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홍태식 한국정원협회 부회장 ([email protected])
이웃 사촌
쪽동백나무 꽃모습은 때죽나무와 닮은 꼴이다. 때죽나무 속(Styrax)인 두 나무는 꽃, 열매, 향기 그리고 수피 모습이 모두 비슷하고 잎과 꽃차례만 다르다. 때죽나무는 잎은 평범한 나뭇잎 모습인데 비해 쪽동백나무는 둥그스름한 잎이 오동나무만큼 커다랗다. 때죽나무는 잎겨드랑이에서 나온 꽃차례에 꽃이 2~6개씩 뭉치로 달리지만, 쪽동백나무 꽃은 20송이 정도가 모여 포도송이 같은 꽃차례를 이룬다. 나뭇가지 전체에 골고루 달리는 때죽나무와 다르게 커다란 잎사귀 사이에서 뭉게구름 모양으로 꽃이 핀다.
동백나무보다 열매가 작기 때문에 쪽동백나무로 부른다. ‘쪽동백’이라는 이름은 기름을 짤 수 있는 열매를 상징하는 ‘동백’에다가 쪽배, 쪽방이나 쪽문에서처럼 ‘작다’라는 의미의 접두사 ‘쪽’을 붙인 것이라고 한다. 이름만 보면 동백나무와 관련이 깊은듯하지만 사실은 사돈의 팔촌보다도 먼 사이이다. 그런데도 동백이라는 이름을 빌려 쓴 것은 동백나무처럼 열매로 기름을 짜서 머릿기름 등으로 이용하였기 때문이다. 오래전부터 여성들은 머리단장을 할 때 동백기름을 최고로 꼽았다. 그러나 동백기름은 남부 지방에서만 소량 생산되고 귀하다 보니 여염집 여인에게는 그림의 떡이었다. 그래서 손쉽게 구할 수 있는 쪽동백나무 열매로 기름을 짜서 사용하면서 ‘동백’ 이름을 끼워 넣은 게 아닐까 한다. 또한 열매 기름을 짤 수 있는 생강나무를 강원도 산골에서 ‘산동백’이라고 부르는 것도 같은 이유일 것이다.
외국에서 때죽나무를 snowbell이라고 부르는데 쪽동백나무에는 향기가 좋다는 형용사를 더하여 fragrant snowbell 이라고 한다. 그러나 우리 숲 속에서는 비슷한 시기에 꽃이 피어 어느 나무가 향기가 더 좋은지 구분하기 어렵다. 쪽동백나무는 도시 근교 산자락에서 흔하게 볼 수 있다. 신록이 가득한 늦은 봄날에 가까운 둘레길을 걷다 보면 그늘 속에서 새하얀 꽃을 늘어트린 쪽동백나무의 꽃향기를 느낄 수 있다.

화이부동 (和而不同)
쪽동백나무와 때죽나무는 같은 때죽나무 속이라서 비슷한 점이 많지만 숲 속에서 살아가는 방식은 전혀 다르다. 쪽동백나무는 높이가 10m를 넘게 자라지만 때죽나무는 그런 경우가 드물다. 직경 10-20cm의 둥근 달걀모양으로 넓은 잎으로 숲 속 그늘에서 광합성을 하는 데 유리한 편이다. 열매는 때죽나무처럼 독성이 있는 것은 아니고 떫은 탄닌 성분이 많다. 목재는 재질이 치밀하여 가구재와 조각 재료로 사용한다. 쪽동백나무는 잎자루가 부풀어 커지면서 그 속에서 겨울눈이 만들어지고, 이른 봄에 햇가지의 붉은색 껍질이 종이처럼 벗겨지지만, 큰 줄기는 짙은 회백색으로 매끈한 모습으로 자란다. 비가 오는 날에는 빗물에 젖은 검은색 줄기가 숲을 굳세게 지탱하는 기둥처럼 보인다.
녹음이 짙어지는 오월의 숲에 들어가면 아까시나무를 비롯하여 층층나무, 산딸나무, 때죽나무, 쪽동백나무 등 흰 꽃들이 유난히 많이 피어있다. 꽃 색깔은 꽃차례나 향기와 함께 꽃가루받이를 도와주는 벌과 나비에게 보여주는 안내판이라고 할 수 있다. 그런 측면에서 흰색은 효과적인 색은 아니다. 하지만 흰 꽃이 피는 나무들은 꽃의 색을 화려하게 치장하는 대신 달콤한 꿀이나 꽃가루를 만들어 꽃가루받이를 도와주는 곤충들에게 충분히 보상해 준다.
숲길을 걷다가 잠시 쉬면서 숲 속을 살펴보면 쪽동백나무 꽃송이들이 마치 눈이라도 내린 듯 바닥을 덮고 있는 것을 볼 수 있다. 통꽃으로 떨어져 한곳에 쌓여 있는 것이다. 작은 개울에는 온갖 하얀색 꽃이 무리를 지어 물 위에 떠있다. 이처럼 쪽동백나무를 비롯한 다양한 흰색 꽃들은 봄날 조용한 숲속에서 평범함을 거부하며 다양한 경관을 만들고 있다.

