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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에디토리얼] 그들이 설계하는 법, 2014~2018
    간단한 퀴즈 하나. 2014년 리뉴얼 이후 가장 오래 이어가고 있는 『환경과조경』의 연재 꼭지는 무엇일까요? 많은 독자가 쉽게 정답을 맞히셨을 것 같습니다. 그렇습니다, ‘그들이 설계하는 법’입니다. 청명한 가을의 한복판을 가로지르며 출간된 이번 10월호에는 ‘그들이 설계하는 법’의 마지막 주자가 연재를 시작합니다. HLD의 이호영, 이해인 소장입니다. 열독률이 가장 높았던 연재물 중 하나인 ‘그들이 설계하는 법’은 이호영+이해인 소장 편을 끝으로 올 12월호에 5년간의 긴 항해를 마칩니다. 리뉴얼 첫해인 2014년 1월부터 세 달간 ‘그들이 설계하는 법’의 첫 주자를 맡아 준 조경가는 디자인 스튜디오 로사이의 박승진(309~311호) 소장이었습니다. 이어서 스튜디오 101(연재 당시 지드앤파트너스)의 김현민(312~314호), 스튜디오 테라/서울시립대학교 조경학과의 김아연(315~317호), 수퍼매스 스튜디오의 차태욱(318~319호) 소장이 ‘그들이 설계하는 법’에 동참해 자신의 설계 태도와 작업 방식에 대한 다채롭고 폭넓은 이야기를 들려주었습니다. 2015년에는 오피스박김의 박윤진+김정윤(321~323호), 디자인 로직의 오형석(324~326호), 쿠토노톡의 조리나(327~329호), 조경작업소 울의 김연금(330~332호) 소장이 특유의 개성 넘치는 작업을 선보이며 그 이면 의 사연을 공개했습니다. 네 명의 조경가가 2016년의 ‘그들이 설계하는 법’을 이어갔습니다. 오피스 오브 어반 터레인즈/서울대학교 환경대학원의 서예례(333~335호), 가원조경설계사무소의 안세헌(336호), CA조경기술사사무소/홍익대학교 건축도시대학원의 진양교(339~341호), 조경설계사무소 엘의 박준서(342~344호) 소장이 그간의 설계 작업을 통해 전개해 온 실험과 도전의 시선을 보여주었습니다. 2017년에는 아뜰리에나무의 이수학(345~347호), 세계수프로젝트/자연감각의 백종현(348~350호), 스튜디오 MRDO의 전진현(351~353호), 조경디자인 린의 이재연(354~356호) 소장이 작업 과정에서 연마해 온 고유의 사고와 접근 방법을 지면에 담았습니다. 5년째인 올해에는 랩 D+H의 최영준(357~359호), 조경설계 호원의 김호윤(361~362호), 스튜디오 오픈니스의 최재혁(363~365호) 소장이 설계를 대하는 다양한 태도와 관점을 펼치며 토론의 장을 열었습니다. 그리고 이번 호부터 세 달간 이어질 HLD 이호영+이해인(366~368호) 소장의 연재를 끝으로 ‘그들이 설계하는 법’은 대단원의 막을 내립니다. 편집자이지만 동시에 한 명의 독자로서, 벌써 아쉬운 마음 가득합니다. 모처럼 과월호 수십 권을 쌓아놓고 스무 명 넘는 조경가가 5년간 쏟아낸 다층다각의 이야기를 다시 펼쳐봅니다. 누구에게 원고를 청탁할 것인가를 두고 벌였던 편집부 내의 격론, 섭외 과정의 삼고초려와 많은 에피소드, 교정과 교열 과정에서 진행된 필자들과의 긴장감 넘치는 토론, 여러 독자의 흥미진진한 피드백이 시간 여행을 하듯 다시 떠오릅니다. 한 달에 한 편만 읽다가 스무 명 조경가의 설계하는 법을 모아서 한 번에 읽으니 그야말로 ‘시너지 효과’라는 말의 뜻을 실감하게 됩니다. 편집자의 ‘근자감’일까요? 내년에는 더 잘 추스르고 다듬어서 한 권의 책으로 엮어 볼까 하는 생각도 듭니다. 편집자로서 자평하자면, ‘그들이 설계하는 법’의 가장 큰 성과는 동시대 한국의 조경가들이 자신의 작업 과정과 산물 그리고 그 이면의 생각에 대해 직접 글을 쓰고 독자와 소통할 장을 열었다는 점입니다. 5년간 참여한 조경가 중 몇몇은 평소에 다양한 지면에 다채로운 형식의 글을 발표해 온 경우도 있지만, 대부분의 경우는 글을 통해 독자와 대화한경우가 드뭅니다. ‘그들이 설계하는 법’ 연재는 그들 스스로 설계 사유와 작업 성과의 일면을 정리하는 기회이자, 동료 조경가와 학생들에게 자극과 토론의 소재를 낳는 계기가 되었을 것입니다. 그들이 자신의 글로 자신의 설계 여정을 기록한 것 자체만으로도 조경가 개인은 물론 한국 현대 조경은 의미 있는 아카이빙을 한 셈입니다. ‘그들이 설계하는 법’에 부여할 수 있는 또 하나의 의미는, 이 지면이 지금 이곳에서 성장하고 있는 젊은 조경가들을 적어도 조경계 내부에 적극적으로 노출시키는 장이었다는 점입니다. 5년간 지면을 이어간 스무 명 필자 중 50대 이상의 중견 조경가가 일곱 명이었지만, 나머지 다수는 30대와 40대의 소장 조경가였습니다. 자신의 오피스를 열고 독립한 지 1~2년 남짓한 신예 조경가에게도 원고를부탁했습니다. 변화의 촉매가 필요하다는 판단 때문이었습니다. 거창한 변화를 말하는 게 아닙니다. 한국 현대 조경의 역사가 45년을 넘어서고 있지만, 아직, 지금 이곳에서는 조경가를 찾기 쉽지 않습니다. 분야 형성의 초창기와 성장기를 겪으며 많은 선배 조경가들이 분투해 왔음에도 한국의 조경은 전문 직능으로서도, 학문 분과로서도 뚜렷한 정체성을 세우지 못한 형편입니다. 영역을 빼앗기고 있다는 불안감과 영토를 넓혀야 한다는 피로감, 이 이중의 집단 우울증을 겪고 있기도 합니다. 우리 사회가 보편적으로 승인하는 전문가professional로서의 조경가, 늦었지만 우선 조경계 내부에서라도 스스로 만들어가야 합니다. ‘그들이 설계하는 법’이 의 미 있는 변화의 계기가 되었기를 바랍니다. 2014년 1월, “조경 문화 발전소”를 꿈꾸며 새 출발을 선언한 『환경과조경』은 지난 5년간 “한국 조경의 문화적 성숙을 이끄는 공론장”, “조경 담론과 비평을 생산하고 나누는 사회적 소통장”, “세계적 동시대성과 지역성을 수용하고 발굴하는 전진 기지”를 지향해 왔습니다. ‘그들이 설계하는 법’은 『환경과조경』의 새 비전을 실험하고 구체화하는 가장 전략적인 지면이었습니다. 바쁜 시간을 쪼개 자료를 갈무리하고 원고를 보내 준 ‘그들’에게 깊이 감사드립니다. 즐겨 읽고 다양한 피드백을 보내 준 여러 독자에게도 감사드립니다. 원고를 꼭 받고 싶었으나 끝내 고사한 그들, 그리고 마땅히 초대해야 했으나 이른바 ‘균형론’이나 ‘안배론’에 귀 기울이느라 순서를 미루고만 많은 그들은 내년에 새롭게 문을 열 후속 지면을 통해 초대할까 합니다.
