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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미지의 도시 평양, 눈으로 걷기 Pyongyang, An Unknown City
    멀지 않지만 다가갈 수 없던 곳, 북한이 한층 가까워지고 있다. 지난해 북한의 비핵화 의지 표명 이후 이어진 남북정상회담과 북미정상회담은 북한에 대한 관심을 증폭시켰다. 2차 북미정상회담이 결렬되며 들뜬 분위기는 조금 가라앉았지만, 머지않아 남북한이 경제, 문화, 예술 등 여러 방면에서 교류하게 될 것이라는 기대감은 아직 사그라지지 않았다. 오랜 시간 동안 계속된 남과 북의 단절은 상대에 대한 몰이해를 초래했고, 우리는 줄곧 왜곡된 상상에 기반해 북한의 모습을 그려왔다. 이번 기획은 북한의 수도 평양을 살펴봄으로써 북한 도시의 어제와 오늘을 이해할 수 있는 기회를 마련한다. 사회주의 체제와 이념이 고스란히 반영된 도시의 형성 과정과 변천사를 살피고, 그 속에서 생활하는 주민들의 모습을 넌지시 헤아려 보고자 한다. 나아가 평양의 미래에 대한 상상력 넘치는 기획을 통해 다양한 가능성을 탐색해 본다. 북한의 도시 공간에 대한 탐사 없이 그들의 사회와 문화를 이해하기란 쉽지 않다. 다양한 필자가 들려주는 이야기가 북한 도시에 대한 시각을 확장하고 평양을 간접적으로 경험하게 하는 흥미로운 길잡이가 되기를 기대한다. 진행 김모아, 윤정훈 디자인 팽선민
    • 편집부
  • [미지의 도시 평양, 눈으로 걷기] 사회주의 도시, 평양
    평양은 만주로부터 한반도로 들어오는 길목에 위치하기 때문에,고구려 시대부터 매우 중요한 전략적 요충지로 손꼽히던 곳이다.특히 조선 시대에는 대동강과 보통강을 끼고서 네 겹의 성벽이 건설되었는데,석축으로 된 내성 내부에는 평안도 감영과 객사를 비롯한 주요 행정 및 군사 시설이 모여 있었다.내성의 규모도 다른 읍성에 비해 큰 편이어서6,000여 세대의 주민이 내성 안팎에서 상업과 군역에 종사하며 삶을 영위했다.그렇지만 개항 이후 성곽 도시로서의 평양은 급격하게 변모해 나갔다.경의선 철도가 외성을 관통하고,그 한가운데 평양역이 건설되었다.또한 내성의 일부가 허물리고 그 주위로 장로교와 감리교의 선교 거점이 들어섰다.숭실학교와 광성학교 등이 바로 이곳에 설립되어 학생들을 교육했다.평양은 해방 이전까지 한반도에서 기독교 세력이 가장 왕성했던 도시이기도 하다. 일제 식민지기 평양은 다른 한국의 도시들처럼 기형적 구조를 가지고 있었다. 경의선 철도가 부설된 이후 조금씩 몰려오던 일본인들의 수는 1910년 강제 병합 이후로 일본 군대가 주둔하면서 급격히 늘어났다. 그들은 평양역 주변에 정착하여 일본인 마을을 형성하기 시작했다. 이로 인해 평양은 내성 지역의 한국인 구역과 평양역을 중심으로 한 일본인 구역으로 이분되었다. 1920년대 평양부는 시구 개정을 실시하여 이 두 구역을 연결하고자 했으나, 분리된 도시 구조는 해방 전까지 해소되지 못한 채 유지되었다. 그렇지만 이같은 식민지기의 도시 구조는 한국전쟁 동안 도시가 완전히 초토화되면서 대부분 사라졌다. 오늘날 대동문과 모란봉 부근의 일부 성벽이 복원되어 과거의 흔적을 전해주고 있을 뿐이다. 평양은 1,500년 이상의 역사를 가지는 고도이지만, 전쟁으로 인해 대부분의 역사적 유적들이 흔적도 없이 사라졌고 고유한 도시의 정체성마저 잃어버렸다. 하지만 전쟁이 한쪽의 일방적인 승리로 끝나지 않고 한반도가 남과 북으로 분단되면서, 전후에 북한 정권은 평양을 철저한 사회주의 도시로 탈바꿈시킬 수 있는 기회를 갖게 되었다. 전후 복구와 도시계획 김일성은 전쟁 중이던 1951년 1일 평양복구계획을 수립할 것을 지시했고, 그해 5월 평양에 대한 최초의 도시계획안을 완성했다. 이 계획안은 건축가 김정희가 작성한 것으로 알려져 있다. 그는 김일성의 배려로 북한의 첫 번째 해외 유학생으로 선발되어 모스크바에 있는 소련 건축 아카데미로 유학을 떠났고, 한국 전쟁이 치열했던 1951년 1월에 귀국해 평양시 복구계획을 맡았다.11951년의 계획안에는 검게 칠해진 도시 블록과 도로망이 간단하게 그려져 있다. 이 계획안에 등장하는 가장 큰 특징은 김일성이 제시한 것으로, 첫째 일제 식민지기에 형성된 평양의 기형적인 시정하고, 둘째 광범한 근로 인민을 위한 문화 시설과 편의 봉사 시설을 갖춘 현대적인 도시로 복구 건설하는 데 초점을 맞췄다는 점이다.2 이렇게 작성된 평양복구계획안으로 김일성은 1952년 5월 모란봉지하극장에서 전람회를 개최했다. 여기에는 대동강 유보도 계획안, 도심 중심부 형성안, 고층 살림집과 대상 공공건물 설계도가 함께 전시되었다.3 이 전람회를 통해 각계 의견을 수렴한 후, 1953년에 내각 결정 제125호 ‘평양시 복구재건에 관하여’를 발표했다. 이는 전후 평양복구계획의 기본 방향을 결정하고 있는데, 주요 내용은 “역사적으로 형성된 도시의 기본을 보존하면서 주택, 산업 및 교통의 옳은 배치와 도시 주민 생활의 정상적 건강 조건을 보장하는 주택 구역을 옳게 조직하는 것이다. 대동강을 도시의 축으로 설정하며, 대동강을 따라 구릉 기복 조건에 어울리게 건축물을 배치하며, 김일성광장을 남산 동쪽 기슭에 건설하며, 대동강과 평행되면서 하류에 공장, 기업소를 배치하며, 주택 지구를 녹화하고 도시 주변에 녹지대를 형성할 것 등이다.”4이는 1953년에 작성된 평양시복구건설총계획도에 반영되어 있다. 1950년대 중반에 등장한 평양 도시계획안은 기존의 방향을 충족시키면서 몇 가지 새로운 제안을 담고 있다. 우선 김일성광장에서 시작된 도시 축을 대동강 좌안까지 확장해 더욱 강조되도록 했다. 대동강을 평양 도시계획의 중심 요소로 포함하려는 의도로 보이는데, 이를 통해 도시 축을 명료하게 구성한 것이다....(중략)... * 환경과조경 373호(2019년 5월호) 수록본 일부 1. 이왕기, 『북한 건축 또 하나의 우리 모습』, 서울: 서울포럼, 2000, p.130. 2. 김일성, 『김일성 저작집』 제6권, 평양: 조선로동당, 1980, p.280. 3. 평양건설전사 편찬위원회 편, 『평양건설전사 2』, 평양: 과학백과사전종합출판사, 1997, p.144. 4. 리화선, 『조선건축사 2』, 평양: 과학백과사전종합출판사, 1989, p.104. 정인하는 한양대학교 건축학부의 건축 역사 및 이론 담당 교수다. 1987년 서울대학교 건축학과를 졸업하고, 1992년 프랑스 파리 제1대학에서 박사 학위를 취득했다. 1993년 한국에 귀국한 이후 동아시아 건축 및 도시 분야를 집중적으로 연구했으며, 이와 관련된 다수의 논문과 저작물을 발표했다.
