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사리스트
- [에디토리얼] 제도가 낳은 도시와 그 이면
- 2023년 1월부터 격월 연재한 유영수 교수(인천대학교 도시건축학과)의 ‘제도가 만든 도시’를 이번 호로 끝맺는다. 저자는 “도시는 인류가 만든 가장 복잡하고도 복합적이며 수많은 사람이 물리적으로나 비물리적으로 밀도 높게 개입한 공간적 장치”이므로, “결국 도시의 모습, 즉 도시 공간의 형태와 거기서 일어나는 공간적 현상은 사람에 의한 의식적 행위와 집합적 질서로 만들어진다”는 전제에서 출발했다. 그의 기획은 ‘제도’라는 도시의 “일반해가 우리 도시의 보편적인 모습에 어떻게 작동하고 있는지”(417호) 조회하고 비평하는 긴 여정이었다. 연재의 첫 글은 ‘도시의 제도는 정당한가’라는 물음으로 시작한다. 도시를 구성하는 “제도는 우리 사회가 합의한 가치 체계와 질서를 작동시키는 공간적 장치를 만”든다는 점에서 그것이 공공에게 이익을 가져올 때 정당성을 보장받는다. 하지만 “도시 제도는 특정 공간과 시간 속에서 절대적이기보다는 ‘사회적으로’ 정당하며, 종종 사회의 지배적 가치에만 예속된 도구가 되기 쉽다”(417호). 이러한 문제의식은 “제도의 목적을 달성하기 위한 수단적 측면에서 제도의 형식과 실행 방식이 가지는 한계를 우리 도시의 여러 사례를 통해 짚어보”는, 즉 ‘도시의 제도는 효율적인가’라는 질문으로 이어진다. 저자는 도시 제도를 통해 보편적 가치를 제시하고 사회적 동의를 얻기 위해 애쓰는 것 이상으로 “적절한 설계 기준과 다양한 규제의 방식 자체를 개발하는 노력”이 필요하며, “유연한 허용을 합리적으로 허용하고 그러한 허용에 대한 사회적 신뢰를 쌓는 것”이 중요하다고 말한다(419호). 우리는 도시에서 제도가 결정하는 공간의 ‘크기’에 묶여 살아간다. 저자는 “제도가 규정하는 크기 제한의 의미를 곱씹”으면서 그 크기―특히 면적과 높이―를 넘어서고자 하는 도시의 열망을 살피고, 작은 도시 조직과 형태에 더 가혹한 제도의 불공정성에 문제를 제기한다(421호). 그는 ‘크기’의 쟁점을 인구 감소에 따른 축소도시 문제와도 연결한다. “감소한 인구에 맞춰 도시의 크기를 적정한 수준으로” 줄여야 하지만, “성장과 달리 축소에는 상당한 저항이 있을 수밖에 없다.” 이 과정에서 중요한 점은 도시를 줄이더라도 “도시의 삶을 적정 수준으로 유지하”게 하는 것, 즉 “자율주행, AI 로봇 등 발전하고 있는 여러 가지 새로운 기술을 비롯해 도시 서비스를 제공하는 다양한 방법을 찾는 것”이다(423호). 연재는 제도가 규정하는 ‘도시의 비움’을 되묻는다. 도시의 제도는 밀집에 대한 공포에서 비롯됐다고도 볼 수 있다. “산업화와 도시 인구의 급격한 증가가 야기한 정주 환경의 악화는 밀집은 죄악이라는 생각을 낳았고, 이를 해소하는 것이 곧 도시계획과 제도의 소명이었다.” 따라서 도시의 제도는 “‘채움’을 억제하고 ‘비움’을 강제하는 방향성을 가지며, 채움과 비움의 양과 크기에 대해 비율, 최대‧최소의 기준을 제시한다.” 대표적인 예로 우리에게 익숙한 건폐율과 용적률을 들 수 있다. 저자는 제도에 따른 비움의 긍정적 측면을 인정하면서 동시에 “제도가 만든 나쁜 비움”을 우려한다. 총량만을 고려해 “비움의 배분”에 관여하지 못하는 제도, “비움의 위치와 형태”를 다루지 않는 제도, “비움의 획일성과 평면적 비움”의 한계를 지적한다(425호). 도시의 “다양성은 도시가 사회와 개인에게 제공하는 ‘기회의 폭’”이자 “도시의 번영을 가져오는 ‘도시적’ 자원”이다. “제도가 도시 공간의 다양성에 어떻게 관여하는가”라는 저자의 탐색은 다양성과 통일성의 켤레 관계에 관한 논의로 확장된다. 우리는 통일성을 다양성의 반대 극단에 있는 가치라고 여기곤 한다. 그러나 저자가 다양한 논거를 들어 예증하듯, “두 속성은 오히려 양립해야만 서로를 강화하고 드러내는 역설적 관계”를 맺는다. 도시의 제도는 “다양성은 통일성을 배경으로 부각”되고 “다양성을 구성하는 통일성”도 있다(427호)는 점을 놓치지 않아야 할 것이다. 마치 생명체처럼 도시도 삶과 죽음을 겪는다. “도시 공간 요소가 새로 태어나고 쓰이다 낡고 죽는 생로병사, 혹은 신진대사는 …… 도시의 긴 역사에서 끊임없이 일어난다.” 저자는 보도블럭 교체부터 재건축, 재개발에 이르는 폭넓은 사례를 들어 도시의 제도와 엮인 ‘도시 공간의 생로병사’를 살핀다(429호). 도시의 ‘시간’과 관련한 의제는 여덟 달 뒤의 글인 ‘도시의 역사, 문화유산’(437호)과 교집합을 갖는다. 그는 경직된 제도에 의해 “문화유산[이] ‘과거’에 박제되고 주변의 ‘현재’ 도시 공간의 필요와 충돌”하는 난맥을 짚는다. 복원의 원형과 시점, 규제 일변도의 역사경관 문제 등에 관한 논의를 통해 저자는 제도적 방법의 다양성이 도시의 역사적 품격을 높일 수 있을 것이라는 견해를 제시한다. 도시를 둘러싼 제도의 핵심은 ‘소유’로 수렴된다. 자본주의 체제의 “도시 공간은 …… 어느 한 조각도 ‘소유’의 밖에 있지 않다”는 점에서 소유와 재산권은 도시의 제도에서 매우 견고하게 작동한다. 물론 도시의 다양한 제도는 헌법상의 “‘공공복리’를 근거로 재산권을 제한할 수 있는 정당성을 가지며 …… 공간의 소유에 배타적으로 보장되는 사용‧수익‧처분의 권리 모두에 촘촘하게 개입”하지만, 결국 도시 개발의 이익 문제와 얽힌다. 소유하지 않고 사용할 수 있는 공간은 결국 도시에 존재할 수 없는 것일까. 저자의 말처럼 “소유가 독점하는 배타적 권리의 선은 사회적 합의의 결과로 인정해야 하지만, 그래도 항상 질문은 필요하다”(431호). 도시의 자연을 만드는 것도 결국 도시의 제도다. “도시 안에서 자연을 확보하기 위한 제도들은 자연의 여러 가치[가] 효과적으로 달성되도록 유도하고 있을까?” 저자는 획일적인 양적 공급이나 면적 확보의 한계를 넘어서기 위해서는 “일상 도시 공간의 작은 자연” 혹은 “도시 내 작은 자연의 조각에 대한 개별적 디자인”에 초점을 맞추어야 한다는 주장을 펼친다(433호). 도시에서 기능의 위치와 배열은 도시 공간의 구조를 형성한다. 저자는 우리 도시의 기능과 구조를 강력하게 규정하는 용도 지역(zoning)과 획지의 허점을 짚으며 “더 유연하고 역동적이거나 더 높은 혼합을 위한 계획적 수법”(435호)의 필요성을 강조한다. 12회에 걸친 ‘제도가 만든 도시’를 맺으며 저자는 “‘일반해’로서 제도의 실행 방식”이 낳은 “획일적이고 부자연스러운 결과”를 되짚는다. 그리고 “양적 기준 위주의 운용에서 비롯된” 난맥을 넘어설 수 있는 “정성적 가치의 제도화”, “집합적 중재와 거버넌스”, “전문가의 역할과 전문가에 대한 사회적 신뢰”라는 과제를 던진다(439호). 도시 공간의 현재를 낳은 제도와 그 이면을 탐사한 유영수 교수의 긴 여정에 깊이 감사드린다. 큰따옴표 안의 구절과 문장은 모두 연재 글에서 가져왔다.
- [풍경 감각] 발끝에 걸린 풍경
- 한 권의 책을 끝까지 쭉 읽을 순 없을까. 몇 페이지 넘기다 멈추고 쌓아둔 책 더미를 볼 때마다 한숨을 내쉰다. 시작한 책을 마무리하기 전에 자꾸만 새 책을 기웃거리는 버릇 탓에 책 더미와 그만큼의 죄책감이 자꾸만 늘어난다. 읽다 만 책을 늘리는 과정은 다음과 같다. 표지 그림부터 제목, 목차, 소개 글, 내지 디자인까지 완벽히 내 취향인 책을 만난다. 당장 주문해서 펼쳐 든다. 역시 재미있다. 어라, 그런데 생각보다 어려운 내용이 슬슬 등장한다. 설마 끝까지 이러겠어? 남은 페이지를 훑어본다. 두툼한데 글이 빽빽해서 잘 읽히지 않을 것 같다. 조금 질리는 찰나 인터넷 서점 메인 페이지에 흥미로운 책이 등장한다. 책의 상세 페이지를 읽다가 이 책이야 말로 완벽히 내 취향임을 알게 되고 또 구입한다. 지난 봄, 북한산 산책을 다녀왔다. 완만한 길만 골라 천천히 걷는데 내려오는 등산객들이 바람을 넣었다. 전망대에 오르면 경치가 근사하다고. 건물 4~5층 정도 높이의 전망대는 꼭대기까지 계단이 이어졌다. 한 계단을 오를 때마다 지면과 한 뼘씩 멀어지더니 머리 위에 있던 나뭇가지가 어느새 발아래에 있었다. 생각보다 꽤 아찔해서 더 올라갈 수도, 내려갈 수도 없었다. 오를수록 더 무서울 텐데 어쩌지. 어정쩡한 자세로 손잡이를 꼭 붙잡고 등산객을 원망하다가 발아래의 높이를 생각하지 않기로 했다. 대신 한 걸음 내딛을 때마다 발을 다음 계단 안쪽에 완전히 들어오게 올려놓았다. 안전하다고 느껴질 만큼 아주 천천히. 그렇게 계단 하나를 밟고 다음 계단을 밟았다. 그렇게 하나씩 꼭꼭 밟아 나가니 어느새 정상이었다. 멈춰버렸던 책도 한 권씩 꺼내어 그 문장을 하나하나 꼭꼭 밟아 나가고 싶다. 마지막 문장의 마침표에 가닿을 때까지. 참, 그때 올랐던 전망대의 풍경은 무심코 주워섬긴 말처럼 근사하지는 않았다. 북한산이긴 해도 작은 동네 전망대이니 그럴 수밖에. 그러나 내려오는 발걸음은 가벼웠고 봄바람은 상쾌했다. 완독의 기분도 다르지 않을 것이다.
