모 예상 공사비 93,986백만 원(부가 가치세 포함, 전기 및 건축 공사 포함) 예상 설계비 1,662백만 원(부가 가치세 포함, 계약 금액은 계약 시 낙착률 조정 등에 따라 별도로 산출된 금액을 따름) 심사위원 유민호(K-water, 토목) 이종연(K-water, 토목) 김희년(K-water, 조경) 박태인(K-water, 조경) 정두용(인천시청, 경관) 백승만(영남대학교 건축학부) 최병주(화성시) 시상 당선작(1팀): 기본 및 실시 설계권 우수작(1팀): 3천만 원 가작(1팀): 2천만 원 진행 김모아 디자인 팽선민 자료제공 한국수자원공사 및 수상팀
[송산그린시티 개발사업 남측지구 조경공사 설계공모] 그린 기어 파크
송산의 뜰, 골, 마루를 회복해 대상지의 땅의 기억을 회복하고자 한다. ‘그린 기어 파크Green Gear Park’는 ‘생태와 문화를 상징하는 그린’, ‘산업을 상징하는 기어’, ‘안전을 상징하는 파크’의 마지막 단어를 딴 이름이다. 대상지의 생태 환경에 주목해 시화나래길~형도~우음도~공룡알화석지와의 연계성을 강화하는 그린 네트워크를 구축해 친환경 산업 도시를 만든다. 전략 그린 업, 링크 업, 스마트 업 등 세 가지 전략을 통해 송산그린시티를 작동시키는 산업 도시의 기어를 구현한다. 그린 업은 생태 네트워크 구축 전략이다. 대상지의 기존 우수 처리 체계와 연계한 정화 습지, 우수 처리 시설을 마련해 친환경 우수 처리 시스템을 구축한다. ...(중략)... * 환경과조경 370호(2019년 2월호) 수록본 일부
[송산그린시티 개발사업 남측지구 조경공사 설계공모] 송산 남다른 길
40만 평의 공원 녹지, 10만 평의 하천, 그리고 400만 평의 공룡알화석지가 하나의 길을 따라 이어지는 문화 공원을 만들고자 한다. 1960년대 경제 성장기의 산업 단지가 개발과 성장을 중요시했다면, 1990년대의 산업 단지는 환경 오염을 완화하는 녹지의 기능적 측면만을 중시했다. 새로운 산업 단지는 근로자에게 질 높은 업무 환경을 제공할 뿐만 아니라 지역 주민과의 소통을 꾀하는 공원으로 기능하는 등 사회적 역할을 해야 한다. 전략 삶의 리듬을 지켜며 느리게 걷다: 지속성에 바탕을 둔 느리게 걷는 행위는 공룡알화석지부터 연결녹지를 거쳐 근린공원 5호에 이르기까지, 여러 공원을 하나로 잇는 매개 역할을 한다. 공원과 도시가 만나는 경계에 꽃이 핀다:공룡알화석지로부터 뻗어나와 대상지 남측 산업 단지로 파고드는 선형 녹지는 시민과 산업 단지 근로자의 소통을 돕는오픈스페이스로 기능한다. 이로 인해 공원과 도시의 경계에서 풍요로운 문화 행위가 일어난다. ...(중략)... *환경과조경370호(2019년2월호)수록본 일부
[송산그린시티 개발사업 남측지구 조경공사 설계공모] 워라밸 플랫폼
‘워라밸 플랫폼’은 퇴근 후에는 동료와 맥주 한잔하며 하루의 스트레스를 풀고, 휴일에는 가족과 함께하고 싶은 곳이다. 직장 가까이에서 문화생활을 누릴 수 있고, 건강한 자연에서 직접 가꾼 작물로 가든파티를 즐길 수 있는 공간을 만들고자 한다. 장소성과 전략 첫째, 송산그린시티는 조선 정도 때 능을 조림하며 소나무가 우거졌다 하여 솔뫼, 송산이라 불렸으며, 수도권 신도시와 차별화된 생태 레저 복합 도시를 지향한다. 이 같은 대상지의 역사와 지향점을 고려해 송산그린시티만의 정체성을 구현한다. 둘째, 대상지 인근에는 학술적·문화적 가치가 높고 경관이 수려한 공룡알화석지와 철새 서식지가 있다. 이 같은 자연, 문화 자원을 대상지와 연계하고 스토리텔링 소재로 활용한다. 셋째, 대상지 남측 지구에 자동차 제조업 관련 산업 단지가 많다는 점을 고려해 산업 단지의 정체성을 드러내고 그들의 요구를 충족시킬 수 있는 공원을 조성한다. ...(중략)... * 환경과조경 370호(2019년 2월호) 수록본 일부
[이미지 스케이프] 실-호우-에-뜨
실루엣(silhouette). 영어로 써야 할 때마다 꼭 철자를 확인해야 하는 단어. i가 한 개던가, 두 개던가? 중간 어디에 h도 들어갔던 것 같은데? 영어에서도 그리고 우리말에서도 일상적으로 쓰긴 하지만 늘 헷갈리는 그런 단어지요. 헷갈리지 않으려면 ‘실-호우-에-뜨’라고 기억해야 할까 봐요. 실루엣은 윤곽 안이 단색, 보통은 검은색으로 채워진 이미지를 뜻하는 말입니다. 원래는 18세기 유럽에서 유행하던 초상화 형식으로 검은 종이를 잘라 인물의 옆얼굴을 표현한 그림을 부르던 말이라는군요. 그러다가 조금씩 확장되어서 현대에는 밝은 배경에 사물의 윤곽선이 강조된 형태를 지칭하는 의미로 다양한 예술 분야에서 사용되고 있습니다. 자료를 찾아보다 발견한 사실인데 이 단어가 사람 이름에서 유래했다고 하네요. 에티엔 드 실루엣(Etienne de Silhouette)이란 사람이 이야기의 주인공입니다. 실루엣은 루이 15세 때 재무장관을 한 사람인데, 재무장관을 지내는 동안 프랑스 경제가 심각하게 좋지 않았던 모양입니다. ...(중략)... *환경과조경370호(2019년2월호)수록본 일부 주신하는 서울대학교 조경학과를 거쳐 같은 학과 대학원에서 석사와 박사 학위를 받았다. 토문엔지니어링, 가원조경, 도시건축 소도에서 조경과 도시계획 실무를 담당했고, 현재 서울여자대학교 원예생명조경학과 교수로 재직 중이다. 조경 계획과 경관 계획에 학문적 관심을 두고 있다.
