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환경과조경 2020년 10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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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매거진 가격 9,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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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사리스트

[에디토리얼] 팬데믹 이후의 도시 풍경
바이러스와 동거하는 2020년의 공원, 발 디딜 틈이 없다. 바삭한 바람과 예리한 햇살이 공원에 가을을 채우기 시작하자 공원은 주말은 말할 것 없고 평일 낮과 밤에도 대만원이다. 마스크로 코와 입을 싸맨 인파가 줄지어 걷는 초현실적인 공원 풍경은 훗날 역사 교과서의 한 쪽을 차지하게 될 것이다. 코로나19 이후 도시의 일상생활에서 공원 이용이 눈에 띄게 증가하고 있는 현상은 여러 데이터로도 입증된다. 구글의 ‘코로나19 지역사회 이동성 보고서’가 단골로 인용되는 자료였는데, 얼마 전 발간된 ‘카카오 모빌리티 리포트 2020’에도 흥미로운 대목이 많다. 카카오내비에 쌓인 빅데이터를 바탕으로 만든 모빌리티 인덱스에 따르면, 사회적 거리두기가 본격적으로 시작된 2월 말 이후 주요 목적지별 방문 순위에 큰 변화가 생겼다. 예를 들어 주말 톱100 관심 지점POI에 을왕리해수욕장(25위), 소래포구종합어시장(34위), 두물머리(36위), 속초관광수산시장(39위), 여의도한강공원(48위), 광교호수공원(56) 등 야외 관광지와 대형 공원들이 새로 포함된 것이다. 이처럼 코로나19 팬데믹은 도시의 일상과 여가는 물론 이동의 패턴까지 변화시키며 공간 구조와 형태를 재편해갈 것으로 예상되고 있다. 390호의 특집 지면 ‘포스트 코로나, 도시의 안녕을 묻다’를 통해 『환경과조경』은 팬데믹과 함께 벌어지고 있는 일상생활, 작업 환경, 공원, 도시의 변화를 두루 짚어보고 다가올 미래의 양상을 조심스럽게 전망해보고자 했다. 조경가, 조경학자, 도시설계가, 도시기획자, 도시학자, 부동산학자, 교통학자, 경영학자 등 다양한 분야의 필자 열아홉 명을 초대했다. 전속 포토그래퍼 유청오는 팬데믹 시대의 공원 풍경을 사진으로 전한다. ‘코로나 일상 탐구’로 묶은 지면에서 최지수, 김진환, 정해준, 김연금, 서웊숲컨서번시, 서영애는 짧은 글과 한두 장의 이미지를 통해 재택근무가 가져온 일상의 변화, 뉴노멀이 된 온라인 강의, 설계 방식의 시행착오, 공원 풍경과 사용의 변화상을 담아냈다. ‘뉴노멀 시티스케이프’라는 꼭지로 엮은 지면에는 박승진, 이홍인, 조용준, 엘피스케이프, 오현주, 이해인, 홍주석, 민성훈이 참여해 팬데믹 이후의 도시 공간을 전망하거나 상상했다. 민성훈이 전망하듯, 뉴노멀 도시에서 용도의 “경계를 허무는 빅블러big blur의 결과가 지금보다 다양성과 효율성이 높은 상태일지, 반대로 어지럽고 불편한 상태일지는 알 수 없다. 분명한 건 변화의 속도가 빨라질 것이라는 점이다.” 박승진의 의견처럼, “도시 녹색 공간의 확충이 팬데믹의 즉효 약이 될 수는 없겠지만, 적어도 시민들의 지친 심신을 위로하고, 앞으로 우리가 함께 걸어가야 할 길이 어느 길인지, 그리고 이 시대가 추구해야 할 정책 목표의 지향점이 어디를 향해야 할지를 보여주는 중요한 실천 전략임은 분명”할 것이다. 조금 더 긴 분량의 에세이 지면은 김충호, 김세훈, 황기연, 신명진, 모종린이 맡았다. 김충호는 코로나 시대의 한가운데에서 우리는 ‘도시의 안녕hello’을 위해 노력해야 할지 아니면 ‘도시에게 안녕(goodbye)’을 고해야 할지 물으며, 그 어느 때보다 불확실한 시대의 도시에서 중요한 것은 사회생태적 리질리언스(resilience)라는 의견을 피력한다. 김세훈은 올해 4월부터 빅데이터를 분석해 직접 진행하고 있는 포스트 코로나 시대의 대중교통과 생활 인구 연구의 일부를 공유한다. 감염 공포의 지속이 여러 형태의 ‘도시 격차(urban divide)’를 키울 것이라는 흥미로운 연구 결과에 귀 기울일 필요가 있을 것이다. 황기연은 ‘컴팩트 시티, 언택트 시티, 그린 시티’라는 세 가지 시나리오별로 미래의 도시 교통 과제를 전망한다. 신명진은 공원과 공중 보건의 함수 관계를 역사적으로 짚어본 뒤 포스트 코로나 도시에서 ‘재난의 완충 지대로 재조명되고 있는 공원의 가치’를 논의한다. 모종린은 ‘동네 중심의 일상’을 강조하면서 코로나19와 공존하고 환경과 공동체를 복원하기 위해 필요한 도시 모델은 ‘생활권 도시’임을 역설한다. 이미 지난 봄부터 코로나 이후의 도시와 건축, 공간 문화에 대한 갖가지 예측이 넘쳐났고, 도시는 코로나 이전으로 결코 돌아갈 수 없을 것이라는 진단이 번져나갔다. 익숙한 것들과 결별하고 이제는 ‘뉴노멀’을 준비해야 한다는 의견에 공감하는 면도 적지 않지만, 유행에 편승한 ‘질러보기’식, ‘아니면 말고’식 주장들이 감염의 두려움 못지않은 피로감을 우리에게 주고 있는 것도 사실이다. 편집부는 이번 특집이 피로하다 못해 어느덧 지루하기까지 한 포스트 코로나 전망을 하나 더 보태는 기획으로 흘러서는 안 된다는 점을 자기 검열 기준으로 삼고자 했다. 석 달 넘게 지면을 기획하고 공들여 필자들을 섭외한 김모아 기자와 윤정훈 기자가 특집 서문에서 밝히고 있듯이, 이번 특집이 “혼란스러운 상황을 좀 더 담담히 바라보게 하고, 소란 가운데 놓치는 중요한 것들을 알게 해”줄 수 있기를 바란다.
[풍경 감각] 마스크를 쓴 시인
시 낭독회엔 좀처럼 발걸음이 향하지 않았다. 코로나19 탓도 있지만 혼자 읽어야 더 깊게 집중할 수 있다고 생각했기 때문이다. 그럼에도 가보기로 마음먹은 건 시인은 어떤 사람일지 궁금해서였다. 낭독회는 시집 출간을 기념해 시인과 시를 좋아하는 이들 그리고 동료 시인 몇 명이 모여 소리 내 시를 읽고 해설해주는 식으로 진행됐다. 그런데 이야기를 들을수록 짐작과 많이 달랐다. 그는 다른 우주의 존재 같았는데 내 작업실에서 멀지 않은 곳에 살고 있었고, ‘걷어찼다’는 표현은 은유가 아니라 진짜 발차기였다(의외로 격투기를 오랫동안 했다고). 오래도록 가져갈 수밖에 없는 상처에 관한 대목을 읽는 그의 목소리는 살짝 떨리기도 했다. 아픔을 드러내지 않은 것이 아니라 아직 완전히 벗어나지 못해 그 경험을 그대로 적을 수 없었던 걸까. 집에 계신 아흔 넘은 할머니를 떠올리면 지나치는 사람들이 마스크로 코와 입을 잘 가렸는지 확인하게 된다. 그러다 그 시인이 생각난다. 지나간 이 중에, 그가 있지 않았을까. 마스크보다, 마스크 밖으로 드러낸 것과 감춘 것을 살펴야 하지 않았을까. 왠지 코로나19가 만든 마스크 풍경이, 조금은 달라 보이는 듯하다.
포스트 코로나, 도시의 안녕을 묻다
새로운 바이러스가 발견된 뒤로부터 열 달이 지났다. 예상을 훨씬 뛰어넘는 전파 속도만큼 변화 또한 신속히 일어났다. 옆자리 동료와 모니터를 사이에 두고 회의를 하는 모습이나 투명 가림막이 세워진 초등학교의 책상, 마스크 낀 수많은 사람이 지하철 계단을 오르내리는 풍경은 재난 영화의 한 장면이 아닌, 일상을 유지하는 안온한 풍경이 됐다. 팬데믹은 분야를 막론하고 사회 전반을 뒤흔들었다. 하루아침에 산업의 중심으로 급부상한 분야가 있는가 하면, 어쩌면 영영 회복을 기대할 수 없는 분야도 생겼다. 세계 곳곳에서 진단과 분석, 예측이 넘쳐났다. 일부 섣부른 결론과 어설픈 예측, 유행에 편승해 목소리를 높이려는 주장은 바이러스에 대한 막연한 공포로 지친 우리에게 피로감을 더하기도 했다. 코로나19는 사스SARS나 메르스MERS와 같이 일시적 유행병에 그칠까, 아니면 역사의 중대한 변곡점으로 남을까. 아직 판단하긴 이르다. 효과적인 백신과 치료제가 개발되면 지금의 활발한 포스트 코로나 논의가 무색하게 금세 모든 것이 예전으로 돌아갈지도 모른다. 반면 페스트나 콜레라가 의료 기술의 집약적 발전을 가져오고 공중위생과 도시계획의 새로운 토대를 닦은 것처럼, 코로나19 발병이 기술과 공간의 실제적 변화를 촉발하는 지점으로 기록될 수도 있다. 팬데믹 이후의 도시를 구체적으로 예측하기보다 과거와 현재, 미래를 다양한 시각으로 바라보기로 했다. 19명의 필자는 관찰, 진단, 분석, 예측 등 다채로운 관점으로 도시를 살핀다. 개인의 일상을 탐구하거나, 실현 가능성을 담보할 수 없는 과감한 상상을 펼치는가 하면, 도시 공간의 새로운 가능성을 발굴하기도 하고, 회의 가득한 눈으로 현 대응책의 한계를 일깨우기도 한다. 더불어 팬데믹에 발 빠르게 대응한 도시공원의 모습과 다양한 공모전의 아이디어를 함께 실었다. 지면에 실린 이야기가 혼란스러운 상황을 좀 더 담담히 바라보게 하고, 소란 가운데 놓치는 중요한 것들을 알게 해주길 바란다. 무엇보다 이번 특집은 팬데믹 한가운데 서 있는 당신에게 전하는 안부이기도 하다. 언제 어떤 경로로 감염될지 모르는 무형의 바이러스에 그저 최선을 다해 손을 씻고 마스크를 쓰는 개개인에게 특집 속 다양한 생각이 가벼운 소식처럼 닿길 바란다. 이 안부가 월간 『환경과조경』이 미처 다루지 못한 도시 구석구석, 공간과 사람들 틈으로 뻗어 나가 더 나은 메아리로 되돌아오길 기대한다. 코로나 일상 탐구 조경가 엄마의 직장 생활 _ 최지수 불안함과 성실함 사이 _ 김진환 코로나19 캠퍼스 일기 _ 정해준 기본을 되짚기, 문제를 잘게 쪼개기 _ 김연금 위드 코로나 시대의 공원 사용법 _ 서울숲컨서번시 보라매공원에 헬리콥터가 떴다 _ 서영애 뉴노멀 시티스케이프 별의 안녕을 묻다 _ 박승진 가상의 벽, 블루스케이프 _ 이홍인 호모 언택트 도시 _ 조용준 올인빌딩 _ 엘피스케이프 공원에서 정원으로 _ 오현주 불확실성의 뉴노멀 _ 이해인 도시, 새 출발 _ 홍주석 언택트와 온택트, 그래서 빅블러 _ 민성훈 도시의 안녕인가, 도시여 안녕인가 _ 김충호 빅데이터로 본 코로나 시대의 도시 서울 _ 김세훈 코로나와 교통의 미래 _ 황기연 재난 완충 지대, 공원의 가치 _ 신명진 코로나 시대의 생활권 도시 _ 모종린 미래는 이미 과거가 되었다 _ 신명진 더 읽을거리, 더 볼거리 _ 편집부 팬데믹, 공원 풍경 _ 유청오
[포스트 코로나, 도시의 안녕을 묻다] 조경가 엄마의 직장 생활
샌프란시스코.하루의 일정을 알리는 슬랙Slack메시지가 도착했다.구글 캘린더로 미팅 일정을 확인하고 밤새 지구 반대편에서 온 이메일을 훑어본다.간단히 아침 요가를 하고 아이의 도시락과 아침을 준비한 뒤 출퇴근 시간을 아껴 조금 이른 시간 일과를 시작한다. 6:00 am 나는 초고층 빌딩으로 유명한 대형 건축 사무소 SOM(Skidmore, Owings & Merrill)의 오픈스페이스 프랙티스 팀에서 조경가로 일한다. 한창 진행 중인 일은 뉴욕의 건축 팀과 협업하고 있는 서울의 프로젝트다. 몇 달 전부터 15명 정도 되는 뉴욕의 건축, 구조팀과 샌프란시스코의 오픈스페이스 팀원들이 서부보다 세 시간 빠른 동부 시간에 맞춰 매일 아침 프로젝트 미팅으로 만나고 있다. 신입 사원부터 파트너까지 한 화면에 모여 디자인 진행 상황을 발표하고 리뷰하며 자유롭게 의견을 주고받는다. 긴장과 열정으로 시작하는 아침은 이제 익숙한 일상이 됐다. 8:00 am 코로나19로 인한 재택근무가 시작되기 전에도 샌프란시스코, 시카고, 뉴욕, LA, 워싱턴 DC의 지사와 런던, 상해, 홍콩 등 전 세계의 동료와 같이 일해왔기에 원격으로 업무를 조정하고 진행하는 것이 완전히 새로운 방식은 아니다. 달라진 점이 있다면 같은 오피스에 있는 팀원과도 원격으로 의사소통을 해야 한다는 점과 클라이언트 미팅도 모두 화상으로 이루어진다는 점이다. 미팅 횟수와 시간이 점점 늘어나면서 의사소통, 협의, 신뢰의 중요성이 더욱 강조되고 있는 요즘이다...(중략) * 환경과조경 390호(2020년 10월호) 수록본 일부 최지수는 서울대학교 조경학과를 졸업하고 펜실베이니아 대학교에서 조경학 석사 학위를 받았다. 에이컴(AECOM), 하그리브스 어소시에이츠(Hargreaves Associates, 현 Hargreaves Jones)를 거쳐 SOM에서 조경 설계를 지속하고 있다. 건축, 도시, 구조, 인테리어 등 다양한 분야와 협업해 조경가의 역할을 유연하게 정립하고자 한다. 더불어 아이와 함께하는 제3의 공간에 대한 관심이 많아 「시소(Seesaw)」의 해외 특파원으로 활동하며 브런치에 정기적으로 글을 소개하고 있다. brunch.co.kr/@playwithaina
[포스트 코로나, 도시의 안녕을 묻다] 불안함과 성실함 사이
오늘도 확진자 수가 200명을 넘었다. 3주 넘도록 이런 상황이 지속되니 추가 확진자 수를 확인하는 것이 더는 무의미해 보인다. 코로나19 유행 초기에는 엄습하는 불안감에 수시로 확진자 수를 헤아리는 데 많은 시간을 쏟았다. 아마도 생전 처음 겪는 일에 반쯤 패닉 상태였던 듯하다. 불안도 계속되면 익숙해지는지 지금은 그 수가 몇 백이 되어도 아무런 감흥이 없다. 올봄의 경험이 떠오른다. 나는 사무실을 떠나 선정릉에 있는 합사에 파견을 나가 있었다. 설계사무소에서 연차가 어느 정도 쌓이면 합사 파견 자체는 그다지 낯선 경험이 아니다. 돌이켜보면 일 년에 한두 번은 합사에서 일을 했다. 사실 설계사무소 직원 대부분은 합사 파견을 별로 반기지 않는다. 싫어한다고 해야 정확할 것이다. 짧은 시일 안에 결과물을 만들어야 하기에 야근도 많고 주말 출근도 다반사이기 때문이다. 그 반면 내게 합사는 별다른 감정을 불러일으키지 않는다. 장소만 바뀔 뿐 일하는 것은 어디서든 매한가지라는 생각이다. 하지만 지난봄은 달랐다...(중략) * 환경과조경 390호(2020년 10월호) 수록본 일부 김진환은 올해로 7년차가 된 설계 노동자다. 서울대학교 학부와 석사 과정에서 조경을 전공했고, 라이브스케이프와 CA조경기술사사무소를 거쳐 그룹한 어소시에이트에서 실무 경력을 쌓고 있다. 조경 외 다양한 분야의 경계를 곁눈질하며 서로 상충하는 것들의 이접을 통한 창발적 생성에 주목한다. 다양한 매체에 호기심이 많으며 특히 인쇄된 활자 묶음에 관심이 많다. 틈만 나면 책을 사 모으지만 정작 읽은 책은 얼마 되지 않는다.