- 2024 수성국제비엔날레
- 2024 수성국제비엔날레 관계성의 들판, 자연을 담고 문화를 누리다 2024 수성국제비엔날레(이하 수성비엔날레)가 지난 10월 15일부터 27일까지 대구시 수성구에서 열렸다. 수성비엔날레에는 모형, 영상, 패널 전시뿐 아니라 현장에 설치된 공공 건축, 조경 프로젝트가 포함됐다. 전시 주제어가 추상적 개념으로만 가닿지 않도록, 그 주제를 실현한 장소에서 실체를 경험하도록 하는 것이 목표다. 주제의 ‘들판(feild)’이라는 표현은 현장성을 추구하겠다는 의지를 드러내는 어휘이기도 하다. 현장성 추구가 수성비엔날레 자체의 목표라면, 대구 수성구가 비엔날레를 통해 이루고자 하는 바는 도시 경쟁력 확보와 주민들의 정주 여건 개선이다. 이를 위해 생각을 담는 정원, 신매시장 공영주차장·공원화 조성, 연호지구 개발(연호동과 이천동 일원, 약 90만m2 규모의 공공주택지구 조성), 대구대공원 조성 사업 등이 추진되는 중이다. 즉 수성비엔날레는 수성구의 도시계획과 궤를 같이하며 연동된 것이다. 수성비엔날레는 조경과 건축의 협업으로 인공과 야생, 자연이 하나의 생태계를 이루는 장소를 조성하는 중이다. 본지는 수성못 수상공연장 및 수성브리지 공모의 당선작과 수상작, 망월지 생태교육관 & 야생초화원 공모의 당선작을 소개한다. 개막 행사와 수성아트피아에서 열린 실내 전시, 생각을담는길 힐링센터, 금호강 생태전망대, 네 개의 파빌리온의 내용은 ‘수성국제비엔날레 둘러보기’에 담았다. 수성비엔날레는 일회성 축제가 아닌 수성구의 도시, 건축, 조경을 진화시키는 원동력이 되기를 꿈꾸고 있다. 지속가능한 새로운 형식의 비엔날레를 꿈꾸며 펼친 건축적, 조경적 상상력을 수성비엔날레 조경감독을 맡은 김영민(서울시립대학교 교수)의 글에서 확인할 수 있다. 수성비엔날레의 주제를 담은 글을 옮긴다. “수성국제비엔날레의 출발점을 들판에서 찾고자 한다. 추상적인 개념이나 이상적인 문헌에서 벗어나, 확장된 들판 위에서 영역 간의 경계선을 지우고, 인간과 비인간의 간격을 넘어서는 다원적 관계를 맺고자 한다. 그 과정을 통해 미래의 건축, 조경, 예술의 혼종적 성향을 실현한 결과물을 최종적으로 선보일 수 있기를 기대한다. 전시보다 실현을 앞세우는 수성국제비엔날레에서 들판은 현장성을 가상적으로 선보이는 단순한 전시 주제어가 아닌 구체적인 실천의 판이다. 단순히 사례를 찾아 간접적인 시각 매체를 통해 전시하거나 먼저 들판에 나아간 자들의 경험담을 듣는 후향적 전시가 아닌 직접 만들고 짓는, 실현된 장소에서 실제를 경험하는 현장 전시를 목표로 한다. 들판 위에서 찾으려는 현장성은 크게 세 종류로 분류된다. 먼저, 현장 지식은 이론과 실체, 이상과 현실, 그리고 현재와 미래를 이어준다. 둘째, 현장에서 사귄 동료, 여정에서 만난 동행자의 범위는 이제 새로운 포스트 휴먼 세계관을 통해 확장된다. 마지막으로 조경과 건축의 얽힘을 통한 협업으로 확장된 창작 영역 속에서 인공과 야생, 자연과 사물이 하나의 생태계를 이루는 새로운 유형의 장소들이 조성된다. 들판 위에서, 또는 현장의 경험을 통해 얻는 현장 지식(field knowledge)이 건축에서는 시공을 통해 확증되는 개념의 실현성을 사전에 인지하는 능력을 배양한다면 조경에서는 자연과 인간의 의지가 시간의 흐름과 함께 균형을 찾을 수 있도록 돕는 조율을 가능하게 한다. 현장 경험에서 오는 지혜는 책이나 토론을 통한 지식과 차원과 영역이 다른 미래에 대한 통찰력을 갖고 있다. 들판 위에서, 탐험과 여정을 함께하는 동행자(field companion)의 영역이 이제 인간과 비인간 동물을 넘어 식물과 사물까지 포함하는 포스트 휴먼 세계관은 기후변화의 위기와 인공지능의 확장 속에서 인간이 갖추어야 할 새로운 세계관이다. 이제 더 이상 건조 환경은 인간만이 주체적 사용자가 될 수 없고 인간의 건축 행위는 비인간 동물과 식물, 미생물, 그리고 잔존하는 사물을 아우르는 범주체성의 장이 되어야 한다. 그 관계의 첫 맺음은 예술을 통한 건축과 조경의 결합이다. 건축은 이제 중심에서 벗어나 배경이 되고 인위적인 구축을 최소화하여 자연과 비인간 동물의 영역을 존중하는, 다원적인 주체들의 공생을 목표로 삼아야한다. 조경은 인간 중심의 경관 조성이 아닌 생태적 지속성을 목표로 삼고 그 수단으로 식물, 미생물, 그리고 건축물을 폭넓게 활용하는 환경 조율의 영역이다. 두 분야의 직능적 경계를 지우고 유기적인 협업을 통해 조성되는 장소들 속에서 진정한 공간의 예술성을 찾을 수 있다.” 진행 김모아, 금민수, 이수민 디자인 팽선민 자료제공 수성국제비엔날레, 공모 수상팀 ---------- 수성못 수상공연장 당선작 물 위의 언덕_오피스박김(PARKKIM) 2등작 플로팅 랜턴(Floating Lantern)_제임스 카펜터 디자인 어소시에이츠(James Carpenter Design Associates) 3등작 플로팅 스테이지(Floating Stage)_페르난도 메니스(Fernando Menis) 수성못 수성브리지 당선작 새로운 들안로_준야 이시가미+어소시에이츠(Junya.Ishigami+Associates) 2등작 지붕이 춤추는 다리_웨스트 8(West 8) 3등작 수성수로(壽城水路)_디림건축사사무소 망월지 생태교육관 & 야생초화원 당선작 공존의 풍경_김봉찬+김건철 수성국제비엔날레 둘러보기_편집부 관계성의 들판에 서서_김영민 ----------- 주 최 대구광역시 수성구 위 치 수성아트피아(개막 행사 및 전시), 대구광역시 수성구 전역(프로젝트) 주 제 관계성의 들판, 자연을 담고 문화를 누리다 프로젝트 수성못 수상공연장 수성못 수성브리지 망월지 생태교육관 & 야생초화원 생각을담는길 힐링센터(대구광역시 수성구 고모동 1-1번지 외 1필지) 금호강 생태전망대(대구광역시 수성구 매호동 28-1번지 일원) 수성 파빌리온(대구광역시 대덕지, 내관지, 대진지, 매호천) 일 시 2024. 10. 15. ~ 10. 27. ---------- 수성못 수상공연장 조성 국제지명 설계공모 위 치 대구광역시 수성구 두산동 516 일대 수성못 일원 규 모 수상 무대: 주무대(450~500m2)+백업 공간 무대 방식: 부유형 혹은 고정형 객석: 1,200~1,600석 규모 예정공사비 28,658백만원 설계용역비 1,341백만원 수성못 수성브리지 조성 국제지명 설계공모 위 치 대구광역시 수성구 두산동 431-5 일대 수성못 일원 규 모 160m 정도의 보행자용 교량 및 연관 시설 갤러리, 카페 등 문화 시설과 UAM 착륙장 등 기타 제안 시설 포함 예정공사비 14,092,110천원 설계용역비 907,890천원 망월지 생태교육관(생물자원보전시설) 건립 및 생태축 복원(야생초화원)사업 기본 및 실시설계 지명공모 위 치 대구광역시 수성구 욱수동 410번지 일대 대 지 면 적 생태교육관 3,298m2, 생태축 복원 7,134m2 규 모 층수: 지상 4층 이하 연면적: 1,400m2(±10%이내) 주차 대수: 법적 주차 대수 이상 예정공사비 9,315백만원 생태교육관, 주차장: 6,615백만원 생태축 복원사업(야생초화원 등): 2,700백만원 예정설계비 566,360천원 생태교육관, 주차장: 345,360천원 생태축 복원사업(야생초화원 등): 221백만원
- [수성국제비엔날레] 물 위의 언덕
- 도시의 냉각수 도시화와 근대화를 거치며 세계 주요 도시의 못들은 메워지거나 지하화됐다. 한때 풍부한 하천과 강 덕분에 물의 도시라 불리던 대구 역시 마찬가지였다. 현재 대구의 무더운 여름을 생각하면 아쉬운 일이다. 만약 이 모든 못이 여전히 지표 위에 남아서 달아오른 땅과 대기를 식혀줬다면 어떻게 됐을까. 저수지를 잘 보존해서 물가에 오픈스페이스를 더 만들었다면 어땠을까. 이 두 가지 물음이 설계의 단초가 됐다. 대구의 도시 열섬 지도를 보면서 우리의 질문은 ‘도시의 냉각수로서의 못’이란 아이디어로 이어졌다. 주변 미기후를 분석하며 수성못 서북쪽 모퉁이가 바람골 영향을 받는다는 걸 발견했다. 이곳은 인근 고산골에서 불어오는 시원한 바람이 가장 먼저 도달하며, 남동풍이 부는 여름철에 대상지에서 가장 시원했다. 이를 토대로 가장 시원한 곳에 무대를 계획하고, 겨울철 주된 바람인 서풍을 막아주는 디자인을 고민했다. 또한 지형으로 바람을 끌어들이고 식재를 풍성히 했을 때 3도 이상 더 시원해진다는 시뮬레이션 결과값을 얻었다. 둥지섬과 문화적 짝 새로운 수상공연장은 주변의 산세를 담은 지형과 수면에 수평적인 구조로 이루어지며, 수성못 북서쪽 모퉁이에 위치한다. 이곳은 못의 역사가 시작된 곳이며 여름철 미기후 상 바람이 가장 많이 불어오는 곳이기도 하다. 둥지섬이 신천과 범어천을 징검다리처럼 잇는 수성못의 생태적 허브라면, ‘물 위의 언덕’은 섬과 문화적 짝을 이루며 수면 너머 산을 향해 길고 입체적인 시야를 만들어낸다. 경사와 방향이 다양한 여덟 개 둔덕으로 구성된 물 위의 언덕은 시민들이 여름철 불어오는시원한 바람을 맞으며 기존 제방길을 따라 쉽게 접근할 수 있는 공공 장소로 거듭날 것이다. 언덕들의 지형 기존 제방과 바로 연결된 두 개의 언덕 진입로는 무장애 동선을 위해 제방과 같은 높이에서 시작된다. 언덕의 가장자리는 무장애 보행자 동선 역할을 하며 무대 자체를 더 잘 볼 수 있도록 언덕의 경사도를 8~12%로 했다. 가변형 수변 무대와 주 무대는 10cm의 단차가 있어 물의 효과를 더욱 깊고 극적으로 만든다. 제방으로부터 못을 향해 뻗어나간 지형 끝에 무대가 위치하는데, 이 모습은 주변 산으로부터 내려온 언덕들이 마치 물 위에 뜬 꽃잎처럼 모여 있는 형태로 보이게 한다. *환경과조경439호(2024년 11월호)수록본 일부
- [수성국제비엔날레] 플로팅 랜턴
- 수성못의 생태적 잠재력과 자연의 아름다움을 확장한 새로운 문화 공간을 만들고자 했다. 수변과 가까운 거리에서 교감할 수 있는 수성못 동쪽의 수변길과 둥지섬의 독특한 생태적 환경에서 영감을 얻어 기존 자연 경관을 확장하고 개선하는 디자인을 시도했다. 플로팅 랜턴 기존 수변길을 녹지와 함께 확장하며 자연을 품은 새로운 공연장과 연결하고자 했다. 이는 대상지의 생태적 잠재력을 높이고 수변길에 대한 접근성을 향상시킨다. 수성못 북동쪽 역사적 유적지, 두산동 등 인근 지역의 녹지와 대상지를 연결하고 기존 레크리에이션 구역과 제방에 더 많은 녹지를 계획했다. 특히 제방과 시각적으로 연결되며 탁 트인 풍경을 제공하는 새로운 수상 공연장 ‘플로팅 랜턴(Floating Lantern)’을 조성하고자 했다. 자연과 조화를 꾀하는 숲 떠 있는 풍등이란 뜻이 담긴 플로팅 랜턴은 빛을 중심으로 자연과의 조화를 꾀한다. 이곳은 무대인 동시에 사색의 공간으로 기능한다. 생명력과 아름다움을 가진 주변의 산, 변화와 반성의 심상을 불러일으키는 석양과 조화를 꾀하는 디자인을 통해 방문객에게 사색의 기회를 제공한다. 저녁엔 콘(cone) 구조의 좌석 사이에 은은한 조명이 켜져 랜턴처럼 빛나는데, 호수 표면에 반사된 조명 불빛이 반짝이는 모습을 감상할 수 있다. 호수에 비치는 하늘과 산으로 둘러싸인 플로팅 랜턴은 사계절 다채로운 경관과 시원하고 아늑한 그늘을 제공한다. 나무로 둘러싸인 숲을 연출하기 위해 공연장의 객석과 무대를 원통형 루버 프레임 안에 배치했다. 가벼운 목재 루버 사이로 여과되는 빛과 아른거리는 그림자, 그늘이 조화를 이루며 공간에 아늑한 분위기를 더한다. *환경과조경439호(2024년 11월호)수록본 일부
