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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에디토리얼] 공감을 통해 회복탄력성을 설계하다
    지난 5월 17일, 전 세계 조경계의 이목을 집중시키며 1년간 진행된 ‘리질리언트 바이 디자인(Resilient by Design: Bay Area Challenge)’의 아홉 개 최종 당선 작이 발표됐다. 이 혁신적 공모전의 당선작과 해설 기사를 이번 호 특집 격으로 싣는다. 아름다운 수변 경관으로 유명한 샌프란시스코 베이 일대를 다룬 리질리언트 바이 디자인은 특정 부지의 개발과 조성을 목적으로 하는 일반적인 설계공모와 다르다. 해수면 상승에 따른 피해가 예측되지만 이미 수변까지 도시화가 진행된 역설적 상황. 이 설계공모는 곧 닥쳐올 위험에 회복탄력성(resilience)의 관점으로 대응하는 디자인 이니셔티브(initiative)다. 리질리언트 바이 디자인은 2014년의 ‘리빌드 바이 디자인(Rebuild by Design)’ 공모전의 연장선상에 있다(『환경과조경』 2014년 8월호 참조). 리빌드 바이 디자인은 2012년 미국 동부를 초토화시킨 허리케인 샌디에 따른 환경적·사회적 재난을 겪은 뉴욕 메트로폴 리탄 지역의 회복탄력성을 향상시키고자 한 초대형 프로젝트였다. 4년의 시차를 둔 두 공모에는 물론 몇 가지 차이가 있다. 리빌드 바이 디자인의 계기가 실제로 벌어진 재난의 복구였다면, 이번 리질리언트 바이 디자인의 초점은 “아직 일어나지 않은 재난 혹은 서서히 일어나 눈에 띄지 않는 점진적 재난”(본문 13쪽)에 대한 고려다. 또 리빌드 바이 디자인의 핵심에는 연방 정부의 주도와 록펠러 재단의 후원이 있었던 반면, 리질리언트 바이 디자인은 이에 더해 지역 주민의 힘을 매개와 동력으로 삼은 차이도 있다. 전문가의 설계안을 지역 주민이 평가 하는 것에서 한 걸음 더 나아가 전문가와 지역 주민이 함께 설계안을 만들어감으로써 참여 주체 모두의 공감을 얻는 형식을 취한 것이다. 본문에 실은 계획안들의 핵심 내용 외에 이 지면에서 한 번 더 강조하고 싶은 이 공모전의 특징은 지혜로운 공모 ‘과정’이다. 설계공모 1단계에서는 참여 전문가의 구성, 역량, 제안서를 평가해 51개 지원 팀 중 10개 팀을 선정했다. 충실하게 준비된 대상지 자료가 사전에 공개되었음은 물론이다. ‘협력 리서치’에 방점을 둔 2단계는 10개 참가 팀, 전문 가, 지역 커뮤니티, 지방 정부가 4주간의 공동 연구를 통해 프로젝트 의제를 발굴하고 팀별 대상지를 결정하는 과정이었다. 이 단계에서 주최 측은 지역의 회복탄력성 이슈, 대상지 일대의 지역사와 자연사, 당면한 위협에 대한 조사 등을 모은 사전 연구 자료를 제공했다. 3단계는 ‘협력 설계’의 과정이었다. 각 참가 팀은 2단계 협력 리서치의 결과물을 적용하고 지역 주민과 긴밀히 협력하며 팀별 설계 해법을 발전시켜 최종 설계안을 완성했다. 주최 측이 제공한 재무 가이드를 바탕으로 향후 사업 실행에 필요한 재정 전략도 마련했다. 1년이 넘는 길고 충실한 설계공모의 과정은 참가자, 전문가, 지역 주민, 이해관계자뿐 아니라 관심 있는 모든 사람의 공감대를 주조하는 회복탄력적 여정이었다고 평가할 수 있을 것이다. 