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홍태식 수프로 부사장 ([email protected])
봄바람은 가위와 같아 초록 버들잎을 오려 만든다
버드나무는 전 세계에 300종이 있고 우리나라에는 30여 종이 있다. 버드는 물을 좋아해서 물가에서 번성한다. 잔뿌리는 습지 주변의 토양침식을 막아주고 물속 미생물들이 살 수 있는 조건을 만들어 준다. 수질을 정화하는 능력이 매우 뛰어나 예전에는 우물가에 버드나무를 심었다. 성장 속도가 빠르지만 줄기가 잘 썩는 편이고, 뿌리가 얕아서 세찬 바람에 잘 넘어진다. 조선 초기 농사 방법을 자세히 기록한 농사직설에는 따르면 잘게 자른 버드나무 가지를 봄에 밭갈이할 때 넣어주면 토양 속에 공극을 만들어 봄 작물의 뿌리가 자라는 데 도움을 준다고 한다.
버드나무는 남녀 간의 사랑의 도구로 쓰였다. 우물가에서 물을 천천히 마시라고 그릇에 버들잎을 띄우거나, 안타까운 이별을 할 때 잊지 말라고 건네주는 사랑의 정표가 그것이다. 또한 어머니의 사랑은 부드러운 버들가지처럼 자식에게 전해진다고 여겼다. 버드나무는 ‘도깨비나무’로 부르기도 했다. 습도가 높은 환경에서 살다 보니 줄기가 잘 썩는다. 줄기에 생긴 커다란 구멍으로 곤충이 들어가서 죽게 되면 쌓이게 된다.
곤충 사체에는 빛을 내는 인 성분이 있어 비가 오거나 습도가 높은 날 밤중에 빛을 내뿜게 된다. 어둠 속에서 빛이 날아다니는 것처럼 보여서 도깨비불이라 부르는데 요즘 같은 빛공해가 많은 시절에는 도깨비불은 더 이상 구경할 수 없게 되었다.
버드나무는 삽목이 잘되고 척박한 토양에서도 생육이 좋은 편이다. 씨앗은 솜털로 둘러싸여 바람이 부는 대로 넓은 곳으로 퍼진다. 물가에 뿌리를 내려 특별히 가꾸지 않아도 잘 자란다. 생활공간에서 흔하게 구할 수 있다 보니 오래전부터 버드나무를 각종 병을 완화시키는 약재로 써왔다. 오래 전부터 버드나무는 부활과 구원의 상징으로 그려졌다. 김홍도가 그린 남해 관음도는 관음보살이 버드나무로 역병에 시달리는 중생을 구원하는 모습을 표현했다. 요즘은 해열진통제인 아스피린 원료를 버드나무에서 채취한다.
다산 정약용은 힘든 귀양살이 시절에도 8가지 즐거움을 찾았다고 한다. 봄이 시작되면 꽃 찾기(訪花)와 버드나무길 따라 걷기(隨柳)를 꼽았다. 220년 전 정조대왕이 수원 화성에 구축한 방화수류정은 군사시설이기도 하지만 꽃과 버드나무를 바라보는 정자로 주변 경관과 조화를 이루고 있다. 봄을 맞아 모든 나무들이 아직 새 잎을 내기 주저하고 있을 때, 버드나무는 추위를 뚫고 연두색 잎을 내비친다. 강인한 생명을 보여주는 버드나무 새잎은 봄 색깔을 상징한다.
버드나무는 형제가 많다
버드나무는 전국 각처에서 자라며 특히 냇가나 습지에서 자라고 중국 전역과 일본에 분포한다. 우리나라에서 흔히 볼 수 있는 버드나무류는 왕버들, 능수버들, 수양버들, 용버들, 선버들, 키버들, 갯버들 그리고 버드나무가 있다. 암수 딴 나무니까 전부 16종류 버드나무가 우리 주변에 살고 있다.