- [수성국제비엔날레] 플로팅 스테이지
- 수성못은 시민들을 위한 아름다운 자연의 피난처 역할을 하는 도심의 오아시스다. 깨끗한 물과 수변의 우거진 수목들은 교향곡의 고요하고 장엄한 분위기를 연상시키는 디자인을 시도할 수 있는 자연의 도화지와 같았다. 이 도화지에 그리는 새로운 수상공연장을 통해 문화적 활동의 활성화를 꾀하고자 했다. 예술과 자연을 결합해 음악이 호수의 잔잔함과 조화를 이루고, 시민들이 야외 문화 활동을 할 수 있는 특별한 공간을 계획했다. 절제된 개입 새로운 공연장을 수성못 북동쪽에 배치해 시각적 인지도를 높이고, 인근 공공 공간은 수상공연장 지원 시설이나 주차장으로 활용하고자 했다. 또한 이곳은 주변 산과 수성못 경관을 조망하기 좋은 자리이기도 하다. 기존 요소를 보존하되 녹지를 통해 도심에서 자연과 교감할 수 있는 장소를 만들고자 했다. 시민들의 일상적인 이용과 호수의 중요성을 고려해 기존의 산책로를 변경하지 않고 보완하는 등 절제된 방식의 디자인을 시도했다. 기존 산책로를 확장해 새로운 수상공연장과 연결하고 수상 활동을 위한 도크, 카페 등 기존 공간의 리노베이션을 진행했다. 주변 경관과 조화를 꾀하며 수상공연장 인근에 호수를 정화하는 자생종으로 구성한 부유하는 수중 식물섬을 계획했다. 세 개의 객체 거북선과 중세 유럽의 극장에서 모티브를 얻었다. 목재 바닥을 통해 부력을 얻고 날카로운 철재 덮개로 침입자를 완벽히 방어했던 거북선에서 아이디어를 얻었다. 철과 적층 대나무를 활용해 90도로 세운 거북선을 연상시키는 세 개의 구조물을 만들었다. 또한 중정 무대를 3면에서 바라볼 수 있는 스페인의 코미디 극장인 코랄레스 데 코메디아스(corrales de comedias)에서 영감을 얻어 세 개의 구조물을 활용한 객석과 무대를 마련했다. 객석과 무대가 배치된 세 개의 구조물은 독립된 객체로서 존재한다. 그리드 패턴 구조의 발코니는 각 구조물에 독특한 개성을 불어넣는다. 발코니는 구조적 안정성과 함께 무대를 향해 열려 있어 관객들에게 최적의 전망을 선사한다. 외벽으로 사용한 허니콤 패널은 은은한 불빛으로 사물을 밝히는 한국의 등불에서 영감을 얻었다. 구릿빛이 감도는 벌집 구조의 이중 허니콤 패널은 빛을 반사하고, 외부로 전달되는 음향을 줄이며 시설물을 보호한다. 해가 지면 공연장은 은은한 빛을 내는 등불을 연상시키며 호수와 조화를 이룬다. *환경과조경439호(2024년 11월호)수록본 일부
- [수성국제비엔날레] 새로운 들안로
- 브리지의 기능을 뛰어넘어 도시 구조의 일부로 자리매김할 공공시설을 계획하고자 한다. 수성브리지가 놓인 수성못은 도시에서 중요한 기능을 하게 될 것이다. 수성구를 관통하는 들안로와 수성못을 통해 도시에서의 새로운 삶의 방식을 제안한다. 수성브리지를 수성구의 간결하고 아름다운 상징으로 만들고자 들안로의 끝부분을 확장한다. 이는 들안로의 연장선에서 보이는 산의 경관을 가리지 않고 부각해, 이 도로 자체의 가치와 위상을 높일 것이다. 수성구의 비전 수성구민들은 새로운 문화, 예술, 관광 시설과 수성못의 랜드마크화를 원하고 있다. 이러한 목소리에 귀 기울여 수성구는 ‘행복한 삶이 있는 미래도시’라는 비전을 세워 실천해 나가고 있다. 이에 부응해 다양한 기능을 수용할 수 있는 브리지를 설계했다. 교육, 음악-예술, 강연 활동을 할 수 있는 공간을 마련했다. 브리지는 무학로 양측을 연결할 뿐 아니라 경관을 초월해 도시와 수성못을 잇는다. 다리를 넘어 하나의 건축물로 설계된 수성브리지는 장소를 연결하는 데 그치지 않고 마을과 수성못, 사람과 도시를 잇는 상징적 다리가 될 것이다. 계획 차량이 브리지에서 조금 떨어진 지점에서 5% 경사로를 따라 내려간 뒤 들안길 삼거리를 따라 올라오도록 설계했다. 이로써 보행자는 지상 1층 레벨에서 편히 수성브리지로 들어설 수 있게 된다. 완만한 계단식 공원으로 수성못과 무학로를 자연스럽게 연결하는 경관을 연출한다. 브리지의 기능을 특별하게 고정하지 않고, 건물 전체 옥상에서 큰 규모의 이벤트를 개최하는 등 필요에 따라 평면이 달라지도록 계획했다. 옥상의 경우 도심항공교통(UAM)이 착륙할 수 있는 공간도 고려했다.브리지 양쪽에 설치한 엘리베이터를 통해 교차로에서 브리지 내부와 옥상으로 쉽게 접근할 수 있다. 다리를 따라 걸어가면 수성못의 풍경이 보이기 시작한다. 다리의 끝에는 들안로로 이어지는 출입구를 마련했다. 호수까지 도로를 확장해 브리지를 문화 도시의 중심 거점으로 만들고 수성구의 구조를 새롭게 정의하고자 했다. 6차선인 들안로를 7차선으로 늘리되 무학로 위의 브리지는 그대로 유지함으로써 도로 혼잡을 방지하고 보행자는 더 넓은 도로를 이용할 수 있게 했다. *환경과조경439호(2024년 11월호)수록본 일부
- [수성국제비엔날레] 지붕이 춤추는 다리
- 호수와 사람을 연결하다 대구 중심에 위치한 수성못은 앞산, 범이산, 동막산으로 둘러싸여 있고, 매년 9월 수성못 페스티벌이 열려 많은 관광객이 찾는 곳이다. 수성못으로 오려면 들안로와 무학로를 지나야 하는데, 수성못에 도착해 처음 마주하게 되는 풍경은 교차하는 두 도로와 그 뒤로 펼쳐진 녹지다. 호수의 풍경을 바로 발견하기 어렵다. 도시에서 호수로 급작스럽게 변환되는 풍경은 이곳에 처음 방문하는 관광객의 혼란을 야기할 수 있다. 종합적이고 미래지향적인 계획을 통해 수성못에 대한 새로운 경험을 제공하고자 한다. 무학로를 가로지르는 다리는 수성못 주변의 녹지 공간을 연결함으로써 도착 경험을 풍성하게 하고, 대구를 대표하는 관광지이자 지역 문화와 주변 자연을 통합하는 새로운 자연 환경으로 만들 것이다. 지붕이 춤추는 다리 천연 목재로 만든 A형 프레임 트러스가 반복적으로 맞물리는 다리는 보행자와 자전거를 탄 사람에게 색다른 이동 경험을 제공한다. 비틀어진 듯한 느낌을 주는 구불구불한 다리 모양은 수성못으로 향하는 여정에 재미를 더한다. 다리 지붕 위에 도착하면 도로를 달리는 자동차 소음이 줄어들고 트러스 구조물 틈 사이로 산과 호수의 모습을 감상할 수 있다. 다양한 교통수단을 수용할 수 있는 다리는 여러 가지 동선을 제공한다. 이 중 가장 넓은 길은 자전거 전용 도로며, 나머지 두 보행로는 방문객들이 원하는 코스로 다닐 수 있게 한다. 보행로에서는 자연에 둘러싸인 수성못과 대구 풍경을 감상할 수 있다. 다양한 동선은 수성못 페스티벌과 수상공연장에서 공연이 진행될 때도 많은 사람을 수용하며, 사람이 많이 몰리더라도 방문객에게 친밀하고 몰입감 있는 경험을 선사한다. 다리 사이 작은 계단에서는 사람들이 만나거나 주변 산의 전망을 즐길 수 있다. *환경과조경439호(2024년 11월호)수록본 일부
- [수성국제비엔날레] 수성수로
- 세종실록 경상도지리지에 수성못의 원형이었던 자연 호수 둔동제에 대한 기록이 남아있다. 현재 수성못의 형태는 1927년 일본인 미즈사키 린타로에 의해 완성됐고 그의 묘지가 수성못을 내려다보는 위치에 안장되어 있다. 역설적이지만 일제강점기 대표 저항시 ‘빼앗긴 들에도 봄은 오는가’의 배경이 수성들이다. 하지만 역사의 아이러니와는 무관하게 수성못과 수성들의 관계는 공생적이었다. 수성못으로부터 물을 공급받은 수성들은 항상 비옥했기에 수성들(들안로 주변)이 현재까지 번성할 수 있었다. 우리는 수성수로(壽城水路)를 통한 수성못과 수성들의 관계 복원을 제안한다. 물을 매개로 문화와 휴식 공간을 조성하고 도시와 자연을 다시 연결하고자 한다. 이질적인 구성 도시와 자연으로 대비되는 들안로와 수성못의 흐름은 내부와 외부가 서로 다른 성격과 모양을 가진 이질적인 구성으로 형상화되어 있다. 실핏줄처럼 퍼져 대지에 물을 공급하던 옛 수로는 수성못과 연결된 수성수로를 통해 도시까지 확장시킨다. 다리의 장스팬을 지지하는 높이 4.2m의 외벽(구조보)은 단순하지만 색다른 풍경을 선사한다. 이 벽을 따라 위아래로 파도치듯 움직이는 바닥은 새로운 실내 공간을 만든다. 이 공간은 아이들의 놀이 공간이자 도시를 내려다보는 전망대가 된다. 보행교 중앙을 가로지르는 얕고 좁은 수로는 도시와 수성못이 만나는 끝에서 넓은 물길로 바뀌면서 시민들에게 새로운 경험을 제공할 것이다. 푸른 하늘과 푸른 물이 맞붙은 곳으로 가르마 같은 숲길을 따라 수성수로에 만들어진 내부와 외부 공간은 들안로와 수성못의 단절된 흐름을 연결한다. 외부 공간에서는 단순한 수평선으로 만들어낸 새로운 도시 풍경을 볼 수 있다. 높이 3m 구조 벽으로 상업가의 풍경을 가리고 교통 소음을 차단했다. 내부 공간에서 수성못과 법이산으로 이어지는 자연을 조용히 바라볼 수 있다. 저항 시인 이상화의 ‘빼앗긴 들에도 봄은 오는가’ 시의 구절처럼, “푸른 하늘과 푸른 물이 맞붙은 곳으로 가르마 같은 숲길을 따라” 걸으며 들안로 공방에서 제작된 다양한 전시물을 감상하다 보면 어느새 도시에서 자연으로 변한 풍경을 만날 수 있다. *환경과조경439호(2024년 11월호)수록본 일부
- [수성국제비엔날레] 공존의 풍경
