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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Z+T 스튜디오] 인터뷰: 참여와 실험이 그리는 경관
  • 최영준
  • 환경과조경 2022년 5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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클라우드 파라다이스의 콘크리트로 만든 물길 ⒸArch-Exit Photography

 

2014년 설립된 랩디에이치는 다국적 문화를 바탕으로 넓은 스펙트럼의 프로젝트를 선보이고 있다. 2018년 최영준은 한국으로 돌아와 서울 오피스를 이끌고 있지만, 지금도 종종 중국 프로젝트를 수행하며 동시대 중국 조경에 대한 관심을 이어가고 있다. 랩디에이치의 다른 사무실과 독립적인 사무실을 운영하며 젊은 건축가와의 협업을 즐기는 최영준에게 스튜디오 내에 디자인 아틀리에와 세 개의 랩을 두고 독특한 협력 체계를 구축하고 있는 Z+T의 두 소장은 흥미로운 인터뷰가 아닐 수 없었다. 코로나19로 인해 얼굴을 마주할 수는 없었지만 이메일을 통해 오간 즐거운 대화를 지면에 옮긴다. 최영준은 2014년 랩디에이치 로스앤젤레스 오피스에서의 만남을 회상하며 인터뷰를 시작했다. 중국에서 나고 자란 서울 오피스의 조재연(Zhao Zaiyan) 디자이너가 대화에 동승했다. 인터뷰를 끝마치며 최영준은 간단한 소망을 덧붙였다. “이번 여름 광주에서 열리는 제58차 세계조경가대회에서 만날 수 있기를 기대합니다. 마스크 없이 만날 수 있으면 더 좋겠습니다.” _ 편집자 주


5년 전, Z+T 아트 스튜디오의 워크숍을 방문했었죠. 얼마 지나지 않아 바이오필릭 랩(Biophilic lab)의 출발을 알리는 글을 위챗(WeChat)에서 봤고요. 오랜만에 홈페이지를 살펴보니 랩이 하나 더 늘었더라고요. 기술적·전문적 성숙과 축적이 이루어지는 것 같아 부럽습니다. 각 랩의 궁극적인 지향점은 무엇인가요. 각 랩이 주체가 되어 별도로 진행하는 프로젝트가 있는지, 아니면 Z+T의 프로젝트를 주제와 기술의 관점에서 가로지르려는 노력인지도 궁금합니다.

새로 문을 연 T-랩은 재료와 구조를 중점적으로 연구합니다. 정교한 설계와 제작에 대한 창의적 아이디어 제공을 목표로 한 탐색적 성격의 스튜디오죠. 최근 아트 스튜디오의 프로젝트를 구현하는 과정에서 실현 가능성의 문제에 부딪친다는 사실을 깨달았습니다. T-랩은 이러한 현실적 한계를 뛰어넘어 디자인 사고의 폭을 넓히고 디자인적 가능성만을 고민하기 위해 만든 연구소입니다. T-랩은 아트 스튜디오 공장 옆 컨테이너에 있어요. 작년에 스튜디오로 개조했죠. 현재 T-랩이 자체적으로 진행하는 프로젝트는 없습니다. 주로 목업(mock-up) 작업이나 새로운 재료 사용을 시도해보고 있어요. 바쁘지 않을 때 디자이너와 함께 재료 회사의 작업실로 워크숍을 가 재료와 구조를 탐구하는 데 힘쓰고 있습니다.

 

현재 Z+T의 랩에는 아트 스튜디오, 바이오필릭 랩, T-랩, 세 개 스튜디오가 있습니다. 아트 스튜디오만 독립적으로 프로젝트를 수행할 수 있고, 나머지 두 스튜디오는 프로젝트에서 보조적 역할을 하는 연구 성향이 더 강해요. 이런 연구는 조경 산업에 더 폭넓게 관심을 갖게 하고 프로젝트를 실제로 구현하는 데 큰 도움을 줍니다. 적절한 기회가 생기면 연구 과정에서 얻은 아이디어를 프로젝트에 적용해보고 싶어요.

 

조경 주도적 또는 조경 독립적 프로젝트를 많이 수행하는데, 건축, 토목 등 다른 분야와 협력하는 노하우가 있나요?

아마 대부분의 조경가가 그렇겠지만, 조경이 비교적 독립성을 가질 수 있는 프로젝트를 선호합니다. 건강한 협력 관계를 만들 수 있는 건축 회사와 함께 일하는 경우도 종종 있는데 서로가 추구하는 완성도와 아름다움에 대한 의견이 비슷하고 상호 존중이 전제되어야 하죠. 여러 방면에서 뜻이 맞지 않는 팀과는 협업이 어려울 수 있습니다. 그런 상황에 맞닥뜨리면 현실 여건을 고려해 합리적 선택을 내릴 수 있도록 최선을 다하고 일정 부분 양보를 할 때도 있어요. 하지만 Z+T의 원칙을 져버려야 하는 상황이라면 프로젝트를 포기할 겁니다. 협업에 있어서는 불교도가 흔히 말하는 숙명적인 ‘운명’을 기대하는 편입니다.

