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환경과조경 2018년 9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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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에디토리얼] 도시를 건축하는 조경
긴 방학을 마무리하는 주에는 늘 개강 증후군이 밀려온다.내가 가을 학기를 맞을 때 겪는 스트레스의 중심에는‘서양조경사’가 있다.제법 경험이 쌓여 이제는 서양조경사15주 강의에 밀도가 생기긴 했지만,고백하건대 나는 내 강의 구성이 마음에 들지 않는다.고대 정원에서 시작해 중세 정원,이탈리아 르네상스 정원, 17세기 프랑스 형식주의 정원, 18세기 영국 풍경화식 정원 순으로 살펴오다 종강이 다가올 무렵에야19세기 도시공원의 발명과 조경의 탄생을 다루는 나의(그리고 대다수 학교의 통상적인)조경사 구성에는 모순이 적지 않다. 근대 산업 도시의 사회 문제를 공간적으로 해소하기 위한 전문 직능(profession)이자 학문 분과(discipline)로‘새롭게’시작된 조경(landscape architecture)의 역사를 왜 전근대의 정원 프레임으로 읽어야 하는가. “랜드스케이프 아키텍처는 랜드스케이프 가드닝과의 절연을 선언한 명명이자 전근대의 공간 질서를 거부한 시대정신의 산물이었다고 주장하면서,정작 우리는 왜 정원 양식과 문화를 중심에 놓고 조경사를 배우나요?”누군가 이런 질문을 던진다면 어떻게 답해야 할까.몇 년 전부터 학기 초반에 조경 태동기의 도시사회사를 먼저 다루고 이 근대기의 정신을 틀로 삼아 고대부터 현재까지 도시,경관,공원,광장,가로,공공 공간,정원의역사를 각론으로 편성하겠다고 마음먹고 있지만,이번 방학에도 계획을 실천하지 못하고 벌써 개강이 코앞이다. 자주 인용되는,옴스테드가 파트너 보에게 쓴 편지한 구절이다. “…이 비극적 명명 때문에 늘 괴롭다.…랜드스케이프는 좋은 단어가 아니다.아키텍처도 좋지 않다.둘의 조합도 마땅치 않다.가드닝은 이보다 더 못하다.”여러 문헌과 자필 서신에 기록되어 있듯,옴스테드는 새로운 직능명‘랜드스케이프 아키텍트’를 썩 마음에 들어 하지 않았다.경관과 건축을 함께 묶은 명칭에 만족하지 못하면서도 조경의 초기 주창자들은 왜 이 신조어를 받아들인 것일까.아직 여러 논쟁이 진행되고 있지만,랜드스케이프‘가드닝/너’의 전통으로는 감당하기 어려운 시대정신과 도시의 변혁에 대응할 수 있는 가능성을 랜드스케이프‘아키텍처/트’에서 보았기 때문이었을 것이다.조셉 디스폰지오의 최근 연구에 따르면,옴스테드는 프랑스어에서 이미19세기 초부터 도시 공간과 구조의 개선을 담당하는 전문 직능 명칭으로 쓰인 아르시텍트 페이자지스트(architecte paysagiste)(영어의landscape architect에 해당)를 알고 있었고,그 직능의 역할과 정체성이 뉴욕의 도시 문제를 해결하는 데 필요하다는 인식을 가지고 있었다(『환경과조경』2015년3월호, 2016년4월호 에디토리얼 참조).찰스 왈드하임은“옴스테드는 건축의 권위를 차용하는 것이 일반 대중에게 새로운 분야를 알리는 데 도움이 되고 또 이 새로운 분야가 주로 식물이나 정원과 관련된다고 오해되는 경향을 완화시킬 수 있으리라 생각했을 것”이라고 추론한다.이런 맥락에서 보자면,탄생기의 랜드스케이프 아키텍처,곧 조경의 사명은‘도시(의 공원,경관,공공 공간,인프라)를 건축’하는 것이었다. ‘도시를 건축하는 조경’이다. 8월 말,본지 박명권 발행인이 지은『도시를 건축하는 조경』(도서출판 한숲)이 출간됐다.지난25년간 한국 조경 설계의 도약기를 이끌며 다듬어 온 조경 이론과 실천에 대한 일곱 가지 생각을 펼친 책이다.자연과 인간,과학과 예술,도시와 건축,디자인과 문화,공간과 시간,채움과 비움,전통과 한국성이라는 묵직한 주제가 저자의 설계 작업들과 함께 엮여 전개된다.무엇보다 시선을 끄는 부분은 매력적이면서도 논쟁적인 책 제목이다.출간 기념 북토크 준비를 위해 조금 먼저 책을 접한 몇몇 사람들은 하나 같이 도시,건축,조경을 동시에 배치한 제목이 흥미롭고 탁월하다는 반응을 보였다.이 제목에 대한 이들의(그리고 예상되는 여러 독자의)반응 이면에는 아마도 이런 질문이 담겨 있을 것이다.도시를 건축하는 조경,그것은 현실인가 당위인가 지향인가? ‘도시를 건축하는 조경’을 하나의 문장으로 바꾼다면‘조경은 도시를 건축한다’일 것이다. ‘해야 한다’는 당위란 존재할 수 없으므로 현실 아니면 지향일텐데,이 문장이 지금의 현실을 반영한다고 여기는 사람은 많지 않을 것이다.그렇다면‘조경은 도시를 건축한다’는 지향은 동시대 조경에 적합한 것일까?책의 뒤표지에 들어갈 짧은 추천사를 부탁받고,나는 고심 끝에 네 줄짜리 짧은 글의 마지막을 이렇게 마무리했다. “그는 조경의 새로운 좌표,곧‘도시를 건축하는 조경’의 문을 연다.”이 문장에서 고민거리는 형용사‘새로운’이었다.옴스테드의 랜드스케이프 아키텍처부터 이미 조경은 도시를 건축하는 사명을 자임했다. 150년 묵은 이 지향점이 지금 우리에게 중요한 것은,사촌 분야와의 경계가 흐릿해지면서 영역을 빼앗기면 안 된다는 불안감과 영토를 넓혀야 한다는 피로감으로 이중의 우울증을 겪고 있는 동시대 조경의 정체성 때문이다.이른바 위기론의 틈바구니에서 가드닝으로 회귀하는 현상마저 감지된다.이러한 시대 착오적 상황에서‘도시를 건축하는 조경’에 대한 토론은 새롭고,중요하다. 150년 전 옴스테드의 시대와 다른,새로운 좌표로서의‘도시를 건축하는 조경’을 두고 열띤 논쟁이 이어지길 기대한다. ‘그들이 설계하는 법’ 최재혁 소장(스튜디오 오픈니스) 편이 이번호로 막을 내린다. 석 달간의 큰 수고에 깊이 감사드린다.
72시간 도시생생 프로젝트
지난 7월 19일, 서울시청 다목적홀에서 2018년 ‘72시간 도시생생 프로젝트’의 시상식이 진행됐다. 본래 한 팀에게 최우수상(상금 1,000만원)을 수여할 예정이었으나, 작품의 우열을 가릴 수 없어 한 점으로 예정된 우수작(상금 500만원)에 아하모먼트(AHA Moment)팀의 ‘정류원’과 어반그라데이션(Urban Gradation)팀의 ‘도시를 바꾸는 점적인 변화’를 선정했다. 본래 한 팀에게 줄 예정이었던 장려상(상금 300만원) 역시 인에이(In_A)팀의 ‘송파의 기억을 들추다’와 함께 팀의 ‘참한터’ 두 작품에 수여했다. 입선(상금 50만원)에는 이터널선샤인(E;tunnelSunshine)팀의 ‘창3동과 205분의 19승강장’, JHA 팀의 ‘향림원(香琳源)’, 호케스트라(Horchestra)팀의 ‘사랑은 시간을 함께 보내는 것이죠’가 선정됐다. 심사위원단은 창의성, 내구성, 조화성, 성실성, 유지·관리 측면에 주안점을 두어 심사를 진행했으며, 박준호 심사위원장은 “72시간 도시생생 프로젝트가 서울을 바꾸는 첨병의 역할을 하고 있다. 이러한 작품을 조성하는 72시간이 모두가 즐길 수 있는 축제가 되었으면 한다”며 심사평을 밝혔다. 72시간 도시생생 프로젝트는 독일 슈투트가르트에서 열린 ‘72 Hour Urban Action’을 벤치마킹한 프로젝트로, 지난 2012년 ‘Take Urban in 72 Hours’라는 이름으로 서울에서 시작됐다. 2013년에는 시민에게 좀 더 친숙하게 다가가고자 ‘72시간 도시생생 프로젝트’(이하 72시간 프로젝트)로 명칭을 바꾸었으며, 2014년부터는 한화와 서울시가 공동 주관하는 프로젝트로 매년 추진되어 왔다. 올해 7회를 맞은 72시간 프로젝트는 ‘자투리땅을 살려라!’를 주제로 진행되었다. 지난 6월 4일 공모를 통해 선정된 7개 팀은 도시재생 사업지 내 주민 생활 공간 두 개소, 지하철역과 버스 정류장 인근 가로 쉼터 세 개소, 도시 번화가 두 개소 등 노후화된 공간을 시민들이 소통할 수 있는 장소로 탈바꿈시켜야 했다. 작품 설치 비용으로는 1,500만원(부가세 포함)이 지원됐다. 한화와 서울시가 공동 주관했던 작년과 달리, 올해는 서울시 단독 주관 자치구 보조금 사업으로 프로젝트 성격이 바뀌어 진행되었다. 따라서 참여 팀은 보조금 관리 시스템을 통해 보조금을 집행하고 정산해야 했는데, 방법과 기준이 까다로워 어려움을 겪는 팀이 발생하기도 했다. 올해에도 72시간 프로젝트를 홍보하기 위한 서울시의 노력은 계속됐다. 페이스북을 적극적으로 활용했는데, 텍스트와 이미지를 결합한 카드 뉴스 형태의 이미지를 게시해 정보를 좀 더 효과적으로 전달하려 했다. 주민 참여를 유도하고자 모바일 투표와 현장 투표를 통해 선정하는 ‘특별상’을 신설하기도 했다. 하지만 대부분의 주민이 투표 진행 사실을 알지 못하며, 참여 팀이 지인을 동원해 투표하기 때문에 팀원이 많은 팀이 유리하다는 문제점이 제기되기도 했다. 하지만 도시재생 사업지 내의 자투리땅을 대상지로 선정함으로써 조경의 영역을 넘어 도시재생본부와의 협업 가능성을 열었다는 점은 고무적이다. 내년에는 서울시의 중요한 정책 사업과 연계할 방안을 탐색 중이라는 72시간 프로젝트의 귀추가 주목된다.