- 산란기에 접어든 두꺼비는 피부가 마르지 않도록 밤이나 비를 기다리며 산의 골짜기를 따라 움직인다. 본능적으로 골짜기의 촉촉함을 따라가면 물이 많이 모이는 저수지나 습지로 도달할 수 있다고 생각하는 것이다. 국내 최대 두꺼비 산란지인 망월지는 수심 5m, 길이 약 170m로 담수량이 적지 않지만, 두꺼비가 산란하기에 적합한 얕은 습지와 촉촉한 땅은 거의 없다. 이러한 망월지의 태생적 한계를 보완하고 두꺼비를 비롯한 다양한 곤충과 새가 안정적으로 살아갈 수 있는 대체 서식지를 만들고자 한다. 자연 습지의 생태 원리를 담은 소택지, 습지림, 초지, 숲정원 등을 조성해 두꺼비 산란지와 더불어 생물 다양성이 높은 서식지를 조성하고자 한다. 공존의 풍경 최소한의 개입: 두꺼비를 위한 유도 펜스와 생태 통로를 야생풀과 나무, 자갈 등으로 조성해 자연이 살아 있는 곳으로 조성한다. 산책로를 적게 만들어 사람의 이용을 조절하고 지면보다 높게 띄워 두꺼비를 비롯한 양서류의 이동을 방해하지 않는다. 풍경 조망: 망월지는 서쪽의 옥수산을 비롯해 주변의 높고 낮은 산들과 어울려 있다. 짙은 어둠을 품은 산을 배경으로 밝아지는 수면 위로 일렁이는 윤슬을 조망하는 통로를 만든다. 인공과 자연, 수평과 수직, 명료함과 흐릿함이 대비되는 경관에 신비로움을 더하고자 한다. 자연주의 습지 정원: 자연주의 정원은 살아 있는 생태계의 일부로 작동하는 정원으로, 정원 자체로 야생 생물 서식지와 두꺼비 대체 서식처로 기능하게 한다. 자연주의 습지 정원은 소택지의 연못, 숲의 나무, 자연습원을 배경으로 하고 있어 생태적 다양성이 높다. 이를 바탕으로 최적의 두꺼비 산란장을 만들고 나아가 습지 야생 생물의 건강한 서식처로 기능하게 해 사람과 자연이 함께 살아가는 공존의 풍경을 조성하고자 한다. *환경과조경439호(2024년 11월호)수록본 일부
- [수성국제비엔날레] 수성국제비엔날레 둘러보기
- 대구 수성구가 주최하고 수성문화재단이 주관한 ‘2024 수성국제비엔날레’(이하 수성비엔날레)가 10월 15일에 개최됐다. 수성비엔날레는 핵심 전시가 열리는 수성아트피아를 비롯해 수성구 전역을 무대로 삼았다. 개념이나 주제를 막연히 전달하는 비엔날레보다 수성구를 도시라는 큰 관점에서 바꾸어나갈 실제 조경, 건축 프로젝트를 통해 온몸으로 경험할 수 있는 장소 만들기를 지향한 결과다. 하지만 조경, 건축 프로젝트들이 몇 달 만에 완성될 리 만무하다. 수성비엔날레가 추진 중인 장소 만들기 프로젝트 중 준공된 건 세 개의 수성 파빌리온이 전부다. 수성비엔날레의 가치를 제대로 알려면 완공 프로젝트뿐 아니라 현재 조성 중인 프로젝트와 아카이브와 같은 무형의 콘텐츠도 들여다봐야 한다. 이번 비엔날레의 조직위원장을 맡은 권종욱 교수(영남대학교 건축학부)는 “비엔날레는 2년에 한 번 개최되는 행사를 이르는 말이다. 그만큼 수성비엔날레의 지속성을 어떻게 확보할 것인지 고민이 많았다. 무엇보다 이러한 행사의 효용성이 국민과 시민에게 충분히 전달된다면 수성비엔날레의 필요성도 인정될 것이라 생각했다. 이러한 전제 하에 공공 건축과 조경의 중요성, 이러한 프로젝트를 향한 시민들의 지속적인 수요를 인지해 비엔날레를 기획했다. 하지만 대형 프로젝트를 완성하려면 길게는 5년까지의 시간이 필요하다. 따라서 주축이 되는 프로젝트를 진행하며 소규모 프로젝트를 동시에 발굴해 균형을 맞춰나갈 예정이다. 또 하나 중점을 둔 건 아카이브다. 지금 진행 중인 수성비엔날레의 프로젝트는 물론 수성구의 다양한 공공 건축 및 조경 프로젝트를 아카이빙해 나갈 예정이다. 시간이 흐르며 계속 축적된 자료는 수성비엔날레를 일반적인 비엔날레와 다른 결의 비엔날레로 부상시킬 것”이라고 전했다. 2년 뒤 새로운 소식이 들려오기를 기대하며, 수성비엔날레가 스케치한 다양한 유무형의 프로젝트를 간략히 소개한다. 수성못 수상공연장와 수성브리지, 망월지 생태교육관 & 야생초화원 공모는 앞선 지면으로 갈음한다. *환경과조경439호(2024년 11월호)수록본 일부
- [수성국제비엔날레] 관계성의 들판에 서서
- 대구 수성구가 새로운 비엔날레를 기획하는 데 도와달라는 연락이 왔다. 건축가에게서 연락이 왔으니 건축비엔날레일 것으로 생각했다. 그런데 건축가는 건축과 조경을 동등한 주제로 다루는 비엔날레로 생각하고 있다고 했다. 서울 도시건축비엔날레나 광주폴리 같은 성격의 기획에 조경가가 작가로 참여한 적이 있고 조경 관련 작품이나 주제를 다루기도 했다. 그래서 건축비엔날레나 건축·조경비엔날레나 이름만 다를 뿐 차이가 없어 보이기도 했다. 그런데 다시 생각해보니 이 둘은 전혀 다른 비엔날레였다. 최근 건축비엔날레에서 자연의 주제가 인기다. 작년 서울 도시건축비엔날레의 주제도 ‘땅의 도시, 땅의 건축’이었고 부제는 ‘산길, 물길, 바람길의 도시’였다. 그런데 이때 자연은 어디까지나 건축화된 자연을 이야기한다. 조경가가 건축비엔날레의 작가로 종종 참여하기도 한다. 그런데 그것은 어디까지나 건축에 포함된 조경을, 건축의 보조자로서 조경을 의미한다. 한편 조경에서는 최근 정원박람회와 플라워쇼가 유행이고 예술 전시에서도 조경이 인기 소재지만 정작 조경을 주제로 한 예술 기획으로서 비엔날레를 본 적은 없다. 그래서 건축의 부분으로서 조경이 아닌 건축과 조경의 비엔날레는 어떤 형식일지, 건축과 조경은 어떤 시선으로 조경과 자연을 담아야 하는지 건축가와 조경가가 함께 고민해보기로 했다. 우선 기존 비엔날레가 중요시하던 담론에 얽매이지 않기로 했다. 오히려 담론의 장에서 벗어나 실무 현장에 초점을 맞춘 비엔날레를 구상하기로 했다. 수성국제비엔날레의 가장 중요한 기획 방향은 단순히 보여지고 소비되는 전시 행사로서의 비엔날레가 아니라 실제로 도시에서 만들어지는 공공 건축과 공공 공간의 조경을 아카이빙하고 재규정해 미래를 축적해나갈 기회를 만들자는 것이었다. ‘관계성의 들판’이라는 주제와 제목은 이러한 기획 의도를 반영한 결과였다. 관계성은 건축과 조경, 도시와 자연과 같은 대상 자체보다는 대상의 관계에 초점을 맞추기 위한 키워드였다. 인간의 관점을 넘어 새, 나무, 돌과 같은 비인간의 관점을 포섭하려면 먼저 주체의 자리를 지워야 했다. 건축의 자리를 조경이 대신해봤자 관계는 똑같다. 자연이 소외된다고 인간을 자연이 대체한다면 인간이 소외된다. 그래서 주체를 지우고 관계를 더 탐색하는 데 의견을 모았다. 들판은 영어 필드(field)의 번역어다. 필드는 들판이라는 자연의 풍경이면서 여러 요소가 관계를 맺는 장(場)의 뜻도 있었고, 담론과 이론과 대비되는 현장이나 실무를 의미하기도 하는 중의적 단어였다. 사실 들판, 장, 현장, 어느 단어를 사용해도 영어의 중의적 의미는 사라질 수밖에 없지만, 그래도 ‘들판’이 비엔날레를 찾는 이들에게 더 많은 것을 상상하게 할 수 있다는 점에서 관계와 들판을 이번 비엔날레의 성격을 규정하는 두 키워드로 정했다. *환경과조경439호(2024년 11월호)수록본 일부 김영민은 서울시립대학교 조경학과 교수다. 학생을 가르치는 선생이고, 설계를 하는 조경가이며, 글을쓰는 사람이다. 서울대학교와 하버드대학교에서 조경과 건축을 함께 공부했다. 미국에서 도시설계와 조경설계 실무를 하고 여러 나라의 프로젝트를 수행했다. 이론적 담론을 생산할 수 있는 설계를 추구하며, 설계를 각성시킬 수 있는 이론과 비평 작업을 해나가고자 한다. 현재 조경기술사사무소 바이런과 함께 설계 작업을 진행하고 있다.
- LH 파주가든
- 지난 9월 26일, 파주 운정중앙공원에서 LH 파주가든(이하 파주가든)이 공개됐다. 파주가든은 세종과 평택, 인천에서 열렸던 기존 LH가든쇼의 명맥을 잇는 공공 정원 프로젝트다. 한국토지주택공사LH가 올해부터 일상과 정원이 함께하는 공원 조성을 위해 추진 중인 ‘LH 도시정원프로젝트’의 첫 번째 프로젝트다. 이번 파주가든에서는 초청정원, 작가정원, 학생 및 주민참여정원 등 총 21개 정원이 조성됐다. 초청작가로는 김단비(숲을위한주식회사), 박종완(플레이스랩기술사사무소), 유충헌(스케이프360), 이상수(스튜디오이공일 조경기술사사무소)가 초대됐다. 작가정원에는 김초롱(세종정원연구소), 박성준(엠엠엠 디자인 스튜디오), 윤채영(숲을위한주식회사), 이정연(서브디비전), 이현승(사이트닷), 이호우(담), 박희수(디엘피 조경기술사사무소)의 작품이 선정됐다. 작가정원 공모는 올해 1월 23일부터 2월 23일까지 진행됐으며, 주제는 ‘도시의 색, 숨, 삶’이었다. 공공 정원의 본질에 대한 탐구를 바탕으로 정원을 통해 도시에 ‘색’을 입히고, ‘숨’을 불어넣어, 주민들의 ‘삶’의 일부로 지속가능한 공공 정원 디자인을 제출했다. 아울러 인접한 정원을 고려한 내부 동선 계획, 구조적 안정성, 유지·관리를 위한 작업로와 관람객 동선 디자인 등이 요구됐다. 현장 심사와 품질 유지·관리 심사를 통해 추후 수상자를 선정할 예정이다. 박동선 LH 국토도시본부장은 “파주가든의 대상지가 교하지구와 운정지구 시민 모두가 즐길 수 있는 최적의 입지인 만큼 심혈을 기울여 조성했다”라며 “앞으로도 도시가 곧 정원이 되고 정원을 통해 도시의 브랜드가 구현되는 다채로운 도시 정원 마련을 위해 최선을 다할 것이다”라고 밝혔다. 진행 김모아, 금민수, 이수민 디자인 팽선민 ----------- 주 최 LH 위 치 경기도 파주시 파주운정3지구 수변공원1호(운정중앙공원) 주 제 도시의 색, 숨, 삶 규 모 초청작가정원 4개소(200m2/개소당) 작가정원 7개소(150m2/개소당) 주민참여정원 5개소(10m2/개소당) 학생참여정원 5개소(10m2/개소당) ------------ 초청정원 부서진 시간, 피어난 용치_김단비 운중산책@운정_박종완 어반 네이처(urba_N_ature)_유충헌 망중유한(忙中有閑), 삶의 여백 그리고 한가로움_이상수 ------------ 작가정원 푸른 빛으로 함께 흘러가는 것_김초롱 네이처 시네마(Nature Cinema)_이현승 도간루: 닿은 순간_윤채영 일월운정(⽇⽉雲庭), 해와 달, 구름이 쉬어가는 정원_박성준 클라우드_이정연 끌림: 더 컬러 오브 파주(The Color of Paju)_박희수 빅(Big) 282_이호우
- [LH 파주가든] 부서진 시간, 피어난 용치
- 파주는 세계 유일 분단국의 접경 도시다. 이곳에 들어서는 공공 정원은 파주의 역동성과 평화로움을 상징하는 실증이다. 파주 곳곳에 남은 분단국의 잔해를 재해석해 보여줌으로써 불안정속의 안정, 아픔과 애환 속 희망을 전달하고 기억하고자 한다. 파주의 유일함에 대한 소회, 개활지에 촘촘히 설치된 전쟁의 상흔을 정원에 담았다. 파주시의 도시 화석으로 자리 잡은 ‘용치’는 땅을 뚫고 자라난 생명력을 느끼게 하며, 부서진 시간을 보상하듯 새살을 피어 댄다. *환경과조경439호(2024년 11월호)수록본 일부
- [LH 파주가든] 운중산책@운정
- 구름 운(雲), 우물 정(井). 구름 우물을 뜻하는 파주 운정의 지명에서 모티브를 얻어 구름 속을 걷는 듯한 분위기를 자아내는 정원을 계획했다. 정원 속 다채로운 식물과 구름 패턴의 시설물은 주제를 강조한다. 흰색 철재 구조물의 정원 셸터로 구름을 형상화했다. 천장에 매단 아크릴 코팅 한지는 바람의 영향을 받는 구름의 특성을 재현할 뿐 아니라 내리쬐는 햇빛을 적당히 투과해 독특한 효과를 낸다. 중앙의 운중화단에는 계절의 변화를 고려해 다채로운 색과 높낮이를 가진 식물을 심었다. *환경과조경439호(2024년 11월호)수록본 일부
- [LH 파주가든] 어반 네이처