    • 정인하ihjung@hanyang.ac.kr
  • [미지의 도시 평양, 눈으로 걷기] 북한 도시의 축, 광장과 상징 공간
    포스트 평창올림픽 2018년은 한반도에 새로운 물결이 휘몰아친 해다. 베트남에서의 북미정상회담이 결렬됨에 따라 조금 상황이 달라졌지만, 2018년 평창올림픽에서 시작되어 올 초까지 이어져 온 남북 화해의 흐름은 한반도 혹은 적어도 한국에 새로운 분위기를 만들었다. 김대중 전 대통령이 햇볕정책의 성과로 북을 방문해 남북정상회담을 가졌던 2000년과는 사뭇 다른 분위기다. 당시의 분위기는 조금 더 통일에 대한 염원이 가득했던 것 같다. 그때만 하더라도 통일은 한국인이라면 가질 수밖에 없는 하나의 대전제였다. 실현 가능성에 대한 논의를 떠나, 국민들은 북한을 이해하기보다는 북한과 통일된 한민족 국가를 만들 수 있다는 정치적 논의를 즐겼던 것으로 기억한다. 근 20년이 흐르고 북한에 새로운 지도자가 등장하면서 이러한 논의는 다른 방향으로 흘러갔다. 적어도 한국에서는 두 나라가 정치적 통합을 어떻게 하느냐가 아닌 북한 사회의 변화와 자본화, 이러한 변화에 따른 한국과의 교류 가능성, 한국의 경제 성장 가능성에 대한 논의가 활발히 진행되었다. 즉 한국인들이 진정으로 북한이 어떻게 변화하고 있고 어떻게 살고 있는지 관심을 갖기 시작한 것이다. 이는 북한 도시에 대한 관심으로 나타나기 시작했다. 10여 년간 북한의 도시와 건축에 대한 외부 강연을 다녔지만, 작년 한 해처럼 청중들이 북한의 도시, 더 나아가서는 북한의 부동산투자 가능성에 대해 궁금해한 적은 없었다. 이전에는 대부분의 질문이 “평양은 전기가 잘 안 들 어온다던데 엘리베이터는 작동하나요?” 혹은 “어떠한 방식으로 통일이 돼야 할까요?” 하는 식이었다. 강연 내용과는 별개로 북한에 대한 피상적 호기심에 근거한 질문들이다. 하지만 최근 강연에서는 많은 변화를 느낀다. 북한에 새로운 도시 모델을 적용할 수 있지 않을까, 최근 평양에 지어진 아파트들은 과연 새로운 변화를 보여주는 현상일까, 북한에 돈주(북한의 신흥 자본가)가 많아졌다는데 그들을 통해 북한 부동산에 투자하는 중국인이나 외국인은 없는가 등 북한에 대한 이해의 폭이 넓고 깊어진 질문들이 이어지고 있다. 이러한 변화 덕분인지 더 많은 사람이 북한의 도시와 도시 공간에 대해 알고자 하기도 한다. 사회를 알기 위해서는 도시를 알아야 하고, 또 도시를 이해하려면 그 사회를 알아야 하기 때문이다. 사회주의 도시의 핵심 공간, 광장 우리가 북한의 도시 혹은 평양을 이해하기 위해서 가장 먼저 밟아야 하는 과정은 김일성광장에 대한 이해일 것이다. 이 도시 공간을 충분히 이해해야만 그들의 사회를 이해할 수 있고, 그들의 사회를 이해해야만 건설적인 한반도의 미래를 생각해 볼 수 있다. 필자는 “우리가 김일성광장을 객관화해 볼 수 있을 때 비로소 북한 사회를 이해하는 마음을 열 수 있을 것”이라 이야기하곤 한다. 과연 그럴 수 있을지 여전히 의문이지만, 건축과 도시를 다루는 사람의 입장에서 충분히 객관화할 수 있는 대상이라고 믿고 있다. 흔히 그리스의 아고라agora나 로마의 포럼forum에서 광장의 원형을 찾곤 한다. 이는 단순히 비어 있는 공간이 아니라 많은 사람이 모일 수 있는 도시 공간이었다. 실제로 아고라는 그리스어로 ‘모이는 곳’이라는 뜻으로, 여러 사람이 모여 시장을 형성하는 곳이었으며 지도자의 연설을 듣는 곳이기도 했다. 그리스어 agorázō는 “I shop나는 구매한다”을 의미하고, agoreúō는 “I speak in public나는 공개 석상에서 이야기한다”을 뜻하는데, 두 단어 모두 아고라가 그 어원이다.1 즉 광장이라는 도시 공간에는 두 가지의 매우 중요한 성격이 함축되어 있는데, 시장과 공공이 그것이 다. 특히 시장은 도시의 근본적 기능이기도 하다. 많은 전문가는 생산한 물품을 거래할 공간의 필요성이 도시 발생으로 이어졌다고 본다. 그만큼 시장은 도시가 갖추어야 할 기본적인 기능이며 도시의 중요한 공간으로 인식될 수밖에 없다. 또한 그리스의 민주주의가 아고라 덕분에 가능했다는 것은 이미 잘 알려진 사실이다. 로마의 포럼처럼 아고라는 대중이 집결해 연설을 듣고 논쟁하고 토론하는 도시 공간이었다. 그리스의 정치를 발전시킨 물리적 공간 중 하나인 것이다. 