비평: 일상의 혁명을 위한 작은 무대
청출어람 서울이 이제는 세계적인 문화의 도시라고 내세워도,다른 나라에서 서울을 배워 갈 정도로 우리의 역량이 커졌다고 자찬을 해도,우리는 여전히 선진국의 멋진 사례를 동경했고 갖고 싶었다.우리의 현실에 맞게 제대로 소화하기도 전에 외국의 사례들이 우리 도시의 정책이 되었다. ‘72시간 도시생생 프로젝트’도 그런 복제품 중 하나다.그런데6년 뒤 한때 많은 매체의 주목을 받았던 원래의 프로그램은 다른 나라에서 더 이상 열리지 않게 되었고,그 취지는 유일하게 서울에서만 살아남았다.정책적 카피로 출발한 프로그램은 원래 기획의 맥을 잇는데 그치지 않고 시행착오를 반복하며 원본을 뛰어넘는 프로그램으로 발전한다.이제 이 기묘한 기획은 서울이라는 도시의 맥락에 최적화된 형태로 진화하여 매년 도시의 새로운 가능성을 찾아내고 실현하고 있다.무슨 일이 있었던 것일까? 72시간 어반 액션 72시간 도시생생 프로젝트(이하72시간 프로젝트)의 모태는‘72시간 어반 액션(72 Hour Urban Action)’(이하72 HUA)이라는 이벤트다. 72 HUA는2010년 이스라엘의 텔아비브Tel-Aviv인근의 소도시 바트얌에서 열린 랜드스케이프 어바니즘 비엔날레(Bat-Yam International Biennale of Landscape Urbanism)의 한 행사로 처음 실행된다.시장은 비엔날레를 계기로 도시가 자유로운 아이디어의 실험실이 되기를 원했고,두 명의 젊은 건축가가 특이한 형태의 공모전을 제시한다.주어진 시간은72시간, 3일 밤과 낮.참가자들은 한정된 기간 안에 한정된 예산으로 도시의 공간을 변화시킬 아이디어를 제시할 뿐 아니라 프로젝트를 실제로 만들어야 했다.주어진 예산은2000유로에 불과했고 모든 법적 제약과 인허가 절차를 피하기 위해30cm이상의 지반 공사도 불가능했다.과연 누가 참여할까 하는 의구심이 들 정도로 열악한 조건의 프로젝트에 전 세계40개국에서450개의 지원서가 제출되었다.기획자들의 예상을 뛰어넘는 성공이었다.건축가와 디자이너는 지역 주민과 협력해 도시 곳곳에서 동시 다발적으로 프로젝트를 진행했고 그 과정은 인터넷으로 전 세계에 생중계되었다. 72 HUA는 극한의 조건을 둔 일종의 건축적 게임이자 도시적 실험이었다.그러나 이 이벤트는 흥미진진한 게임과 실험 이상의 의미를 갖고 있었다. 72 HUA의 제안자인 케름 할브레트(Kerem Halbrecht)와 길리 카예브스키(Gilly Karjevsky)는 다음과 같은 질문을 던진다.1“대개 도시 환경을 바꾸기 위해서는 엄청난 시간과 돈,행정적 절차가 필요하다.이러한 상황에서 개인의 생각과 의지로 무엇인가를 바꾸는 것은 불가능해 보인다.오늘날 도시를 변화시키는 일은 전문가와 행정가,정치가 등 소수에게만 주어진 특권이 되어 버렸다. 72 HUA는 이러한 불가능성에 반기를 든다.그리고 시민이 스스로 일상의 공간에 변화를 불러일으킬 수 있다는 사실을 보여 주고자 한다.과연 누가 공공의 공간에 개입할 권리를 갖는가?삶의 질을 결정할 책임이 누구에게 있는가?당연한 권리를 금지된 것으로 만드는 고정관념에서 벗어날 수 있는가?이 기획은 그 누구도 아닌 바로 내가 이 순간,여기에서 활동가가 되고 반란군이 되라고 요구한다.여기에는 단 하나의 선언만이 존재한다. ‘내가 살고자 하는 현실을 내가 만들 권리가 있고 만들 수 있다.’” 이러한 메시지는 마지막 아방가르드라고 불렸던 상황주의자 인터내셔널(Situationalist International)의 실천적 저항 정신을 계승하며,2건축의 권위를 건축 스스로가 부정하고 제도적 테두리를 넘어서려 한다는 점에서 무정부주의적 태도를 취한다.다른 한편으로는 자본주의적 건축에 저항하여 가장 낮은 위치에서 건축의 가치를 찾고자 하는 시게루 반(Shigeru Ban)3의 생각과 맥락을 같이하며,대학살,전쟁,재난과 같은 인간성 자체가 위기에 처한 상황에서 건축의 본질을 다시 생각하는 아키텍처 포휴머니티(Architecture for Humanity)4와 공동의 전선을 펼치는 듯 보인다.그러나72 HUA가 이러한 움직임과 근본적으로 차별화되는 지점은 놀이의 성격을 갖고 있다는 점이다.놀이는 정치적 투쟁의 심각함을 거부한다.일시적이고 즉흥적이다.무엇보다도 재미있어야 한다. 72 HUA은 거시적 담론이 힘을 잃은 지금의 시대에 실천을 이끌어 내기 위해서 가벼워야 한다는 점을,그리고 일상의 리듬에 녹아들어야 한다는 점을 놓치지 않았다.그 때문에 큰 호응을 이끌어 낼 수 있었다. 2년 뒤, 2012년 독일 슈투트가르트(Stuttgart)에서 두 번째72 HUA가 열린다.전 세계에서 수많은 참가자가 지원해 도시 곳곳을72 HUA의 상징색인 주황색으로 물들였고SNS와 유튜브를 통해 첫 이벤트를 뛰어넘는 주목을 받는다.같은 해가 지나기도 전에 세 번째72 HUA가 이탈리아 테르니Terni에서 열린다. 2013년의 네 번째72 HUA는 덴마크의 로스킬레(Roskilde)에서 열린다.국제 음악 페스티벌과 연계한 이 행사는 예년에 비해 절반밖에 안 되는 팀으로 진행되었다.그리고2014년 독일 비텐(Witten)에서 열린 다섯 번째 행사를 마지막으로72 HUA는 더 이상 열리지 않았다. ...(중략)... **각주 정리 1.도무스(Domus)의 인터뷰를 참조했다(https://www.domusweb.it/en/architecture/2011/07/27/72-hour-urban-action.html). 2.상황주의자 인터내셔널은1957년부터1972년까지 아방가르드 예술가와 지식인이 모여 활동한 그룹으로,전통적인 마르크시즘에 반기를 든 반자본주의적 사회 운동의 성격을 띠고 있었다.스펙터클의 정치에 반대하여 일상의 삶과 대상에서 사회적 의미를 발견하고자 했으며,문학,시각 예술,건축 도시 분야의 이론과 접목된다. 3.시게루 반은 일본의 건축가로2014년 프리츠커 건축상(Pritzker Architecture Prize)수상자다.종이를 건축 소재로 실험적으로 사용하여 주목 받았으며,종이 같은 값싼 재료를 재난 상황에서의 건축에 활용한 작품들을 선보인다.지속적으로 재난 상황에서 건축의 역할을 강조했으며 실제 고베,쓰촨,동일본,네팔 대지진 당시 임시 구조물을 현장에서 설계하여 제공했다. 4.아키텍처 포 휴머니티는 재난,전쟁 등의 극한 상황에서 건축적 대안을 제시하고자 결성된 비영리 단체로,자급자족적이고 협력적인 가치를 제시하며 전 세계에서 다양한 활동을 벌여 왔다. *환경과조경365호(2018년9월호)수록본 일부 김영민은1978년생으로,서울대학교에서 조경과 건축을 함께 공부했고 하버드GSD에서 조경학 석사 학위를 받았다.미국의SWAGroup에서6년간 다양한 조경 설계와 계획 프로젝트를 수행하면서USC건축대학원의 교수진으로 강의를 했다.동시대 조경과 인접 분야의 흐름을 인문학적인 시각으로 읽어내는 데 관심이 있으며,설계와 이론을 넘나드는 다양한 활동을 펴나가고 있다.『랜드스케이프 어바니즘』을 번역했으며,설계 방법론을 다룬『스튜디오201,다르게 디자인하기』를 썼다.『용산공원』등 다수의 공저가 있다.
하이드 앤드 시크
1998년을 시작으로 올해 19회를 맞이한 뉴욕현대미술관()Museum of Modern Art)(이하 MoMA)의 영 아키텍츠 프로그램(Young Architects Program)(이하 YAP)은 재능 있는 신인 건축가에게 혁신적인 프로젝트를 설계하고 전시할 수 있는 기회를 제공하는 공모 프로그램이다. 공모에서 당선된 건축가는 친환경적일 뿐 아니라 그늘과 휴식, 물을 제공하는 독창적인 임시 야외 설치물을 선보여야 한다. 지난 6월 26일, 2018년 YAP의 당선작 ‘하이드 앤드 시크(Hide and Seek)’가 MoMA PS1(MoMA의 분관)에서 그 모습을 공개했다. 드림 더 컴바인(Dream the Combine)의 제니퍼 뉴섬(Jennifer Newsom), 탐 캐러더스(Tom Carruthers)와 아럽(Arup)의 클레이턴 빙클리(Clayton Binkley)가 함께 만든 ‘하이드 앤드 시크’는 MoMA PS1 중정 전체에 걸쳐 설치된 여덟 개의 요소가 끊임없이 반응하고 움직이는 작품이다. 이 작품은 야외 음악 프로젝트 ‘웜 업Warm Up’의 임시 배경이 되었으며, 9월 3일까지 MoMA PS1 중정에 전시되었다. ...(중략)... * 환경과조경 365호(2018년 9월호) 수록본 일부 Principals and Lead Architectural Design Jennifer Newsom and Tom Carruthers(Dream the Combine) ProgrammingMikki Heckman Structural EngineeringArup(Clayton Binkley, Kristen Strobel, Alex Reddihough, Vaidas Razgaitis) Lighting Design Arup(Yuliya Savelyeva, Janelle Drouet, Brian Stacy, Susheela Sankaram) Canopy FabricHunter Douglas Architectural Linear Lighting Fixtures Q-Tran Lighting Rep Agency Enterprise Lighting Sales Lighting and Misting Control System ETC Flood Lights Insight Misting SystemBiogenesis THE FOG SYSTEM Hammock Netting InCord Mirror Installation Complex Metal and Glass Mirror Kings Glass LocationMoMA PS1, New York, U.S.A. Installation 2018. 6. ~ 2018. 9. Photographs MoMA PS1, Pablo Enriquez 미국 미네소타 주 미니애폴리스에 위치한 드림 더 컴바인(Dream the Combine)은 예술가이자 건축가인 제니퍼 뉴섬(Jennifer Newsom)과 탐 캐러더스(Tom Carruthers)가 운영하는 설계사무소다. 엔지니어 클레이턴 빙클리(Clayton Binkley) 등 여러 전문가와의 협업을 통해 이분법적 개념에서 탈피해 실재와 환상 사이의 경계를 만드는 일을 하고 있다.
2018 서펜타인 갤러리 파빌리온
영국 켄싱턴 가든(Kensington Gardens)에 자리한 서펜타인 갤러리(Serpentine Gallery)는 매년 여름 국제적으로 명망 있는 건축가를 초빙해 파빌리온 조성을 의뢰하고, 이를 미술관 앞 부지에 전시한다. 서펜타인 파빌리온은 매번 새롭고 독창적인 모습으로 만들어지는데, 초청 건축가가 영국에서 처음으로 선보이는 건축물이기도 하다. 약 300 제곱미터의 파빌리온은 전시 기간 동안 카페, 모임 공간, 포럼 장소, 야간 행사장 등으로 활용된다. 2000년에 시작된 서펜타인 파빌리온 프로젝트는 현대 건축의 경계를 끊임없이 확장할 수 있는 건축가를 발굴하고, 많은 사람에게 영감을 주는 건축물을 소개했다. 이를 통해 미술관 앞 푸른 잔디밭은 미술관 공공 프로그램 실현의 장이자 건축적 실험의 국제적 무대로 의미 있게 활용되고 있다. 18번째 서펜타인 파빌리온의 설계는 멕시코 건축가 프리다 에스코베도(Frida Escobedo)가 맡았다. 그는 역대 참가자 중 가장 젊고, 자하 하디드에 이어 두 번째로 초청된 여성 건축가다. 에스코베도의 파빌리온은 시간의 흐름을 건축적으로 보여 주면서 멕시코와 영국 건축 간의 절묘한 조화를 이끌어 냈다. 기술 자문 위원인 데이비드 글로버(David Glover)는 에스코베도의 파빌리온이 “빛, 그림자, 반사를 영리하게 이용해 공간을 연계하고 공원으로의 시각적 연결성을 유지했다”고 평했다. 서펜타인 파빌리온의 아트 디렉터 한스 울리히 오브리스트(Hans Ulrich Obrist)와 서펜타인 갤러리의 CEO 야나 필(Yana Peel)은 “빛과 본초 자오선을 따라 빚어진 살아있는 시계(timepiece)가 공원 한가운데 마련되었으며, 멕시코와 영국 양국으로부터 받은 영감이 조화롭게 녹아든 이 작품은 반영과 만남의 공간이 될 것”이라는 기대감을 전했다. ...(중략)... * 환경과조경 365호(2018년 9월호) 수록본 일부 Pavilion Architect Frida Escobedo Pavilion Architectural Team Project Leader: Matthew Kennedy Team: Jose Maria Gomez de Leon, Federica Lombardi,Andres Harvey, Hector Arce, Carlos Hernandez, MarioGonzalez, Elisa Herrera Technical Consultant David Glover Technical Advisor AECOM Construction Stage One Creative Services Location Kenshington Gardens, London, UK Overall Site Area 541m2 Gross Internal Area 233.3m2(including pool area), 194m2(excluding pool area) Heights 3.24m (Max. overall height), 3.24m (Max. internalceiling height), 2.6m(Min. internal ceiling height) Installation 2017. 6. 15. ~ 2017. 10. 7. Photographs Iwan Baan, Matt Brown 프리다 에스코베도(Frida Escobedo)는 멕시코 시티에 설립한 건축 디자인 스튜디오를 기반으로 활동하고 있으며, 설치 미술부터 가구 디자인, 개인 주택, 공공 건물 등 다양한 프로젝트를 진행해 왔다. 건축을 통해 버려진 것의 가치를 찾거나 일상의 틈에서 중요한 의미를 발견하는 것에 중점을 두고 도시 공간을 되살리고 있다. 뉴욕 젊은 건축가 포럼 어워드(New York’s Young Architects Forum Award, 2009), 아키텍처럴 리뷰 신진 건축가 상(Architectural Review Emerging Architecture Award, 2016) 외 다수의 상을 받았으며, 컬럼비아 건축 대학원, 하버드 GSD, 런던 AA 스쿨, 버클리 대학교 등의 객원 교수를 역임한 바 있다.
