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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연재, 끝나지 않은 이야기] 그래스호퍼로 하는 조경설계
    언어의 설계 뻔한 이야기지만 알고리즘은 언어의 설계다. 양 끝단이 매듭을 맺지 못한 채 다시 만난다는 얘기다. 공학이 싫어 조경을 시작한 내가 알고리즘을 말하다니. 집단이 싫어 도망치던 내가 소속을 원하다니. 불확실함을 참을 수 없어 디지털 소년이 된 내가 언어를 말하다니. 늙은 세상은 반대로 돌아간다. 그래스호퍼를 새로운 솜사탕 만드는 도구쯤으로 생각하던 어른들도, 모든 설계 모델을 스크립트로 만드는 모습을 직접 지켜보면 꼭 막걸리에 파전만이 장날의 정석은 아니라고 생각이 바뀔지도 모른다. 아날로그와 디지털은 맞닿아 있다. 모든 디지털 플랫폼은 기본적으로 ‘구이GUI(Graphical User Interface)’를 제공한다. 사람들이 쉽게 프로그램을 사용할 수 있도록 입출력 등의 기능을 알기 쉬운 그래픽으로 나타낸 것이다. 언어를 기호화한 것이지. 사람들은 편리를 얻는 대신 이해를 빼앗긴 거다. 등가교환의 법칙이지. 물론 모두가 최소한의 노력으로 그럴듯한 결과를 얻고 싶어 하지만 세상이 어디 그렇게 돌아가나. 스케치업 같은 달콤한 프로그램에 손을 대는 순간 복잡하게 살아야 할 필요는 눈 녹듯이 사라진다. 그깟 살 좀 찌고 말지 뭐. 하지만 여전히 ‘다름’을 위해 기꺼이 ‘워라밸’을 포기하는 건축계의 전사들은 창작과 이해의 자유를 위해 다시 언어로 돌아왔다. 프로그램에 종속되는 삶을 본능적으로 거부한 것. 그리고 그 적절한 능선을 바로 그래스호퍼 같은 그래픽 기반의 프로그래밍 언어(Visual Programming Language and Environment)에서 찾았을 뿐이다. (후략) *환경과조경399호(2021년 7월호)수록본 일부 나성진은 서울대학교와 하버드 GSD에서 조경을 전공했다. 졸업 후 한국의 디자인엘, 뉴욕의 발모리 어소시에이츠와 제임스 코너 필드 오퍼레이션스(JCFO)에서 실무 경험을 쌓고, West 8 로테르담과 서울 지사를 오가며 용산공원 기본설계를 수행했다. 한국, 미국, 유럽에서의 경험을 바탕으로 귀국 후 얼라이브어스(ALIVEUS)라는 그룹을 시작했고, 이후 파라메트릭 기반의 설계를 위해 서브디비전(SUBDIVISION)을 창업했다.
  • [연재, 끝나지 않은 이야기] 곡선으로 하는 조경설계
    대지 위에 물결치는 곡선 지형을 생태적 경관으로 재해석한 하그리브스 어소시에이츠(Hargreaves Associates)의 ‘사우스 포인트 파크(South Point Park)’, 산타모니카 시청과 해안 부두 사이를 여러 갈래의 구불구불한 머리카락 같은 동선으로 연결한 JCFO의 ‘통바 파크(Tongva Park)’, 날카로운 예각과 둥근 곡선이 이어져 마치 꽃잎을 연상시키는 West 8의 ‘거버너스 아일랜드(Governors Island)’, 곡선과 직선의 절묘한 조합으로 독특한 형태를 만들어낸 EMBT의 ‘다이애거널 마르 파크(Diagonal Mar Park)’. 이러한 독특한 곡선들은 어떤 방식으로 만들어졌을까? 동선에서 시작된 곡선이 지형으로, 또 수경 시설로 바뀌는 통바 파크의 매끄러운 경관은 어떻게 생성되었을까? 단일곡선 단일곡선Simple Curve은 같은 지점을 두 번 이상 지나지 않으며, 시작점과 끝점이 다른 단순 곡선이다. 서울숲 또는 율현공원과 같은 대형 공원에서 통합적 경관의 연출을 의도하거나 분절된 필지 간 동선의 연결을 강조할 때, 공원의 골격선으로 자주 사용된다. 단일곡선은 일정한 방향으로 동선과 시선을 유도하기 때문에, 이를 기준으로 양측에 서로 다른 경관을 계획하면 좀 더 극적인 효과를 낼 수 있다. 곡선 끝의 두 지점은 공원의 출입구로 쓰거나 주요한 공간과 연결되어 작동하게 하는 것이 효율적이다. (후략) *환경과조경399호(2021년 7월호)수록본 일부 조용준은 서울시립대학교와 펜실베이니아 대학교에서 조경을 공부했다. CA조경기술사사무소 소장으로 3년째 새로운 광화문광장 기본 및 실시설계를 이끌고 있으며, 국내외 다양한 프로젝트를 진행하고 있다. 조제라는 필명으로 아이디어 공모전 참여, 즉흥적인 기획, 조경 야화(夜話), 전시하지 않는 그래픽 작업 등 실무와 동떨어진 취미를 즐긴다.