굽은 나무가 선산을 지킨다
때죽나무가 가느다란 잔가지가 골고루 뻗어 나가는 데 비하여, 쪽동백나무는 곁가지 발달이 무질서하고 이리저리 굽어있다. 이처럼 가지 발달이 빈약하여 낙엽이 지고 나면 수형은 볼품없어 보이는 편이다. 겨울철이 길어 나뭇가지에 잎이 떨어진 기간이 5개월이나 걸리는 우리나라에서는 나목의 모양도 조경수 선정 시 중요한 조건이 된다. 느티나무나 단풍나무 같이 저절로 수형을 잡아가는 수종이 조경수로 선정되는 이유이기도 하다.
30여 년 전 주공아파트 조경공사에 쪽동백나무가 설계에 반영되어 식재한 적이 있다. 주로 3m 내외 규격을 심었는데 조경수로 생산하는 수종이 아니라서 대부분 산에서 야생목을 캐다가 심었다. 현장에서 조경수를 식재할 때는 살리는 데 집중해야 한다. 현장에 도착한 나뭇잎을 제거하고 뿌리분이 마르기 전에 심어야 살릴 수 있다. 가지 전정도 최대한 많이 하여 이식한 나무가 잘 적응할 수 있게 작업한다. 그러다 보니 곁가지가 별로 없는 쪽동백나무는 식재하고 나면 지게 작대기처럼 보인다. 당연히 식재 후, 모양 빠지는 수형이 문제가 되고 하자가 많이 발생하여 나중에 아파트 식재 수종에서 빠지게 되었다. 돌이켜 생각해 보니 숲 속에 살고 있는 모습은 괜찮은데 도시환경에 벌거벗은 모습으로 서 있기 부적당한 수형을 가졌다고 할 수 있다.
2023년 3월에 환경부는 ‘도시 내 식재 권장 자생식물 100종’을 제안했는데 쪽동백나무를 비롯하여 때죽나무, 층층나무, 귀룽나무 등이 포함되었다. 단순히 도시경관을 아름답게 꾸미는 방식에서 벗어나 도시 내 생물 다양성과 그늘 확보를 위한 식재 방식과 추천 수종을 제안했다. 다양한 수목이 식재 되도록 식물종 선정 시 ‘10-20-30 원칙을 적용하자는 것이다. 이 원칙은 수목 종류를 같은 종(species) 10% 이하, 동일 속(genus) 20% 이하, 같은 과(Family) 30% 이하로 선정하자는 것이다. 또한 신규 식재 시 자생종을 우선 고려하고, 곤충 등 생물종을 유입하고 먹잇감이 될 수 있는 식이·밀원식물을 심고, 교목의 단순 식재보다는 환경·생태적 효과가 극대화되도록 교목·관목·초본이 어우러지는 다층 식재를 권고했다. 이러한 흐름에 따라 점차 쪽동백나무 같은 자생식물 수요가 늘어나 재배 수량이 늘어날 것으로 예상된다. 환경부 제안처럼 앞으로 도시 녹지에 화려한 꽃과 정돈된 수형을 뽐내는 외래종을 대량으로 심는 것은 줄여 나가야 한다.

미운 오리 새끼
비옥한 사질양토에 토심이 깊고 적당한 물과 배수가 잘 되는 곳에서 잘 자란다. 내한성이 강하여 전국 어디서나 월동하며 바닷가에서도 잘 자라고 내음성과 내병충성이 강하며 각종 공해에도 강하므로 도심지에서도 식재가 가능하다. 생장속도는 느리며 이식이 잘 된다. 도시 주변 등산로 부근에서 많이 보인다. 가을철에 샛노란 단풍이 드는데 생강나무 노란색 단풍과 함께 숲속을 환하게 밝혀준다. 생육이 왕성해 주변 활엽수와 경쟁에서 이겨낸 쪽동백나무는 10m 이상 크게 성장한다. 숲 속에 사는 쪽동백나무 대부분은 키 큰 나무 아래 그늘에 살고 있는데 넓게 가지를 펴 광합성을 한다. 도시 녹지에 독립수로 심는 경우 곁가지를 적당하게 뻗어 스스로 수형을 만들 수 있다.
용산역 앞에는 강제징용 노동자 동상이 서있다. 일제 강점기 시절 강제징용을 고발하는 조각이다. 역사의식이 있는 청소년들은 이를 기억하고 기념하는 상징으로 ‘잃어버린 시간을 찾아서’란 꽃말이 있는 쪽동백나무 꽃과 강제징용 노동자들이 많이 끌려간 탄광을 상징하는 안전모가 그려진 로고를 만들었다고 한다. 앞으로 쪽동백나무 꽃을 보게 되면 잊지 말고 기억해야 할 뼈아픈 역사가 떠오를 것 같다.
홍태식 한국정원협회 부회장
*외부 기고는 본지 편집 방향과 다를 수 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