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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비트로 상상하기, 픽셀로 그리기] 루미온과 어른의 사정
  • 환경과조경 2020년 4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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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림 1. 루미온 로컬 일루미네이션 사례 ⓒ나성진
 
lak384_나성진-2.jpg그림 2. 정지원, 서울시립대학교 미디어 수업 브이레이 과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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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림 3. 루미온에서 로컬 일루미네이션에 각종 필터를 더한 사례 ⓒ나성진

 

루미온(Lumion)은 정말 내가 사랑해 마지않는 프로그램이다. 1998년의 레이던(Leiden)이었던가. 네덜란드의 두 청년이 새로운 3D 그래픽 프로그램을 만들고자 회사를 창업했을 때의 기억이 지금도 선명하다. 하지만 안타깝게도 그 기억들이 헤비메탈과 스타크래프트 외에는 아무 관심도 없던 고등학생의 내가 실제로 겪은 일인지, 후에 설계에 몸담게 된 나의 이중 자아가 만들어낸 과대망상의 편린인지 잘 구분되지 않는다. 그래도 루미온은 내게 마치 호머 심슨의 도넛처럼 도파민 가득한 그런 존재임을 부인할 수가 없다.

 

브이레이(V-ray)는 오랫동안 나를 괴롭힌 프로그램이며, 그럼에도 불구하고 학생들에게 가르쳐야만 하는 어른의 사정을 투영하는 정말이지 대단한 골칫덩어리다. 어른의 사정이란 이런 일들이다. 공허의 심연에서 뭐라도 꺼내 15주의 커리큘럼을 채워야 하는데, 루미온을 설명하고 나면 불과 30분밖에 지나지 않는다. 무대에서 춤을 추고 노래를 불러도 루미온을 설명하며 한 시간을 넘기기는 쉬운 일이 아니다. 그러고나면 왠지 민망해져 낯을 좀 가리다 수업을 일찍 마치게 된다. 아마도 학생들은 일찍 마친 수업을 반기다가도 이내 캠퍼스를 방황하며 내 전문성을 의심하게 될 것이다.

 

결국은 다시는 입에 올리기도 싫은 브이레이를 또 장황하게 설명하게 된다. 복잡한 용어를 잔뜩 사용하며 코 묻은 애들 사탕 뺏는 격이다. 별 볼 일 없는 내 자아를 감추며 시간을 때우기에도 이만한 프로그램이 없다. 하지만 예민한 학생들은 이미 알고 있었을 것이다. 거짓말이 쌓이면 윤곽이 드러나기 마련이다. 그저 모른 척하고 싶을 뿐이지.

 

로컬 일루미네이션과 글로벌 일루미네이션

, 렌더링에는 두 가지 종류가 있다. 실시간 렌더링과 오프라인 렌더링. 실시간 렌더링은 말 그대로 루미온이나 트윈모션(Twinmotion)처럼 리얼타임(real-time)(실시간)으로 돌아가는 독립 프로그램이다. 오프라인 렌더링은 스틸 컷(still cu)t, 즉 정지 화면을 구현하는 방식이다. 예를 들면 렌더링 버튼을 누르고 점심을 먹고 오면 되는 브이레이 같은 것들 말이다. 당연히 실시간 렌더링은 직관적이고 빠르지만 퀄리티가 좀 애매하고, 오프라인 렌더링은 퀄리티는 좋지만 시스템이 복잡하고 오래 걸린다. 따라서 루미온과 브이레이 중 어느 것이 더 훌륭한지에 대한 논의는 정말 최고로 신나는 화젯거리다. 이 주제에 대해서라면 비치 보이스(The Beach Boys)의 음악을 들으며 밤새라도 술을 마실 수 있다. 하지만 사람들은 정작 술집에 가면 갑자기 화제를 돌려 다른 사람들에 대한 이야기에 더 열을 올린다. 진심으로 무언가에 관심을 가진다는 것은 조금은 슬픈 일이다.

 

그림 1은 로컬 일루미네이션(local illumination)(LI)의 예시다. 그림 2는 브이레이를 사용한 글로벌 일루미네이션(global illumination)(GI)의 예다. 렌더링 프로그램을 구분하는 요소는 크게 조도 시스템, 재질, 소스의 세 가지로 볼 수 있는데, 그중 가장 큰 비중을 차지하는 것은 단연 조도 시스템이다. 루미온은 실시간 작업 시 주 조도 시스템으로 로컬 일루미네이션을 사용하며, 렌더링 단계에서 여러 필터를 활용해 그 단조로움을 보완한다(그림 3). 그래서 대체 로컬이니 글로벌이니 하는 게 뭐냐고? 이제 어른의 사정이 이어진다. 아주 장황하게. ...(중략)...

 

환경과조경 384(2020년 4월호수록본 일부 

 

나성진은 서울대학교와 하버드 GSD에서 조경을 전공했다한국의 디자인 엘뉴욕의 발모리 어소시에이츠(Balmori Associates)와 제임스 코너 필드 오퍼레이션스(JCFO)에서 실무 경험을 쌓았고, West 8의 로테르담과 서울 지사를 오가며 용산공원 기본설계를 수행했다한국미국유럽에서의 다양한 경험을 바탕으로 귀국 후 파트너들과 함께 얼라이브어스(ALIVEUS)라는 대안적 그룹을 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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