    • 배정한jhannpae@snu.ac.kr
  • [그들이 설계하는 법] 시작
    다 시작이 어렵다. 프로젝트도, 회사도, 연재도. 3년 전 이호영과 이해인이 시작한 뒤, HLD는 2018년 10월 송영민, 박상현, 송주익, 이진선, 신영재, 김주환이 합류한 여덟 명의 그룹으로 성장했다. 3개월간 연재할 ‘그들이 설계하는 법’은 이 여덟 명 모두의 설계 이야기를 담고 있다. 타임라인 프로젝트에 제약이 많은 것이 꼭 나쁜 일은 아니다. 안되는 걸 배제하고 문제를 해결하다 보면, 꼭 새로운 것을 하려던 게 아니더라도 대상지 고유의 설계가 나오기도 한다. 그렇지 않은 프로젝트는 도통 시작하기가 어렵다. 무엇도 될 수 있다 보니 뭘 해도 근본 없이 느껴진다. 또는 이미 직관적으로 결론을 낸 것이라도 다시 논리적으로 설명해야 할 때가 있다. 발주처뿐만 아니라 설계안을 함께 결정하는 팀 또는 스스로에게도 그런 논리를 피력해야 할 때가 있다. 막막한 순간이다. 이럴 때 HLD가 자주 찾는 돌파구 중 하나가 타임라인timeline이다. 타임라인은 시간 순서로 사건을 나열한 표 또는 그림이다. 연표라고도 하지만 더 넓은 의미가 함축된 탓에 그냥 타임라인이라고 번역한다. 타임라인을 설계에 활용하는 가장 큰 이유는 새로운 시도에 개연성을 부여해 주기 때문이다. 다음 연재에서 더 자세히 다루겠지만 설계의 독창성은 대상지의 장소성에서 가장 강력하게 기인한다. 우리가 왜 이런 설계를 하는지 당위성을 부여하고 개연성을 보태는 것은, 시대별로 왜 각기 다른 일이 일어났는지 그 역학을 이해하고 어떤 변화 추이가 있었는지 알아낸 뒤 이를 현재에 대입하는 과정이다. 이런 통시적diachronic추론을 하는 도구가 타임라인이다. ...(중략)... * 환경과조경 366호(2018년 10월호) 수록본 일부 HLD는 이호영과 이해인이 설립한 조경설계사무소로, 광범위한 분석과 접근 방법을 통해 대상지의 공간적 가치를 향상시키고 그 장소를 사용하는 사람들에게 인문·사회적으로 긍정적 변화를 끼칠 수 있는 핵심적 해법을 제공한다. 이호영은 고려대학교에서 원예학을, 서울대학교 환경대학원과 펜실베이니아 대학교에서 조경학을 전공했으며, 조경설계서안, 미국 에이컴(AECOM), 오피스 ma(office ma)에서 조경과 도시설계 프로젝트를 수행했다. 이해인은 서울대학교와 UC 버클리(UC Berkeley)에서 도시계획을 공부하고 하버드 GSD에서 조경 설계 석사 학위를 받았으며, 미국 에이컴과 파퓰러스(POPULOUS)의 샌프란시스코 지사에서 다양한 조경 프로젝트를 수행했다. www.hldgroup.net
    • 이호영·이해인haein.lee@hldgroup.net
  • [다른 생각, 새로운 공간] 미래의 공원 강성칠 수도권매립지관리공사 감사실장
    수도권매립지는 세계에서 가장 큰 폐기물 처리 시설이다. 향후 공원화 사업이 완료되면 어디에서도 볼 수 없는 초대형 오픈스페이스가 탄생하게 된다. 매립지를 적극적으로 활용한 최초의 사례로는 대구수목원이 있지만, 수도권매립지는 상상력의 한계를 넘어선다. 청라, 영종, 김포 신도시에 둘러싸인 이 어마어마한 땅은 오픈스페이스를 통해 상상할 수 있는 모든 가능성을 실현할 수 있을 정도로 거대하다. 차를 타고 돌아본 수도권매립지의 얼굴은 참 다양했다. 느긋한 오후를 즐기는 골퍼, 산책 나온 시민, 수영장 주차장의 차, 분주하게 식물을 다듬고 있는 정원사, 황량한 황톳빛 차폐막을 뚫고 선 가스 배출관, 아스라이 보이는 청라 신도시의 초고층 건물, 드문드문 흩어진 서해의 섬들. 무엇보다도 문명과 물질과 욕망의 역사가 농축된 이곳이 생태적으로 가장 온전한 보석이라는 아이러니가 초현실주의적 아름다움을 내뿜고 있었다. 인간의 역사를 되돌려가는 자연의 힘이 느껴졌다. 강성칠 수도권매립지관리공사 감사실장(전 문화조경사업처장)은 자연의 힘을 실험하고 있는 조경가다. “수도권매립지 간척 후 생태계 변화 및 생태적 특성을 고려한 관리 방안 연구”라는 조경학 박사 논문을 쓰기도 했다. 조경을 단순히 흉물을 가리고 치장하는 녹화 업무로 한정하지 않고, 문화의 축이자 생태계의 프로세스로 전망하는 전문가가 수도권매립지의 재생을 이끌고 있다는 사실에 안도감이 들었다. 대부분의 조경인에게 수도권매립지는 아직 낯선 땅이다. 그가 바친 젊음, 프런티어로서의 모험심과 기술인으로서의 경륜, 미래지향적 비전이 없었다면 우리는 이커다란 녹색의 감흥과 곧 다가올 창조적 재생의 기회를 영영 잃어버렸을지도 모른다. ...(중략)... * 환경과조경 366호(2018년 10월호) 수록본 일부 최이규는 1976년 부산 생으로 10여 년간 실무와 실험적 작업을 병행하며 저서 『시티오브뉴욕』을 펴냈고, 북미와 유럽의 공모전에서 수차례 우승했다. UNKNP.com의 공동 창업자로서 뉴욕시립미술관, 센트럴 파크, 소호와 대구, 두바이, 올랜도, 런던, 위니펙 등에서 개인전 및 공동 전시를 가졌다. 울산 원도심 도시재생 총괄코디네이터로 일했으며, 현재 계명대학교 도시학부 생태조경학전공 교수로 재직하고 있다.