 

『뉴 호라이즌스(New Horizons)』에서 Z+T의 작업을 축약하는 키워드로 참여(participatory)를 꼽았고, 2018년에는 『참여의 경관(Participatory Landscape)』을 출간한 바 있죠. 공공 대상의 참여 프로젝트는 의도한 대로 되지 않아 실패하기 쉽고, 보상 개념의 인센티브가 분명하지 않으면 참여 유도가 어렵다고 보는 시각도 있습니다. 참여를 끌어내는 노하우가 있나요?

참여는 ‘그림 같은 경관으로서 조경’과 대조를 이루기 위해 사용한 단어예요. 경관은 감상하는 대상이 아니라 참여할 수 있는 대상이라는 것, 즉 인간은 경관과 대립적 요소가 아니라 경관의 일부가 될 수 있다는 것을 말하고 싶었습니다. 경관이 제공하는 활동에 참여하고 자연환경에 들어감으로써 사람들은 자연과 더불어 자기 자신을 이해하게 되고 인간도 자연의 일부라는 사실을 깨닫게 될 것입니다. Z+T가 추구하는 불변의 디자인 철학이기도 합니다.

 

사실 전문적인 설계 방법론으로 사용자 참여 디자인을 적용한 프로젝트를 해본 적은 없어요. 현재 상하이에서 주민 참여를 독려하는 커뮤니티 리노베이션 프로젝트를 진행하고 있는데, 이를 통해 경험을 쌓을 수 있으리라 기대하고 있습니다. 미국에서의 경험과 비교해볼 때, 중국에서는 조경가가 사회에서 더 큰 목소리를 낼 수 있고 존경을 받는 편입니다. 최대한 많은 이를 만족시키는 ‘정치적으로 올바른’ 조경 프로젝트가 늘 모두를 만족시키기는 어렵습니다. 절충된 합의안보다는디자인에 신념을 갖고 주도적으로 완성도 높은 설계 결과물을 만들어낸다면 사용자의 적극적 참여를 끌어낼 수 있을 거예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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U–센터 광장의 회전 플랫폼 ⒸZhang Hai

 

재료에 대한 이야기를 빼놓을 수 없죠. 자외선, 비바람과 싸워야 하는 조경의 특성상 재료에 제한이 많은 편인데, 안전 관련 규정 등으로 인해 선택의 폭이 더 좁아지고 있어요. Z+T는 늘 프로젝트에 새로운 재료를 사용하려 하죠. 내구성, 관리 문제와 반비례하는 예술적 물성의 구현 사이에서 어떻게 균형을 잡고 있나요.

재료 선택은 머리가 지끈거리는 과정 중 하나죠. 조경의 특성과 안전 관련 규정 외에도 가격, 클라이언트 수용력이 재료 선택에 큰 영향을 미칩니다. 예를 들어 컬러 필름이 부착된 아크릴은 실외에서 2~5년 정도 제 컨디션을 유지할 수 있는 재료입니다. 하지만 사용 면적이 넓지 않고 클라이언트가 이를 교체하는 데 큰 거부감이 없다면 아크릴을 추천하는 편입니다. 재료의 내구성과 효과 사이의 균형을 어떻게 맞추느냐가 중요합니다.

 

재료 사용에서 한계를 돌파하려면 디자이너가 능동적이어야 합니다. 시장의 동태를 파악하고 재료를 충분히 이해하고 있어야만 재료를 사용할 때 발생하는 문제점을 예측할 수 있습니다. 여건이 허락되면 사전에 테스트를 해보는 게 가장 좋습니다. 대나무, 밧줄, 그물, 유리 같은 재료는 예술적 측면에서는 아주 좋지만 내구성은 떨어집니다. 하지만 대나무의 방부 처리 등 기술적 측면에 대한 지식이 풍부하다면 어떨까요. 재료 관련 기술을 개발할 때 조경 자재 시장은 큰 돌파구를 찾게 될겁니다.

 

두 아들의 아빠로서 새로운 시도가 돋보이는 놀이 조경 프로젝트를 만나면 반갑습니다. 자연과 떨어진 도시 놀이터에 참여적 생태 개념을 어떤 방식으로 녹이는지 궁금합니다. 그 영감은 자녀에게서 받는지, 어릴적 기억에서 소환하는지도 알고 싶고요.

