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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떤 디자인 오피스] 스튜디오일공일
101, 생각을 그리다
일공일의 생각
스튜디오일공일은 궁극적으로 소규모 스튜디오 방식을 추구한다. 외형적 규모에 욕심내지 않으며, 소수의 프로젝트를 깊이 있게 수행하며 모든 프로젝트에서 디자인의 집중력을 잃지 않는, 작지만 강한 조경 디자인을 지향한다. 프로젝트의 종류, 성격과 규모에 경계를 두지 않으며, 작은 정원에서부터 주거 단지, 오피스, 공원 및 오픈스페이스, 리조트 등 다양한 스케일을 넘나들며 단위 경관, 소재, 디테일 등 또 다른 차원의 경관적 융합을 이어가고자 한다. 마이크로micro 경관과 매크로macro 경관이 살아 숨 쉬는 공간, 어느 쪽에 치우치지 않는 풍성한 경관을 만들고자 노력하고 있다.
‘101’의 디자인은 기본적으로 실험성, 심미성, 실현성을 바탕에 두고 있다. 100 다음에 새롭게 시작하는 1이라는 숫자가 갖는 상징적 의미처럼, 기본에 충실한 디자인이 새로움을 이끈다고 생각한다. 디자인 중심적 사고는 단순히 결과물 디자인의 영역에 국한된 것이 아니라 우리가 수행하는 모든 프로젝트의 바탕이자 과정이며 결과다. 현장 조사와 리서치, 분석, 디자인, 디자인 검증 등 프로젝트 시작부터 끝나는 순간까지의 전 과정에서 일정한 호흡을 유지하려 노력한다. 생성적 다이어그램을 통한 대상지 읽기, 디지털 또는 피지컬 모형을 통한 디자인 발전 스터디와 디자인 검증, 라이노를 통한 도면화, 디자인 감리 현장에서의 디자인 보정과 검수 등을 통해 궁극적으로 우리가 제안하는 계획이 우리만의 태도를 담는 차별화된 경관 디자인 창작물로 안정적으로 구현될 수 있도록 책임과 노력을 다하고 있다.
여전히 설계 스튜디오
‘일공일’은 궁극적으로 구성원 모두가 직위 및 역할에 상관없이 개별적인 디자인 주체로서 존중받고, 동시에 책임감 있는 디자이너로 성장하는 올 라운더(all rounder) 조경설계사무소를 추구한다. 설립 초기부터 공공 영역의 기본계획이나 대형 공공 프로젝트보다는 주로 민간 영역에서 벌어지는 규모가 작고 디자인 밀도가 높게 요구되는, 실제 시공으로 바로 이어지는 민간 특화설계 프로젝트에 초점을 두고 있었다. 그래서 디자인 팀을 운영할 때 계획실과 설계실의 구분 없이 한 팀에서 기본계획부터 실시설계까지 프로젝트의 전 과정을 수행하게 했다.
일종의 고급 조경이라고 불리는 높은 수준의 디자인이 요구되는 프로젝트는 골격 디자인을 시작할 때 부터 각 부분의 세부 디테일까지 함께 고려하는 경우가 많아서, 디자이너들이 디테일 디자인을 접어두고 계획안만 그리는 훈련만 하면 디자인 실력 향상에 한계가 있을 수밖에 없다. 프로젝트를 통해 자연스럽게 다양한 스케일을 오가는 디자인 과정에 참여하고, 본인이 참여한 설계안을 3D 작업으로 실체화하는 데 문제가 없는지 검토하고, 어떻게 도면화되는지를 반복적으로 경험하는 과정이 직원들을 올 라운더 디자이너로 성장시킬 것이라 본다.
같은 맥락에서 직원들에게 정원 공모에 참여할 것을 적극 권장한다. 정원박람회는 설계뿐만 아니라 시공까지의 전 과정을 더 긴밀하게 경험할 수 있는 좋은 기회이자, 더 나아가 다양한 정원 디자이너, 시공 전문가와 지속적으로 소통할 수 있는 계기가 된다. 의무 사항은 아니지만, 공교롭게 지금까지의 모든 팀장급 직원은 개인 자격으로 공모전에 참가해 수상한 경력을 가지고 있다. 2015 순천만 한평정원 디자인전 작가부 선정(김현민, 차용준, 서용현, 김광중, 이상수), 2017 순천만 한평정원 페스티벌 작가부문 최우수상(오태현), 2020 경기정원박람회 작가정원 선정(이슬기), 2023 서울정원박람회 작가정원 부문 우수상(이세희, 장지연), 2023 서울정원박람회 작가정원 부문 우수상(최담희, 김선우) 등 다양한 정원박람회에 참여하고 수상했다.
공모전 참가자는 다른 직원에게 수차례 출품작에 대한 브리핑을 하고, 크리틱을 거쳐 작품을 발전시킨다. 시공작으로 선정되면 준공 시까지 필요한 작업이나 미팅, 답사 등을 업무 시간에 할 수 있도록 배려하고 부분적인 경비를 지원한다. 직원 역시 본인의 여름 연차를 사용하거나, 작품 및 이미지 저작권을 회사와 공유하는 방식으로 진행한다.
장소의 이야기를 듣다
예전에 기고했던 ‘그들이 설계하는 법’(『환경과조경』2014년 4월호)에서 언급한 ‘인터페이스 랜드스케이프(접촉면 경관)’는 여전히 내가 조경을 하고 있는 이유이며, 스튜디오일공일 설계 철학의 바탕이다. 짧게 요약하면 우리가 디자인하는 조경 공간의 이용자는 ‘조경가가 설계한 공간(다른 의미로는 조경가에 의해서 해석된 공간, 또는 원래 대상지가 가지고 있었던 무수한 역사적, 환경적 정보와 의미가 조경가에 의해서 선별되고 해석되어 다른 공간으로 재탄생된 공간)’의 이용을 통해서만 그 공간을 이해한다는 것이다.