각 종류별로 암수 나무는 꽃이 필 때만 구분이 쉽고 그 밖의 시간에는 어렵다. 뿌리는 물속에서 숨 쉴 수 있도록 관다발 조직이 발달 되었으며 수질정화 기능도 좋다. 물만 있으면 잘 자라서 초겨울까지도 잎이 파릇파릇하다. 가장 먼저 잎이 나서 가장 늦게 단풍 든다. 묵은 논들이 있는데 어김없이 버드나무가 있어 ‘아, 여기가 물이 많았구나’라는 걸 안다.
예전에 깊은 산속에서 묘지 터를 찾으러 다니다가 평탄지를 찾아냈다. 하지만 참억새 군락과 키버들이 살고 있어서 물이 나는 곳임을 알았다. 결국 묏자리로는 부적당하여 포기한 적이 있었다. 봄날 산속에 가장 먼저 연두색 잎을 내는 나무숲이 보인다면 그곳 토양은 축축한 토질이 틀림없다.
왕버들은 버드나무류 가운데 가장 크게 자란다. 다른 버드나무와 잎이 확연히 다르고 덩치도 커서 쉽게 알아볼 수 있다. 심지어 깊은 저수지 한가운데에서도 잘 자란다. 사진 촬영지로도 널리 알려진 경북 청송의 주산지에는 오랫동안 저수지 물속에서 커다랗게 자란 왕버들이 여러 그루 있다. 주산지에서는 1년에 한번 물을 빼준다. 그 때 뿌리 호흡을 하여 지금껏 살아남을 수 있다는 이론도 있다. 단단한 줄기로 버드나무 가운데 가장 오래 산다. 가지가 하늘로 뻗고 사방으로 넓게 퍼져 그늘을 크게 만들어 정자나무 역할을 할 수 있다.
선(erect)버들은 부러진 가지를 꽂아 두어도 바로 서서 자란다. 우포늪 물가에 많이 살고 있다. 물 흐름이 느린 습지나 모래나 진흙이 많이 섞인 토양에 분포되어 있다. 물의 흐름이 정상적으로 이뤄지는 곳에서는 선버들 군락이 생기고 없어지는 것을 반복하지만 수중보나 댐을 설치한 정체수역에서는 반드시 적절한 관리를 하는 것이 좋다.
가지가 아래로 쳐지는 특징을 가진 능수버들과 수양버들(실버들)은 구분하기 어렵다. 이른 봄날 1년생 어린 가지 색깔로 구분할 수 있는데 능수버들은 황록색, 수양버들은 적자색으로 보인다. 능수버들은 수양버들에 비해 꽃차례가 짧고, 가지가 더 아래로 늘어져서 땅에 붙을 듯이 길게 처진다. 예전에는 가로수로 식재하였으나 강풍에 쉽게 뿌리째 뽑혀 도로교통에 문제를 일으켜 지금은 심지 않는다.
한반도에서는 가지가 아래로 늘어지는 버드나무는 거의 능수버들로 볼 수 있다. 수양버들은 우리 주변에서 보기 어렵다. 원산지가 중국 양자강 하류인데 수나라의 양제는 양자강에 대운하를 만들면서 많이 심었다고 한다.
능수나 수양 둘 다 대기오염물질을 흡착하면서 대기정화 능력 또한 아주 높은 나무이니 도심 녹지에 식재하면 아주 좋다. 개수양나무는 중부 이북에 분포하는 한국 고유종이다. 개수양버들은 암술이 성숙 시에 털이 없는 반면, 능수버들과 수양버들은 암술에 털이 있는 점에서 다르다.
버드나무는 새로 난 가지 말고는 늘어지지 않는다. 용버들은 가지가 구불거리며 성장한다. 가지 모습이 워낙 특히 해서 쉽게 구분할 수 있다. 키가 3m 내외로 낮게 자라는 갯버들과 키버들이 있다. 흔히 버들강아지로 부르는 갯버들은 하천가에서 가장 먼저 핀다.
키버들은 잎이 마주나기 때문에 어긋나기를 하는 갯버들과 구분할 수 있다. 아는 만큼 보인다고 신록으로 물드는 봄날에 다양한 버드나무 종류를 암수나무와 암꽃, 수꽃까지 구분해 보는 지적 탐구를 해보는 것도 좋을 듯하다.