렘 콜하스는 프랑스 혁명 등의 시민 혁명은 18세기 건축에서 나타난 발코니 덕분에 가능했다고 주장하기도 했다. 혁명가 혹은 지도자가 3~4층 높이의 발코니에 올라 많은 대중을 상대로 연설할 수 없었다면, SNS는 물론 TV나 라디오도 없던 시절에 시민 혁명을 이룰 수 없었을 것이라는 이야기다. 한국도 마찬가지다. 과연 광화문광장이 없었다면 정치 민주화를 위한 혁명을 만들어낼 수 있었을까. 광장의 근원과 기능은 유럽 도시에 지대한 영향을 끼쳤다. 동아시아와는 달리 유럽의 광장은 교황이나 주교가 회중을 모으기 위한 공간, 왕이 군대를 집결시키거나 퍼레이드를 하는 공간으로 사용되기도 했다. 유럽에서 기원한 사회주의 도시는 이러한 문화적 배경에서 자유로울 수 없었던 듯하다. 제2차 세계대전 이후 동독은 사회주의 도시 건설을 위한 ‘도시 디자인의 16가지 원칙The Sixteen Principles of Urban Design’을 발표했는데, 그중 여섯 번째 원칙은 다음과 같다. “도시의 중심지는 도시의 핵심 공간을 형성한다. 도심은 도시의 정치적 중심지다. 도심에는 중요한 정치적, 행정적, 문화적 장소가 자리한다. 도심의 광장에서는 정치 데모, 행진, 축제 등이 일어난다. 도심은 가장 중요하고 기념비적 건물로 구성되어야 하며, 도시 계획의 건축적 구성을 지배하고 도시의 건축적 실루엣을 결정해야 한다.”2이처럼 사회주의 도시에서는 도시의 중심성에 주목하고 광장의 기능을 강조했다. 상징적 건축물 등으로 구성되는 이 공간에서 정치적 집회나 행진, 축제를 위한 행사가 벌어질 것이라고 이야기한다. 사회주의 도시가 유럽의 도시 문화를 근간으로 하기 때문에 태생적으로 광장을 중요시할 수밖에 없었다고 이해할 수 있는데, 그렇다면 그들은 어떻게 이를 ‘사회주의화’했을까. ...(중략)... * 환경과조경 373호(2019년 5월호) 수록본 일부 1. Sharon Boda, Trudy Ring, and Robert Salkin, eds., International Dictionary of Historic Places: Southern Europe, Routledge, 1996, p.66. 2. 원문은 다음과 같다. “The center forms the veritable core of the city. The center of the city is the political center for its population. In the city center are the most important political, administrative and cultural sites. On the squares in the city center one might find political demonstrations, marches and popular celebrations held on festival days. The center of the city shall be composed of the most important and monumental buildings, dominating the architectural composition of the city plan and determining the architectural silhouette of the city.” Lothar Bolz, Von deutschem Bauen: Reden und Aufsatze, Berlin(Ost): Verlag der Nation, 1951, pp.32~52. 3. 김정희, 『도시건설』, 평양; 조선민주주의인민공화국과학원, 1953. 임동우는 홍익대학교 건축도시대학원 도시설계전공 전임교수이며, 프라우드 건축사사무소 대표다. 2013년 뉴욕건축가 연맹의 젊은건축가상을 받았으며, 2014년 베니스비엔날레 황금사자상을 수상한 한국관의 참여 작가다. 2017 서울도시건축비엔날레 평양전-평양살림의 총감독이었으며, 2019 서울도시건축비엔날레 평양전의 총괄큐레이터를 맡고 있다. 대표작으로는 리닝 하우스(Leaning House), 이그레스 하우스(EEgress House), 투란단다사나 하우스(Tuladandasana House) 등이 있으며, 『평양 그리고 평양 이후』(2011), 『북한도시 읽기』(2014), 『도시화 이후의 도시』(2018) 등을 펴냈다.