- 사각형(square)은 도시 빌딩의 대표적 형태이자 영어로 광장이란 뜻을 가진다. ‘도시’를 상징하는 콘크리트와 금속 소재의 사각형 공간 11개를 연결했다. 높이가 다른 각 공간이 모여 만든 풍경은 도시의 스카이라인을 연상시킨다. 내부 동선은 도시 속 시민들의 흐름을 뜻하며, 도시, 자연, 사람을 연결한다. 식물과 구조물 사이에 놓인 중앙부의 수공간을 통해 자연과 대비되는 차가운 도시의 느낌을 연출하고자 했다. 풍성한 주변 식재를 통해 자연과 도시가 조화롭게 어우러지는 모습을 연출했다. 구조물 사이에서 곧게 뻗어 올라오는 메타세쿼이아, 공간에 그림자를 드리우는 활엽수 등을 통해 자연과 교감할 수 있는 입체적 경험을 선사한다. *환경과조경439호(2024년 11월호)수록본 일부
- [LH 파주가든] 망중유한, 삶의 여백 그리고 한가로움
- 망중유한(忙中有閑), 바쁜 가운데 잠시 틈을 낸다는 고사성어로부터 아이디어를 얻어 정원으로 구현했다. 공간을 둘러싼 외벽으로 위요감을 더했다. 중앙의 거대한 사각 구조물은 식물을 품는 플랜터이자, 방문객들이 식물을 눈높이에서 바라볼 수 있는 테이블이다. 이리저리 옮길 수 있는 의자를 배치해 다양한 각도에서 자연을 감상할 수 있게 했다. 나무 사이로 비치는 부드러운 햇살과 바람, 그늘 아래 꽃잎, 흔들리는 이파리와 작은 돌들, 느리게 흐르는 시간과 차분함 속에 작은 것의 소중함과 삶의 아름다움을 깨닫는다. *환경과조경439호(2024년 11월호)수록본 일부
- [LH 파주가든] 푸른 빛으로 함께 흘러가는 것
- 바다는 우리에게 무한한 영감과 안정감을 준다. 끊임없이 움직이는 파도는 물결과 같은 우리 삶의 흐름을 닮았다. 바다의 푸른빛은 다양한 생명과 색채를 담고 있다. 이러한 바다의 본질을 정원에 담아 도시에서 푸른 빛의 바다를 만나게 한다. 고요한 흐름의 ‘광장’, 푸른 흐름의 ‘정원’, 물결 흐름의 ‘동선’, 세 구역으로 정원을 구성했다. 콘크리트 분지는 고요한 흐름의 광장 안에서 바다의 고요함과 강인함을 상징하는 단단한 물성의 공간으로, 해저에 있는 평평한 분지와 같은 곳이며 사람들이 잠시 멈추는 장소다. *환경과조경439호(2024년 11월호)수록본 일부
- [LH 파주가든] 네이처 시네마
- 공공 정원은 개인에게 정원을 사유하는 경험을 제공해야 한다. 다수가 함께 이용하지만 혼자 조용히 몰입하고 관람할 수 있는 영화관처럼 깊이 빠져들고 사유할 수 있는 정원, 네이처 시네마를 조성하고자 한다. 영화관처럼 정원에 집중할 수 있도록 레벨을 0.9m 낮추고 돌담에 둘러싸인 공간을 조성했다. 계단형 진입로를 통해 정원에 대한 몰입감을 높이고, 칸막이가 있는 퍼걸러에 앉아 정원을 오롯이 감상할 수 있게 했다. 대관목 위주로 식재해 그린 스크린을 만들고 정원에 입체감을 더했다. 수반에 모여든 작은 새의 지저귐까지 더해진 정원 풍경을 즐길 수 있다. *환경과조경439호(2024년 11월호)수록본 일부
- [LH 파주가든] 도간루: 닿은 순간
- 도시 속 공공 정원은 사람과 자연, 모두가 닿을 수 있는 공간이 되어야 한다. 누군가와 함께하는 것이 익숙하지 않은 사회에서 도간루는 모두가 닿을 첫 순간이 되어 줄 것이다. 정자는 과거 선비들의 개인적 사유 공간으로 이용됐지만, 누각은 공공으로 향유하는 공간이었다. 공공 정원이라는 대상지의 특성을 강조하고자 누각 형태를 본떠 휴식 공간을 만들었다. 누각을 2단으로 쌓는 대신 중심부 지면의 레벨을 낮추고 데크의 높이를 높여 누각의 중첩 개념을 유지했다. 진입구 레벨은 누각과 같게 해 접근을 용이하게 했다. *환경과조경439호(2024년 11월호)수록본 일부
- [LH 파주가든] 일월운정, 해와 달, 구름이 쉬어가는 정원
- 일월운정(日月雲庭)은 해와 달, 그리고 구름이 쉬어가는 곳을 의미한다. 바위의 물갈기 마감으로 해와 달이 비치는 곳을, 안개 분수와 생태 웅덩이로 구름이 머무르는 곳을 표현했다. 정원의 네 면에는 서로 다른 행태를 유발하는 휴식 공간을 조성했다. 입체적 공간 구현을 통해 시시각각 변화하는 식물의 모습을 담아냈다. 정원은 단순히 자연을 관찰하고 휴식을 취하는 공간을 넘어, 공동체의 활력을 불어넣고 사람들이 서로 알아가며 소통하는 공간으로 발전해야 한다. 이를 위해 이용객의 시선이 꽃과 식물들을 넘어 서로에게 닿고 대화할 수 있는 공간으로 만들었다. *환경과조경439호(2024년 11월호)수록본 일부
- [LH 파주가든] 클라우드
- 운정은 안개가 자주 생기는 아홉 개의 우물에서 유래한 지명이다. 운정의 옛 기억을 간직한 채 또 다른 운정의 이야기를 담는 저장 플랫폼을 만들고자 했다. 계절별 자생 식물과 클라우드 구조물, 거울 우물로 구성된 정원은 신도시의 미기후를 조절하고 지역 커뮤니티를 활성화하고 휴식처를 제공한다. 운정에 자생하며 겨울을 견딜 수 있는 식물, 사계절 다채로운 정원의 관람을 우선적으로 고려해 공간을 구성했다. 휴게 벤치에서는 다양한 초화류를 감상하고, 거울 우물에 비친 하늘을 눈에 담을 수도 있다. *환경과조경439호(2024년 11월호)수록본 일부
- [LH 파주가든] 끌림: 더 컬러 오브 파주
- 사람들은 조각조각 흩어진 도시의 자연을 인식하지 못한다. 색깔 팔레트를 통해 파주의 다채로운 색을 모은 숲을 만들었다. 도시에서 잃어버린 자연을 회복하고, 자연에 대한 그리움을 해소하는 숲이 된다. 모든 것을 받아들이고, 모든 것을 내어주는 이 숲은 도시에 새로운 색을 입힌다. 대지의 기억을 따라 펼쳐진 팔레트는 자연스러운 지형을 만든다. 가든 팔레트는 색상을 통해 파주의 자연을 표현하고, 팔레트를 플랜터로 활용한 식재 연출을 통해 공간에 활기를 더한다. 빗물정원에는 체크댐을 설치해 우수 저장 기능을 높였다. *환경과조경439호(2024년 11월호)수록본 일부
- [LH 파주가든] 빅 282
- 282의 발음이 이파리와 닮았다는 점에 착안해 설계 개념을 설정했다. 자연과 도시의 두 공간이 융화하는 과정을 정원에 담아내고(‘2’82), 여덟 가지 잎 색을 활용해 계절별로 다른 모습을 감상할 수 있게 수목을 식재하고(2‘8’2), 큰 잎과 작은 잎의 모임을 형상화한 시설물을 배치했다(28‘2’). 큰(big) 이파리를 정원 콘셉트로 설정했다. 큰 이파리 모양으로 퍼걸러를 만들어 정원의 문주이자 랜드마크로 삼았다. 이 조형물은 정원에 방문한 시민들을 환영하고 정면의 언덕(자연)으로 이동하도록 유도한다. 운정중앙공원에서 정원까지 오는 길에 있는 은행나무를 떠올리도록 은행 잎 모양으로 벤치를 만들었다. *환경과조경439호(2024년 11월호)수록본 일부
- [제도가 만든 도시] 제도가 만든 도시
- 연재를 시작한 지 어느덧 2년이 됐다. 여러 법제도가 어떤 목적과 수단으로 시행되며 어떤 의도치 않은 결과를 낳는지에 관심을 가져 왔고, 그간 몇몇 연구와 수업에서 다루기도 했다. 그러나 이 주제로 열두 번의 글을 쓰는 건 정말 어려운 일이었다. 생각해 두었던 ‘거리’가 금세 떨어져 솔직히 고백하자면 중복해서 등장한 소재도 있다. 연재 전에 알고 있던 것 이상으로 연재를 하면서 알게 된 것도 많다. 쓰고 지우기를 무한 반복하며 문장을 짓는 나의 대책 없는 글쓰기 방식에 대해서도 반성했다. 참 무모한 도전이었고, 부끄러움을 평생 지고 가야할 것 같다. 마지막 원고에 이르러 이 연재를 통해 무엇을 말하고자 한 것일까 돌이켜보며 열한 편의 원고를 찬찬히 다시 읽어 보았다. ‘제도는 정당한가, 그리고 효율적인가’라는 질문을 던지며 연재를 시작한 이래, 도시 제도와 우리 도시 공간의 ‘크기’, ‘비움’, ‘다양성과 통일성’, ‘생로병사’, ‘소유’, ‘자연’, ‘기능’, 그리고 ‘역사’에 관여하는 바를 이리저리 헤집었다. 특히 여러 현실 공간의 사례와 기사를 많이 다루려 했다(그림 2). 대개는 우리 도시 제도가 만든 공간 현상의 부정적 결과를 들추며 제도의 불완전함과 부작동, 나아가 부조리를 지적하기 위해서였다. 첫 원고에서 ‘제도는 좋은 것인가, 나쁜 것인가?’ 질문했지만, 역시나 비판이 쉽기 때문이다. 전보다 더 나은 도시 공간을 만드는 데 기여한 도시 제도도 많고, 제도 자체도 더 좋은 방향으로 발전해 왔는데 그런 부분은 충분히 다루지 못했다. 각 꼭지에서 이야기하고 싶었던 내용들을 되짚어 보면 다음과 같다. 도시의 ‘크기’에 관여하는 제도는 ‘최소’, ‘최대’ 같은 기준으로 도시의 웬만한 공간 요소의 크기를 재단한다. 우선적으로는 더 높고, 더 넓은 공간을 만들고자 하는 개인의 욕망을 공공의 이익을 해치지 않는 선으로 제한하기 위한 목적에서다. 그러나 동시에 ‘크기’에 관여하는 제도는 더 높고, 더 큰 도시를 향한 우리 사회의 집단적인 욕망을 수용하고 혹은 부추기며, 작은 공간에 더불리하고 가혹하게 작용하는 ‘이중 플레이’를 해온 것도 사실이다. 그런데 내 방 창문의 크기부터 도시의 크기까지, 도시 공간의 크기를 정하는 제도가 못하는 것이 있다. 도시의 크기를 줄이는 것이다. 도시 자체의 ‘크기’에 관여하는 현대의 도시계획 제도는 오로지 인구가 늘어나는 것을 전제하고 그에 맞춰 도시를 넓혀 짓는 물레라서 거꾸로 돌아가지 않는다. 인구가 감소하는 만큼 이미 만들어진 도시를 합리적으로 줄여나가기 위한 도시계획 제도는 사실상 아직 없다. 그러나 인구 감소를 넘어 소멸을 우려하는 지방 소도시에서도 기성 시가지 밖 새로운 땅에 새로운 건물을 짓는 것을 허용하는 물레는 여전히 돌아가고 있어 사실상 도시를 늘려가고 있는 셈이다. 도시의 ‘비움’에서는 공공이 마련하는 ‘공동의 비움’과 민간이 대지 단위에서 확보하는 ‘개별의 비움’ 간의 균형에 대해 질문을 제기했다. 우리 도시의 주거지에서 단지형 아파트가 점점 더 우세해지는 상황은 도시가 공유하는 비움이 아닌 외부에 배타적인 비움이 늘어나는 상황으로 이어진다. 더 큰 문제는 도시 안에서 그 분포와 역할이 다른 두 비움 간의 적정한 배분이나 상호 관계에 대해 도시 제도가 거의 관여하지 않는다는 것이다. 달리 말해 ‘공동의 비움’을 만드는 제도와 ‘개별의 비움’을 만드는 제도는 각각 움직인다. *환경과조경439호(2024년 11월호)수록본 일부 유영수는 서울대학교 건축학과와 동 대학원을 졸업하고 이로재와 기오헌에서 건축 실무를 경험했다. 런던 정치경제대학교에서 도시 디자인과 사회과학 석사과정을 마치고 돌아와 건축사사무소를 운영하며 서울대학교 환경대학원에서 박사과정을 병행했다. 현재는 인천대학교 도시건축학부에서 법, 제도, 현대 도시설계 이론, 스튜디오를 가르치고 있다. 건축과 도시를 아우르는 스케일에서 개별적인 공간 현상과 법제 사이의 관계를 연구하고, 계획과 디자인의 역할을 확장하기 위한 이론적 접근을 시도하고 있다.