결국 조경이라는 작업은 대상지와 이용자 사이의 역사, 문화, 생태, 그리고 공감각적 감흥을 포괄하는 ‘접촉면 경관’을 형성하는 작업이며, 그것을 통해 이 땅의 가치를 이해하고, 경관과 소통하고, 장소를 즐길 수 있도록 만들어 주는 의미 깊은 작업이 아닐까. 우리가 대상지 리서치와 분석에 많은 시간을 할애하는 가장 큰 이유는 여기에 있다. 나아가 우리가 이러한 책임감을 가져야 하는 더 큰 이유는 이러한 땅과 자연, 그리고 시간의 의미를 경관과 함께 통합적으로 전달할 수 있는 전문가는 조경가가 유일하기 때문이다.
도시숲과 숲놀이터
생명의숲은 학교숲운동과 도시숲운동 등 날로 열악해지고 있는 도시 환경에 숲을 통해 다시 건강한 도시 생태계를 만들고자 노력하는 시민단체다. 우정숲 프로젝트는 당시 도시숲운동의 일환으로 이 사업을 후원하던 우정사업본부가 서울중앙우체국 공개 공지에 기존 시설 철거 후 도시숲을 조성하게 되면서 시작됐다. 명동의 입구인 대상지는 불과 60~70년 전까지 남산의 울창한 소나무 숲이 퍼져 있던 남산의 끝자락이었고, 민족의 상징적 의미인 남산의 생태계가 열악한 도시 환경에 의해서 생태적 천이의 방향이 건강한 숲의 방향이 아닌 오염에 강한 산업 단지의 도시림인 팥배나무림와 산딸나무림의 방향으로 전환되고 있었다. 이러한 주제를 담아 도시의 포장 블록을 뚫고 올라오는 자연의 힘을 모티브로 한 ‘들썩플랜터’를 주요 시설로 하는 도시숲운동 기념정원을 조성했다. 이 프로젝트를 인연으로 2023 모두에게 평등한 숲 만들기 희망숲 2호: 틈새숲, 2024 희망숲 3호: 무궁화기념정원, 2024 청주가드닝페스티벌 입구정원: 씨앗숲 등을 통해 도시에서의 숲과 자연의 의미를 전달하는 프로젝트를 함께하고 있다.
김아연 교수(서울시립대학교 조경학과)와 협업 프로젝트로 함께하게 된 유니세프 아동권리공간 ‘맘껏숲’ 프로젝트 역시 버려진 도시 공간을 다양한 연령의 아동을 위한 자연 여가 공간으로 조성한 숲놀이터다. 김아연 교수와는 이전에 군산의 유니세프 아동권리광장 ‘맘껏광장’을 통해서 18세 이하 아동(청소년)을 위한 자립적 활동 공간을 조성하는 프로젝트를 선행한 적이 있다. 맘껏숲에서는 맘껏광장보다 심화된 콘셉트를 활용해 평일 낮과 주말에 어린이들이 자유롭게 뛰노는 숲 놀이터를 마련하고, 저녁 시간에는 청소년을 위한 공방 및 커뮤니티 공간으로 활용할 수 있는 청소년 숲 여가 공간을 조성했다.
홍석환 교수(부산대학교 조경학과)와 함께 진행한 밀주초등학교 역시 이와 비슷하게 밀양의 구도심에 있는 초등학교 운동장을 생태적 자연 놀이터로 전환한 프로젝트다. 자연 놀이터 완공 후 입소문을 타고 대도시에서 전학을 오는 등 2개 학급이 늘어나고, 많은 주변 학교와 지자체 교육 관계 부서의 견학이 이어지는 등 큰 이슈가 되었다.
사무실을 운영한 지 올해가 벌써 9년 차다. 돌이켜 보면 한 해, 한 해 매년 정신없이 지나가기만 한 것 같은데, 이런 저런 재미있는 프로젝트가 제법 많이 쌓였다. 그들 간에도 의도하지 않았지만 무언가 통일된 방향성 같은 것이 느껴지는 것 같아 이런 것들이 일공일의 이미지가 되겠구나 하는 생각이 든다. 이 자리를 빌려 일공일의 지난 9년을 함께 노력해 준 모든 직원들에게 감사했고, 앞으로도 여전히 감사한다는 말을 전한다.
스튜디오일공일(STUDIO101)의 ‘101’은 100 다음의 새롭게 시작하는 ‘1’을 의미한다. 기본에 충실한 것이 곧 새로움의 시작이라는 디자인 철학을 기반으로 실험성, 심미성, 실현성을 갖춘 작업을 지향하는 실천적 조경설계사무소다. 정원, 오피스, 공원, 주거 특화설계, 리조트 및 테마파크 등 실제 시공으로 이어지는 공공·민간 영역의 다양한 외부 공간 프로젝트를 수행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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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밀레니얼의 도시공원 이야기] 눈치 싸움 산책 vs 조깅 vs 자전거
에피소드 1. 타돌이의 반기
이 글을 작성하기 바로 며칠 전, 자유를 갈망한 타조의 성남 도심 탈출기가 기사를 탔다. 함께 지내던 친구가 먼저 세상을 뜨며 상실에 빠진 ‘타돌이’가 근처 생태 체험장에서 탈출한 것으로, 대로에서 버스와 나란히 달리는 위험천만한 풍경이 펼쳐졌다. 봄날의 한 일화로 넘어갈 수도 있지만 최근 연구실에서 토론하고 있는 ‘비인간 도시’의 조건이 생각나며 그 잔상이 가시질 않는다.
만약 이곳이 타조가 뛰어다니는 게 익숙한 또 다른 차원의 세상이라면 타조를 위한 별도의 도로가 있을 수 있을까. 물론 야생 동물이니깐 인간의 신호 체계에 무조건 맞출 수는 없을 것이다. 언젠가부터 야생 동식물 서식처의 연결과 이동을 돕고자 만든 생태 통로가 일반화됐듯, 타조가 도시를 활보하는 어떤 차원에서는 공존을 위한 또 다른 규칙들이 존재했을 것이다.