    • 임동우dyim@hongik.ac.kr
  • [미지의 도시 평양, 눈으로 걷기] 평양의 오아시스, 공원과 유원지
    핵, 플루토늄, ICBM…. 우리나라 국민만큼 이러한 단어에 관한 정보를 자주 듣는 사람도 없을 것이다. 북한 관련 뉴스 기사는 대부분 핵과 관련된 내용이다. 북한의 핵무기와 미사일은 우리 국가와 국민의 안위에 직결되는 것이고, 정치적 관점에서 가장 중요한 이슈임에 틀림없다. 그러나 핵이나 미사일, 삼대 세습 등 정치적 주제를 제외하고는 북한에 대해 아는 바가 별로 없다. 피자와 스파게티만 먹어보고 이탈리아 음식 전체를 평가할 수 없는 것처럼, 핵무기와 미사일만으로는 북한을 다 알 수 없다. 작년 봄 판문점에서 남북정상회담이 열린 이후, 평양냉면이 다시금 인기몰이를 했다. 평양냉면은 우리에게 익히 알려진 음식이고 좋아하는 사람도 많지만, 평양이 왜 냉면으로 유명해진 것인가에 대한 관심은 별로 없다.『조선의 민속전통』은 평양냉면, 평양온반, 평양숭어국과 어복쟁반 등을 평양의 대표 음식으로 소개하는데, 이는 모두 주변 지역에서 나온 재료로 만들어진 음식이다. 조선 후기의 풍속과 연중행사를 정리한 『동국세시기』는 메밀로 만든 냉면 중에는 평안도의 면이 가장 좋다고 했고, 일제 강점기의 조사에 따르면 평안남도는 좁쌀과 수수, 메밀 등을 전국에서 가장 많이 심는 지역이다. 지역의 자연환경으로 인해 곡물로 만든 음식이 평양의 대표 음식이 된 것이다. 우리와 같은 자연환경과 민속 문화를 가진 북한의 일상은 우리와 크게 다르지 않다. 우리 생활 속 벌어지는 일과 상황이 북한에서도 똑같이 일어난다. 북한에도 최고급 명품을 파는 호화 백화점이 있으며, 부동산 투기가 성행하고 미세 먼지로 골머리를 앓아 공기 정화 소독기(공기 청정기)의 개발과 판매가 늘고 있다. 지식 분야도 다르지 않다. 북한의 최고 대학이라 일컫는 김일성대학교의 논문집을 살펴보면, 북한 산천의 생태 환경을 연구하는 자연과학자부터 최첨단의 기술력을 쌓고자 애를 쓰는 기술공학자까지 각 분야의 전문가가 자신의 연구 분야에 최선을 다하고 있는 것을 알 수 있다. 정치 경제적으로 열악한 환경 속에서도 고군분투하는 그들을 보면 한편으로는 안쓰럽기까지 하다. 우리는 그간 북한을 편협한 시각으로만 바라봤다. 정치적 색안경을 쓰고 북한을 바라보면 단색이지만, 색안경을 벗으면 다채로운 빛깔의 속살을 볼 수 있다. 최근 남북 관계와 주변국들의 국제 정세가 급변하면서 평양에 다시 관심이 집중되고 있으나 이념의 색안경을 쓰고 보는 것은 과거와 크게 달라지지 않았다. 이념적 색깔을 걷어낸다면, 평양의 새로운 면모를 찾아낼 수도 있다. 평양이라는 도시에 중첩된 여러 층위를 한 꺼풀씩 벗겨내며 평양을, 그리고 북한을 다시 한 번 생각해 볼 때가 온 것이다. 북한의 수도, 평양 수년 전 중국의 칭다오 시민을 대상으로 베이징, 도쿄, 서울, 평양 등 네 도시의 관광 이미지를 비교 분석한 논문1이 발표됐다. 이에 따르면 평양은 다른 세 도시에 비해 인지적 이미지와정서적 이미지2가 떨어지는 것으로 평가됐다. 이 논문은 중국 시민을 대상으로 한 조사이기 때문에 평양에 대해서는 어느 정도 객관적인 평가라 할 수 있다. 물론 논문의 결과가 평양의 현재 이미지에 관한 절대적이고 최종적인 평가라 단언할 수는 없지만, 시사하는 바가 크다. 한때 중국인들이 평양을 ‘천하제일강산’이라 칭했지만 이제는 그 평이 무색해졌다. 북한이 오랫동안 자초해온 고립이 도시의 모습도 바꿔 놓았다. 소프트웨어가 바뀌니 하드웨어도 바뀐 셈이다. 평양이라는 물리적 공간에 역사 문화가 중첩되면서 도시의 성격과 품위도 바뀌었다. 하지만 평양에 켜켜이 쌓인 역사와 문화의 층위는 매우 두텁다. 평양은 한 나라의 도읍지로 번성했으며 물산이 풍부한 상업 도시로도 유명했다. 또 명승고적이 많고 풍류 넘치는 도시로서 누구나 한 번쯤은 유람하고 싶은 곳이기도 했다. 근래에는 우리와 체제와 이념이 달라 끊임없이 부딪혔으나 누군가에게는 꿈에 그리는 그리운 고향 땅이기도 하다. 우리에게 평양은 이념에 갇힌 도시였다. 우리는 그동안 북한의 삼대 세습에 넌더리를 내고 그들의 체제와 이념에만 붙잡혀 정작 그들이 사는 도시라는 물리적 공간에는 관심이 없었다. 북한의 주민이 먹고 일하며 쉬고 잠드는 도시는 어떤 모습일까. 통제와 구속이 많은 평양 시민에게 공원은 일종의 오아시스다. 평양 시민들이 여가를 보내는 장소인 공원을 통해 그들이 어찌 살아왔고 어떻게 지내고 있는가를 살펴보는 것도 중요하다. 여기에는 ‘평화와 화해’라는 거대 담론이 필요치 않다. 소시민들에게는 이념보다 일상의 삶이 더 중요하기 때문이다. ...(중략)... * 환경과조경 373호(2019년 5월호) 수록본 일부 1.남려영, “북경 서울 도쿄 평양 관광이미지 비교분석 연구:중국 칭다오 시민을 대상으로”,동국대학교 석사학위논문, 2012. 2.이 연구에서 인지적 이미지는 관광지 자체의 매력 혹은 자원 등 이미지를 구성하는 일련의 속성에 대한 평가이며,정서적 이미지는 전체적이거나 구체적인 속성을 평가함으로써 얻게 되는 정서적 반응을 의미한다. 이선은 충남대학교 임학과를 졸업하고 독일 프라이부르크 대학교에서 석사와 박사 학위를 받았다. 프라이부르크 대학교 식생 및 입지학 연구소에서 연구원으로 근무했으며, 현재 한국전통문화대학교 전통조경학과 교수로 재직 중이다. 자연과학자로서 인문학과의 접점을 찾고자 노력하고 있으며, 저서로는 『한국전통조경식재: 우리와 함께 살아 온 나무와 꽃』(2006), 『한국의 자연유산』(2009), 『우리 자연유산 이야기』(2012), 『풍류의 류경, 공원의 평양』(2018) 등이 있다. 최근에는 『정원사를 위한 라틴어 수업』(2019)을 번역했다.
