폴더관리
폴더명
스크랩

[제도가 만든 도시] 도시의 자연
  • 유영수
  • 환경과조경 2024년 5월
[크기변환]yssmay01.png
그림 1. 저층 주거지의 작은 공원들 무려 1960년대 말에 계획된 이 격자형 저층 주거지에서 지도상 녹색으로 표시된 소공원 분포는 꽤나 긍정적이다. 약 1,000m2 정도의 소공원들이 서로 250m 내외의 거리를 두고 균등하게 흩어져 있어 어디에서도 어 린아이 걸음으로 5분이면 닿을 수 있다. 이 소공원들은 마당이 있는 단독주택이 최소 이격 거리만 겨우 확보한 다가구·다세대로 교체되어 서울에서 가장 인구 밀도가 높은 지역이 된 이 동네의 소중한 ‘숨구멍’이다. 그 러나 이제 조성된 지 50년도 넘은 이 공원들의 현실은 못내 아쉽다. 그 오랜 시간이 무색하게 공원의 식생은 빈한하고, 조악한 시설물은 그때그때 카탈로그에서 고른 듯 종잡을 수 없는 구성이다.

 

 

때마침 온갖 봄꽃이 해사하게 만발한 탓에 우리 도시의 자연에 대해 불만인 점이 뭔가 저절로 너그러워진다. 전봇대와 어지러이 이어진 전선 사이에서 볼품없이 몽둥가리 당한 가지일망정 하늘하늘한 분홍빛 꽃과 고슬고슬한 연한 초록의 새순이 달린 나무 한 그루에서도 도시를 찾아온 봄과 생명의 기운을 느낄 수 있다. 그만큼 도시 안에서 녹색의 존재는 기본 가치가 높은 자원이다.

 

요즘은 공세권이니 숲세권이니 하는 말이 통용되고, 경의선숲길이 지나는 연남동처럼 새로 공원이 조성되면서 그 주변이 소위 ‘뜨는’ 동네가 되는 현상이 기사에서 빈번하게 다뤄지기도 한다. 도시 안에서 녹색 공간이 발휘하는 현실적인 힘을 더 많은 사람이 이해하게 됐다는 뜻이다. 덕분에 설계공모를 통해 계획된 훌륭한 대형 공원도 여럿 갖게 되었고, 도시 내 공원을 만들기 위한 땅을 확보하기 위해 도로와 철도를 지하화 하는 엄청난 토목 사업도 사회적 동의를 얻는다(그림 2). 또한, 조성 후에도 촘촘한 운영과 관리를 해야 공원의 가치가 더욱 높아진다는 정책적 인식도 커지고 있다.

 

그럼에도 정작 우리의 일상 공간 아주 가까이에 있는 도시의 자연,(각주 1) 건물 한편의 조경 공간, 도로변의 가로수와 녹지, 동네의 오래된 작은 공원은 존재만으로 ‘기본은 하는’ 녹색의 가치를 다 발휘하고 있을까? 도시의 자연이라는 표현이 모호하고 넓지만, 이번 글에서는 산이나 하천, 대규모 공원이 아닌 일상 도시 공간의 작은 자연에 초점을 맞추려 한다.

 

[크기변환]yssmay02-1(참고용).png

[크기변환]yssmay02-2(참고용).png
그림 2. 엄청난 공공 재원의 투입, 대규모 토목 사업이라는 실체, 부동산 투기의 우려와 특정 지역에 대한 특혜라는 여러 비판적인 시각에도 불구하고, 과거 도시 안에 존재하되 인지되지 않고 접근할 수 없었던 기간 시설과 교통 공간으로부터 공원을 조성하기 위한 새로운 ‘땅’을 적극적으로 발굴하고 있다. “강변북로·경부간선도로 지하화, 상부는 공원·여가공간으로”, 「내 손안에 서울」 2022년 10월 27일; 오경묵, “도로 복합개발 규제 타파에…경부고속道 지하화 속도내나”, 「뉴스1」 2017년 2월 20일.

 

 

일녹다역, 도시의 자연

도시의 환경오염과 기후변화가 가져오는 위협이 점점 가시화되면서 도시 안 자연이 지닌 가치가 더 다양한 측면에서 증명되고 있다. 도시의 건조물과 대비해 ‘자연’이라 셈할 조건은 외기에 노출되어 날씨의 영향을 받는 식생과 토양일 것이다. 녹색의 식생은 벌레와 새의 서식처가 되어 도시 생태계를 구성하고, 그 시각적 가치가 심리적, 문화적 가치라는 2차 가치를 생산한다. 또한 대기와 땅속 물과 공기의 흐름에 닿아 있어 우수와 미세 먼지를 흡수해 홍수, 지하수 고갈, 공기 오염 문제를 완화한다. 광합성을 통해 이산화탄소를 직접 흡수할 뿐만 아니라 도시 열섬 현상 완화 등 미기후를 조절해 냉방 에너지 수요를 낮추는 간접적 작용도 기후변화 저감에 일조한다.

 

여러 자연의 가치는 사실 작동하는 방식이 각각 다르다. 도시 생태계를 위해서라면 식생의 양이 절대적으로 많고 서로 이어져 있으며 실질적 생육 환경이 갖춰지는 것이 중요할 것이다. 경관적 가치를 위해서는 도시 공공 공간에서의 인지와 접근성, 조화로움을 위해 위치와 형태, 식재와 시설의 설계가 중요할 테다. 물 순환의 매개와 조절을 위해서는 같은 면적이라도 균등한 분포가 효과적이며 식재보다는 투수 조건이 더 중요하다.

 

그런데 도시 안에서 자연을 확보하기 위한 제도들은 자연의 여러 가치를 효과적으로 달성되도록 유도하고 있을까? 생태적, 경관적, 환경적 기능이 모두 잘 작동하도록 정교하지도, 그중 어느 하나라도 확실하게 달성하도록 효과적이지도 않다. 그런 제도의 한계를 잘 보여주는 도시의 자연은 ‘대지의 조경’이다. 건축물을 지을 때 의무적으로 만드는 조경 공간의 목적이 무엇인지, 도시의 자연이 지닌 여러 차원의 가치 측면에서 매우 모호하다. 그러다 보니 개발 압력에 이런 저런 완화 조항이 쉽사리 허용되고, 결국은 그 잠재력을 충분히 발휘하지 못하고 있다.

 

환경과조경 433(2024년 5월호수록본 일부

 

각주 1. 법적 용어로는 200m2 이상의 대지에 의무적으로 조성하는 ‘대지의 조경’, 소공원, 어린이공원, 근린공원 등 ‘생활권공원’, 완충 녹지, 경관 녹지, 연결 녹지 등 ‘시설녹지’에 해당한다.

 

유영수는 서울대학교 건축학과와 동 대학원을 졸업하고 이로재와 기오헌에서 건축 실무를 경험했다. 런던 정치경제대학교에서 도시디자인과 사회과학 석사과정을 마치고 돌아와 건축사사무소를 운영하며 서울대학교 환경대학원에서 박사과정을 병행했다. 현재는 인천대학교 도시건축학부에서 법, 제도, 현대 도시설계 이론, 스튜디오를 가르치고 있다. 건축과 도시를 아우르는 스케일에서 개별적인 공간 현상과 법제 사이의 관계를 연구하고, 계획과 디자인의 역할을 확장하기 위한 이론적 접근을 시도하고 있다.

월간 환경과조경, 무단전재 및 재배포를 금지합니다.

댓글(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