- [해륙순환 도시주의] 바당 가는 길
- “바당서 나오당 다쳐시녜” 바당밭으로 들어가는 길 위 이씨 삼춘(삼촌의 제주 방언)의 한 팔이 굽어 있었다. 푸른 깁스가 무심히 그의 팔을 감쌌다. 수확한 물건을 들고 오던 삼춘은 젖은 현무암에 미끄러졌고. 그 와중에도 삼춘은 성한 한 팔로 갈퀴를 쥐고 사락거리는 검붉은 톳을 바당밭 앞 시멘트 도로에 펼치고 있었다. 해녀는 바다와 땅을 오간다지만 인간은 본래 땅 위에 사는 동물이다. 숨을 쉴 수 있고 두 발로 설 수 있는 안정적인 2차원의 땅과는 달리, 바다는 잠시 숨을 참고 방문하는 중력과 부력 사이의 3차원 공간이다. 그 둘을 오가는 데는 다양한 기술(테크닉과 테크놀로지)이 필요하다. 호흡을 참고 내쉬는 기술(숨비질), 한기를 견디는 기술, 물건을 채집하고 물 밖으로 운반하는 기술(테크닉)부터 물에 떠서 잠시 기댈 곳이 되어주는 테왁, 잡은 물건을 넣는 망사리, 고무옷, 물안경과 같은 도구, 몸을 덥히는 불턱이나 목욕을 할 수 있는 탈의장, 바당밭 진입로와 해녀배가 접안할 수 있는 항구와 같은 기반 시설까지(테크놀로지). 이러한 기술들은 다양한 관습과 제도와 맞물려 바당밭을 오랫동안 가꿔왔다. 첫 번째 글 “잠수하는 풍경”에서 필자는 해륙순환 도시주의를 해녀가 땅과 바다를 연결시키듯 건축과 조경이 수면 위아래의 다양한 행위자들의 (부가)생산물들을 호혜 교환하는 지역적 시스템으로 정의했다. 이번 글에서는 이 순환을 가능하게 하는 기술과 제도로써 고무옷과 금채기, 바당밭 진입로와 물마중을 살펴보려 한다. 그리고 필자가 참여한 물마중의 경험을 통해 땅과 바다를 연결시키는 기술로써의 ‘길’과 해녀 공동체와 바깥 사회를 연결하는 사회적 연결로써의 ‘길’을 새롭게 상상해보겠다. 고무옷과 금채기 땅과 바다를 오갈 수 있게 하는 많은 기술 중에서 해녀의 물질을 가장 많이 변화시킨 것은 1970년대 고무옷의 도입이었다. 이전까지만 하더라도 해녀들은 물적삼과 물소중이라고 부르던 무명이나 광목 소재의 작업복을 직접 만들어 사용했다. 물질에 최적화된 디자인이었지만 젖은 무명이나 광목은 바다 속 한기를 막기에는 역부족이었다. 그래서 해녀들은 물에 들어가기 전, 중간, 후에 언 몸을 녹이기 위해 바다로 들어가는 길목에 불을 피우는 자리인 불턱을 만들었다. 불턱에서 몸을 녹이고 들어가도 작업 시간은 30분에서 한 시간 내외였다. 자신의 숨 길이와 추위로 인한 작업 시간의 한계가 자연스럽게 바당밭의 고갈을 방지했다. 하지만 짧은 물질과 불턱으로 몸을 녹이던 작업 리듬이 고무 잠수복의 도입으로 바뀌었다. 일본에서 사온 고무옷을 입은 해녀들이 3~5시간 작업을 하며 4배에서 5배 더 많은 물건을 수확하자 이 기술의 도입을 반대하는 해녀들이 생겼다.(각주 1) 그들은 갑자기 증가한 생산성으로 인해 “물건이 씨가 말라”버릴 것을 걱정했다. 고무옷 도입을 찬성하는 해녀들은 고무옷이 가져온 열적 편의(thermal comfort)와 생산성의 향상, 경제적 이득을 우선시했다. 해녀 공동체는 이러한 논쟁을 고무옷과 함께 자원 고갈을 방지할 여러 제도를 도입하는 것으로 해결했다. 그간 불문율로 존재했던 관습을 ‘공동어장관리규약’으로 문서화해 물질 시간을 제한하고, 계절에 따라 건질 수 있는 물건의 종류와 크기 등을 규정하고, 자치 기구를 두어 이 규칙을 집행·감독했다. 예를 들어 해녀의 주요 수입원 중 하나인 뿔소라의 경우 산란기인 6월부터 9월까지 채집을 금했고(금채기), 7cm 이하의 소라는 잡거나 판매하지 않음으로써 지속가능하게 했다. 채집하는 양을 조절하는 것뿐만 아니라 해녀는 바당밭에 ‘씨’를 뿌리기도 한다. 바당밭 내의 ‘자연 양식장’을 두어 소라나 전복, 해삼의 작은 개체들을 풀어주고, 이것이 자랄 때까지 그 구역에서 물질을 금지했다.(각주 2) 또한 해초의 경우, 돌미역이나 톳, 그리고 비료로 사용하던 듬북까지도 특정 기간에는 채집을 금지해 이것이 충분히 자랄 수 있도록 했다. 이렇게 해녀들은 “공유의 비극을 넘어” 바당밭을 보존해올 수 있었다.(각주 3) *환경과조경439호(2024년 11월호)수록본 일부 **각주 정리 1. 고광민, “『탐라순력도(耽羅巡歷圖)』 속의 해녀 연구”, 『무형유산』 6, 2019, p.232. 김경돈, 류석진, “비배제성과 경합성의 순차적 해소를 통한 공유의 비극의 자치적 해결방안 모색: 제주도 동일리 해녀의 자치조직 사례를 중심으로”, 『한국정치연구』 20(3), 2011. 2. 안미정, 『제주 잠수의 어로와 의례에 관한 문화인류학적 연구: 생태적 지속가능성을 위한 문화전략을 중심으로』, 한양대학교 박사 학위논문, 2007, p.119. 3. 엘리너 오스트롬, 『공유의 비극을 넘어』, 알에이치코리아, 2010. 해녀 공동체가 어떻게 오스트롬이 정리한 지속가능한 공유 자원의 여덟 가지 특징을 가지고 있는지는 노우정의 『제주 해녀공동체의 특성과 지속가능한 마을어장 관리』(제주대학교 석사학위논문, 2021)를 참조. 강준호는 존재와 제도가 만든 풍경을 읽는 건축가다. UCLA에서 건축과 미술사를 복수전공한 뒤 하버드 디자인 대학원(GSD)에서 건축학 석사를 마쳤다. 이후 게럿 도허티(Gareth Doherty) 교수의 비평적 조경 디자인 연구소(Critical Landscapes Design Lab)에서 연구원으로 일하며 해안 지역의 기후 변화 인식을 조사했다. 현재 건축가와 정원사로 일하며 조경과 건축을 함께 실천하려 노력하고 있다. @junho_s_kang
- [어떤 디자인 오피스] 서도
- 오피스의 시작 사무실을 시작한 건 설계를 하다 보면 장소가 지닌 정체성을 단순히 컴퓨터 화면과 종이의 결과물로 구현할 수 없다는 갈증 때문이었다. 이 갈증을 해소하기 위해 시작한 게 디자인 빌드였다. 사무실 개소 후 첫 디자인 빌드 프로젝트는 보리(Voree)였다. 보리는 서해라는 서사가 담긴 랜드스케이프와 농경 문화가 스며 있는 장소다. 이 지역이 가진 독창적 정체성을 유지하는 동시에 지역의 고유한 질감을 디자인에 반영하고자 했다. 이러한 과정을 통해 서해의 석양과 청보리, 메밀의 생산적 경관을 감상하는 공간이 만들어졌고, 지속가능한 로컬리티가 형성됐다. 클라이언트, 건축가, 조경가, 시공자가 긴밀하게 협의했다. 덕분에 보리만의 고유한 정체성이 드러나는 공간을 만들 수 있었다. 장소의 탐구와 해석 오랜 세월 동안 장소는 생태학적 요소와 인문학적 요소로 인해 고유한 모습으로 변화한다. 그래서 우리는 과거와 미래를 이을 수 있게 현 시점에 필요한 순기능을 디자인 요소로 도입해 지속가능한 경관을 만들고자 한다. 이러한 과정을 거쳐 조성된 공간은 긴 생명력을 지니게 되고 동시대의 공유 공간이 된다. 보리는 영광군 백수해안도로 한편에 위치한 작은 카페다. 프로젝트를 시작하며 지역의 고유한 랜드스케이프를 발굴하는 과정을 가졌는데, 그때 해안가의 차가운 바닷바람을 맞으며 자란 청보리, 해안 절벽과 석양을 감상할 수 있는 잠재적 자원을 찾을 수 있었다. 이곳을 새롭게 조성하기보다는 기존 경관을 온전히 이어갈 수 있는 설계를 하며 지역 고유의 질감을 유지하고 주변 자연 경관에 순응하게 했다. 전면에 긴창이 설치된 건축물에서 석양과 청보리밭의 파노라마 경관을 감상할 수 있다. 차경을 통해 방문객이 건축물 내부에서 자연 경관을 감상하고, 외부로 나와 자연의 경이로움과 서사적 풍경을 직접 경험하길 바랐다. 이를 위해 외부 공간으로 안내하는 유입 요소가 필요했다. 청보리밭에서 해안 절벽의 파도 소리와 석양을 감상할 수 있는 두 곳을 결절점으로 설정했다. 결절점에는 인근 지역에서 자란 팽나무를 식재했으며, 목재 오브제를 설치해 방문객의 흥미를 유발하고 진입을 유도하고자 했다. 그늘목 아래에 서면 서해의 환상적인 해질녘 경관을 감상할 수 있다. 고유한 질감 찾기 땅의 기억과 흔적 장소의 고유한 질감은 땅의 기억과 흔적에 새겨져 있다. 용산어린이정원 프로젝트에서는 현장에서 독특한 반달 패턴의 담장을 발견했다. 반달 형태의 콘크리트 블록을 패턴화해 이 장소의 고유한 색상과 질감을 표현했다. 아이들의 생각을 담을 수 있는 반달 모양의 낙서판, 가족들이 담소를 나누는 반달 테이블, 다채로운 활동을 유도해 생동감을 불어 넣는 두더지 잡기, 용산 미8군 클럽무대에서 모티브를 얻은 무대 놀이터 등 독특한 패턴의 디자인을 통해 이 지역의 기억과 흔적의 이야기를 담고자 했다. 시경원(時景園)에서도 비슷한 시도를 했다. 대상지는 고봉산의 낮은 구릉지에 야생 초지의 흔적이 남아 있는 곳이었다. 그 지역이 지니고 있는 경관적 특성과 땅의 흔적을 존중하여 장소가 지니고 있던 기억에 어긋나지 않고 온전히 이어갈 수 있도록 그 지역의 식생 경관을 그라스와 암석 소재를 활용해 디자인했다. 소재의 물성 재료의 물성이 그대로 드러나는 소재를 활용해 디자인한다. 재료 본연의 질감을 감상할 수 있으며, 시간 변화에 따라 재료의 물성도 함께 변화해 단조로움에서 벗어날 수 있기 때문이다. 암석은 지역마다 색상과 질감이 다르다. 예부터 마을의 담장에 쓰인 돌은 집터, 경작지에서 나오기도 하고, 주변 산이나 강가에서 주워 오기도 했다. 이러한 방식을 통해 지역마다 석재의 특성을 구분했다. 그래서 그 지역에서 생산되는 암석을 활용해 디자인에 적용한다. 목재도 종종 활용한다. 목재는 시간의 물성을 잘 나타내는 소재다. 영구적이지 않고 오랜 시간이 지나면 다시 자연으로 환원된다. 시간의 흐름에 따라 색감과 질감의 물성이 변화한다. 주변 온도에 민감하게 반응하지 않아 사람의 피부가 닿는 곳에는 목재를 주된 소재로 활용한다. 식물 식물로 고유한 질감을 만들어내는 건 어려운 일이다. 자연스레 씨가 떨어져 오랜 시간 동안 천이 과정을 통해 만들어진 식생 경관을 아무리 비슷하게 묘사하더라도 본연의 모습을 구현하기가 쉽지 않다. 그래도 최대한 유사하게 연출하기 위해 주변 식생을 관찰하고 관련 문헌 조사를 진행한다. 대상지 인근 지역의 생태 조사 보고서를 참고하다 보면 지역 자생종과 식생 환경에 대한 가이드라인을 살펴볼 수 있다. 이러한 기초 자료를 토대로 기후 조건, 생육 환경, 수급 여부를 고려해 수종을 선정한다. 인문학 관련 문헌을 조사하면 식물에 담긴 이야기를 찾을 수 있다. 예를 들어 이끼는 맨땅이 드러나 식물이 전혀 없는 곳에 가장 먼저 나타나 다른 생물이 살 수 있는 터전을 만들어 주는 식물로 알려져 있고, 과거에는 아기 기저귀 재료로 사용됐다는 이야기가 담겨 있는 식물이다. 