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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칼럼] 도심 속의 강, 넘치면 물러나고 모자라면 다가가고
  • 환경과조경 2017년 8월

넘치는 강을 막기 위해 둑을 만들고 모자란 식수원을 담기 위해 강을 가둔다. 가득 찬 물은 도시에 시원한 경관을 준다. 둑을 쌓으니 유람선은 물론 대형 선박이 사람과 물자를 실어 나른다. 막힘이 없는 최고의 도로다. 강둑을 쌓아 육지와 강을 분리한다. 건물이 들어서고 사람이 모인다. 구경하기 좋고 산뜻한 길이 생겨 공원이 만들어진다. 

그러나 제 속도를 잃은 강은 자기 정화력을 잃었다. 어마어마한 비용으로 끊임없는 정수 처리와 인공적 관리를 해야 한다. 유속은 빨라지고 거센 바람에 큰 나무가 버티지 못한다. 수천 년 동안 만들어진 생태 시스템은 통제될 것처럼 보이지만 그것도 잠시, 한계를 넘어서는 순간 도시를 쓸어버린다. 그것을 보상하기 위해 또다시 둑을 무너뜨리지만 잃어버린 시간은 복구가 더디다. 철새를 보호하기 위해 원주민을 쫓아낸 섬의 나무는 새똥에 의해 썩어간다. 자연은 철저한 계산주의자다. 우리가 쓰는 만큼 언제든 그만큼의 대가를 원한다. 이렇게 끊임없는 바벨탑의 역사 같다, 강과 도시는.

‘크고 넓으며 가득한 물이 흘러가는 강’이라는 의미의 한가람에서 유래한 한강은 강원도 태백에서 시작해 서해로 들어가는 총 길이 494km의 긴 강이다. 부산히 흐르던 강은 서울의 넓은 유역으로 들어서며 속도가 느려져 여러 개의 섬과 드넓은 백사장을 만들어냈다. 현재 우리가 알고 있는 여의도, 밤섬, 노들섬, 지금은 사라진 저자도, 잠실섬 등은 한강이 실어온 모래에 의해 생긴 섬들이다. 그러나 숨 가쁜 산업화와 도심의 확장으로 한강의 모습은 급변했다. 도심을 가로지르는 큰 강이지만 도로에 둘러싸여 접근마저 쉽지 않고 찾아오던 철새마저 오지 않는 곳이 되었다. 짧은 근대화 속에 도시가 커갈수록 한강은 멀어지고 있었다.

지난 4월 ‘한강예술공원’의 시범 사업이 여의도에서 있었다. 여의도를 거점으로 한강 전체에 예술적 가치를 부여하기 위한 첫 번째 단계로, 우연한 기회를 통해 기획팀 책임 큐레이터로 참여하게 되었다. “제발 아무것도 하지마라.” 처음 큐레이팅을 맡은 후 많은 이들의 부탁이었다. 멋진 플로팅 건물이 세워지고 한강을 조망하기 위한 카페가 들어서고 값비싼 요트 정박장에 자전거 도로가 생기고 다양한 모습의 한강시민공원이 생겨도, 아직도 많은 사람들은 한강을 아파한다. 그러나 그렇게 지켜만 보기에는 한강이 너무 아깝다. 한강의 위성 사진을 한 벽에 가득 넣고 보니 참 넓다. 그리고 우리가 이용하고 있는 공간이 얼마나 되나 보니 참 좁다. 강 면적을 포함한다면 전체 면적의 10%나 쓰고 있을까. 한강은 크지만 정작 이곳을 이용하는 모습은 천편일률이다. 그리고 몇몇 곳에만 사람이 차고 넘친다. ‘크고 넓다’는 의미의 한강이라는 이름이 참 부끄럽다.

옛 책이나 그림을 보면 한강에 배를 띄우거나 경치가 좋은 곳에 정자를 놓고 시와 노래를 즐긴 흔적이 많다. 바람 있고 향 있고 맛 있으니 그야말로 오감으로 온전히 큰 경관을 즐긴다. 오늘날 한강 변 아파트는 최고의 값을 치르는 멋진 뷰를 가졌지만, 강은 멀어졌고, 바람도, 향기도, 맛도 사라졌다. 그저 건물의 화려한 빛을 반사하는 큰 배경에 불과하다. 강둑을 따라 거닐어도 조약돌을 줍거나 살랑살랑 강을 만지지 못한다. 강변에 왔지만 정작 살아있는 강을 제대로 느끼지 못한다. 강을 느끼기 위해 파리의 센 강에서는 돌계단을 통해 강변으로 내려간다. 그러나 한강을 제대로 느끼려면 높이 올라가거나 차 속에서 강변도로를 달리며 도심의 야경을 배경 삼아 보아야 한다. 사유화로 느끼는 쾌감이다.