    • 최이규yichoe2013@gmail.com
  • [명사의 정원 생활] 윈스턴 처칠의 정원 인내와 용기 그리고 상상력의 원천
    윈스턴 처칠, 불멸의 의지와 용기를 지닌 ‘위대한 영국인’ 윈스턴 레너드 스펜서 처칠Winston Leonard Spencer Churchill(1874~1965)은 “영국 역사상 최고의 위인”(BBC, 2012)이자 20세기의 가장 위대한 인물로 평가된다. 제2차 세계대전을 승리로 이끌어 나치의 폭압으로부터 유럽을 구한 영웅이면서 전후 세계 평화와 인류 발전의 초석이 된 유럽연합과 국제연합을 주창한 선지자이기도 하다. 그뿐 아니라 소설, 역사서, 수필집 등 총 72권의 책을 저술했고, 총리 재직 중인 1953년에는 자신의 경험을 토대로 『제2차 세계대전』을 써 노벨문학상을 수상하기도 했다. 하지만 어릴 적 처칠은 말썽꾸러기에다 머리가 나빠 아버지에게 “전혀 쓸모없는 놈”으로 낙인찍혔고 바람둥이 어머니에게는 제대로 사랑을 받지 못하고 자랐다. 부유한 명문가의 아들로 태어났으나 반항적 기질에 언어 장애가 있었고, 거기다 공부도 못해 공립 학교에 꼴찌로 겨우 입학할 정도였다. 그러니 명문 대학은 아예 꿈도 못 꾸었고 “목사가 되기에는 성격이 안 좋고 변호사가 되기에는 머리가 나쁘니 군인밖에는 할 수 없을 것”이라고 본 아버지의 권유로 사관 학교에 응시해 삼수 끝에 겨우 들어갔다. 그랬던 그가 오늘날 영국 국민에게 “불굴의 용기와 의지를 지닌 위대한 영국인”으로 칭송받는 것은 결코 우연이 아니다. 젊을 때 쿠바, 인도, 남아공 등의 전쟁터에서 군인이자 종군 기자로 포화 속을 뛰어다니다 포로가 되어 수차례 죽을 고비를 넘기기도 하고 정치가로서 몇 번이나 낙선과 좌절을 맛보기도 하면서, 타고난 의지와 용기를 더욱 강하게 단련했던 것이다. “한 번 치를 때마다 목숨이 한 달씩 줄어드는 것” 같은 선거를 열네 번이나 치렀던 그는 “곤경이 겹친다는 것은 곧 승리할 좋은 기회가 왔다는 증거”라 여기며 역경을 헤쳐나가곤 했다. 정원가 처칠 92세까지 장수한 처칠은 여러 집을 옮겨다니며 살았다. 시골의 한적한 집을 구해 전원생활을 맛보기도 했고 런던시내의 아파트에서 살기도 했다. 정치적으로 입지를 다진 후에는 장관으로서 혹은 수상으로서 관저에 살기도 했다. “인간이 건물을 만들지만, 건물이 다시 인간을 만든다”라고 말하면서 환경을 중요시했던 처칠이니 가족을 위한 집에도 남다른 의미를 부여했음직하다. 그의 생애에서 가장 의미 있는 집을 들자면 단연 블레넘과 차트웰이라 할 수 있다. 전자가 그에게 명문가로서의 자부심과 존재감을 준 곳이라면, 후자는 정서적 유대감과 가족애의 산실이라고 할 수 있다. 짧게 거주하기는 했지만 첫 번째 시골집이었던 룰렌덴도 정원가로서 그의 이력에서 빼놓을 수 없는 곳이다. ...(중략)... * 환경과조경 366호(2018년 10월호) 수록본 일부 성종상은 서울대학교에서 조경을 공부한 이래 줄곧 조경가의 길을 걷고 있으며, 지금은 대학에서 조경을 가르치고 있다. 주요 작품으로는 선유도공원 계획 및 설계, 용산공원 기본구상, 2013 순천만국제정원박람회장 마스터플랜, 천리포수목원 입구정원 설계 등이 있다. 최근에는 한국 풍토 속 장소와 풍경의 의미를 읽어내고 그것을 토대로 풍요롭고 건강한 삶을 위한 조건으로서 조경 공간이 지닌 가능성과 효용을 실현하려 애쓰고 있다.