[포스트 코로나, 도시의 안녕을 묻다] 코로나19 캠퍼스 일기
1월 20일, 국내 첫 확진자 발생. 위기 경보 단계가 ‘경계’로 상향되고, 일주일 뒤 대학 본부는 교수들과 학생들에게 중국 여행 취소나 연기를 부탁한다. 국제 뉴스에서나 보던 바이러스가 한국에 들어왔다니 교내에 긴장감이 돌기 시작한다. 소금물 가글과 마늘 섭취 등의 민간요법, 코로나는 더위에 약하다는 뉴스가 긴장을 이완시킨다. ‘대프리카’에 사는 것이 위로되는 순간이다. 오히려 달성군 도시경관과와 진행하기로 한 3학년 스튜디오 수업 준비가 더 걱정이다. 겨울방학 강의실에서 조경기사와 공모전 준비에 한창인 학생들과 2주 연기된 개강과 한 주 짧아진 방학을 안타까워한다. 이 또한 지나가리라. 2월 18일, 서른한 번째 확진자 발생. 가벼운 감기 정도로 생각했던 바이러스는 컬트 종교를 숙주 삼아 지역 사회를 초토화했다. 3월 8일 기준으로 대구·경북 지역에서만 6,100명의 확진자가 발생한다. 조경기사 취득 캠프부터 직격탄을 맞았다. 습관처럼 몇몇 학생이 강의실을 서성인다. 모든 것이 정지한 유령 도시를 나홀로 헤쳐온 무용담을 나누고 있다. 멀찌감치 그들의 이름을 부르고 새 학기가 시작되면 만나자는 위로와 함께 그들을 돌려보낸다. 며칠 뒤 대학 내 감염 사례가 전달되고, 그사이 새로운 이름을 얻은 코로나19의 위기 상황은 심각 단계로 격상된다. 대학의 모든 출입구는 3주간 봉쇄됐다. 뉴노멀은 그렇게 시작됐다...(중략) * 환경과조경 390호(2020년 10월호) 수록본 일부 정해준은 고려대학교 환경생태공학부를 졸업하고, 짧은 실무 경험 후 영국 셰필드 대학교 조경학과에서 문화경관 연구로 박사 학위를 취득했다. 현재는 계명대학교 도시학부 생태조경학과에서 경관계획, 역사환경, 경관특성화 관련 강의와 연구를 하고 있다.
[포스트 코로나, 도시의 안녕을 묻다] 기본을 되짚기, 문제를 잘게 쪼개기
여러 자리에서 커뮤니티 디자인이나 어린이 놀이터와 관련해서 코로나19 시기나 그 이후에 어떻게 대처할지에 관한 질문을 많이 받는다. 매번 잘 모르겠다고 대답하면 상대방은 ‘당신은 전문가잖아요’라는 듯한 눈빛으로 쳐다본다. 눈길을 피하며 “앞으로 고민해봐야죠”라고 답하지만 뭘 어디서부터 고민해야 하는지 어렵기만 하다. 코로나19 사태는 종식될 기미가 보이지 않고, 대안을 제시하지 못하는 나는 너무 게으른가라는 자기반성의 나날이 이어지던 중, 뜻밖에 위안의 말을 듣게 되었다. 나보다 더 절실하게 답을 찾으며 미술관을 운영하는 지인이 지친 듯 이렇게 말했다. “지금 누가 미래를 예측할 수 있고, 대안을 이야기할 수 있겠어요. 명쾌한 답을 내놓는 사람이 있다면 사기꾼 아닐까요?” 단순히 오프라인에서 하던 일을 온라인으로 기계적으로 옮기는 것도, 마스크를 쓰고 오프라인 활동을 그대로 진행하는 것도 답은 아니다. 온라인으로 옮기는 순간 의미 없어지는 활동도 있고, 위험을 감수하더라도 오프라인에서 지속해야 할 것들이 있다. 또 온라인으로 옮겼을 때 생기는 한계도 많다...(중략) 김연금은 서울 약수동에서 조경작업소 울을 운영하고 있다. 저서로 『커뮤니티 디자인을 하다』(공저, 2009, 나무도시), 『소통으로 장소만들기』(2009, 한국학술정보), 『우연한 풍경은 없다』(2011, 나무도시)가 있다. 엮은 책으로는 『이어 쓰는 조경학개론』(2020, 한숲)이 있다.
[포스트 코로나, 도시의 안녕을 묻다] 위드 코로나 시대의 공원 사용법
멈추면 보이는 것들 대유행의 경고는 과장이 아니었다. 서로를 조심하며 거리를 두어야 하는 재난 상황이 지속되면서, 코로나19는 우리 도시가 얼마나 감염병에 취약한지 체감하게 했다. 학교, 도서관, 실내 체육 시설이 장기간 폐쇄되어 제 기능을 못하게 되면서 숨 돌릴 공간에 대한 목마름도 커졌다. 마음 편히 숨 쉬고 부족한 운동량도 채울 수 있는 오픈스페이스, 생활 반경 안의 공원이 이렇게 필요했던 적이 없었다. 거리두기 단계가 올라갈수록 실내 공간에 비해 비교적 안전한, 탁 트인 도시공원에 대한 시민들의 갈망이 커졌고, 나 홀로 또는 가족, 친구와 함께 서울숲을 찾는 사람들도 증가했다.1 공원은 이른 새벽은 물론 늦은 저녁 언제라도 갈 수 있는 헬스장이 되고, 아이와 함께 갈 수 있는 안전한 놀이터가 되었다. 시원한 나무 그늘 아래 테이블은 야외 사무실이 되었다. 한적한 은행나무 숲길, 수국길의 좁은 산책로를 홀로 거닐며 자연과 거리를 좁히는 사람들이 늘어났다...(중략) 각주 1. 5월 극성수기(1일~5일) 서울숲공원 유동 인구는 총 139,969명으로, 일평균 27,993명이 공원을 찾았다. 대중교통 기피 현상 때문에 평일에도 주차장은 연일 만차였다. 서울시 공공자전거 따릉이 설치 확대에 힘입어 이동 수단으로 자전거를 택한 사용자도 급증했다. 특히 예년에 비해 한강에서 유입되는 이용객이 늘어났다. * 환경과조경 390호(2020년 10월호) 수록본 일부 서울숲컨서번시는 서울그린트러스트의 서울숲공원 수탁 운영을 위한 전담 조직으로, 녹지 시설의 유지·관리 및 이용 프로그램의 기획·운영, 시민들과의 소통 업무를 책임진다. 공원이라는 공유 자산을 창조적으로 이용해 단순한 녹지 서비스 제공을 넘어 다양한 사회적 가치를 증진시키는 데 힘쓰고 있다.
[포스트 코로나, 도시의 안녕을 묻다] 보라매공원에 헬리콥터가 떴다
2020년 3월 25일 오후, 사무실에서 가까운 보라매공원을 둘러보러 갔다. 공원 입구에는 형형색색의 일년초가 하트 모양으로 심겨 있었다. 촌스러웠지만 사람들이 좋아하니 나도 좋았다. 공군사관학교가 이전한 자리에 생긴 보라매공원은 근처 동작구 신대방동 외에도 영등포구 신길동과 관악구 신림동, 구로구 구로동에 이르기까지 여러 동네 사람들의 명소다. 공원 중앙에는 사관학교 시절에 운동장으로 쓰던 넓은 잔디밭과 주변을 도는 순환로가 있다. 공원 시설 중에서 순환로는 사계절 내내 사람들이 가장 사랑하는 곳이다. 늦은 밤까지 떼 지어 걷는 모습을 멀리서 보면 기이해 보이기까지 한다. 그날도 모처럼 풀린 날씨에 사람들이 제법 많았다. 공원의 이른 봄 풍경 사진을 몇 장 찍고 발길을 돌리려는 순간, 하늘에서 헬리콥터 소리가 들렸다. 헬리콥터가 땅으로 점점 내려오면서 소리는 더 커졌고, 아직 잔디가 자라지 않은 맨땅의 흙이 사방으로 날리기 시작했다. 그러고 보니 이렇게 가까이에서 헬리콥터가 착륙하는 것을 보기는 처음이다. 소음이 엄청나게 컸고 먼지로 사방이 뿌옇게 변했다. 보라매병원 쪽에서 구급차가 요란한 삐뽀 소리를 내며 다가왔고 다른 편에는 소방차가 막 도착했다. 평화롭던 공원이 순식간에 뉴스에 나올 법한 풍경으로 변했다. 먼지 때문에 환자를 이송하는 장면을 정확히 볼 수 없었지만 어떤 상황인지는 짐작할 수 있었다...(중략) * 환경과조경 390호(2020년 10월호) 수록본 일부 서영애는 조경을 전공했고 서울 남산을 주제로 박사 학위를 받았다. 기술사사무소 이수 소장으로 일하고 도시경관연구회 보라(BoLA)에서 공부하며 연세대학교 겸임 교수로 학생들을 가르치고 있다. 좋은 사람들과 연대하며 오래 일하며 공부하고 싶다. 건강하게!
[포스트 코로나, 도시의 안녕을 묻다] 별의 안녕을 묻다
그저 작은 점에 불과할 뿐이야 한동안 컴퓨터의 배경화면으로 썼던 사진 한 장이 있다. 흐릿한 지평선 너머 밤하늘에 떠 있는 티끌 같은 점 하나. 화성 탐사선 큐리오시티(Curiosity)가 2013년 1월 31일 일몰 직후 촬영한 지구의 모습이다. 아름다운 블루 마블은 온데간데없고, 외로운 점 하나. 그래도 45억 년 동안 어림잡아 천억 명이 넘는 호모 사피엔스가 살다 갔는데, 그 찬란한 문명은 어디로 가고 고작 작은 점 하나에 불과하다. 그것도 가까운 이웃 행성인 화성에서 바라본 지구의 풍경이라니. 드넓은 대양과 대륙, 광활한 숲과 사막, 수많은 도시와 마을들, 모두가 결국은 하나의 작은 점으로 수렴되고 마는 것이니, 지구의 모든 존재는 어쩔 수 없는 운명 공동체다. 그 많은 나무들은 어디로 갔을까 강화된 거리두기 정책이 시행된 이후로 이동할 때 차를 이용하는 경우가 많아졌는데, 라디오 인터뷰 프로를 듣다가 어느 게스트의 설명에 귀가 쫑긋. “원래 지구에는 약 7조 그루의 나무가 있었대요, 그런데 지금은 그 절반이 사라졌어요.” 그렇구나. 물론 자연재해 같은 원인도 있었겠지만 사람들 때문에 사라진 나무들이 훨씬 많을 것이다. 어디 나무뿐이랴. 숲과 나무가 없어지니 터전을 잃은 동물들도 사라진 것이고, 그렇게 지구의 생태 균형이 깨진 것이다. 세계자연기금WWF의 최근 보고에 의하면 지난 50년 동안 전 세계 동물의 70%가 사라졌으며, 가장 큰 원인이 인간에 의한 서식지 침범이라고 한다. 지구를 살아 있는 생명체로 보는 가이아Gaia의 입장에서 보면, 호모 사피엔스는 지구에서 5만 년 동안이나 사라지지 않고 증식하고 있는 악성 바이러스가 아닐지. 숙주의 신체를 망가뜨림으로서 결국은 자신도 소멸하고 마는 코로나 바이러스처럼...(중략) 박승진은 성균관대학교와 서울대학교 환경대학원에서 조경설계를 공부했다. 조경설계사무소 서안에서 오랫동안 설계 실무를 했고, 2007년에 디자인 스튜디오 loci를 열었다. 한국예술종합학교 건축과 겸임교수로 조경학 관련 수업을 맡고 있다.
