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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2회 더 라스트 뉴클리어 밤 메모리얼 공모
문자 사용 금지, 이미지로 구성된 세 개의 수상작
  • 환경과조경 2022년 9월

지난해 1월 유엔 핵무기금지조약(TPNW, Treaty on the Prohibition of Nuclear Weapons)이 50개국 이상의 비준을 받아 발효되었다. 2017년 7월 유엔 총회에서 채택된 후, 히로시마–나가사키 원폭 투하 75주년을 맞이한 2020년부터 본격적인 비준 촉구를 통해 발효된 이 조약은 핵확산금지조약(NPT)과 달리 모든 핵무기의 개발과 실험뿐만 아니라 핵보유국의 핵우산 제공까지도 금지한다. 그러나 핵무장국과 핵우산에 의존하는 국가 대부분이 비준하지 않아, 이 조약이 실질적인 핵실험 및 핵무기 사용 근절로까지 이어질 수 있을지는 여전히 불투명하다.

 

핵무기는 폭발의 규모가 엄청난 만큼, 그 여파 역시 파괴적이다. 폭발로 인한 직접적인 파괴는 단 몇 분 만에 일어나 기폭 지점 내 대부분의 것을 증발시키며 반경 10km가 넘는 구역까지 뻗는 열복사선은 사람을 산 채로 불태운다. 피폭된 생물들은 회복하기 어려운 고통을 안고 살아가며 방사능으로 인한 환경오염은 우리가 알던 세계를 더 이상 전과 같지 않은 위험한 곳으로 바꿔버린다. 미국과 러시아의 핵전쟁이 일어날 경우, 폭발로 인한 ‘핵겨울’로 인해 지구의 기온이 내려가고 식량 생산량 감소로 인해 세계 인구의 최대 70%가 기근으로 사라질 것이라는 연구 결과가 발표되기도 했다. 우리는 이미 최근의 우크라이나–러시아 전쟁에서 전쟁과 무기 사용이 가져오는 전 세계적 영향을 확인한 바 있다.

 

국제적 건축공모기획사인 빌드너(Buildner)가 개최한 ‘더 라스트 뉴클리어 밤 메모리얼 공모(The Last Nuclear Bomb Memorial Competition)’는 국제 사회에 핵무기의 위험성을 알리고 핵실험 및 핵무기 사용을 근절하자는 목소리를 모으고자 추진되는 공모로, 올해 2회를 맞이했다. 참가자는 빌드너가 제공한 전 세계 핵실험 장소, 핵 관련 사건·사고 발생 장소 중 한 곳을 대상지로 삼아 추모 공간을 디자인해 A1 패널 한 장을 제출해야 한다. 핵무기의 위험성을 알고 있음에도 불구하고 핵실험과 핵무기 보유 문제에 대해 침묵하는 국제 사회의 무심함을 비판하고자 제출물에서 문자 사용을 엄격히 금지해 참여자는 오로지 이미지로만 자신의 의도를 표현해야 했다. 전 세계에서 제출된 작품 중 40여 개가 최종 후보작 명단에 올랐고, 지난 7월 12일 수상작이 발표됐다. 각국 8명의 건축가로 구성된 심사위원의 심사 결과 안–타이 루(An-Tai Lu, 미국)의 ‘리멤버링(Remembering)’, 사비에르 로우레이로(Xavier Loureiro, 스페인)의 ‘알렌(Alén)’, 신영재·윤병두(대한민국)의 ‘더 시드(The Seeds)’가 1, 2, 3등을 차지했다. 공모 특성상 수상작에 대한 직접적 해설이 없기에 작품에 대한 해석은 오롯이 감상자에게 맡겨져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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안–타이 루, ‘리멤버링’

 