    • 이선syee@nuch.ac.kr
  • [미지의 도시 평양, 눈으로 걷기] 살아 있는 도시 박물관 평양의 미래
    도시에는 역사적 흔적이 시간 순서대로 쌓여 있다. 북한의 수도 평양도 마찬가지다. 정치적 판단과 관계없이 도시는 그 자체로 시간을 담은 물리적 공간이기 때문에 존중되어야 한다. 비록 다른 이념적 기반 위에 세워져 그 모습이 낯설고 때로는 거부감이 느껴지더라도 말이다. 언젠가 평양의 도시와 환경에 우리가 관여할 수 있는 날이 온다면 모든 것을 새롭게 구축하는 방식은 지양해야 한다. 역사적 기록물인 기존 도시 구조를 유지하되 새로운 시대에 적합한 방향으로 도시 공간을 발전시켜 나가야 한다. 사회주의 도시계획으로 구현된 평양은 자본주의 도시 서울과 마찬가지로 한반도 역사의 일부이자 자산이다. 특히 평양은 사회주의 도시 중에서도 이상적인 모델로 여겨진다. 서울과 대비되는 평양의 특성은 외국 관광객이 보기에 매력적일 수 있으며, 두 도시를 함께 방문하는 것은 흥미로운 체험이 될 것이다. 평양은 다른 자본주의 도시와 비교하면 파격적인 공간 구조로 이루어졌는데, 어떤 부분은 도시계획 측면에서 상당한 장점으로 활용될 수 있다. 북한의 지구 단위 계획, 풍부한 공원 녹지, 상징적 공간, 경관 축 등을 잘 발전시켜 활용하면 도시를 보다 풍부하게 경험하게 할 수 있다. 따라서 평양 본연의 도시적 맥락을 유지하고 발전시켜 사회주의 체제의 흔적을 엿볼 수 있는 ‘살아 숨 쉬는 도시 박물관’으로서 평양을 제안한다. 공간의 연결성 향상: 도시에 생명력 불어넣기 도시 공간의 분절은 지역 간 활발한 교류를 막는다. 도시에 피를 통하게 하고 생명력을불어넣기 위해서는 단절된 공간을 서로 연결해야 한다. 도시 내부 네트워크의 연결성을 향상해 공간 간 커뮤니케이션을 활성화하는 것이다. 공간의 단절은 여러 형태로 나타난다. 언덕이나 하천 등 자연 지형지물로 인해 분절되기도 하며, 도로나 철도 등의 교통망으로 지역이 나뉘기도 한다. 평양에서 눈에 띄는 단절의 원인으로는 철도망을 들 수 있다. 일제 식민지기부터 철도는 주요 산업 시설을 잇는 중요 교통망이었기 때문에 평양 시내 한가운데를 관통하고 있다. 평양역을 중심으로 동쪽은 중요 정부 기관이 밀집된 중구역이고, 서쪽은 산업 시설이 모여 있는 평천구역이다. 철로에 의해 분절된 두 공간은 그 성격도 매우 다르다. 서울 연남동의 경의선 숲길에 가보면 철로가 놓였던 공간이 공원화되면서 주변 환경이 매력적으로 전환된 것을 볼 수 있다. 도심을 가로지르는 철로를 지하화하고 지상에 선형 공원을 조성했을 뿐인데, 가로 주변으로 활력이 생겨나 이전과는 다른 명소로 탈바꿈했다. 이같이 공간의 연결성 강화는 매우 중요하다. 특히 도심의 인구가 밀집된 지역일 경우 그 효용 가치는 더욱 크다. 평양역을 지나는 철로는 남북 방향으로 길게 뻗어 동서 간 단절을 심화한다. 만약 역 주변의 철도 차량 기지를 외곽으로 이전하고 고속 철도를 지하에 새로 건설한다면, 이 지역의 공간적 특성을 크게 바꿀 수 있다. 평양역과 주변 공간을 포함하는 재개발 프로젝트를 통해 주거, 상업, 문화, 컨벤션 시설 등을 갖춘 복합 지구로 개발하는 것이다. 또한 평양은 강의 도시라 할 수 있다. 넓은 대동강이 S자 모양으로 평양 시내를 관통하며, 지류인 보통강도 도심을 휘감고 있다. 대동강 서편, 보통강 동편은 고구려 시대의 평양성(북한국보 제1호)이 위치한 지역이며 현재도 평양의 중심이다. 따라서 평양 시내에는 강에 인접한 공간이 많으며, 이러한 수변 공간을 어떻게 활용하느냐에 따라 도시 경관은 물론 사람들의 공간 체험도 크게 달라질 수 있다. ...(중략)... * 환경과조경 373호(2019년 5월호) 수록본 일부 민경태는 연세대학교에서 건축공학 학사 및 도시설계 석사, 영국 옥스퍼드 대학교에서 MBA 과정을 밟고, 북한대학원대학교에서 경제·IT 전공으로 북한학 박사 학위를 받았다. 삼성전자에서 신기술 소싱, 기술벤처 투자, 해외 공공 기관 협력 업무를 담당했으며 현재 재단법인 여시재에서 한반도의 미래에 대해 연구하고 있다. 저서로는 『서울 평양 메가시티』(2014), 『서울 평양 스마트시티』(2018) 등이 있다.
    • 민경태minkenny@gmail.com
  • [미지의 도시 평양, 눈으로 걷기] 더 읽을거리, 더 볼거리
    1. 『도시화 이후의 도시』 임동우, 스리체어스, 2018. 대부분의 도시가 성장을 끝낸 탈산업시대, 우리는 앞으로 어떤 도시를 지향해야 할까. 임동우는 경제 성장과 효율의 논리로만 도시를 바라보는 한국 도시계획의 문제점을 지적하며, 미래 도시에 대한 힌트를 평양에서 찾을 수 있다고 말한다. 공동체 중심의 삶을 꾸리는 사회주의 도시에 우리가 배울 가치가 숨겨져 있다는 것이다. 북한의 도시를 편견 없이, 더 나은 삶의 여건을 보장하는 유기적 도시 공간으로 살피다보면 그가 제안한 ‘생산에 기반을 둔 커뮤니티네트워크’의 가능성을 발견하게 될 것이다. 2. 『북한 도시 읽기』 임동우·라파엘 루나 엮음, 담디, 2014. 도시와 건축은 정치, 경제, 사회, 문화 등을 포괄적이고 현실적으로 살필 수 있는 바로미터다. 이 책은 북한의 27개 도시와 8개의 주요 도시, 70여 개의 건축물을 분석해 상세한 다이어그램과 도면으로 보여준다. 