[포스트 코로나, 도시의 안녕을 묻다] 가상의 벽, 블루스케이프
2020년3월14일,여느 날과 같이 일을 하는 중에 회사로부터 이메일을 받았다.코로나 확산으로 록다운lockdown을 시작할 예정이니 이틀 안에 집에서 일할 수 있도록 준비하라는 통지였다. 일종의 해프닝 정도로 생각했기에 동료들과 웃으며 2주 뒤에 보자며 작별을 고했다. 6개월이 지난 지금까지도 재택근무를 하고 있을 줄은 꿈에도 몰랐다. 7월에 도래한 코로나 2차 확산으로 멜버른 오피스의 직원들은 연말까지도 회사로 복귀하지 못할 것으로 점쳐지고 있다. 회사는 그동안 어떤 변화를 맞이했을까 내가 근무하는 하셀(Hassell)의 멜버른 본사는 록다운을 기회 삼아 오래전부터 계획했으나 쉽사리 시행하지 못했던 인테리어 리모델링을 단행했다. 정신적 스트레스를 호소할 직원들을 위해 상담팀을 꾸리고 어떤 문제든 털어놓기를 독려하는 한편, 필라테스, 요가 등의 화상 프로그램도 운영하기 시작했다. 팀원 간의 유대를 유지하기 위해 주·월간 화상 팀 미팅을 진행하는데 각종 음료와 간식거리를 집으로 배송해주고 코미디언을 고용해 방송을 중계하는 등 사기 진작을 위해 심혈을 기울이고 있다. 하지만 록다운이 장기화되자 구조 조정을 감행할 수밖에 없었다. 사무실 운영, 마케팅, 비서직 등 재택근무 체제에서 역할이 현격히 축소된 이들, 계약직 디자이너들이 그 대상이 됐다. 조경팀에 갑작스레 인력 보충이 필요한 경우 새로운 사람을 고용하기보다는 건축, 인테리어팀에서 도움을 받거나 다른 스튜디오(하셀은 호주 5개 도시와 호주 외 5개 국가에 스튜디오가 있다)의 인력을 빌려오는 방안을 채택했다. 통상 다른 스튜디오에서 인력을 빌릴 때는 비행기, 숙소, 이동 시간 소모로 많은 부대 비용이 지출되기 마련인데 재택근무 시대에는 홍콩에서 일해도 멜버른에서 일하는 것과 별 차이가 없기에 추가 지출이 없어졌다. 스튜디오 간의 경계가 허물어지고 어디서 일하는지가 크게 중요치 않게 되었다...(중략) * 환경과조경 390호(2020년 10월호) 수록본 일부 이홍인은 호주 공인 조경가(RLA)다. 서울대학교 조경학과에서 학부와 석사를 마쳤다. 한국의 오피스박김, 호주의 맥그리거 콕샐(McGregor Coxall)에서 실무 경험을 쌓고, 현재 하셀(Hassell) 멜버른 오피스에서 BIM 모델링, 컴퓨테이셔널 디자인, 가상 현실 등 신기술을 조경 실무에 응용하는 직책을 맡고 있다.
[포스트 코로나, 도시의 안녕을 묻다] 호모 언택트 도시
코로나 시대의 건축, 도시, 조경 계획은 그 자체만으로 도시를 구제할 수 없다. 우리는 상업·업무 지구 중심으로 조직된 현대 도시 구조와 속도 중심으로 계획된 도로망이 코로나19와 같은 감염병으로부터 안전하지 못하다는 사실을 깨닫고 있다. 도시의 변화는 불가피하다. 물리적 인프라의 재편과 시스템 변화는 필연적이며, 학제 간 융합을 통해 공간을 구성하는 새로운 파라미터(parameter)들이 나타날 것이다. 포스트 코로나 시대 도시는 더욱 진화할 것이다. 코로나19로 인해 우리는 예상치 못한 호모 언택트(homo untact)의 삶을 이야기하고 경기 침체로 고통 받고 있지만, 현대 도시의 문제점을 해결하기 위한 새로운 도시 공간에 대한 공감대를 형성하고 있다. 상상해보자. 숲길 사이로 개인용 이동 수단을 타고 출근하는 사람들로 가득한 테헤란로를, 다양한 유닛의 발코니 정원과 개인 텃밭이 있는 한강변 아파트 단지를, 자동차와 차도가 사라지고 물과 숲으로 채워진광화문광장을, 순환형의 2호선 지하철 따라 달리는 공중 자전거 도로를. 코로나19 이후 우리는 더 나은 건강한 도시를 만나게 될 것이다. 그곳에 우리의 역할이 있다...(중략) * 환경과조경 390호(2020년 10월호) 수록본 일부 조용준은 서울시립대학교와 펜실베이니아 대학교에서 조경을 공부했다. CA조경기술사사무소 소장으로 최근 새로운 광화문광장 기본 및 실시설계와 세종대로 사람숲길 사업의 총괄을 맡고 있다. 조제라는 필명으로 아이디어 공모전 참여, 즉흥적인 기획, 조경 야화(夜話), 전시하지 않는 그래픽 작업 등 실무와 동떨어진 취미를 즐긴다.
[포스트 코로나, 도시의 안녕을 묻다] 올인빌딩
생물학자 에드워드 윌슨에 따르면 인간에게는 자연과 교류하려는 선천적 욕구가 있는데, 윌슨은 이를 바이오필리아biophilia(생명애, 녹색 갈증)라고 지칭한다. 첨단 도시에 사는 현대인조차도 정원, 가로수, 공원이라는 형태로 자연을 도시 속에 녹여내 일상에서 자연과 교감하고자 한다. 2019년 겨울의 끝, 코로나19는 순식간에 무서운 기세로 확산하며 모두에게서 봄을 빼앗고 평범한 일상을 이전과는 전혀 다르게 바꿨으며 사회적 거리두기 하에 사람뿐만 아니라 사람과 자연 사이에 보이지 않는 벽을 만들었다. 팬데믹이라는 유례없는 세계적 재난 상황에도 경제의 톱니바퀴만은 여전히 작동해야 했고, 그동안 착실히 쌓아온 IT 기술 발전이 이룩한 온라인에서의 효율적 연결을 통해 경제 활동은 그나마 유지될 수 있음이 증명됐다. 4차 산업혁명이라는 변화의 물결 위에서 순항하던 언택트 및 온라인 컨택트 사회라는 배는 코로나19라는 강력한 바람을 만나 반 강제적으로 도시의 깊숙한 곳까지 도달했다. 사회적 거리두기와 재택근무 정책은 집에서 사무, 운동, 쇼핑 등 자연과의 교감을 제외한 모든 것을 해결할 수 있는 ‘올인홈all in home’으로 주거 공간을 변화시키고 있다. 도시 속 자연은 이전과 같은 모습으로 문 밖에 있지만 사회는 더 이상 인간이 외부로 나가 자연과 만나는 일에 관대하지 않다...(중략) * 환경과조경 390호(2020년 10월호) 수록본 일부 조경 및 도시 디자인 사무소 엘피스케이프(LP SCAPE)는 여러 나라의 프로젝트 경험을 바탕으로 조경의 경계를 넘어 융복합 시대에 순응하며, 확장된 조경 디자인으로 미래 사회에 대응하는 공간을 구현한다. 공동 대표 이윤주, 박경의는 한국, 미국, 독일, 영국에서 수년간 실무 경험을 쌓아 다양한 문화에 대한 이해와 전문 지식을 활용한 세련되고 차별화된 디자인 노하우를 갖추고 있다. 이 지면에 실린 글과 그림은 박경의, 이윤주, 김호영이 공동으로 작업했다.
[포스트 코로나, 도시의 안녕을 묻다] 공원에서 정원으로
일상의 상실 8월 30일. 코로나19 사태가 시작된 뒤 처음으로 2.5단계 사회적 거리두기를 경험했다. 마치 연출된 것처럼 저녁 아홉 시가 되면 모든 식당과 커피숍이 문을 닫고, 번화가도 인적 드문 을씨년스러운 풍경으로 변했다. 비현실적 현실의 일상화라고 해야 할까. 당연하게 집 밖에서 했던 많은 활동을 집 안에서 해결해야 하는 상황이 되었다. 달라진 우리의 모습을 잘 보여주는 사례로 공원에서의 일상을 들 수 있다. 코로나19가 퍼지기 시작한 초기만 하더라도 밀폐된 공간을 벗어나 공원을 찾아 여가를 즐기는 시민들의 모습을 많이 볼 수 있었다. 자연에 둘러싸이고 탁 트여 있는 공원은 바이러스의 위험으로부터 안전할 것이라는 인식 때문이었던 것 같다. 그러나 이제 그 역시 안전하지 않다는 걸 깨닫게 되었고 사람들은 갈 곳을 잃은 듯하다. 코로나19 이후의 집 도시에 인구가 집중되면서 우리의 주거 공간은 주택 부족 현상을 해결하기 위해 효율이 높은 형태로 바뀌어 왔다. 그러나 이런 공간들은 사람들이 외부와 단절된 채 장시간 머물기에 적합한 형태는 아니다. 이번 코로나 사태로 강제적 고립 상태를 겪으며 집에 있는 시간이 많아지고 집에서 해야 하는 활동이 늘어났다...(중략) * 환경과조경 390호(2020년 10월호) 수록본 일부 오현주는 안마당더랩의 공동 소장이다. 경희대학교 환경조경디자인학과에서 조경을 전공하고,기술사사무소 렛과 그람디자인에서 실무 경험을 쌓았다. 2016년부터 조경 지식을 기반으로 외부 공간을 기획, 설계, 시공하는 디자인 작업실 안마당더랩을 이끌고 있다. 인간 중심의 공간을 디자인하고, 공간을 삶의 배경으로 만들고자 한다. 예술성과 대중성의 중간 지점에서 새로운 환경을 제안하는 것이 목표다.
[포스트 코로나, 도시의 안녕을 묻다] 불확실성의 뉴노멀
많은 사람이 코로나19 이전과 이후의 시대를 구분 짓고, 다시는 돌아오지 않을 21세기 벨 에포크를 이야기하는 걸 듣고 있으면, 우리 사회가 격동기를 지나고 있음을 실감한다. 하지만 주의 환기를 넘어 사람 질리게 하는 지자체별 재난 문자, 사려 없이 쏟아져 나오는 어설픈 코로나19 극복 방법과 기회주의적 기획을 보고 있다 보면, 지금의 유난이 과연 위기감에 대한 성찰에서 온 것이 맞는지 의심스러울 때가 있다. 코로나19 이후 엄청나게 생산, 소비되고 있는 소독제와 한강에 흩날리는 마스크 쓰레기를 보고 있으면 더더욱 그렇다.사회적 거리를 두는 등 새로운 생활 규칙으로 자리잡은 규범적 뉴노멀은 주변의 눈총 때문에라도 쉽게 따르지만, 담담한 마음으로 문제의 본질을 이해하고 불편을 감수하며 미래 대책으로서의 뉴노멀을 고민하는 것은 생각보다 쉽지 않음을 느낀다. 전염병과 환경 위기가 요구하는 뉴노멀의 ‘노멀’을 ‘외부 효과1가 대체로 내부화되어 형평성 있게 지속할 수 있는 균형 상태’ 또는 ‘그에 필요한 공간적 규범’으로 정의해 본다. 도시 공간이 앞으로 어떻게 변할지에 대한 예측은 아니지만, 유난스러운 호들갑을 떨쳐내고 차분하게 대책으로서의 뉴노멀 시티스케이프에 필요한 몇 가지 미래를 떠올려 본다...(중략) * 환경과조경 390호(2020년 10월호) 수록본 일부 이해인은 도시와 조경을 공부했고, 2015년부터 ‘설계를 통한 주창과 혁신’을 위해 노력하는 HLD를 이끌고 있다.
[포스트 코로나, 도시의 안녕을 묻다] 도시, 새 출발
사라지는 공간들 미세 먼지가 서울을 덮친 2019년, 우리는 무의식적으로 마시던 공기의 소중함을 자각하기 시작했다. 그리고 코로나19와 함께하는 2020년, 그동안 무심코 지나쳤던 동네 공간 하나하나가 눈에 들어온다. 오늘도 문을 열었다는 사실만으로도 새삼 고마울 따름이다. 코로나19로 인해 세계가 불안에 떨기 시작한 지 벌써 1년이 다 되어간다. 이제 습관적으로 마스크를 쓰고, 꽤 자연스럽게 원격으로 업무를 진행한다. 좀처럼 집 밖을 나가지 않고 슈퍼 대신 새벽 배송을, 식당 대신 배달 앱을, 백화점 대신 온라인 쇼핑몰을 찾는다. 그 결과 도시의 밀도는 빠르게 낮아지고 있다. 사람들을 피해 걸어야 했던 주요 도심지는 허무할 정도로 한산하고, 빼곡하던 상점들도 하나둘 비워져 임대 현수막이 그 자리를 대신하고 있다. 예상치 못한 혼란을 겪고 있는 우리 도시는 앞으로 어떻게 될까. 뉴스에서 매일 이야기하는 비대면 기술과 서비스만이 우리의 미래일까? 비대면 서비스가 지금의 시급한 문제를 일부 해결할 순 있겠지만 완벽한 대안이 될 수 있을까? 장기적인 시선으로 도시의 미래를 내다보고 더 건강한 도시를 만드는 방안을 고민할 때다. 비대면이라는 현상에 몰입하기보다 라이프스타일의 변화를 중심으로 오프라인의 방향성을 논의해 나가야 한다...(중략) * 환경과조경 390호(2020년 10월호) 수록본 일부 홍주석은 한양대학교 건축학과를 졸업하고 KAIST 대학원에서 문화기술학을 공부했다. 개성 있는 도시 콘텐츠가 자생할 수 있는 운영 시스템을 만들고자 어반플레이를 설립했다. ‘아는 동네’ 미디어와 ‘연희 걷다’ 등을 통해 동네 콘텐츠 발굴 및 육성에 힘쓰고 있으며, 연남동과 연희동을 기반으로 연남방앗간, 연남장, 연희회관, 연희대공원, 기록상점 등 여러 실험적인 공간을 기획해 운영하고 있다. 서울도시건축비엔날레 큐레이터, 한국공예·디자인문화진흥원 컨설턴트로 활동했다.
