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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편집자의 서재] 바깥은 여름
  • 환경과조경 2017년 1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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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애란 | 문학동네 | 2017

 

스물아홉. 생일이 빠르니 정확히 말하자면 스물여덟이다. “머물러 있는 청춘인 줄 알았는데”1 훌쩍 다가온 서른이라는 나이가 주는 압박감 때문일까, 올해에는 유독 결혼을 하거나 독립을 하는 친구들이 많았다. 집들이, 결혼식 등으로 올 하반기 주말이 내내 바빴다. 한참 즐거운 시간을 보내고 있으면, 종종 느닷없는 소식이 끼어들어 오기도 했다. 아직 그렇게 많은 나이도 아닌데, 해를 거듭할수록 장례식장에 갈 일이 잦아진다. 몇 번을 반복해도 누군가의 부고를 전해 듣는 일은 낯설고, 위로의 말을 고르는 건 어렵다. 너무 무겁지도 너무 가볍지도 않은 적당한 무게의 문장을 고민하다, 결국엔 “밥은 잘 챙겨 먹고 있어?”, “날씨가 많이 춥더라, 내일은 따뜻하게 입어” 같은 안부 인사와 닮은 말로 얼버무리기 일쑤다. 내 어설픈 말이 상처가 될까봐 하는 소심한 선택이다.

 

『바깥은 여름』은 그런 이들에게 조심스레 건네는 위로의 말이다. 역대 최연소 수상으로 이목을 끈 이상문학상 수상작 “침묵의 미래”, 젊은작가상 수상작 “어디로 가고 싶으신가요” 등 『바깥은 여름』에 실린 일곱 개의 단편은 모두 사랑하는 누군가 혹은 무언가를 상실한 이들의 이야기를 담고 있다. “입동”에는 어린이집 차량 사고로 아이를 잃은 젊은 부부가, “노찬성과 에반”에는 주워온 강아지 에반이 죽어가는 모습을 바라보는 어린 노찬성이, “어디로 가고 싶으신가요”에는 제자를 구하려다 학생과 함께 물속에 잠긴 남편을 그리워하는 아내 명지가 있다. 김애란은 “마음의 풍경을 정갈하게 빚어내는 솜씨”로 이들의 “어둡고 힘겹고 서글픈 인생의 사건들을 언어 안에서 거르고 간종여 담백한 음미와 잔득한 성찰의 장소로 재탄생시킨다.”2

 

깊은 슬픔에 빠진 사람들은 책 표지에 그려진 여인처럼 자신만의 방으로 들어가 문을 닫는다. 여름의 싱그러움 혹은 우울함을 떠올리게 하는 푸른 벽지, 상아색 문 너머로 얼핏 보이는 내부의 모습이 어둑하다. “입동”의 아이를 잃은 부부는 그 캄캄한 방에서 아이가 남긴 흔적, 또는 이제 비어버린 자리를 더듬으며 아이를 그리워한다. “이제 다시는 안아볼 수도, 만져볼 수도” 또 “야단칠 수도, 먹일 수도, 재울 수도, 달랠 수도, 입맞출 수도 없”3는 슬픔으로 부부의 계절은 시간의 흐름과는 무관하게 멈춰있다. 계속 겨울이다. 이 시차는 부부에게 일종의 소외감을 느끼게 한다. 부부에겐 “풍경이, 계절이, 세상이 우리만 빼고 자전하는 듯한, 점점 그 폭을 좁혀 소용돌이를 만든 뒤”4 자신을 삼키려는 괴물처럼 다가온다. 

 

그 시차가 주는 괴리감, 상실감을 이겨내기도 힘든 사람들을 더욱 몰아붙이는 건, 무신경하다 못해 무례한 주변 사람들의 행동이다. “입동”에서 부부의 직업이 보험 회사 직원이라는 이유로 이상한 이야기를 수군거리는 이웃은 아직 아물지도 않은 상처 위에 또 다른 생채기를 낸다. 아버지가 동남아시아인이라 차별받는 “가리는 손”의 재이를 위로하기 위해 재이의 어머니는 말한다. “너희 아빠 여기 일하러 온 거 아니야. 공부하러 온 사람이었어. 고향집에 하인도 있었대.”5 편견으로 괴로워하고 있는 재이에게 전해진 또 다른 편견으로 점철된 문장. 묘사되지는 않았지만 언젠가 “엄만 한국인이라 몰라”6라고 말했다던 재이의 얼굴이 선명하게 그려졌다.

 

『바깥은 여름』에서 내가 좋아하는 부분은 그런 고통 속에서도 주인공이 다시 일어서는 장면이다. “입동”의 부부는 지저분해진 벽지를 다시 바르다 눈물을 쏟고 서로를 보듬는다. “어디로 가고 싶으신가요”의 영지는 남편이 구하려던 학생의 누나에게 감사하고 죄송하다는 편지 한 통을 받고서야 누군가의 삶을 구하기 위해 자신의 삶을 버린 남편을 용서한다. 편지를 보낸 아이가 밥은 제대로 먹고 있는 건지 궁금해한다. 뒷이야기는 없었지만 왠지 영지가 아이를 찾아가는 장면이 어렵지 않게 상상된다. 사람에게 받은 상처를 사람으로 치유하며 방밖으로 나설 채비를 하는 모습에는 “마지막에 사람의 손을 잡고 일어서는 모양새가 됐으면 좋겠다”7는 김애란의 바람이 묻어 있다. 책이 집에 도착한 건 여름 무렵. 30~50쪽 남짓한 단편 소설 일곱 편을 읽는 데 꼬박 두 계절이 걸렸다. 바깥은 벌써 겨울이다. 얼마 전 마지막 소설인 “어디로 가고 싶으신가요”의 첫 장을 펼치고 나서야, 각 소설이 시작할 때마다 그려진 그림이 달이 아님을 깨달았다. 회색 원과 그 속을 메운 하얀 점들이 그제야 동그란 유리 볼에 겨울을 담은 스노우볼로 보였다. 문득 나에게 안부 인사 같은 위로의 말을 들은 사람들의 얼굴이 스쳐 지나간다. 나 또한 의도하지 않았더라도 누군가에게 상처를 준 적은 없을까? “볼 안에선 하얀 눈이 흩날리는데, 구 바깥은 온통 여름일 누군가의 시차를 상상”8해본다.

 

1. 김광석의 노래 ‘서른 즈음에’ 중에서.

2. 2017년 동인문학상 수상작으로 선정된 『바깥은 여름』에 대한 심사평. 박해현, “2017 동인문학상에 김애란 ‘바깥은 여름’”, 조선일보 2017년 10월 30일.

3. 김애란, “입동”, 『바깥은 여름』, 문학동네, 2017, p.21.

4. 위의 책, p.21.

5. 위의 책, “가리는 손”, p.204.

6. 위의 책, p.196.

7. 박세희, “5년 만에 돌아온 김애란은 ‘번번이 과정’이라 말한다”, 허핑턴포스트코리아 2017년 7월 4일.

8. 앞의 책, “풍경의 쓸모”, p.18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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