이뿐만 아니라 중국과 소련의 접경 지역, 비무장 지대의 자연환경, 북한 도시 네트워크 등 국내외 전문가와 학자가 구축한 객관적 자료를 통해 북한을 이해할 수 있는 중요한 단초를 제공한다. 북한 도시의 미래에 대한 시나리오를 써 내려 간 ‘미래도시 제안’ 파트에서는 치밀한 분석을 바탕으로 한 도시, 건축 전문가들의 발칙한 상상력을 맛볼 수 있다. 3. 『북한, 도시로 읽다』 전상인, 통일부 통일교육원, 2015. 프랑스 역사학자인 페르낭 브로델은 “도시는 변압기와 같다”고 이야기했다. 역사적으로 도시가 사회 변동의 온상이 되어 왔기 때문이다. 이러한 관점에서 전상인은 북한의 도시를 이해함으로써 북한 체제의 특성과 변화를 파악하고자 했다. 북한의 수도인 평양, 북한에서 두 번째로 큰 도시인 함흥, 역사 도시이자 남북 경제 협력의 무대인 개성, 평양 주변의 신흥 위성 도시인 평성의 구조를 분석함으로써 북한의 과거와 현재를 살핀다. 또한 도시화 가속 현상 등 다양한 도시 문제를 다루며 북한의 미래를 예측할 수 있는 실마리를 던져준다. 이 책은 북한의 실상을 좀 더 심층적으로 탐구하고자 마련된 통일교육원의 ‘주제가 있는 통일강좌’ 46번째 시리즈로 발간되었으며, 통일부 홈페이지 북한자료센터에서 무료로 열람 가능하다(https://unibook.unikorea.go.kr/). 4. 『서울 평양 스마트시티』 민경태, 미래의창, 2018. 『서울 평양 스마트시티』는 남북 동반 경제 성장을 위해 ‘한반도 8대 광역경제권’을 만들자는 도발적 구상을 제안한다. 구상안에는 최첨단 도시 네트워크로 연결된 경제 공동체를 기반으로 북한을 한반도 4차 산업혁명의 출발지로 만드는 전략이 담겨 있다. 인천공항과 해주, 김포, 강화, 파주, 서울을 포함한 ‘해주-개성-인천 벨트’는 경제특구가 되고, 다양한 자연 경관을 지닌 지역을 연계한 ‘원산-금강산-양양 벨트’는 관광 도시로 거듭난다. 개성공단 모델에서 벗어난 새로운 남북 경제의 패러다임이 궁금한 모든 이에게 이 책을 추천한다. 5. 『조선자본주의공화국』 다니엘 튜더·제임스 피어슨, 전병근 역, 비아북, 2017. 우리는 핵, 미사일 등의 정치적 문제에 가려진 북한 주민들의 일상을 간과해왔다. 하지만 북한을 제대로 바라보기 위해서는 정치적, 기계적 이미지 속에서 살아 움직이는 인물들에 집중해야 한다. 이 책은 여전히 견고한 3대 세습 체제와 국가의 통제 속에서도 자본주의로 인해 변화한 북한 주민의 생활 양식에 주목한다. 다양한 정보원을 토대로 한 폭넓은 취재를 통해 활력이 넘치는 북한 사회의 면면을 만날 수 있다. * 환경과조경 373호(2019년 5월호) 수록본 일부
    • 편집부
  • 조경가 이호영 이해인
    두 번째 젊은 조경가 탐구 시간이다. 지난 호 특집에서 ‘제1회 젊은 조경가’ 수상자 김호윤을 소개한 데 이어, 2월호 특집에서는 공동 수상자인 이호영과 이해인의 작품 세계를 살핀다. 두 조경가는 국내뿐 아니라 해외에서 쌓은 다양한 문화적 경험을 바탕으로, 서로의 설계를 보완하며 조경과 도시의 새로운 접점을 모색하고 있다. 이번 지면에서는 열 가지 키워드를 통해 그들이 하나의 프로젝트를 시작하고 끝내기까지의 프로세스를 탐구한다. 다이어그램이나 모델링, 지형 조작 등 쉽게 간과되곤 하는 과정의 정교함을 통해 설계에 대한 애정과 끈기를 엿볼 수 있다. 특집을 열고 닫는 두 편의 에세이에는 두 조경가의 독특한 설계 철학과 실험적이면서도 섬세한 면모가 담겨 있다. 특히 다른 언어를 사용하고 다른 문화권에서 살아온 이국의 조경가가 들려주는 에피소드는 형식과 관습에 구애받지 않고 창의적으로 설계 방식을 확장해 온 이호영과 이해인의 모습을 목격하게 한다. 날카로운 질문 대신 유연한 대화로 진행된 배정한의 인터뷰는 학창 시절부터 설계사무소 스태프를 거쳐 현재에 이르기까지 두 조경가의 발자취를 되짚는다. 켜켜이 쌓인 이야기 속에서 HLD의 치열한 리서치와 치밀한 디자인의 뿌리를 찾을 수 있다. 진행 배정한, 남기준, 김모아, 윤정훈 디자인 팽선민 자료제공 이호영‧이해인
    • 편집부
  • 크리티컬 인터벤션
    “HLD는 이호영과 이해인이 설립한 창의적 디자인 회사다. HLD의 디자인은 공간적 문제와 도전 과제의 해법으로 ‘핵심적 개입’을 제공한다. 핵심적 개입이란 물리적 또는 운영적 측면에서 대상지의 잠재력과 현 상태 사이 빠진 연결 고리를 찾아냄으로써 긍정적 변화를 가능케 하는 조치나 설계적 장치를 의미한다. 우리의 설계는 “이 공간을 사용하는 사람의 삶에 영향을 주기 위해 가장 핵심적인 것은 무엇인가?”라고 질문하는 것에서 시작된다. 우리는 피상적인 외관 개선이나 장식, 스타일 입히기를 지양한다. HLD의 핵심적 개입은 전통적 조경 설계의 범위에 국한하지 않으며, 다양한 분야의 분석을 활용한다. 조경가의 전문적 지식과 기술, 자연의 아름다움에 대한 애정, 그리고 대상지의 맥락에 대한 존중을 통해 촉각적 표현부터 지역적 비전에 이르기까지 다양한 스케일의 아이디어를 구현한다. HLD는 모든 스케일의 프로젝트에서 환경적, 사회적으로 책임감 있는, 근본적 접근을 추구한다.” 앞의 글은 HLD 홈페이지에 쓰인 소개문이다. 앞으로 몇 차례 개정해야겠다는 생각이 들지만, 다시 보아도 이 글은 진심이다. 