[포스트 코로나, 도시의 안녕을 묻다] 언택트와 온택트, 그래서 빅블러
전염병은 일종의 도시병이다. 병원체는 가까운 숙주를 노리고, 숙주는 도시에 모여 산다. 오설리번(Arthur O’Sullivan)은 도시화의 원인을 집적 경제에서 찾았다. 사람과 산업이 좁은 장소에 모이면 생산 비용이 낮아지는 현상을 일컫는 말이다. 그런데 주기적으로 찾아와 엄청난 비용을 유발하는 전염병을 계산에 포함시켜도 집적 경제가 유효한지는 잘 모르겠다. 특히 코로나19와 같은 팬데믹 앞에서 말이다. 21세기까지 와서 도시는 위기를 맞이한 걸까? 전염병에 맞서는 중요 수단으로 언택트(untact)가 강조되고 있다. 사실 언택트는 도시성의 포기와도 같다. 집적을 위해 모여 놓고 만나지 말자니? 그러나 지금 우리가 외치는 언택트는 과거의 그것과 다르다. 천연두나 흑사병이 창궐하던 예전의 도시에서 언택트는 멈춤이었다. 반면 지금의 도시에서 언택트는 지속이다. 온라인에서 만남이 이어지기 때문이다. 이를 온택트(ontact)라고 부르기도 한다. 보건 위생이 아닌 정보 통신의 발달에 힘입어 도시는 살아남을 것인가? 과거의 모든 전염병이 그랬던 것처럼 코로나19도 언젠가 잊히기를 바란다. 그러나 이전으로 돌아갈 수 없을 것이라는 주장도 만만치 않다. 암울하지만 언택트와 온택트가 일상이 된다면, 도시는 어떻게 변할까? 그래도 우리는 모여서 살 것이다. 도시가 살아남을 것이라는 말이다. 일상의 많은 부분을 온라인으로 해결하면서도, 채워지지 않는 집적의 효과를 향유하기 위해 기왕에 만들어놓은 도시를 포기하지 않을 것이다. 그러나 도시의 모습은 많이 바뀔 것이다. 이와 관련해 인구 밀도, 건물의 기능, 오픈스페이스의 역할, 대중교통의 위상 등 많은 이야기가 오가고 있다. 그중 부동산의 관점에서 키워드를 하나 꼽으라면, 나는 ‘공간의 빅블러(big blur)’를 선택하겠다...(중략) * 환경과조경 390호(2020년 10월호) 수록본 일부 민성훈은 1994년 서울대학교 조경학과를 졸업하고 조경설계 서안에서 2년간 일했다. 그후 경영학(석사)과 부동산학(박사)을 공부하고 개발, 금융, 투자 등 부동산 분야에서 일했다. 2012년 수원대학교로 직장을 옮기기 전까지 가장 오래 가졌던 직업은 부동산 펀드 매니저다.
[포스트 코로나, 도시의 안녕을 묻다] 도시의 안녕인가, 도시여 안녕인가
2020년, 코로나19와 우리 어느덧 2020년 9월이다. 가을 하늘이 유독 더없이 맑고 파랗다. 연초부터 시작된 코로나19와 함께 올해의 3/4을 보냈다. 세계사 책에서나 나올 듯한 인류의 위기 한복판에서 마스크로 입을 가리고, 소독제로 손을 씻고, 서로에게서 멀어지며 지금껏 지내왔다. 이제 코로나19가 언제 끝날지 모른다는 불안감을 넘어 초연함과 함께 살아가는 것 같다. 다만 내가, 내 가족이, 그리고 내가 사랑하는 사람들이 백신이나 치료제가 나오기 전에 코로나19에 걸리지 않기만을 소망할 뿐이다. 안녕(安寧)이라는 말은 정말로 오묘하다. 본래 안녕은 개인적으로는 편안便安(comfort)을, 사회적으로는 평안平安(peace)을 뜻하는 말이다. 하지만 신기하게도 한국에서는 만나고 헤어질 때 모두 안녕이라는 말을 사용한다. 다시 말해, 안녕은 영어로 하자면 헬로우(hello)이자 굿바이(goodbye)인 것이다. 그렇다면 오늘날 코로나19로 위기에 처한 도시에 우리는 어떤 의미의 안녕이라는 말을 써야 할까? 오늘날의 도시는 일반적으로 사람이 많고, 건물이 많으며, 중심지 역할을 하는 공간이다. 이 같은 도시에 대해, 여전히 도시의 안녕hello을 위해 노력해야 할까. 아니면 이제 그만 도시에게 안녕(goodbye)을 고해야 할까? 익숙한 데자뷔 필자는 작년 한 해 동안 『환경과조경』에 “공간의 탄생, 1968~2018”을 연재했다. 그 대단원의 마무리로 대한민국 공간의 미래를 다뤘다. 당시 다가올 2020년을 내다보며, 초등학생 시절 본 공상 과학 애니메이션 ‘2020년 우주의 원더키디’(이하 원더키디)를 떠올리며 다음과 같은 말로 논의를 시작했다. “원더키디에서 서기 2020년은 인구의 폭발적 증가, 자원 고갈의 위기, 환경오염의 문제 등으로 인류가 새로운 행성을 탐사하는 시기로 묘사되었다.”1 그런데 정말 놀랍게도, 지난 9개월은 원더키디에서 그려진 지구의 모습과 크게 다르지 않은 것 같다. 어쩌면 이제 원더키디에서처럼 지구를 버리고 새로운 행성을 찾아야 할 때가 된지도 모르겠다. 하지만 이를 바로 현실화하기 어렵기 때문에 우리는 여전히 “도시의 안녕(peace)”과 “도시여 안녕(farewell)”에 대해 고민하고 있는지도 모른다. 코로나19와 직면한 우리는 매일 실시간 뉴스를 듣고, 하루에도 수차례 확진자 관련 문자 메시지를 받고 있다. 코로나19는 역사적으로 전례를 찾기 힘들 정도로 전 세계에 빠른 속도로 전파됐으며, 선진국과 후진국의 차이를 발견하기 힘들 정도로 전 세계에서 고르게 확진자와 사망자가 발생하고 있다. 특히 미국은 자타 공인 세계 최강대국임에도 불구하고, 이번 코로나19에 유독 취약한 모습을 보이고 있다. 코로나19 사망자의 이름으로 신문 1면을 도배한 2020년 5월 24일 「뉴욕타임즈」는 제2차 세계대전에 죽은 미군 전몰자의 2배를 상회하는 사망자 수를 여과 없이 보여주었다.2 마치 1981년 마야 린Maya Lin이 설계한 워싱턴 D.C.의 베트남 참전 용사 메모리얼Vietnam Veterans Memorial을 연상하게까지 한다. 하지만 더욱 놀라운 사실은 미국의 코로나19 사망자는 이후 계속 늘어서 현재는 20만 명에 이르고 있다는 점이다.3 ...(중략) 각주 정리 1.김충호, “대한민국 공간의 미래는”, 공간의 탄생, 1968~2018,『환경과조경』 2019년 12월호, pp.104~105. 2.조현지, “美, 코로나19 사망자 10만명 돌파… 제2차 세계대전전사자 2배 수준”, 「쿠키뉴스」 2020년 5월 28일. 3.‘COVID-19 Dashboard’, Johns Hopkins University,coronavirus.jhu.edu/map.html, 2020년 9월 10일 접속. * 환경과조경 390호(2020년 10월호) 수록본 일부 김충호는 서울시립대학교 도시공학과 도시설계 전공 교수다. 서울대학교 건축학과에서 학사와 석사를 마치고, 미국 워싱턴 대학교 도시설계·계획학과에서 박사 학위를 받았다. 삼우설계와 해안건축에서 실무 건축가로 일했으며, 미국의 펜실베이니아 대학교와 워싱턴 대학교, 중국의 쓰촨 대학교, 한국의 건축도시공간연구소에서 건축과 도시 분야의 교육과 연구를 했다. 인간, 사회, 자연에 대한 건축, 도시, 디자인의 새로운 해석과 현실적 대안을 꿈꾸고 있다.
[포스트 코로나, 도시의 안녕을 묻다] 빅데이터로 본 코로나 시대의 도시 서울
코로나19의 확산은 전 세계의 경제 활동과 일상 풍경을 뒤흔들고 있다. 견고해 보이던 사회 인프라와 의료·보건 체계는 감염병 창궐 앞에 때론 무기력했다. 여러 사람과 서비스를 끈끈하게 이어주던 도심 속 대중교통, 콜센터, 광장, 클럽, 어린이집, 종교 시설, 방문 판매 업체, 물류 센터는 바이러스 증식과 확산의 중심에 있었다. 특히 국내외 폭발적 감염 확산의 중심이 된 ‘슈퍼 전파 거점(super-spreading hotspots)’은 거의 예외 없이 다수의 사람이 밀접하게 접촉하고 교류하는 대도시에 있다. 지난 6월 중국 베이징에서 한 식료품점을 매개로 발생한 183명 집단 감염이나 국내 이태원발 감염이 7차 연결 고리를 따라 전국 65개 시군구 277명 확진자로 이어진 것이 그 예다. 최근 서울을 중심으로 일어난 감염 확산세가 심상치 않다. 8월 초까지 20~30명 이내였던 서울의 신규 확진자 수가 15일 150명, 29일 166명까지 치솟았다. 387명의 신규 확진자를 기록한 8월 23일에 서울과 경기도 내 확진 비율은 전국의 67.7%였다. 이러한 높은 비율은 서울의 사회·경제적 위상과도 비례한다. 전국 대학교의 19.2%, 법인 수의 31.2%, 법인세의 43.2%, 은행 예금의 51.4%, 항공·육상 운송업 매출의 54.4%가 서울시 한 곳에 집중되어 있다.1 대도시는 높은 밀도의 경제 활동으로 막대한 가치를 창출했지만 역설적이게도 인류 생존을 위협하는 바이러스에는 취약한 곳이 되고 말았다. 특히 사람을 매개로 퍼지는 전염병에 대해서는 더욱더 그러하다. 그동안 서울 어디에서 많은 확진자가 나왔고 그에 따른 도시 활동 위축은 어떻게 나타났을까? 국내 다른 도시보다 서울은 사람 간 접촉 시간이 길고, 대면 거리가 짧고, 고밀도 실내 공간이 많다. 이러한 맥락에서 코로나19 충격과 도시 행태에 대한 질문에 답하고자 올해 4월부터 서울대학교 환경대학원과 미국 스탠퍼드 대학교 연구진이 ‘코로나 스터디 그룹’을 만들었다.2 매주 비대면으로 만나 대중교통, 생활 인구, 고용·산업 세 분야를 탐구 중이다. 그중 포스트 코로나 시대의 대중교통과 생활 인구 관련 연구의 일부를 공유하고자 한다.3 집이냐 직장이냐 연구진이 가장 궁금했던 점 중 하나는 코로나19 확산에 따라 집과 일터에서 보내는 시간이 어떻게 변했는가다. 최근 ‘집콕 생활’, ‘랜선 라이프’, ‘비대면 근무’ 문화가 널리 확산했지만, 그 구체적인 모습은 국가마다 다르다. 사람들이 일터에서 보낸 시간을 가늠할 수 있는 지표로 한국, 일본, 스웨덴, 프랑스, 영국, 이탈리아 등 국가별 업무 지역에서 집계한 생활 인구데이터가 있다. 등록 인구와 달리 생활 인구는 조사 시점 당시 특정 영역에 있는 모든 사람의 수를 합한다. 그 사람이 일을 했든 잠을 자든 관계가 없기 때문에 현주 인구(de facto population)라고도 한다. 이를 이용해 코로나19 확산 전후의 일별 생활 인구 변화를 그래프로 그렸다. 코로나19 확산과 함께 6개 국가 모두에서 업무 지역 생활 인구가 감소했다. 하지만 나라별 감소폭은 큰 차이를 보였다. 주민 이동과 영업 활동 일체를 전면 봉쇄한 영국이나 락다운(lockdown)자체는 없었지만 탄력 근무가 자유롭고 몸이 아프면 진단서 없이도 2주간 병가가 가능한 근로자의 천국 스웨덴에서는 7월 말을 기준으로 평소 절반 이하의 인원만이 일터에서 관측되었다. 그에 반해 감염 위협에도 불구하고 열심히 일터로 돌아온 의지의 국민은 누구일까? 예상대로 한국인이다. 그래프를 보면 한국에서 5월 중순 이후 일터에 나온 생활 인구는 평상 수준을 거의 회복했다. 물론 여기서의 회복은 사무실 근무만이 아닌, 업무 지역 전반의 사회 활동이 코로나19 이전 수준으로 돌아왔다는 의미다...(중략) * 환경과조경 390호(2020년 10월호) 수록본 일부 김세훈은 서울대학교 건축학과와 미국 하버드 GSD를 졸업했다. 현재 서울대학교 환경대학원 교수로서 도시설계연구실(Urban Studies and Design Lab)을 이제승 교수와 함께 운영 중이고, 2018년 다섯 명의 동료와 어반랩 도시기획협동조합을 공동 창업했다. 『도시에서 도시를 찾다』(한숲, 2017) 외 다수의 저서가 있다.