리질리언트 바이 디자인은 닥쳐올 재난에 유연하게 대처할 수 있는 회복탄력성의 모색이라는 점에서도 의미를 지니지만 설계공모 과정 그 자체가 회복탄력적인 프로젝트인 셈이다. 이러한 과정 중심적 접근은 동시대 한국의 현실을 되돌아보게 한다. 거창한 설계 공모를 통해 당선작을 뽑아 놓고도 무관심의 공전을 거듭하고 있는 용산공원, 토건시대를 방불케 하는 속도전 설계공모가 낳은 볼품없는 서울로 7017, 자본과 공공성 사이를 갈팡질팡한 눈치보기식 설계공모가 지역 주민과 당선작 간의 갈등을 증폭시킨 잠실 5단지 재건축 등 최근 여러 설계공모의 난맥상은 공감을 설계하는 과정의 부재에서 비롯된 것이 아닐까. 4년 전의 리빌드 바이 디자인과 올해의 리질리언트 바이 디자인을 거치며 회복탄력성은 이제 생태학 연구의 주제를 넘어 동시대 조경이 정면으로 마주해야 할 본격적인 설계 과제로 부상하고 있다. 마침 이달에는 조경 설계를 통해 도시와 경관의 회복탄력성을 실험해 온 스토스(Stoss)의 근작들을 함께 싣는다. 대표적인 랜드스케이프 어바니스 트로 손꼽히는 크리스 리드(Chris Reed)(스토스 소장)는 김세훈 교수(서울대학교 환경대학원)와의 인터뷰에서 회복탄력성 이슈와 관련해 미래 세대의 조경가에게 다음과 같은 말을 남긴다. “두 가지 생각이 중요하다고 본다. 하나는 우리가 생태 환경으로부터 얻을 수 있는 교훈이 무엇이며, 환경 변화에 대해 경관과 도시가 어떻게 대응하고 있는지를 이해하는 것이다. 또 다른 하나는 조경가가 현대 도시를 변화 시키는 데 어떤 역할을 할 수 있는지 생각하는 것이다. 생태 시스템의 복잡한 원리는 환경에 내재한 변화 가능성을 이해하고 받아들인다. … 변화를 거부하고 스스로를 격리하기보다 변화와 함께 살아가고 견뎌내는 특성이 중요하다. 이러한 특성을 보이는 시스템에 대해 우리는 ‘회복탄력적(resilient)’이라고 말한다”(본문 83쪽). 자연과 도시 환경의 회복탄력성을 기를 수 있는 설계적 지식이, 회복탄력적 설계를 가능하게 하는 실천적 연구가 필요한 시점이 아닐 수 없다. 『환경과조경』은 전 세계의 디자인 전문지 중 가장 빨리 ‘리질리언트 바이 디자인’을 지면에 담는 셈이다. 속도에 욕심을 낸 만큼 부족한 부분이 적지 않을 것이다. 설계안의 보다 상세한 내용, 다단계 공모 과정, 학제 간 전문가 집단의 협력, 공공 기관의 리서치 지원, 지역 커뮤니티의 참여, 기업과 재단의 후원 등 리질리언트 바이 디자인의 전모를 홈페이지(www.resilientbayarea.org)에 공개된 다양한 자료와 섬세한 보고서를 통해 일견하시길 권한다. 회복 탄력성 개념에 아직 익숙하지 않은 독자에게는 본지에 연재된 바 있는 전진형 교수(고려대학교 환경생태 공학부)의 ‘리질리언스 읽기’ 1~6(『환경과조경』 2016년 6월호~11월호)를 우선 추천한다. 지난 6월호로 김호윤 소장(조경설계 호원)의 ‘그들이 설계하는 법’ 연재가 막을 내렸다. 그간의 수고에 감사드린다. 이번 7월호부터 3 회에 걸쳐 젊은 조경가 최재혁 소장(스튜디오 오픈니스)이 ‘그들이 설계하는 법’을 이어간다. 독자 여러분의 관심과 성원을 부탁드린다.