[당신의 사물들] 카메라와 남한산성
삼각대에 호스만 612를 장착한 채 어깨에 올렸다. 등 뒤에는 다른 카메라와 노출계 장비들을 잔뜩 넣은 가방을 짊어졌다. 가방과 카메라 무게를 합치면 10kg은 족히 넘었을 듯하다. 주말이면 늘 남한산성에 올랐다. 20대의 젊은 나는 조경설계사무소를 다니고 있었고, 카메라와 남한산성은 현실을 잠깐이나마 잊게 해주는 소중한 물건과 장소였다. 꽤나 오랜 시간이었다. 남한산성의 모든 장소를 다니고 또 다녔다. 남들이 모르는 암문을 찾아 사람 발길이 드문 곳으로 다녔고, 산성의 모습을 담기 위해 고군분투했다. 그중에서도 가장 아끼던 장소가 있다. 동문을 거쳐 장경사를 지나면 다섯 개 옹성 중 하나인 신지옹성이 보인다. 앞만 보고 산을 오르다 보면, 여장(성 위에 낮게 쌓은 담) 너머의 옹성이 보이지 않는다. 등산로 오른쪽 아래의 작은 암문을 지나야 마주칠 수 있는 신지옹성의 첫인상은 강렬했다. 방어를 위해 만들어졌지만 그가 가지고 있는 곡선의 유려함은 주변의 산세와 어우러져 아름답기 그지없었다....(중략)... *환경과조경370호(2019년2월호)수록본 일부 김상윤은 서울시립대학교 조경학과를 졸업한 후 한국예술종합학교 미술원 조형예술과 예술 전문사 과정을 중퇴했다. 스튜디오 테라와 프로젝트팀 O3scope를 거쳐 현재 에이트리 정원 디자인 & 시공 스튜디오를 운영 중이다. 2013 순천만국제정원박람회 작가정원 부문에서 금상을 받았다. 자연을 매개로 대중과 소통할 수 있는 정원을 만들고자 노력하며, 식물과 관련한 컨설팅과 설계 및 시공을 하고 있다.
[그리는, 조경] 나무를 그리는 방법, 드로잉의 혼성화
조경학과 신입생들에게 정원과 집을 지도 형식으로 간단히 그려보라고 한 적이 있다. 대부분의 학생이 건축물은 박스 형태로 제법 잘 그려냈지만 정원을 그리는 데는 조금 망설였다. 나무를 평면 형태로 그려본 적이 없기 때문에 상상해보는 시간이 필요했던 것이다. 조경 도면에 사용되는 여러 기법은 일종의 규칙, 즉 배워서 익힌 관습이다. 조경학을 오랜 시간 공부해 이제 이러한 관습이 당연하고 익숙하지만, 조경학 전공을 택했을 때만 해도 난 조경 도면을 제대로 읽지 못했다. 등고선과 축척, 방위 등은 중고등학교 지리 시간에 배웠지만 식재를 포함하는 구체적 요소는 조경학도가 되어 처음으로 그려보았다. 모든 규칙에는 저마다의 이유가 있다. 도면의 규칙은 구성 요소를 간편하게 표현할 수 있도록, 그 규칙을 아는 사람에게는 쉽게 읽힐 수 있도록 고안된 효율적인 커뮤니케이션 수단이다. 이러한 규칙을 익히게 하는 것이 조경 교육의 주요 역할이라 생각하면서도, 이러한 관습에 의구심이 들었다. 왜, 그리고 언제부터 그러한 방식으로 그리기 시작했을까. 예를 들어, 조경 드로잉의 주요 대상인 식재를 평면으로 나타내고자 할 때, 우리는 동그라미 형태로 그리도록 배웠고 그렇게 그린다. 이러한 방식은 언제 생겼을까. 조경 도면이 그려지기 시작할 무렵부터였을까. 아니라면, 그 전에는 나무를 어떻게 시각화했을까. 플라노메트릭 이 드로잉은 18세기 후반에 그려진 스웨덴의 하가 공원(Haga Park)의 평면도다(그림 1). 영국의 풍경화식 정원을 자국에 소개한 스웨덴 조경가 프레드리크 망누스 피페르(Fredrik Magnus Piper)(1746~1824)가 그렸으며, 공원 디자인 양식에 적합하게 풍경화처럼(picturesque)공들여 채색되어 하나의 회화 작품으로 보아도 손색없는 수준이다. 이 평면도에서 건축물은 이차원의 평면에 정투영 방식으로 그려져 있다. 흥미로운 건 식재의 시각화 방식이다. 자세히 살펴보면, 식물은 정면 형태로 그려놓은 사실을 확인할 수 있다(그림 2). 그런데 식물을 정확히 정면에서 본 입면도 형식으로 그린 것도 아니다. 정투영의 원리에서 벗어난 느슨한 투시도 형식으로 시각화하고 있다. 이렇게 그린 이유는 무엇인가....(중략)... *환경과조경370호(2019년2월호)수록본 일부 이명준은 서울대학교 조경학과에서 학사, 석사, 박사 학위를 받았다. 조경 설계와 계획, 역사와 이론, 비평에 두루 관심을 가지고 있다. 박사 학위 논문에서는 조경 드로잉의 역사를 살펴보면서 현대 조경 설계 실무와 교육에서 디지털 드로잉이 나아가야 할 방향을 모색했고, 현재는 조경 설계에서 산업 폐허의 활용 양상, 조경 아카이브 구축, 20세기 전후의 한국 조경사를 깊숙이 들여다보고 있다. 가천대학교와 성균관대학교에서 강의하고 있으며, ‘조경비평 봄’과 ‘조경연구회 보라(BoLA)’의 회원으로도 활동한다.