[포스트 코로나, 도시의 안녕을 묻다] 코로나와 교통의 미래
2019년 12월 중국 우한에서 코로나19가 발생한 지 10개월이 다 되어간다. 올해 2월부터 본격화된 각국 정부의 격리 조치, 사회적 거리두기, 재택근무 정책으로 경제 활동과 글로벌 공급망이 급격히 위축되며 세계 경제에 빨간불이 켜졌다. 코로나19 사태는 감염병이 단순히 사람들의 건강과 생명을 해치는 데 그치지 않고 글로벌 경제에 심대한 타격을 준다는 점을 알게 해주었다. 감염으로 죽는 것보다 굶어 죽을 가능성이 더 크다는 공포가 저소득층과 저개발 국가를 중심으로 확산되고 있다. 대규모 감염병 발생 주기가 점차 짧아지고 있어 중장기적 대비가 필요하다. 코로나19로 인해 교통 부문에 어떠한 변화가 일어났으며 또 어떻게 변화할지 살피고, 포스트 코로나 시대에수행해야 할 과제를 제안하고자 한다. 코로나19 전후 도시와 교통의 변화 구글이 올해 5월 발표한 ‘코로나19 지역사회 이동성 보고서(COVID-19Community Mobility Report)’에 따르면,1 코로나19 발생 후 한국에서 상업 및 여가 활동, 대중교통 이용과 직장 주변 활동은 감소한 반면, 식료품 및 약국, 공원 방문, 주거 지역 활동은 증가했다. 사회적 거리두기의 영향으로 공원 방문은 최대 158%까지 증가했다. 한편 잡코리아와 알바몬의 조사에 따르면,2 국내 직장인 62%가 코로나19로 인해 재택근무를 경험했고 대기업일수록 그 비율이 높았다. 경험자의 71%는 코로나 종식 후에도 재택근무를 희망하는 것으로 조사됐고, 재택근무로 생산성이 유지 또는 향상됐다는 응답이 68%로 미국의 60%보다 높게 나타났다. 앱마인더(Appminder)리포트도 유사한 조사 결과를 보여주는데,3 코로나19 발생 초기 1~2월 사이에 배달과 온라인 쇼핑 앱의 사용은 증가한 반면 대중교통과 영화관 예매 앱의 사용은 감소했다. 한편 집에서 가족들과 머무는 시간이 길어지면서 식료품 배달, 동영상 콘텐츠 및 홈쇼핑 이용이 많이 늘었고, 라면같이 집에서 쉽게 요리할 수 있는 간편식, 전자 제품, 집수리 관련 DIY 제품의 수요는 크게 늘어난 것으로 조사됐다.4 한국교통연구원이 발표한 1월 3주 차와 3월 1주 차 사이 지역 간 교통량 조사 결과를 보면 항공 수송 실적이 80% 가까이 가장 많이 감소했고 고속버스도 70% 감소했다.5 반면 고속도로 교통량은 15% 정도 감소하는 데 그쳤다. 한때 항공 여객 수요가 너무 많이 감소해 항공사들이 줄도산할지 모른다는 우려도 있었지만, 화물 수송이 늘면서 경영의 어려움을 서서히 탈출하고 있다는 보도가 있었다. 자동차 통행량은 3월 첫째 주에 1월 대비 7.2% 감소해 대중교통에 비해 감소 폭이 상대적으로 많이 적었으며, 감염 우려로 인해 개인 교통수단을 선호한 결과로 추정된다. 서울시가 운영하는 공유 자전거 따릉이의 경우 전년 대비 70% 가깝게 이용이 증가했고, 전동 킥보드 이용자도 많이 증가한 것으로 나타났다. 서울시 나눔 차량 공유도 1월 대비 21% 증가했다.6 한편 BBC의 조사에 따르면,7 전 세계의 주요 도시의 교통량이 전년 대비 대부분 감소해 5월 일평균 혼잡이 예외 없이 대폭 줄었고 그 결과 대기 오염도 많이 개선된 것으로 나타났다. 도시와 교통의 미래 코로나19는 20세기 이후 인류가 경험한 가장 큰 위기 중 하나다. 좀처럼 사라지지 않는 재확산 공포와 2차 감염 우려의 확산으로 한치 앞을 내다보기 힘든 상황이다. 전례 없는 위기를 맞아 불확실성이 커지면서 과거 추세선에 따라 미래를 전망하는 것은 사실상 의미가 없다고 판단된다. 따라서 대안으로 세 가지 도시계획 시나리오에 기반해 교통의 미래를 전망한다...(중략) 각주 정리 1. 구글의 ‘코로나19 지역사회 이동성 보고서’, www.google.com/covid19/mobility, 2020년 5월 2일 접속. 2. 잡코리아X알바몬, ‘코로나19로 인한 재택근무현황’, 2020년 5월 2일. 3. 앱마인더 리포트, www.appminder.co.kr/reportList.html, 2020년 5월 6일 접속. 4. 황기연, “포스트 코로나 시대, 도시와 교통 환경 및 변화 전망”, 한국ITS학회 춘계학술발표회 발표 자료, 2020년 6월 15일. 5. 한국교통연구원, www.koti.re.kr/main/covid19, 2020년 5월 2일 접속. 6. 4번 글 7. BBC, “Traffic flows in selected cities”, 2020년 5월. * 환경과조경 390호(2020년 10월호) 수록본 일부 황기연은 홍익대학교 도시공학과 교수다. 연세대학교를 졸업하고 미국 오리건 대학교와 서던캘리포니아 대학교에서 도시계획학 석·박사 학위를 취득했다. 서울연구원 청계천복원지원연구단장, 한국교통연구원장, 홍익대학교 부총장을 역임했으며, 한국공학한림원 회원이다. 혼잡함, 사고, 대기 오염 없는 도시를 꿈꾸는 계획가다.
[포스트 코로나, 도시의 안녕을 묻다] 재난 완충 지대, 공원의 가치
‘포스트코로나, 생활권녹지체계·바람길 등 주목’(「라펜트」 2020년 5월 13일), ‘집콕에 오픈 공간 중요’(「서울경제」 2020년 6월 3일), ‘공원과 녹지에 대한 접근이 정신 건강에 중요한 이유’(Inner Self). 분야를 막론하고 대도시의 대표적 오픈스페이스인 공원이 팬데믹 극복을 위한 도시 공간적 디자인 해법임을 주장하고 있다. 근거가 없다고 볼 수도 없다. 구글이 매일 업데이트하는 ‘코로나19 지역사회 이동성 보고서(COVID-19 Community Mobility Report)’에 따르면 강도 높은 사회적 거리두기가 시행된 2020년 3월 22일부터 기준치 대비 공원 이용이 꾸준히 높게 나타나고 있다. 계절적, 정책적 변수를 감안하더라도 거주지나 기타 여가 시설에 비해 공원 이용률이 예전보다 높게 나타나고 있음은 분명하다. 최근 국내외 사례를 통해서도 도시공원이 팬데믹 사태에 지친 도시민의 많은 기대와 신뢰를 받고 있음을 확인할 수 있다. 공원, 공중 보건의 최전방 공원과 팬데믹의 실증적 인과 관계는 쉽게 답하기 어려운 질문이다. 코로나19와 공원 간에 직접적인 연관성이 있다기보다, 공원에 연관된 신체적·환경적 조건―비만율, 어린이 건강, 미세 먼지 등―이 전염병과 인과 관계에 놓여 있기 때문이다. 혹자는 팬데믹 상황에서 공원의 실질적 가치에 대한 물음을 표할 수도 있다. 하지만 주목할 것은 구글 자료와 같이 우리가 전염병에서 벗어나고자 공원으로 향하고 있다는 점이다. 물론 이런 상황은 놀랍지도 새롭지도 않다. 역사를 거슬러 보면 도시공원의 확산은 공중 보건 및 위생의 발전과 한 궤에 놓여 있었다. 공중 보건과 도시 경관의 형성을 연구한 조경가 사라 J.칼에 따르면, 19세기 전후 병원균으로 인한 도시 질병 확산의 설계적 해결책으로 제시된 것이 인구 밀도를 완화하고 공기를 여과하는 ‘도시의 허파로서 공원’ 개념이었다.1 거리 위생을 위한 도시 인프라스트럭처 및 행정 시스템이 이제 막 자리잡던 시기에, 전염병의 확산은 악취와 오염물의 온상인 과밀된 노동자 거주지와 연관되었다. 뉴욕 센트럴파크를 설계한 프레더릭 로 옴스테드는 특히 인구 과밀, 도시 위생, 공중 보건의 중요성을 강조했으며, 도시공원의 필요성을 역설했다. 교외로 나가 신선한 공기를 들이마시는 것이 사실상 불가능했던 일반 도시 노동자의 보건 복지 차원에서 도시공원의 가치를 강조한 것이다...(중략) * 환경과조경 390호(2020년 10월호) 수록본 일부 신명진은 뉴욕 대학교에서 미술사를 공부한 후 서울대학교 조경학과 통합설계·미학연구실에서 박사 과정을 밟고 있다. 근현대 조경을 연구하며 이와 관련된 번역과 집필 활동을 겸하고 있다.
[포스트 코로나, 도시의 안녕을 묻다] 코로나 시대의 생활권 도시
포스트 코로나 시대를 논하기가 무색할 정도로 코로나19가 잦아들 조짐이 보이지 않는다. 검사(testing), 추적(tracing), 치료(treatment)를 중심으로 하는 3T 방역으로 코로나19를 극복할 수 없다면 바이러스와 공존하는 방법을 심각하게 고민해봐야 한다. 공존에 필요한 과제 중 가장 시급한 것은 도시의 재구성이다. 코로나 시대의 도시는 어떻게 변해야 하는가? 코로나19 발생 이후 나타난 변화에서 도시 재구성의 방향을 찾아야 한다. 다행인 것은 바이러스가 ‘강요’하는 도시가 우리에게 전혀 새로운 도시가 아니라는 점이다. 선진국에서 도시의 지속 가능성과 공동체 존속을 위해 추진해 온 생활권 도시, 즉 보행이나 자전거만으로 일, 주거, 상업 공간으로 쉽게 이동할 수 있는 도시가 요구된다. 동네 중심의 일상 생활권 도시가 필요한 가장 큰 이유는 원거리 이동의 제한이다. 실제로 원거리 이동이 어려워지면서 일상이 변했다. 시간을 많이 보내는 장소가 오프라인 공간, 일터, 여행지에서 온라인, 집, 동네로 바뀌었다. 비대면의 필요성과 선호는 자연스럽게 온택트ontact(온라인을 통한 외부와의 연결)를 늘렸다. 재택근무가 활성화되고 외출을 자제하면서 홈택트hometact(집에서 보내는 시간과 가족과의 접촉)가 증가했다. 또 하나의 변화는 로컬택트localtact(지역 사회를 중심으로 한 여가 생활과 관계 형성)다. 방역을 지역 단위에서 수행하면서 지역 정부와 주민 간 접촉이 늘어났다. 멀리 갈 수 없으니 사는 동네에서 쇼핑과 여가를 즐기는 사람도 많아졌다. 언론은 온택트 시대의 도래를 선언하지만, 실생활에서는 홈택트와 로컬택트도 온택트만큼 활발해졌다. 온택트, 홈택트, 로컬택트의 동시적 부상은 무엇을 의미하는가? ...(중략) * 환경과조경 390호(2020년 10월호) 수록본 일부 모종린은 미국 코넬 대학교 경제학과를 졸업하고 스탠퍼드 대학교 경영대학원에서 박사 학위를 받았다. 텍사스 대학교 오스틴 캠퍼스에서 조교수를 역임하고 1996년부터 연세대학교 국제학대학원 교수로 재직 중이다. 주요 연구 분야는 경제발전론과 세계화이며, 2008년부터 대학 격차, 외국인 투자, 영어 교육, 이민, 지역 발전 등을 주제로 한국 사회의 다양성과 개방성 제고에 필요한 정책을 연구해 왔다. 저서로는 『한국발전론: 정치경제 불균형 극복의 동학』(2013), 『작은 도시 큰 기업』(2014), 『라이프스타일 도시』(2016), 『골목길 자본론』(2017) 등이 있다.
[포스트 코로나, 도시의 안녕을 묻다] 미래는 이미 과거가 되었다
코로나19의 영향력이 가장 두드러지게 드러난 분야 중 하나는 문화·예술이 아닐까 싶다. 21세기 들어 초연결성을 통해 비약적으로 확장한 현대미술 시장이 코로나19로 인한 이동 및 소통의 제한에 큰 영향을 받은 것은 어쩌면 당연한 일이다. 온갖 아트 페어와 수십, 수백의 갤러리가 문을 닫고 미래를 기약했다.1 미술관, 극장, 영화관, 콘서트홀 같은 장소는 다양한 형태와 방식의 예술이 관객에게 선보여지는, 즉 비로소 존재가 완성되는 지점이다. 코로나19는 이런 예술의 마지막 단계의 필수 요소인 관객을 사라지게 만들었고,2 따라서 문화·예술계가 이미 오랫동안 안고 있던 생존의 문제가 한 차원 심화되었다. 함께 뉴욕에서 미술사를 공부한 동기 상당수가 졸업 직후 지구촌 이곳저곳으로 흩어졌지만, 지금만큼 분리된 기분이 들었던 적이 없었다. 수십 년간 수백, 수천 명의 예술가와 문화기획자, 큐레이터, (어딘가 누군가의) 어시스턴트, 비평가와 예술 애호가가 만들어낸 미술 시장이 정말 한 번에 무너져 내릴 수 있는 것일까? 물론 미술 시장을 미술계와 같은 것으로 볼 수는 없다. 혹자는 포스트모더니즘 이후 예술과 일상의 벽이 상당 부분 허물어지고 예술의 형식이 사라진 것이나 다름없다고 할 수도 있다. 그럼에도 예술은 여전히 일상과 다른 무언가를 지니고 있다. 심지어 철학자 칸트는 이 부분에 대해 미적 쾌를 앞세우며 예술의 목적을 존재 그 자체에 두기도 하지 않았던가. 하지만 그보다는 좀 더 많은 것들이 예술의 근본에 녹아있지 않을까 생각한다. 특히 공중 보건과 복지가 가장 중요한 가치라는 점에 사회적 합의가 이루어진 현재, 인간 삶의 연장과 직접적인 관계가 없다고 여겨지는 분야에는 명분이 요구된다. 즉 예술은 쾌의 향유를 넘어 끝까지―인류의 끝까지― 가치와 목적을 고민해야만 그 존재 가치를 ‘인정’받을 수 있는 상태가 된 것이다. 문경원·전준호, 뉴스 프롬 노웨어 2012년 처음 발표되었을 때보다 현재 더 크게 다가오는 작품이 있다. 문경원과 전준호의 작업, ‘뉴스 프롬 노웨어(News from Nowhere)’다. 19세기 말에 윌리엄 모리스(William Morris)가 쓴 동명의 단편 소설을 오마주하고, 모리스의 소설이 지니고 있었던 목적을 재현한다. 하나의 완결적인 작품이 아닌, 확장 가능한 근미래적 세계관을 구축하고 이를 기반으로 각 분야의 전문가와 협업을 이어가는 장기 프로젝트이자, 미래에 대한 집단적collective 고민을 통해 현재를 반성한다. 아이디어와 생각의 공유에 그치지 않고, 홈페이지, 온라인 뉴스레터, 출판, 영상 등 다양한 형태가 결과물로 등장한다...(중략) 각주 정리 1. Andrew Dickson, “Bye bye, blockbusters: can the art world adapt to Covid-19?”, The Guardian 2020. 4. 20. www.theguardian.com/artanddesign/2020/apr/20/art-world coronavirus-pandemic-online-artists-galleries. 2. 박리디아, “코로나19에 빼앗긴 관객과 다시 만나길”, 「대한민국 정책브리핑」 2020년 5월 4일. * 환경과조경 390호(2020년 10월호) 수록본 일부 신명진은 뉴욕 대학교에서 미술사를 공부한 후 서울대학교 조경학과 통합설계·미학연구실에서 박사 과정을 밟고 있다.근현대 조경을 연구하며 이와 관련된 번역과 집필 활동을 겸하고 있다.