    • 성종상jssung@snu.ac.kr
  • [이미지 스케이프] 녹차 밭 우주
    어둠은 상상력을 자극합니다. 보이지 않는 결핍이 때로는 더 많은 것을 상상하게 하는 아이러니를 만듭니다. 동굴 카페와 녹차 밭으로 유명한 제주도의 한 농장에서 빛을 주제로 하는 LAFLight Art Festa를 선보이고 있습니다. 낮 동안에 평온하기만 하던 녹차 밭이 어둠이 내리고 빛이 들어오면 환상적인 야외 전시 공간으로 탈바꿈하는 거지요. 제가 이곳에 도착한 건 해가 지기 한 시간 전쯤이었습니다. 넓은 녹차 밭에 띄엄띄엄 놓인 설치물들이 눈에 들어왔습니다. 녹색에 대비되는 원색의 설치물이 보기에 좋았고, 멀리 보이는 붉은 노을도 참 멋졌습니다. 자연을 배경으로 하는 야외 전시는 이런 뜻밖의 재미를 느끼게 하는 것 같습니다. 그런데 조명은 언제 들어오지? 8시에 전체 점등이 된다는 안내를 듣고 한참 지루한 시간을 보냈습니다. 드디어 8시. 사이렌 소리에 맞춰 전시물에 조명이 들어왔습니다. 와! 감탄사가 여기저기서 흘러나옵니다. 해지기 전에 보던 모습과는 전혀 다른 세상이 펼쳐졌거든요. 하나둘 나타나는 조명 설치 작품에 여기저기 탄성이 나오고, 가족들과 연인들은 추억을 담기 위해 사진 찍느라 바쁩니다. 전체적으로 너무 어두워 사진 찍기는 정말 어려웠습니다만. ..(중략)... * 환경과조경 366호(2018년 10월호) 수록본 일부 주신하는 서울대학교 조경학과를 거쳐 같은 학과 대학원에서 석사와 박사 학위를 받았다. 토문엔지니어링, 가원조경, 도시건축 소도에서 조경과 도시계획 실무를 담당한 바 있으며, 현재 서울여자대학교 원예생명조경학과 교수로 재직 중이다. 조경 계획과 경관 계획에 학문적 관심을 두고 있다.
    • 주신하sinhajoo@gmail.com
  • [시네마 스케이프] 서치 스크린 라이프, 아 유 오케이?
    유튜브엔 없는 게 없다.자잘한 생활 상식부터 명사 강연에 이르기까지15분 내외의 짧은 동영상이 내가 원하는 정보뿐 아니라 앞으로 무엇을 궁금해할지도 예측해 준다.귀 얇기 대회가 있다면 대한민국 최고상을 받을 거라는 한 측근의 말대로 매번 구글의 친절한 권유를 뿌리치지 못한다.그렇게 얻은 개인 정보를 활용해 도시를 건설하는 시대다.영어 회화에 도움이 될까 싶어 유튜브에서 미드를 보다가 월드컵 시즌에 축구 영상을 몇 번 찾아 봤더니 영어와 축구가 결합된 영상까지 추천해 준다.기성용과 손흥민의 영국식 영어 발음을 이렇게 진지하게 듣게 될 줄이야. 가까운 미래를 그린 영화‘그녀Her’(2014)에서 주인공은 인공 지능 운영 체계와 소통한다.하드 드라이브 접근을 수락하자0.02초 만에 메일을 포함한 온갖 정보를 분석해서 주인공의 상태와 주변 인물 탐색을 마친다.몇 년 전 이 영화를 볼 때만 해도 신기하게 느껴졌는데 이젠 불가능한 일도 아닌 것 같다.은행 잔고와 쇼핑 품목과 일기장은 비밀 서랍이 아니라 내가 모르는 어느 서버를 떠돌고 있다.그러고 보니 싸이월드에 차곡차곡 모아둔 기억들은 언제 복원될지 궁금하다. 영화‘서치’는 가만히 앉아서도 실종 사건을 파헤칠 수 있다는 것을 보여 준다.노트북,휴대폰,뉴스, CCTV,내비게이션,개인 방송 등 동시대에 동원할 수 있는 온갖 디지털 기기의 화면을 통해 영화가 처음부터 끝까지 전개된다.문자,화상 통화,소셜 미디어처럼 우리가 매일 접하는 장치를 이용해 진실에 도달하는 과정은, ‘미션 임파서블’의 톰 크루즈가 헬리콥터를 손수 운전하면서 벌이는 액션과는 또 다른 긴장감을 불러일으킨다.오히려‘파서블’한 현실감이 더 두렵게 느껴진다. ..(중략)... *환경과조경366호(2018년10월호)수록본 일부 서영애는 조경을 전공했고,일하고 공부하고 가르치고 있다.내가 아는 한20대는 가상의 세계에서 카페를 운영하고 있다.매일 새로운 메뉴를 개발하고 매장을 확장하며 최고급 인테리어와 비싼 화분으로 치장하느라 틈만 나면 태블릿PC를 들여다보고 있다.그렇게 노력한 덕분에 그녀가 속한 리그에서 세계1위를 차지했다.자신의 진짜 방이나 좀 치우면 더 바랄 게 없겠다.
    • 서영애youngaiseo@gmail.com
  • [에디토리얼] 도시를 건축하는 조경
    긴 방학을 마무리하는 주에는 늘 개강 증후군이 밀려온다.내가 가을 학기를 맞을 때 겪는 스트레스의 중심에는‘서양조경사’가 있다.제법 경험이 쌓여 이제는 서양조경사15주 강의에 밀도가 생기긴 했지만,고백하건대 나는 내 강의 구성이 마음에 들지 않는다.고대 정원에서 시작해 중세 정원,이탈리아 르네상스 정원, 17세기 프랑스 형식주의 정원, 18세기 영국 풍경화식 정원 순으로 살펴오다 종강이 다가올 무렵에야19세기 도시공원의 발명과 조경의 탄생을 다루는 나의(그리고 대다수 학교의 통상적인)조경사 구성에는 모순이 적지 않다. 근대 산업 도시의 사회 문제를 공간적으로 해소하기 위한 전문 직능profession이자 학문 분과discipline로‘새롭게’시작된 조경landscape architecture의 역사를 왜 전근대의 정원 프레임으로 읽어야 하는가. “랜드스케이프 아키텍처는 랜드스케이프 가드닝과의 절연을 선언한 명명이자 전근대의 공간 질서를 거부한 시대정신의 산물이었다고 주장하면서,정작 우리는 왜 정원 양식과 문화를 중심에 놓고 조경사를 배우나요?”