[도면으로 말하기, 디테일로 짓기] 심리스 패턴 디자인
나는 20세기 대중문화의 끝자락에서 21세기 공유 정보(cloud information)의 시대로 넘어가는 과도기적 세대로, 홍대 지하실에 들끓던 자욱한 열기와 유튜브에 넘치는 개인 채널들의 세상을 모두 경험했다. 이 같은 1990년대 키드는 스타 아키텍트의 시대를 가슴으로 느끼며 성장해, 이제 위키피디아에서 그들의 일대기를 병렬적으로 분석해볼 수 있는 특권을 가지게 됐다. 이런 맥락에서 돌아보면, 역사의 선구자들은 항상 지구 반대편에서 무언가를 계속 꺼내 왔다. 그리고는 시대의 관성을 깨는 새로운 ‘크로스오버’를 선보이며 시대를 주도했다. ‘심리스(seamless)패턴 디자인’도 그러한 예다. West 8의 제리 반 에이크(Jerry Van Eyck)(현 !melk 대표)는 직물 업계의 고전적 디자인 방법인 심리스 패턴을 조경의 영역으로 가져왔고, 이를 아드리안 회저(Adriaan Gueze)의 컬트적 낭만주의에 더해, West 8 특유의 유머를 대지 위에 구현했다. ‘페어 트리 브리지(Pear Tree Bridge)’는 용산공원 기본 설계 과정에서 진행했던 디자인 습작이며, West 8의 시그니처 디자인에 대한 내 오마주다. 개발 이전에 배나무 밭이었던 이태원梨泰院의 역사와 어원에 근거했고, 지역성을 도시 장식 요소로 구현해내며 모방한 자연으로 디자인된 자연을 만드는 West 8식의 이중적 유머를 재현했다. 사실 직물 패턴 디자인의 원리는 생각보다 꽤 단순하다. ...(중략)... *환경과조경370호(2019년2월호)수록본 일부 나성진은 서울대학교와 하버드 GSD에서 조경을 전공했다. 졸업 후 한국의 디자인엘, 뉴욕의 발모리 어소시에이츠(Balmori Associates)와 제임스 코너 필드 오퍼레이션스(JCFO)에서 실무 경험을 쌓고, West 8 로테르담과 서울 지사를 오가며 용산공원 기본 설계를 수행했다. 한국, 미국, 유럽에서의 다양한 경험을 바탕으로 귀국 후 파트너들과 함께 얼라이브어스(ALIVEUS)라는 대안적 그룹을 시작했다.
[공간의 탄생, 1968~2018] 한국 도시화의 거시적 현황, 쏠림 현상
도시화는 인간 세계의 특이한 현상이다 한국 도시화의 거시적 현황을 이야기하기에 앞서, 우선 우리의 기억 속 어딘가에 남아 있을 중고등학교의 과학 시간으로 되돌아가 보자. 혹시 확산이라는 개념이 떠오르는가? 확산은 방 한구석에서 향수병을 열어 놓으면, 얼마 후에 방안 전체에서 향수 냄새가 나는 현상을 말한다. 다시 말해, 확산은 어떤 물질이 농도가 높은 곳에서 낮은 곳으로 이동하여, 그 농도가 균일하게 되는 현상을 뜻한다.1이와 같은 현상을 설명하는 다른 용어로 엔트로피(entropy)(무질서도)라는 개념도 있다. 열역학 제2법칙에 따르면, 에너지는 고립계에서 엔트로피가 증가하는 방향으로 흐른다. 즉, 열은 뜨거운 물체에서 차가운 물체로 흐르며, 나아가 자연계에서 일어나는 현상에는 비가역적인 방향성이 있다는 것이다.2 이와 같은 관점에서 오늘날 우리가 살고 있는 공간을 바라보면 어떠한가? 지난 연재『( 환경과조경』 2019년 1월호, “한국의 도시화 50년, 그 공간 문화 비평에 들어가며”, pp.86~95 참조)에서 이야기한 것처럼, 오늘날 전 세계 인구의 65%가, 대한민국 인구의 80~90% 이상이 도시에 살고 있다. 도시는 물리적으로 단순하게 이야기하자면, 사람과 건물이 많이 모여 있는 공간을 말한다. 이것은 결국 밀도의 개념과 관련되며, 앞서 이야기한 농도 그리고 엔트로피와도 연관된다. 하지만 자연계의 현상과는 반대로 우리 인간 세계에서는 시간이 지나면서 오히려 인구 밀도와 건물 밀도 등이 점점 높아지는 도시화 현상이 일어나고 있다. 이것은 마치 방 전체에 퍼져 있는 향수 분자가 방 한구석에 있는 향수병 안으로 급격하게 모여드는 것과 유사한 일이라고 할 수 있다. 이러하기에 도시화는 본질적으로 상당히 인위적일 뿐만 아니라, 많은 에너지가 동반되는 현상이라고 할 수 있다. 이번 연재에서는 한국 도시화의 거시적 현황을 보다 큰 시공간적 맥락에서 살펴보고자 한다. 600년의 변화? 100년의 변화! 50년의 변화 한국 도시화의 거시적 현황을 이해하기 위해서는 도시화의 개념적 정의와 함께 한국 도시화 현상을 시간과 공간이라는 두 차원에서 규명할 필요가 있다. 우선 도시화의 개념은 물리적, 지리적, 사회적 관점 등으로 다양하게 정의 내릴 수 있지만, 도시화에 대한 가장 기본적 정의는 인구 통계적 관점을 따른다. 전 세계 인구 관련 통계의 핵심 기관이자 권위적 기구인 UN 통계국(United Nations Statistics Division)은 도시화를 “1. 도시 지역에 사는 인구 비율이 증가하는 현상, 2. 많은 사람이 비교적 좁은 지역에 도시를 형성하면서 집중하는 과정”으로 정의 내리고 있다.3다시 말해, 도시화는 본질적으로 인구, 시간, 공간의 문제이며 도시화 현상은 ‘얼마나 많은 사람이’, ‘얼마나 빠른 시간에’, ‘얼마나 좁은 공간으로’ 집중하고 있는가로 설명할 수 있다는 것이다. 나아가 도시화 현상은 도시 형태 및 공간 변화와 관련된 물리적 현상, 농촌에서 도시로 인구가 이동하는 지리적 현상, 인구 집중으로 인한 사회적 갈등과 생활 방식의 변화가 일어나는 사회적 현상 등으로 확장되어 다루어진다. 이 같은 다양한 관점으로 인해 도시화의 역사에는 물리적 공간을 중심으로 기술하는 건조 환경의 역사(건축사, 조경사, 도시사 등)와는 다른 인구 통계적, 지리적, 사회적 측면 등이 존재하며, 특히 집합적 인간으로서 인구, 통합적 공간으로서 마을이나 도시, 나아가 지역 또는 국토 등이 중점적으로 다루어지게 된다....(중략)... *환경과조경370호(2019년2월호)수록본 일부 각주 정리 1. “확산”, 『Basic 고교생을 위한 생물 용어사전』, 2019년 1월 10일접속(https://terms.naver.com/entry.nhn?docId=941889&cid=47338&categoryId=47338). 2. “열역학 제2법칙”, 두산백과, 2019년 1월 10일 접속(https://terms.naver.com/entry.nhn?docId=1126837&cid=40942&categoryId=32233). 3. United Nations, Glossary of Environment Statistics, Studies in Methods, Series F No. 67, United Nations: New York, 1997, pp.74~75. 김충호는 서울시립대학교 도시공학과 도시설계 전공 교수로 일하고 있다. 서울대학교 건축학과에서 학사와 석사를 마치고, 미국 워싱턴 대학교 도시설계·계획학과에서 박사 학위를 받았다. 삼우설계와 해안건축에서 실무 건축가로 일했으며, 미국의 펜실베이니아 대학교와 워싱턴 대학교, 중국의 쓰촨 대학교, 한국의 건축도시공간연구소에서 건축과 도시 분야의 교육과 연구를 했다. 인간, 사회, 자연에 대한 건축, 도시, 디자인의 새로운 해석과 현실적 대안을 꿈꾸고 있다.