3기 신도시 기본구상 및 입체적 도시공간계획 국제공모 고양창릉, 부천대장 지구
지난 8월 31일, 한국토지주택공사LH가 ‘3기 신도시 기본구상 및 입체적 도시공간계획 국제공모’ 고양창릉, 부천대장 지구의 당선작을 발표했다. 이로써 3기 신도시 5개 지구(남양주 왕숙, 하남 교산, 인천 계양, 고양 창릉, 부천 대장)의 밑그림이 완성됐다. 이번 공모는 ‘더불어 발전하는 공존과 상생의 공생 도시’를 주제로 신도시의 공간 구조에 대한 아이디어와 입체적 도시를 실현할 수 있는 방안을 요구했다. 친환경, 교통 친화, 친육아, 풍부한 일자리를 갖춘 미래상에 부합하는 도시를 만드는 것이 주요 골자다. 기존의 평면적 계획 방식과 달리 지구 내 특화 구역을 설정하고, 이에 대한 입체적 도시 공간 계획을 수립한 점이 특징적이다. 다양한 아이디어를 수렴하기 위해 국제공모로 시행했으며, 약 1,500세대 규모의 ‘첫마을 시범사업 계획’을 계획안에 포함시켰다. 최우수작으로 선정된 팀에게는 ‘입체적 도시공간계획 용역’ 및 ‘첫마을 시범단지 설계 용역’의 우선 협상권을 부여한다. 또한 팀 내부인 중 1인은 총괄계획가 지위를 부여받아 지구계획 수립 시 도시, 환경 등 다른 분야의 총괄계획가와 함께 사업에 참여하게 된다. 고양창릉 지구는 서울 바로 옆 GTX_A가 지나는 자리에 위치하며, 약 330만m2의 면적이 6곳의 권역별 중앙공원 등 다양한 형태의 공원과 녹지로 조성된다. 특히 30기계화보병사단이 있던 부지는 서울숲 2배 규모의 도시숲으로 조성되며, 지구 중심을 관통하는 창릉천을 정비해 호수 공원을 함께 조성할 예정이다. 부천대장 지구는 김포공항 바로 아래에 자리한다. 신사업을 유치한 자족 용지와 자연과 문화가 어우러진 산업 여가 복합 도시를 목표로 한다. 문화, 생태 등을 주제로 한 4개의 테마 공원을 조성하고, 공원 내부에 복합 문화 센터를 배치해야 한다. 굴포천에는 캠핑장, 야외 공연장 등을 포함한 22만m2 규모의 수변 공원이 조성된다...(중략) 고양창릉 지구 최우수작 포용적 연결도시 해안종합건축사사무소 + 일로종합건축사사무소 + 수퍼매스 스튜디오(Supermass Studio) 부천대장 지구 최우수작 오픈 필드 시티Open Fields City 디에이그룹엔지니어링종합건축사사무소 + KCAP 아키텍츠 앤드 플래너스(KCAP Architects&Planners) 주관LH 대상지 고양창릉: 경기도 고양시 덕양구 창릉동 일대 부천대장: 경기도 부천시 오정구 대장동 일대 면적 고양창릉: 8,130,000m2 부천대장: 3,430,000m2 방식 공개공모 시상내역 최우수작(각 1점): 각 지구별 입체적 도시공간계획 수립 용역 및 첫마을 시범단지 설계용역 우선 협상권 / 입체적 도시공간계획 용역비 23억원(고양창릉), 13억원(부천대장) / 첫마을 시범단지 설계 용역비 59억원(고양창릉, 부천대장) 우수작(각 1점): 1억원 장려작(각 2점 이하): 7천만원 심사위원 이상대(경기연구원 선임연구위원, 도시) 한효덕(LH토지주택대학교, 도시) 김현수(고양창릉 지구, 단국대학교, 도시) 이제선(부천대장 지구, 연세대학교, 도시) 이규인(아주대학교, 건축) 유석연(서울시립대학교, 건축) 오승훈(경기대학교, 교통) 성종상(서울대학교, 조경) 박인권(예비심사위원, 서울대학교, 도시) * 환경과조경 390호(2020년 10월호) 수록본 일부
[3기 신도시 기본구상 및 입체적 도시공간계획 국제공모] 포용적 연결도시
신도시에 접근하는 방식 2011년 한국의 도시화율이 90%에 달했다. 그간 우리는 신도시를 만들기 위해 그린벨트를 해제하고 녹지를 훼손하고 바다를 매립해왔다. 계속해서 이 같은 자연 파괴를 불가피한 선택, 필요악으로 여겨야 할까. 신도시의 목표와 조성 방식에 대한 패러다임의 전환이 필요한 시점이다. 또한 뉴노멀을 맞이해 삶의 방식을 새롭게 정의해야 한다. 이제까지 도시 생활의 범주는 밀집-실재-접촉이었고, 신도시는 확산과 성장에 초점을 맞추어 조성되었다. 뉴노멀을 맞이해 우리는 분산-가상-선택의 도시 생활에 적합하도록 공간을 교차적, 병행적으로활용해야 한다. 다양성, 선택 지속성, 재생의 관점으로 도시를 고민하고자 한다. 도시와 네트워킹하는 도시, 연접 지역과의 상생 대부분의 신도시는 빈 땅에 홀로 계획되었다. 하지만 가용지의 부족 때문에 앞으로의 신도시는 기존 도시 사이에 건설될 것이다. 고양창릉 지구는 택지 개발 지구, 기존 도심의 취락지와 녹지, 세계 문화유산과 접해 있다. 경계부의 선형 자체가 매우 불규칙해 ‘끼인 도시’의 형상을 띤다. 이처럼 파편화된 도시, 마을, 문화재 사이에서 때로는 중심이 되기도 하고 때로는 주변에 흡수되는, 인근 지역과 상호 작용하며 도시 내부의 분산된 거점들을 연결하는 ‘도시와 네트워킹하는 도시’를 만들고자 한다...(중략) * 환경과조경 390호(2020년 10월호) 수록본 일부
[3기 신도시 기본구상 및 입체적 도시공간계획 국제공모] 오픈 필드 시티
시간과 기억이 축적된 평야와 대지를 풍요롭게 하는 하천이 흐르는 부천대장 지구에 원지형의 생태적 특성인 물을 머금은 도시를 제안한다. 인접 도시와의 접점에 자연과 들판의 풍경을 담고, 기존 도심과의 관계 설정을 통해 자연과 삶, 놀이, 일이 공존하는 공생의 도시를 만들고자 한다. 고립된 들판에서 활기찬 도시로 부천대장 지구는 인천계양 지구, 서울, 부천 원도심의 중앙에 위치하지만 봉오대로, 벌말로에 의해 고립되어 있다. 미래를 위해 남겨둔 이 땅에 주변 지역과 소통하고 땅이 가진 생태적 가치를 존중하는 계획안을 수립해 차별화된 풍경을 만들고자 한다. 이를 위해 여섯 가지 과제를 설정했다. 첫째, 열린 도시를 만든다. 주변 도시와 함께 성장하도록 교통과 산업의 중심이 되는 도시를 계획한다. 둘째, 보행자 중심의 걷고 싶은 도시를 만든다. 1일 생활권을 형성하는 건강하고 활기찬 도시를 목표로 한다. 셋째, 주거, 녹지, 교육, 업무 등 다양한 용도가 복합되어 자족 기능을 갖춘 용도 복합 도시를 만든다. 넷째, 기반 시설을 지하화하고 첨단 기술을 도입해 미래를 위한 도시를 만든다. 다섯째, 기존의 물길과 땅의 패턴을 이용해 자연에 순응하는 생태 도시를 만든다. 여섯째, 도시의 접점을 고려한 스카이라인과 랜드마크를 계획해 다양한 풍경을 연출하는 경관 도시를 만든다. 입체적 도시 공간 토지 자원을 효율적으로 사용하기 위해 평면적 도시계획에서 탈피해 입체적 용도 복합을 꾀한다. 생활권 중심에 위치한 용도 복합 밴드는 직주 근접을 실현해 도심 공동화를 방지하고, 생활SOC가 결합된 주상 복합은 소생활권 커뮤니티의 중심이 된다. 복합 커뮤니티를 연결하는 에듀 카페트는 지역 사회가 소통하는 교류의 장이자 미래 확장 가능성을 가진 포용적 공간이 된다...(중략) * 환경과조경 390호(2020년 10월호) 수록본 일부
[비트로 상상하기, 픽셀로 그리기] 파라메트릭 플랜팅 I
수련 나는 식재(planting)를 디자인 교육으로 배워본 적이 한 번도 없다. 정말 웃긴 일, 지독하게 웃긴 일이야. 몇 년 전 사무실을 시작하고 태경이에게 처음 배웠다. 뭐 사실 배운 건 아니지. 그가 가르쳐준 적은 없으니까. 어깨너머로 배우고 렌더링해주면서 배우고(그림 1), 매일 아침 아이스 라테를 책상 위에 준비해놔야 했어. 주말에는 청계산을 등반해 폭포수를 맞으며 학명을 암기하곤 했지. 정말 웃긴 일이야, 무언가를 배운다는 것과 배우지 않는다는 것은. 지독하게 슬픈 사실이지. 인과의 측면에서 이보다 선행된 원인을 굳이 밝히자면, 이제 와서 다 무슨 소용이겠냐 만은, 수련 생활을 시작하기 전 실수로 배운 포레스트 팩(Forest Pack)이 결정적 빌미를 제공하고 만 거야. 알 수 없는 일이지, 내일의 인생이 어디로 흘러가게 될지는. 사실 지나고 보면 단 하루도 예측할 수 없었던 건데, 사람의 뇌라는 게 늘 편향된 착각을 만드니까. 교육받은 습관에 따라 논리적인 미래를 그리고, 다음날이 되면 기대가 어김없이 무너지지. 그래도 뭐 또 괜찮아지잖아. 무려 망각의 동물이니까. 정말 그럴듯한 핑계지. 어제까지만 해도 논리를 말하다가 마음대로 안 되니까 망각이라니. 핑계가 없으면 살 수 없다는 사실만이 부정할 수 없는 진실인 거야. 굳이 아이스 라테일 필요는 없는 거잖아. 실수 그래서 실수를 하고 만 거야. 하지만 실수를 하려고 실수를 하는 사람은 아무도 없겠지. 실수는 원하지 않은 미래의 다른 표현일 뿐이야. 포레스트 팩을 배우기로 결심한 건 단지 유치한 영웅 심리였어. 당시 아는 사람이 별로 없더라고. 그러니까 나중에 잘난 척을 실컷 할 수 있겠다 싶었지. 충분하지 않아? 사람들은 다 그래서 무언가를 하잖아. 그 외의 복잡한 얘기는 다 거짓말이야. 사람은 그렇게 될 수밖에 없어. 하지만 그 미래가 청계산으로 이어질 줄은 꿈에도 생각하지 못했지. 누구의 잘못도 아니야. 서로의 이해관계가, 각자의 호승심이, 어제의 바람과 오늘의 썩은 사과가 교차된 미래를 만든 것뿐이야. 통제할 수 없지. 바꿀 수도 없고. 식재를 렌더링 플러그인에서 시작해 배울 줄 누가 알았겠어. 그렇다고 세상이 달라지진 않았어. 나도 달라지지 않았고, 태경이도 여전하지. 모두가 환상과 망각 사이에서 전전긍긍할 뿐이지. 그렇지만 얘기해야 할 거야, 포레스트 팩의 과거와 미래에 대해. 인지하고 있다고 도망칠 수 있는 건 아니니까. 마음먹은 대로 할 수 있는 사람은 아무도 없잖아. 그럴 수 있다면 마음을 왜 먹겠어. 잘 안 되는 거겠지. 얘기하지 않고는 참을 수 없는 정신적 결핍에 오갈 데가 없겠지. 다 털어놔야겠어. 망설인다고 누가 이해해 주는 것도 아니잖아. 맥스 생태계 포레스트 팩(그림 2, 3)이 뭐 그렇다고 대단한 프로그램은 아니지만, 조금 다른 영역이라고 봐야 돼. 건축 프로그램이 아니거든. 뭐 그렇다고 할 수는 있지만, 지금까지 말해온 브이레이나 루미온 같은 것들과는 분명히 결이 다르지. 나도 여기서부터 조금 너무 나갔다는 느낌이 들긴 했어. 그런데 나란 인간은 어쩔 수 없어. 그만큼의 결핍이 무언가의 과장으로 이어진 걸 테니까. 인과율이지. 그래서 왜 또 이렇게 질질 끌고 있는 거냐면 3ds맥스 시장의 맥락에 대해 먼저 설명해야 하기 때문이야. 나는 이제 맥락의 노예가 되고 말았어. 설계 교육의 부작용이지. 맥락이 없으면 아마 치킨도 먹을 수 없을 거야. 건축계가 캐드, 스케치업, 라이노, 브이레이와 루미온, 그래스호퍼, 레빗 등의 미디어와 함께 발전해왔다면, 3ds맥스와 마야Maya는 게임과 애니메이션, CG 영화의 세계에 있었어. 이 둘은 근본적으로 다른 관점에서 미디어를 상대해왔지. 건축에서는 어디까지나 중간 과정으로, 맥스의 세계에서는 최종 결과물로 말이지. 그리고 이 차이가 완전히 다른 시장 구조와 프로그램의 개발 방향을 만들어온 거야. 단적으로 건축에서는 컴퓨터 프로그램에 대해 그렇게 진지할 필요가 없었어. 요즘에는 좀 달라지고 있긴 하지만, 복합 학문이고 배워야 할 것도 많고 인문학과 시공 결과물 사이에 어색하게 껴 있었지. 하지만 맥스의 세계에서는 컴퓨터 그 자체가 전부잖아? 그래픽과 애니메이션이 최종 판매 제품이라고. 따라서 처음부터 제대로 프로그램 교육을 받지. 아마추어를 위한 프로그램은 필요가 없어. 개발자들이 대중적인 플랫폼에 대해 고민할 필요가 없다고. 극단적인 전문성만 추구하면 돼. 그래서 어렵지, 복잡하고. 소위 말해 프로페셔널 생태계만 존재하는 거야...(중략) *환경과조경390호(2020년 10월호)수록본 일부 나성진은 서울대학교와 하버드GSD에서 조경을 전공했다.한국의 디자인 엘,뉴욕의 발모리 어소시에이츠(Balmori Associates)와 제임스 코너 필드 오퍼레이션스(JCFO)에서 실무 경험을 쌓았고, West 8의 로테르담과 서울 지사를 오가며 용산공원 기본설계를 수행했다.한국,미국,유럽에서의 다양한 경험을 바탕으로 귀국 후 파트너들과 함께 얼라이브어스(ALIVEUS)라는 대안적 그룹을 열었다.