  • [연재, 끝나지 않은 이야기] 설계 스튜디오 안팎을 가로지르는 새로운 질문들 김아연, 정욱주 대담
    하나의 주제로 이야기를 주고받는 릴레이식 글은 『환경과조경』에서 찾아보기 힘든 형태의 연재다. 글쓴이가 여럿이니 쓰는 일의 부담이 줄지 않을까 생각할 수 있지만, 사실 혼자서 긴 호흡으로 글을 쓰는 것만큼이나 어려운 일이다. 연재를 시작하기 한참 전부터 수시로 이야기를 나누고 글이 나아갈 방향을 설정해 두어도 쓰다 보면 예정된 길을 벗어나기 일쑤다. 한창 키보드를 두드리던 중 불쑥 떠오른 의문에 길을 잃기도 한다. 혼자만의 판단으로는 궤도를 수정할 수 없다. 함께 달리는 파트너가 있기 때문이다. 2009년 1월부터 2010년 3월까지 연재된 ‘스튜디오 101, 설계를 묻다’는 김아연 교수(서울시립대학교)와 정욱주 교수(서울대학교)가 번갈아 쓴 릴레이 연재다. 14회에 걸쳐 설계에 관한 이야기를 끄집어내 스스로 묻고 답했다. 연재는 끝났지만 그들이 던져 놓은 열두 개의 화두와 그 키워드에서 비롯된 질문들은 아직도 남아있다. 연재를 마무리하며 김아연은 이런 바람을 밝혔다. “101은 과목의 위계상 가장 처음 배우는 ‘입문 과정’을 의미한다. 2학년으로 올라가면 201, 202. 3학년이 되면 301, 302……. 이러한 순차적 교과과목 숫자를 채택한 이유가 후속편에 대한 암시라고 생각하는 사람도 있지만, 미안하게도 201, 301, 401의 속편들은 설계하는 사람들이 스스로 생산해야 하는 점을 얘기하고 싶다.”(김아연, “에필로그: 연재를 마무리하며”, ‘스튜디오 101 설계를 묻다’, 『환경과조경』 2010년 3월호) 김영민 교수(서울시립대학교)가 2014년 1월부터 ‘스튜디오 201, 설계를 다시 생각하다’를 연재하며 그 논의를 이어나갔지만, 301, 401을 비롯한 속편들은 아직 보이지 않는다. 끊긴 이야기에 새로운 불을 붙이고자 김아연과 정욱주를 만나 이야기를 나누어보았다. ‘스튜디오 101’에서 스스로에게 던졌던 설계에 대한 질문들은 지금도 가치를 갖는가? 그에 대한 답변 역시 유효한가. 가락동의 한 식당, 테이블에 오붓하게 앉아 나눈 이야기를 이곳에 옮긴다. 연재의 시작, 조경설계 교과서의 부재 김모아(이하 모) 두 분의 인연이 언제 시작되었는지 궁금해요. 김아연(이하 아) 대학교를 같이 다녔어요. 정욱주 교수는 당시 복학생이었죠. 정욱주(이하 욱) 졸업 동기는 아닌데 졸업 여행을 같이 갔어요. 그리고 미국으로 유학을 가게 되면서 다시 만났죠. 북미한인조경가회에서 창단 멤버로 모임을 자주 했어요. 아 정욱주 교수 집에서 당시 미국 유학 중인 조경학도가 다모였어요. 나는 남부에 있는 학교를 다녔는데 불러줘서 갔죠. 그렇게 가랑비 옷 젖듯 친해졌어요. 모 아무리 친하고 이야기가 잘 통한다고 해도 함께 글을 쓰는 게 쉽지 않았을 것 같아요. ‘스튜디오 101, 설계를 묻다’ 연재를 시작하게 된 특별한 계기가 있나요? 아 비슷한 시기에 둘 다 박사학위 없이 조경학과 설계 담당 교수가 됐어요. 상황이 비슷해서 공감대가 형성되고 자연스럽게 동료 의식이 생겼죠. 욱 처음에는 설계 수업에 대한 고민이 생기면 전화할 사람이 김아연 교수 딱 하나였죠. 그래서인지 후배인데도 꼭 동기처럼 느껴져요. 살짝 무서울 때도 있고(웃음). 당시 서울대와 서울시립대에 설계를 하겠다는 학생이 정말 많았어요. 