[시네마 스케이프] 그린 북
『그린 북(Green Book)』은 정원 관련 책이 아니다. 1936년부터 1966년까지 미국에서 발간된 연간 여행 안내 책자로, 흑인 여행자들이 차별과 물리적인 폭력을 피해 안전하게 여행할 수 있도록 가이드 역할을 했다. 미국 전 지역을 운전하며 다니는 우편배달원이 었던 빅터 휴고 그린이 만들었다. 국내에서는 재작년 개봉된 천재 흑인 수학자를 다룬 영화 ‘히든 피겨스(Hidden Figures)’(2016)에서 본 대로, 대중교통과 화장실 등 일상적인 공간에서 벌어진 차별은 가까운 과거에 미국에서 실제로 일어났던 일이다. 영화 ‘그린 북’(2018)은 1962년을 배경으로 흑인 천재 피아니스트가 이탈리아계 백인을 운전사로 고용해 연주 투어를 다닌 실화를 바탕으로 한다. 서로 다른 두 사람이 여행을 하며 소통하게 된다는 전형적인 로드 무비는 언제나 흥미롭다. 상반된 두 캐릭터가 충돌하며 빚는 에피소드는 예상을 넘어서고, 이동하면서 펼쳐지는 다양한 풍경은 배경 이상의 역할을 한다. 여기에 매력적인 음악까지 더해진다. 토니(비고 모르텐슨 분)는 뉴욕의 클럽에서 기도(문지기)로 일하며 가족의 생계를 책임지는 사내다. 일하던 클럽이 내부 수리로 두 달간 문을 닫자, 토니는 8주간 셜리 박사(마허샬라 알리 분)가 미국 남부 투어 공연을 안전하게 마치도록 수행하는 일자리를 얻는다. 셜리는 예술학, 심리학 등의 박사 학위를 가진 천재적인 피아니스트로 백악관에도 초청되는 유명 인사다. 제목에서 암시하듯, 인종 분리 정책이 유지되던 남부의 여정에서 그들은 폭력과 차별에 빈번하게 노출된다. 백인 부유층은 아티스트로서 셜리 박사를 인정하지만 동등한 인격체로 대하진 않는다. 숙식도 거부된다. 남부로 내려갈수록 셜리 박사 혼자 돌아다니는 일이 위험해진다....(중략)... *환경과조경370호(2019년2월호)수록본 일부 서영애는 조경을 전공했고, 일하고 공부하고 가르치고 있다. 봄도 아닌데 봄 방학이 있는 2월은 참 어정쩡한 달이다. 아이들은 졸업과 입학 사이, 학년과 학년 사이, 어디에도 소속되지 않은 채 시간을 보낸다. 긴 연휴까지 끼어 있으니 제대로 무언가 해보기도 어설픈 달이다. 다가올 3월을 준비해야 한다는 중압감에 지키지도 못할 결심만 무수히 하느라 머릿속만 바쁜 달이다.
돈의문박물관마을 수직정원 설계공모
지난해12월25일 서울시는‘돈의문박물관마을 수직정원 설계공모’의 당선작으로 그람디자인과 코어건축사사무소의‘버티컬 가드닝(Vertical Gardening)’을 선정했다고 밝혔다.이번 공모는 녹색 문화 확산을 목표로 하는‘정원도시 서울’계획의 일환으로 추진되었으며,민간 건축물에 수직정원을 확산시키기 위한 시범 사업이다.서울시는 돈의문박물관마을 일부 건물에 수직정원을 조성함으로써 자연이 주는 시각적 효과를 꾀하고,시민에게 쾌적한 환경을 제공하는 동시에 생태적 메시지를 전하고자 했다.공모는 제안·지명 방식으로 진행되었다.오피스경(권경은),한양대학교(안기현),아뜰리에리옹 서울(이소진),그람디자인(최윤석),기술사사무소 동인조경마당(황용득)등5개 팀이 초청되었으며,초청팀은 건축 전문가와 조경 전문가를 모두 포함한2인 이상의 팀을 구성해야 했다. 대상지는 돈의문박물관마을D동(서울도시건축센터), H동(서울도시건축센터 별관,공공 전시장)의 외부 벽면과 옥상 및 외부 공간으로, H동 일부 공간의 경우 내부 리모델링 계획뿐만 아니라 수직정원의 취지에 맞는 공간으로 활용할 수 있는 방안을 제시해야 했다.설계 지침은 크게 다섯 가지였다.첫째,서울의 사계절을 고려해 지속가능한 정원을 제안하고,식물은 도심지 공해에 강하고 월동이 가능해 서울에서 생육할 수 있는 종을 선정한다.둘째,식재 기반 구조물은 식물에게 적정한 생육 환경을 제공하고,유지·관리가 쉬워야 한다.구조물의 재질,디자인,색상은 기존 건축물,주변 가로 경관과 조화를 이루게 한다.셋째,자동 관수 시설 및 시스템은 유지·관리가 효율적이어야 한다.넷째,관수나 전력 소비를 최소화해 수직정원을 저비용으로 관리할 수 있어야 한다.또한 식재 하중,풍하중을 고려해야 하며 태풍,집중 폭우 등 재난에 견딜 수 있는 구조적 안정성을 갖춰야 한다.다섯째,수직정원,옥상 녹화,가로 녹지는 서울시 관련 계획 및 지침을 반영해 설계한다. ...(중략)... *환경과조경370호(2019년2월호)수록본 일부
전남대학교 민주길 조성사업 설계공모