사실 안전하고 편리한 도시를 꿈꾸며 만들어낸 도로 규칙들은 결코 고정적이지 않다. ‘우회전할 때 횡단보도가 빨간불이면 무조건 멈춤’이라는 규칙 역시 이제 갓 돌이 지난 신생 규칙 중 하나다. 보행자와 운전자의 안전을 위해 제정된 교통 규칙이다. 한 차원 깊이 들어가자면 도시 공간을 누가 점유하는가에 대한 고민이 실려 있다.
이처럼 실제 공간 규칙은 필요에 따라 언젠가 조금씩 변화하고 있다. 반대로 관습화된 규칙은 변화에도 쉽게 움직이지 않으며 아주 천천히 바뀐다. 고등학교를 졸업하자마자 치렀던 운전면허시험의 기억도 이미 가물가물(참고로 필자는 운전면허 필기시험 73점을 받은 용사다). 실제 우리가 도시 공간을 향유할 때는 대부분 본능처럼 체화된 규칙을 따르기 마련이다. 이 도시 공간 활용의 변화는 반드시 갈등을 불러오고, 공원 역시 여기서 자유롭지 못하다.
또스테드: 뉴욕의 산책과 드라이브
프레더릭 로 옴스테드의 걸작 중 하나라고 평가받는 보스턴 에메랄드 네클러스 공원 시스템(Boston Emerald Necklace Park System)은 뉴욕 센트럴파크와 프로스펙스 공원에서 그가 꿈꿨던 ‘녹지이자 교통 인프라이자 여가 공간’으로서 공원이 실험된 곳이다. 특히 파크웨이와 함께 회자되는 옴스테드의 발상 중 하나는 도시의 분리 이용에 관한 것이다. 필자가 종종 참고하는 옴스테드의 1870년 보스턴 미국사회과학협회 발표문을 보면, 그는 이렇게 말한다. “12년 전 뉴욕에서 드라이브(pleasure driving)를 하는 것은 거의 없는 일이었다. 오늘날에는 최소한 1만 마리의 말이 드라이브를 위해 대기하고 있다. 12년 전에는 경량 마차를 위한 길이 전무했다. 오늘날에는 준공된 공원 내 14마일에 달하는 드라이브 코스가 있고 사람이 바글거린다. (뉴욕과 브루클린) 두 도시를 합하면 50마일에 가까운 파크웨이가 조성되어 있으며, 여기에는 적어도 평균 150피트 넓이의 녹지 경계가 만들어질 예정이다.”(각주 1)
비단 옛날이야기로만 치부할 수도 없다. 공원 조성 관련 시민 참여 프로그램을 운영하면 흔히 목격하게 되는 것이 조용하게 자연 속에서 산책할 수 있는 공원에 대한 욕망과 다양한 운동과 활동이 가능한 공원에 대한 욕망의 부딪침이다. 공원 내 자전거 도로용 신호등 체계나 골프 카트와 전기 자동차가 일렬로 서 있는 관리자용 주차 구역이 즐비함에도 불구하고 눈에 띄지 않게 단차를 조정하고 동선을 그려놓은 센트럴파크를 누가 그려냈는가 생각해보면, 이처럼 욕망의 부딪침으로 인한 갈등을 해결하는 건 결국 설계가의 몫이다.
*환경과조경433호(2024년 5월호)수록본 일부
신명진은 뉴욕대학교에서 미술사를 공부한 뒤 서울대학교 대학원 생태조경학과와 협동과정 조경학전공에서 석사와 박사를 마친 문어발 도시 연구자다. 현재 예술, 경험, 진정성 등 손에 잡히지 않는 도시의 차원에 관심을 두고 서울대학교 환경계획연구소의 선임연구원으로 재직 중이다. 도시경관 매거진 『ULC』의 편집진이기도 하며, 종종 갤러리와 미술관을 오가며 온갖 세상만사에 관심을 두고 있다. @jin.everywher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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40주년 맞이한 조경 네트워크
학생통신원 교류의 장, 간담회와 커리어데이
4월 6일 그룹한빌딩 6층 그룹한 갤러리에서 제40기 환경과조경 통신원 간담회가 개최됐다. 간담회는 1부 공식 행사와 2부 선배와 함께하는 커리어데이로 진행됐다. 올해는 1985년부터 시작한 환경과조경 통신원이 40년을 맞이한 해라 더욱 뜻깊다. 환경과조경 통신원은 전국 최대 규모의 조경 관련 대학생 네트워크로, 각 대학 소식과 지역 정보를 전달함은 물론 박람회 등 조경 관련 행사에서 서포터즈 활동을 통해 다양한 프로젝트에 참여해 왔다.
환경과조경은 매년 통신원 임기를 시작하면서 활발한 활동을 독려하기 위해 통신원 간 만남을 주선하는 간담회를 개최하고 있다. 이번 40기는 28개 학교에서 총 42명을 선발했다. 행사 1부에서는 39기 우수통신원상 시상식과 40기 전국 및 지역 기장 선출이 이뤄졌다. 39기 우수통신원상은 서유석(서울대학교 조경·지역시스템공학부)과 윤민영(서울여자대학교 원예생명조경학과)이 수상했다. 40기 전국 기장은 김경미(공주대학교 조경학과)와 장세희(순천대학교 조경학과)가 선출됐다. 지역 기장에는 서울·경기·강원 지역에 심규연(건국대학교 산림조경학과)과 김솔(서울여대 원예생명조경학과), 경기·충청에 조휘리(공주대학교 조경학과)와 양경미(단국대학교 녹지조경학과), 영남에 백진규(경북대학교 조경학과)와 임시은(경북대학교 조경학과), 호남에 박지혜(순천대학교 조경학과)와 이지현(전북대학교 조경학과)이 선출됐다.
2부에서는 이형주(23기 통신원, 조경하다 열음)가 사회를 맡아 학생통신원 모임 ‘아라리’ 소개 및 활동 내용을 공유했다. 이어서 이성민(21기 통신원, 텍사스 A&M 대학교)의 영상 축사, 30기 선배 통신원 경험 공유 및 멘토링 등 선배 통신원과 함께하는 커리어데이를 통해 학생들이 진로, 직업 고민을 나누었다. 멘토링 시간에는 서락원(30기 통신원, 어반플레이), 이향지(30기 통신원, 얼라이브어스), 한지연(30기 통신원, 서울시 푸른도시여가국)이 계획, 설계, 행정 등 다양한 분야의 진로 상담 멘토로 참여했다.
