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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들이 설계하는 법] 집적경관
  • 최영준
  • 환경과조경 2018년 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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라스베이거스 조류 관찰 지형 공원이 위치한 대상지의 능선과 계곡선의 선형을 분절하면 ‘Y’자 형태의 단위 경관으로 환원된다. 새 발자국 모양을 추상화한 것과 동일한 형태로, ‘Y’자의 단위 경관을 집적해 새를 위한 새로운 자연을 그려 나갔다. ⓒ최영준

 

습관

의뢰인 측 디벨로퍼가 건축이 이만큼 했다며 몇 메가바이트 남짓의 PPT 파일을 보낸다. 경직된 포맷에 담긴 이미지 속 선들 사이에서 도로와 건축 매스를 제외한 땅을 찾는다. 대칭을 이루는 나무들과 조명 효과로 조경의 가능성을 가리고 있는 투시도들을 스킵하고 땅의 관상을 제대로 보기 시작한다. 땅의 과거와 현재의 모양새, 주변 개발지의 생김새, 건축이 올려놓은 매스의 조형을 살피며 각자 무슨 이야기를 하고 있는지 들어본다. 보통은 저마다 다른 방언을 늘어놓기 마련인 혼잡한 틈바구니에서 의사소통을 위한 언어를 만드는 일이 시작되고, 이것이 나의 가장 일상적인 조경 설계의 출발점이 된다. 이렇게 시작되는 설계하는 방법에 대한 질문에 프로젝트마다 특수성과 상대성이 있어 “그때그때 달라요”라는 중립적인 답을 내고 싶지도, 그렇다고 이런 방법이 법이고 나의 방식이라 굵은 밑줄을 치고 싶은 마음도 없다. 다만 설계의 시작점에서 대상지를 대하는 나의 경향 또는 본능적인 습관에 대한 이야기를 해보려 한다. 그런데 이 습관도 아마 다른 여러 습관 중 하나일 뿐일 것이다.1 하지만, 이런 노랫말이 있다. “습관이란 게 무서운 거더군…” ...(중략)...

 

1.

“설계를 어떻게 하시나요?”라는 질문을 받으면, “대상지와 조건에 집중하다 보면 어느 순간 모든 게 하나로 연결되는 순간이 온다”는 대답을 가장 많이 한다. 온전히 논리로 완성되는 경우도, 온전히 직감에 의존하는 설계도 없다. 영감은 어디에서나 받을 수 있는 성질의 것이니 ‘누군가가 설계하는 법’이란 정말 형용하기 어려운 질문이다. 그런데 많은 사람이 이 질문에서 간과하는 부분이 있는데, 질문의 포인트가 비단 설계의 시작과 과정에 대한 것만이 아니라는 점이다. ‘모로 가도 서울만 가면 된다’라는 말이 있듯이, 설계의 시작과 전개에는 백방의 방법이 있을 것이다. 어찌 보면 더 중요한 질문의 요는 설계를 어떻게 완성하냐, 어느 지점에서 만족을 하느냐는 질문일 수 있다. 그 완성도에 대한 정의야말로 모든 설계가에게 다른 의미이기 때문에, 이 질문은 설계가의 개성과 경향으로 회귀한다고 본다. 본인을 객관적으로 파악하는 것의 어려움은 강조하지 않아도 누구나 공감하는 사실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집적경관’은 10년 남짓 길지 않은 개인적인 프로젝트 경험을 수평적으로 횡단하며 읽어낼 수 있는 희미한 경향 중 하나다.

 

최영준은 서울대학교 조경학과를 졸업하고 펜실베이니아 대학교 설계 대학원에서 조경학 석사 학위를 받았다. 미국의 SWA 그룹(SWA Group)에서 다양한 성격의 설계 및 계획 프로젝트를 수행했으며, 미국조경가협회상(ALSA Honer Award), 아키프리 인터내셔널(Archiprix International) 본상, 뉴욕 신진건축가공모 대상, 제4회 대한민국 환경조경대전 대상 등을 수상했다. 2014년에 로스앤젤레스 기반의 설계사무소 Laboratory D+H를 공동 설립하고 L.A., 센젠, 상하이에 이어 서울 오피스를 꾸려 나가는 중이다.

 

* 환경과조경 357호(2018년 1월호) 수록본 일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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