두 자녀와 함께 놀이를 할 때 관찰하고 경험한 것들, 유년 시절의 추억에서 비롯된 모든 것들이 영감이 됩니다. 『자연에서 멀어진 아이들(Last Child in the Woods)』은 현 시대 아이들은 야외에서 노는 것보다 실내에 머물러 비디오 게임을 하는 것을 더 선호한다고 묘사했는데, 우리도 같은 경험을 하고 있습니다. 책의 표현처럼 “아이들을 야외에서 뛰놀게 하는 것이 점점 어려워지고 있습니다.” 도시에서 순수한 자연환경을 찾기 어렵기도 하지만, 놀이터 등 외부 공간이 어린이에게 충분히 매력적으로 다가가지 않는다는 점이 큰 문제입니다. 우리는 어린이가 기꺼이 전자 기기를 내려놓고 야외로 뛰어나갈 수 있는 장소를 만들고, 놀이를 즐기는 동시에 자연에 대한 호기심과 흥미를 자극할 수 있는 놀이터를 디자인해 더욱 매력적인 장소를 만들고자 합니다. 

 

『참여의 경관』에서 중국의 조경 교육은 건축, 식재, 예술 기반의 세 갈래로 나뉘고, 이로 인한 장단점이 있다고 설명했죠. 단점을 보완하기 위해서는 조경 교육이 어떤 방향으로 흘러가야 한다고 생각하나요. 이를 위해 직원에게 강조하는 교육적 측면이 있나요.

미국에서 일할 때 동료들이 조경 업계는 “과잉 교육을 받는다”고 농담을 하곤 했습니다. 조경 실무를 하는 데는 학부 졸업만으로 충분합니다. 만약 석사 과정을 밟을 생각이라면 어떤 방면으로 나아갈지 명확히 할 필요가 있어요. 학교마다 조경 교육의 방향과 목표가 다른데, 특정 분야를 전문적으로 다루는 과에 진학하는 것이 바람직합니다. 조경 산업은 범위가 매우 넓어서 몇 년 만에 모든 것을 다 익히고 다루는 게 불가능하기 때문입니다.

 

전공이 무엇이든 열정과 열린 마음, 항상 도전하고 새로운 시도를 멈추지 않는 의지가 제일 중요합니다. 우리는 모든 직원이 넓은 사고를 할 수 있도록 독서를 권장하고 있습니다. 전공 서적뿐 아니라 역사, 철학, 과학, 예술 등 다양한 분야의 서적을 통해 자신의 지식 창고를 업데이트 하도록 장려하고 있습니다.

 

U-센터 광장(U-center Plaza)의 회전하는 분수를 수업에서 보여줬을 때 학생들의 반응이 좋았던 기억이 나요. 철도가 있던 대상지의 기억을 상징화한 아주 흥미로운 디자인이죠. 유지·관리 등의 문제로 클라이언트가 반대했을지도 모른다는 생각이 들었어요.

클라이언트에게 콘셉트를 제안할 때 콘셉트 자체의 의미뿐만 아니라 시공 방법, 공사비, 유지‧관리비도 함께 보여주어 의사 결정에 참고할 수 있도록 합니다. U-센터 광장의 콘셉트 디자인 보고서에는 회전 장치 제조 회사와 유지‧보수비에 관한 자세한 정보를 함께 담았죠. 클라이언트가 광장 옆 복합 상업 시설의 건물주이기 때문에 개장 후에도 광장을 매력적으로 유지하기 위해 기꺼이 비용을 지불할 용의가 있다고 봤어요. 비용의 크기는 광장이 어떤 가치를 만들어내고 그로 인해 새로운 수익을 얼마나 가져다줄 수 있느냐에 달려 있습니다. 모든 프로젝트에 낮은 유지·관리 비용을 사용해야 하는 건 아니라고 생각해요.

 

클라우드 파라다이스(Cloud Paradise, 2017)의 취시류환(曲溪流欢) 디자인이 탄생하게 된 배경이 궁금합니다. 어릴 적 비 온 뒤 놀던 모래사장의 향수를 불러일으키기도 하고, 개인적으로는 런던의 다이애나 메모리얼 이후 가장 인상적인 수경 시설이에요.

대상지에 6%의 경사가 있는 소방도로를 반드시 포장면으로 만들어야 했어요. 그 위에 소방차의 통행을 방해하지 않는 디자인을 할 수 있었습니다. 취시류환은 장둥이 시골에서 보낸 유년시절의 한 풍경에서 영감을 받은 수경 시설이에요. 비가 와 질척거리는 산길, 빗물로 인해 생긴 작은 물줄기가 만들어낸 형상에서 아이디어를 얻었죠. 콘크리트로 조각한 이 물줄기는 자연에 대한 현대인의 시선을 반영하기도 합니다. 진흙투성이 개울과 물웅덩이에서 아이들이 놀기 바라는 젊은 부모는 거의 없을 거예요. 대부분 그것을 더럽다고 느끼니까요. 하지만 콘크리트로 만든 물줄기에서 놀면 그런 걱정을 할 필요가 없습니다. 어린이들은 진흙투성이 개울과 물웅덩이를 더 좋아할지도 모르지만요. 