지난해 12월 25일 서울시는 ‘돈의문박물관마을 수직정원 설계공모’의 당선작으로 그람디자인과 코어건축사사무소의 ‘버티컬 가드닝(Vertical Gardening)’을 선정했다고 밝혔다. 이번 공모는 녹색 문화 확산을 목표로 하는 ‘정원도시 서울’ 계획의 일환으로 추진되었으며, 민간 건축물에 수직정원을 확산시키기 위한 시범 사업이다. 서울시는 돈의문박물관마을 일부 건물에 수직정원을 조성함으로써 자연이 주는 시각적 효과를 꾀하고, 시민에게 쾌적한 환경을 제공하는 동시에 생태적 메시지를 전하고자 했다. 공모는 제안·지명 방식으로 진행되었다. 오피스경(권경은), 한양대학교(안기현), 아뜰리에리옹 서울(이소진), 그람디자인(최윤석), 기술사사무소 동인조경마당(황용득)등 5개 팀이 초청되었으며, 초청팀은 건축 전문가와 조경 전문가를 모두 포함한 2인 이상의 팀을 구성해야 했다. 대상지는 돈의문박물관마을 D동(서울도시건축센터), H동(서울도시건축센터 별관, 공공 전시장)의 외부 벽면과 옥상 및 외부 공간으로, H동 일부 공간의 경우 내부 리모델링 계획뿐만 아니라 수직정원의 취지에 맞는 공간으로 활용할 수 있는 방안을 제시해야 했다. 설계 지침은 크게 다섯 가지였다. 첫째, 서울의 사계절을 고려해 지속가능한 정원을 제안하고, 식물은 도심지 공해에 강하고 월동이 가능해 서울에서 생육할 수 있는 종을 선정한다. 둘째, 식재 기반 구조물은 식물에게 적정한 생육 환경을 제공하고, 유지·관리가 쉬워야 한다. 구조물의 재질, 디자인, 색상은 기존 건축물, 주변 가로 경관과 조화를 이루게 한다. 셋째, 자동 관수 시설 및 시스템은 유지·관리가 효율적이어야 한다. 넷째, 관수나 전력 소비를 최소화해 수직정원을 저비용으로 관리할 수 있어야 한다. 또한 식재 하중, 풍하중을 고려해야 하며 태풍, 집중 폭우 등 재난에 견딜 수 있는 구조적 안정성을 갖춰야 한다. 다섯째, 수직정원, 옥상 녹화, 가로 녹지는 서울시 관련 계획 및 지침을 반영해 설계한다. ...(중략)... * 환경과조경 370호(2019년 2월호) 수록본 일부
[이달의 질문] 나만 알고 싶은 핫 플레이스가 있다면?
나만 알고 싶은 핫 플레이스는 없다. 대신 가보고 싶은 곳의 리스트는 차고 넘친다. 볼리비아의 우유니 소금사막, 제주도의 아직 가보지 못한 오름들과 눈 쌓인 한라산, 일본 삿포로에 있는 맥주박물관, 바람이 미친 듯이 불어대는 날의 갈대숲, 언제 완공될지 기약 없는 용산공원, 미세 먼지 따위는 개나 줘버리라는 듯 맑디맑은 어느 봄날의 서울식물원, 평양시 중구역 서문동에 있다는 만수대분수공원…. 아, 무릎 튀어 나온 추리닝을 입고 가도 반갑게 맞아주는 이가 있는 동네 술집도 가고 싶다. 격하게! 남기준환경과조경 편집장 복잡한 도시의 일상을 벗어나 잠시 아무 생각 없이 멍하니 있고 싶을 때 이곳을 추천한다. 서울에서 2시간 정도 드라이브해 도착할 수 있는 경기도 연천의 ‘허브빌리지’다. 임진강을 향해 탁 트인 언덕에 자리 잡은 1만평 규모의 정원으로, 언덕에 앉아 강가를 바라볼 때면 일상의 상념을 자연스레 잊게 된다. 특히 늦여름에서 초가을에 방문하기를 추천한다. 해마다 넓은 언덕을 안젤로니아 꽃이 가득 채우는데, 프랑스 프로방스 지역의 라벤더 밭에 온 듯 이국적이고 아름다운 풍경이 펼쳐진다. 개화 기간이 길고 우리나라 기후에 비교적 잘 맞는 안젤로니아를 선택한 정원 디자이너의 안목이 돋보이는 곳이다. 정원 한편에는 화이트가든이라고 이름 붙여진 수 공간이 있는데, 임진강을 향해 무한히 이어진 인피니티 수반에 하늘의 풍경이 그림처럼 담긴다. 연천 허브빌리지는 핫 플레이스이기도 하지만 뜨거워진 머리를 식힐 수 있는 쿨 플레이스이기도 하다. 최재혁스튜디오 오픈니스 대표 KTX로 2시간여를 달려 호남선의 끝자락에 내렸다. 찌뿌둥한 몸을 일으키자마자 먹을거리에 대한 생각이 마구 떠오른다. 게살비빔밥과 게찌개, 한우 갈빗대가 올라간 냉면, 제철 방어, 콩국수…. 뭘 먹든 맛있겠지만 겨울엔 냉면이다. 한우 냉면으로 배를 채우고 주민들이 함께 운영하는 게스트 하우스에 짐을 풀자마자 산책을 나선다. 근대 유산과 박물관, 적산가옥, 이야기가 있는 골목길을 걷는다. 걷다가 눈에 띄는 아무 카페나 들어가도 이곳 목포 원도심의 분위기가 담겨 있다. 조금은 한적하고 은근히 활기찬 동네. 저녁으로 신선한 회 한상, 아침으로 아메리카노 대신 고소한 콩물 한 컵, 점심으로 게살비빔밥과 게찌개를 먹고, 돌아오는 기차에 오르기 전 이곳에서만 파는 쑥굴레와 콩국을 포장한다. 기차 여행을 마칠 때쯤, 달콤한 조청에 찍은 쑥굴레를 우물거리며 나의 핫 플레이스 목포 원도심을 음미해본다. 근래 목포 원도심 관련 뉴스가 뜨겁다. 진짜 핫 플레이스가 되었나보다. 이태겸 서울시립대학교 도시과학연구원 인천에는 ‘개항누리길’이라는 근대화 거리가 있다. 인천 여행지로 유명한 차이나타운과 닭강정이 맛있는 신포시장 사이에 있어 한번쯤 들러도 좋은 곳이다. 개항누리길에 위치한 ‘관동오리진’은 1940년 이전에 지어진 일본식 연립 주택을 개조한 카페다. 1, 2층으로 나눠져 있는데 2층 다다미방은 예약제로만 운영한다. 옛 분위기 속에서 즐기는 팥물, 수제차도 유명하지만 뒤뜰에 있는 작은 정원이 인상적이다. 건물 앞에서 인증샷만 찍고 가는 이들도 많다. 흑백 사진관 ‘우리’는 관동오리진 건너편에 있는데, 사진 한 장 찍는 데 오천 원이다. 저렴한 가격으로 감성적인 사진을 건질 수 있어서 인기가 많다. 정작 갈 때마다 웨이팅이 길어 한 번도 못 찍어 봤다는 게 함정이다. 