  • 현대 도시를 재구성하는 법 크리스 리드 인터뷰
    스토스(Stoss)를 이끄는 크리스 리드(Chris Reed)는 경관과 도시의 변화를 선도적으로 이끄는 연구자이자 전략가, 교수이며 디자이너다. 특히 생태와 경관, 인프라, 사회 공간 및 도시 관계에 관심을 두고 있으며, 최근에는 보스턴, 댈러스, 아부다비, 중국, 미국 중서부 전역의 리질리언스에 관한 도시 경관을 연구하고 있다. 그리고 지난 4월 리질리언스 프로젝트 중 하나인 ‘이스트 보스턴과 찰스타운 해안 리질리언스 솔루션’이 2018 WLA의 개념 설계 부문(conceptual design award)수상작으로 선정됐다. 프로젝트의 이면에는 어떤 이야기들이 숨어 있을까. 크리스 리드와 김세훈 교수가 폭넓게 나눈 대화를 옮긴다. _ 편집자 주 Q 보스턴이라는 도시에 대한 단상으로 인터뷰를 시작하자. 최근 많은 계획이 보스턴에서 진행 중이다. 도시 중심부를 관통하는 고속 도로를 지하화한 빅 딕(Big dig)프로젝트 준공 이후 사우스 보스턴 개발, 이스트 보스턴 워터프런트 계획, 포트 포인트 해협(Fort Point Channel)주변의 해리슨-알바니 회랑(Harrison-Albany corridor)계획, 하버워크(Harborwalks), 보스턴 기후 변화 대응 계획(Climate Ready Boston)등이 동시에 진행되고 있다. 이미 프레더릭 옴스테드나 케빈 린치 등 조경과 도시설계의 풍부한 전통을 갖고 있는 보스턴이라는 도시의 현재와 미래에 대해 어떻게 생각하는가? A보스턴은 풍부한 경관 유산을 가진 도시다. 과거 옴스테드의 사무소는 브루클린 인접 교외 지역에 있었다. 그는 에메랄드 네클러스(emerald necklace)라 불리는 일련의 공원과 수목원, 각종 오픈스페이스를 설계하면서 서로 다른 도시 기능을 잇고 홍수 예방 등 복합 기능을 하는 그린 인프라를 조성했다. 이러한 전략은 19세기 후반 찰스 엘리엇(Charles Elliot)이 지역 하천과 각종 자연환경을 연결함으로써 그 효과가 더욱 증폭되었다. 이러한 유산은 18~19세기 미국의 산업 도시 중 하나인 보스턴을 현대적 도시로 탈바꿈시키는 데 결정적인 역할을 했다. 20세기 들어 보스턴은 여러 도시 정비 기법을 통해 역동적인 커뮤니티를 대규모 재개발로 대체하는 과정을 겪었다. 물론 도시의 조각난 부분을 서로 이어주고자 린치와 서트Sert같은 선구자가 혁신적인 제안을 하기도 했지만, 이는 비교적 제한적인 효과를 내는 데 머물렀다. 그럼에도 도시계획가들은 대단위 계획안의 부정적 효과를 경계하게 되었고, 이에 대한 커뮤니티의 인식도 높아지면서 점차 적정 규모의 개발을 지향하게 되었다. 결국 작은 규모의 잘 계획된 프로젝트가 누적되어 좋은 도시 조직이 만들어질 수 있다고 믿게 되었다. 하지만 지난 10년 동안 이러한 개발 지향적 도시 만들기가 정말 좋은 도시를 만들 수 있는지, 그리고 진정한 의미의 ‘공공성’을 창출할 수 있는지에 대한 논의가 진행되었다. 기후 변화 대응과 적응의 필요성은 보스턴 도시 기본계획 수립에 있어 새로운 접근 방식을 요구한다. 도시를 바꾸는 데 경관의 회복력(resilience)을 그 논의의 중심에 둔다. 기후 변화 문제는 한 번에 한 곳에서 다룰 수 없다. 복합적인 환경 시스템 속에서 어떤 융복합적 해결책을 도출할 수 있는지, 특히 경관을 기반으로 시간성과 복잡성을 포괄한 접근법이 중요하다. 보스턴이라는 도시는 이러한 측면이 매우 중요한 곳이다. 그래서 우리와 같은 조경가를 중심으로 다양한 팀이 구성되어 도시 문제를 다루는 것이다. ...(중략)... * 환경과조경 363호(2018년 7월호) 수록본 일부