당시 학생들의 실력과 열정이 뛰어났어요. 설계를 잘 해보겠다는 분위기가 평생 이어질 줄 알았죠. 그런데 건설 경기가 침체되고 조경설계업의 전망이 좋지 않다는 이야기가 돌면서 학생들이 설계를 꺼리기 시작했죠. 정욱주 교수와 이에 대한 고민을 함께 나눴고요. 그 과정에서 설계를 교과서로 가르치고 싶지 않지만, 조경설계에 대해 정리한 텍스트가 없는 것도 문제라는 이야기가 나왔어요. 마침 같은 자리에 있던 남기준 편집장이 그러면 둘이 함께 『환경과조경』에 글을 써보면 어떻겠냐고 제안했죠. 모 그렇다면 이 연재를 조경설계 교과서는 아니지만 설계 스튜디오를 수강하는 학생들을 위한 글로 보아도 될까요? 아 정확히 말하자면, 설계 이야기를 하고 싶었는데, 설계를 이렇게 하라는 ‘노하우’를 쓰고 싶진 않았어요. 가르치다 보면 설계 과정에서 학생들이 헤매고 힘들어 하는 패턴을 발견하게 돼요. 그런데 그 패턴을 어떻게 해결해줄 수 있는지 아무도 얘기하는 사람이 없었죠. 우리가 꼽은 열두 개의 키워드는 설계 과정을 해체해서 자세히 들여다보면 학생들이 부딪히는 고비를 넘기는 데 도움을 줄 수 있지 않을까 하는 기대로 추려본 것입니다. 학생들에게 프로그램을 만들어오라고 했을 때 “프로그램이 뭔데요?”하는 식의 질문이 돌아오면 그때마다 일일이 설명하는 일이 힘들기도 했고요. 욱 김아연 교수 말처럼 설계 교육을 하다보면 매년 똑같은 걸 설명해야 하는 상황이 반복돼요. 가끔은 학생이 질문했을 때 바로 답하지 못하고 “잠깐만 생각하고 이야기해줄게”하는 경우도 생겨요. 정리된 텍스트가 있다면 이런 상황에 도움이 되겠다고 생각했죠. 모 지금은 교재로 사용하는 책이 있나요? 욱 여전히 설계 교과서는 없어요. 내가 받은 설계 교육의 수업계획서를 토대로 각색하고 매년 보완하는 게 전부에요. 우리 연재의 결과물을 정리해서 책으로 엮자는 말을 남 편집장과 했었는데……. 타이밍을 놓치기도 했고 시간이 흐르면서 생각이 바뀌는 부분도 생기더라고요. 그때는 맞지만 지금은 아닌 이야기도 있고요. 대대적인 수정을 차일피일 미루다가 10년이 지났네요. 아 연재에서 사례를 들어 설명을 많이 했어요. 책을 엮으려면 최근 사례로 업데이트를 해야 하는데, 알다시피 시간과 노력이 많이 드는 일이죠. 생업이 두 개나 돼서 낮에는 가르치고 밤에는 실무를 하다 보니 시간이 부족했어요. 욱 이번 대담을 기회로 다시 연재를 읽어봤는데 낯설더라고요. 이걸 진짜 내가 썼다고?(웃음) 물론 지금도 동의하는 내용도 있는데 어떤 글은 읽으면서 이건 좀 아니지, 무슨 확신으로 이렇게 썼을까 생각하기도 했고요. 연재는 당시의 치열한 고민의 기록물이에요. 여담이지만 수업을 하면서 학생들에게 그런 말을 해요. “내 생각도 매주 변할 수 있어. 컨디션에 따라 갑자기 더 좋은 크리틱이 떠오를 수도 있고.” 사실 설계 스튜디오는 절대적 학문을 배우는 게 아니라 흐름을 익히는 시간이죠. 아 맞아요. 설계 스튜디오를 가르치는 교수는 할 말을 미리 정해두고 수업에 들어오는 게 아니라 학생들의 발언에 대응하는 대화적 교수법을 쓰거든요. 매주 학생들의 설계 결과물이 달라지고 이야기가 달라지면 교수들이 그에 반응해 크리틱을 하는 거죠. (후략) *환경과조경399호(2021년 7월호)수록본 일부
  • [연재, 끝나지 않은 이야기] 지향하기
