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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편집자가 만난 문장들] 우리가 외로움을 느낄지라도, 결코 혼자가 아니라는 사실을 잊지 않는 것이 중요합니다.
  • 환경과조경 2024년 4월

소셜 네트워크가 세상과 연결은커녕 나를 외딴섬으로 만들고 있는지도 모른다고. 압박감에 짓눌려 생각했다. 자기 PR의 시대 SNS는 필수입니다 같은 말들이 여기저기 떠다니는 세상, 이력서에 블로그 주소나 인스타그램, 페이스북 계정을 적는 칸이 생기기까지 한다. 이제 SNS는 단순히 일상을 공유하는 매체라기보다는, 내가 얼마나 멋진 관점과 좋은 취향을 가지고 있으며 닮고 싶은 삶을 살고 있는지 보여주는 수단이 되어가고 있다. 썩 전시할 만한 거리가 없는 난 그렇게 점점 섬이 되어 간다.

 

인스타그램을 좀 굴려볼까 했었다. 페이스북은 글을 많이 써야 할 것 같아 부담스러웠다. 손가락을 가볍게 밀고 누르며 볼 수 있는 만큼, 내 서투른 글이 공유되어 이리저리 떠돌아다닌다고 생각하면 겁이 났다. 글 대신 이미지가 피드를 장악하는 인스타그램은 보잘것없는 내 글 솜씨와 얕은 생각을 잘 가려줄 것 같다는 건방진 생각도 있었더랬다.

 

매달 누구보다 빨리 좋은 조경을 찾는 게 내 일인 만큼 취재 간 김에 사진 한두 장 찍으면 될 일 아닌가. 촬영 실력은 없지만 공간 자체의 가치가 사진을 치장해줄 거라는 막연한 믿음이 솟았다. 하지만 근거 없는 자신감은 쉽게 무너지기 마련, 난 번번이 패배했다. 그것도 내 두 눈에! 눈앞에 펼쳐진 풍경을 도저히 사진으로 옮겨올 수 없었다. 가장 막막해지는 순간은 내 몸보다 훨씬 큰 스케일의 장소를 마주할 때였다. 세종중앙공원(2020년 12월호)의 장남들광장 한복판에 섰을 때의 감각이 지금도 생생하다. 어떤 수직적 요소도 없이 전월산까지 펼쳐지는 낮은 경관은 꼭 땅과 숲이 산을 향해 빠르게 내달리는 것 같은 속도감마저 느끼게 했지만, 내 카메라 프레임에 담기는 순간 어디서나 볼 수 있는 잔디밭이 되어버렸다. 어디에서 시작해 어디에서 끝나는지 알 수 없어 그 크기를 실감할 수도 없는 초록 네모. 높은 건물에 올라 내려다보듯 찍으면 공간감을 전할 수야 있겠지만, 낮고 넓게 펼쳐진 긴 땅이 주는 강렬함과 일탈이라도 저지른 것 같은 해방감은 알려줄 도리가 없었다. 그래서 유청오를 인터뷰할 때 그 방법부터 묻고 싶었다. 보이지 않는 감각을 찍는 방법 말이다.

 

유청오가 선택한 방법은 사람을 함께 담는 거였다. 결국 조경이란 사람의 이용을 염두에 둔 공간이기에. 여의치 않을 땐 사람이 있다고 상상하며 찍는다. 아직도 알 듯 말 듯 아리송하지만, 이 말은 즉 비어있더라도 보이지 않는 것을 상상하게 만든다는 게 아닐까. 딱 떠오르는 사진이 있었다. 그리스의 비주얼 아티스트인 아리스토텔레스 루파니스(Aristotle Roufanis)는 밤중의 도심 풍경을 통해서 도시 거주자의 삶과 외로움을 찍는다. 어론 투게더(Alone Together) 작업을 위해 그는 고층 건물이나 언덕에 장비를 설치한 뒤 한순간을 포착하기 위한 기다림을 시작한다. 거대한 도심에 작은 불빛들이 별처럼 남기를, 익명의 아파트 커튼 뒤 비치는 인영이 어떤 이야기를 들려주기를 인내하다 셔터를 누른다.

 

그렇게 사진이 멈춰놓은 장면은 내가 모르는 이들의 이야기를 상상하게 만들며 움직이는 영상으로 변모한다. 모든 불이 다 꺼진 밤, 고요한 도시에서 저 사람은 왜 잠들지 못했을까, 무슨 일 때문에 이른 시간에 깨어났을까. 궁금해하다보면 자연스레 나의 기억을 소환하게 된다. 그 순간 사진 속 도시와 인물은 내가 사는 동네의 어둠 속에서 홀로 잠들지 못하고 있는 내가 되고, 밤하늘에 홀로 남겨진 별처럼 흠뻑 외로워진다.

 

어론 투게더는 런던에서 외국인으로 살았던 루파니스의 경험에서 비롯된 작품이다. 그는 사진에서 외로움을 크게 증폭시켜 다루지만 결코 그 외로움을 부정하지 않는다. “도시가 커질수록, 사람들은 더 외롭다고 느끼게 됩니다. 우리가 외로움을 느낄지라도, 결코 혼자가 아니라는 사실을 잊지 않는 것이 중요합니다.(각주 1) 그래서 루파니스는 창문 하나가 아닌 도심 전체의 풍경을 담아 거대한 사진으로 뽑는 것일 테다. 밤에 잠 못 들고 있는 이가 나혼자만이 아님을, 멀리서 바라보면 오히려 난 하늘을 밝히는 새벽별 중 하나이며, 그 별을 향해 셔터를 누르고 있는 이가 있다는 걸 알려주기 위해서 말이다. 그래서 한동안 들고 다니지 않은 미러리스 카메라를 다시 꺼내고 싶어졌다. 아직 발견되지 않아 외로워하는 조경이 있을 수도 있으니까. 날도 따뜻해졌으니 설레는 마음으로 카메라 먼지를 훌훌 털어내야지.

 

 

**각주 정리

1. 어반 스페이스: 도시를 만드는 풍경들, 『보스토크』 40호, 2023, p.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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