버드나무는 별도로 재배하지 않아도 묵논이나 경작하지 않는 농토에 저절로 자란다. 최근 큰 버드나무 수요가 많아지자 강전정해서 가식장으로 이식하는 경우가 많다. 속성수답게 이식은 잘 되는 편이다.
버드나무는 억울하다
지구온난화로 인한 기후변화 현상에 식물도 살아남기 위한 노력을 한다. 가만히 한자리에 뿌리내리고 있지 않는다는 연구결과가 있다. 식물이 생장에 필요한 기후 환경을 스스로 찾는다는 것이다. 그러나 버드나무같이 씨앗이 가벼운 식물종은 멀리 퍼져나가기 쉬운 만큼 자생지가 다양하다. 씨앗이 크고 무거워 멀리 퍼져 나가기 불리한 식물종은 기존에 뿌리내린 자리에서 기후변화에 적응하는 성향이 더 강했다.
꽃가루 알레르기에 고생하는 도시민에게는 버드나무 종모(씨앗을 덮은 솜)에 대한 잘못 알려진 정보가 많다. 5월경 눈처럼 날리는 솜뭉치는 꽃가루가 아니다. 눈처럼 흰색 씨앗솜뭉치(종모)가 씨앗을 품고 날아다닌다.
종모는 꽃가루로 오해받아 알레르기로 고생하는 사람들에게 미움을 받는다. 당연히 알레르기 물질도 아닌데 꽃가루로 잘 못 알려져 도시에서 퇴출되었다. 빗발치는 민원에 잘 살고 있는 버드나무는 잘려 버려졌다. 요사이는 한 술 다 떠서 암나무가 아닌 수나무만 심으라고 요구한다. 수꽃에 꽃가루가 훨씬 더 많은데도 불구하고. 인간의 편리성만 추구하는 것은 자연 생태에 대한 무모한 도전이다.
하천 주인은 물고기와 버드나무이다
10여 년 전부터 생태복원 사업이 본격적으로 확산되면서 습지 조성 시 버드나무류를 많이 심는다. 수질 개선이나 어류 먹이 제공에 버드나무같이 좋은 나무는 없기 때문이다. 하천이나 습지 주변에 버드나무 말고 심을 나무가 없다. 습지에 잘 사는 참느릅나무가 있긴 하지만 별다른 역할을 하지 않는 편이다.
그러나 도시하천이나 공원을 이용하는 주민들은 입을 모아 꽃가루 공해를 말하며 버드나무류는 심지 말고 꽃피우고 수형 좋은 나무를 심어 달라고 요구한다. 이미 군락을 이루고 있는 버드나무를 뿌리째 제거해 달라고 민원을 제기한다. 이미 버드나무 대신 삼색버들(개키버들_‘하쿠로니시키’)이 알록달록한 잎 색깔을 내세워 정원과 공원에 심겨지고 있다. 자연환경보다는 눈 호강이 더욱 중요한 가치가 되어가고 있다.
도시 하천에서는 물 흐름을 빠르게 하여 집중호우 시 침수 위험을 줄이는 사업을 하고 있다. 조경석을 쌓아 수로를 보강하고 있으나 오랫동안 하천에 살고 있던 버드나무는 홍수가 나면 뿌리째 뽑혀 사라진다. 버드나무 뿌리 더미에 의지해서 살아가던 어류도 덩달아 힘들어질 텐데, 아직은 세금을 도시 주민을 위해서만 사용해야 한다는 고정관념에서 벗어나지 못하고 있다.
인간은 자연환경과의 오랜 상호작용을 통하여 ‘전통생태지식’을 만들어 왔다. 이것은 일상생활 속에서 생물과 물리적 환경의 관계에 대한 경험을 통해 얻은 지식의 총합이다. ‘전통 생태지식’은 식물과 동물의 이름, 지역에 전해오는 이야기, 속담, 은유 등으로 남아 현재까지 전해졌다.
특정 종의 속성, 동물들의 이주 양식, 생물들과 미기후와의 관계 등 다양한 내용이 포함된다. 재생과 치유를 상징하는 버드나무는 이러한 전통 생태지식의 대표적 나무이다. 제대로 알고 잘 가꾸어나가야 한다.
홍태식 / 수프로 부사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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