    2014년부터 연재한 ‘스튜디오 201, 설계를 다시 생각하다’는 이제 설계의 매력에 눈을 뜨기 시작한 학생들, 1년에서 3년차 정도의 설계사무소의 초보 조경가를 독자로 상정하고 썼던 글이다. 7년이 지났다. 아마도 독자들이 조경가로 설계를 계속하고 있다면 프로젝트를 책임지는 팀장이나 실장의 역할을 하고 있을 것이다. 어쩌면 독립해 자신의 설계사무소를 막 시작했을지도 모른다. 7년 전에는 선생 혹은 선배의 입장에서 글을 썼다면, 지금은 같은 동료로서 하고 싶은 말을 전하고자 한다. 어쩌면 이 글은 연재를 다시 돌아보는 글이 아니라, 그때 미처 끝내지 못하고 미루어두었던 연재의 마지막 원고일지도 모르겠다. 슬럼프인가 이 소장은 전에 없던 고민이 생겼다. 이제 설계사무소를 차린 지 이제 2년이 지났다. 우려와는 달리 젊은 감각의 신생 회사를 찾아주는 클라이언트는 많았고, 일은 금세 혼자 처리하기 벅찰 정도로 늘어났다. 좋은 파트너들을 영입했고 새로운 감각을 갖춘 신입도 들어왔다. 예상한 것보다 회사는 빠르게 성장했다. 그런데 최근 내가 잘하고 있냐는 의구심이 자꾸 생긴다. 아마도 가장 아끼던 직원이 갑자기 사직서를 내고 퇴사를 했을 때부터였던 것 같다. 업계 최고의 대우를 해줬음에도 불구하고 회사에 실망한 이유가 무엇인지 아직도 모르겠다. 최근 야근이 많기는 했지만, 만성적으로 늘 야근을 한 것은 아니었다. 당장 돈을 많이 벌어야 할까? 아니면 직원들의 복지와 만족을 더 우선해야 할까? 고생할 것이 뻔한 프로젝트임에도 불구하고 좋은 작품이 나올 것 같다면 도전해야 할까? 도대체 좋은 조경설계라는 것은 무엇인가? 과연 나는 조경을 왜 하는가? 조경학과 학생 한 대학의 조경학과에서 세 학생이 동기로 만난다. 나이도, 고향도, 생각도 달랐지만 함께 공유한 것이 있었다. 바로 지향점이었다. 처음에는 그리 거창한 것은 아니었다. 학교에서 배우는 수업의 내용과 방식이 마음에 들지 않았을 뿐이었다. 보수적인 교수들은 새로운 변화에는 눈을 감은 채 과거의 원칙만 강조했다. 하지만 옆의 건축과에서는 혁신적인 건축가들을 교수진으로 초빙해 구시대와 결별을 선언하고 본격적으로 새로운 기술과 디자인을 실험하고 있었다. 세 학생은 학교에서 가르쳐 주지 않는 새로운 도시와 건축에 대한 글들을 모여 읽기 시작했다. 그리고 건축가들의 작품을 분석하고 앞으로의 조경은 어때야 하는가를 고민했다. 여러 차례의 실망과 좌절 끝에 그들은 깨달았다. 이 학교에서 아무도 새로운 조경에 관해 관심조차 두지 않고, 가르쳐 주지도 않는다면, 우리가 그 새로운 조경을 만들면 된다고. 그래서 그들은 새로운 조경에 대한 고민과 생각을 건축 전문지에 투고하기 시작했다. 편집자들은 젊은 학생들의 생각을 신선하게 받아들였고, 그 글들은 당시 저명한 건축 전문지에 실리기 시작한다. 이것이 미국 모더니즘 조경의 시작이었다. 이 삼인방은 하버드 대학교 조경학과에 같이 입학한 26살의 에크보Garrett Eckbo, 24살의 카일리Dan Kiley, 23살의 로즈James Rose였다. (후략) *환경과조경399호(2021년 7월호)수록본 일부 김영민은 서울시립대학교 조경학과 교수다. 『랜드스케이프 어바니즘』을 번역했으며, 2014년부터 2015년까지 『환경과조경』에 ‘스튜디오 201, 설계를 다시 생각하다’를 연재했다. 연재 내용을 바탕으로 설계 방법론을 정리해 『스튜디오 201, 다르게 디자인하기』(한숲, 2016)를 펴냈다.