이렇듯 식물에 담긴 이야기는 사람들이 좀 더 쉽게 자연과 교감할 수 있는 흥미로운 요소로 작용한다. 이러한 생태학적, 인문학적 특성을 고려해 수종을 선정하고 식재 디자인을 한다. 식재 디자인은 다양한 색감을 이용한 화려하고 돋보이는 식재 패턴보다는 일상에서 흔히 볼 수 있는 자연의 색감을 이용해 자연이 주는 서정적 느낌을 전달하고자 한다. 보태니컬 커뮤니티 사람들이 자연을 찾는 이유는 무엇일까. 바쁜 일상을 잠시 뒤로 하고 자연이 전해주는 위안과 환기의 시간을 갖고 싶기 때문이라고 생각한다. 보태니컬 커뮤니티(botanical community)는 생명의 근원이 되는 식물을 매개체로 자연과 사람을 이어주는 역할을 한다. 인사이드 아웃 가든(Inside Out Garden)은 친근한 영화 캐릭터와 정원이 결합된 형태로 사람들이 좀 더 쉽게 자연을 이해하고 친근하게 접근할 수 있도록 했다. 아홉 가지 색깔이 전하는 식물 이야기를 통해 불안한 마음을 잠시 잊고 마음 속 평온함을 느끼길 바랐다. 대상지는 한강의 서사적 풍경을 차경할 수 있는 입지적 특성이 있다. 한강을 온전히 감상할 수 있도록 눈높이보다 낮은 수종을 식재해 열린 시야를 확보했다. 또한 퇴적층이 형성된 토양으로 원활한 배수가 힘든 구조였다. 토양 치환 및 마운딩을 통해 배수를 원활히 하고 땅의 지력을 높여 생육 환경을 개선했다. 휠체어와 유모차가 진입할 수 있게 보행 동선 폭을 1.5m 이상 확보해 누구든지 편하게 접근하게 했다. 보행 편의성, 내구성을 고려하여 워싱 콘크리트로 바닥을 포장했다. 캐릭터가 위치한 곳에는 높이가 낮은 암석을 함께 배치하여 잠시 걸터앉아 쉴 수 있게 했다. 영화 ‘인사이드 아웃’에 등장하는 감정들의 아홉 가지 색깔을 고려해 아홉 가지 색상 구역을 형성했다. 진입부는 웰컴 정원으로 기쁨을 상징하는 옐로우 존으로 설정했다. 구역마다 색깔을 고려해 식재를 연출했다. 열매가 붉은 계열인 산사나무와 팥배나무는 레드 존, 보라색 열매가 있는 뽕나무를 퍼플 존, 단풍색을 고려하여 계수나무를 오렌지 존에 식재했다. 관목과 초화류는 구역별 색상을 고려해 식재했다. 자연이 전해주는 환기와 쉼의 여백 드라마 ‘미스터 션샤인’에 이런 대사가 나온다. “내 원체 무용한 것들을 좋아하오. 달, 별, 꽃, 바람, 웃음, 농담 그런 것들 …… 그렇게 흘러가는 대로 살다가 멎는 곳에서 죽는 것이 나의 꿈이라면 꿈이오.” 무용(無用)은 ‘아무런 쓸모가 없다’는 뜻이다. 우리는 비생산적인 무용한 것들을 잊고 살아갈 때가 많다. 그래서 땅과 물, 빛과 바람, 자연의 생명력을 만나는 곳에서 잃어버렸던 무용의 아름다움을 발견해 우리의 삶이 자연으로부터 다시 회복되길 바라며 설계에 임한다. 도시에서 잠시 벗어나 나지막한 언덕이 있는 헤아림(林) 정원에 들어오면 새소리와 꽃내음 등 자연이 전해주는 생명력과 무용의 아름다움을 만날 수 있다. 이곳에는 오랜 세월 동안 함께 지내온 능수버들나무와 산들바람이 부는 언덕이 있다. 능수버들나무 테이블에 앉아 자연이 주는 느긋한 여유를 즐기기도 하고, 나무와 꽃, 돌담이 있는 언덕에 오르면 정원의 풍경과 한강이 전해주는 쉼의 여백을 느낄 수 있다. 정원의 중점이 되는 버드나무 경관을 유지할 수 있도록 색감이 화려한 식재보다는 암석을 활용한 연출로 버드나무를 강조했다. 능수버들 나무 아래에는 커뮤니티 테이블을 설치해 담소와 간단한 식음 공간으로 활용하고 테이블 하부의 일부를 개방해 휠체어 이용자도 불편함 없이 이용하게 했다. 브랜드 슬로건과 BI에서 모티브를 얻은 돌담을 조성해 해당 브랜드의 정체성을 드러내고자 했다. 돌담의 높이는 눈높이보다 낮게 해 시각적 개방성을 강조했다. 정원에는 인위적 시설을 배제하고, 돌, 나무, 꽃 등 자연 소재를 활용해 아이들이 건강하게 놀고 체험할 수 있는 공간을 조성했다. 아카이빙 오피스의 미래는 프로젝트를 진행하다 보면 매번 반복적인 문구를 쓰게 된다. 주변 경관에 순응, 지역 고유한 색상과 질감, 온전히 이어가는 디자인, 진귀하고 화려함이 강한 수종보다는 인근 지역 환경에 적응한 수종 중심으로 식재, 자연 소재 등등. 돌이켜 보면 이 모든 게 16년 동안의 실무 경험을 통해 얻은 지혜와 이치라는 생각이 든다. 옛 우리 선조들이 그렸던 ‘원(園)’의 모습은 수려한 산과 맑은 물이 흐르고 양지바른 곳에 터를 잡아 경관을 감상하는, 그야말로 한 폭의 수묵화를 보는 풍경이다. 정원을 자연의 일부로 받아들이고 주변 경관의 일부가 되는 정원을 그려낸 것이다. 우리 정서에 맞는 정원은 이런 모습이 아닐까. 원고를 쓰기 위해 예전 자료들을 살펴보며 잠시 잊고 있었던 랜드스케이프가 사람들에게 전해주는 의미가 무엇인지 다시금 생각하며 스스로에게 울림이 있었던 시간을 보냈다. 스튜디오 명칭을 리스케이프 대신 서도라고 새로 바꿨다. 이름에 담긴 뜻처럼 지혜와 이치를 탐구하고 장소에 새로운 연속성을 부여하는 랜드스케이프를 그려나가고 싶다. 서도(諝道, 구 리스케이프)는 자연과 사람이 함께 머무는 곳을 작업하는 디자인 스튜디오다. 2020년에 문을 열어 조경설계, 정원 디자인 빌드 프로젝트를 진행하고 있다. 서도는 한자로 ‘지혜’와 ‘이치’란 뜻을 담고 있으며, 장소에 축적된 랜드스케이프의 본질적인 탐구와 해석을 통해 새로운 연속성을 부여하는 디자인을 추구한다. LH 공공주택 작가정원, 팜 보리(Farm Voree), 신사동 사옥 건축 외부 공간 등 다양한 프로젝트를 진행했다.
- [밀레니얼의 도시공원 이야기] 기념과 기억 사이
- 에피소드 1. 용산공원에서 내셔널 몰까지 12시간 15분 오전 5시 10분, 우려와 달리 눈이 번쩍 뜨였다. 몇 달을 기다려온 출장이다. 올해 ASLA(American Society of Landscape Architects)(미국조경가협회) 대회가 워싱턴 DC에서 열린다는 소식에 으쌰으쌰 발표 자료를 만들어냈다. 동료 발제자들과 용산공원의 시민 참여에 관한 다양한 켜를 다루는 교육 자료를 준비했는데, 과연 이게 먹힐지 모르겠다는 의문과 열심히 준비해 좋은 성과를 내고 싶다는 마음이 공존했다. 사실 여러모로 조경과 연관 있는 도시인만큼 그냥 간다고 해도 누가 뭐라 하겠냐만 왠지 모르게 ‘대회’, ‘학술’, ‘답사’라는 키워드를 끼고 가야 양심이 덜 아프다. 집 현관에서 워싱턴 DC 숙소까지 비행 시간 열두 시간을 포함해 꼬박 열여덟 시간이 걸렸다. 발표 준비를 완벽하게 못 했다는 걱정도 잠시, 파란 하늘과 듀폰 교차로 광장(Dupont Circle) 주변 예쁜 역사 유적지들이 마음을 들뜨게 했다. 역시 집 바깥은 즐겁다. 내셔널 몰이 ‘몰’인 이유 몰(mall)하면 떠오르는 첫 번째 모습이 쇼핑몰이다. 긴 보행로 양측으로 상점가가 길게 늘어선 실외 또는 실내 공간. 하지만 녹지를 양옆으로 둔 긴 가로도 몰이라고 부른다. 후자에 해당하는 몰의 어원은 16세기와 17세기로 거슬러 올라가는데, 오늘날 크리켓의 원형인 펠-멜(pall-mall) 게임에서 따왔다는 설이 유력하다.(각주 1) 실제로 그 모습을 그린 그림을 보면 그제야 어원을 납득할 수 있다. 판더페너의 그림은 녹지 공간 사이 선형으로 길쭉한 경기장을 담고 있다. 손잡이가 긴 나무 망치로 공을 쳐서 멀리 위치한 골대로 가게 하는 게 게임의 목적이다. 즉 ‘녹지를 양옆으로 둔 선형의 넓은 가로’라는 점에서 이 공간이 오늘날 공원이나 오픈스페이스의 몰이 된 것이다. 이 어원을 염두에 두면 결국 몰이란 녹지를 양옆에 둔 넓은 직선형 오픈스페이스라고 정리할 수 있다. **각주 정리 1. 이탈리아어로 공과 나무 망치를 의미한다. *환경과조경439호(2024년 11월호)수록본 일부
- 청주대학교 조경도시학과 50주년 기념 디자인 벤치와 정원
- 1973년 신설된 청주대학교 조경도시학과는 조경학과 도시계획학을 기반으로 국토 환경을 계획, 설계, 시공, 관리하기 위한 전문가 양성을 도모한다. 국토와 환경 전반에 걸친 다양한 교육과 연구를 활발히 진행하고 있다. 깊은 역사를 지닌 조경도시학과의 설립 50주년을 맞이해 9월 26일부터 이틀간 50주년 기념행사가 개최됐다. 옥화자연휴양림 휴양관에서 진행된 ‘동문한마당’에서 자랑스러운 청주인 50인 감사패 수여, 50주년 슬로건 퍼포먼스 등 다양한 프로그램과 선후배 간의 친목을 다지는 이벤트를 진행했다. 조경도시학과는 50주년을 기념하고 정원 문화 확산과 지역 사회 공헌에 기여하고자 청주시가 주최하는 ‘2024 청주 가드닝 페스티벌(이하 가드닝 페스티벌)’에서 참여정원을 조성했다. 또한 동문들이 직접 설계하고 제작한 벤치 50개를 기증했다. *환경과조경439호(2024년 11월호)수록본 일부
- 공원도시 인천
- 코로나19 팬데믹 이후, 도심 녹지의 중요성을 강조한 새로운 도시 패러다임이 제시되고 있다. 서울을 비롯한 여러 지자체가 정원도시를 비전으로 삼아 다양한 정책을 펼치는 한편 인천은 조금 다른 관점으로 도시 녹지시스템을 살피며 공원도시로의 도약을 꿈꾸고 있다. 지난 10월 8일부터 12일까지 열린 인천공원페스타에서 인천이 지향하는 공원도시의 틀을 엿볼 수 있었다. 인천공원페스타의 주제는 ‘소래, 인천의 꿈, 대한민국 미래공원’으로, ‘인천시민의 날’ 행사와 함께 진행됐다. 행사 첫날인 10월 8일, 송도국제도시 G타워 대강당에서 로버트 해먼드(Robert Hammand)의 특별 강연 ‘소래 도심 오아시스, 사회 인프라를 통한 인간과 자연의 연결’이 진행됐다. 해먼드는 맨해튼의 버려진 고가 철도를 도시공원으로 탈바꿈시킨 하이라인의 공동 설립자다. 그는 뉴욕 하이라인과 허드슨 강의 리틀 아일랜드(2022년 2월호) 사례를 소개하며 자연과 인간, 인간과 인간을 연결하는 인프라가 현대 도시 생활의 다양한 문제를 해결할 수 있다고 설명했다. 또한 소래습지생태공원이 인천의 웰빙 인프라의 잠재력을 갖추고 있다고 평가했다. *환경과조경439호(2024년 11월호)수록본 일부
- [기웃거리는 편집자] 다음을 꿈꾸는 반란