부산현대미술관 수직 정원
미술관 2018년 6월 개관한 부산현대미술관은 천연기념물 제179호로 지정된 부산 사하구 을숙도에 위치한다. 을숙도는 낙동강 하구에 토사가 퇴적되어 형성된 하중도河中島(곡류 하천의 유로가 바뀌면서 하천 가운데 생긴 퇴적지)로, 갈대와 수초가 무성하고 어패류가 풍부하여 한때는 동양 최대의 철새 도래지였다. 대부분이 저지대에 위치한 습지로 홍수 때는 수몰될 위험이 컸기 때문에 섬 크기에 비해 주민이 적었다. 그러던 중 윤중제輪中堤(섬의 둘레에 쌓은 제방)가 축조되고 경지 정리 사업이 진행되어 많은 주민이 입주했고, 을숙도는 부산의 원예 작물 공급지 역할을 하게 됐다. 그러나 1987년 4월 낙동강 하굿둑의 완공으로 섬 전역이 공원화되면서 갈대밭이 훼손되고, 사람들의 발길이 잦아지자 철새가 줄어드는 등 생태계가 빠르게 파괴되었다. 이에 부산시는 을숙도 일대를 핵심보전구역으로 지정하는 등 을숙도 복원 사업을 추진하고 있다. 을숙도는 여전히 50여 종, 10만여 마리의 철새가 쉬어가는 철새의 낙원으로, 세계적 희귀조인 재두루미, 저어새, 흰꼬리수리 등이 날아와 겨울을 나는 모습은 장관을 이룬다. 부산현대미술관은 이러한 입지적 배경이 가지는 장소의 상징성과 그 환경적 이슈에 주목했다. 단순히 주어진 건축 공간을 통해 예술을 공유하는 것이 아닌, 자연과 예술, 인간이 동화되어 공존·공영할 수 있는 문화적 공간의 역할에 더 큰 의미를 둔다. 예술가 패트릭 블랑(Patrick Blanc)은 식물학자다. 또한 수직 정원의 창시자이며 수직 정원을 예술의 한 분야로 정착시킨 예술가다. 패트릭 블랑의 수직 정원이 알려지기 시작한 것은 1988년 파리의 라빌레트 과학산업관(Cite des Sciences et de L’industrie)에서 개최된 전시에서 수직 평면에 여러 식물을 설치한 작품을 소개하면서였다. 식물을 이용한 이 유기적 설치 작품은 지금의 수직 정원의 기술적·개념적 모체가 되었다. 부산현대미술관의 수직 정원은 패트릭 블랑의 국내 최초 대규모 실외 설치 작업이다. 봄 정원, 여름 정원, 가을 정원, 겨울 정원으로 계절에 따라 변화하는 살아 있는 작품이다. 관람객들은 수평적으로 펼쳐진 을숙도 자연 환경 안에서 수직의 정원을 발견하고 미술관이라는 특정 장소에 대한 새로운 경험을 하며 자연과 교감하게 될 것이다. 패트릭 블랑은 단순히 식물을 벽에 설치한 것이 아니라 식물의 생태를 연구하여 상호 자생이 가능한 식물을 연결해 배치한다. 더불어 시각적 아름다움을 부각하는 작업을 통해 식물의 본성을 넘어 하나의 예술 작품으로 표현한다. ...(중략)... * 환경과조경 365호(2018년 9월호) 수록본 일부 전시명2018년 부산현대미술관 개관전 ‘수직 정원: Vertical Garden’ 전시 작가 패트릭 블랑 전시 기획 류소영 학예연구사(부산현대미술관) 위치 부산시 사하구 낙동남로 1191 부산현대미술관 외벽 면적1,300m2 설치2018. 3. 6. ~ 2018. 4. 16. 완공2018. 6. 사진 부산현대미술관 패트릭 블랑(Patrick Blanc)은 파리에서 태어났고, 여전히 파리에서 살고 있다. 수족관을 조성해 애완용 열대어를 키우며 10대의 대부분을 보냈는데, 수족관 물을 여과하기 위해 필로덴드론 뿌리를 사용한 것이 그의 첫 수직 정원이었다. 프랑스국립과학연구원(Centre National de la Recherche Scientifique)에서 열대 우림 하층 종의 적응 전략을 연구해 1993년 프랑스 과학 아카데미의 식물학상을 받았으며, 1988년과 1996년에는 수직 정원 개념을 발전시켜 특허를 취득했다. 대표작으로는 파리 카르티에 재단 현대미술관의 수직 정원이 있다. 류소영은 파리 1대학 공간장소전시네트워크에서 석사 학위를 받고, 동대학원 디자인과에서 미디어 석사 과정을 마쳤다. 파리 8대학에서 동시대 미술이론을 수료했으며, 파리의 갈리 피에르-알랭 샬리어(Galerie Pierre-Alain Challier)와 대구미술관에서 근무했다. 현재는 부산현대미술관의 학예연구사로 재직 중이다.
비평: 가장 식물적인 것이 가장 예술적이다
“빌바오 효과”라는 말을 낳은 스페인의 빌바오 구겐하임 미술관은 프랑크 게리라는 유명 건축가의 브랜드 마케팅을 통한 지역 재생의 대표적 사례로 언급된다.건축물 자체가 예술 작품인 수많은 미술관을 떠올린다면 새롭게 문을 여는 부산현대미술관이 부산 서부 지역의 부족한 문화 인프라를 확충한다는 사실 자체에 만족하지는 못할 것이다.그래서 부산현대미술관이라는 건축물이 그 모습을 공개했을 때 쏟아진 여론의 질타와 대중의 실망감 역시 어렵지 않게 납득할 수 있다.얼굴이 메시지이자 자본인 시대에,공공 턴키 발주 방식으로 탄생한 대형 마트 같은 겉모습은 미술관의 품격에 맞지 않는다는 비판에 직면했다.그렇다면 미술관다운 건축물의 모습은 대체 무엇일까?미술관의 조건에 겉모습은 어때야 한다는 조항이 어디에 있단말인가?미술관은 건축물이라는 매질媒質을 통해 반드시 어떠한 메시지를 전달해야 하는가?겉모습에 대한 못마땅한 반응은 쉽게 나오지만 미술관이 어때야 한다는 규범적 대안을 내놓기는 쉽지 않다.개관전에 초대된 작가들은 저마다 이 미술관스럽지 않은 신상新商미술관을“미술관스럽게”만들어야 하는 부차적인 숙제를 떠맡은 듯 보인다.부산현대미술관은 미술관 자체에 대한 해석을 요청하는 하나의 기이한 장소특정성을 작가들에게 작품 설치의 조건으로 던져준 셈이다.패트릭 블랑(Patrick Blanc)의 수직 정원은 이렇게 스스로는 성격을 드러내지 못하는 중성적 공간에 대한 도발적 대안을 제시한다. 을숙도라는 섬,그리고 미술관 섬은 땅과 물의 중간자다.물이 차면 사라지고 빠지면 드러나는 대지의 유동성은 비옥한 토지를 만들고 철새를 포함한 다양한 동식물의 서식처를 형성한다.그러나 안정성이 없는 대지라는 이유로 밑바닥으로 내몰린 사람들이 마지막으로 점유할 수 있는 변방의 땅이기도 하다.많은 영토 분쟁이 섬을 중심으로 이루어지는 이유도 섬은 경계를 결정짓는 중요한 기준이지만 동시에 어디에도 속하기 힘든 중간적 성격을 가지기 때문이다.섬을 주제나 배경으로 한 문학 작품이 많다는 사실도 고립된 지형이 만들어 내는 독특한 지정학적,생태적,사회적 풍경 때문일 것이다.시대와 국경을 초월하여 섬이라는 대지의 변화와 불확실성이 초래하는 긍정적,부정적 가능성은 예술가에게 마르지 않는 영감을 주었다.을숙도를 주제로 한 시와 소설이 많은 것 역시 우연이 아니다.이러한 의미에서 부산현대미술관이 을숙도라는 섬에 자리를 잡게 된 것은 오래된 필연이었을지도 모른다. 을숙도는 바닷물과 민물이 만나는 하구에 위치한 모래톱으로,원래 일웅도와 붙었다 떨어지기를 반복하는 변화의 땅이었다. 1980년대 낙동강 하굿둑이 건설되면서 담수와 해수가 자유롭게 넘나들던 흐름이 끊기고 천혜의 자연 생태계가 심각한 변화를 겪게 된다.그 후로 쓰레기 매립지,준설토 적치장,분뇨 해양 처리장,명지대교(을숙도대교)등이 들어서면서 섬의 원시성은 사라지고 을숙도는 인간의 필요에 따라 조각나고 재구성된 어정쩡한 자연으로 남았다.이 섬은 우리나라가 근대화와 국토 개발 과정에서 취해 온 자연에 대한 태도를 그대로 기록한 오픈 아카이브이기도하다.부산현대미술관은 바로 이 하굿둑이 섬을 가로지르며 만든 도로에 면해 있어 달리는 자동차에서 바라보면 미술관의 파사드가 거대한 광고판처럼 보인다.민물과 바닷물을 가르는 대규모 토목 구조물에 붙어 있는 부산현대미술관은 입지적 특성 때문에 본래 의도와는 상관없이 섬의 얼굴 역할을 하는 대표성을 가지게 되었다.하굿둑,생태 공원,체육 시설,문화 회관,피크닉 광장,에코센터,미술관,매립지,체험장 등 저마다의 땅따먹기로 조각난 이 섬은 매력적인가?부산현대미술관이 이러한 섬의 역사와 무관하게 간판 역할을 할 수 있을까?미술관은 섬의 역사를 끌어안고 새로운 정체성을 세울 수 있을까? ...(중략)... 각주 1. 2018년6월 서울에서 개최된 토론회에서 나온 패트릭 블랑의 발언에서 따온 제목이다. *환경과조경365호(2018년9월호)수록본 일부 김아연은 서울대학교 조경학과와 동대학원 및 미국 버지니아 대학교 조경학과를 졸업했다.조경 설계 실무와 설계 교육 사이를 넘나드는 중간 영역에서 활동하고 있다.국내외 정원,놀이터,공원,캠퍼스,주거 단지 등 도시 속 다양한 스케일의 조경 설계 프로젝트를 담당해 왔으며 동시에 자연과 문화의 접합 방식과 자연의 변화가 드러내는 시학을 표현하는 설치 작품을 만들고 있다.자연과 사람의 관계에 대한 아름다운 꿈과 상상을 현실로 만드는 일이 조경 설계라고 믿고,이를 사회적으로 실천하는 일을 중요시 한다.현재 서울시립대학교 조경학과 교수이자 스튜디오 테라 대표다.