  • [연재, 끝나지 않은 이야기] ‘겉바속촉’의 도시를 향하여
    ‘그들이 꿈꾼 도시, 우리가 사는 도시’ 연재를 통해 좋은 도시란 무엇인가를 묻고 독자들과 함께 답하고자 했다. 이 질문은 아직도 진행형이다. 좋은 도시를 꿈꾸는 일은 여전히 어렵고 위험천만하다. 관행의 벽은 높고 이해관계자를 설득하기는 힘들다. 예산은 항상 부족하다. 배정한 편집주간의 말처럼 “도시의 설계와 경영은 난제”(『도시에서 도시를 찾다』 추천사)임에 틀림없다. 연재가 끝난 후 도시의 속살을 조금 더 들여다볼 기회가 있었다. 성남시 민선 7기의 핵심 정책 사업인 ‘아시아실리콘밸리 성남 프로젝트’를 통해 도시의 미래를 기획하는 데 참여했고, 총괄 코디네이터라는 낯선 옷을 입고 도시재생 현장에서 사람들을 만났다. ‘동탄2신도시 문화디자인밸리’를 통해 공간 설계와 사업 실행의 간극도 느꼈다. 나아가 집값 폭등의 우려 속에서 3기 신도시 조성을 포함한 정부의 주택공급 대책 발표와 이에 대한 국민적 불신도 안타까운 마음으로 보았고, 코로나 팬데믹에 따른 도시 행태 변화를 바라보며 과연 좋은 도시는 무엇인지 다시 고민했다. 이를 바탕으로 지난 연재에서 못다 한 이야기를 좀 더 꺼내고자 한다. ‘겉바속촉’의 도시 좋은 도시란 다양한 변화에 활짝 열려 있는 도시다. 비록 과거에 개발이 완료되어 구조와 외관, 즉 겉면은 바삭하지만 안을 들여다보면 충분히 말랑말랑해 지금보다 좋아질 여지가 큰 ‘겉바속촉’의 도시랄까. 이런 도시에서는 크고 작은 도시 공간에 개선과 소규모 정비사업, 외부 공간 활성화와 관련한 노력도 자주 일어난다. 성공적일 경우 큰 사회적 호응을 받고, 실패할 경우 불만의 목소리도 크다. 하지만 애정이 있기에 호응도 불만도 큰 법이다. 도시 변화를 통해 끊어진 도시 조직을 잇고 다양한 주거와 일자리를 만들 수 있다면 이를 마다할 이유는 없다. 오히려 기회를 적극적으로 움켜쥐어야 한다. (후략) *환경과조경399호(2021년 7월호)수록본 일부 김세훈은 서울대학교 건축학과와 미국 하버드 GSD를 졸업했다. 현재 서울대학교 환경대학원 교수로서 도시설계연구실(Urban Studies and Design Lab)을 이제승 교수와 함께 운영 중이고, 2018년 다섯 명의 동료와 어반랩 도시기획협동조합을 공동 창업했다. 『도시에서 도시를 찾다』(한숲, 2017) 외 다수의 저서가 있다.