우리가 하는 설계가 “좀 더 고급스러운 정원을 갖고 싶어요(남들이 좋다고 할 만한 정원을 만들어주세요)” 또는 “땅이 좀 있는데 뭘 해야 할지 모르겠어요(지금은 뭘 원하는지 몰라도 내가 싫어할 만한 것은 하지 마세요)” 같은 사소한 고민1에 답하는 것이 아니라, 크든 작든 좀 더 좋은 사회를 만들기 위한 노력이라는 점을 말하고 싶었다. 대상지가 제 기능을 다하지 못하는 근본적 이유가 있을 텐데, 일을 의뢰하는 사람이나 공간을 관리하는 사람의 의도는 그와 무관한 경우가 생각보다 많다. 그래서 주어진 문제를 있는 그대로 보지 않고, 우리 나름대로 문제를 다시 정의하고 문제의식을 발주처와 공유하는 과정이 필요하다. 간혹 발주처를 설득하지 못하면, 이를 숨겨진 제2의 아젠다로 꿋꿋이 지켜나가기 위한 요령도 있어야 한다. HLD는 우리 일의 본질을 핵심적 개입critical intervention이라 표현하는데, 이때 critical은 ‘비판적’이라는 뜻이 아닌 ‘없어서는 안 될’, ‘결정적인’을 의미한다. 이 결정적 한 방은 처음에는 잘 안 보이지만, 찾고 나면 너무 필수불가결하고 필연적인 것일 때가 많다. ...(중략)... 1. “쓰레기 같은 고민했구나.”무한도전에서 배우 김혜자가 해외봉사를 나가 그곳의 참혹한 현장을 본 뒤,우리네가 한국에서 지지고 볶는 일상의 갈등에 대해 한 말. * 환경과조경 370호(2019년 2월호) 수록본 일부 이호영은 고려대학교에서 원예학을, 서울대학교 환경대학원과 펜실베이니아 대학교에서 조경학을 전공했으며, 조경설계 서안, 미국 에이컴(AECOM), 오피스 ma(office ma)에서 조경과 도시설계 프로젝트를 수행했다. 이해인은 서울대학교와 UC 버클리에서 도시계획을 공부하고 하버드 GSD에서 조경 설계 석사 학위를 받았으며, 미국 에이컴과 파퓰러스(POPULOUS)의 샌프란시스코 지사에서 다양한 조경 프로젝트를 수행했다. HLD는 이들이 설립한 조경설계사무소로, 광범위한 분석과 접근 방법을 통해 대상지의 공간적 가치를 향상시키고, 그 장소를 사용하는 사람들에게 인문·사회적으로 긍정적 영향을 미칠 수 있는 해법을 제공한다. www.hldgroup.net
    • 이호영·이해인haein.lee@hldgroup.net
  • 열 가지 키워드
    설계자의 창의적 혹은 논리적 아이디어는 스케치에,프로젝트의 가장 종합적인 모습은 마스터플랜에 나타난다고 생각하기 쉽다.하지만 프로젝트를 시작하고 끝내기까지의 프로세스와 아이디어들은 스케치나 마스터플랜으로는 오히려 설명하기가 어렵다.우리가 그동안 많은 시간을 쏟아 왔던 다이어그램,모델링,지형 조작 같은 과정이나 포장,시설물 같은 결과물을 열 가지의 키워드로 정리해보았다. 01. 아이디어 디자이너는 공간을 바라보는 자신만의 생각의 틀을 바탕으로 아이디어를 발전시켜 나간다. ‘산업으로서의 이콜로지’ 제안의 출발점은 지속가능한 미래는 외부성externality 발생의 패턴을 찾아 그 고리를 끊거나 전환시키는 방법으로 해결이 가능하다는 아이디어, 이를 뒷받침하기 위한 역사적 고찰이었다. 한편 공간심리학, 지리학, 자연 현상에 대한 과학 지식과 미학, 조경과는 다른 방식으로 공간을 다루는 영화 및 사진 촬영 기법, 무대 연출에 대한 지식은 ‘대구 지하철 참사 메모리얼 설계’와 그 이후의 작업에 큰 밑거름이 되었다. 02. 다이어그램 다이어그램은 때로는 복잡한 콘셉트와 생각을 쉽게 전달하기 위해 만들고, 때로는 다양한 레이어가 겹쳐 있는 공간 구조에서 기능별로 공간을 이해시키기 위한 목적으로 만든다. 다이어그램은 결과물로서만 만들어지는 것은 아니기에 이를 제작하는 과정에서 많은 아이디어를 얻어 프로젝트를 발전시키거나, 설계 오류를 발견하고 수정하는 경우가 많다. 03. 모델링 콘셉트를 발전시키거나 전달하기 위해, 디테일을 연구하기 위해, 1:1 스케일의 모형을 통한 최종 확인을 위해 다양한 재료와 방법으로 모형을 만든다. 04. 지형 조작 땅을 만지는 일은 조경에서 가장 중요한 작업 중 하나다. 인공 지반이 아니라면, 완벽하게 평평한 땅은 없다. 입체적인 경험, 공간의 구분, 우수 관리와 식생 환경 조성 등을 위해 지형 조작 작업은 중요하다. 이 작업은 조경 설계를 다른 분야와 구별하는 가장 결정적 프로세스이기도 하다. 05. 단면 평면이 공간이 어떻게 조직되고 배열되는지를 쉽게 보여준다면, 단면은 각 공간이 어떻게 구축되는지를 쉽게 보여준다. 06. 포장 시각적 흥미로움을 만들어내기 위해 포장 패턴을 디자인하는 경우도 있지만, 외부 공간에서 포장은 시각적인 것 외에 프로그램, 동선, 우·배수, 공간 스케일 등을 함께 생각해야 하는 복잡한 영역이다. 그래서 재료, 형태, 색상, 스케일 등을 세심하게 고려한다. 07. 식재 식재는 가장 중요하면서도 어려운 영역이다. 식재는 자연이기도 하고, 공간을 구축하는 재료이기도 하며, 주변 콘텍스트와 상호 작용하는 매개체이기도 하다. 08. 시설물 좋은 공간에서는 포장이나 식재뿐만 아니라 시설물 역시 콘셉트에 맞게 만들어져야 한다. 09. 비주얼라이제이션 비주얼라이제이션은 공간을 이해시키는 가장 강력한 도구이자, 전달하고자하는 공간의 분위기나 이용 측면 등을 보여주는 스토리텔링 수단이다. 10. 메이킹 실제로 만들어지는 것을 목표로 설계를 하는 만큼, 만드는 과정을 이해하고 모니터하는 것은 매우 중요하다. 시공 과정에서 우리의 역할이 생략될 수 없다는 것을 발주처와 시공자가 알게 하기 위해서는 설계자 감리 과정이 좀 더 체계적이고 전문적으로 이루어질 필요가 있다. 시공을 직접 하는 것으로 해결할 수 있는 것이 아니다....(중략)... * 환경과조경 370호(2019년 2월호) 수록본 일부