[공간잇기] 묵묵히 한곳을 지켜온 사람들
그는 늘 용산에 있었다 용산전자상가에서 각종 전자 제품의 부품 도급을 맡고 있는 박종승 사장은 적산 가옥이 즐비한 1960년대 용산 만초천 근방 골목의 어느 집에서 태어났다. 동네 형들을 따라 만초천에서 물장구치며 놀던 희미한 기억에서 시작되는 그의 추억은 늘 용산에 머물러 있다. 개구쟁이 유년 시절과 말썽쟁이 학창 시절을 거쳐 첫사랑, 첫 사업, 신혼집, 첫 아들 모두 용산과 함께했다. “용산에서의 기억 중 가장 인상 깊은 에피소드가 있나요?” 질문을 받자 그의 입가에 천진한 미소가 번진다. “있고말고요. 아주 많죠. 제 인생은 용산전자상가 터가 변해온 역사와 궤적을 같이 하는 거나 마찬가지에요.” 얼마 남지 않은 머리숱처럼 옅어진 기억이라도 또렷이 떠오르는 게 있다. 지금의 용산전자상가 자리에 만초천이 흐르고 바로 옆에 청과물 시장이 있었을 때, 어머니 치맛자락을 잡고 장보러 다닌 게 어린 시절 기억의 시작이다. 김장철이면 배추를 몇백 포기씩 사다 이웃 아주머니들과 친척 어른들이 골목길에 자리잡고 모여 온 동네가 며칠 동안 시끌벅적했다. 그는 골목과 청과물시장을 부지런히 오가며 심부름을 했다. 어느 이웃집 아주머니 앞에 서건 입을 아, 하고 벌리면 육즙이 좌르르 흐르는 삶은 돼지고기를 싼 갓 만든 겉절이가 입안으로 들어왔다. 심부름값으로 최고였다. 평생 잊을 수 없는 인생 최고의 맛으로 남아 있다. 용산은 조선 시대부터 전국의 물자가 들어오고 나가는 서울의 주요 관문이었다. 일제 식민지기에는 일본인 거류지로 쓰여 적산 가옥이 많이 들어섰다. 용산전자상가 앞 한강을 향해 곧게 뻗은 도로에 있던 만초천은 지형을 따라 용산나루로 굽이굽이 흐르며 한반도와 만주를 연결하는 물류의 출발지로 역할했다. 1960년대부터 1970년대까지, 청과물시장은 전국에서 올라온 싱싱한 채소와 과일을 사고파는 사람들로 활기가 넘쳤다. 86 아시안게임과 88 서울올림픽 준비를 위한 도시정비계획의 일환으로 청과물 시장은 1983년 송파구 가락동으로 확장 이전했다. 1987년, 상인들이 삶의 터전을 옮겨 빈 자리에 당시로선 신산업인 컴퓨터와 각종 전자 제품을 취급하는 용산전자상가가 들어섰다. 1990년대의 메카, 용산전자상가 1990년대 전자 산업 유통의 중심지 용산전자상가는 크게 나진상가, 선인상가, 원효상가, 전자랜드, 터미널상가(현 서울드래곤시티 호텔)로 구분된다. 현재 약 21만m2의 부지에 4,000여개 점포가 있는 국내 최대의 전자상가다.1 조성 초기인 1980년대 후반에는 아시아 최고의 전자상가로 불렸으며, 이후 조립형 컴퓨터, 게임, 조명, 음향, 영상, 전자 제품 관련 각종 부품과 소프트웨어를 망라하는 도소매 및 유통 관련 업종이 30여 년 간 흥망성쇠를 거듭했다. 1970년대부터 1980년대 초반까지 가전 및 전자 제품 업종의 중심은 세운상가와 청계천변 상가였다. 1980년대 후반, 신산업으로 떠오른 퍼스널 컴퓨터PC에 관심이 많고 컴퓨터 조립 기술을 습득한 젊은 상인들, 전산원 같은 전문 교육 기관에서 소프트웨어 기술을 배운 청년들이 새로운 기회의 땅 용산에 둥지를 틀었다. 최고 전성기였던 1990년대부터 2000년대 초반까지, 소위 잘 나가던 용산전자상가는 조립 PC와 부품을 사려는 사람들과 새 전자 제품을 구매하려는 얼리어답터들의 핫 플레이스였다. 그러나 발 디딜 틈 없던 호황기에 터무니없는 가격으로 바가지를 씌우는 일부 상인들이 나타났고, 용팔이(용산+팔이)라는 신조어까지 생기며 부정적 인식이 커지기 시작했다. 이는 용산전자상가 전체의 이미지를 실추시키고 소비자의 신뢰를 떨어뜨리는 요인이 되어 다수의 성실한 상인들도 큰 타격을 입었다. 잘못 걸리면 바가지 쓴다는 주변 사람들의 평을 듣고 필자도 컴퓨터 좀 만질 줄 안다는 선배들과 팀을 이뤄 용산전자상가에 갔던 기억이 난다. 고품질의 다양한 전자 제품을 성능과 가격을 비교하며 살 수 있는 곳이 흔치 않았기에, 제품 비교 전시장으로 손색없는 용산전자상가에 사람들이 모일 수밖에 없었다. 늘 번영할 것 같던 용산전자상가는 2000년대 후반 이후 빠르게 변화하는 전자 산업의 생태계를 따라가지 못했고, 사람들의 발걸음도 뜸해지기 시작했다. 불황이 장기화되면서 하나둘 빈 점포가 늘어났다. 젊고 패기 넘치던 청년 상인들은 어느덧 머리 희끗한 중년의 아저씨들이 되었다. 시대가 요구하는 새로운 산업으로의 구조 전환에 성공하지 못해 쇠퇴한 용산전자상가를 다시 일으키려는 노력이 30년 넘게 한자리를 지켜온 토박이 상인들을 중심으로 일어나기 시작했다...(중략) * 환경과조경 390호(2020년 10월호) 수록본 일부 서준원은 열다섯 살부터 대학 졸업 후까지 뉴욕에서 약10년간 생활했다.파슨스 디자인 스쿨(Parsons School of Design)인테리어디자인학과에서 다양한 주거 공간에 대해 공부했고,한국인의 생활 환경에 대한 관심으로 서울대학교 환경대학원에서 석사를 마치고 박사를 수료했다. SOM뉴욕 지사, HLW한국 지사, GS건설,한옥문화원,서울대학교 환경계획연구소 등에서 약16년간 실내외 공간을 아우르는 디자이너이자 공간 연구자로 활동했다.한국인의 참다운 생활 환경을 위한 디자인의 본질에 대한 질문을 품고 다양성이 공존하는 도시 공간 연구를 위해 곳곳을 누비며‘공간 속 시간의 켜’를 발굴하는 작업을 긴 호흡으로 해오고 있다.
[북 스케이프] 정원도시 에도
이달에 있을 공원 아카이브 전시 자료를 뒤지다 보니 어느새 가을이다. 이렇게 많나 싶을 정도로 곳곳에서 나오는 남산공원 자료 중 선인장 조형물 하나가 연구진의 흥미를 끈다. 남산식물원 조성 초기 거대한 선인장 조형물이 입구를 장식했는데, 상세한 도면과 지침까지 발견된 것이다. 남산식물원에는 유독 선인장이 많았는데 식물원의 철학보다는 기증자의 취향이 반영된 결과다. 1971년 재일교포 김용진은 자신이 수집한 208종 1만7,800본의 선인장과 분재, 철쭉 등을 기증했고, 이는 그대로 남산식물원 2~4호관의 컬렉션이 되었다.1 그런데 왜 선인장이었을까? 김용진이 선인장을 수집하던 1950년대 후반에서 1960년대의 일본, 이른바 전후 쇼와 시대에 선인장이 크게 유행했다. 원예업자 와타나베 에이지(渡邊英次)가 접목 선인장을 만드는 데 성공한 이래, 선인장은 일본의 주력 원예 산업으로 발달했다. 한국은 1970년대 접목 선인장을 도입했고 이어 1980년대 세계 1위의 선인장 재배 국가가 되었다.2 남산식물원의 선인장 컬렉션, 그리고 집에 있던 『월간 원예』에 자주 등장하던 알록달록한 선인장에는 이러한 시대적 배경이 있었다. 쇼와 시대의 선인장 유행이 전후 부흥기 사람들의 변덕이려니 생각했다. 독특하고 희귀한 것을 수집해 남들의 부러움을 사는 것은 보편적인 욕망이니 말이다. 그런데 찾아보니 선인장은 꽤 오래전 일본에 전파되었다. 선인장은 일본어로 ‘사보텐(サボテン)’이라고 하는데, 이는 ‘비누’라는 뜻의 포르투갈어 ‘사방(sabao)’에서 유래한다. 에도 초기의 철학자이자 식물학자인 가이바라 에키켄(貝原益軒)의 책 『야마토 혼조(大和本草)』(1709)에서 처음 언급되었고, “기름때를 잘 씻는다”라고 기록되어 있다. 에도 시대에는 『본초강목本草綱目』을 토대로 한 『야마토 혼조』 외에도 여러 이론서가 출판되었다. 식물 자체를 다루는 책뿐 아니라 정원과 명승지를 안내하는 도서도 있었다. 18세기 초의 에도(오늘날의 도쿄)는 동시대 런던과 파리를 능가하는 대도시였다. 또 정원이 많기로 유명했는데, 이 넓고 깊은 원예 취미와 정원 문화는 어떻게 형성된 걸까? 이나가키 히데히로稲垣栄洋의 『식물도시 에도의 탄생』에서 실마리를 찾아볼 수 있다.3 ...(중략) 각주 정리 1. 방용식, “남산식물원 ‘역사로 남았다’”, 「시정일보」 2006년 10월 29일. 2. 박필만 외, “어서와! 선인장은 처음이지?”, 『RDA 인터레벵』 175호. 3. 이나가키 히데히로 저, 조홍민 역, 『식물도시 에도의 탄생』, 글항아리, 2017. * 환경과조경 390호(2020년 10월호) 수록본 일부 황주영은 이화여자대학교에서 불문학과 영문학을 공부하고,미술사학과에서 풍경화와 정원에 대한 연구로 석사 학위를 받았다.서울대학교 협동과정 조경학전공에서 19세기 후반 도시 공원의모더니티에 대한 연구로 박사 학위를 받은 후 파리 라빌레트 국립건축학교에서박사후 연수를 마쳤다. 미술과 조경의 경계를 넘나들며문화사적 관점에서 정원과 공원, 도시를 보는 일에 관심이 많으며,이와 관련된 강의와 집필, 번역을 한다.그러는 동안 수많은 책을 사거나 빌렸고, 그중 아주 일부를 읽었다.
림빈
쓸쓸한 놀이터 풍경 접근 금지 테이프를 두른 미끄럼틀, 더 이상 흔들리지 않는 그네, 적막에 휩싸인 놀이터는 이제 어디서나 만날 수 있는 쓸쓸한 풍경이 되었다. 코로나19 사태로 가장 고통받는 이들은 어린이가 아닐까. 답답함을 떨치기 위해 이따금 산이나 바다, 가까운 교외로 탈출을 감행할 수 있는 우리와 달리 그들은 누군가의 도움 없이 집밖을 나서기 어려우니 말이다. 재택근무와 화상 미팅 등을 통해 온라인의 위대함을 체험했지만, 놀이터에서 또래와 함께 어울리며 신체 활동을 하고 사회성을 기르는 경험을 대체하는 방법은 아직 마련되지 않은 듯 하다. 림빈 아이들의 웃음소리가 사라진 놀이터의 모습을 안타까워하던 독일의 디자이너가 바이러스 걱정 없이 뛰놀 수 있는 놀이터 디자인을 제안했다. 예술가 마르틴 빈더(Martin Binder)와 심리학자 클라우디오 리멜레(Claudio Rimmele)가 설계한 비대면 놀이터 ‘림빈(Rimbin)’이다. 림빈은 경계를 뜻하는 단어 림rim과 무언가를 담는 통을 의미하는 빈bin의 합성어다. 경계가 있는 통과 같은 개별 플랫폼을 아이들에게 제공해 안전하게 놀이를 즐기면서도 서로 소통할 수 있는 환경을 마련하고자 했다...(중략) * 환경과조경 390호(2020년 10월호) 수록본 일부
어서오시개, 미술관으로!