박민지 서울시 푸른도시국 조경과 홍대입구역에서 내려 경의선숲길과 연남동을 지나 30분가량 걸어가면 연희동이 나온다. 교통이 조금 불편한 탓인지, 연희동은 연남동이나 익선동 같은 진짜 핫 플레이스들처럼 붐비는 곳은 아니다. 연희동은 큰길에서 보면 평범한 주택가처럼 보인다. 하지만 안쪽으로 두 골목만 더 들어가면 주택가 사이사이 카페와 음식점, 서점, 디자인숍 등이 숨어 있다. 나만의 연희동 코스가 있다. 먼저 ‘유어마인드’라는 독립 서점을 둘러보고, 바로 아래층의 카페에서 키오스크 샌드위치를 먹는다. 배가 조금 차면 골목 여기저기를 돌아다닌다. 넓고 깨끗한 골목 또한 연희동이 좋은 이유 중 하나다. 저녁은 항상 ‘월순할매동태찜’이다. 매콤한 동태찜과 볶음밥은 요즘 같은 겨울에 안성맞춤이다. 저녁을 먹고 나서는 마음 가는 새로운 곳에 도전한다. 최근에 간 ‘예끼’라는 오뎅 바는 무지개색 니트를 입은 사장님과 주민들이 담소를 나누는 따뜻한 곳이었다. 시간이 된다면 ‘사러가마트’도 한 번씩 들러본다. 동네 마트지만 흔히 볼 수 없는 특이한 식재료들을 찾을 수 있다. 연남동의 꽉 찬 거리와 끝없는 웨이팅이 질렸다면, 조금 더 걸어 연희동은 어떨까. 홍하영서울시립대학교 조경학과 작은 북 카페 ‘카푸치노’는 이천 원이면 잠시 쉬어갈 수 있는 공간이다. 서울병원 의사분이 모아 놓은 문학 기행 비평집이 있다. 나만 아는 것은 재미없어 알린다. 이은심 나의 핫 플레이스는 서로 극과 극인 두 곳이다. 한 곳은 현대적이고, 다른 한 곳은 전통적이다. 첫 번째 핫 플레이스는 H 카드사의 옥상 키친, ‘쿠킹 라이브러리’다. 4층에 있는 그린 하우스는 한 팀만을 위한 공간으로 예약해야만 이용할 수 있고, 정원에서 자유롭게 야채를 수확해 요리할 수 있다. 공간 디자인에 대한 관심과 미식에 대한 열정이 있는 조경인이라면 누구나 이 매혹적인 공간에 빠질 수밖에 없을 것이다. 두 번째 핫 플레이스는 장흥의 ‘열화정’이다. 느티나무가 노랗게 단풍 들 무렵, 나무 그늘에 앉아 연못을 바라보면 내가 자연인지 자연이 나인지 심히 헷갈린다. 죽기 전에 꼭 느티나무 단풍이 가장 아름다운 10월 넷째 주에 가보기를 추천한다. 혼자 가도 좋고, 같이 가도 너무 좋은데 혼자만 보기에는 아까운 풍경이다. 온통 노란 느티나무 잎사귀로 가득 찬 연못은 가을이 통째로 들어 있는 듯한 모습이다. 20년 전 제목도 없는 한 장의 사진을 통해 알게 된 열화정은 몇 년간의 전통 공간 답사에도 풀지 못한 숙제 같다. 배선영 한국수자원공사 경기도 화성시에 있는 ‘융건릉’. 정조와 영조의 능이 있는 곳으로 몇백 년 된 수목으로 가득 차 있는 공간이다. 방문객이 굉장히 많지만 워낙 넓은 곳이라 한적하게 돌아다닐 수 있다. 수목만 가득할 뿐인데 능 바깥과는 공기부터 다른 것이 느껴진다. 쭉쭉 뻗은 산책길, 넓은 잔디밭과 휴게 공간에서 여유롭게 산책하고 쉬고 데이트하기도 좋다. 어느 계절에 가도 아름답고 편안한 곳이다. 백규리동심원 조경기술사사무소 한참을 생각한 끝에 두 곳이 떠올랐다. 첫 번째는 ‘네스트호텔’이다. 호텔 근처 용유역에서 무료로 운행하는 자기부상열차를 타고 인천국제공항역까지 갈 수 있다. 서해 바다를 보며 탁 트인 경관을 조망할 수 있는 이곳에는 낯선 곳에서 느껴지는 설렘이 있다. 두 번째는 광화문 ‘씨네큐브’다. 해머링 맨이 있는 흥국생명 건물 지하 2층에 있다. 영화 티켓을 보여주면 지하 1, 2층에 있는 커피숍에서 커피값을 할인받을 수 있다. 3층 ‘세화미술관’ 관람도 무료, 창밖 도심 전망은 덤이다. 매번 인생 영화를 만나는 곳, 직원이 “상영 시작 1분 전입니다” 외치는 정감 있는 곳이 궁금하다면, 북적이고 팝콘 냄새 나는 영화관이 싫다면, 따스한 찻물이 마음에 스며들 듯 완벽한 힐링이 필요하다면 이곳을 방문해보시길. 이주연한국조경협회 사무국장 내게 핫 플레이스를 찾아내는 것은 중요한 일이다. 틈틈이 인터넷이며 TV며 여러 매체를 통해 가고 싶은 곳들을 체크해 둔다. 원하는 조건을 갖춘 핫 플레이스를 찾기란 쉽지 않다. 접근하기 쉽고, 볼거리가 많고, 적당히 오랜 시간을 보내기 좋아야 한다. 분위기까지 좋다면 금상첨화다. 핫 플레이스들을 찾아내는 일이 중요한 이유는 가족, 친구, 애인과 좋은 시간을 보내고 싶어서다. 하지만 힘들게 찾아간 곳에는 대게 그렇듯 많은 인파가 몰린다. 사람들 속에서 한참 치이다 보면 진이 쏙 빠진다. 함께 온 이들과 좋은 시간을 보내고 싶다는 계획이 실패한 것만 같다. 이럴 때면 정말이지, 세상의 모든 핫 플레이스를 나만 알고 싶어진다. 이런, 질문에 대한 답을 꽁꽁 숨긴 채 답변을 내놓고 말았다. 박대웅화담숲 바리원 *‘이달의 질문’은 매달 하나의 질문에 대한 독자분들의 다양한 생각을 듣고, 이를 공유하고자 마련한 코너입니다. 시시콜콜한 조경 동네의 일상부터 조경을 둘러싼 법제도, 조경의 변화를 촉발시킬 수 있는 아이디어 등 다채로운 스펙트럼의 질문을 통해 조경 공론의 마당을 조금씩 넓혀가겠습니다.