  • [연재, 끝나지 않은 이야기] 포스트 팬데믹 시대, 문화예술의 변화와 회복
    ‘떠도는 시선들, 큐레이터 뷰’로 『환경과조경』에 일 년간 글을 기고한 때가 2016년이다. 당시 글은 건축 및 미술 전시에서 사회적 이슈, 수행적 신체, 문화 액티비즘, 도시재생, 큐레토리얼 실천 등 동시대적 화두를 도시 공간과의 관계 속에서 읽어낸 것이다. 일 년간 전시와 리서치 프로젝트로 아시아와 유럽의 여러 도시를 오가며 예술이 도시 공간과 맺는 관계망과 변화의 움직임을 추적한 시간이었다. 무엇보다 이 연재는 동시대인에게 주어진 이동의 자유가 있기에 가능했다. 그로부터 5년이 지난 지금, 예술이 세계와 관계하는 방식에는 큰 변화가 생겼다. 이러한 상황의 중심에는 2020년 초부터 전 지구를 마비시킨 팬데믹이 있다. 감염의 공포로부터 각 도시 및 국가가 제일 먼저 내세운 것은 ‘사회적 거리두기’와 ‘이동의 통제’다. 국경이 닫히고 도시가 봉쇄되고, 각종 문화 시설이 폐쇄된 시간이었다. 일 년 반 동안 지구 곳곳에서 열린 무수한 전시들은 무관객 상태로 폐쇄된 미술관에 남겨졌으며, 일부 문화 공간의 경우에는 온라인 플랫폼을 통해 비대면으로 관객을 맞이했다. 프랑스에 있는 지금, 이곳에서 봉쇄령이 해제되기 전 마지막으로 본 전시는 작년 10월로 거슬러 올라간다. 지난 일 년 간 우리는 세계 곳곳에서 수없이 많은 문화 활동이 중단되고, 취소되고, 연기되고, 지연되는 시간을 겪었다. 5년 전의 연재 원고를 돌아보며 쓰는 이 글에서, 나는 최근 예술의 지형도를 크게 변화시킨 팬데믹 이후의 도시 공간과 문화예술을 다루고자 한다. 더불어 도시 공간의 위기에 맞서는 문화적 대응 방식과 실천에 대해서도 접근해보고자 한다. 문화 경험의 불가능성과 온라인으로의 전회 “파리를 여기저기 돌아다니는 일은 아페리티프와 함께 시작한다. 즉, 5-6시경부터….”(발터 벤야민, 『아케이드 프로젝트』) 벤야민이 도시를 표류하며 구상한 “산책자(flaneur)” 개념은 20세기 파리에서 시작되었다. 프랑스국립도서관에서 나와 저녁 식사 전까지 그는 매일같이 도시를 정처 없이 걸으며, 토지 대장으로 구축할 수 없는 도시의 심리 지리학적 지형도를 그려내고자 했다. 근대 도시의 “산책자”가 탄생한 자유로운 도시 파리에서 이동의 통제를 떠올리기란 쉽지 않다. 하지만 이러한 방랑의 여정이 금지되는 일이 얼마 전 인류에게 일어났다. 바로 2020년 초부터 전 세계적으로 확산하기 시작한 코로나19 바이러스 때문이다. 팬데믹으로 인한 사회적 혼란은 도시 공간을 방역 규범하에 엄격한 통제의 장소로 변모시켰다. 생활에 필수적인 활동만을 허용했기에 전시, 공연, 영화 등 여러 문화 공간은 ‘필수적이지 않은 활동’으로 세계 곳곳에서 규제되었다. 이 글을 쓰고 있는 2021년 6월 초 한국과 프랑스의 문화 공간은 열려 있으나, 불과 몇 달 전처럼 사회적 위기로부터 문화 공간이 언제 또 폐쇄될지 모르는 불안을 안고 있다. (후략) *환경과조경399호(2021년 7월호)수록본 일부 심소미는 독립 큐레이터로, 서울과 파리를 기반으로 활동해 오고 있다. 도시 문화에 대한 비판적 개입으로서 전시, 공공 프로젝트 및 리서치를 해왔다. 제11회 이동석 전시기획상(2018)을 받았으며, 디자인 큐레이터 어워드인 현대블루 프라이즈 디자인 2021을 수상했다. 올해 12월 초 현대 모터스튜디오 부산에서 기획전을 선보일 예정이다. 더불어 문화연구지 계간 『문화/과학』의 편집위원으로도 활동 중이다.