 

종종 상업적 성격의 중국 프로젝트를 할 때 너무 과한 요소를 사용하는 건 아닌지 스스로 물어볼 때가 있어요. Z+T의 취장 크리에이티브 서클(Qujiang Creative Circle)은 놀이 시설과 상호 작용을 일으키는 시설을 강조하고 조형성을 강하게 드러내죠. 주주리 정원(Jiu Zhu Li Garden), 우전 아리라 호텔(Wuzhen Alila Hotel)의 경우 미니멀하고 절제된 아름다움을 보여주어 취장 크리에이티브 서클과 대비를 이루고요. 디자인의 강도에 대한 생각이 궁금해요.

중국 철학에서 종종 ‘도度’를 강조하는 걸 볼 수 있어요. 우리가 이해하는 도는 적절함(대부분의 사람을 이를 보통의 정도(中庸)라고 이해합니다)과 더불어 자신의 특정한 태도(態度)에 국한하지 않고 프로젝트의 특성과 요구되는 바에 따라 잔잔함(静谧)이나 활발함(歡悦)을 보여주는 것입니다. 자칫하면 활발함을 혼란스러움으로, 잔잔함을 무미건조함으로 오해할 수 있습니다. 때로는 비즈니스를 위해 과함이 필요할 때가 있고, 마케팅 측면에서 ‘조금 더 많은 것(再多一点)’이 요구되기도 합니다. 하지만 무조건 많은 디자인 요소가 활발한 공간을 만드는 건 아닙니다. 복잡한 공간에서는 편안함을 느끼기 힘들죠. 클라이언트가 너무 많은 요소를 넣기를 원할 때, 규모에 따라 요소 간의 균형을 맞추어 최대한 혼란을 야기하지 않는 디자인을 하려고 노력합니다. 잔잔함은 활발함보다 더 표현하기 어려운 개념이에요. 미니멀리즘은 적으면 적을수록 좋은 것을 의미하는 것이 아니라 적당한 수준을 뜻합니다. 불필요한 것을 쳐내고 남은 디자인 요소는 모든 역할을 수행할 수 있도록 강력해야 합니다. 강력한 디자인 요소를 선택하거나 특정 요소를 선택해 이를 강력하게 만드는 일이 가장 어려워요.

 

좋은 조경이란 무엇이라고 생각하나요.

변화의 속도가 빠른 이 시대에 어울리지 않는 답일 수 있지만, 유행을 타지 않고 오랜 세월을 견딜 수 있는 프로젝트가 우수하다고 생각합니다. 

 

마지막으로 재미있는 상상을 해보고 싶어요. 40~50년 뒤 두 분이 현역에 있지 않을 때 Z+T는 어떤 모습일까요? 회사 내부적으로 새로운 리더십을 키우고 있는지, 어떤 구조의 설계 스튜디오를 지향하는지와 연관이 있을 것 같습니다. 

은퇴는 하고 싶지 않지만 언젠가는 세상을 떠날 날이 오겠죠. 따라서 이 질문은 유효합니다. 각자의 장점을 존중하고 함께 일하는 회사 내 협력 시스템이 구축되기를 기대하고 있습니다. 전문 분야 간의 긴밀한 협력은 이제 피할 수 없는 일이에요. 솔직히 말해서 중국인들은 아직 협력에 익숙하지 않습니다. 중국의 교육 방식과 문화와 밀접하게 관련된 문제일 거예요. 일을 잘해내려면, 특히 조경 같은 복잡한 산업의 경우, 천재보다는 근면성실하고 겸손하며 인내심이 있고 협력을 잘할 줄 아는 사람이 필요합니다. 다른 분야와의 협업뿐 아니라 조경 내부의 협업에서도 마찬가지죠


 

최영준은 서울대학교와 펜실베이니아 대학교 디자인 대학원을 졸업하고 오피스박김, PWP, SWA 그룹 로스앤젤레스 오피스 등에서 실무를 경험했다. 2014년 디자인을 통한 희망적 가치와 사회적 책무 구현을 목표로 랩디에이치(Lab D+H) 조경설계사무소를 중국인 파트너와 공동 설립했으며, 2018년 서울 오피스를 열고 국내외 다양한 조경 설계 프로젝트를 수행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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