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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경의 경계를 넘어, 조경 속으로] 앤디 카오
카오 페로 스튜디오 공동설립자
  • 최이규
  • 환경과조경 2014년 5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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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경가로 출발해 조경이라는 틀을 던져버린 앤디 카오(실제 발음은 ‘고우’라고 한다)의 작품을 읽다 보면 전위적이라는 수식어조차 보수적으로 들린다. 그에게 ‘조경’과 ‘조경가’란 애초부터 통상적 이미지에서 훨씬 벗어나 있다. 공간 디자인과 설치 예술의 경계를 자유롭게 날아다니는 그는, 3천5백 명이 참석하는 아랍 왕족의 호화로운 결혼식장Royal Wedding, Dubai을 디자인하는가 하면, 오스트리아 스와로브스키 크리스털 월드Swarovski Kristallwelten의 확장을 기획하고, 디자인 브랜드 겐조Kenzo의 파리 본사 중정에 클라우드 샹들리에를 설치하기도 한다. 언뜻 보면 부유층과 상류 문화에 가까이 닿아있는 디자이너라고 이해할 수도 있지만, 사실 그의 작업은 소박한 자신의 집 뒤뜰에서 시작되었다.

그와의 대화를 통해 느낀 것은, 그는 무차별적 대중과 사회에 작가의 메시지를 던지기보다, 작품과 그 앞에선 관람자 개인 간의 매우 사적이고 친밀한 관계를 소중히 여긴다는 점이었다. 큰 규모의 공적 공간이든 작은 정원의 한편이든 간에 말이다. 그래서 그런지 앤디카오의 작품을 관통하는 분위기와 정서는 매우 일관되다. 내면적이고 섬세하며, 마스터플랜을 거부하며 예기치 못한 사고incidental placemaking로서의 작업이자 감정이 주를 이루는 과정이다. 비록 그것이 오래도록 남지 못하더라도, 그에게 소중한 것은 바로 이 순간, 현재의 감정이다. 의심할 바 없이 그는 매우 부드럽고 애틋한 성격을 가진 작가다.


“나는 가장 최근 작업을 가장 사랑한다. 작업 과정을 통해서 작품과 하나가 되는 만큼, 우리는 작품과 이별해야 한다는 것을 배웠다. 하나의 일이 끝나면 작품은 더 이상 우리에게 속하지 않는다. 우리에겐 여행의 추억이 남을 뿐이다All we have is the journey.”


칼 폴리 포모나 대학교Cal Poly Pomona 조경학과를 졸업했으나, 두 해 동안 일자리를 구하지 못해 고생했던 카오는 책상에 앉아 이력서와 포트폴리오를 만들거나 수십 통의 입사 원서를 쓰는 대신, 팔을 걷어붙이고 뒷마당 빈 공간에 첫 작품을 만들기 시작했다. 그는 회상한다. “나는 기존의 조경 설계 공식에 의문을 던지기 시작했다. 왜 꼭 형태가 있어야 하지? 왜 주위에 널려있는 일상적인 소재들을 쓰면 안 되는 거지” 이민자인 카오에게 있어 베트남은 언제나 추억의 대상이었으며, 이국 땅 낯선 문화의 삶이 힘들어질 때마다 고향에 대한 동경이 더욱 짙어졌음은 쉽게 짐작할 수 있다. 그는 어린 시절을 보낸 바닷가 거대한 염전의 소금밭과 물결치는 언덕, 장대같은 비를 뿌리던 검은 구름을 잊지 못했다. 경제적으로 여유롭지 못했던 그는, 주위에서 저렴하게 구할 수 있었던 재활용 유리 조각recycled glass pebbles을 쏟아 부으며 마음속 고향이 눈앞에 재현되길 바랐다. 유리 조각은 염전 풍경을 작은 모형으로 묘사하기에 더없이 좋은 재료였다고 한다.