1960년대의 파리 또한 자본주의 경제의 발전으로 속도를 담아야 했다. 도시에 차가 다니는 것은 멋진 일이었고, 차 안에서 가장 멋진 곳을 보는 것이 도시를 한층 더 돋보이게 했다. 그러니 파리의 가장 멋진 곳, 센 강변을 도심 고속도로로 만든 것은 당연하고 합당한 일이었다. 그렇게 40년간 자동차는 문화유산인 센 강변을 차지했다. 그러나 2002년 ‘파리 플라주plage’라는 실험적 이벤트가 센 강변을 변화시켰다. 배를 개조한 수영장이나 클럽, 간이 레스토랑, 피크닉 등 참여로 만들어지는 공간이 센강의 풍경이 되어갔다. 2008년 파리 시장으로 나선 사회당의 들라노에는 도심 속 고속도로의 위상 변화와 공공 공간에 대한 새로운 접근이 필요함을 강조했다. 센 강변의 도심 고속도로 중 알마 다리와 오르세 미술관을 잇는 구간을 공공 공간으로 변화시키는 공약을 내걸고, 2011년에는 프로젝트를 발표한다. 프로젝트의 방향은 ‘존재하는 것을 기반으로 하여’, ‘기존의 기능에서 새로운 기능으로 변화시키며’, ‘실험적이고, 빠른 시간 안에 가능하며’, ‘너무 비싸지 않고, 가역성이 있는’ 공간을 만드는 것이다.

그중 다양한 욕구를 반영할 수 있는 가장 간소한 안이 선정되었다. 가볍고 조립 가능하고 변할 수 있고 다시 되돌릴 수 있는 개념을 내건 작품으로, 문화, 건축, 조경, 스포츠, 무대 설치 등을 망라한 연합팀이 책정된 예산보다 50만 유로나 적은 안을 제안했다. 2013년 6월, 2.3km의 도심 고속도로가 새로운 공공 공간으로 변모했다. 기존 고속도로의 안전장치나 표지판은 없애되 아스팔트 도로는 남겨 형태적 변화를 거의 가하지 않았다. 다만 자동차 대신 새로운 사용자인 사람이 주인이 되었다.

시대의 욕구는 고스란히 공간 프로젝트에 담긴다. 도시 경관을 변화시키는 강변 프로젝트는 자연에 대한 인식의 전환을 필요로 한다. 근대 서울과 한강의 역사는 채 60년이 안 된다. 근대 도시가 원하는 강과 2017년 현재의 도시가 필요로 하는 강은 결코 같지 않다. 그렇다고 과거의 유산을 비판하고 더 먼 과거로 되돌릴 필요는 더더욱 없다.

지난 여름 파리에서는 이례적인 대홍수가 났다. 센 강이 넘쳐 도시 전체가 강이 되었다. 활기로 가득 찼던 도시에서 사람이 사라지고 그 자리를 물이 채웠다. 센 강의 많은 시설물이 철거되었다. 그러나 아무도 아쉬워하지 않았다. 또 다른 시도를 할 수 있는 공간이 생겼기 때문이다.

자연을 대상으로 하는 프로젝트는 답을 찾는 것이 아니라 가장 좋은 질문을 찾아가는 과정이다. 현재 우리가 원하는 강의 모습이 있다면 그저 실험하고 더 많은 시도를 하면 된다. 두려움을 배제하는 것이 아니라 다양한 프로젝트를 통해 경이로움으로 변화시키고 관계에 대한 변화를 일으키는 시도가 필요하다. 그러기 위해 무언가 대단한 것을 만들어야 한다는 압박감에서 벗어나면 좋겠다. 시간을 가지고 쌓이는 경험으로 넘치면 물러나고 모자라면 다가가면 좋겠다. 한강에 있던 무수한 섬이 그러했듯.

 

박연미는 서울대학교 도시공학과를 졸업하고 프랑스 국립 릴 건축조경학교에서 석사를 마친 프랑스 국가 공인 조경가다. 파리 시청과 아틀리에 자클린 오스티에서 뱅센 동물원 외 다수의 도시설계와 공원 설계를 담당했다. 2017년 한강예술공원 기획팀에 책임 큐레이터로 참여했으며, 경관, 예술, 농업 등의 경계를 넘나들며 다양한 활동을 펼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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