최근 몇 년 새 반려동물은 인간의 생활 반경 안으로 한층 깊숙이 들어왔다. 2019년 농림축산식품부의 통계에 따르면 한국의 반려동물 양육 인구는 약 591만 가구다. 한 가구를 2~3명으로 추산해도 1,500만 명에 이르는 수준이다. 이에 따라 반려동물 관련 산업과 법안이 발전하고, 동물과 사람이 함께 누릴 수 있는 장소가 늘어났다. 하지만 일반적으로 공적인 공간에 반려 동물을 동반하는 것은 허용되지 않는다. 인식의 간극 또한 크다. 반려인에게 반려동물은 친구이자 가족, 혹은 그 이상으로 깊은 유대 관계를 맺는 존재이지만 다른 이들에겐 한낱 동물에 지나지 않기 때문이다. 예술 공간은 이 같은 변화에 어떻게 반응할 수 있을까. 지난 9월, 국립현대미술관 서울관이 개를 위한 미술관으로 변모했다. ‘모두를 위한 미술관, 개를 위한 미술관’은 미술관의 확장성을 실험하는 전시다. 미술관이라는 지극히 인간 중심적 공간에서도 반려동물이 가족이자 사회 구성원으로 인정될 수 있는지, 나아가 미술관이 비인간을 얼마만큼 고려할 수 있을지 묻는다. 미술관에 개를 동반할 수 있게 했을 뿐 아니라 개들을 위한 전시 공간과 작품을 마련했다. 예술가 외에도 수의사, 법학자, 조경가, 건축가 등 다양한 전문가에게 자문하거나 이들을 전시에 직접 참여시켜 작품을 선보였다. 전시장 마당에 반려견 장애물 경주에서 영감을 얻은 조형물이 놓이고, 적록 색맹인 개의 특성을 고려한 작품이 전시되는 등 이색적인 경관이 연출됐다. ...(중략) * 환경과조경 390호(2020년 10월호) 수록본 일부
[편집자의 서재] 그 여름의 포지타노
‘[Web발신] 여행 떠나기 전 여권 확인은 필수!’ 여권 유효 기간 만료일을 알리는 외교부의 문자였다. 만료가 얼마 남지 않았다는 건 알고 있었지만 이런 시기에 이런 문자라니. 평소 같았으면 오래된 여권 속 못생긴 사진도 갈아치울 겸 서둘러 준비했을 테지만 이 시국에 여행은 무슨. 사람 속도 모르고 쓸데없이 성실하기만 한 알림 문자에 괜히 마음만 울적해졌다. 코로나19가 곧 끝날 거라 기대했던 여름까지만 해도 해외여행을 못 간다는 사실은 슬프지 않았다. 바이러스가 아니라도 떠날 수 없는 현실적 이유는 차고 넘쳤으니까. 당분간 남들 놀러 다니는 거 보면서 부러워할 일은 없겠거니 태연하게 넘겼는데, 0에 가까운 가능성이 막상 0이 되버리니 자꾸 아쉬운 말만 나온다. 여행 좀 많이 다녀 놓을 걸, 남들 다 간다는 유럽을 왜 나는 여태 안 갔나, 이대로 영영 아시아에서 발 한 번 못 떼보고 죽는 거 아냐. 전염병이 계속 유행하면 전세기나 외딴 섬에 개인 별장이 없는 다수의 사람들은 ‘겨우 기분만 내는 정도’로 만족해야 할지도 모른다. 얼마 전 대만의 한 여행사가 내놓은 가상 제주도 여행처럼 말이다. 이륙 전 공항에서 한복 체험을 하고 기내식으로는 치맥을 먹으며 제주도 상공 한 바퀴를 돌아 다시 대만으로 돌아가는 코스. 출발만 있고 도착은 없었다. 사람들은 환하게 웃고 있었지만 어쩐지 슬퍼 보였다. 계절이 변하고 해가 바뀌면 제자리로 돌아갈 거라는 기대는 시들해진 지 오래다. 혼자서 잘만 흘러가는 시간이 어느 때보다도 야속한 요즘, 언젠가는 갈 수 있겠지 믿고만 있던 여행지를 더 자주 생각하게 된다. 누구에게나 그런 곳이 있지 않나. 훌쩍 다녀올 수 있는 가깝고 편리한 곳 말고, 좀 더 멀리 있고 오래 있다 와야 해서 돈도 시간도 많이 드는 곳. 일이고 미래고 난 다 모르겠고 확 사라지고 싶을 때 생각나는 곳. 그러다가 ‘그래서 열심히 일해야 한다’는 바람직한(?) 결론으로 붕 뜬 마음을 제자리에 가져다 놓는 곳. 내게 포지타노는 그런 곳 중 하나다. 포지타노는 이탈리아 남쪽, 그러니까 장화 모양의 땅의 발등쯤에 해당하는 아말피 해안에 있는 마을 중 하나다. 밀라노, 로마, 피렌체, 나폴리 같은 이탈리아의 이름난 도시와 달리 죽기 전 꼭 봐야 하는 유적지나 화려한 건축물 같은 건 없다. 그래서 바쁜 단체 여행객들은 잠깐 들러 사진만 몇 방 찍고 가버리지만, “오래 머물러야 할 여행지는 절대 그 크기로 가늠할 수 없듯” 수많은 알록달록한 지붕의 건물이 겹겹이 붙어 있는 절벽과 그 아래 펼쳐진 옥색 해변은 여행자의 발을 단단히 묶어두기에 충분하다. 화가 파울 클레는 “세상에서 유일하게 수평축이 아닌 수직축으로 만들어진 곳”이라 일컬었고, 존 스타인벡은 포지타노에서의 여운을 “한껏 물려 버렸다(positano bites deep)”고 표현하기까지 했다. 세계 지리에 어두운 나는 『그 여름의 포지타노』1를 읽기 전까지 포지타노의 존재 자체도 몰랐다. 하지만 책을 덮고 난 뒤로 몇 년이 지난 지금까지 종종 그곳에 있는 나를 상상한다. 아쉬워서 한 번 더, 그렇게 예닐곱 번쯤 포지타노를 찾은 이의 이야기를 내 것인 양 되새기면서. “수없이 많은 각도와 눈높이를 허용해 주는 도시”를 시간 가는 줄 모르고 뜯어보다, 좁고 구불구불한 골목을 걷다 지칠 때쯤 지중해의 진짜배기 레몬으로 만든 시원한 셔벗 한입. 그림 같은 풍경 속에서 사사로운 생각만 하다 별 소득 없이 끝나는 하루. 내가 알던 내가 아니어도 괜찮은 곳은 누구에게나 필요하지 않나. 포지타노라면 지금보다 살이 얼마나 붙든 나이가 얼마든 부끄러워하지 않고, 사람 많은 해변에서 수영복을 입고 꺼끌꺼끌한 모래를 잔뜩 몸에 묻힌 채 폴폴거리며 나다닐 수 있을 것 같다. 본 조르노(buon giorno)라며 노래하듯 말하는 사람들 틈에서 싱겁기 짝이 없는 내 억양도 좀 더 명랑해지지 않을까. 포지타노가 아니어도 할 수 있는 것들이지만 그곳이어야만 하는 이유 또한 분명하다. 술, 향수, 디저트 온통 레몬으로 만들어진 것투성이와 진한 이탈리안 에스프레소가 있는 곳, 어딜 가도 햇빛이고 절벽이고 또 바다인 곳은 거기뿐이니까. 가지 않아도 갈 수 있고 만나지 않아도 만날 수 있는 방식에 살만하다 느끼면서도 왠지 모를 허전함은 커져만 간다. 그러니까 잊지 않고 조만간, 아직 먹어보지도 않은 레몬 셔벗의 맛을 떠올리며 여권 사진을 찍으러 갈 요량이다. 하루빨리 이 코로나 귀신이 모두에게서 물러가길 비는 마음으로. 지금이 영영 지금 같지는 않기를 바라는 염원을 담아, 하나 둘 셋 찰칵! 각주 1.맹지나, 『그 여름의 포지타노』, 브레인스토어, 2016.
[CODA] 집에서 잡지를 만들 수 있을까
팔뚝을 시원하게 드러낸 반소매부터, 가벼운 카디건, 도톰한 재킷까지 거리를 채운 각양각색의 옷차림을 보면 간절기의 한복판에 있음을 실감한다. 조금 이르지만, 지금부터 겨울까지를 크리스마스 시즌이라 부르기로 마음먹었다. 갑자기 확진자 수가 치솟아 소소한 가을 나들이를 취소해야 했던 나를 위한 위로다. 또 놀랍게도 크리스마스가 100일도 채 남지 않은 게 사실이니까. 본래 취미도 얄팍한 데다 나돌아다닐 수 없게 되며 일상이 단조로워진 탓일까, 요즘 이 짧은 지면을 채울 글감 찾는 게 쉽지가 않다. 그래서 지겹겠지만 양해를 구한다. 또 코로나19 이야기다. ‘포스트 코로나, 도시의 안녕을 묻다’의 기획은 꽤 오래전부터 틀을 그리기 시작해 바이러스 확산이 잦아들던 무렵에 완성됐다. 발 빠른 기획은 아니지만 오히려 사태를 차분히 바라볼 기회가 되지 않을까. 긴 글로는 현재를 담담히 진단하고, 짧은 글로 다른 이들의 일상과 산뜻한 상상력을 더한 미래를 엿보게 할 셈이었다. 의도가 잘 전달된 건지 터무니없이 파괴적이거나 비관적인 이야기 대신 친근하고 공감할 수 있는 글들이 도착했다. 그간 각종 심포지엄에서 오간 시끄러운 이야기가 머리와 마음을 지치게 만든 영향인지도 모르겠다. 나와 비슷하면서도 다른 이들이 보낸 매일을 살피다 보니 문득 상상력이 발동됐다. 만약 사회적 거리두기가 더욱심화된다면, 피치 못할 사정으로 재택근무를 해야 한다면, 과연 집에서도 잡지를 만들 수 있을까? 2020년 8월 20일, 회사 단톡방에 공지사항이 올라왔다. “집에서도 회사 네트워크에 접근할 수 있도록 준비가 되어 있습니다. 만일을 대비해 재택근무를 할 경우 예상되는 문제점을 미리 파악해주세요.” 곰곰이 따져보지도 않았는데 대뜸 불가능하다는 쪽으로 생각이 기운다. 우선, 업무에 적합한 환경이 갖춰져 있지 않다. 우리집에는 성능 좋은 데스크톱 PC가 없다. 에디터라 하면 보통 한글, 워드처럼 문서 작성 프로그램만 취급한다고 생각하는데, 사실 간단한 이미지 편집이나 도면 정리도 내 몫이다. 포토샵, 일러스트레이터 같이 무거운 프로그램을 동시에 돌릴 수 있는 사양 좋은 컴퓨터는 필수다. 모니터 두 대를 쓸 수 있으면 금상첨화. 그런데 회사에 있는 PC를 집으로 옮겨간다고 해도 당장 좁아터진 방 어디에 두어야 할지 막막하다. 다음은 편집의 문제다. 레이아웃을 고민하다 답이 나오지 않을 때면 디자이너의 자리 뒤에 모여 의논을 하곤 한다. 혼자 머리 싸매고 끙끙대는 것보다 즉석에서 사진 크기와 위치를 변경하며 대안을 실험해보면 무엇이 더 나은지 명쾌해진다. 하지만 디자이너와 에디터가 한 공간에 있지 않다면? 하루에도 수십 번씩 화면 공유 프로그램으로 의견을 나눠야 한다. 게다가 프로그램에 익숙해지려면 꽤 오랜 시간이 걸릴 테다. 교정도 쉽지 않다. 데이터에 불과했던 글과 사진이 종이 묶음으로 재탄생되기까지 편집부는 세 차례 정도의 교정을 진행한다. 이 과정은 모두 종이로 출력해 이루어지는데, 신기하게도 모니터에서는 보이지 않던 오탈자와 비문, 미묘하게 엇나간 편집의 문제점들이 종이에서는 발견된다. 각종 이미지와 사진의 색감을 함께 확인해야 하기 때문에 모두의 집에 같은 컨디션의 프린터가 있어야 하는 상황이 벌어진다. 교정지를 주고받는 일도 만만치 않게 복잡하다. 교정 부호가 빼곡한 교정지를 스캔해 다른 에디터에게 보내면, 이를 출력해 새로운 교정 사항을 덧붙이고 또다시 스캔해 디자이너에게 전달한다. 좀 번거로운 게 아니다. 마지막으로 뽑은 난제는 의사소통이다. 화상 프로그램을 사용해 편집 회의를 하는 모습을 상상하다가 우리가 주고받는 비언어적 표현이 얼마나 많은지 새삼 깨달았다. 잠깐의 침묵이나 미묘한 표정 변화로 전하는 완곡한 부정과 난감함. 같은 공간에 있을 때만 느낄 수 있는 분위기는 랜선을 타고 흐르지 못한다. 결국 방식을 따지기 전에 필요한 건, 자신의 의견에 대한 확신과 이를 불편함 없이 전할 수 있는 수평적 소통 문화가 아닐까. 소통 이야기가 나온 김에 화제를 돌리자면, 연재 꼭지 중 하나가 작은 변화를 시도했다. 눈치 채지 못했다면 이십여 쪽 전을 슬쩍 둘러보고 오면 된다. 예외적인 경우를 제외하고 문체를 통일하고 있는 지면에서 낯선 비격식체를 발견할 수 있을 것이다. 눈앞에서 말을 건네는 듯한 ‘해체’로 좀 더 친근하게 다가가고자 했는데 독자 여러분의 의견은 어떤지 궁금하다. 긍정이든 부정이든, 독자의 피드백은 키보드를 두드리는 데 지친 필자를 다시 일어서게 하는 힘이다.
[COMPANY] 에코앤휴먼
에코앤휴먼(Eco&Human)은 조경 설계부터 시공, 제품 생산까지 통합 솔루션을 제공하는 신생 기업이다. 2017년 조경 자재와 시설의 개발·생산을 전문으로 하는 에코앤휴먼과 시공 회사인 우리들조경, 두 법인으로 시작해 올해 초 합병을 마쳤다. 에코앤휴먼이 내세우는 핵심 기술 중 하나는 로프 개발이다. 이현석 대표(에코앤휴먼)는 수목 보호 시설을 연구·개발하는 과정에서 인위적 개입을 최소화하면서 숲을 더 안전하고 건강하게 이용할 수 있는 로프를 고안하게 됐다고 설명했다. 많은 등산로나 유아숲체험원 등의 안전 유도 및 체험 시설에 로프가 활용된다. 하지만 대부분의 로프가 흰색의 단일 색상이고 경관에 대한 고려 없이 설치된다. 이 경우 주변 환경과 어우러지지 못하고 야간 식별이 어려워 사고의 위험성을 높일 수 있다. 특히 기존의 PP(폴리프로필렌)로프는 자외선에 취약하고 이용 수명이 짧다. 설치 후 1년만 지나도 딱딱하게 굳고 부서져 분진이 발생한다. 분진이 옷에 묻을 뿐만 아니라 로프에서 떨어져 나온 미세한 파편이 손에 박히기도 한다. 무엇보다 분진이 호흡기를 통해 유입될 수 있기 때문에 아이들이 주로 이용하는 숲 체험 시설에 사용되면 큰 문제가 될 수 있다. 이 대표는 에코앤휴먼의 특허 기술이 적용된 ‘재귀반사 브레이드로프’는 일반 로프와 달리 시간이 지나도 분진이 발생하지 않는다고 설명했다. 브레이드로프는 반사 실과 고강력사, 면사, 폴리에스터 등을 팔삭기 직조 방식으로 가공한 특수 로프다. 빛을 받으면 광원으로 빛을 되돌려 보내는 재귀반사 기능을 갖춘 특수 실을 사용해 야간 안전 확보에 효과적이다. 어두운 실내나 물 속 등 다양한 장소에 사용할 수 있으며, 줄의 풀림이 없고 인장 강도도 우수하다. 이 브레이드로프를 활용해 세줄 다리 건너기, 외줄 오르기, 그물망 매달리기, 숲속 그네, 숲속 사다리, 두줄 타고 걷기, 대나무 오르기, 외줄 매달리기, 네트 오르기 등 다양한 유형의 숲 체험 시설을 개발했다. 에코앤휴먼은 산림청의 의뢰를 받아 유아숲체험원의 숲 체험 시설을 제작해 로프로 인해 발생하는 민원을 현저히 줄였다. 강원도 홍천군과 인제군의 국유림에도 브레이드로프를 공급하는 등 전국의 다양한 숲으로 영향력을 확대해가고 있다. 이현석 대표는 “일반적인 놀이 시설과 달리 숲속의 놀이 시설은 화려하고 인위적이기보다 주변 자연과 잘 어우러져야 한다”며, 친환경적이고 안전한 시설을 만들기 위해 노력하겠다고 이야기했다. TEL. 031-378-2360 WEB. www.econhuman.co.kr
[PRODUCT] 경관에 자연스럽게 녹아든 ‘자이안 프레임’
독특한 형태와 기능을 갖춘 다양한 퍼걸러가 출시되고 있지만, 기성품 가운데 시설물이 설치되는 주변 환경과 조화를 이루는 디자인을 찾기는 쉽지 않다. 반포센트럴자이에 마련된 ‘자이안 프레임Xian Frame’은 단지 내 조경 공간에 자연스럽게 녹아들게끔 설계된 복합 휴게 시설물이다. 원앤티에스의 환경 시설물 브랜드 모나디자인의 제품으로, 잔잔한 수면을 감상하는 쉼터를 제공하는 동시에 단지의 정체성을 부각하는 디자인이 특징적이다. 긴 회랑을 연상케 하는 퍼걸러 내부에는 카페 분위기를 내는 테이블과 의자, 편안한 라탄 소파, 주민 편의를 위한 유모차 거치대, 수변 감상에 재미를 더하는 스윙 벤치가 적절한 간격으로 놓였다. 퍼걸러의 프레임은 인접한 수경 시설의 가장자리와 어우러지며 공간에 통일성을 부여한다. 프레임은 위 혹은 정면에서 보면 나뭇잎의 잎맥을 닮았으며, 갈색과 흰색의 색상이 눈을 편안하게 하고 숲속에 온 듯한 느낌을 준다. 프레임을 따라 바닥에 목재 데크를 더해 차분한 분위기를 강조했으며, 강화 유리 벽으로 주변 경관을 향한 시야를 확보했다. TEL.070-4469-9147 WEB.monadesign.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