뎃퍼드 마켓 야드
런던에 마차와 기차가 공존하던 시절, 뎃퍼드(Deptford)의 캐리지 램프(Carriage Ramp)는 기차역과 연결된 마차용 진입로였다. 런던 최초의 기차역을 따라 세워진 역사적 구조물이지만 도시가 발전하면서 점차 사람들에게서 잊히고 방치된 램프를 따라 주변 환경도 점점 낙후되었다. 하지만 2008년 ‘뎃퍼드 타운 중심지구 재개발 계획(Deptford Town Centre Regeneration)’이 수립됨에 따라, 뎃퍼드 역의 역사 자원을 복원하고 재활용하며 지역 커뮤니티를 위한 공공 공간과 주거지를 제공하는 ‘뎃퍼드 프로젝트(The Deptford Project)’가 시작됐다. 뎃퍼드 프로젝트는 건축, 조경, 소상공인 유치 전략을 아우르는 종합 계획으로, 본격적인 공사 전 시민들의 인식을 바꾸는 작은 파일럿 프로젝트가 선행됐다. 1960년대 사용했던 객차를 이색적인 카페와 레스토랑으로 임시로 개조해 스타트업을 유치하거나 주민 커뮤니티 활동을 위한 공간으로 활용했다. 이후 캐리지 램프와 인접한 위치에 독특한 외관의 아파트인 옥타비우스 하우스(Octavius House)가 신축되어 약 120세대를 위한 주거 공간이 마련됐으며, 기존의 낡은 세인트 폴 하우스(St Paul’s House)도 리모델링됐다. 외부 공간 계획은 PTE(Pollard Thomas Edwards) 건축사무소와 협업해 진행했다. 대상지는 오랜 시간 방치됐을 뿐만 아니라 역사 유산, 기차역, 길거리 시장으로 둘러싸여 상당히 복잡한 곳이었다. 먼저 안전 문제로이용할 수 없었던 캐리지 램프를 중점적으로 복원하고 활용했다. ...(중략)... * 환경과조경 365호(2018년 9월호) 수록본 일부 Landscape Architect Farrer Huxley Associates Architect Pollard Thomas Edwards Structural EngineerPEP Group M&E Consultant AECOM Sustainability Consultant AECOM ContractorBower Contracting Local Authority London Borough of Lewisham ClientU+I and London Borough of Lewisham Location Deptford, London, UK Construction Cost £3.4 million Area 3,700m2 Design 2012~2014 Completion2016 Photographs The Deptford Project, Farrer Huxley Associates 패러 헉슬리 어소시에이츠(Farrer Huxley Associates)는 사회적이고 지속 가능한 커뮤니티를 만드는 데 조경이 큰 역할을 한다고 믿는다. 식재 디자인부터 환경에 대한 풍부한 지식과 공간 설계까지 폭넓은 전문성을 기반으로, 사람 중심의 디자인 방식을 추구한다. 지역 커뮤니티를 설계 프로세스의 중심에 배치함으로써 지역 참여 및 활성화 분야에서 활발히 활동하고 있으며, 조경 설계를 통해 개인과 커뮤니티 간의 조화를 구현해 나가고자 한다.
인더스트리 시티 코트야드 5-6
해안가 산업 단지의 변화 뉴욕 브루클린 선셋 파크(Sunset Park)지역의 인더스트리 시티(Industry City)는 과거 부시 터미널(Bush Terminal)이라 불렸던 곳이다. 상품 제조부터 보관, 운송이 한데 이루어지고 철도와 선박 운송 시스템을 모두 갖춘 미국 최대의 복합 산업 단지였다. 2012년부터 이곳의 역사적 기반 시설을 보호하고 현대화하기 위한 재개발이 진행되었다. 현재 600개 이상의 창의적 기업이 입주하여 미래의 장인이나 기능공, 소규모 사업자를 위한 대규모 쇼핑 및 문화 공간으로 새롭게 거듭나는 중이다. 이 재개발 계획의 일환인 ‘인더스트리 시티 코트야드5-6(Industry City Courtyard 5-6)’은 기존의 공장 건물 사이에 위치한 네 개의 중정 중 하나를 재단장하는 프로젝트다. 1974년까지 화물 선적용 부두로 사용되던 코트야드 5-6은 우거진 숲, 잔디밭, 휴게 공간이 어우러진 풍요로운 경관으로 변모되어 폐쇄된 산업 시설에 숨결을 불어 넣고 있다. ...(중략)... * 환경과조경 365호(2018년 9월호) 수록본 일부 Landscape Architect Terrain-NYC General Contractor The Todd Group Client Industry City Location 581 2nd Avenue, Brooklyn, New York, USA Area 3,112m2 Budget $1,200,000 USD Design 2015 Completion 2016 Photographs Industry City, Terrain-NYC 터레인-NYC(Terrain-NYC)는 뉴욕을 근거지로 활동하는 조경설계사무소로 생태적·사회적으로 의미 있는 경관을 창조해 나간다. 생태적 맥락 속에서 작업의 틀을 잡고, 도시 생활과 자연을 연결하여 지역 사회를 풍요롭게 하는 데 중점을 두고 있다. 빗물 재활용 시스템 구축, 친환경적 재료 사용, 자생 식물 서식지 형성 등을 통해 지역 생태계를 강화하는 방법을 적극적으로 모색한다. 세심한 디자인과 깊은 고민으로 빚어낸 공간은 개인이 일하고 놀고 살아가는 데 긍정적인 영향을 준다는 것을 증명하고 있다.
파룸 미트풍크트
파룸 미트풍크트(Farum Midtpunkt)는 1970년대 조성된 사회 주거 단지(social housing)로 덴마크 셸란 섬(Sjælland)북부에 위치한다. 조성 당시 목표는 폐쇄적 분위기의 지역 사회에 단독 가구를 위한 공간과 공공 기능이 결합된 공간을 만드는 것이었다. 주민들은 파룸 미트풍크트가 주변 지역에 좀 더 개방적이며, 조성 의도가 더욱 부각된 곳으로 바뀌기를 희망했다. 단지는 여가 공간, 작은 광장이 있는 산책로, 주차장 등으로 구성된다. 건물 아래에 자리한 주차 시설에서는 계단을 통해 바로 주택으로 이동할 수 있는데, 이로 인해 보행자와 차량이 완벽히 분리된다. 건물 사이를 가로지르는 공중 산책로는 공간 전체의 골격을 형성하고 일종의 틈을 만들어 낸다. 이 틈새에 독특한 야생 식물을 식재해 특징적인 경관을 연출했다. 산책로는 여러 장소로 이어지는 지름길로 기능하며, 산책로에 설치된 띠 형태의 LED 조명은 산책로 아래에 빛을 비추어 부드러운 분위기를 자아낸다. ...(중략)... * 환경과조경 365호(2018년 9월호) 수록본 일부 Landscape ArchitectsRambøll Architecture and Urban Development EngineerRambøll Denmark A/S Lighting Consultant Rambøll Architecture and Urban Development Client Furesø Boligselskab Location Farum, Denmark Design 2012 Completion2016 Photograghs Francesco Galli, Jens Frederiksen, Rambøll 램볼(Rambøll)은 엔지니어링, 디자인, 컨설팅 분야를 선도하는 사무소로 여려 분야의 전문가로 구성되어 있다. 스칸디나비아 반도, 영국, 북미, 유럽, 중동, 아시아 태평양 등지 등 전 세계를 무대로 다양한 활동을 펼치고 있다. 어려운 문제에 탁월하면서도 적확한 해결책을 도출하기 위해 노력한다. 이를 통해 클라이언트, 공간의 사용자뿐 아니라 사회 전반에서 의미 있는 변화를 끌어낼 수 있다고 믿는다.
[그들이 설계하는 법] 식물의 선
3회 연재의 마지막 글이다. 첫 회에는 ‘분위기, 맥락, 주제’라는 키워드로 설계의 방향을 결정하는 요소(설계적 개념)를 다루었고, 2회 차에서는 ‘스케일’을 주제로 개념을 실재화하는 구체적인 방식(설계적 문법)을 논의했다. 이번 3회 차에서는 물리적 실체가 있는 설계 요소, 즉 설계 재료(설계적 어휘)에 대한 생각을 이어 간다. 조경이 다루는 설계 재료는 꽃과 나무 같은 식물 재료, 돌이나 철 같은 무기 재료, 빛, 바람, 습도 같은 물리적 환경 요소 등 무수히 많지만, 본 연재에서는 조경 설계의 가장 기본적인 재료라고 할 수 있는 식물에 관한 개인적 관점을 소개한다. 자연을 다루는 작곡가 “저는 조경학과를 나왔지만 나무는 잘 몰라요.” 업계에서 일을 하다보면 이렇게 말하는 이들을 심심치 않게 만난다. 미학, 계획, 설계, 역사, 이론, 생태학 등 그 앞에 조경을 붙일 수 있는 다양한 세부 학문이 있기 때문에 경우에 따라 다르겠지만, 만약 이런 이야기를 하는 이가 설계가라면 분명히 문제다. 조경 설계에 있어 식물은 가장 중요한 설계 재료 중 하나이기 때문이다. 식물에 대한 이해는 선택이 아닌 필수 조건이다. 재료에 대한 이해가 부족한 설계가는 악기의 소리에 대한 이해가 부족한 작곡가에 비유할 수 있다. 악기 소리를 깊이 이해하지 못하더라도 화성학 같은 음악 이론을 바탕으로 곡을 만들 수는 있다. 그런데 과연 그렇게 만든 곡이 듣는 사람을 감동시킬 수 있을까? 더욱이 그 곡이 하나의 악기로 연주하는 독주곡이 아니라 여러 악기를 함께 연주해야 하는 협주곡이라면 어떨까? 다양한 소리가 함께 만들어 내는 아름다운 하모니를 위해 작곡가는 각 악기의 소리는 물론이거니와 그 소리들이 만났을 때 발생하는 음색의 변화도 이해하고 있어야 한다. 조경가는 자연을 다루는 작곡가 같은 역할을 한다. 악기 소리에 해당하는 식물 재료의 특질을 깊이 이해할 필요가 있다. 그렇다면 설계 재료로서 식물을 어떻게 배우고 익혀야 할까? 악기 소리는 직접 연주해 보고 그 음을 들어 봐야 깊게 이해하고 다룰 수 있듯이, 식물 재료도 직접 보고 만지고 심어 봐야 알 수 있다. 글을 통해 배울 수 있는 많은 것이 있지만 적어도 식물을 다루는 방법은 글로 익히기 어렵다. 설계가의 몸이 직접 식물과 만나면서 배워야 하는 일이다. 식물 없는 식재 설계 학창 시절 불편함을 느끼게 하는 표현이 있었다. 바로 ‘빵빵이를 돌린다’는 말이다. 식물에 일자무식이었던 신입생들에게 주어진 첫 번째 스튜디오 수업의 과제는 주택 정원 설계였다. 지금은 잘 쓰지 않겠지만 그 당시에는 제도용 손 도구 중 여러 가지 크기의 원이 뚫린 도형자가 있었다. 그때의 식재 설계란 하얀 바탕 위에 나무를 상징하는 여러 크기의 원을 보기 좋게 배치하는 일이었다. 때로는 컴퓨터 툴을 활용해 나무 이미지를 붙여 넣는 작업을 하기도 했는데, 도형자의 원이 나무 형태의 심벌로 바뀌었을 뿐 결국 하는 일은 같았다. ‘빵빵이를 돌린다’는 말은 나무를 잘 모른 채 식재 설계를 하는 행위를 향한 자조 섞인 표현이었다. 이렇게 작성한 도면이라면 그 안에 진정한 의미의 식물이 있을 리 만무하다. 실체는 없고 공허한 개념만이 부유할 뿐이다. 학생이 아니라 현업에 있는 동시대의 젊은 조경가들은 식물을 충분히 이해하고 있는가? 종종 젊은 설계가와 교류할 기회가 있는데, 공간에 대한 예리한 감각, 창의적 표현, 세련된 의사 전달 방식 등 탁월한 능력을 가진 이들이 많다. 그런데 그런 이들조차 정작 식물에 대해서는 잘 모르는 경우가 있다. 식물의 생물학적 특성을 모른다는 뜻이 아니다. 공간을 구성하는 회화적 표현 재료로써 식물에 대한 이해도가 낮다는 이야기다. 나 역시 마찬가지지만, 색과 질감, 양감 같은 공간의 구성 요소를 식물 재료로 표현하는 데 미숙한 젊은 조경가가 많다. 