  • [이미지 스케이프] 10년의 기록
    “2007년 봄부터 매주 만들어낸 주간 스케줄 표가 어느새 570여 장이나 쌓이게 되었으니, 축적된 시간들을 공간으로 치환하면 10평 정도의 크기를 가지게 되었다. 작은 정원을 만들 수 있고, 욕심을 버린다면 방 한 칸의 집을 올릴 수도 있겠다.” 강산도 바뀐다는 10년이라는 시간 동안 꾸준히 뭔가를 한다는 건 참 어려운 일입니다. 더군다나 눈코 뜰 새 없이 바빴던 긴 시간 동안 설계 작업을 꾸준히 기록한다는 건 거의 기적에 가까운 일이지요. 조경가 박승진은 2007년 사무실을 연 이후 꾸준히 주간 스케줄 표를 만들고, 또 작업 과정과 결과를 사진으로 기록해 왔습니다. 그리고 이런 기록을 최근 『도큐멘테이션(Documentation)』이라는 제목의 책으로 엮었고, 내친김에 소박하지만 꽉 찬 전시회도 열었습니다. (이 글이 여러분을 만날 즈음에는 전시회가 막을 내린 후라는 게 무척 아쉽네요.)전시는 돈의문박물관마을에 위치한 ‘하 루.순’이란 아주 매력적인 장소에서 열렸습니다. 전시장 이름치고는 조금 낯설게도 보일 수 있는데, 1일을 뜻하는 ‘하루’와 새싹이란 의미의 ‘순’을 합쳐 만든 이름이라고 합니다. 전시장 이름과 전시 주제가 묘하게 조화를 이룹니다. ...(중략)... * 환경과조경 363호(2018년 7월호) 수록본 일부 주신하는 서울대학교 조경학과를 거쳐, 같은 학과 대학원에서 석사와 박사 학위를 받았다. 토문엔지니어링, 가원조경, 도시건축 소도에서 조경과 도시계획 실무를 담당한 바 있으며, 현재 서울여자대학교 원예생 명조경학과 교수로 재직 중이다. 조경 계획과 경관 계획에 학문적 관심을 두고 있다.
  • [그들이 설계하는 법] 분위기, 맥락, 주제
    고민 끝에 연재를 맡은 뒤 이 꼭지의 제목을 다시 생각해 보았다. 그들이 설계하는 법, 이목을 끌 만큼 흥미로운 동시에 그 자체로 토론을 불러일으킬 만한 문구다. ‘그들’과 ‘설계하는 법’으로 나누어 보자. 아마도 ‘그들’은 협의로는 ‘조경 설계가’, 광의로는 우리가 마주 하는 환경과 관련된 유무형의 산물을 디자인하는 ‘조경가’라고 규정할 수 있을 것이다. 정작 어렵고도 중요한 질문은 그 다음이다. ‘설계하는 법’이란 무엇이고, 과연 글로 설명할 수 있는 것일까? 무거운 책임감과 부담감이 앞선다. 아직 짧은 나의 경험을 바탕으로 설계하는 법과 관련된 어떤 이야기를 할 수 있을까? 분명한 것은 설계하는 법은 다양하고 원칙이 없다는 점이다. 세상의 수많은 조경가는 각자의 관점에 따라 공간을 설계하고 구현해 나간다. 뿐만 아니라 개인적 차원에서도 그 방법은 대상지에 따라 변화무쌍하기 마련이다. 그렇다면 ‘설계하는 법’을 어떻게 논의해야 할까? 크게는 두 가지 접근이 가능할 것 같다. 첫 번째는 여러 조경가로부터 다양한 설계 방법론을 수집하고, 이로부터 동시대의 설계 방법론을 귀납적으로 유추하는 방법 이다. 두 번째 접근 방식은 설계를 이끄는 설계 기저의 것, 즉 설계 관점을 논의하는 것이다. 