- 평소 관심이 없던 야구에 호기심을 갖게 하는 영상을 보게 됐다. 땡볕으로 달궈진 야구장의 홈 플레이트까지 전속력으로 달리고, 공을 잡기 위해 온몸을 던지고, 있는 힘껏 방망이를 휘두르고, 때론 패배의 슬픔을 주체하지 못해 땅에 닿을 정도로 고개를 숙이며 울고, 짜릿한 승리에 포효하는 까까머리의 소년들. 처음엔 만감이 교차하는 승패의 순간을 잘 담아낸 스포츠 영화 예고편인 줄 알고 봤는데, 알고 보니 2024 고시엔(Koshien) 하이라이트 영상이었다. 고시엔이 대체 뭐길래. 소년들이 이토록 열광하는 걸까. 대회가 열리는 구장의 이름에서 유래한 고시엔은 일본 고교 야구대회로 봄과 여름에 개최된다. 3,700개에 달하는 고등학교 야구부 중 지역 예선을 거쳐 올라온 49개의 팀이 우승을 두고 치열한 경쟁을 벌인다. 특히 올해 여름 고시엔은 한국계 고등학교 최초로 교토국제고등학교가 우승을 차지했다. 이들의 우승은 ‘꼴찌들의 대반란’에 가깝다. 창단 초기엔 제대로 야구를 배운 선수가 한 명에 불과했다. 제대로 된 운동장이 없어서 정식 훈련을 위해 다른 운동장을 빌려야 했고, 34 대 0이라는 굴욕적인 대패를 당하기도 했다.(각주 1) 역설적으로 대패를 안겨준 상대 팀 선수 고마키 노리쓰구(Komaki Noritsugu)는 고등학교 졸업 후 다니던 직장을 그만 두고 교토국제고의 감독으로 부임했다. 이후 좋은 성적을 거두기도 했지만, 올해 우승 직전까지 테이프로 감은 야구공으로 연습할 만큼 사정이 좋지 못했다. 그들의 사연을 접한 한국의 한 프로야구단이 연습공을 후원했다는 미담이 알려지기도 했다. 그들의 우승이 따뜻한 환대와 열정이 빚어낸 결과인 것 같아 고시엔 영상이 더 감동적으로 다가왔다. 감동에 잠시 허우적거리는 와중에 고시엔을 소재로 한 드라마를 우연히 발견했다. 드라마 ‘하극상 야구 소년’은 내일 사라져도 이상하지 않은 만년 꼴찌 야구부가 ‘고시엔 진출’이라는 하극상을 일으키는 과정을 다룬다.(각주 2) 형이 이루지 못했던 고시엔 진출이란 꿈을 대신 이루기 위해 야구부에 입단한 동생, 모종의 사건으로 인해 직무 정지가 됐음에도 불구하고 승리를 위해 부원들의 장단점과 상대 팀의 약점을 꼼꼼하게 파악해 부원들에게 건네는 감독, 빠른 속도로 에이스로 성장해 나가는 후보 선수를 위해서 자신의 선발 투수 자리를 기꺼이 양보하는 만년 에이스, 아파도 아픈 티를 내지 않고 선수들의 마음을 보듬고 사기를 올려주는 코치. 스포츠 영화의 클리셰인 꼴찌의 반란과 성장이란 서사가 어떻게 흘러갈지 알면서도 드라마를 보는 내내 응원하는 마음으로 그들의 성장을 지켜보았다. 이 꼴찌들의 반란이 좋았던 건 도파민을 자극하는 짜릿한 대반전이라는 점도 있지만, 단순히 시합의 스코어로 단박에 평가할 수 없는 숫자 너머의 이야기였기 때문이다. 열악한 환경과 시련을 이겨내고 하나의 그라운드 위에서 같은 유니폼을 입고 하나의 목표를 달성하기 위해서 전력 질주하며 경기장 안팎에서 고군분투하는 모습에 괜히 뭉클했다. 과장을 보태자면 대반전이란 결과를 완성해 나가는 지난한 과정이 아름다운 반란으로 다가왔다고 할까. 가을은 반란의 역사를 쓰는 야구 시즌이기도 하지만, 젊은 조경가의 계절이기도 하다. 젊은 조경가 수상이 조경가를 단박에 평가하는 단일한 잣대로 적용될 수는 없다. 하지만 이탈하거나 한눈팔지 않고 용기와 끈기를 갖고 자신의 세계를 완성하기 위해서 지난한 과정을 거치며 아름다운 반란을 꿈꾸는 이들에게 보내는 작은 위로 정도는 되지 않을까. 어쩌면 청춘의 특권은 반란일지도 모른다. 기존의 질서를 뒤집고, 무모한 꿈을 꾸며, 한계를 넘고 자 노력하는 이들 모두 청춘이다. 하극상 야구 소년의 주인공인 야구부 감독은 숱한 패배와 시련을 딛고 고시엔 진출이란 꿈을 이룬 후 이런 말을 한다. “한 가지 말씀드릴 수 있는 건 진다고 끝이 아니란 겁니다. 반드시 다음이 있습니다. 다음을 목표로 하는 한 우리는 끝나지 않습니다.” 올해 젊은 조경가 접수(마감은 11월 4일까지)를 놓쳤거나 수상을 못했더라도 다음을 꿈꾸는 조경가들이 많아졌으면 좋겠다. 다음을 꿈꿀 수 있다면 모두가 청춘이고, 모두가 젊은 조경가다. 그렇다면 고시엔 우승처럼 미래의 한국조경도 빛나는 대반전이란 다음을 꿈꿀 수 있지 않을까. **각주 정리 1. 홍석재, “25년 전 0-34 패배 안긴 선수가 감독으로…교토국제고 강자 우뚝“, 「한겨레」 2024년 8월 23일. 2. 2018년 고시엔에 진출한 하쿠산 고등학교 야구부의 실화를 바탕으로 했다. 당시 일본 언론은 이를 ‘일본 제일의 하극상’으로 보도했다.
- [편집자가 만난 문장들] 그것들이 때로 밖에서 닫히거나, 안에서부터 단단히 걸어 잠길 수 있다는 건
- 훈화 말씀 같은 건 적지 말자고. 땡볕이 여과 없이 꽂히던 운동장, 끝도 없이 이어지던 교장 선생님의 느릿한 목소리를 떠올리며 늘 다짐하곤 한다. 유치한 자기반성을 담은 글, 같잖은 가르침을 전하는 듯한 글은 일기장에나 적어야 한다고 말이다. 그런데 이번에는 좀 자신이 없었다. 너무 엄청난 소식에 복합적인 감정이 몰려와서일 테다. 한강, 노벨문학상 수상! 한국 최초 수상자인 것은 물론이고, 아시아 여성으로서도 처음, 유색인종 여성으로서는 두번째 수상이다. 처음에는 믿기지 않아 눈만 껌뻑였고, 친구들과 메신저로 떠들면서 서서히 현실의 감각을 되찾았다. 보탠 것도 없으면서 내가 상을 받은 것 마냥 기뻤다. 본 적 없는 서점 오픈런 사태와 밤새 기계를 돌렸다면서도 미소를 숨기지 못 하는 인쇄소 사장의 인터뷰를 보면서는 독서 붐이 잡지에까지 영향을 미쳐 구독자가 폭발적으로 늘어나는 망상을 했다. 멈추고 싶었지만 한강이 최근 루소의 『식물학 강의』를 읽고 있다는 인터뷰가 허무맹랑한 상상을 부채질했다.(각주 1) 대구와 광주. 이달에는 유독 취재 장소가 서울에서 멀어 버스와 기차에서 보내는 시간이 길었다. 한숨 자고 일어났는데도 여정이 남아 있을 때면 스웨덴 한림원의 심사평을 꺼내 읽었다. “한강은 자신의 작품에서 역사적 트라우마와 보이지 않는 규칙에 맞서고, 인간 삶의 연약함을 폭로했다. 그녀는 신체와 영혼, 산 자와 죽은 자 사이의 연결고리에 관한 독특한 인식을 시적이고 실험적인 현대 산문으로 표현한 혁신가다.” 한강이 다루는 소재 때문일까, 그의 책을 읽고 있으면 참 사람이 징그럽고 싫어진다. 연약함을 핑계로 사람은 어디까지 폭력적이고 악랄해질 수 있을까. 생각하다 보면 나라는 존재도 혐오스럽게 느껴진다. 하지만 한강의 소설 쓰기에 늘 동력이 되었던 게 인간이기 때문인지, 싫어도 계속해서 골몰하게 된다. 인간다운 삶이란 무엇인가. “저는 언제나 인간이 어떤 존재인지에 대해, 그리고 산다는 게 대체 무엇인지에 대해 자꾸 생각하는 사람이었던 것 같습니다. 그런 고민을 매번 다른 방식의 소설들로 다루고 싶어했고요. …… 생각하고 서성이고 고민하고 질문하고 길을 잃고 우회하고 되돌아오고……. 그런 일이 소설을 쓰는 일이라고 지금도 느낍니다. 그렇게 질문들을 다루는 방식으로 글을 쓰는 것이라고요.”(각주 2) 맥락 없이 느껴지더라도 그냥 좋아하는 한강의 소설을 소개하고 싶었다. 마침 찬바람이 불기 시작하는 계절과 잘 어울리는 『희랍어 시간』. 언어를 잃은 여자와 점점 시력을 잃어가는 남자의 이야기가 고요 속에서 흘러간다. 이소연 문학평론가는 “말을 잃어가는 한 여자의 침묵과 눈을 잃어가는 한 남자의 빛이 만나는 찰나의 이야기”라고 이를 바꾸어 말하기도 했다. 이때 언어는 세상과 만나는 소통의 수단이 아니라, 한 사람을 구성하는 필수적인 무언가다. 언어를 점차 잃을 때마다 조금씩 여자의 정체성과 존재 자체가 무너지는 소리, 절대 들릴 리 없는 그 소리가 내게는 침묵이 만든 공백 속에서 천둥처럼 울려댔다. “눈이 하늘에서 내려오는 침묵이라면, 비는 하늘에서 떨어지는 끝없이 긴 문장들인지도 모른다”(각주 3)는 문장을 만나고 난 뒤로는 눈이 쌓인 풍경을 마주하면 눈의 차가움보다 귀를 먹먹하게 만드는 소리의 감각을 먼저 느낀다. 너나 할 것 없이 말하고 소리내기 바쁜 시대에 닫힌 입술이 갖는 힘을 생각한다. “가끔 이상하게 느껴지지 않나요. 우리 몸에 눈꺼풀과 입술이 있다는 건. 그것들이 때로 밖에서 닫히거나, 안에서부터 단단히 걸어 잠길 수 있다는 건.”(각주 4) 여자의 말은 “침묵은 능동적인 것이고 독자적인 완전한 세계”(각주 5)라는 막스 피카르트의 말을 이해할 수 있도록, 연필을 쥔 손을 찬찬히 움직여 스케치북 위에 그려내는 행위 같았다. 동시에 온전히 나의 결심으로만 닫아버릴 수 있는 눈꺼풀과 입술이 내게 있음을, 그것이 얼마나 단단한지를 새삼 깨달았다. “길었던 하루가 끝나면 침묵할 시간이 필요하다. 난롯불 앞에서 자신도 모르게 그렇게 하듯, 침묵의 미미한 온기를 향해 굳은 손을 뻗어 펼칠 시간이.”(각주 6) 언젠가 그 적막의 시간을, 지금은 사람이 몰려 잠시 문을 닫은 한강이 운영하는 ‘책방오늘’에서 보내고 싶다. **각주 정리 1. 김유태, “고단한 날, 한 문단이라도 읽고 잠들어야 마음이 편안해집니다”, 「매일경제」 2024년 10월 11일. 2. 위의 글 3. 한강, 『희랍어 시간』, 문학동네, p.174. 4. 위의 글, p.161. 5. 막스 피카르트, 최승자 역, 『침묵의 세계』, 까치, 2010. 6. 한강, 『흰』, 문학동네, p.126.
- [PRODUCT] 현대적 감성의 블록 로드페이버
- 다양한 기능과 형태를 갖춘 보도블록이 등장하며 여러 변신을 꾀하고 있다. 2020년대부터는 여러 색이 혼합된 블렌딩 블록이 주목받았다. 정형화된 정사각형 블록에서 벗어나 한 가지 색상으로 다양한 규격의 블록을 조합한 멀티 블록이 인기를 끌기도 했다. 하지만 다양한 규격에도 불구하고 멀티 블록은 블록과 블록 사이의 간격이 좁다. 또한 다양한 규격이지만 단조로운 직선 형태로 구성돼 기존의 정형화된 블록과 비교해서 눈에 띠는 디자인적 차별성을 갖기 어렵다. 자연친화적 기능성과 시대적 흐름에 맞춘 디자인을 지향하는 보도블록 디자인 브랜드 ‘리비오블록’은 차별화된 블록 개발에 매진하고 있다. 한림로덱스와 공동으로 개발한 ‘로드페이버(Road Paver)’는 블록 간 일정한 간격을 유지하며 각기 다른 형태의 블록을 불규칙하게 배치해 다양한 패턴을 만들어낸다. 블록 간 간격이 명확한 선은 자연스러운 돌 포장 패턴을 만들고, 블록 사이로 빗물이 스며들게 해 빗물 투수성을 높인다. 용도에 따라 투수성과 불투수성 중 하나를 선택해 사용할 수 있고, 충분한 휨과 강도를 갖추고 있다. 정형화된 블록에서 벗어나 색상과 표면 질감을 현대적 감성으로 풀어냈다. 옐로우, 베이지, 그레이 등 다섯 가지로 구성된다. 각 색상은 세 가지 안료를 절묘하게 혼합해 만든 것으로 색상이 가진 고유한 부드러운 느낌을 강조한다. 표면의 요철은 햇빛에 반사되며 다채로운 인조 사암의 질감을 재현한다. TEL. 02-6928-5588 WEB. www.ribio.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