랜드스케이프 어바니즘 담론이 중요했던 지난 십여 년간 한국 조경은 공원 스케일의 프로젝트에 전념해 왔다. 조경가를 양성하는 대학도 이 같은 흐름에 발맞추어 왔다. 공간에 대한 종합적 구성, 빈틈없는 프로그래밍, 설계 개념을 전달하는 강력한 표현 전략같이 큰 프로젝트를 다룰 때 유용한 방법을 주로 다루었다. 반면에 식물 소재의 선, 색, 질감 등에 대한 교육은 부족했다. 몇 차례의 특강 또는 실습만으로 이를 해소하고자 했다. 이런 주제는 지극히 주관적으로 해석될 여지가 있으므로 개인적인 차원에서 배워 나가야 하는 부분이라 간주하고 미루어 놓기도 했다. 그렇다면 조경 설계 실무를 시작하면 식물을 배울 기회가 많은가? 꼭 그렇지는 않은 듯하다. 법적 조경 감리 제도가 없는 우리나라에서 설계가들은 식물을 가까이 마주하며 다루어 볼 기회를 좀처럼 갖기 어렵다. 학교 교육에서 모자랐던 부분이 실무에 종사하면서도 여전히 해소되지 못한다. 식물에 대한 이해도를 높이고 더 좋은 식재 설계를 하기 위해 젊은 설계가들은 나름의 해법을 모색하고 있다. 어떤 이는 정원을 설계하는 회사에 취직하거나 정 원박람회에 참여해 개인적 차원에서 식물을 익히고자 노력한다. 어떤 이는 식재 설계가 중요한 프로젝트에 서 정원 디자이너와 협업해 부족한 부분을 배우고자 한다. 또 어떤 이는 식물을 깊게 알고 싶어서 설계 사무실에서 퇴사하고 식물원에 취직을 하는 강수를 두기도 한다. 이러한 노력을 하는 이들이 마음에 품은 공통된 생각은 아마도 이런 것이 아닐까? “더 이상 식물 없는 식재 설계를 하고 싶지 않다.” 식물의 선 학생일 때 나는 식물의 색, 질감, 형태에 대한 나름의 생각이 있었지만, 형태의 세부적인 구성 요소라고 할 수 있는 선線에 대해서는 구체적인 설계 관점이 없었 다. 식물이 갖는 선에 관심을 가지고 살펴보기 시작한 것은 정원 설계를 하는 회사에 취직하고 식물을 일상 적으로 마주하며 일하면서부터다. 우리는 흔히 어떤 대상의 외양을 묘사할 때 ‘선이 곱다’ 혹은 ‘선이 투박하다’는 표현을 하곤 한다. 선이 아름다운 사람, 선이 아름다운 자동차, 선이 아름다운 옷, 선이 아름다운 풍경 등 우리는 일상에서 아름다운 선을 수없이 보고 경험한다. 그렇다면 이렇게 자문해 보자. 선이 아름다운 나무, 선이 아름다운 풀, 선이 아름다운 꽃이란 어떤 것일까? 누군가 이에 대해서 나름의 생각을 자세히 설명할 수 있다면 그(녀)는 평소 식물의 형태를 눈여겨본 사람이다. 모든 사물이 그렇듯 식물도 선을 가지고 있다. 땅에서 하늘을 향해 자라면서 아래부터 위를 향해 점점 얇아 지며 뻗어나가는, 자연의 생명력을 느끼게 하는 선이 바로 식물의 선이다. 이런 선은 수종마다 다르고 또 같 은 수종이라도 개체 하나하나마다 다 다르다. 여름철 이면 이 선들이 잎에 가려져 두드러지지 않지만, 잎이 진 겨울이면 선명하게 드러난다. 눈에 띄는 가지가 없 는 풀과 꽃에도 선이 있는가? 당연히 그렇다. 봄부터 겨울까지 성장하는 가느다란 줄기 또는 억새처럼 가늘 고 긴 잎 등이 풀과 꽃의 선을 만든다. 어떤 선은 가늘 고 섬세하며 어떤 선은 굵고 투박하다. 어떤 선은 가지 런하고 어떤 선은 어지럽게 교차한다. 큰 나무에도 선이 있고 작은 풀과 꽃에도 선이 있기에 정원 안에서는 수많은 선이 교차한다. 정원 전체의 풍 경이 아름답게 느껴지려면 그 안의 무수히 많은 선이 질서를 가지고 조율되어야 한다. 선을 어떻게 조율하 는가? 나름의 방식이 있겠지만 내가 배운 방법은 제일 먼저 큰 선, 그 다음에는 중간 스케일의 선, 마지막으로 가장 작은 선을 다듬어 나가는 것이다. 어떻게 보면 이는 화가가 캔버스 위에 그림을 그리는 일과 유사하다. 큰 밑 선을 먼저 그리고 나서 단계적으로 작은 선 을 정리해 나간다. 이런 점에서 정원 일은 회화와 많이 닮아 있다. 다만 회화에서는 대개 평면 작업이 주를 이루지만, 조경은 3차원의 공간을 다룬다. 이 때문에 선을 조율하는 일 역시 다각도의 시선을 고려해야 한다. 어떤 시점에서 볼 때 아름다운 선의 흐름이 다른 시점 에서는 굉장히 부자연스럽게 느껴지기도 한다. 경우에 따라 한 시점에서의 완벽함을 포기하더라도 전체적으 로 좋게 보이는 최적의 선을 찾아야 할 때도 있다. 경 험 많은 설계가라면 최선이라 할 수 있는 선을 빠르게 찾아내겠지만, 식물의 선을 읽는 경험이 적은 설계가 라면 이를 쉽사리 발견하기 어렵다. 나무의 선 식물의 선 중에서도 나무의 선은 특히 중요하다. 큰 나 무의 선은 공간의 골격과 전체적인 분위기를 만들기 때문이다. 나무를 심을 때는 전체적인 수형뿐만 아니 라 나뭇가지 선 하나하나의 흐름을 세심하게 살펴봐야 한다. 선의 흐름은 나무가 본래 어느 방향으로 자라고 있었는지 보여주는 것으로, 그 선을 잘 살려 심으면 본래부터 그 자리에 있었던 듯 느껴지고 곁에 다가선 사람에게 편안함을 준다. 반대로 선에 대한 고민 없이 무 심하게 심긴 나무는 주변 풍경과 부조화를 이룬다. 수많은 종류의 나무는 저마다 고유한 선을 갖는다. 예를 들어 단풍나무는 기둥부터 중간 가지 그리고 잔가 지에 이르기까지 그 선이 큰 굴곡 없이 매끈하게 이어 진다. 그래서 전체적으로 섬세하고 고운 곡선의 아름다움이 느껴진다. 그에 반해 배롱나무는 잔가지가 적고 가지가 분지되는 부분마다 큰 굴곡이 있어 꺾인 선 이 강조되는 특징을 갖는다. 단풍나무보다는 투박하게 보이는 선이지만 그것이 오히려 조형성을 느끼게 한다. 어떤 나무의 선은 다른 나무보다 무겁게 느껴진다. 느티나무의 선은 가지에 비해 기둥부가 굵은 특징을 지 니는데, 마치 큰 붓으로 그린 나무처럼 묵직한 인상을 준다. 매화나무의 선도 흥미롭다. 다른 나무보다 상대 적으로 키가 작고 큰 가지가 옆으로 퍼진 후 작은 가지가 이리저리 불규칙하게 자라는 매화나무의 선은, 얼핏 보았을 때는 어지럽고 산만하지만 다른 한편으로 그런 불규칙한 선이 독특한 조형미를 보여 준다. 과거 선비들이 그린 사군자 속의 매화나무에도 그런 아름다움이 잘 표현되어 있다. 노각나무의 선도 독특하다. 노각나무는 자작나무처럼 주 가지가 수직으로 길게 자 란다. 그런데 보통의 나무는 가지가 나무 바깥쪽에서 나무 기둥 쪽으로 안으로 굽듯이 자라는 반면, 노각나 무는 종종 가지가 안에서 바깥으로 꺾이며 자란다.비유하자면 팔꿈치가 몸 안으로 굽는 것이 아니라 몸 바깥으로 굽는 격이다. 나무를 바라보는 설계가의 관점은 모두 다를 것이다. 중요한 것은 조경가가 나무가 갖는 고유한 선을 섬세 하게 읽어 내고 자기의 방식대로 해석하고 설계 재료로 활용할 수 있어야 한다는 것이다. 나무의 전체 수형 만 생각하고 진행하는 설계와 가지의 디테일한 선까지 고려하는 설계에는 큰 차이가 있다. 후자와 같은 방식 으로 설계를 하고 시공할 때 기존 환경에 자연스럽게 녹아든 공간을 만들 수 있다. 조경가 김용택이 설계한 여주 주택은 이해를 도울 수 있는 적절한 사례다. 주택의 현관 옆에 심은 낙상홍 한 그루에 관한 이야기다. 건축을 압도하지 않는 적절한 스케일의 나무를 선정하고 가지의 선을 공간에 맞추어 심어, 마치 오랜 시간 그 자리에서 공들여 키워온 나무 처럼 보이게 했다. 기둥이 하나인 큰 나무를 심지 않고 땅에서부터 가느다란 가지가 여러 개 올라오는 다간형 나무를 심음으로써, 큰 선에 해당하는 건축의 외곽선이 그대로 느껴지도록 하는 동시에 공간에 적절한 양감을 부여했다. 초화의 선 나무에 선이 있듯이 초화에도 선이 있다. 초화의 선을 만드는 요소는 나무보다 더 다양하고 복잡하다. 나무 의 선은 가지의 흐름에 따라 만들어지지만, 하나의 정원을 만들 때도 수십 가지 종류가 쓰이는 초화 식물 의 경우, 선을 구성하는 요소도 매우 다양하다. 바늘 꽃이나 부처꽃처럼 긴 줄기가 큰 선을 만들기도 하고, 범부채나 유카처럼 독특하게 생긴 잎이 선을 형성하기도 한다. 톱풀이나 원추리같이 꽃이 필 때만 올라오는 긴 꽃대가 선을 느끼게 하기도 하며, 꼬리풀처럼 독특 하게 생긴 꽃 자체가 흥미로운 선을 보여 주기도 한다. 털수염풀처럼 하늘을 향해 나풀거리는 선을 만드는 식 물도 있고, 줄사철 같이 땅을 기는 듯한 수평적 선을 가진 식물도 있다. 모닝라이트 억새같이 길고 섬세하 게 느껴지는 선을 갖는 식물이 있는가 하면, 은쑥처럼 잎이 짧고 촘촘해서 하나의 덩어리처럼 보이는, 그래 서 선은 거의 느껴지지 않고 질감이 더 드러나 보이는 식물도 있다. 초화를 식재할 때 단일 수종을 군식하기도 하지만 비 교적 작은 공간에 수십 가지의 수종을 혼식하는 경우도 많다. 이런 경우 수많은 종류의 초화의 선을 어떻게 조화시켜야 할까? 화가가 캔버스 위에서 선과 질감을 표현하는 방식이 모두 다르듯, 조경가도 저마다 초화 의 선을 조율하는 방식이 모두 다를 것이다. 나는 크게 두 가지 정도의 원칙을 가지고 초화의 선을 조율한다. 첫 번째 원칙은 식물의 선이 서로 상충하지 않도록 식재하는 것이다. 만약 한 지점에 큰 선을 갖는 식물을 심었다면 그 주변에는 선이 강한 식물을 심지 않고, 대신 색, 질감, 양감 등을 보충하는 식물을 함께 심는다. 이렇게 함으로써 강한 선의 아름다움은 돋보이게 하는 동시에 공간에 전체적으로 안정감을 부여한다. 두 번째 원칙은 식재 시점의 완성도에 관한 것인데, 식 물이 갖는 선의 결을 맞추는 것이다. 조금 모호하게 들 릴 수 있겠지만, 이는 앞서 나무의 선을 결정할 때 본 래 그 자리에서 자란 나무처럼 심는다고 한 것과 같 은 맥락의 이야기다. 즉 여러 가지 초화를 혼식하더라 도 식물들이 본래 그 자리에서 함께 태양을 바라보며 자란 듯 선의 방향이 자연스럽게 느껴지도록 식재하는 것이다. 크고 작은 선이 방향성을 가지고 켜켜이 쌓 이면 하나의 결처럼 느껴진다. 이렇게 심을 경우 비교 적 단기간에 안정되어 보이는 초화 공간을 연출할 수 있다. 초화의 색과 질감만을 고려하고 작은 선을 읽지 않은 채 식재할 경우, 누군가 헤집어 놓은 듯 어수선한 모습의 공간이 된다. 시간이 지나면 식물들이 태양을 따라 반응하며 자연스럽게 선을 잡아 나가겠지만, 제 법 시간이 걸리는 일이다. 잔잔한 것이 더 아름답다 자연을 담은 공간을 설계하고 짓는 일을 하면서 느낀 점 한 가지를 공유한다. 주로 정원을 만드는 설계 사무소에 취직하고 얼마 되지 않아 이런 질문을 한 적 이 있다. “소장님은 어떤 나무가 좋으세요?” 설계가로 서의 기호를 묻는 질문에 그는 이렇게 답했다. “글쎄, 다 좋다. 다 좋은 점이 있다.” 몇 년이 지난 지금, 그 답 을 조금씩 이해해 가는 것 같다. 나무도 꽃도 저마다의 아름다움을 가지고 있다. 일견 개성이 없고 평범해 보 이는 풀 한 포기도 자세히 바라보면 아름다운 구석이 있다. 잔잔한 아름다움을 갖는 풀이 없다면 그 옆에 있 는 화려한 꽃의 아름다움도 드러나지 않는다. 시간이 지날수록 주변을 빛나게 하는, 자기 본연의 가치를 드 러내는 그런 잔잔한 것이 더 아름답다(연재 끝). 최재혁은 서울대학교 조경학과 졸업, 동대학원에서 조경학으로 석사 학위를 받은 후, KnL 환경디자인 스튜디오에서 정원과 조경 설계 실무를 익혔다. 수상 경력으로 제8회 대한민국 환경조경대전 대상, 제3회 대한민국 신진조경가 대상 설계공모전 대상, 2017 코리아가든쇼 대상 등이 있다. 2017년 한강예술공원 시범사업의 참여 작가로 선정되었으며, 같은 해 스튜디오 오픈니스(Studio Openness)를 창업하여 생태적 관점을 바탕으로 정원, 공공예술 분야에서 폭넓은 활동을 하고 있다.