멋모르고 시작한 프로젝트에 카오는 미친 듯이 빠져들기 시작했고, 몇 주면 끝날 줄 알았던 유리 조각 정원glass garden에 3년을 보냈다. 뚜렷한 청사진이나 계획에 근거한 작업이 아니었기에 즉흥적이고 미완성의 아마추어적인 인상을 풍기지만, 이 정원은 카오의 미래를 바꾸어놓았다. ‘이것도 조경인가’ 아니면 ‘단순히 한 젊은이의 장난스럽고 치기 어린 자기표현인가’라고 쉽게 의문을 던질 수 있고, ‘표현 방식이 어쩔 수 없는 1990년대의 시대적 유행을 반영했다’고 읽을 수도 있다. 그러나 남들의 해석이 어떠하든 카오는 자신의 내면이 외치는 소리에 솔직히 반응했고, 자기만의 만족과 충족감을 위해 DIYDo It Yourself 가든을 밀어붙였다.

카오는 “무스토리no story, 무형태no form, 무논리no need to make sense”를 말한다. 이해의 공백을 채우는 것은 그의 탁월한 감각과 완벽함에 대한 집념 그리고 어려운 순간을 즐길 수 있는 끈기다. 그에게 디자인과 작업이란 ‘그냥 노는 것’처럼 보인다. 그런데 한 청년의 방황기를 대변하는 글라스 가든은 갑자기 유명해졌다. 쉽사리 이해할 수 없는 복잡하고 기묘한 감정을 자극하며, 아방가르드 가든의 대표적 검색어가 된 것이다.


그는 말한다. “나의 작업은 아티스틱한 것이지 과학적인 것이 아니다. 애초 그렸던 디자인에 크게 집착하지 않아야 한다. 작업 과정에서 실수란 없으며, 단지 새로운 발견일 뿐이다There are no mistakes to be made, only new discoveries.” 그는 또 “얼마나 많은 시간과 수고를 들여야 하는지 미리 알았다면 어떤 것도 해낼 수 없었을 것이며, 때로는 알지 못하는 것이 더 좋다”고 말한다. 또한 작금의 많은 디자이너들이 자신의 디자인을 설명하는데 얼마나 많은 시간을 들이고 있는지에 대해 탄식한다. 그러기에 그는 리서치를 최소화하고, 시행착오 과정을 통해 배우려 한다. 그리고 작품을 감상하는 사람들이, 배우는 과정을 통해서가 아니라 즉각적인 느낌으로 반응하길 원한다. 그는 배우는 것보다 쓸데 없는 배움을 잊어버리는 과정이 더 값지다고 말한다.

그의 작품은 매우 노동 집약적이다. 동시에 장인의 치밀함이 배어 있으며, 기계에 대한 의존이 최소화된 로우 테크low-tech다. 또한 일상적 소재에 대한 새로운 발견이다. 그는 유행하는 소재를 쓰거나 다른 작가를 참조하는 것을 거부한다. 인터넷을 통해 지구 저 편의 새로운 발견이 실시간으로 복제되어 다른 쪽에서 재생산되고 유행하는 시대에 살고 있지만, 그가 소재를 쓰는 방식의 독특함조차 복제될 수는 없다. “소재 자체는 완벽할 수 없다. 모든 것은 나름의 결점과 불완전한 성질을 지닌다. 그러나 하나의 결점은 곧 미인점beauty mark이라 할 수 있다.”


그의 작품은 글자 그대로 ‘픽처-퍼펙트picture-perfect(흠 잡을 데 없이 완벽한)’한 풍경이다. 곧잘 대중의 접근이 제한된 곳을 대상지로 하기 때문에 삶의 현실과 유리되어 보이기도 한다. 그의 공간은 마치 한 편의 꿈처럼 곧 부서질 듯이 연약해 보인다. 그래서 더욱 명품 이미지와 닮아있고, 때로 가슴 찡한 감동을 준다. 그래서인지 그에 대한 평가는 사뭇 극단적이다. 한쪽에서는 틀을 깨는 아티스트로 그려지지만 다른 쪽에선 무의미한 장식적 소모일 뿐이라 한다. 그러나 그는 예술 역사에 한 획을 긋는 데 관심 없다. 스스로 말하듯 그의 작업은 자기만의 ‘꿈’에 대해 대화하는 과정이기 때문이다.



이 꼭지를 연재하고 있는 인터뷰어 최이규는 1976년 부산 생으로, 그룹한 뉴욕 오피스를 이끌며 10여 차례의 해외 공모전에서 우승했고, 주요 작업을 뉴욕시립미술관 및 소호, 센트럴파크, 두바이, 올랜도, 런던, 위니펙 등지의 갤러리에 전시해 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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