*환경과조경433호(2024년 5월호)수록본 일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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푸름한울마을
LH 아이돌봄 시설 클러스터 설계공모 당선작 디자인랩스튜디오+조경설계 호원
3월 28일, 한국토지주택공사LH가 주관한 의정부 고산 ‘아이돌봄 시설 클러스터 설계공모’의 시상식이 개최됐다. 당선작은 디자인랩스튜디오(건축)+조경설계 호원(조경)의 ‘푸름한울마을’이 차지했다. LH는 저출생 문제를 극복하고자 의정부 고산 지구에 아이돌봄 시설, 어린이 전용 문화 시설, 의료 시설 등 부모와 아이가 필요로 하는 시설을 한 곳에서 편리하게 이용할 수 있는 클러스터 시범 사업을 추진하고 있다. 이번 공모는 창의적인 아이돌봄 시설 클러스터를 구축할 수 있는 도시·건축·조경 통합설계 모델 마련을 목표로 한다. 2023년 12월에 개최된 공모에 총 10개 작품이 제출됐고, 2024년 3월 23일에 건축, 조경, 도시, 아동 전문가 14인이 심사를 진행했다. 아이돌봄 시설 간 자연스러운 연계, 창의적이고 상징적인 랜드마크 등의 요소를 평가한 결과 당선작을 비롯해 우수상 1점, 장려상 3점이 수상작으로 선정됐다.
*환경과조경433호(2024년 5월호)수록본 일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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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웃거리는 편집자] 사랑해도 혼나지 않는 낭만
나의 고향은 은모래의 도시였다. 물론 일간지 자동차 지면 광고에 등장할 법한 사막 한가운데에 놓인 도시는 아니다. 다만 은은한 은빛이 감도는 모래사장과 저절로 눈을 감을 수밖에 없을 정도로 빛이 나는 윤슬이 매력적인 강변이 있던 곳이었다. 동네 친구들과 수풀이 우거진 계곡 바위에 올라 다이빙하고, 잡으면 놓기 싫은 아기의 손바닥과 같이 부드러운 감촉의 모래사장을 누볐다. 특히 젖은 몸을 말리기 위해서 푹신한 은모래사장에 앉아 비 온 후 맑아진 강물과 저물어 가는 해가 만들어 내는 윤슬을 오랫동안 바라본 기억은 한여름 밤의 꿈처럼 생생한 여름의 낭만으로 남아있다.
불야성의 도시 서울로 오며 그런 낭만을 잠시 잊고 살았다. 여유를 느낄 새도 없이 또 다른 도시의 삶에 적응하느라 하루가 바쁘게 흘러갔다. 다만 운이 좋게도 서울에서 자리 잡은 터전이 한강과 그리 멀지 않아 한강을 자주 지나다녔다. 한강을 자주 지나다니며 수묵화처럼 아무도 밟지 않은 채로 고스란히 쌓여 있는 눈, 산속 깊은 고요한 암자를 둘러싼 대나무 숲처럼 한적한 분위기를 자아내는 안개 등 날씨가 만들어내는 한강의 다양한 표정을 카메라에 담았다. 낯선 도시의 새로운 낭만을 찾았다는 기쁨과 함께.
한강의 낭만적 풍경을 채집한 수집가로서 한강의 낭만을 조용히 느낄 수 있는 장소를 추천한다면 광진교 8번가를 말하고 싶다. 이곳은 올림픽대로와 강변북로의 사이에 놓인 광진교의 8번째 기둥에 위치해 8번가라 불리는 교각 하부 전망대다. 광진교 중앙쯤에 위치한 나선형 계단을 따라 다리 아래로 내려가면 호그와트로 이어주는 킹스크로스 역 9와 4분의 3 승강장처럼 한강의 새로운 세계를 보여준다. 전면이 유리 통창으로 된 둥근 형태의 전망대인데 빈백에 누워 전면의 통창을 통해 한강의 탁 트인 풍경을 감상할 수 있고, 발아래 유리창을 통해 한강의 일렁이는 물결을 보며 물멍을 즐길 수 있다. 특히 교각 하부라는 색다른 공간 안에서 조금 더 가까이 마주할 수 있는 윤슬은 유년 시절의 은모래가 생각날 만큼 곱고 아름다웠다.
만약 이러한 낭만적 풍경이 갑자기 사라진다면 어떤 표정을 지을 수 있을까. 영화 ‘수라’는 사라진풍경 앞에 놓인 사람들을 주목하며 삶의 터전이자, 비단에 놓인 수라는 뜻을 가진 아름다웠던 수라 갯벌을 새만금간척사업으로 잃어버린 사람들에 관한 이야기를 들려준다. 영화는 갯벌의 조개를 캐던 손으로 매립지의 잡초를 뽑는 어민, 공사를 조금이라도 늦추거나 막기 위해서 밤낮 가리지 않고 여전히 서식하고 있는 멸종위기종을 찾아다니며 갯벌의 가치를 증명하려고 하는 새만금시민생태조사단 등 사라진 갯벌이 새롭게 만들어 낸 풍경을 보여준다. 특히 20년 동안 새만금 갯벌을 살리기 위해 노력했던 오동필 새만금시민생태조사단장은 새만금에서 잊지 못할 풍경으로 수만 마리의 도요새 군무를 설명하며 “너무나도 아름다운 걸 봤기 때문에 보이지 않는 책임감이 생긴 것 같아요. 말이 맞는지 모르겠지만, 너무 아름다운 걸 본죄”라고 말했다.