[편집자의 서재] 아직도 책을 읽는 멸종 직전의 지구인을 위한 단 한 권의 책
취미가 뭐냐고 묻는다면 조금 망설이게 된다. ‘독서’인데, 선뜻 말하기가 어렵다. 첫째, 책에 대한 나의 애정은 어딘가 어설프고 애매하다. 흥미로운 이야기, 맛깔 나는 문장, 똑똑해지는 것 같은 기분 때문에 책을 읽기도 하지만, 나와 책의 관계는 물질적인 면에 좀 더 치우쳐 있다. 반듯한 사각형, 종이의 냄새와 질감, 정갈한 글자들을 보고 있으면 마음이 너무 쉽게 들뜬다. 읽지도 않았는데 벌써 뿌듯하고, 갖고 있는 것만으로도 뭔가 달라진 것 같다는 예감(착각)에 사로잡혀 정작 책 읽기는 뒷전이다. 둘째, 소심한 성격도 한몫한다. ‘취미는 독서’라고 했을 때 돌아올 반응이 신경쓰인다. 집에 틀어박혀 책만 읽는 따분한 애로 보거나, 잘난 척하는 인간으로 보거나, 그냥 폼 잡으려고 아무 말이나 하는 허언증 환자로 볼 게 뻔하다. 셋째, 요즘 같은 시대에 독서는 매력적인 취미가 아니다. 이력서 속 빈칸에 대한 답일 때는 더욱 신중해진다. 독서라고 썼다가는 제대로 된 취미 하나 못 찾은, 도전 정신이나 창의성과는 거리가 먼 지원자로 보이기 십상이다. “책 좋아하세요?” “좋아하긴 하는데... 많이 읽고 그러지는 않아요.” 생각해보면 언제나 우물쭈물, 남들 앞에서 당당하게 말했던 적이 많지 않다. 책 좋아하는 인간으로 알려지는 것은 썩 유쾌한 일이 아니었다. 생일 선물은 항상 책이었고, 내가 똑똑하고 올곧은 애인 줄로 아는 엄마 친구들의 시선이 부담스러웠으며, 아는 게 많고 글을 잘 쓸 거라는 기대는 정말 별로였다. 이런 소심한 책쟁이에게 한 줌의 해방감을 준 책이 있었으니, 제목부터 심상치 않은 『아직도 책을 읽는 멸종 직전의 지구인을 위한 단 한 권의 책』이다. 책을 사게 된 건 순전히 제목 탓이었다. 폐활량이 부족한 사람은 한 번에 다 말하기도 힘들 것 같은 저 긴 제목에는 뭔가 씌여 있는 게 분명했다. ‘멸종 직전’이라는 절박한 표현을 거부할 수 없었다. 동료가 내미는 손 같았고, 종이책이 보내는 일종의 구조 신호 같기도 했다. 이 책은 미국 칼럼니스트 조 퀴넌의 삐딱한 시선으로 쓰인 지극히 주관적인 독서 예찬론이다. 곧 일흔을 바라보는 그가 평생 읽은 책은(그의 추산에 따르면)7천 권 남짓이다. 태생이 까칠한 탓인지 엄청난 독서량에서 비롯된 자신감 때문인지는 알 수 없지만, 책과 독서 생활에 관해 말할 때만큼은 그는 누구보다 솔직하고 거침없다. 세상에는 위대한 책도 많지만 펴 볼 가치도 없는 허섭스레기 같은 책도 많으며, 그중 기업가나 정치가가 쓰거나 그들을 다루는 책은 끔찍하기로 우열을 가릴 수 없다. 그해의 베스트셀러 목록에 군림하는 책을 그해에 읽고 넘어가지 않으면 큰일이 나는 줄 아는 사람들이 마뜩치 않고, 14살 때부터 경멸해 온 책을 자기 인생 책이라며 반짝거리는 눈으로 건네는 친구를 무서워한다. 보통 독서법에 관한 책이라면 독서 행위를 고상하고 감상적인 일로 미화하기 마련인데, 이 책은 그러한 점에서 여타 책과는 결을 달리 한다. 그에게 책 읽기는 지루한 인간들 틈에서 시간을 보내는 방법이자, 지긋지긋한 현실로부터 도망칠 수 있는 도피처이며, 해야 할 일을 미루게 만드는 좋은 핑곗거리다. 생각해보면 내가 책을 붙들고 있는 이유도 대단한 데 있지 않다. 아무리 책이 정서를 고양하는 마음의 양식이라고 해도, 내가 책을 읽는 이유는 책이라는 물체에 대한 일종의 페티시가 있기 때문이고, 책이 허접한 예능보다 재밌고, 많이 움직이지 않고 빈둥대는 일이 태생적으로 잘 맞아서다. 책을 좋아하는 사람은 그저 종이 뭉텅이에 집착하거나, 현실 부적응자거나, 숨쉬기 운동 밖에 할 줄 모르거나, 속에 화가 많은 것뿐인지도 모른다. 책 읽는 걸 대단하게 혹은 괜히 아니꼽게 여기는 사람들은 이런 사실을 좀 알아야 한다. 책을 좋아한다고 해서 뭔가 대단한 사람처럼 굴어야 할 것 같은 압박감에 눌려 있는 이도 마찬가지다. 머쓱한 표정이 아닌 심드렁한 얼굴로, “취미는 독서에요”라고 아무렇지 않게 말 할 수 있는 권리를 허하라. 각주 1.조 퀴넌, 이세진 역, 『아직도 책을 읽는 멸종 직전의 지구인을 위한 단 한 권의 책』, 위즈덤하우스, 2018.