이 방법은 특정 사례를 중심으로 구체적인 설계 프로세스를 논의하는 방식에 비해 개념적일 수 있지만, 한층 더 본질적인 것 을 다룰 수 있다. 프로젝트 성격에 따라 많은 경우의 수가 있지만, 한 조경가의 설계 방법과 이를 관통하는 설계 관점(또는 설계 철학)은 대개 하나로 귀결되기 때문 이다. 나는 표면적인 설계 방법을 예시하기보다는 그 밑바탕을 이루는 설계 관점을 논의함으로써 설계하는 법을 더 분명하게 전달할 수 있다고 생각한다. 앞으로 3회의 연재를 통해 주관적 설계 관점에 대해 밝히고 필요에 따라 프로젝트를 예시할 예정이다. 물론 지극히 개인적인 관점임을 밝힌다. 다양하고 다른 시각이 가능한 만큼, 생산적인 비평과 풍성한 담론이 이어졌으면 하는 바람이다. 잠재성의 발견과 실재화 연재의 첫 번째 순서인 만큼 설계 관점을 이야기하기에 앞서 설계라는 행위에 대해 다시 한번 생각해 보면 좋을 듯하다. 설계가는 현실 공간의 조건과 맥락을 바탕으로 각자의 머릿속에서 새로운 세계를 그려 나간 다. 이는 잠재적인 상태로 존재하지만, 일이 잘 풀리는 경우(아마도 설계공모에 당선된다거나 계약이 성사되는 경우)에는 설계-시공-감리와 같은 산업적 시스템을 통해 실재 하는 공간으로 드러날 것이다. 만들어진다고 표현하지 않고 ‘드러난다’고 한 것은, 설계가가 이미 현실 속에서 본인이 생각하는 잠재적인 공간(설계안)의 실마리를 지각하고 있기 때문이다. 말하자면 설계가가 감지한 그 어떤 것이 이미 현실 공간에 존재하고 있다. 그것은 시원한 그늘이 될 수도, 미묘하게 변화하는 빛일 수도, 많은 사람이 모여 웃고 즐기는 모습일 수도 있다. 좋은 설계란 현실 공간 안에서 그와 같은 잠재성을 발견하고 그것을 실재화하는 설계다. 이와 같은 관점에서 본다면 잠재성을 감지하지 않은 채 책상 위에서 종이 속 새로운 공간을 상상하고 짓는 일은 진정성 있는 설계 행위라고 보기 힘들다. 개념과 실재, 방향성 올해 대학에서 설계 스튜디오 수업을 하면서 설계, 더 구체적으로 말하자면 ‘설계하는 과정’을 가르치는 것이 참 어렵다는 생각을 했다. 어떤 이는 설계 행위가 개인의 미적 취향을 따르는 주관적 행위이기 때문이라고 설명하는데, 내가 보기엔 단순히 그런 이유만은 아닌 것 같다. 그보다는 복잡다단한 설계의 사고 과정 때문이라고 생각하는데, 설계에 갓 입문한 학생에게 그런 사고 과정은 낯설고 어렵게 느껴질 수밖에 없다. 비유하자면 설계의 과정은 개념적 요소와 실재적 요소가 표류하는 생각의 바다를 떠돌면서 그들 사이의 관계를 맺어주고 결과적으로 하나의 방향성을 설정하는 행위다. 이를 조금 더 쉽게 설명하기 위해 피라미드 다이어그램을 살펴보자. ...(중략)... * 환경과조경 363호(2018년 7월호) 수록본 일부 최재혁은 서울대학교 조경학과를 졸업하고 동대학원에서 조경학으로 석사 학위를 받은 후, KnL 환경디자인 스튜디오에서 정원과 조경 설계 실무를 익혔다. 수상 경력으로 제8회 대한민국 환경조경대전 대상, 제3회 대한민국 신진조경가 대상 설계공모전 대상, 2017 코리아가든쇼 대상 등이 있다. 2017년 한강예술공원 시범사업의 참여 작가로 선정되었으 며, 같은 해 스튜디오 오픈니스(Studio Openness)를 창업하여 생태적 관점을 바탕으로 정원, 공공예술 분야에서 폭넓은 활동을 하고 있다.
