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왜 우리는 옥상에 낭만을 품는가.’ 오랜만에 조한결 기자에게 “그러니까 젊은 감성으로, 음… 요즘 핫한 옥상들을 직접 체험해… 맛깔스러운 글로 독자에게 한발 다가서는 어쩌고저쩌고”라며 기획 의도를 설명했더니 돌아온 원고의 가제다. 이미 “서울 자전거 출근기”란 생생한 체험기로 많은 독자의 관심을 모았던 그녀다(『환경과조경』 2015년 4월호 특집 ‘자전거 타고 싶은 도시’). 조 기자가 느릿느릿 그렇지만 그 특유의 감성으로 탐사해 갈무리한 글을 보니 이런저런 기억이 몰려온다.
원서동에서 일하던 시절, 나와 또래 동료들은 시시때때로 옥상에 올라 다투고 울고 화해하고 갖가지 뒷담화에 심취하기도 했다. 그 시절 옥상은 대나무숲이자 해방구였다. 그 옥상에 뚫려 있는 구멍이 아래층으로 연결되어 있다는 사실을 알기 전까진. 비밀을 보장하지 못하는 옥상은 더 이상 해방구가 될 수 없었고, 그 뒤로 우리는 옥상에 모이지 않았다.
“등골이 서늘했답니다.” 내 이야기를 듣던 대학 교수 P는 “나도 가끔 화장실에서 내 이야기를 듣게 되는 일이 있어요. 그런데 그렇게 기분 나쁘진 않아요. 그냥 속으로 웃었어요. 아마 그 시절 그분들도 그랬을 거예요.”
동료들과 의기투합하지는 않았지만 난 그 뒤에도 자주 옥상에 올랐다. 조한결 기자가 썼듯이 “지친 마음을 가진 사람들이 중력을 거슬러 오를 만큼 옥상에는 심오한 매력이 있나 보다”. 그 옥상은 무엇보다 도시의 서로 다른 시간이 파노라마처럼 펼쳐지는 게 매력이었다. 눈앞에는 우리나라 현대사를 이끈 굴지의 대기업 사옥에서 분주히 움직이는 사람들이 보였고, 그 옆의 공원에서는 할아버지들이 크리켓 비슷한 경기를 하곤 했다. 그리고 돌아서면 창덕궁의 기와지붕이 겹겹이 펼쳐졌다.
“우와, 궁궐이 보이는 옥상이라니! 왕보다 높네요.” P가 감탄했다.
옥상은 맨 콘크리트 바닥이었지만 건물을 뒤덮은 담쟁이가 올라왔다. 푸르게 흔들리던 잎이 갈색으로 변하는가 싶으면 어느새 낙엽이 떨어지고, 앙상한 덩굴줄기 위로 흰 눈이 쌓이며 한 해가 저문다. 그리고 다시 연두색 잎이 돋기 시작하면, 푸른 잎으로 뒤덮이는 계절을 기다렸다. 그런 기억이 그곳에서 보낸 몇 년을 아름답게 포장한다.
옥상 하면 떠오르는 풍경이 또 하나 있다. 10여 년 전, 이태원의 지역 연구를 하기 위해 좁은 골목길을 걸어 다녔다. 당시 누군가 해밀톤 호텔의 옥상 수영장이 음악과 술, 디제잉을 즐길 수 있는 클럽풀pool로 유명하다며 한번 올라가 보자고 제안했다. 우리는 별다른 제지를 받지 않고 답사하던 차림 그대로 옥상에 올랐다. 서울 한복판에 이런 자유분방한 외부 공간이 있다니. 머뭇머뭇 둘러보던 나는 구릿빛 피부에 레게 머리, 야자수가 그려진 수영복을 입은 남자들이 바라보던 풍경에 시선을 고정했다. 비키니를 입고 선탠을 하는 외국인들 너머로 이슬람 사원이 보였다. 아직도 그때 촬영한 사진을 보면, 텍사스촌, 게이힐, 이슬람거리, 아프리카 거리 등 다양한 문화가 공존하며, 본토의 그것과는 또 다른 묘한 분위기를 풍기는 이태원을 그만큼 잘 드러내는 장면이 있을까 싶다.
그리고 또 인상적인 장면은…. (마감의 초조함을 감추느라) 손가락으로 책상을 톡톡 두드리며 마지막 에피소드를 찾던 중, 옥탑에서 심리 상담실을 운영하는 L이 떠올랐다. 다짜고짜 L에게 메시지를 보냈다. “요즘 옥탑 생활은 어떠신가요? 여름에는 덥고 겨울에는 춥고 그런가요?” (불편하기만 하면 안 되는데…) “그런 면이 있지. 그래도 독립된 공간이라 좋아.” “혹시 옥상이라 상담에 유리한 점은 없나요?” “마당이 있으니 내담자들이 심리적인 안정감을 많이 느껴. 하늘과 닿아 있으니 텅 빈 것에서 시원함을 느끼지.” 오호라, (P의 표현을 빈다면) 뭔가 글감을 포착한 직감이 들었다. “계단을 올라 마당을 한번 살펴보고 실내로 들어가겠네요.” “당연히. 특히 남자들은 마당을 한 바퀴 돌고 들어오곤 해.” “옥상 마당을 대하는 데 남녀의 차이가 있나요?” “공간에 대해 남자들이 더 민감한 것도 같아. 구석구석을 살펴본 뒤, 꼭 먼 산을 바라봐.” “어떤 곳인지 파악하고 들어가나 봐요. 저 같으면 바로 목표 지점으로 갈 것 같아요.” “나도 바로 목적지로 가는 편이야. 집단 무의식이라고 부를 수 있는데, 태초에 남자들은 사냥을 해서 가족을 부양했기 때문에 내면 깊이 불안이 있어. 그래서 일단 주변을 살피는 게 아닌가 싶어.” 그렇다면 L에게 옥상은 어떤 장점이 있는지 궁금했다. “땅을 떠나 하늘과 맞닿은 나만의 공간이란 점이 좋지.” 땅을 떠나다니, 르 코르뷔지에는 옥상 정원의 의의를 잃어버린 지면의 회복이라고 하지 않았던가. “땅을 걷다 보면 앞만 보고 걷게 되고, 방해하는 게 많잖아. 그런데 옥상에 있으면 그런 게 없어. 대신 내가 찾아가는 느낌이야. 화분도 찬찬히 들여다보게 되고. 뭐 다 잡초지만.” 이번 특집에 백종현 소장이 쓴 “잡초 정원, 자연 정원”이 떠올랐다. “이름도 붙여 줬어. ‘너!’, 필명은 ‘야!’. 하하, 그렇게 부르다보면 결론은 ‘나’로 돌아와.” “오, 옥상에서 하늘과 만나면서 잡초와 대화하고, 결국 나를 반추하시는군요.” “맞아, 옥상에서 하는 반추는 땅에서 하는 것과 달라. 비교 대상이 없어지거든. 오직 나만 보게 돼.” “우와, 사람의 마음을 살피는 심리 상담과 옥상은 참 어울리는 조합이네요. 이번 호 특집 ‘옥상다반사’에서는 선생님이 일상적 언어로 말씀하신 내용을 전문가들이 어떻게 풀어내는지 보실 수 있을 거예요. 기대해 주세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