[CODA] 애매한 관찰자 시점
학교나 직장은 집에서 먼 곳으로 다닐 것. 넘쳐나는 시간을 대학교 주변 카페를 탐방하며 까먹던 새내기 시절, 재미 삼아 들린 사주 카페에서 뜻밖의 조언을 들었다. 모든 세상사에 달관한 듯한 눈빛의 역학자는 내 사주에 역마살이 끼어 있다며 집에서 먼 곳으로 나다닐수록 일이 잘 풀릴 거라 이야기했다. 대수롭지 않게 듣고 넘길 수 있는 충고를 아직도 선명히 기억하는 이유는 내가 30여 년을 한 동네 주변을 맴돌며 지내고 있기 때문이다. 이사를 몇 번 했지만, 초등학교나 중고등학교는 물론 대학교까지 통학 시간이 걸어서 30분을 넘겨본 적이 없다. 한때 인턴으로 오갔던 평촌의 연구소가 집에서 가장 먼 일상 공간이었다. 덕분에 동네의 변화를 낱낱이 목격하며 자랐는데, 모교가 될 줄 몰랐던 동네의 대학교도 관찰 대상 중 하나였다. 초등학생 시절 나는 주말이면 캠퍼스 뒤편의 산에 올라 배드민턴을 치거나 중앙로에서 롤러블레이드를 탔고, 여름방학에는 학생회관 앞 잔디밭에서 대학 풍물 동아리가 진행하는 장구 배우기 프로그램에 참여하기도 했다. 그때부터 캠퍼스를 동네 공원처럼 누비고 다닌 탓에, 신입생 주제에 얼마 전 학교로 돌아온 복학생이라도 되는 양 변해버린 학교를 아쉬워하곤 했다. 뒷산 앞 잔디 언덕을 덮은 캐스케이드와 스탠드, 장구를 배웠던 잔디밭을 밀어내고 들어선 농구 코트가 그랬다. 특히 자그마한 잔디 언덕과 어울리지 않는 거대한 캐스케이드는 왕릉 같은 역사 유적지를 연상시켜 매우 기이했다. 그 후에도 작은 변화들이 캠퍼스를 야금야금 바꾸어 나갔다. 밀려드는 과제만으로도 벅찬 학기를 보내던 나는 그 변화가 왜 필요한지 알지 못한 채 달라지는 캠퍼스의 모습을 신기하게 바라보기만 했다. 의문을 품게 된 건 어느 여름, 입구 리노베이션 공사를 목전에 둔 때였다. 우리 학교 정문은 좁고 볼품없기로 유명했는데, 정문 가까이 대학 본관으로 쓰였던 오래된 건물이 있고 그 건물만큼 나이를 먹은 큰 나무들이 모여 자라고 있었다. 작지만 알찬 숲은 정수리로 내리꽂히는 뙤약볕을 피할 수 있는 등굣길이었는데, 학교는 정문다운 정문을 위해 그 숲을 매끈한 광장으로 탈바꿈시킬 계획을 세우고 있었다. 자세한 속사정을 알 수 있었던 건 이를 막기 위해 벌어진 서명 운동 때문이었다. 나무를 베지 않고도 정문 환경을 개선할 수 있고, 조감도에 그려진 작은 녹지에서는 존치될 예정인 큰 나무가 살 수 없다는 점이 주요 골자였다. 전공 교수님도 그 나무들의 가치를 강조하며 서명을 독려했다. 결과는 예상했던 대로였다. 얼마나 많은 사람이 서명에 참여했는지 알 수 없지만, 공사는 예정대로 진행됐고 몇 개월 뒤 여느 학교에 있을 법한 회백색 판석으로 마감된 광장이 모습을 드러냈다. 광장의 완만한 경사가 보드를 타기에 적당하다는 말이 돌며 보더들이 모여들자 독특한 풍경이 연출됐다. 햇볕이 따가운 날이면 광장은 허옇게 빛나며 열기를 반사했고, 커다란 독일가문비는 수액 링거를 맞으면서도 시들시들 마르다가 어느 날 아침 사라졌다. 그 광장을 지날 때면 가끔 묘한 감정이 피어났다. 학교의 주인이지만 학교에서 무슨 일이 벌어지는지 관심이 없고, 그래서 참여할 자격을 갖지 못한 관찰자가 된 기분. 그렇다고 무언가를 실천하기엔 겁도 많고 행동력도 없는 내가 참 한심하게 느껴졌다. 재개발을 앞둔 을지로를 생각하면 그 때의 기억이 떠오른다. 지난 겨울 방문한 세운상가에서 내려다본 을지로에는 근대에 지어진 적벽돌 건물, 그에 덧댄 슬레이트 지붕과 외부 계단이 형성한 독특한 풍경이 가득했다. 그 모습을 처절하지 않게 만든 건 개미굴처럼 꼬불꼬불하게 얽힌 골목길에서 바쁘게 짐을 나르며 일을 하고 있던 사람들이었다. 고쳐 쓰기보다 새로 짓기를 좋아하는 도시재생 정책에 밀려난 사람들은 어디로 가게 될까. 오랜 시간 촘촘하게 짜인 산업 생태계에 기대어 일해 온 관련 업종 종사자나 예술가는 어디로 가야 할까. 재개발 반대 집회에 모인 사람들은 흔히 말하는 ‘공론화 과정’에 참여해 관찰자가 아닌 을지로의 주인으로서 제 목소리를 낼 수 있을까. 이번에도 애매한 관찰자 자리에 선 나는 아쉬움을 담은 짧은 글으로 그들에게 보내는 응원을 대신한다.
[PRODUCT] ICT 스마트 벤치와 테이블
엔쓰컴퍼니Nth company는 사물인터넷IoT과 정보 통신 기술ICT을 기반으로 일상의 다양한 문제와 요구를 생활 밀착형 제품과 서비스로 풀어내는 기업이다. 전통적 조경 공간이 갖는 한계를 새로운 기술의 융합으로 넘어서고자 노력하고 있다. 엔쓰컴퍼니의 ICT 스마트 벤치와 테이블은 에너지 자립 기술(태양광)이 적용된 휴게 시설이다. 태양광 기술로 생산한 에너지로 스마트폰을 급속으로 충전할 수 있을 뿐 아니라 야간에는 경관 조명을 밝힐 수 있다. 또한 배터리 전압 표시계가 설치되어 있어 에너지 축적 상태 파악이 가능하며, 각 시설에 부착된 로라 모듈LoRa module(저전력 장거리 통신 기술의 일종)과 센서로 제품의 이용 현황과 상태를 실시간으로 모니터링할 수 있다. 2018년에는 LH가 주최한 ‘행복도시 시민체감형 스마트서비스 공모’에 당선되어 ICT 스마트 벤치와 테이블이 세종 호수공원에 설치되기도 했다. ICT 스마트 벤치와 테이블은 시민들에게는 신기술을 체험할 수 있는 기회를, 관리자에게는 시설 관리의 편리함을 제공한다. 앞으로 엔쓰컴퍼니는 기존 시설에 발열 기능을 추가한 새로운 제품을 선보일 예정이다. TEL. 02-583-1713 WEB.www.nthcompany.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