1등작 리멤버링은 핵실험 장소의 둘레를 따라 사람 키를 훌쩍 넘는 목재를 꽂아 공간적 범위를 표현했다. 목재 경계 안쪽으로는 차량이 진입할 수 없다. 방문객들은 안쪽까지 직접 걸어 들어가야 하며 내부에서는 침묵을 유지해야 한다. 경계 안으로 들어간 방문객들은 미리 가져온 검은 돌을 안쪽에서부터 두고 간다. 시간이 흐르며 돌들은 점점 모이고 검은 표식은 점차 커져 가 하얀 모래 빛깔 대지와 대조되는 명확한 흔적을 남긴다. 이러한 의식은 검은 돌이 목재 경계 안쪽을 완전히 검게 채울 때까지 계속된다. 심사위원은 리멤버링에 “시적인 이야기가 담겨있으며 방문객과 기념비 사이의 교류가 이 미니멀한 제안에 깊이와 정서를 더하고 있다. 오로지 빛뿐인 공백에서 시작해 시간이 지남에 따라 기념비의 규모가 확장되는 아이디어가 아름답고 강력하다”고 평했으며, 죽은 자의 묘에 돌을 얹는 유대교의 전통과 이 제안의 유사성에 대해 언급하기도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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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비에르 로우레이로, ‘알렌’

 

2등작 알렌은 핵실험 후 남겨진 움푹 팬 땅의 경계부를 가르는 선형의 길을 기념비의 입구로 삼는다. 내부와 외부를 잇는 강력한 축이기도 한 진입로는 내부의 핵실험지를 물로 채운 호수로 곧장 이어진다. 계곡을 지나 호수에 닿은 방문객들은 수면보다 낮은 곳에 서게 되어 마치 물에 잠기는 듯한 경험을 하게 된다. 폭발의 중심에 닿을 때 길은 끝나며 그 끝에는 계단이 있어 방문객들은 수면과 비슷한 높이에 올라 잔잔한 수면을 바라본다. 심사위원은 “시적인 이미지가 핵실험지의 규모를 드라마틱하게 전달하고 있으며 중심을 향해 뻗은 물에 잠긴 보행로가 부재의 감각을 자아낸다. 이 제안은 ‘경관의 프레이밍’, ‘감정의 변화’를 활용한 일종의 대지·설치 예술과 같다. 본래 있던 자연의 언덕을 가르는 좁다란 계곡 길과 물에 잠긴 보행로를 지나는 행위는 정화와 같은 종교적 의식을 떠오르게 한다”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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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영재·윤병두, ‘더 시드’

 

3등작 더 시드는 미국 애리조나의 핵실험지를 대상지로 삼았다. 폭발의 중심을 향해 선 1,000여 개의 토우들은 시간에 지남에 따라 점차 분해되어 새로운 생명을 위한 보금자리가 된다. 어느 하나도 같은 토우는 없고, 각각의 토우는 어린이, 노인, 소방관, 산모 등 다양한 인물 군상을 표현한다. 특히 가축과 야생동물 등 인간이 아닌 다른 생명까지 포함해 핵무기로 인한 피해가 생태계 전반에 영향을 미친다는 사실을 여지없이 드러낸다. 대상지의 생물상에 대한 조사와 분석을 통해 추모 공간이 추모를 위한 공간을 넘어 지역의 멸종 위기 자생 식물(Tiehm’s buck wheat)과 곤충(Monarch Butterfly)을 위한 서식처가 될 수 있도록 토우 안에 자생 식물의 씨앗을 섞도록 제안했다. 비와 바람에 의해 풍화되는 토우들은 생명의 무력함, 연약함을 드러냄과 동시에, 죽음과 파괴가 곧 새로운 시작으로 이어질 수 있음을 암시한다. 심사위원은 “배치된 토우들이 시간이 흐르며 분해되고 새로운 생명으로 다시 태어나 정원으로 돌아온다는 콘셉트는 매우 강력하다. 인간 이외에 다른 모든 생명까지도 품은 생태적 접근은 시간, 변화, 그리고 순환을 디자인 어휘로 사용한다. 이 충격적이면서 극적인 대규모 설치 작업은 핵무기로 인한 희생자가 사람뿐만 아니라 동식물을 포함한 생태계 전반임을 알림과 동시에, 우리가 모두 끊임없이 순환하는 자연의 일부이며 인간의 행위가 이를 파괴해선 안된다는 사실을 상기시킨다”고 평가했다.

 

 

신영재는 서울시립대학교 조경학과를 졸업한 뒤 조경설계사무소 HLD에서 4년 4개월 근무했다. 현재 생태적 정원 설계/조성/연구 모임 ‘초신성’과 종합예술동인 ‘madswanattack(미친백조의공격)’의 일원으로 활동 중이다. 눈에는 잘 띄지 않는 아름답고 쓸쓸한 것들에 관심이 많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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