  • [다른 생각, 새로운 공간] 박명호, 홍동우 공장공장 공동설립자 도시가 청년의 답이다
    요즘 청년들은 외롭다. 외롭다는 의미가 단지 개인적 차원에서 그치지 않는다. 때로는 사회가 청년을 버렸다는 극단적 인식으로 연결되기도 한다. 사람과 사람 사이의 관계 문제가 아닌, 직업과 생계를 통한 사회와의 관계 맺기에 큰 변화가 생겼기 때문이다. 고도 성장기 산업 사회에서 일과 직업은 자존감과 자긍심의 원천이었고, 때로는 애국적 행위로까지 간주됐다. 청교도적 소명 의식을 가진 사람은 드물었지만 인생에서 길을 잃지 않게 해 주는 가이드임은 분명했다. 나 또한 일에서 구원을 바란 이전 세대의 일원이었고, 일에 파묻혀 살다 보면 그것이 곧 여가고 친구였다. 알랭 드 보통(Alain de Botton)이 지적한 대로 지금 우리가 겪고 있는 낮은 자존감과 우울은 성숙한 성과주의(meritocracy) 사회의 이면이다. 학연, 지연, 혈연이 힘을 잃고 더욱 평등하고 공정해진 듯 보이는 세상이지만 인생의 우연과 운은 예나 지금 이나 다름이 없다. 누구나 노력하면 성공할 수 있다는 표현은 뒤집어 보면 아무리 노력해도 성공하지 못할 수 있다는 말과 같다. 실패자는 단지 불운한 사람이 아니라 누구의 동정도 받을 수 없는 루저(loser) 가 되는 시스템이다. 이쯤 되면 청년의 외로움은 상당한 근거를 가진다. 모든 것을 각자의 책임으로 전가하는 사회는 당연히 외로울 수밖에 없다. 상대적 열패감은 흔히 물질의 획득으로 측정되지만, 조금 더 들여다보면 알랭 드보통이 말한 대로 우리 사회는 물질을 탐닉하는 것이 아니라 물질과 연결된 가치와 보상, 그리고 사랑의 감정에 목말라 있다. 물질은 단지 고립 탈출을 가능케 해주는 수단인 것이다. 최근 상대적으로 좁아진 일의 기회와 동시에 풍족해진 물질과 여가 상황은 단순히 기업과 고용인에 대한 불신이 아니라, 일 자체에 대한 회의와 점검을 요구하게 만들었다. ‘공장공장’의 박명호, 홍동우 대표는 20대부터 그런 고민을 헤쳐 온 사람들이다. 돈보다 행복을 우선순위에 두는 건 불가능할까? 그에 대한 해답으로 혼자가 아니라 함께 만들어 가는 기업, 함께 만들어 가는 여행, 함께 만들어 가는 도시를 내놓았다. ...(중략)... * 환경과조경 363호(2018년 7월호) 수록본 일부 최이규는 1976년 부산 생으로 뉴욕에서 10여 년간 실무와 실험적 작업을 병행하며 저서 『시티오브뉴욕』을 펴냈고, 북미와 유럽의 공모전에서 수차례 우승했다. UNKNP.com의 공동 창업자로서 뉴욕시립미술관, 센트럴 파크, 소호와 대구, 두바이, 올랜도, 런던, 위니펙 등에서 개인전 및 공동 전시를 가졌다. 울산 원도심 도시재생 총괄코디네이터로 일했으며, 현재 계명대학교 도시학부 생태조경학전공 교수로 재직하고 있다.
  • [정원 탐독] 여성과 정원
    지금으로서는 고개를 갸웃거릴 수 있겠지만, 동서양을 막론하고 인류 문명에서 정원 문화는 귀족과 남성의 전유물 이었다. 정원 문화 속에서 여성의 역할이 없었다는 것이 아니라 여성의 활동이 밖으로 드러나지 못했고, 그것을 인정하지 않았다는 뜻이기도 하다. 그러나 영국의 에드워드 시대(Edwardian Era)(1890~1914) 에 이르면 정원에서 여성의 바람이 거세게 일어난다. 이 시기를 주도한 여성으로는 정원 디자이너 거트루드 지킬(Gertrude Jekyll)(1843~1932), 정원 역사 이론가 얼리샤 애머스트(Alicia Amherst)(1865~1941), 정열적인 원예 재배사 엘런 윌모트(Ellen Willmott)(1858~1934), 그리고 여성 정원사를 위한 대학을 설립한 교육자 프랜시스 울슬리(Frances Wolseley)(1892~1936) 등이 있다. 