[다른 생각, 새로운 공간] 명주의 경관
누구에게나 술에 관한 기억이 있다. 신입생 환영회에서 사발을 들이키던 시큼털털한 상투적 레퍼토리, 언젠가부터 속속 생기기 시작한 와인바에 여친을 데려갔다가 높은 가격에 놀란 자존심을 지켜 주었던 고마운 칠레산 와인, 할아버지 묘소 잔디 위에 뿌려 주고 마시지도 않았던 제례주, 동네 성당의 신부님이 맛보라며 권해 주신 달달한 국산 포도주 마주앙 등 주량이 매우 적은 나에게도 술과 얽힌 인연은 지겨울 만큼 많다. 술은 억지로 마셔야 하는 것 혹은 고통스러운 것이라는 등식은 다행히 사양할 줄 아는 나이가 되면서 점점 사그라들었지만, 잔뜩 취해야만 하는 우리 문화만 탓했지 우리 술의 단조로운 시시함이 그 원인일 거라는 의심은 꿈에도 하지 못했었다. 스물다섯 즈음이었나, 일본 구마모토에서 그들이 소주라며 내온 술을 마신 그날 밤은 내 알코올 인생의 전환점이었다. 이후 외국에서 술을 접할 기회가 있을 때마다 그동안 술의 전부라고 알아왔던 소주와 맥주에 배신감이 들 정도였다. 술은 당연히 수입이어야 한다고 굳게 믿었다. 세상 좋은 술을 어렵지 않게 구할 수 있는 시대가 되고 꽤 고가의 술을 나누며 행복할 수 있어 좋지만, 그럼에도 여느 전시회 오픈식에 가서 으레 서빙되는 와인을 홀짝거리자면 뭔가 이건 좀 아니라는 생각이 들 무렵이었다. 우연히 알게 된 국산 와인을 접했다. 토종 농산물 오미자로 만든 술이었다. 왠지 소비해 줘야 할 것 같은 의무감으로 잔을 들긴 했지만 의외로 품질이 놀라웠다. 국산 와인 몇 가지에 대한 그리 탐탁지 않던 기억을 말끔히 밀어내는 멋진 경험이었다. 몇 달 후 전시회 오프닝 때 내놓았는데 반응이 좋아 금방 동이 났다. 술에 대해 물어보는 사람들에게 답해 주기 위해서 약간의 리서치를 한다는 게 그만 인터뷰로 이어졌다. ‘오미로제’가 만들어지는 문경은 경북 내륙의 첩첩산중이다. 고속 도로 개통으로 접근성이 훨씬 높아졌지만 소백산맥 언저리의 이 지역은 여전히 가 볼 일이 별로 생기지 않는 국토의 구석이다. 이종기 대표의 구상은 크고도 아름다웠다. 프랑스의 부르고뉴, 미국의 나파 밸리, 일본의 구마모토처럼 계곡마다 양조장들이 자리 잡아 지역에서 생산되는 과일로 술을 빚는다면, 더군다나 우리 사회의 거친 술 문화를 바꿀 만큼의 세계적 명주가 생산된다면, 그건 단순히 풍경이 바뀌는 문제가 아니라 우리 문화의 저변을 개혁하는 의미 깊은 작업이다. ...(중략)... * 환경과조경 365호(2018년 9월호) 수록본 일부 최이규는 1976년 부산 생으로 10여 년간 실무와 실험적 작업을 병행하며 저서 『시티오브뉴욕』을 펴냈고, 북미와 유럽의 공모전에서 수차례 우승했다. UNKNP.com의 공동 창업자로서 뉴욕시립미술관, 센트럴 파크, 소호와 대구, 두바이, 올랜도, 런던, 위니펙 등에서 개인전 및 공동 전시를 가졌다. 울산 원도심 도시재생 총괄코디네이터로 일했으며, 현재 계명대학교 도시학부 생태조경학전공 교수로 재직하고 있다.
[정원 탐독] 식물, 인간 그리고 가능성
큐가든과 카를로스의 추억 2008년 9월부터 2009년까지 나는 정원 디자인 학업을 중단하고 영국 왕립식물원인 큐가든에서 인턴 정원사 생활을 시작했다. 처음으로 일했던 곳은 열대 식물 재배 온실(Tropical Nursery)인데, 이곳의 주된 업무는 전 세계 열대 우림 지역에서 자생하는 식물을 재배하고 보존하는 일이었다. 매일 온실에 도착해 씨앗에서 발아되어 손가락 한마디쯤 자란 열대 식물을 더 큰 화분에 옮겨 심어 주거나, 벌레를 잡아 영양분을 보충하는 식충 식물에게 물을 주고, 사막 기후에서 자생하는 식물의 상태를 점검하곤 했다. 내가 하는 일을 관리·감독하는 매니저가 있었는데, 그들은 큐가든의 3년제 대학을 졸업한 식물·원예 전문가였다. 그중 한 사람이 스페인 출신의 카를로스(Carlos Magdalena)였다. 카를로스와는 매일 아침 회의가 있을 때 마주하고 그로부터 작업을 지시받기도 했다. 스페인어 억양이 강한 영어 탓에 다른 사람들보다 그의 말에 더 많이 집중해야 했던 기억이 생생하다. 하지만 지금 생각해보니, 자신은 원래 소믈리에 출신으로 레스토랑에서 일했고 큐가든에 들어온 후에는 멸종 위기의 식물을 다시 살려내는 데 정말 오랜 시간을 보냈다는 등의 수다스러운 대화가 추억으로 남아 있다. 1년 후 큐가든과의 인연이 끝나면서 그와의 인연도 끝인가 싶었다. 하지만 2017년 그의 책 『식물 메시아(The Plant Messeiah: Adventures in Search of the World’s Rarest Species)』를 영국의 어느 서점에서 만나면서 카를로스의 활약을 좀 더 깊게 알 수 있었다. 번식이 중단된 식물, 라모스마니아 카를로스의 책은 인도양의 섬 로드리게스에 자생하고 있는 멸종 위기의 식물을 큐가든에서 자신이 어떻게 살려냈는지에 대한 노력과 성공의 기록이다. 수십 제곱킬로미터 넓이의 산호로 둘러싸여 보호되고 있는 섬, 로드리게스는 지금도 산호 때문에 배로는 진입이 불가능해 비행기로만 착륙이 가능하다. 이런 상황 탓에 로드리게스 섬은 그간 외부 식물의 침입 없이 태초의 모습을 그대로 간직한 식물의 보고가 될 수 있었다. 하지만 이 섬도 서방 세계와의 접촉이 생기면서 자생 식물이 자라던 숲이 사라지고 대규모 농장이 들어서는가 하면, 도로가 발달해 자생 식물은 물론 그 식물을 터전으로 삶고 사는 동물의 멸종이 급속화되는 후유증을 앓고 있다. 식물의 멸종은 어느 날 갑자기 식물이 사라져 버리는 것이 아니다. 식물이 더 이상 씨앗을 맺지 않는 일이 먼저 발생한다. 식물의 보고였던 로드리게스 섬은 지금은 더 이상 번식을 하지 않는 식물이 즐비한 “죽은 생명체의 섬”이라는 오명을 쓰고 있다. 살아 있지만 번식이 끝난 죽은 식물 중 하나가 바로 카를로스가 살려낸 식물 라모스마니아(Ramosmania rodriguesi)다. 라모스마니아라는 식물이 과학계에 처음 등장한 것은 이 섬의 원주민이자 교사인 레이먼드 아키로부터였다. 평소에도 식물에 관심이 많았던 레이먼드는 자신의 학생에게 인근에 보이는 식물 채집을 과제로 시켰고, 이렇게 채집된 식물을 수업 시간에 활용했다. 식물의 학명을 확인하고 그 식물이 자라는 환경과 우리에게 주는 영향을 공부하는 과정이었다. 그런데 이때 학생 중 한 명인 헤들리 매넌이 가져온 식물이 좀 이상했다. 로드리게스에서 흔히 볼 수 있는 식물이지만 식물의 속과 이름을 알아가는 과정에서 그 어떤 식물과도 공통점을 발견할 수 없었기 때문이었다....(중략)... * 환경과조경 365호(2018년 9월호) 수록본 일부 오경아는 방송 작가 출신으로 현재는 가든 디자이너로 활동 중이다. 영국 에식스 대학교 리틀 칼리지에서 조경학 석사를 마쳤고, 박사 과정 중에 있다. 『정원생활자』, 『시골의 발견』, 『가든 디자인의 발견』, 『정원의 발견』, 『낯선 정원에서 엄마를 만나다』 외 다수의 저서가 있고, 현재 신문,잡지 등의 매체에 정원을 인문학적으로 바라보는 칼럼을 집필 중이다.