  • [연재, 끝나지 않은 이야기] 용산공원 부분개방 부지
    2020년 여름, 서빙고역 앞 용산공원 부분개방 부지가 열렸다. 미군 장교숙소 5단지로도 불리는 이곳은 1980년대 한국토지주택공사가 미국 교외식 타운하우스 숙소를 건설해 미군에게 임대 운영해온 곳이다. 이후 건물 18개동 중 일부를 리모델링하여 시민들에게 공개하고 있다(서울시 용산구 서빙고로 221). 공간에 공감하기_임한솔 지난 ‘공간 공감’을 찾아 읽다가 주목한 부분이 있었다. “공간의 질이 중요하다기보다 이야깃거리를 얼마나 품고 있느냐, 공간에 대한 다양한 판단을 할 수 있는 단초를 제공해줄 수 있느냐가 중요하다.”(“당신이 좋아하는 공간은 어디인가”, 공간 공감, 『환경과조경』 2015년 12월호) 공간에 대한 선호가 질보다 이야깃거리와 판단의 단초에서 비롯된다면 그 이야깃거리와 단초는 어디에서 비롯되는 걸까. 지역 주민이라면 일상 기억, 식물 애호가라면 식물의 생육 상태와 아름다움, 설계가라면 공간의 디테일에서 찾아낼 것이다. 말하자면 이야깃거리는 공간이 품는 것이기도 하지만, 사람이 찾아내는 것이기도 하다. 이곳을 매번 일 때문에 방문했는데 마음가짐을 달리하니 못 보던 것들이 눈에 띄기 시작했다. 조용하고 한가로웠다. 무엇보다 사람과 차가 없다는 ‘부재’가 눈에 띄었다. 쓰이지 않는 곳은 쉽게 스러지기 마련이지만 5단지는 상당히 깔끔하게 정돈되어 있었다. 임대 주택 단지라는 태생 때문일까. 임시 개방을 위한 관리 때문일까. ‘유보’라는 단어도 떠올랐다. 적극적으로 쓰이고 있지 않지만 방치된 상황도 아니기에 이곳이 마치 영화 세트장이나 모델 하우스처럼 느껴지기도 했다. (후략) *환경과조경399호(2021년 7월호)수록본 일부 유엘씨프레스(ULC Press)는 도시 경관 연구 청년 집단이다. 도시 경관에 관한 이론과 사례, 현상과 비평의 글감을 모으고, 일상에서 발견한 새로운 인식과 경험에 관한 콘텐츠를 기획하여 온라인과 오프라인으로 출판하고 있다. ulcpress.com
  • [연재, 끝나지 않은 이야기] 찬실이는 복도 많지
    “저는 오즈 야스지로우 영화 별로 안 좋아해요. 너무 심심하잖아요”라고 남자가 이야기하자 찬실은 버럭 화를 낸다. “심심한 게 뭐가 어때서요? 별거 아닌 게 제일 소중하잖아요. 보석 같은 게 영화에 다 나오잖아요. 영이 씨 눈에는 그런 게 안 보여요?” 찬실의 눈에 보이는 것이 무엇인지, 왜 찬실은 복이 많은 사람인지 영화를 다 보고 나면 알게 된다. 대화의 발단은 이렇다. 찬실은 평소 마음에 품은 연하의 남자 영과 술을 마시게 된다. 일본식 술집에 나란히 앉아 찬실은 제일 좋아하는 오즈 야스지로우 감독의 영화 속 한 장면 같다고 즐거워한다. 하지만 눈치 없는 영이 그 감독의 영화를 별로 안 좋아한다고 분위기를 깨 버린 것이다. 사실 상황만 보자면 찬실은 복과는 거리가 먼 사람이다. 소위 예술 영화를 찍는 감독의 프로듀서로 오랜 시간 동안 일했지만, 감독이 돌연사하면서 졸지에 실업자가 되었다. 나이 마흔이 되는 동안 일만 열심히 했지 현실은 참담하기만 하다. 서울에 저런 동네가 아직도 있나 싶을 정도의 산꼭대기 단칸방으로 이사하는 날, 찬실은 “완전히 망했다”고 탄식한다. 생계가 막막해지자 친한 배우 소피가 도와주겠다고 하지만 찬실은 거절하고 소피의 집에서 가사 도우미로 일하기 시작한다. 그런 찬실에게 어느 날 희한한 일이 생긴다. (후략) *환경과조경399호(2021년 7월호)수록본 일부 서영애는 기술사사무소 이수에서 일하고, 연세대학교 건축학과 겸임교수로 가르치며, 도시경관연구회 보라(BoLA)에서 공부하고 있다. 영화 속 경관을 주제로 석사학위를, 역사도시경관으로 보는 서울 남산으로 박사학위를 받았다. 2014년부터 2019년까지 5년간 『환경과조경』에 ‘시네마 스케이프’를 연재했다. 특집호 의뢰를 받고 작년에 본 이 영화가 제일 먼저 떠올랐다(현재 넷플릭스로 볼 수 있다). 영화를 보고 글을 쓰는 일은 일상의 보석을 캐는 일과 같다. 최근 오픈한 BoLA 홈페이지(www.bola.kr)에서 다시 영화 이야기를 시작했다.
