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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편집자의 서재] 실내인간
  • 환경과조경 2017년 8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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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석원 | 달 | 2013

 

“자유로움도 연습을 해야 나오는 거거든요. 무대 위에서 자연스럽게 행동한다는 게 결코 쉬운 일이 아니에요. 자신도 모르게 남을 의식하고, 남에게 보여졌으면 하는 모습으로 자신을 꾸미기 마련이거든요.” 아직 불 같은 더위가 찾아오지 않은 여름, 인터뷰를 위해 만난 안무가 K가 들려준 이야기다. 각종 질문에 대한 답을 한참 쏟아낸 그가 마른 목을 축이는 동안, 나는 그의 말을 곱씹었다. 나는 과연 어떤 순간에 가장 나다운 모습으로 존재할까.

SNS가 발달하며 자신을 표현하는 방법이 다양해졌다. 어쩌면 표현이라는 단어보다 보여준다는 말이 더 적합할지도 모른다. 자신이 방문한 핫한 카페나 음식점, 때로는 나만 아는 공간의 사진을 올려 일상생활을 노출하고, 취향과 관심사는 티켓이나 테이블에 놓인 책 사진 등으로 대체된다. 구구절절 의견을 늘어놓는 대신 노래 가사나 소설의 문구 하나를 적어 놓기도 한다. 그리고 이 과정에서 우리는 자연스럽게 자신을 왜곡하는 법을 익힌다. 그럴듯해 보이는 사진을 찍기 위해 촬영 버튼을 수차례 두드리고, 불필요하다 느껴지는 요소는 자르기 도구로 깔끔하게 도려낸다. 이런저런 의도로 정제된 후에야 사진은 우리를 꾸며주는 일종의 포장지가 되어 SNS에 업로드된다. 그리고 여기 사랑하는 여자를 얻기 위해 온 인생을 자신을 포장하는 데 사용한 남자가 있다. 수년간 제 이름 대신 베스트셀러 작가 방세옥으로 살아온 『실내인간』의 김용휘.

 

『실내인간』의 작가 이석원을 처음 만나게 해준 건 친구의 MP3 플레이어 속 노래 ‘나를 잊었나요’(언니네 이발관, 2002)였다. 그 당시 이석원은 내게 밴드 ‘언니네 이발관’의 보컬이자 기타리스트로, 화려한 기교 대신 공들여 만든 소박한 기타 선율에 서정적인 노랫말을 얹는 사람이었다. 그런 그가 돌연 산문집 『보통의 존재』(2009)를 발표했을 때 기대 반 걱정 반으로 서점에 들러야 했다. 만약 그가 산문집의 탈을 뒤집어쓰고 ‘꿈을 포기하지 마라’, ‘젊으면 무엇이든 할 수 있다’를 외치는 자기계발서를 썼다면, 더 이상 그의 노래를 사랑하지 못할 것 같았기 때문이다. 걱정과 달리 『보통의 존재』는 자신의 내면과 일상을 솔직하게 적어 내려간, 이석원 또한 우리와 다를 것 없는 아주 보통의 사람임을 보여주는 글이었다. “누구나 자신에 대한 기대라는 것이 있고 그것이 실제로 오르기 힘겨운 산이라는 것을 깨닫기까지는 어느 정도의 세월이 필요하다 … 그때가 되면 마지막으로 몸부림도 쳐보고 온몸으로 거부도 해보지만 결국 받아들이지 않으면 안 되는 것은 나 자신에 대한 거부할 수 없는 확인이다. 자신을 안다는 것. 그 잔인한 일 말이다.”(각주1) 군더더기 없는 문체와 담담한 어조로 조금 부끄러울 수 있는 이야기도 아무렇지 않게 풀어 놓는다. 누구나 해봤을 그 고백은 ‘언니네 이발관’의 노랫말과 닮았을 뿐 아니라 이석원 그 자체다.