누군가 이런 질문을 던진다면 어떻게 답해야 할까.몇 년 전부터 학기 초반에 조경 태동기의 도시사회사를 먼저 다루고 이 근대기의 정신을 틀로 삼아 고대부터 현재까지 도시,경관,공원,광장,가로,공공 공간,정원의역사를 각론으로 편성하겠다고 마음먹고 있지만,이번 방학에도 계획을 실천하지 못하고 벌써 개강이 코앞이다. 자주 인용되는,옴스테드가 파트너 보에게 쓴 편지한 구절이다. “…이 비극적 명명 때문에 늘 괴롭다.…랜드스케이프는 좋은 단어가 아니다.아키텍처도 좋지 않다.둘의 조합도 마땅치 않다.가드닝은 이보다 더 못하다.”여러 문헌과 자필 서신에 기록되어 있듯,옴스테드는 새로운 직능명‘랜드스케이프 아키텍트’를 썩 마음에 들어 하지 않았다.경관과 건축을 함께 묶은 명칭에 만족하지 못하면서도 조경의 초기 주창자들은 왜 이 신조어를 받아들인 것일까.아직 여러 논쟁이 진행되고 있지만,랜드스케이프‘가드닝/너’의 전통으로는 감당하기 어려운 시대정신과 도시의 변혁에 대응할 수 있는 가능성을 랜드스케이프‘아키텍처/트’에서 보았기 때문이었을 것이다.조셉 디스폰지오의 최근 연구에 따르면,옴스테드는 프랑스어에서 이미19세기 초부터 도시 공간과 구조의 개선을 담당하는 전문 직능 명칭으로 쓰인 아르시텍트 페이자지스트architecte paysagiste(영어의landscape architect에 해당)를 알고 있었고,그 직능의 역할과 정체성이 뉴욕의 도시 문제를 해결하는 데 필요하다는 인식을 가지고 있었다(『환경과조경』2015년3월호, 2016년4월호 에디토리얼 참조).찰스 왈드하임은“옴스테드는 건축의 권위를 차용하는 것이 일반 대중에게 새로운 분야를 알리는 데 도움이 되고 또 이 새로운 분야가 주로 식물이나 정원과 관련된다고 오해되는 경향을 완화시킬 수 있으리라 생각했을 것”이라고 추론한다.이런 맥락에서 보자면,탄생기의 랜드스케이프 아키텍처,곧 조경의 사명은‘도시(의 공원,경관,공공 공간,인프라)를 건축’하는 것이었다. ‘도시를 건축하는 조경’이다. 8월 말,본지 박명권 발행인이 지은『도시를 건축하는 조경』(도서출판 한숲)이 출간됐다.지난25년간 한국 조경 설계의 도약기를 이끌며 다듬어 온 조경 이론과 실천에 대한 일곱 가지 생각을 펼친 책이다.자연과 인간,과학과 예술,도시와 건축,디자인과 문화,공간과 시간,채움과 비움,전통과 한국성이라는 묵직한 주제가 저자의 설계 작업들과 함께 엮여 전개된다.무엇보다 시선을 끄는 부분은 매력적이면서도 논쟁적인 책 제목이다.출간 기념 북토크 준비를 위해 조금 먼저 책을 접한 몇몇 사람들은 하나 같이 도시,건축,조경을 동시에 배치한 제목이 흥미롭고 탁월하다는 반응을 보였다.이 제목에 대한 이들의(그리고 예상되는 여러 독자의)반응 이면에는 아마도 이런 질문이 담겨 있을 것이다.도시를 건축하는 조경,그것은 현실인가 당위인가 지향인가? ‘도시를 건축하는 조경’을 하나의 문장으로 바꾼다면‘조경은 도시를 건축한다’일 것이다. ‘해야 한다’는 당위란 존재할 수 없으므로 현실 아니면 지향일텐데,이 문장이 지금의 현실을 반영한다고 여기는 사람은 많지 않을 것이다.그렇다면‘조경은 도시를 건축한다’는 지향은 동시대 조경에 적합한 것일까?책의 뒤표지에 들어갈 짧은 추천사를 부탁받고,나는 고심 끝에 네 줄짜리 짧은 글의 마지막을 이렇게 마무리했다. “그는 조경의 새로운 좌표,곧‘도시를 건축하는 조경’의 문을 연다.”이 문장에서 고민거리는 형용사‘새로운’이었다.옴스테드의 랜드스케이프 아키텍처부터 이미 조경은 도시를 건축하는 사명을 자임했다. 150년 묵은 이 지향점이 지금 우리에게 중요한 것은,사촌 분야와의 경계가 흐릿해지면서 영역을 빼앗기면 안 된다는 불안감과 영토를 넓혀야 한다는 피로감으로 이중의 우울증을 겪고 있는 동시대 조경의 정체성 때문이다.이른바 위기론의 틈바구니에서 가드닝으로 회귀하는 현상마저 감지된다.이러한 시대 착오적 상황에서‘도시를 건축하는 조경’에 대한 토론은 새롭고,중요하다. 150년 전 옴스테드의 시대와 다른,새로운 좌표로서의‘도시를 건축하는 조경’을 두고 열띤 논쟁이 이어지길 기대한다. ‘그들이 설계하는 법’ 최재혁 소장(스튜디오 오픈니스) 편이 이번호로 막을 내린다. 석 달간의 큰 수고에 깊이 감사드린다.
    • 배정한jhannpae@snu.ac.kr
  • 비평: 가장 식물적인 것이 가장 예술적이다
    “빌바오 효과”라는 말을 낳은 스페인의 빌바오 구겐하임 미술관은 프랑크 게리라는 유명 건축가의 브랜드 마케팅을 통한 지역 재생의 대표적 사례로 언급된다.건축물 자체가 예술 작품인 수많은 미술관을 떠올린다면 새롭게 문을 여는 부산현대미술관이 부산 서부 지역의 부족한 문화 인프라를 확충한다는 사실 자체에 만족하지는 못할 것이다.그래서 부산현대미술관이라는 건축물이 그 모습을 공개했을 때 쏟아진 여론의 질타와 대중의 실망감 역시 어렵지 않게 납득할 수 있다.얼굴이 메시지이자 자본인 시대에,공공 턴키 발주 방식으로 탄생한 대형 마트 같은 겉모습은 미술관의 품격에 맞지 않는다는 비판에 직면했다.그렇다면 미술관다운 건축물의 모습은 대체 무엇일까?미술관의 조건에 겉모습은 어때야 한다는 조항이 어디에 있단말인가?미술관은 건축물이라는 매질媒質을 통해 반드시 어떠한 메시지를 전달해야 하는가?겉모습에 대한 못마땅한 반응은 쉽게 나오지만 미술관이 어때야 한다는 규범적 대안을 내놓기는 쉽지 않다.