사실 그들이 수라 갯벌을 잃어버린 것처럼 나도 은모래를 잃어버렸다. 내 고향에서는 더 이상 은모래를 찾아볼 수 없다. 은모래는 이제 나의 기억에만 존재할 뿐. 사라진 은모래의 빈자리를 백년 주기로 찾아온다는 홍수를 막기 위해서 설치된 차가운 콘크리트 제방이 채웠다. 새로운 풍경은 상처의 현존을 가열시킨다고 했나.(각주 1) 삶이 탄생과 죽음 사이에 놓인 것처럼 풍경 역시 생성과 소멸을 반복할 수밖에 없다는 걸 알면서도, 호시절의 추억과 장면을 균열 내는 풍경은 아리기만 하다. 어느 노랫말처럼 한 아이의 엄마가 된 옛사랑을 시청 앞 지하철역에서 만나는 것만큼 씁쓸한 것일지도 모르겠다. 돌이킬 수도 없고, 그렇다고 다시 시작할 수도 없는 불가항력이 만드는 상처 앞에서 무력할 뿐이다.
그래서 내게 마지막으로 남은 낭만적 풍경인 한강만은 지금의 모습 그대로 유지할 수 있기를 바란다. 아름다움을 본 죄인보다는 한강의 낭만을 사수한 명예 보안관(?)으로 남고 싶다. 사랑해도 혼나지 않는 꿈처럼,(각주 2) 저 한강의 낭만과 아름다움을 사랑해도 혼나지 않는 세상 속에서 살아가고 싶다. 상처를 가열시키는 풍경보다 아름다움을 가열시키는 풍경 속에서 낭만을 품고 싶다.
*각주 정리
1. 김훈, 『풍경과 상처』, 문학동네, 2009.
2. 황인찬, “무화과 숲”, 『구관조 씻기기』, 민음사, 201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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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편집자가 만난 문장들] 물성이라는 건 생각보다 쉽게 사람을 사로잡아요
나들이하기에 딱 적절한 온도인데 “날이 좋다”고 말할 수 없는 이유, 미세 먼지 때문이다. 하늘이 묘하게 부옇다. 얄궂게도 날이 좋으면 미세 먼지 수치가 극에 달했다. 봄날 휴일에 할 수 있는 게 카페를 찾거나 실내 활동을 하는 것뿐이라니. 결국 책장을 뒤적거렸고, 기후위기니 하는 현실을 잊고 싶어서 골라든 게 SF 단편소설집 『우리가 빛의 속도로 갈 수 없다면』(김초엽, 허블, 2017)이었다.
현실에서 벗어나고 싶다는 욕망에서 시작한 독서니 우주를 종횡무진하거나 상식 밖 디스토피아를 그린 이야기에 파고들 줄 알았는데, 오히려 현실성 높은 이야기에 마음을 뺐긴 건 참 이상한 일이었다. 소설 제목이기도 한 ‘감정의 물성’은 이모셔널 솔리드라는 회사가 내놓은 제품이다. 볼 수도 만질 수도 없는 대상에 물성이라는 단어를 붙인 작명에서부터 잘 팔리겠다는 기운이 느껴졌다. 그 특성마저 힙하다. 감정 자체를 조형화한 제품. “가장 기본적인 형태는 ‘공포체’, ‘우울체’ 하 는 식으로 이름이 붙고, 파생되는 제품으로 비누나 향초, 손목에 붙이는 패치도 있고요. 지금 유진 씨가 구해온 건 침착의 비누라는 건데, 진짜 비누처럼 써도 되지만 그냥 손으로 만지작거리는 것만으로도 효과가 있나 봐요. 10분 정도 사용하면 마음이 차분해진다고…….”
#감정의물성 #우울체 해시태그와 감성 사진이 인스타그램 피드에 주르륵 뜨는 모습이 연상됐다. 하지만 주인공 정하는 감정의 물성을 플라시보 효과를 이용한 상술로 치부한다. 줄거리보다 사람들이 감성의 물성을 구매하는 이유를 추적하는 과정이 흥미로웠다. 정하는 특히 우울함이나 증오 같은 감정을 사는 마음을 이해하지 못했다. “소비가 항상 기쁨에 대한 가치를 지불하는 행위라는 생각은 이상합니다. 어떤 경우에 우리는 감정을 향유하는 가치를 지불하기도 해요. 이를테면, 한 편의 영화가 당신에게 늘 즐거움만을 주던가요?”(이모셔널 솔리드 대표) “나는 내 우울을 쓰다듬고 손 위에 두기를 원해. 그게 찍어 맛볼 수 있고 단단히 만져지는 것이었으면 좋겠어.”(연인 보현)
김초엽이 (아마) 가장 방점을 둔 답은 보현의 것이었겠지만, 나는 다른 문장을 더 깊게 마음에 새겼다. “물성이라는 건 생각보다 쉽게 사람을 사로 잡아요. 왜, 보면 콘서트에 다녀온 티켓을 오랫동안 보관해두는 사람들도 많잖아요. …… 그냥 실재하는 물건 자체가 중요한 거죠. 시선을 돌려도 사라지지 않고 계속 그 자리에 있는 거잖아요. 물성을 감각할 수 있다는 게 의외로 매력적인 셀링 포인트거든요.”(동료 유진) 글을 읽는 내 앞에 뜬금없게도 국립현대미술관의 모습이 펼쳐졌다. 정영선의 전시(88쪽)를 보러 온 사람들이 개막 행사를 빼곡하게 채운 그 광경. 유명한 공원 개장식에서보다 많은 사람을 만났다. 그 모습이 이런 이벤트가 열리기를 바랐던 긴 기다림으로 읽혀 씁쓸하기도 했다. 조경이라는 건 어떤 장소를 만들어내는 논리이자 시스템인데, 모든 공간을 증강 현실로 재현할 수도 없는 노릇이고(된다 하더라도 지극히 평면적인 전시가 될 테다) 이를 도면이나 사진, 영상, 음악으로 전할 수 있나? 의구심이 녹아내렸다.