    • 이호영·이해인haein.lee@hldgroup.net
  • 치열한 리서치와 치밀한 디자인을 가로지르다 조경가 이호영·이해인 인터뷰
    영동시장 건너편, 논현동의 한 상가 건물 3층에 입주한 HLD의 오피스를 꼭 2년 만에 찾았다. 이태 전 겨울엔 넓어 보이던 곳이 이제 발 디딜 틈 없이 좁다. 식구가 두세 배 늘어난 이유도 있겠지만, 1:1 스케일로 테스트하고 있는 디테일과 재료가 벽과 바닥에 가득한 탓이리라. 유럽 출장을 마치고 인터뷰 바로 전날 귀국한 이호영, 이해인 소장의 얼굴에는 피로한 기색이 역력했다. 빠듯한 일정이었지만 낯선 도시에서 새해를 맞는 이색적 경험이 오히려 로맨틱했겠다고 묻자, “이호영 소장은 낭만이고 새해고 다 필요 없어요. 언제 어디서나 참 잘 자요”라는 이해인 소장의 답이 돌아온다. 시차로 힘들겠지만 한 네 시간은 인터뷰해야겠다고 분위기를 잡자, 이호영 소장은 특유의 호기롭고 능청스러운 어투로 “문제, 전혀 없습니다. 돌아오는 비행기에서 시차, 완전 정복했어요”라며 응수한다. 인터뷰 자료를 주섬주섬 꺼내는 나의 어수선한 행동을 틈타 두 이 소장은 파리, 프랑스 남부, 바르셀로나 등지로 이어진 이번 여정의 사진들을 꺼냈다. 빠른 속도로 넘어가던 화면, 그러나 발터 벤야민Walter Benjamin의 메모리얼인 ‘통로Passages’ 앞에서 우리는 한참을 멈출 수밖에 없었다. 프랑스와 맞닿은 스페인 국경 포르트보우Portbou에 있는 작품이다. 나치의 탄압을 피해 망명길에 나섰다 이곳에서 발각되고 모르핀 과다 복용으로 자살한 벤야민을 매개로, 개인의 자유로운 정신을 가로막는 강압과 폭력의 구조를 관람자 스스로 체험하게 하는 역작이다. 벤야민의 마지막 행로와 미완의 학문적 여정, 그리고 이스라엘 출신의 조각가이자 건축가 대니 카라반Dani Karavan의 소름 돋을 만큼 철저하게 계산된 디자인으로 이어진 대화가 30분을 훌쩍넘겼고, 나는 인터뷰의 1회전 공이 울리자마자 날리려 했던 송곳 질문을 그만 잊어버리고 말았다. 개념과 실제 설계의 간극을 넘어 -‘제1회 젊은 조경가’ 수상, 다시 한번 축하합니다. “감사합니다. “젊은 조경가 수상하신 데라고 해서요”로 시작하는 작업 의뢰 전화가 벌써 여러 건 오고 있어요.”(이해인, 이하 인) -잘됐네요.『 환경과조경』은 이 상이 여러 젊은 조경가의 활동에 보탬이 될 수 있도록 계속 힘을 기울여 보려고 합니다. “벌써 마케팅에 많은 도움이 되고 있습니다. 표지에 얼굴 나오는 게 큰 홍보 효과가 있더라고요. 펴서 보여줄 필요도 없이, 여기 나왔습니다, 하면 됩니다. 전에는 표지에 사람 얼굴 나오면 욕을 하기도 했었는데, 실리고 보니 정말 좋은 거구나, 실감하고 있습니다.”(이호영, 이하 영) -지난 연말 시상식 때, “13년 전의 토론회 ‘조경가로 산다는 것’이 계기가 되어서, 그때 내뱉은 다짐을 실천하기 위해 열심히 조경 설계해 왔다”는 이호영 소장의 수상 소감이 참 인상적이었어요. 당시 지면『( 환경과조경』 2006년 1월호)을 다시 펼쳐들고 한참 정독했어요. 그때의 문제의식, 잘 실천되고 있나요? 함께 일하는 동료와 스태프에게 비전을 주지 못하는 선배 소장들을 당시 토론회에서 과감하게 비판했었는데요. “어디서 그런 용기가 나왔었는지…. (웃음) 시간이 흐르면 핵심만 기억에 남잖아요. 아직까지 정확히 기억에 남아 있는 건 개 념과 설계의 간극에 대한 문제의식뿐입니다. 신입 시절에 느끼기에 설계를 이끌어가는 개념이 실제의 설계와 전혀 관계가 없는 거예요. 예를 들자면, 하이브리드 같은 개념 있지 않습니까. 그런 개념은 애당초 설계와 관계가 없거나, 아니면 모든 설계가 그런 개념과 관계되는 거죠. ‘행복한’ 공원? 세상에 행복하지 않은 공원이 어디 있나요. 소장님이 일주일 끙끙대며 개념을 잡았는데 실제 설계 내용과는 별로 연관이 없고, 갑자기 비약이 일어나면서 밤 한번 새면 딱 설계가 나오는 프로세스, 아 이건 뭔가, 그런 의문을 해소할 길이 없었어요. 이런 건 설계가 아닌 것 같다, 개념이란 건 무조건 시공에서 디테일로 연결이 돼야 한다, 적어도 비약은 없어야 한다, 그런 문제의식이 강했습니다. 이런 생각을 토론회에서 말해야 할지 말지 고민이 많이 됐어요. 그런데 말을 해야만 앞으로 내가 실천하고 해결하겠구나 싶어서 청중들 앞에서 꺼냈죠. 그랬더니 조금씩이라도 답을 구하기 위해 애쓰게 되더라고요. 10년이 넘은 지금, 최소한 나는 이런 이유로 이렇게 설계했다는 말은 할 수 있게 된 것 같습니다.”(영) -개념을 조건에 투사해 강요하는 설계가 아니라, 조건에서 개념을 생성시키는 설계를 지향했다고 말할 수 있겠어요. ...(중략)... * 환경과조경 370호(2019년 2월호) 수록본 일부
    • 배정한jhannpae@snu.ac.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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