[이미지 스케이프] 칠면초의 숲
그야말로 기록적으로 뜨거운 여름입니다. 40도에 육박하는 온도가 이젠 그리 낯설지 않네요. 이 글을 읽으실 때는 좀 더위가 꺾였겠지요? 더운 여름을 조금이나마 잊을 수 있을까 해서 아주 잠깐 짬을 내 제부도를 찾았습니다. 한두 시간의 여유를 상상하고 찾은 바닷가지만, 역시 뜨거운 햇빛만 기다리고 있더군요. 이런. 제부도는 경기도 화성시에 속한 작은 섬인데, 썰물 때면 물이 빠지면서 육지와 연결되는 특이한 곳입니다. 하루에 두 번 정도 차를 타고 들어갈 수 있는데 물때를 놓치면 한참을 섬에 갇혀 있어야 합니다. 바다도 바다지만, 사실 제부도를 찾은 건 최근에 여섯 개의 컨테이너를 쌓아 새로 만들었다는 제부도 아트파크를 보기 위해서였습니다. 바다를 향한 조망 장소와 전시 공간이 잘 어우러진 작품이더군요. 아트파크를 둘러볼 때 까지만 해도 잘 몰랐는데 구경을 마치고 나니 더위의 진면목을 제대로 느끼게 됐습니다. 게다가 밀물이 되기 전에 나와야 해서 허둥지둥 서둘러야 했습니다. 물이 턱밑까지 차오르는 도로를 따라 겨우 섬을 빠져나오니 그제야 주변을 가득 메운 빨간 색의 귀여운(?) 풀들이 눈에 들어옵니다. 칠면초. 칠면조 아닙니다! 칠면초는 바닷가에서 군생하는 붉은 색의 한해살이풀입니다. 군락을 이룬 칠면초를 멀리서 보면 마치 단풍이 물든 것 같은 모습인데 비현실적인 붉은 색 해변이 아주 장관입니다. 제부도 칠면초 군락은 그리 규모가 크지는 않았지만 둑길에서 아주 가까워서 몇 걸음만 내려가면 자세히 볼 수 있더군요. 가까이에서 본 칠면초는 군락으로 보일 때와 상당히 달랐습니다. ...(중략)... * 환경과조경 365호(2018년 9월호) 수록본 일부 주신하는 서울대학교 조경학과를 거쳐 같은 학과 대학원에서 석사와박사 학위를 받았다. 토문엔지니어링, 가원조경, 도시건축 소도에서 조경과 도시계획 실무를 담당한 바 있으며, 현재 서울여자대학교 원예생명조경학과 교수로 재직 중이다. 조경 계획과 경관 계획에 학문적 관심을 두고 있다.
[시네마 스케이프] 더 스퀘어
스톡홀름 현대미술관 수석 큐레이터의 인터뷰로 영화가 시작된다. 전시와 비전시, 공간과 비공간 등 현대 미술에 대한 개념적이고 모호한 의미를 기자가 묻는다. 수석 큐레이터인 크리스티안은 당황한다. “제가 그렇게 이야기했나요?” 미술관 운영에서 가장 중요하게 고려해야 할 점이 무엇이냐는 첫 번째 질문에 단호히 ‘예산’이라고 대답했던 것과는 다른 모습이다. 더듬거리며 억지로 대답을 만들어내자 이해 못 한 표정이 역력한 기자는 잘 알았다고 얼버무린다. 설치 작품 ‘더 스퀘어(The Square)’는 감독 루벤 외스틀룬드(Ruben Ostlund)가 2015년에 스웨덴과 노르웨이에 설치해 큰 사회적 반향을 일으켰다. 영화 ‘더 스퀘어’는 이 작품을 매개로 만들어졌다. 작품은 스톡홀름 현대미술관 전면 광장에 설치된다. 광장을 둘러싸고 있는 전통적 외관의 미술관은 왕궁을 개조한 것으로, 그 자체로도 웅장하고 아름답다. 작품 설치를 위해 중앙에 있던 청동 기마상을 들어 올리자 기마상이 덜컹거리며 파손되는 장면은 두 시간이 넘는 긴 상영 시간 동안 벌어질 소동을 암시한다. 파상형으로 깔린 사고석 포장 위에 가로세로 4m의 사각형을 따라 포장 면을 커팅한 후 돌을 걷어 낸다. 같은 재료인 사고석을 선에 맞추어 다시 놓는다. 두 줄의 사고석 사이에 띠 조명을 설치하고 면을 다진 후 고르게 만든다. “‘더 스퀘어’는 신뢰와 배려의 공간으로 이 안에서는 모두가 동등한 권리와 의무를 갖는다”라는 해설판을 붙이는 것으로 공사가 마무리된다. 이건 또 무슨 소리인가. 크리스티안은 곤경에 처한 사람 누구나 스퀘어 안에서 도움을 청할 수 있으며 이를 통해 인간애를 강조하려는 작품이라고 설명한다. 점점 더 어려워진다. 전형적인 북유럽풍의 훤칠한 신사인 크리스티안은 전시회를 준비하는 과정에서 공적으로나 사적으로 크고 작은 어려움에 휘말린다. 출근길에 곤경에 처한 여자를 도와주다가 소매치기를 당하는 것으로 문제가 시작된다. 지갑과 핸드폰을 찾기 위해 벌인 엉뚱한 행동은 예상치 못한 결과로 이어지고 점점 걷잡을 수 없는 상황으로 치닫는다. 개인적 문제를 해결하느라 정신이 팔려 전시 홍보 영상을 제대로 체크하지 못하고, 자극적 영상이 널리 퍼지면서 비윤리적이라는 비판을 받자 큐레이터직을 사임하기에 이른다. ...(중략)... * 환경과조경 365호(2018년 9월호) 수록본 일부 서영애는 조경을 전공했고, 일하고 공부하고 가르치고 있다. 미술 작품을 설명하는 내용이 작품 자체보다 더 난해할 때가 많다. 과연 몇 명이나 그 의미를 알까라는 의심은, 이 영화를 보면서 확신으로 바뀌었다. 예술을 구구절절 설명한다는 시도 자체가 어쩌면 난센스일지도.
제1회 LH가든쇼
지난 8월 16일 세종시 무궁화테마공원에서 LH와 행정중심복합도시건설청, 세종시가 공동으로 주최하고 순천가드너협동조합이 주관하는 제1회 ‘LH가든쇼’가 개최됐다. 이번 LH가든쇼는 나라꽃 무궁화의 아름다움을 알리는 행사로, 지역 주민에게 정원 문화를 향유할 수 있는 기회를 제공하고 공공 정원의 시대적 흐름을 반영하는 것을 목표로 했다. 국내외 디자이너가 조성한10개의 정원을 선보였으며 정원 투어, 정원 상담소, 시민 정원 교육 등의 다양한 체험 프로그램을 운영했다. 무궁화테마공원 곳곳에 세계 3대 정원 축제 중 하나인 쇼몽 국제정원 페스티벌의 조직위원장 샹탈 콜뢰-뒤몽(Chantal Colleu-Dumond)과 프랑스의 디자이너 베르나르 샤퓌(Bernard Chapu)의 ‘향기, 그리고 물거품’을 비롯해 국내 디자이너가 만든 9개 정원이 조성되었다. 디자이너 선정은 지난 5월 1일부터 31일까지 진행된 공모를 통해 이루어졌다. 무궁화의 가치와 아름다움을 표현할 수 있는 디자인, 공공 정원으로서 역할 할 수 있는 창의적 디자인, 지역 주민의 활용도를 높일 수 있는 친숙하고 친환경적인 디자인이 요구되었다. 6월 4일 심사가 진행되었고, 그 결과 고태영의 ‘자연과의 숨바꼭질’, 김경훈의 ‘어머니의 마음은 하늘 같아서, 어머니의 마음은 세종 같아서’, 김효성의 ‘우리꽃 소리원’, 박종완의 ‘동천洞天, 꽃은 피고 지고 다시 또 피네’, 윤종호의 ‘품 안에서 피어나다’, 이상국의 ‘와류원(渦流園)’, 정성훈의 ‘무궁원’, 정은주의 ‘더 픽션(The Fiction), 비밀의 정원’, 최재혁의 ‘무궁산수원(無窮山水園)’이 참여작으로 선정되었다. 각 정원의 규모는 150m2내외이며 5,500만원의 조성비가 주어졌다....(중략)... * 환경과조경 365호(2018년 9월호) 수록본 일부
쓰레기 소각장의 진화
쓰레기 소각장에서 복합 문화 예술 공간으로 1995년 가동을 시작한 이래, 삼정동 소각장은 부천 주민 갈등의 중심에 자리하고 있었다. 하루 수백 톤의 쓰레기를 처리하던 소각장은 기준치의 20배가 넘는 다이옥신을 뿜어냈고, 시민들은 소각장 폐쇄를 위한 대책 위원회를 구성했다. 결국 소각장은 운영을 시작한 지 15년 만인 2010년에 폐쇄되었다. 멈춰버린 소각 시설은 그렇게 방치되다 사라지는 듯 보였다. 하지만 2014년 삼정동 소각장이 ‘문화체육관광부 폐산업시설 및 산업단지 문화재생사업’의 대상으로 선정되며 새롭게 활용될 준비에 돌입했다. 그로부터 4년이 지난 올해 6월, 1년여의 리모델링 공사를 마친 소각장은 ‘부천아트벙커 B39(이하 B39)’라는 이름으로 새로운 시작을 맞이했다. B39에서 39는 39m에 달하는 쓰레기 벙커의 깊이를 뜻한다. 고치고 남기고 ‘삼정동 소각장 문화재생사업 건축설계공모’에서 당선된 김광수 건축가(스튜디오 케이웍스 대표, 건축사사무소 커튼홀 공동대표)가 소각장의 리모델링 계획을 맡았다. 그는 건축적 개입을 최소화했다. 과거의 기억을 남김과 동시에 부족한 예산 문제를 극복하기 위한 전략이었다. 기존 건물의 골격을 거의 유지하되, 건물 동쪽에 긴 통로를 새로 만들었다. 노출 콘크리트 통로는 소각장과 비슷한 스케일과 재질로 만들어진 덕분에 원래 건물의 일부처럼 보인다. 거대한 회랑을 닮은 통로를 따라 방문객은 자연스럽게 건물 내부로 향하게 된다. 소각장은 현재 1, 2층만 재단장된 상태다. 나머지 3, 4, 5층은 향후 예산을 확보해 순차적으로 바꿔 나가겠다는 계획이다. 1층의 로비와 카페, 2층의 직원 사무실과 스튜디오 룸에서는 이곳이 과거 소각장이었다는 사실을 알아채기가 쉽지 않지만, 곳곳에 소각장의 흔적을 느낄 수 있는 공간이 적절히 남아 있다. ...(중략)... * 환경과조경 365호(2018년 9월호) 수록본 일부
10 : 13 : 14
지난 8월 22일 세월호 선체조사위원회(선조위)가 주최한 ‘세월호 선체 활용 방안 공모전’의 대상작이 발표됐다. 세월호 참사 희생자를 추모하기 위해 기획된 이번 공모는 국민들의 다양한 의견을 청취해 세월호 선체를 의미 있게 활용하는 것을 목표로 했다. 선조위는 선체를 활용한 콘텐츠, 선체를 융해하여 다른 형태로 재창조하는 방안 등 형식과 범위의 제한 없이 다양한 선체 활용 아이디어를 제시할 것을 요구했다. 심사위원회는 작품의 실현 가능성, 창의성, 효율성, 효과성, 적용 범위 및 계속성 등을 종합적으로 심사해 박우성(삼육대학교)의 ‘10 : 13 : 14’를 대상으로 선정했다. 앞으로 선조위는 유가족과 자문 위원회, 지차체 등과의 협의를 거쳐 대상작의 아이디어 일부를 세월호 추모 공원 설계안에 반영할 계획이다. 10 : 13 : 14 전남 진도군 팽목항의 2만 4,000여m2 규모 임야에 선체를 활용한 시각적·체험적 추모 공간을 조성한다. ‘10 : 13 : 14’는 세월호 참사 당일 선체가 90도로 기울었을 때의 시각 10시 13분 14초를 의미한다. ...(중략)... * 환경과조경 365호(2018년 9월호) 수록본 일부
[편집자의 서재] 아무튼, 잡지
