노래 잘하는 사람이 이렇게 많은 줄 몰랐다. 넘쳐나는 오디션 프로그램을 보면서 더 이상의 실력자는 없겠구나 싶었는데 어디서 그렇게 또 나타나곤 하는지. 열풍이 불던 초반에 비해 일일이 챙겨보지는 못하지만, 화제가 되는 동영상만으로도 충분히 감동이 전해진다. 단 몇 분 만에 사람의 마음을 움직이고 눈물까지 흘리게 만드는 힘은 대체 무엇일까.
최근 개봉해 가을에 어울리는 감성을 전하고 있는 ‘비긴 어게인Begin Again’에서 주인공은 음악을 통해 ‘진정성’을 표현한다고 말한다. ‘진정眞情’의 사전적 의미는 ‘거짓 없이 참’이며, 유네스코에서 정의하는 ‘진정성Authenticity’은 ‘본질 및 기원을 증명할 수 있는 정품, 또는 본래 가진 원형’이다. ‘Authenticity’는 옥스퍼드영어사전에서 ‘진짜임’이라고 설명된다. ‘비긴 어게인’을 보고 나니 감독의 전작인 ‘원스Once’가 떠올랐다.
‘원스’의 두 주인공(글렌 핸사드, 마케타 잉글로바)은 ‘비긴 어게인’의 주인공(키이라 나이틀리, 마크 러팔로)처럼 유명 배우도 아니며, 배경 역시 근사한 뉴욕이 아닌 아일랜드의 더블린이다. 영화는 쇼핑몰로 보이는 거리에서 남자가 기타 케이스를 앞에 두고 노래하는 장면으로 시작한다. 대부분의 사람은 무심하게 그의 옆을 지나고, 마약에 취한 부랑아가 근처를 서성이다 동전 몇 푼이 전부인 기타 가방을 들고 도망친다. 노래 부르던 그는 필사적으로 부랑아를 쫓아가 근처 공원에서 기어이 붙잡는다. 숨이 턱까지 차오른 남자는 다시 원래의 자리로 돌아와 절규하듯 노래를 부른다. 일정 거리를 두고 손에 든 카메라로 촬영한 듯 조금씩 흔들리는 이 장면은 마치 관객이 남자 앞에 서서 실제로 노래를 듣고 있는 것 같다. 그의 노래가 끝나자 한 여자가 박수와 함께 10센트를 기타 케이스에 넣는다. 시큰둥해 하는 남자에게 여자는 음악에 관해 묻는다. 남자와 여자는 그렇게 처음 만난다. ‘가짜’ 이야기지만 ‘진짜’로 느껴지는 인상적인 첫 시퀀스다.
피아노를 살 형편이 되지 않는 여자가 피아노를 연습하는 악기점에서 그들은 처음으로 함께 노래를 부른다. 여전히 카메라는 다큐멘터리 같은 느낌으로 흔들리고, 그들의 옆에는 여자가 수리해달라고 끌고 온 진공청소기가 놓여있다. 악기점 주인은 신문을 읽다 옅은 미소를 지을 뿐 과장된 호들갑 따윈 없다. 개인적으로 가장 좋아하는 장면은 여자가 밤에 건전지를 사러 다녀오는 장면이다. 남자가 빌려준 시디플레이어로 곡을 들으며 노랫말을 만들던 여자는 어린 딸의 저금통에 들어있던 동전을 챙겨 들고, 잠옷 위에 가운을 걸치고 슬리퍼를 신은 채 가게로 향한다. 건전지를 끼워 넣고 노랫말을 붙이며 걸어오는 길을 카메라가 따라 걷는다. 인위적인 조명 없이 촬영한 듯 가게 불빛이나 가로등에 의지한 여자의 모습은 컴컴한 곳을 지날 때는 아예 보이지 않기도 한다. 몇 블록의 코너를 돌며 여자가 부르는 노래를 듣고서야 비로소 관객은 여자의 속마음을 알게 된다. 더블린의 어느 허름한 주택가를 함께 걸으며 ‘거짓이 아닌 참’ 사연을 듣게 되는 감동적인 장면이다.
서영애는 ‘영화 속 경관’을 주제로 석사 논문을 썼고, 한겨레 영화평론 전문 과정을 수료했다. 조경을 전공으로 삼아 일하고 공부하고 가르치고 있지만, 극장에 있을 때 가장 행복하다. 영화는 경관과 사람이 구체적으로 어떻게 관계 맺는지 보여주며, 그것이 주는 감동과 함께 인문학적 상상력을 풍부하게 만들어주는 중요한 텍스트라 믿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