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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재료와 디테일] 실천이다
  • 환경과조경 2016년 1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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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약 회사의 이미지를 상징적으로 재현했다. 그 특징을 직접적으로 묘사했지만 장소와 어울려 절대 우습지 않다. 직접적이라도 이렇게 위트 있게 쓸 수 있다면 좋겠다.

 

 

상징

방배역을 조금 지나 서쪽으로 걸으면 작은 건물들이 나온다. 그중에서도 별 특징이 없는 건물이 하나 있다. 기억에 오래 남지 않는 우리 주변에서 흔히 볼 수 있는 몹시 평범한 건물이다. 어느 날 무심코 그 곁을 지나다 생경한 경험을 했다. 튜브형 알약처럼 생긴 볼라드형 조명 때문이었다. 왜 저렇게 만들었을까 한참 고민하다가 결국 건물 안을 들여다봤다. 제약 회사 건물이다. ‘!’ 하는 작은 탄식과 함께 망치로 뒤통수를 맞은 듯 잠시 멍하게 서 있었다. 사람에 따라 차이가 있겠지만 나는 공간의 정수가 잘 표현된 곳을 보면 가끔 질투와 무력감에 작은 충격을 받곤 한다. 알약처럼 생긴 작은 조명은 직접적인 메시지를 전달함은 물론이고 기능적인 부분도 간결하게 처리하고 있다. 합목적적이라는 단어가 잘 어울리는 장치라고 생각했다. 합목적적, 늘 염두에 두고 있지만 실천하기란 얼마나 힘든 단어인가. 실천하기 전에 먼저 고안되어야 하는데 그 디자인 과정이 얼마나 고되고 힘든 일인가 말이다.

 

최근 아파트 설계 의뢰를 받았다. 아주 재수 좋게도(?). 모두의 반대를 무릅쓰고 일하기로 마음먹었다. 그 첫 번째 일은 답사를 가는 것이었다. 우리는 이 정도 질의 공간을 원하니 비슷한 곳에 가서 보고 그처럼 해달라는 것이다. 강남 요충지의 어마어마한 땅값을 자랑하는 몇 곳을 다녀왔다. 대단히 놀라고 또 놀랐다. 아파트라곤 동네 뒤편에 있는 단지 몇 곳밖에 가보지 않은 내게 그곳은 가히 천국의 모습 같았다. 큰 나무들로 이루어져 숲처럼 보이는 녹지, 고급스러운 시설물, 놀랍도록 정리되어 배치된 공간 등 하나같이 멋진 모습에 두 눈이 너무 바삐 움직여 머리가 아플 정도였다. 그런데 하나 마음에 걸리는 것이 있었다. 석가산처럼 생긴 폭포였다. 현무암을 얼기설기 쌓아 언덕을 만든 다음 사이사이에 작은 나무와 초화를 심어 놓았다. 꼭대기에서는 물이 떨어져 개울을 따라 흐르고 있었다. 마치 고미술관에서 본 산수화를 연출한 것 같았다. 불편했다. 이렇게 멋진 시설물이 왜 굳이 이곳에 놓여야 할까 하는 생각을 했던 것 같다. 재현의 방식이나 구조에 대해서는 잘 모르니 언급할 수 없지만, 위치에 대해서는 의문이 들었다. 이곳만의 문제가 아니라 모든 답사지에서 이런 시설물을 발견할 수 있었다. 마치 퍼걸러나 벤치 같은 시설물의 한 종류인 것처럼 답사지의 중심부에 놓여 있었다. 유행처럼 번진 것일 거다. 특화라는 방식이 만들어낸 공식 중 하나에 속하는 듯했고, 과하게 느껴졌다. 단출한 상징으로 해결할 순 없었을까. 진정 산수를 옮겨오고 싶었다면 말이다. 나는 장소에는 그에 가장 적합한 상징이 존재한다고 믿는다 ...(중략)...

 

환경과조경 344(2016년 12월호수록본 일부

 

이대영은 여기저기 살피고 유심히 바라보기 좋아하는 사람으로 살아가려 노력하고 있다. 만드는 것에 관심이 많으며, 작고 검소하며 평범한 조경설계를 추구하고 있다. 영남대학교에서 공부했고 우대기술단과 씨토포스(CTOPOS)에서 조경의 기초를 배웠다. 조경설계사무소 스튜디오 엘(STUDIO L)을 시작하고 작은 작업들을 하고 있다. www.studio89.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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