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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비트로 상상하기, 픽셀로 그리기] 캔디렌더와 포스트 프로덕션
  • 환경과조경 2020년 6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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캔디렌더

안개비와 구라파적 가스등이 없더라도 누구나 해질녘이 되면 다른 사람들과 어울리고 싶어지기 마련이다. 하지만 나는 늘 그렇듯 뻔한 거짓말을 적당히 둘러대고는 커피숍으로 달려가 새로운 트럼펫 연주에 어울리는 컴퓨터 작업을 시작했다. 지난주부터 왠지 모르게 다음 연재를 위한 캔디렌더(Candy Render) 이미지(그림 1)를 무척이나 만들고 싶었다. 다른 소장들은 새로운 수주에 관해 수줍게 이야기하거나 최근에 만든 서로의 작품을 칭찬하는 것을 좋아하는데, 나는 혼자 렌더링 같은 것을 만들고 있다고 하면 아마 모두 비웃을 거다. 그래스호퍼나 넙스 같은 얘기를 더 할까도 생각해봤지만 몇 달째 반복되는 똑같은 얘기들은 우리 사이를 다시 피곤하게 할 것만 같았다.


캔디렌더는 파라메트릭도 아니고 초연결 사회의 교차점에 걸려 있는 그림도 아니며, 로버트 글래스퍼(Robert Glasper)가 세련되게 믹싱한 새로운 시대의 재즈도 아니다. 그저 브이레이의 커스틱스(Caustics) 효과를 포토샵으로 따라 한 사탕 느낌의 이미지일 뿐이다. 지금까지 패시브한 성격을 자조적으로 고백하는 우울한 디자이너를 애써 흉내 내왔는데, 귀여운 성향을 갑자기 고백하다니 나도 나 자신을 잘 모르겠다. 오늘은 과묵하게 말을 아끼다가도 내일은 엄청나게 수다스러워지고 마는 거다.

 

포토샵 포스트 프로덕션

적당히 어려운 얘기만 하다 연재를 마칠 생각이었다. 아무에게도 관심 받지 않고 고독하게 마감하려고 했다. 하지만 포토샵에 애달팠던 지난 시간을 돌아보니 눈물이 왈칵 쏟아져 포토샵 포스트 프로덕션(post-production)에 관한 얘기를 할 수밖에 없게 됐다. 포토샵 포스트 프로덕션은 관성적인 레이어 쌓기 게임일 수도, 디지털 사진의 일반적인 후보정 과정일 수도 있으며, 루미온 시대의 카메라 로 필터(raw filter)를 활용한 최후의 리터치 과정일 수도 있다. 그런데 나는 렌더링 과정에서의 연출에 대해 말하고 싶다. 레오나르도 다빈치는 아니지만, 디지털 콜라주에서 원근법을 구축하는 과학에 관한 이야기를 하고 싶은 것이다. 시대를 마감하는 예술가는 아니지만 무너지는 서브컬처의 끝자락을 부여잡고 싶은 것이다.


아무래도 정리를 해야겠다. 너무 많은 프로그램들이 쏟아지고 있고, 전통적인 아카데미 교육과 새로운 미 디케이드ME decade(자기중심주의 시대)의 미디어들 사이에서 정체 모를 과도기가 깊어지고 있다. 이제는 소묘 수업에서 명암의 기초를 배우며 빛과 그림자로 표현하는 과정을 자연스레 익히지도 않고, 루미온을 통해 카메라와 구도에 대해 배우는 것도 아니다. 어느새 포토샵은 천덕꾸러기가 되고 말았다. 그렇게 무시하던 프리미어 프로(Premiere Pro)(어도비의 영상 편집 프로그램)에게 스마트 시대의 주인공 자리를 내주고 말았다. 누구도 영원할 수는 없는 거다. 찬란했던 모든 것들도 결국은 적막하게 역사 속으로 사라졌다.


렌더링의 과정을 다시 살펴보겠다. 렌더링은 한 마디로 원근법을 구축하는 과정이다. 이 점을 확실히 이해해야 전체 과정을 디자이너의 시각으로 재창조할 수 있다. 간단히 말하면 디자인.모델링.렌더링.포스트 프로덕션이지만 아무래도 이래서야 재창조할 수는 없다. ...(중략)

 

환경과조경 386(2020년 6월호수록본 일부

 

나성진은 서울대학교와 하버드 GSD에서 조경을 전공했다한국의 디자인 엘뉴욕의 발모리 어소시에이츠(Balmori Associates)와 제임스 코너 필드 오퍼레이션스(JCFO)에서 실무 경험을 쌓았고, West 8의 로테르담과 서울 지사를 오가며 용산공원 기본설계를 수행했다한국미국유럽에서의 다양한 경험을 바탕으로 귀국 후 파트너들과 함께 얼라이브어스(ALIVEUS)라는 대안적 그룹을 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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