2021년 4월, 성수역과 뚝섬역 사이에 ‘숲, 가게’가 열렸었다. 그곳에서는 떨어진 신당풍나무잎 200그램에 3천 6백만 원이라는 값을 매겼다. 무슨 셈법인가 싶을 텐데, 숲을 이루는 부산물이 만들어지기까지 시간, 생태계에서의 역할, 사람에게 소소한 즐거움과 감성을 전달하는 점까지 부가 가치로 매겨 가격으로 산정한 것이다. 작은 잎에 담긴 가치가 ‘가격’이라는 숫자를 통해 좀 더 유쾌하면서도 명확하게 다가온다.
조경에 물성이 없다고 말하기는 애매하나 보이지 않는 무언가를 갖고 있는 건 분명하다. 그 가치나 의미를 확인하기 위해서는 때때로 물성이 필요하다. 항우울제만으로는 자신의 우울을 조절할 수 없어 우울체를 사 모으는 아이러니에 뛰어든 보현처럼 말이다. 가시화하기 모호한 조경의 쓸모와 무게를 뒤적이며 이를 드러내기 위한 학예연구사의 노력은 분명 조경의 또 다른 면모를 발굴해낼 것이다. 이 재미있는 시도의 결과물로 만들어진 물성이 사람들을 쉽게 사로잡았으면 좋겠다. 한 가지 더 바라는 건, 작은 굿즈가 만들어지길. 손에 쥐면 기대감에 찬 사람들이 저마다 모여 떠들며 웅성거리던 그 순간을 쉽게 기억해낼 수 있도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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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RODUCT] 꿈과 상상력을 키우는 그물놀이터 ‘네트플레이’
그물놀이터로 키우는 상상력
아이들은 놀이를 통해 친구들과 소통하고 협력하며 꿈과 목표를 이루는 과정을 통해 사회성을 배운다. 예건의 복합놀이시설 브랜드 아이붐I-BOOM은 안전한 놀이 시설물을 통해 아이들의 꿈과 상상력을 키우는 놀이터를 제작하고 있다.
그물놀이터 ‘네트플레이’는 굴곡진 다양한 형태의 네트로 연결된 놀이터다. 아이들은 그물을 오르거나 기어가는 등 어려운 동작을 통해 균형 감각을 익힐 수 있다. 다소 위험도가 있는 놀이는 위험 인지 능력을 키우는 데 도움을 준다. 이를 통해 아이들은 스스로 안전한 놀이 방법을 만들어 가며 상상력을 키우게 된다.
여러 네트 놀이 시설물을 다양한 조합으로 활용할 수 있다. 아이들의 부상 등을 방지하고 안전하게 즐길 수 있도록 디자인했다. 또한 네트멀티플레이 등과 같이 미끄럼틀과 연결해서 활용할 수도 있어 아이들에게 다양한 놀이 경험을 제공한다. 이처럼 안전하고 흥미로운 놀이 경험은 아이들의 상상력을 키우고, 역동적인 에너지를 발산할 수 있게 해 아이들의 성장을 돕는다.
TEL. 031-943-6114 E-MAIL.
[email protected]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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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에디토리얼] 지사(地史)를 돌보고 가꾸는 조경가
한국 조경 50년사를 대표하는 1세대 조경가 정영선. 그의 삶과 작업을 조명하는 전시회 ‘정영선: 이 땅에 숨 쉬는 모든 것을 위하여’가 식목일부터 9월 22일까지 국립현대미술관 서울관에서 열린다. 4월 17일에는 그의 조경관을 담은 다큐멘터리 ‘땅에 쓰는 시’(감독 정다운)가 극장 개봉한다. 세계조경가협회IFLA 제프리 젤리코 상을 받은 지난해에 이어 2024년은 가히 정영선의 해라고 할 만하다.
지난 50년간 정영선(조경설계 서안)의 손을 거친 작품은 정확한 목록을 작성하기 어려울 정도로 많다. 개인과 기업의 정원, 도시 가로와 광장, 근린공원, 기념공원, 생태공원, 산업시설 재활용 공원, 선형 공원, 묘역, 병원, 오피스, 상업시설, 복합문화공간, 공동주택단지, 공장, 캠퍼스, 종교시설과 단지, 테마파크, 리조트, 하천. 그가 다룬 프로젝트의 유형은 조경 직능의 다양성과 복합성 그 자체를 예시한다. 이 방대한 작업을 관통하는 ‘정영선 조경’ 고유의 특징은 무엇일까. 흔히 말하는 ‘자연스러움’, ‘꾸미지 않은 듯한 꾸밈’, ‘한국적 풍경’ 같은 형용어로 그 특징을 충분히 설명할 수 있는 것일까.
정영선 조경 특유의 미감을 낳는 설계의 기반은 땅의 시간과 이야기를 읽어내고 주변 경관과 관계 맺는 태도다. 그의 작품은 즉물적이고 감각적이지만 그가 자신의 태도를 설명하는 방식은 관념적이고 이론적이다. 정영선의 글과 말에서 그의 태도를 대변하는 개념을 단 하나만 골라야 한다면, 나는 “지사(地史)”를 택할 것이다. 그는 ‘지사’란 지형, 지질, 토양, 인문, 사회, 역사, 문화 등을 포괄하는 시공간적 맥락을 뜻한다고 말한다. 한 인터뷰에서 정영선은 매우 간명하게 조경의 직능을 정의한다. “조경가는 연결사”다. 지사, 즉 땅의 시공간적 맥락을 섬세하게 독해해 설계의 조건과 연결하는 태도가 그의 작업을 가로지른다. 지사를 잇고 엮는 태도를 담은 그의 문장 몇 구절을 옮긴다. “우리가 다루는 대지[는] 공간적으로나 시간적으로 절대 독립되지 않고 시‧공의 관계 속에서 존재한다. 그러므로 조경이라는 작업[에서는] …… 관계를 다듬고 설정하는 일이 중요하다.” “[경관은] 글자의 선택과 배열, 호흡에 따라 그 의미가 달라지는 ‘시’처럼 세심하게 다뤄져야 한다.”