 

글 구석구석 녹아있는 이석원의 모습은 4년 뒤 내놓은 장편 소설 『실내인간』에서도 발견된다. 주인공 용우뿐만 아니라 그의 친구 제롬, 수상한 점이 한두 개가 아닌 용휘와 그 곁을 지키는 소영 모두에게서. 그중 용휘는 이석원이 말하는 솔직함과는 가장 거리가 먼 인물로, 사랑하는 여자를 돌아오게 만들기 위해 자신이 쌓아올린 책 탑 안에 갇힌 ‘실내인간’이다. 책을 내는 족족 히트를 치는 소설가 방세옥이 되었지만, 글을 쓰는 즐거움도 느끼지 못하며 매일 서점을 찾아가 판매 순위를 확인하며 불안에 떤다. “용휘는 집에만 머무르는 은둔형 외톨이가 아니며, 저녁마다 서울 전역의 서점을 순찰하는 넓은 행동반경을 갖고 있는 사람”이지만, “자신이 정해놓은 틀 밖으로는 한발자국도 나가지 않는 인물이기에 결국엔 그는 갇혀 있는 사람”(각주2)일 수밖에 없다. 이석원은 이를 통해 무언가에 갇히고 옥죄어 사는 용휘의 모습이 우리의 또 다른 모습일 수 있다고 이야기한다. 평범하면 사랑하는 여자에게 인정받을 수 없을 것이라는 강박감에 괴로워하며 살았지만, 결국 여자가 팔리지 않는 책을 쓰는 무명작가와 결혼했다는 사실을 접하는 용휘의 모습이 『보통의 존재』에서 ‘보통’을 외치던 이석원과 겹쳐진다.

 

사실 『실내인간』은 『보통의 존재』를 좋아한 이에게는 다소 실망스러운 글일 수 있다. 이야기가 속도감 있게 진행되고 필치는 여전히 섬세하지만, 구성이 조금 헐겁고 소설의 핵심인 용휘의 비밀은 엄청난 반전이라기엔 아쉬운 감이 있다. 그래도 『실내인간』을 읽는 내내 즐거웠던 이유는 곳곳에서 발견되는 이석원의 흔적 때문이었다. “정말 사랑했던 사람과는 영원히 못 헤어져. 누굴 만나든 그저 무덤 위에 또 무덤을 쌓는 것뿐이지”(각주3)라고 말하는 소영에게선 이별을 받아들이지 못해 괴로워하던 이석원이, 피고는 “사회적으로 인정받는 존재가 되는 것만이 가치 있는 삶인 양 스스로를 몰아붙여 거기에 도달하지 못하는 자신을 늘 부끄러워했으며 평범하게 살아가는 대부분의 타인의 삶 또한 무가치한 것으로 여겨 경멸하였다 … 따라서 본 법정은 피고에게 유죄를 선고하고 여러 정상을 참작하여 다음과 같이 판결한다. 피고 김용휘, 사형”(각주3)이라는 판결문에서는 음악인으로서 고뇌하는 이석원이 있다. 책을 읽는 과정은 마치 이석원의 흔적을 찾아 텍스트 속을 거니는 여행과도 같았다. 지난 7월 이석원은 9년만에 ‘언니네 이발관’의 마지막 앨범 ‘홀로 있는 사람들’(2017)을 발표했다. 그는 이번에도 평온하게 자신의 마지막을 노래한다. 작곡가로서 한계에 부딪쳤음을 풀어낸 ‘홀로 있는 사람들’의 가사로 ‘편집자의 서재’의 문을 닫는다. 

‘ 노래 / 언젠간 끝내야 하지만 / 아직 나는 여기 서 있네 / 그래 / 언젠간 끝나고 말겠지 / 그래도 난 아직 여기에 ’


1. 이석원, 『보통의 존재』, 달, 2009, p.148.

2. “『실내인간』 이석원, ‘장편소설은 100분짜리 노래 한 곡을 만드는 일’”, 교보문고 인터뷰 http://news.kyobobook.co.kr/people/writerView.ink?sntn_id=7601

3. 이석원, 『실내인간』, 달, 2013, p.257.

4. 위의 책, p.27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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