개관전에 초대된 작가들은 저마다 이 미술관스럽지 않은 신상新商미술관을“미술관스럽게”만들어야 하는 부차적인 숙제를 떠맡은 듯 보인다.부산현대미술관은 미술관 자체에 대한 해석을 요청하는 하나의 기이한 장소특정성을 작가들에게 작품 설치의 조건으로 던져준 셈이다.패트릭 블랑Patrick Blanc의 수직 정원은 이렇게 스스로는 성격을 드러내지 못하는 중성적 공간에 대한 도발적 대안을 제시한다. 을숙도라는 섬,그리고 미술관 섬은 땅과 물의 중간자다.물이 차면 사라지고 빠지면 드러나는 대지의 유동성은 비옥한 토지를 만들고 철새를 포함한 다양한 동식물의 서식처를 형성한다.그러나 안정성이 없는 대지라는 이유로 밑바닥으로 내몰린 사람들이 마지막으로 점유할 수 있는 변방의 땅이기도 하다.많은 영토 분쟁이 섬을 중심으로 이루어지는 이유도 섬은 경계를 결정짓는 중요한 기준이지만 동시에 어디에도 속하기 힘든 중간적 성격을 가지기 때문이다.섬을 주제나 배경으로 한 문학 작품이 많다는 사실도 고립된 지형이 만들어 내는 독특한 지정학적,생태적,사회적 풍경 때문일 것이다.시대와 국경을 초월하여 섬이라는 대지의 변화와 불확실성이 초래하는 긍정적,부정적 가능성은 예술가에게 마르지 않는 영감을 주었다.을숙도를 주제로 한 시와 소설이 많은 것 역시 우연이 아니다.이러한 의미에서 부산현대미술관이 을숙도라는 섬에 자리를 잡게 된 것은 오래된 필연이었을지도 모른다. 을숙도는 바닷물과 민물이 만나는 하구에 위치한 모래톱으로,원래 일웅도와 붙었다 떨어지기를 반복하는 변화의 땅이었다. 1980년대 낙동강 하굿둑이 건설되면서 담수와 해수가 자유롭게 넘나들던 흐름이 끊기고 천혜의 자연 생태계가 심각한 변화를 겪게 된다.그 후로 쓰레기 매립지,준설토 적치장,분뇨 해양 처리장,명지대교(을숙도대교)등이 들어서면서 섬의 원시성은 사라지고 을숙도는 인간의 필요에 따라 조각나고 재구성된 어정쩡한 자연으로 남았다.이 섬은 우리나라가 근대화와 국토 개발 과정에서 취해 온 자연에 대한 태도를 그대로 기록한 오픈 아카이브이기도하다.부산현대미술관은 바로 이 하굿둑이 섬을 가로지르며 만든 도로에 면해 있어 달리는 자동차에서 바라보면 미술관의 파사드가 거대한 광고판처럼 보인다.민물과 바닷물을 가르는 대규모 토목 구조물에 붙어 있는 부산현대미술관은 입지적 특성 때문에 본래 의도와는 상관없이 섬의 얼굴 역할을 하는 대표성을 가지게 되었다.하굿둑,생태 공원,체육 시설,문화 회관,피크닉 광장,에코센터,미술관,매립지,체험장 등 저마다의 땅따먹기로 조각난 이 섬은 매력적인가?부산현대미술관이 이러한 섬의 역사와 무관하게 간판 역할을 할 수 있을까?미술관은 섬의 역사를 끌어안고 새로운 정체성을 세울 수 있을까? ...(중략)... 1. 2018년6월 서울에서 개최된 토론회에서 나온 패트릭 블랑의 발언에서 따온 제목이다. *환경과조경365호(2018년9월호)수록본 일부 김아연은 서울대학교 조경학과와 동대학원 및 미국 버지니아 대학교 조경학과를 졸업했다.조경 설계 실무와 설계 교육 사이를 넘나드는 중간 영역에서 활동하고 있다.국내외 정원,놀이터,공원,캠퍼스,주거 단지 등 도시 속 다양한 스케일의 조경 설계 프로젝트를 담당해 왔으며 동시에 자연과 문화의 접합 방식과 자연의 변화가 드러내는 시학을 표현하는 설치 작품을 만들고 있다.자연과 사람의 관계에 대한 아름다운 꿈과 상상을 현실로 만드는 일이 조경 설계라고 믿고,이를 사회적으로 실천하는 일을 중요시 한다.현재 서울시립대학교 조경학과 교수이자 스튜디오 테라 대표다.
    • 김아연ahyeonkim@uos.ac.kr
  • 비평: 일상의 혁명을 위한 작은 무대
    청출어람 서울이 이제는 세계적인 문화의 도시라고 내세워도,다른 나라에서 서울을 배워 갈 정도로 우리의 역량이 커졌다고 자찬을 해도,우리는 여전히 선진국의 멋진 사례를 동경했고 갖고 싶었다.우리의 현실에 맞게 제대로 소화하기도 전에 외국의 사례들이 우리 도시의 정책이 되었다. ‘72시간 도시생생 프로젝트’도 그런 복제품 중 하나다.그런데6년 뒤 한때 많은 매체의 주목을 받았던 원래의 프로그램은 다른 나라에서 더 이상 열리지 않게 되었고,그 취지는 유일하게 서울에서만 살아남았다.정책적 카피로 출발한 프로그램은 원래 기획의 맥을 잇는데 그치지 않고 시행착오를 반복하며 원본을 뛰어넘는 프로그램으로 발전한다.이제 이 기묘한 기획은 서울이라는 도시의 맥락에 최적화된 형태로 진화하여 매년 도시의 새로운 가능성을 찾아내고 실현하고 있다.무슨 일이 있었던 것일까? 72시간 어반 액션 72시간 도시생생 프로젝트(이하72시간 프로젝트)의 모태는‘72시간 어반 액션72 Hour Urban Action’(이하72 HUA)이라는 이벤트다. 72 HUA는2010년 이스라엘의 텔아비브Tel-Aviv인근의 소도시 바트얌에서 열린 랜드스케이프 어바니즘 비엔날레Bat-Yam International Biennale of Landscape Urbanism의 한 행사로 처음 실행된다.시장은 비엔날레를 계기로 도시가 자유로운 아이디어의 실험실이 되기를 원했고,두 명의 젊은 건축가가 특이한 형태의 공모전을 제시한다.주어진 시간은72시간, 3일 밤과 낮.참가자들은 한정된 기간 안에 한정된 예산으로 도시의 공간을 변화시킬 아이디어를 제시할 뿐 아니라 프로젝트를 실제로 만들어야 했다.