지사를 돌보고 가꾸는 정영선의 설계는 대표작인 희원과 선유도공원을 비롯한 여러 작업에 구현되었지만, 그것을 가장 직관적으로 경험할 수 있는 곳은 아마도 오설록 티뮤지엄(+이니스프리 제주 하우스)일 것이다. 제주도의 필수 관광 명소로 자리 잡은 오설록 티뮤지엄은 아모레퍼시픽이 1983년부터 일궈온 차나무 재배지인 서광다원 한구석에 있다. 24만 평에 달하는 광활한 차밭은 불모의 황무지인 곶자왈을 개간해낸 역동적인 생산 경관이다. 곶자왈은 지하 깊숙한 곳까지 돌과 자갈이 덮여 있어 지형이 울퉁불퉁하고 가시덤불과 양치류가 얼크러져 정글처럼 빽빽한 제주도 특유의 야생 숲이다. 정영선과 박승진(디자인 스튜디오 loci)은 오설록 티뮤지엄의 새 경관을 직조하면서 건물에 맞붙은 거친 곶자왈 숲의 지형과 수목, 돌과 풀을 그대로 받아들여 재해석했다. 제주 중산간 저지대 고유의 ‘지사’가 쌓인 곶자왈의 원풍경을 돌보고 가꿔 장쾌한 녹차밭 경관의 지사와 연결한 것이다. 오설록 프로젝트는 현재진행형이다. 함께 작업해온 건축가 조민석(매스스터디스)의 표현을 빌리자면, “바둑알을 하나씩 놓아 바둑판 위에 ‘집’을 키우듯 …… 환경과의 관계성을 단계적으로 구축하고 확장해나가는 느리고 섬세한 과정이었다.”
‘정영선: 이 땅에 숨 쉬는 모든 것을 위하여’는 한 원로 조경가의 회고전이 아니다. 조경설계를 개척하고 이끌어온 한 개인의 업적뿐 아니라 한국 조경 50년의 성장사와 그 이면을 새롭게 읽을 수 있다. 다음 50년의 좌표를 질문하고 설계할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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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풍경감각] 여전히 남아있는 풍경이 있다
설계 수업을 들을수록 책이 늘었다. 조경은 나무를 심는 게 아닐까 어렴풋이 짐작하며 수강한 1학년 기초 설계 스튜디오. 교수님은 대상지를 분석하고 좋은 개념과 콘셉트를 제시하는 것이 나무를 고르는 일보다 먼저라고 했다. 대상지 분석? 좋은 개념? 콘셉트? 이것들은 무엇이며 어떻게 만드는지 알 수 없었다. 교수님의 설명을 듣고 선배들에게 도움을 구해도 손가락 사이로 빠져나가는 물줄기처럼 촉감만 스쳐 갈 뿐 좀처럼 움켜잡을 수 없었다. 책 속에서 단단한 것을 건져낼 수 있지 않을까. 그래서 알쏭달쏭한 단어를 만날 때마다 책을 사 모았다.
조경설계를 그만두면서 이 책들을 버렸다. 자취방 한편을 차지하고 있는 책을 볼 때마다 조경가를 꿈꾸었던 지난날이 떠올랐기 때문이다. 대문 앞에 모으니 손수레로 두 짐이 되었고 빠르게 치우고 싶어 고물상에 팔기로 했다. 그런데 한 짐을 내려 두고 집으로 돌아오니 나머지 책이 사라져 있었다. 폐지를 모으는 이웃 할머니가 그새 챙겨간 것이다. 내 책을 뒤적이고 있는 할머니에게 마음대로 가져가시면 어떡하냐고 돌려 달라고 했다. “버리려고 내놓은 거 주워 간 게 잘못이냐?” 할머니는 역정을 냈지만 꿋꿋이 책을 되찾아 와 고물상에 팔았다.
가끔씩 오래 전의 책장을 떠올린다. 어떤 책이 있었는지, 그리고 그 속에서 무엇을 찾았는지 기억을 되짚는다. 가물가물하다. 왜 동네 할머니와 다투면서까지 책을 되찾아 왔는지 생각해본다. 그냥 두었다면 그 무거운 짐을 챙겨 귀찮은 걸음을 하는 수고를 덜 수 있었을 텐데. 이해하기 어렵다. 책을 색깔과 크기로 나누어 꽂아 두었던 책꽂이와 해가 갈수록 색이 옅어지던 책등, 테두리가 노랗게 변색된 내지, 그리고 지저분하게 붙여 놓은 포스트잇만큼은 선명하다. 손가락을 적시는 물줄기의 촉감처럼 여전히 남아있는 풍경이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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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페라 공원
The Opera Park
도시 문제를 해결하는 낭만주의 정원
코펜하겐 전역의 도시 개발이 활발해지면서 시민을 위한 녹색 공간의 필요성이 제기됐다. 이에 A.P. 물러 재단(Møller Foundation)은 코펜하겐 도심 중심부에 위치한 내항 중 하나를 공원으로 만드는 설계공모를 실시했고, 2019년 공모에 당선된 건축 스튜디오 코베(Cobe)는 코펜하겐 내항의 옛 산업용 부지에 새롭게 공원을 조성하는 프로젝트를 맡게 됐다. 덴마크 왕립 오페라 극장 옆에 위치한 대상지는 오페라 극장 완공 후 20년 간 줄곧 잔디밭으로 활용됐다. 새로운 주택 개발의 중심지였던 이 장소는 여섯 개의 정원과 온실 등이 조성되며 녹색의 섬으로 변신했다. 오페라 공원이라 불리는 새로운 공공 공원은 밀도 높은 코펜하겐 내항과 대조적인 자연 경관을 만들어 내며 분주한 도시 생활에서 벗어나 자연을 즐길 수 있는 기회를 제공한다.
축구장 세 개 넓이의 공원은 북아메리카 숲, 덴마크 참나무 숲, 노르딕 숲, 오리엔탈 정원, 영국 정원, 그리고 중앙 온실과 아트리움이 있는 아열대 정원 등 세계 각지를 대표하는 여섯 개의 정원으로 구성된다.
다양한 정원은 수련 연못, 바닥 분수, 분수에서 나온 물방울이 수면 위로 떨어지며 리드미컬한 물결을 형성하는 미러폰드 등 수공간을 통해 방문객에게 볼거리를 선사한다. 구불구불한 산책로와 유기적으로 결합된 화단은 공원의 여러 요소를 하나로 묶어주며 공간에 통일성을 부여한다.