  • 읽는 행위를 설계하는 법
    읽는 행위를 설계하는 법 잡지를 펼치면 흰 종이 위에 가득한 활자와 사진들이 눈을 반긴다. 그 내용을 삼키는 것도 중요하지만, 혹 지면을 이루는 여러 가지 요소를 눈여겨본 적은 없을까. 서체의 크기와 모양. 행간과 자간, 글줄의 길이, 종이 끄트머리에서부터 글이나 사진까지의 여백, 읽고 있는 지점이 어디인지 알려주는 꼭지명과 쪽수의 위치까지, 두툼한 잡지를 구성하는 낱낱의 장에는 독자의 읽는 행위를 고려한 디자이너의 의도가 녹아있다. 『환경과조경』이 통권 400호를 향해 달리는 과정에서 잡지가 담는 콘텐츠뿐 아니라 그 콘텐츠를 담는 방식도 바뀌어왔다. 그 변화상을 작품 소개, 설계공모 소개, 연재, 짧은 글로 나누어 가벼운 마음으로 훑어보자. *환경과조경398호(2021년 6월호)수록본 일부
    • 편집부
  • 편집자들
    조경의 테두리 안에서 의미 있고 흥미로운 콘텐츠를 찾는 편집자의 발걸음은 늘 사람과 공간 사이를 떠돈다. 특집을 기획하고, 취재를 다녀오고, 필자를 독촉하고, 늦은 밤까지 기사를 편집하고, 교정지와 눈싸움을 하다보면 어느새 달이 바뀌어 있다. 한 달 혹은 그보다 오랜 시간을 쏟아 만든 잡지 한 권에는 독자를 위해 세심히 선별한 다양한 이야기가 실린다. 그러나 한편으로는 아주 사적인 결과물이기도 하다. 잡지를 기획하고 구성하는 편집자의 취향과 사유가 은근히 반영되기 때문이다. 만든 사람만 아는 크고 작은 의미가 종이 묶음 사이사이 숨겨져 있다. 『환경과조경』을 거쳐 간 편집자를 초대하는 기획은 오래전부터 편집회의에 오르내린 소재다. 마땅한 특집 아이디어가 없을 때, 잡지가 기념할 만한 숫자를 관통할 때마다 소환했다가 다음을 기약하며 다시 서랍 속에 봉인하기를 거듭했다. 올 8월 발간될 통권 400호를 기념해, 천천히 오랜 시간 살을 붙여 완성한 이 기획을 지면에 올린다. 이제 새로운 영역에서 활동하고 있는 여섯 명의 OB 에디터를 초청했다. 『환경과조경』에 실린 작품과 특집, 연재, 독특한 꼭지를 편집자의 시점으로 다시 살피며 당시 조경 분야의 이슈와 경향, 잡지의 변천사는 물론 편집자들의 일상과 고민을 엿볼 수 있을 것이다. 더불어 원고를 청탁하며 던졌던 질문을 독자 여러분에게도 건네고 싶다. “당신에게 『환경과조경』은 어떤 잡지였으며, 조경이란 무슨 의미였나요?” 진행 김모아, 윤정훈 디자인 팽선민
    • 편집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