주어진 예산은2000유로에 불과했고 모든 법적 제약과 인허가 절차를 피하기 위해30cm이상의 지반 공사도 불가능했다.과연 누가 참여할까 하는 의구심이 들 정도로 열악한 조건의 프로젝트에 전 세계40개국에서450개의 지원서가 제출되었다.기획자들의 예상을 뛰어넘는 성공이었다.건축가와 디자이너는 지역 주민과 협력해 도시 곳곳에서 동시 다발적으로 프로젝트를 진행했고 그 과정은 인터넷으로 전 세계에 생중계되었다. 72 HUA는 극한의 조건을 둔 일종의 건축적 게임이자 도시적 실험이었다.그러나 이 이벤트는 흥미진진한 게임과 실험 이상의 의미를 갖고 있었다. 72 HUA의 제안자인 케름 할브레트Kerem Halbrecht와 길리 카예브스키Gilly Karjevsky는 다음과 같은 질문을 던진다.1“대개 도시 환경을 바꾸기 위해서는 엄청난 시간과 돈,행정적 절차가 필요하다.이러한 상황에서 개인의 생각과 의지로 무엇인가를 바꾸는 것은 불가능해 보인다.오늘날 도시를 변화시키는 일은 전문가와 행정가,정치가 등 소수에게만 주어진 특권이 되어 버렸다. 72 HUA는 이러한 불가능성에 반기를 든다.그리고 시민이 스스로 일상의 공간에 변화를 불러일으킬 수 있다는 사실을 보여 주고자 한다.과연 누가 공공의 공간에 개입할 권리를 갖는가?삶의 질을 결정할 책임이 누구에게 있는가?당연한 권리를 금지된 것으로 만드는 고정관념에서 벗어날 수 있는가?이 기획은 그 누구도 아닌 바로 내가 이 순간,여기에서 활동가가 되고 반란군이 되라고 요구한다.여기에는 단 하나의 선언만이 존재한다. ‘내가 살고자 하는 현실을 내가 만들 권리가 있고 만들 수 있다.’” 이러한 메시지는 마지막 아방가르드라고 불렸던 상황주의자 인터내셔널Situationalist International의 실천적 저항 정신을 계승하며,2건축의 권위를 건축 스스로가 부정하고 제도적 테두리를 넘어서려 한다는 점에서 무정부주의적 태도를 취한다.다른 한편으로는 자본주의적 건축에 저항하여 가장 낮은 위치에서 건축의 가치를 찾고자 하는 시게루 반Shigeru Ban3의 생각과 맥락을 같이하며,대학살,전쟁,재난과 같은 인간성 자체가 위기에 처한 상황에서 건축의 본질을 다시 생각하는 아키텍처 포휴머니티Architecture for Humanity4와 공동의 전선을 펼치는 듯 보인다.그러나72 HUA가 이러한 움직임과 근본적으로 차별화되는 지점은 놀이의 성격을 갖고 있다는 점이다.놀이는 정치적 투쟁의 심각함을 거부한다.일시적이고 즉흥적이다.무엇보다도 재미있어야 한다. 72 HUA은 거시적 담론이 힘을 잃은 지금의 시대에 실천을 이끌어 내기 위해서 가벼워야 한다는 점을,그리고 일상의 리듬에 녹아들어야 한다는 점을 놓치지 않았다.그 때문에 큰 호응을 이끌어 낼 수 있었다. 2년 뒤, 2012년 독일 슈투트가르트Stuttgart에서 두 번째72 HUA가 열린다.전 세계에서 수많은 참가자가 지원해 도시 곳곳을72 HUA의 상징색인 주황색으로 물들였고SNS와 유튜브를 통해 첫 이벤트를 뛰어넘는 주목을 받는다.같은 해가 지나기도 전에 세 번째72 HUA가 이탈리아 테르니Terni에서 열린다. 2013년의 네 번째72 HUA는 덴마크의 로스킬레Roskilde에서 열린다.국제 음악 페스티벌과 연계한 이 행사는 예년에 비해 절반밖에 안 되는 팀으로 진행되었다.그리고2014년 독일 비텐Witten에서 열린 다섯 번째 행사를 마지막으로72 HUA는 더 이상 열리지 않았다. ...(중략)... 1.도무스(Domus)의 인터뷰를 참조했다(https://www.domusweb.it/en/architecture/2011/07/27/72-hour-urban-action.html). 2.상황주의자 인터내셔널은1957년부터1972년까지 아방가르드 예술가와 지식인이 모여 활동한 그룹으로,전통적인 마르크시즘에 반기를 든 반자본주의적 사회 운동의 성격을 띠고 있었다.스펙터클의 정치에 반대하여 일상의 삶과 대상에서 사회적 의미를 발견하고자 했으며,문학,시각 예술,건축 도시 분야의 이론과 접목된다. 3.시게루 반은 일본의 건축가로2014년 프리츠커 건축상(Pritzker Architecture Prize)수상자다.종이를 건축 소재로 실험적으로 사용하여 주목 받았으며,종이 같은 값싼 재료를 재난 상황에서의 건축에 활용한 작품들을 선보인다.지속적으로 재난 상황에서 건축의 역할을 강조했으며 실제 고베,쓰촨,동일본,네팔 대지진 당시 임시 구조물을 현장에서 설계하여 제공했다. 4.아키텍처 포 휴머니티는 재난,전쟁 등의 극한 상황에서 건축적 대안을 제시하고자 결성된 비영리 단체로,자급자족적이고 협력적인 가치를 제시하며 전 세계에서 다양한 활동을 벌여 왔다. *환경과조경365호(2018년9월호)수록본 일부 김영민은1978년생으로,서울대학교에서 조경과 건축을 함께 공부했고 하버드GSD에서 조경학 석사 학위를 받았다.미국의SWAGroup에서6년간 다양한 조경 설계와 계획 프로젝트를 수행하면서USC건축대학원의 교수진으로 강의를 했다.동시대 조경과 인접 분야의 흐름을 인문학적인 시각으로 읽어내는 데 관심이 있으며,설계와 이론을 넘나드는 다양한 활동을 펴나가고 있다.『랜드스케이프 어바니즘』을 번역했으며,설계 방법론을 다룬『스튜디오201,다르게 디자인하기』를 썼다.『용산공원』등 다수의 공저가 있다.