여섯 개의 정원과 이를 둘러싼 산책길, 세심하게 배치된 조망점이 조화를 이룬다. 코펜하겐의 유서 깊은 낭만주의 정원 양식을 활용해 생물 다양성 감소 및 물 관리와 같은 현대 도시 문제를 해결하고자 했다. 레크리에이션, 휴식, 사색을 위한 공간으로 도시에 꼭 필요한 녹색 오아시스를 제공한다. 공원을 거닐다 보면 도심을 벗어나 자연 속에 푹 빠진 듯한 느낌이 들게 해 도심 한복판에 있다는 걸 잊게 만든다.
모두를 위한 오아시스 무대
연중 내내 즐길 수 있는 매력적인 공공 장소로 설계된 이 공원에는 전 세계에서 온 628그루 이상의 나무, 8만 개의 다년초 및 관목, 그리고 4만 그루의 구근 식물이 있다. 총 223종의 외래 희귀종과 토착종이 어우러지며 방문객들에게 끊임없이 변화하는 풍경을 선보인다. 식물의 모양, 향기, 색깔, 밀도가 계절에 따라 다채롭게 변화한다. 봄에는 풍부한 색상의 꽃을 피우고, 여름에는 다양한 녹색 그늘을 만들어 내고, 가을에는 빨갛고 노란 톤을 선보이며 겨울에는 상록 소나무와 얼어붙은 연못의 운치를 느낄 수 있다. 다채로운 수종과 크기의 다양성 덕분에 새와 곤충이 먹이와 은신처를 찾을 수 있는 풍요로운 환경을 제공한다. 코베를 이끄는 단 스투버가드(Dan Stubbergaard)는 “오페라 공원은 코펜하겐 중심부에서 자연을 경험할 수 있는 무대를 마련한다. 마치 오페라 무대를 디자인하듯 전경, 중경, 후경이 조화롭게 구성된 경관을 설계했다. 8만 개의 식물과 600그루 이상의 나무가 항구를 바라보며 배치돼 자연스러운 풍경을 만들어 낸다. 일부 지역에는 지형을 높이고 키 큰 나무를 배치해 공간의 배경을 만들고, 항구와 맞닿은 전경에는 지형을 낮추고 키가 낮은 나무를 심어 자연스럽게 항구 경관을 즐길 수 있게 했다”고 설명했다.
중앙 온실
공원에는 정원 외에도 카페와 공원 지하주차장이 마련된 중앙 온실이 있다. 호버링 루프(hovering roof)가 있는 유리 구조물을 유기적으로 배치했다. 주변 식물이 비치는 유리 구조물이 공간을 안내하는 역할을 하며 공원의 풍성한 녹색을 극대화해 방문객들의 흥미를 유발한다. 온실과 카페는 코펜하겐의 많은 공원이 황량해지는 겨울에도 오페라 공원에 활기를 불어넣는다. 최대300대를 수용하는 주차장 층까지 온실 테라스 구조가 이어지며, 아열대 비오톱이 지하로 흘러 내려가며 지하층과 공원을 수직적으로 연결한다.
오페라 극장과의 연결
랜드스케이프 브리지 위의 회랑은 인접한 덴마크 왕립 오페라 극장과 주차장을 연결하고, 이용자가 날씨와 상관없이 편하게 오갈 수 있게 한다. 온실의 건축 양식을 반영한 회랑의 곡면 유리와 루프 디자인은 구불구불한 공원 산책로를 연상시킨다. 섬으로 연결되는 세 개의 다리 중 하나인 이 연결 통로는 자연의 일부가 항구 운하를 가로지르는 듯한 느낌을 연출하며 조경과 건축을 온전히 하나로 통합한다.
햇빛과 빗물
빗물은 공원의 귀중한 자원으로 덴마크 왕립 오페라 극장 지붕에서 온실 관개에 활용되는 지하 저수 시설로 흘러 들어간다. 빗물 유지·관리를 위해 산책로를 투수성 자갈로 포장하고, 집수정을 통해 빗물을 모아 여과하거나 흡수한다. 랜드스케이프 브리지의 녹색 지붕과 온실은 빗물을 저류하고 공원의 동물을 위한 식량 공급원이 된다. 오페라 극장 옥상의 태양광 패널은 지하주차장, 공원, 온실에 전력을 공급한다. 견고하고 재활용이 가능한 자재를 공원에 활용했다. 풍성한 나무와 식물을 통해 항구와 바다에서 불어오는 강한 바람을 막고 난기류를 줄여 공원 이용자의 편의성을 도모했다. 높은 지형은 폭우가 내리거나 항구의 수위가 크게 상승할 때 범람으로부터 섬을 보호한다.
글 Cobe
Architect and Landscape Architect Cobe
Collaborator Hansson og Knudsen, Bauer, Redtz Glas og Façade, HSM Industri, GK Danmark, Bravida Danmark, Høyrup & Clemmesen, KONE, Phønix Tag, Jakon, Areo, Terrazzo.dk, Raadvad Maleren, Snedkerierne, OKNygaard, Palmproject Europe, Scanview Systems, Zurface, Retail Reflexions, Vector Foiltech
Engineer Vita, Via Trafik, DBI and Lüchninger Meyer Hermansen
Client The Opera Park Foundation
Location Copenhagen, Denmark
Area 21,500m2
Completion 2023
Photograph Francisco Tirado
코베(Cobe)는 2006년 하버드대학교 GSD 교수인 건축가 단 스투버가드(Dan Stubbergaard)가 설립한 건축 스튜디오다. 특별한 일상을 만드는 데 도움을 주는 환경을 조성하는 것을 설계 목표로 한다. 대표작으로 코펜하겐 노르트하운(Nordhavn)의 더 사일로(The Silo), 코펜하겐대학교의 카렌 블릭센스 플라즈(Karen Blixens Plads), 독일 아디다스의 글로벌 본사 하프타임(Halftime) 등이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