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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에디토리얼] 1월 어느 날의 편집실 풍경
  • 환경과조경 2017년 2월

4호선 이수역과 7호선 내방역 사이의 언덕 꼭대기에 있는 『환경과조경』 편집실. 문을 열고 들어서면 맞은편 벽에 최근 삼사년 치 잡지와 근간 단행본들을 정면 표지 방향으로 진열해 놓은 책장이 있다. 잡지사 편집 공간다운 첫인상을 주는 이 장면을 클로즈업한 사진이 한동안 페이스북 커버에 쓰이기도 했는데, 반응이 제법 괜찮았다. 이 벽면 앞에는 꽤 넓은 중앙 공간이 있다. 편집실을 도시에 비유하자면 광장에 해당할 이곳에는 여덟 명 정도가, 끼어 앉으면 열두 명까지도 둘러앉을 수 있는 넓고 긴 회의 테이블이 있다. 테이블 왼쪽에는 에디터들이 쓰는 책상 일곱 개가, 오른쪽에는 디자이너들의 작업 공간과 마케팅팀의 책상 두 개가 있다.

이 테이블은 멀티 플레이어다. 수시로 벌어지는 브레인스토밍과 아이디어 회의, 주간과 월간 편집 회의가 이 자리에서 열린다. 디자이너가 초벌 디자인을 끝낸 1교 원고를 이 테이블 위에 놓으면 에디터가 가져가 수차례 교정을 본 후 다시 테이블에 올려 둔다. 에디터와 디자이너가 의견을 조율하는 곳도 이 테이블. 인쇄소나 출력소 직원이 방문해도 이 테이블에서 응대한다. 연재 필자나 단행본 저자와 대화하고 기획하는 곳도 이 테이블의 한 구석이다. 이 다목적 광장은 매달 열 개 넘는 표지 후보작을 펼쳐놓고 토론하고 투표하는 민주주의(!)의 현장이기도 하다.

다른 층에 사무실을 둔 발행인이 편집실에 들러 격려와 응원을 하는 공간도 이곳. 야근 때는 배달 음식을 차리는 식탁이 되고, 철야의 고단함을 달래주는 짧은 치맥 파티의 장이 되기도 한다. 다행히 사무실 구석구석에 숨겨진 방들이 많아 이 테이블이 침대 역할까지 해야 하는 건 아니다. 마감이 다가올수록 광장의 풍경은 복잡해진다. 교정지, 디자인 시안, 표지 대안, 먹다 남은 간식 부스러기, 종이컵, 페트병, 중국집 메뉴판이 뒤섞여 뒹군다. 테이블 위의 상태는 마감이 며칠 남았는지 한눈에 알아볼 수 있는 척도다.

 

오늘은 새 편집위원이 모여 첫 편집위원 회의를 여는 날. 마감이 코앞이라 광화문광장 못지않게 역동적이었던 밀도 높은 테이블이 불과 십분 만에 깔끔한 회의장으로 변신했다. 턱없이 해가 짧은 한겨울, 여섯시지만 창밖은 칠흑이다. 리뉴얼 2기 편집위원들이 속속 도착했다. 우리엔디자인펌의 강연주 소장, 수원대학교 도시부동산개발학과의 민성훈 교수, 디자인 스튜디오 로사이(loci)의 박승진 소장, HLD의 이호영 소장, 제대로lab.의 정귀원 대표, 계명대학교 도시학부의 최이규 교수, 이 여섯 분이 앞으로 2년간 『환경과조경』의 가장 가까운 친구가 되어 편집의 방향, 내용, 형식을 자문하고 모니터링해 줄 새 편집위원이다. 김세훈, 김영민, 김진오, 박성태, 박승진, 서영애, 1기 편집위원진과 같으면서도 다른, 『환경과조경』의 새로운 ‘절친’이 되어주실 것이다.

회의장으로 변신한 테이블에서는 2017년의 구성, 편집, 디자인에 대한 다양한 논의가 뜨겁게 오고갔다. 『환경과조경』 편집진이 두고두고 곱씹어야 할 내용들이다. 보다 선명한 지향점과 중심성이 필요하다는 견해가 다수. 이는 곧 2014년 리뉴얼 이후 3년간 점차 편집 방향이, 긍정적으로 말하자면 유연하게, 부정적으로 말하자면 절충적으로 바뀌어 왔음을 뜻한다. 특히 지난 1월호부터 대폭 늘어난 행사 뉴스 지면과 단체 사진에 대한 우려가 이어졌다. 텍스트 분량을 조금 줄이고 시각 이미지의 양과 크기를 늘리고 키운 점에 대해서는 호평이 많았지만, 한 권 전체의 내용을 직관적으로 파악할 수 있도록 구성과 디자인을 더 보완해야 한다는 의견도 적지 않았다. 도시설계, 도시재생, 도시 문화 등 도시 관련 담론과 기사의 비중을 더 늘려 ‘조경과 도시설계’를 포괄하고자 했던 3년 전 리뉴얼의 방향성을 한층 가시화해야 한다는 토론이 이어졌다. 오늘 테이블의 주 메뉴 중 하나는 연간 특집 주제. 지난 1월호의 ‘용산공원, 함께 이야기하자’, 이번 2월호의 ‘차기 정부 조경 정책 어젠다’, 오는 3월호 특집으로 준비하고 있는 ‘광장의 재발견.’ 나머지 아홉 달의 주제에 관해 편집위원과 편집진은 다채로운 아이디어를 쏟아냈다. 아시아의 주거 단지, 올봄에 완공될 서울역고가와 마포석유비축기지, 정원박람회 진단, 설계공모 그 이후, 빅데이터와 도시, 구상과 계획 후 10년의 시간이 빚어낸 세종시의 도시 구조와 쟁점, 라이노(rhino)·루미온(lumion)·사물인터넷(IoT) 등의 디자인 테크놀로지가 가져올 조경 설계의 변화 등이 테이블에 올랐다. 리뉴얼 호(2014년 1월호)의 에디토리얼 한 구석에 ‘학생에겐 지적 자극을, 실무 조경가에겐 질투심을, 우연한 독자에겐 꿈을!’이라는 편집 방향을 밝힌 적이 있다. 그러한 편집의 필요충분조건은 ‘함께 만드는 잡지’라는 게 오늘 편집 테이블의 결론. 더 많은 독자 여러분의 피드백과 참여, 조언과 제안을 부탁드린다.

 

가지런히 놓여있던 회의 자료, 과월호, 문구류, 다과, 커피 잔이 흐트러지고 뒤섞여 마감 전날 밤의 편집실 풍경과 다를 바 없게 되었다. 편집실 밖에도 테이블은 많다. 이곳만 광장인 건 아니다. 칼바람 부는 1월의 어느 날, 편집회의는 방배동의 여러 테이블을 옮겨 다니며 계속됐다. 테이블 위에는 맥주병이 수북이 쌓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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