    • 김영민ymkim@uos.ac.kr
  • [그들이 설계하는 법] 식물의 선
    3회 연재의 마지막 글이다. 첫 회에는 ‘분위기, 맥락, 주제’라는 키워드로 설계의 방향을 결정하는 요소(설계적 개념)를 다루었고, 2회 차에서는 ‘스케일’을 주제로 개념을 실재화하는 구체적인 방식(설계적 문법)을 논의했다. 이번 3회 차에서는 물리적 실체가 있는 설계 요소, 즉 설계 재료(설계적 어휘)에 대한 생각을 이어 간다. 조경이 다루는 설계 재료는 꽃과 나무 같은 식물 재료, 돌이나 철 같은 무기 재료, 빛, 바람, 습도 같은 물리적 환경 요소 등 무수히 많지만, 본 연재에서는 조경 설계의 가장 기본적인 재료라고 할 수 있는 식물에 관한 개인적 관점을 소개한다. 자연을 다루는 작곡가 “저는 조경학과를 나왔지만 나무는 잘 몰라요.” 업계에서 일을 하다보면 이렇게 말하는 이들을 심심치 않게 만난다. 미학, 계획, 설계, 역사, 이론, 생태학 등 그 앞에 조경을 붙일 수 있는 다양한 세부 학문이 있기 때문에 경우에 따라 다르겠지만, 만약 이런 이야기를 하는 이가 설계가라면 분명히 문제다. 조경 설계에 있어 식물은 가장 중요한 설계 재료 중 하나이기 때문이다. 식물에 대한 이해는 선택이 아닌 필수 조건이다. 재료에 대한 이해가 부족한 설계가는 악기의 소리에 대한 이해가 부족한 작곡가에 비유할 수 있다. 악기 소리를 깊이 이해하지 못하더라도 화성학 같은 음악 이론을 바탕으로 곡을 만들 수는 있다. 그런데 과연 그렇게 만든 곡이 듣는 사람을 감동시킬 수 있을까? 더욱이 그 곡이 하나의 악기로 연주하는 독주곡이 아니라 여러 악기를 함께 연주해야 하는 협주곡이라면 어떨까? 다양한 소리가 함께 만들어 내는 아름다운 하모니를 위해 작곡가는 각 악기의 소리는 물론이거니와 그 소리들이 만났을 때 발생하는 음색의 변화도 이해하고 있어야 한다. 조경가는 자연을 다루는 작곡가 같은 역할을 한다. 악기 소리에 해당하는 식물 재료의 특질을 깊이 이해할 필요가 있다. 그렇다면 설계 재료로서 식물을 어떻게 배우고 익혀야 할까? 악기 소리는 직접 연주해 보고 그 음을 들어 봐야 깊게 이해하고 다룰 수 있듯이, 식물 재료도 직접 보고 만지고 심어 봐야 알 수 있다. 글을 통해 배울 수 있는 많은 것이 있지만 적어도 식물을 다루는 방법은 글로 익히기 어렵다. 설계가의 몸이 직접 식물과 만나면서 배워야 하는 일이다. 식물 없는 식재 설계 학창 시절 불편함을 느끼게 하는 표현이 있었다. 바로 ‘빵빵이를 돌린다’는 말이다. 식물에 일자무식이었던 신입생들에게 주어진 첫 번째 스튜디오 수업의 과제는 주택 정원 설계였다. 지금은 잘 쓰지 않겠지만 그 당시에는 제도용 손 도구 중 여러 가지 크기의 원이 뚫린 도형자가 있었다. 그때의 식재 설계란 하얀 바탕 위에 나무를 상징하는 여러 크기의 원을 보기 좋게 배치하는 일이었다. 때로는 컴퓨터 툴을 활용해 나무 이미지를 붙여 넣는 작업을 하기도 했는데, 도형자의 원이 나무 형태의 심벌로 바뀌었을 뿐 결국 하는 일은 같았다. ‘빵빵이를 돌린다’는 말은 나무를 잘 모른 채 식재 설계를 하는 행위를 향한 자조 섞인 표현이었다. 이렇게 작성한 도면이라면 그 안에 진정한 의미의 식물이 있을 리 만무하다. 실체는 없고 공허한 개념만이 부유할 뿐이다. 학생이 아니라 현업에 있는 동시대의 젊은 조경가들은 식물을 충분히 이해하고 있는가? 종종 젊은 설계가와 교류할 기회가 있는데, 공간에 대한 예리한 감각, 창의적 표현, 세련된 의사 전달 방식 등 탁월한 능력을 가진 이들이 많다. 그런데 그런 이들조차 정작 식물에 대해서는 잘 모르는 경우가 있다. 식물의 생물학적 특성을 모른다는 뜻이 아니다. 공간을 구성하는 회화적 표현 재료로써 식물에 대한 이해도가 낮다는 이야기다. 나 역시 마찬가지지만, 색과 질감, 양감 같은 공간의 구성 요소를 식물 재료로 표현하는 데 미숙한 젊은 조경가가 많다. 랜드스케이프 어바니즘 담론이 중요했던 지난 십여 년간 한국 조경은 공원 스케일의 프로젝트에 전념해 왔다. 조경가를 양성하는 대학도 이 같은 흐름에 발맞추어 왔다. 공간에 대한 종합적 구성, 빈틈없는 프로그래밍, 설계 개념을 전달하는 강력한 표현 전략같이 큰 프로젝트를 다룰 때 유용한 방법을 주로 다루었다. 반면에 식물 소재의 선, 색, 질감 등에 대한 교육은 부족했다. 몇 차례의 특강 또는 실습만으로 이를 해소하고자 했다. 이런 주제는 지극히 주관적으로 해석될 여지가 있으므로 개인적인 차원에서 배워 나가야 하는 부분이라 간주하고 미루어 놓기도 했다. 그렇다면 조경 설계 실무를 시작하면 식물을 배울 기회가 많은가? 꼭 그렇지는 않은 듯하다. 법적 조경 감리 제도가 없는 우리나라에서 설계가들은 식물을 가까이 마주하며 다루어 볼 기회를 좀처럼 갖기 어렵다. 학교 교육에서 모자랐던 부분이 실무에 종사하면서도 여전히 해소되지 못한다....(중략)... * 환경과조경 365호(2018년 9월호) 수록본 일부 최재혁은 서울대학교 조경학과 졸업, 동대학원에서 조경학으로 석사 학위를 받은 후, KnL 환경디자인 스튜디오에서 정원과 조경 설계 실무를 익혔다. 수상 경력으로 제8회 대한민국 환경조경대전 대상, 제3회 대한민국 신진조경가 대상 설계공모전 대상, 2017 코리아가든쇼 대상 등이 있다. 2017년 한강예술공원 시범사업의 참여 작가로 선정되었으며, 같은 해 스튜디오 오픈니스(Studio Openness)를 창업하여 생태적 관점을 바탕으로 정원, 공공예술 분야에서 폭넓은 활동을 하고 있다.
    • 최재혁openness.studio@gmail.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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