이들은 당시 서로 친분으로 엮여 있었고, 서로에게 각자의 방식으로 영향을 주면서 이전까지와는 다른 새로운 정원 문화를 만들어 갔다. 이들이 일으킨 정원 문화는 정원사의 큰 축을 바꾸었다. 이론, 학문, 원예, 디자인 분야에서 동시다발적 협업이 이뤄지면서 부와 취미의 상징으로만 여겨지던 정원을 그 시대의 핵심적 문화로 끌어올리는 계기가 되었기 때문이다. 이들의 영향은 영국에 그치지 않고 미국과 호주로 건너가 20세기와 21세기에 걸쳐 세계적으로 ‘가드닝 문화’를 일으키는 원동력이 된다. 오늘날 우리나라에도 불고 있는 정원과 가드닝에 대한 관심은 결코 느닷없이 불어 닥친 유행이 아니다. 그렇다면 여성에 의해 선도된 정원 문화는 그 이전의 시대와 어떻게 달랐고, 어떤 변화를 일으켰을까. 또 앞으로 어떤 길을 찾아갈 것인가. 이 쉽지 않은 질문에 대한 해답을 어쩌면 우리보다 한 세기 전에 태어나 정원을 위해 산 여성들의 삶을 통해 엿볼 수 있지 않을까. ...(중략)... * 환경과조경 363호(2018년 7월호) 수록본 일부 오경아는 방송 작가 출신으로 현재는 가든 디자이너로 활동 중이다. 영국 에식스 대학교(The University of Essex) 리틀 칼리지(Writtle College)에서 조경학 석사를 마쳤고, 박사 과정 중에 있다. 『정원생활자』, 『시골의 발견』, 『가든 디자인의 발견』, 『정원의 발견』, 『낯선 정원에서 엄마를 만나다』 외 다수의 저서가 있고, 현재 신문, 잡지 등의 매체에 정원을 인문학적으로 바라보는 칼럼을 집필 중이다.
  • [시네마 스케이프] 콜 미 바이 유어 네임 그해 여름, 눈부신 찰나의 순간
    몇 해 전 여름, 이탈리아 정원 답사 여행 중 투스카니 지방의 언덕 위 작은 호텔에 묵을 때였다. 올리브 나무가 그림처럼 펼쳐져 있고, 야외에 차려진 아침 식탁에는 방금 딴 살구가 나왔다. 일행들이 답사를 나간 동안 호텔에서 빌려주는 자전거를 타고 시골길을 둘러보기로 했다. 포플러 나무 사이로 바람을 가르며 시원하게 언덕길을 내려 왔다. 짧은 행복도 잠시, ‘아뿔싸, 저 언덕을 다시 올라가야 하는구나.’ 내려갈 때와 달리 땀을 비 오듯 쏟으며 자전거를 끌고 올라가는 데는 한참의 시간이 걸렸다. 무더위 때문에 일행들도 일찌감치 숙소로 돌아와 수영장에서 한가로운 오후를 보냈다. 사서 고생한 반나절이었지만 자전거, 녹음, 수영장, 살구 그리고 한여름 햇볕의 기억은 선명하게 남아 있다. 영화 ‘콜 미 바이 유어 네임’을 보다 문득 그해 여름이 생각났다. 1983년 이탈리아 북부 어디쯤이라는 자막과 함께 아름다운 시골의 별장 풍광이 펼쳐진다. 17세의 엘리오(티모시 샬라메 분)가 여름을 보내는 곳이다. 교수인 엘리오의 아버지는 해마다 젊은 연구원을 초청해 방학을 함께 보낸다. 그해 여름, 고고학을 전공하는 올리버(아미 해머 분)가 별장에 도착한다. 자동차에서 내리는 모습을 2층에서 엘리오가 내려다보는 것으로 시작해 기차에 탄 올리버가 플랫폼에 서 있는 엘리오를 차마 내려다보지 못하는 마지막 순간까지, 영화는 두 사람이 사랑에 빠지고 헤어지는 감정을 촘촘히 따라간다. 그 흔한 삼각관계도 없이, 주변의 반대도 없이 그들의 시선과 감각에 집중한다. ...(중략)... * 환경과조경 363호(2018년 7월호) 수록본 일부 서영애는 조경을 전공했고, 일하고 공부하고 가르치고 있다. 동네 친구 C의 소설이 영화화되기로 결정되어 작가가 직접 시나리오 작업을 하는 중이다. 텍스트를 시각화하는 작업은 생각보다 어렵고 또 다른 상상력을 요구하는 일인 것 같다. 어떤 영화로 만들어질지 기대된다. 옆에서 무책임하게 참견하는 재미가 쏠쏠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