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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리는, 조경] 현실처럼 보이는 드로잉
  • 환경과조경 2019년 10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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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림 1. ASLA and DimensionGate, Brooklyn Bridge Park VR, 201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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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림 2. Unknown, Outdoor Life and Sport in Central Park, NY, ca.1870 

 


미국조경가협회ASLA는 몇 년 전부터 최우수 작품상ASLA Professional Award of Excellence 수상작을 가상 현실VR 영상으로 제작해 유튜브에 서비스하고 있다(그림 1). 공원 주요 구역의 풍경과 방문객의 활동을 담고 디자이너의 설계 설명을 내레이션으로 입혔다. 휴대폰이나 컴퓨터로 유튜브에 접속하면 2차원의 360도 동영상을, 가상 현실 헤드셋을 이용하면 3차원의 360도 동영상을 감상할 수 있다. 상하좌우로 자유롭게 마우스를 움직이거나 헤드셋을 쓰고 고개를 돌려가며 공원을 실제로 누비는 것처럼 경험할 수 있다. 가상 현실이 디자인 과정의 도구로 활용된 것은 아니지만 대중과 소통하는 중요한 테크놀로지로 활용되고 있다.


가상 현실이라는 기술도 놀랍지만 풍경을 입체로 체험하기 위한 노력이 19세기에 이미 나타났다는 사실도 흥미롭다. 그림 2는 뉴욕의 센트럴파크가 조성된 지 십여 년 남짓 되었을 때 제작된 것으로 추정되는 입체경(stereoscope) 사진이다. 두 장의 비슷한 사진이 나란히 놓여 있는데, 가상 현실 헤드셋과 비슷하게 생긴 입체경을 통해 보면 3차원 이미지로 보인다.1 입체경, 가상 현실, 3D 영화를 비롯한 입체 시각화는 우리의 두 눈이 떨어져 있는 만큼 조금씩 다른 것을 보는, 소위 양안 시차를 인위적으로 조작해 만들어낸 지각 방식이다.

 

사실처럼 그리기

시각 이미지를 이용해 현실과 유사한 경험을 만들고자 하는 욕구는 조경 드로잉에서도 발견된다. 19세기 중후반 조경가는 당대의 최신 기술인 사진을 현장 조사 도구로 활용했고(『환경과조경20195월호 참조), 사진이 발명되기 이전에는 풍경화 같은 투시도를 그려 대상지에 대한 비전을 사실처럼 그리곤 했다( 『환경과조경20194월호 참조). 조경의 최종 목적이 현실 세계의 경관을 디자인하는 것인 만큼 사실적으로(realistic) 그려 현실처럼 보여주고자 하는 태도는 어쩌면 당연한, 조경 드로잉의 기본적 역할일지도 모르겠다. 2000년을 전후로 포토샵, 일러스트레이터와 같은 그래픽 소프트웨어의 상용화에 힘입어 현실처럼 보이는 드로잉을 보다 쉽고 빠르게 만들 수 있게 되었다. 손으로 그리는 것이 아니라 현실을 찍은 사진을 재료로 합성하면서 조경 드로잉은 실제를 그린 것처럼 인식될 수 있다(그림 3).


이러한 이미지는 현실 세계를 사실처럼 그린 것일까. 대상과 관련하자면, 그렇지 않다. 드로잉은 디자인된 이후의 세계를 그리기에, 엄밀히 말해 현실이 아니라 디자이너의 머릿속에 존재하는 가상의 세계를 다룬다. 방법과 관련해도 그렇지 않다. 사진을 합성해 만든 조경 드로잉은 정확히 말해 포토 리얼리즘(photo-realism), 즉 미래의 경관을 촬영한 사진처럼보이도록 제작된 이미지다. 쉽게 이야기해서 우리에게 사실처럼 보이는 그래픽 이미지는 현실의 경험이 아니라 그것을 찍은 사진, 그것을 보정한 작품 사진처럼 연출된 것이다(그림 4).2  ...(중략)...

 

환경과조경 378(2019년 10월호수록본 일부


각주 정리

1. 풍경을 입체로 보는 시각 체제의 국내 도입과 관련해서 다음을 참조. Myeong-Jun Lee & Jeong-Hann Pae, “Nature as Spectacle: Photographic Representations of Nature in Early Twentieth-Century Korea”, History of Photography 39(4), 2015, pp.390~404; 이명준, “일제 식민지기 풍경 사진의 속내”, 환경과조경201710월호, pp.32~37.

2. 미디어 이론가 레프 마노비치의 말을 빌리면, “컴퓨터 그래픽이 (거의) 성취해 온 것은 리얼리즘이라기보다는 오히려 포토리얼리즘인데, 포토리얼리즘은 우리의 현실에 대한 인식적이고 신체적인 경험이 아니라 오직 사진적 이미지를 모방하는 능력이다.” Lev Manovich, The Language of New Media, Cambridge, MA: MIT Press, 2001, p.200.

 

이명준은 서울대학교 조경학과에서 학사, 석사, 박사 학위를 받았다. 조경 설계와 계획, 역사와 이론, 비평에 두루 관심을 가지고 있다. 박사 학위 논문에서는 조경 드로잉의 역사를 살펴보면서 현대 조경 설계 실무와 교육에서 디지털 드로잉이 나아가야 할 방향을 모색했고, 현재는 조경 설계에서 산업 폐허의 활용 양상, 조경 아카이브 구축, 20세기 전후의 한국 조경사를 깊숙이 들여다보고 있다. ‘조경비평 봄조경연구회 보라(BoLA)’의 회원으로도 활동한다. 

 

자료출처

그림 1. https://www.youtube.com/watch?v=nQ2geeXMThI


그림 2. https://commons.wikimedia.org/wiki/File:Outdoor_Life_and_Sport_in_Central_Park_N.Y,_from_Robert_N._Dennis_collection_of_stereoscopic_views.jpg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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