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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모던스케이프] 나무를 심자
  • 환경과조경 2022년 4월

예로부터 ‘나무를 심는 일’은 기념할 일이 있을 때와 연결되는 경우가 많았다. 대표적으로 딸을 낳으면 오동나무를 마당에 심었다는 것은 잘 알려진 민간의 전통이다. 오동나무는 속성수에 목질도 가벼워서 딸이 시집갈 때 혼수로 가지고 갈 가구의 재목으로 사용하기 적절하기 때문이다. 그밖에 우리는 결혼. 회갑, 승진 등 경사가 있을 때도 나무를 심는 것으로 축하를 했는데, 오늘날에도 종종 볼 수 있는 기념식수의 전통이 멀리 있었던 건 아닌 셈이다.

 

왕실에서도 나무를 심었을까 싶어 『조선왕조실록』을 살펴봤다. 왕실의 가족묘인 능소(陵所)와 원소園所에 보토補土하여 나무를 심었다는 기록이 대부분이다. 검색어를 식목(植木)으로 걸러봤다. 왕릉 일대에 식재한 것을 제외하면, 영남 지방 여러 고을에는 민둥산 때문에 재해가 빈번하니 벌목을 금하고 나무를 많이 심어 토양 유실을 막는 것이 필요하다고 상소한 헌납(獻納)1 권엄의 의견이 유일하다. 나무 심기를 통해 상징과 기념을 넘어 실용의 문제를 해결하려 했다는 점에서 매우 인상적이다.2

 

근대가 되면 동서를 막론하고 나무를 심는 일이 도시의 위생과 환경 문제를 해결할 수 있는 하나의 수단으로 주목받는다. 한국에서는 독립협회 회원들이 식목의 기능에 가장 먼저 주목했다. 해외 도시를 경험한 바 있는 그들은 나무 심기가 노력에 비해 효과가 크다는 것을 알고 있어서, 종목일, 즉 식목일을 만들어 국민이 나무를 심게 할 것을 권장했다.

 

“우리가 바라건대, 조선의 농상공부에서도 종목일을 작성하여 봄가을로 한 번씩 전국의 인민을 시켜 동네 빈터에 나무를 심게 하고 …… (그러면) 몇 해 지나지 않아 좋은 공원이 생길 것이고 그 나무들이 다 자라 쓸 만하게 되면 해마다 얼마씩 베어 팔아 그 돈을 가지고 공원을 정비하는 등 시민을 위해 쓸 일이 많을 것이다. …… 속성수인 백양목을 비롯하여 단풍나무, 전나무, 가죽나무 등을 일 년에 한 번씩만 심는다면 큰 수고로움 없이도 큰 효과를 볼 수 있다”3 하였다. 그러고는 식목의 효과로 첫째는 산사태 방지로 산 아래 농가들이 농사를 안정적으로 지을 수 있다는 점, 둘째는 공기 정화에 효과가 있다는 점을 꼽았다. 또한 셋째로는 나무로 공기가 깨끗해지면 전염병이 예방된다는 점, 넷째로는 그늘과 맑은 공기를 제공해 백성들의 휴식처가 마련된다는 점을 언급했다. 당시 조선의 주요 도시는 산업화로 인해 망가지지는 않았으나, 비위생적이고 무질서한 도시 환경은 근대로의 개혁이 필요한 상황이었다. 그 해결책으로 식목에 주목했다는 것은 놀라운 일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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순종 황제의 친경례 현장 사진, 1909 (이와타 데이 촬영, 한미사진미술관 소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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행사를 모두 마치고 환궁하는 길 사진, 1909 (이와타 데이 촬영, 한미사진미술관 소장)

 

 

 

각주 1. 헌납은 조선시대 사간원의 정4품 관직이다.

각주 2. 『정조실록』 12권, 정조 5년 10월 22일.

각주 3. 「독립신문」 1896년 8월 11일.

 

환경과조경 408(2022년 4월호수록본 일부

 

박희성은 대구가톨릭대학교를 졸업하고 서울대학교 대학원에서 한중 문인정원과 자연미의 관계로 석·박사학위를 받았다. 서울시립대학교 서울학연구소에서 건축과 도시, 역사 연구자들과 학제간 연구를 수행하면서 근현대 조경으로 연구의 범위를 확장했다. 대표 저서로 『원림, 경계없는 자연』이 있으며, 최근에는 도시 공원과 근대 정원 아카이빙, 세계유산 제도와 운영에 관한 일들을 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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