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이형주 ([email protected])

[환경과조경 이형주 기자] 대통령 집무실 용산 이전을 계기로 둔지산의 잃어버린 역사와 지명을 회복해야 한다는 목소리가 커지고 있다.
‘용산 둔지산 제자리 찾기 시민연대’(이하 용산연대)는 지난 16일 서울시청 정문 앞에서 기자회견을 열고 “대통령실이 들어선 국방부 청사 일대는 일제강점기 전까지 단 한 번도 ‘용산(龍山)’이라고 부른 일이 없다. 이곳은 원래 조선 시대에 한성부 남부 둔지방 내 ‘둔지산(둔지미)’과 마을이 있던 지역이다”며 용산과 둔지산의 제 이름과 제 자리를 찾는 일이 시급하다고 촉구했다.
‘용산연대’에 따르면 원래 이곳에 있던 나지막한 산의 이름은 ‘둔지산(屯芝山)’이고, 고유어로는 ‘둔지미’였다. ‘미’는 ‘메’나 ‘뫼’와 마찬가지로 ‘산(山)’을 뜻한다. 둔지미는 이 지역을 대표하는 마을 이름으로 수백 년 동안 우리가 이 지역을 부른 이름이었는데, 이를 용산으로 바꿔 부른 것은 일제였다는 것이 이들의 설명이다.
용산연대는 “1905년 러·일 전쟁에서 이긴 일제는 수백 년간 삶의 터전이었던 둔지산 일대를 군용지로 강제수용해 한국 주둔군(주차군) 사령부를 설치하면서, 이곳 이름을 ‘용산(龍山)’이라고 바꿔 붙였다”며 “둔지산이 있던 이 지역을 ‘용산’으로 바꿔 부른 것은 일제의 잔재다”고 주장했다.
이어 “용산은 인왕산에서 시작돼 서울 남서쪽 만리재에서 효창공원(효창원), 용마루 고개, 용산성당, 청암동에 이르는 긴 산줄기를 말한다. 그 산줄기가 마치 용(龍)의 모습을 닮아 선조들은 ‘용산(龍山)’으로 불렀다. 현재는 주택과 아파트로 뒤덮였지만, 1970년대까지만 해도 만리재에서 청암동까지 산줄기가 뚜렷했다. 서울의 진짜 ‘용산’은 고려 때부터 역사 기록에 나올 정도로 매우 중요한 지역이었고, 널리 알려진 지명이자 산 이름이었다”는 설명을 덧붙였다.
또한 이러한 배경에도 대한민국을 상징하는 최초의 국가공원을 일제가 붙인 지명 그대로 ‘용산공원’이라 불리는 게 합당한지 의문을 제기했다. 아픈 역사를 치유하고, 올바른 역사성과 장소적 정체성을 회복하고자 한 결정이었는지는 우리 사회가 더 깊이 생각해봐야 한다는 것이다.
용산연대는 “물론 국방부와 미군기지 일대에 붙여진 ‘용산’이라는 이름을 하루 아침에 ‘둔지산’으로 바꿀 수는 없다. 그러나 용산 미군기지 일대가 애초 ‘용산’이 아니라 ‘둔지산’이었다는 사실을 외면하고만 있을 수는 없다”며 “이렇게 잘못된 지명이 붙은 것이 일제의 한국 침략과 식민 지배의 결과라는 점을 국민들이 명확히 인식해야 한다. 국격의 상징인 대통령실이 이전하고 용산 미군기지가 국민의 품으로 다시 되돌아오는 지금이 왜곡된 지명을 바로잡을 때”라고 강조했다.
이에 정부에 ▲새 집무실 이름에 ‘용산’을 포함하지 말 것 ▲‘용산’과 ‘둔지산’의 명칭 회복과 함께 일제강점기에 잘못 지어졌거나 왜곡된 역사적 지명들을 바로잡을 방안 마련 ▲새로운 지명이나 건물 이름, 도로 이름을 붙일 때 역사적으로 정확한 이름을 쓰도록 유도할 것 ▲‘용산’과 ‘둔지산’에 관한 정확한 역사 지리를 국민이 올바르게 알 수 있도록 홍보하고 노력할 것을 요구했다.
용산국가공원 조성을 맡은 국토교통부와 서울시, 용산구 등에는 ▲용산공원으로 조성 중인 용산 미군기지 일대의 정확한 지명이 ‘둔지산’임을 명확히 밝힐 것 ▲용산 미군기지 내 사라진 옛 마을 이름인 정자동, 대촌(큰말) 이라는 고유 지명 살리기 ▲표지판 설치 등의 노력이 필요하다고 역설했다.
앞으로 ‘용산 둔지산 찾기 연대’는 주요 지도와 웹사이트, 각종 안내판에 용산과 둔지산을 명확히 표시할 수 있도록 노력할 예정이다. 이를 위해 정부 산하의 국토지리정보원, 국립중앙박물관 야외 안내판, 이태원 역사 부군당 전망대, 남산 전망대, 용산공원 부분 개방 부지와 스포츠필드 부지, 주요 포털 사이트에 ‘용산과 둔지산’의 위치와 높이 등을 정확히 표시하도록 공식적으로 요청할 계획이다.
한편 ‘용산 둔지산 제자리 찾기 시민연대’는 녹색연합, 문화연대, 보담역사문화연구소, 서울환경운동연합, 성곽길역사문화연구소, 용산역사문화 사회적협동조합, 용산학연구센터, 용산역사문화해설사, 통일안보전략연구소, 한국땅이름학회, 한국문화유산정책연구소 등 12개 단체로 구성됐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