‘생각만 해도 좋은, 설레는, 피난처가 되는, 당신에게는 그런 한 가지가 있나요?’ 에세이 시리즈 『아무튼』은 다양한 사람이 저마다 매료된 한 가지를 한 권의 책으로 소개한다. 1인 출판사 세 곳(위고, 제철소, 코난북스)이 따로, 또 같이 펴내는 이 책은 각 출판사가 추구하는 방향에 따라 필자도 주제도 가지각색이다. 피트니스, 서재, 망원동, 스웨터, 로드 무비, 일본 철도 등 이쯤 되면 다음 나올 책은 무엇을 다룰지 궁금해진다. 각기 다른 주제는 한 사람의 세계가 만들어지는 데 일조했다는 공통점으로 묶인다. 그래서 『아무튼』의 부제는 ‘나를 만든 세계, 내가 만든 세계’다. “자신만의 독특한 취향과 문화를 공유하고 전시하는 이들이 늘어나는 흐름 속에서, 이런 주제의 글들을 묶으면 좋은 시리즈가 될 것이라고 생각했다”는 기획 의도로 볼 때, 이 책의 정체성은 가벼운 정보서라기보다 취향에 관한 소소하고 사적인 기록물에 더 가깝다. 각 책의 저자는 본인이 쓰는 주제의 전문가가 아니다. 『아무튼, 피트니스』는 십여 년간 폭식과 폭음을 일삼던 인권 운동가가 ‘살기 위해’ 운동을 결심하면서 점점 운동의 즐거움을 알아간다는 내용이고, 서재 편은 목수가 저자이며, 심지어 게스트하우스 편은 약사가 쓴 책이다. 이 시리즈에 입문하게 만든 것은 다름 아닌 『아무튼, 잡지』였다. 한 독립 서점에 들러 여유롭게 책 구경을 하던 중, 서가 한 칸에 나란히 나열된 책들을 발견했다. 그냥 지나칠 수도 있었는데 그러지 못했던 것은 ‘잡지’라는 글자가 자꾸만 눈에 밟히는 탓이었다. 스스로에게 읽혀야만 할 것 같은 모종의 의무감이기도 했다. 잡지가 생산되는 주기에 삶의 박자를 맞춰가며 한 달에 한 번씩 노동의 집약체를 두 손에 받아 들었을 때, 서점 한 구석을 차지하는 잡지 코너에 누가 무슨 책을 읽고 있나 무심한 듯 곁눈질했을 때, ‘요즘 잡지 어렵지 않냐’라는 말을 아무렇지 않게 내뱉는 웬수 같은 친구 놈 앞에서 괜히 발끈했을 때, 잡지의 무게는 얼마큼 인지 잡지가 이 세계에서 차지하는 부분이 어느 정도나 되는지를 (답은 빤하니 어디 말도 못 하고) 속으로만 궁금해 했다. 취미가 독서인 사람은 여럿 봤어도 잡지를 좋아한다고 말하는 사람은 보지 못했다. 그런데 다른 것도 아닌 잡지를 다루는 책이라니. 소설도, 시도, 만화도 아닌 어떻게 잡지인 것인지, 어떤 사정이 들어 있는지 알고 싶었다. 취미가 뭐냐는 질문을 했는데 ‘잡지 읽는 거요’라는 대답이 돌아온다면? 질문하는 사람이 잡지를 즐겨 읽는 이가 아니라면 ‘네, 뭐, 그렇군요’라는 식의 슴슴한 대답이 돌아온다. 잡지 읽기가 취미라는 저자 황효진은 상대방의 이러한 미적지근한 반응에 익숙해진 지 오래다. 잡지는 저자에게 오랜 서랍장 같은 존재다. 만화 잡지 『나나』로 입문한 순정 만화의 세계, 패션 잡지에 딸려 오는 화장품으로 어설픈 화장을 해 보던 시절, 각양각색의 일본 잡지에 반해 일본어를 더듬더듬 공부하던 기억 등, 잡지를 통해 차곡차곡 쌓아 올린 개인적인 에피소드를 늘어놓는다. 하지만 이런 이야기 대부분을 공감하기 힘든 시대가 되어 버렸다. 분명히 얼마 전까지만 해도 너도나도 잡지를 읽곤 했는데, 언제부턴가 나만 읽는 시간대에 놓인 저자는 퍽 당황스럽다. 그는 사라져가는 잡지를 보면서 씁쓸한 기분을 감추지 못하다가도, 잡지에 대한 책을 쓰자니 잡지를 읽는 이유를 말하고 싶어 입이 근질거린다. 그래서 잡지에 얽힌 에피소드 사이사이 잡지를 읽는 나름의 이유(속에 감추어 둔, 잡지를 읽었으면 하는 이유)를 설명한다. 그 이유 중 하나인즉슨 ‘좀 더 제대로 살고 싶어서’란다. 잡지를 안 보면 제대로 사는 게 아닌가? 벌써부터 발끈하는 소리가 들리지만 이는 잡지에 있지도 않은 대단한 의미를 부여하려는 속셈과는 거리가 멀다. 오히려 잡지가 애당초 ‘꼭 필요한 것’의 범주에 포함되어 있지 않았다는 팩트를 짚고 넘어가며 잡지의 존재 이유를 대변한다. “나는 ‘그게 꼭 있어야 돼?’라는 말이 인생에서 많은 부분을 망친다고 생각한다. 그게 없어도 살 수 있다. 그러나 살아가는 데 필수적인 무언가는 아니지만, 굳이 하지 않아도 사는 데 지장이 없지만, 다만 있으면 더 좋은 것들, 더 알면 더 재미있는 것들이 많다. 그런데 왜 기본만 챙기며 살아가야 할까. ‘가성비’의 세계에서 벗어나 반드시 필요한 게 아닌 무언가를 보고, 사고, 해보며, 우리는 조금 더 제대로 살아갈 수 있게 되는 것 아닐까.”1 잡지의 무게를 가늠하니 조경의 무게를 떠올리지 않을 수 없다. 경제적인 산업의 규모를 떠나 필요성의 기준에서 볼 때 잡지의 무게와 조경의 무게는 크게 다르지 않은 것처럼 보인다. 조경을 공부하고 조경 전문지 기자라는 포지션에 놓인 나는, 멀쩡한 길을 놔두고 괜히 보도 경계석 위로만 걸어 다니던 어린 시절부터 알아챘어야 한다. 꼭 필요한 것에서 살짝 비켜난 길 위로 아슬아슬하게 걸어갈 거라는 걸. 살아가는 데 꼭 필요한 것만은 아닌 두 개의 중간에 걸쳐 있는 이 애매한 자리는 종종 약간의 씁쓸함을 삼키게 한다. 잡지에 실을 프로젝트를 찾다 빈곤한 조경 작품 수에 비해 차고 넘치는 건축 작품을 보면서, (작품은 훌륭하지만)압도적인 건물이 선심 쓰듯 제공한 공간에 마련된 아모레퍼시픽 본사 정원을 바라보면서, 취재를 준비하던 부천아트벙커 B39의 조경 계획이 무산됐다는 소식을 알고 나서, 조심스럽게 조경의 위치를 헤아렸다. 여유가 있으면 하고, 없으면 과감히 포기해버리는, 생략 가능한 것들의 목록에 놓여 있었다. 하지만 이번 달 ‘72시간 도시생생 프로젝트’를 다루며 ‘아무튼, 조경’이라는 기획 목록에도 없는 책의 이름을 떠올렸다. 대상지에 일어난 미미하지만 의미 있는 변화를 보며, 좋은 공간을 만들고 싶어 안달이 난 청년들을 인터뷰하며, 잡지든 조경이든 꼭 필요하지는 않지만 그로 말미암아 사람이든 공간이든 더 나아질 수 있을 것만 같았다. 잡지가 삶에 한 결을 더 해 좀 더 제대로 살게 해 주는 것이라면, 공간에 한 결을 더해 좀 더 제대로 된 공간으로 일구는 것이 조경일지도 모른다는 생각에 헛헛한 마음을 조금 채웠다. 각주 1. 황효진, 『아무튼, 잡지』, 코난북스, 2017, p.105.
[CODA] 실패할 용기
오전 11시 반이면 조금 이른 점심시간이 시작된다. 11시 반부터 1시까지, 좀 더 여유롭게 점심을 즐기라는 취지로 점심시간이 30분 늘어난 덕이다(대신 퇴근 시간이 30분 늦춰졌다). 6층 공간에 탁구대와 장기판 겸 바둑판이 놓이기도 했다. 새로운 시간표에 아직 적응하지 못한 나는 특별한 일을 하는 대신, 좀 더 맛있는 점심을 위해 시간을 쓰고 있다. 이제 맛집 앞에 길게 늘어선 줄에도 단념하지 않고 기다릴 수 있는 여유가 생겼다. 사실 새로운 맛집에도 도전하고 싶은데 선뜻 발을 들이기가 쉽지 않다. 기껏 가게 앞까지 가놓고서는 문 앞에서 식당 이름을 검색해보기 일쑤다. 그 이유는 실패하고 싶지 않아서, 고작해야 칠팔천 원이지만 맛없는 걸 먹고 기분을 망치고 싶지 않기 때문이다. 결국 발길은 안전한 가게를 향해 돌아선다. 이미 먹어 보았기에, 최고는 아니더라도 보장된 맛을 느낄 수 있는 그곳으로. 그렇게 다음번에는 꼭 가야지 한 가게가 가 본 가게가 되기까지, 길게는 1년여의 시간이 걸리기도 한다. 최근 각종 이벤트나 홍보 문구에 자주 사용되는 ‘소확행’이라는 단어가 있다. 이 단어는 무라카미 하루키의 수필집 『랑겔한스섬의 오후』에서 유래했는데, 그는 “서랍 안에 반듯하게 접어서 돌돌 말은 깨끗한 팬티가 잔뜩 쌓여있다는 것은 인생에 있어서 작기는 하지만 확고한 행복의 하나가 아닐까” 생각한다며 소소한 일상 속 에서 행복을 찾기를 권한다. 이 ‘작지만 확실한 행복’은 욜로YOLO(현재 자신의 행복을 가장 중시하고 소비하는 태도)와 워라밸(work-life balance의 준말, 일과 삶의 균형)에 이어 새로운 라이프스타일로 주목받고 있다. 그런데 소확행은 욜로나 워라밸과 달리 소비 패턴과 좀 더 깊은 관계를 맺는다. “갓 구운 빵을 손으로 찢어 먹는 것”이나 “겨울 밤 부스럭 소리를 내며 이불 속으로 들어오는 고양이의 감촉”도 소확행이지만, 늦은 밤 네 캔에 만 원 하는 수입 맥주를 마시며 영화를 보는 일이나 저렴하지만 좋아하는 물건을 수집하는 일 역시 소확행의 일종이다. 인스타그램이나 트위터 등 여러 SNS에서 소확행을 검색해 보면 꽤 많은 사람이 ‘작지만 확실한 행복’의 ‘작다’를 ‘적은 금액’과 연관시키는 모습을 볼 수 있다. 이러한 현상에 대해 부수현 교수(경상대학교 심리학과)는 다음과 같이 이야기한다. “전망이 어둡다 보니 시간과 노력을 들여가며 ‘불확실한 큰 가치’를 획득하기를 기다리는 것이 소모적이라는 걸 깨닫고, 경제적 상황이 ‘작은’ 것밖에 즐길 수 없게 된 암울한 시대를 반영한 소비트렌드가 소확행이다.”1불확실한 가치를 기대하기를 포기한 모습과 실패를 두려워하는 일이 참 닮아 보인다. 내게 소확행이라는 단어가 씁쓸하게 다가온 이유가여기에 있는지도 모르겠다. 모든 실패에는 도전이 선행되기 마련이다. 도전과 실패에 대해 이런저런 생각을 하다 보니 몇몇 일화가 떠오른다. 첫 번째는 2017년 5월 공개된 ‘서울로 7017’. 서울 한복판을 가로지르는 고가 위의 식물원은 공모 당선작으로 선정되자마자 여러 논란을 불러일으켰다. 그중 하나가 과연 콘크리트 위에서 식물들이 살아남을 수 있겠냐는 것이었다. 2016년 4월 7일에 열린 특별초청강연회에서 이와 관련된 질문이 쏟아지자 비니 마스가 답했다. “리스크가 없으면 미래를 기대할 수 없다. ‘서울수목원’이 실험의 장과 시민들의 아이디어를 잇는 교량이 되기를 바란다. … 이 실험이 의미 있는 도전이 될 수 있도록 여러분의 도움이 필요하다.” 당시 현장에 있던 내가 가장 먼저 했던 생각은 왜 하필 그 실험을 다른 나라 수도의 한복판에서 하느냐는 불만이었다. 그것도 시민들의 세금으로. 조금 뒤에야 나 역시 그가 함께하자고 제안하고 있는 실험을 비니 마스라는 한 개인의 궁금증을 해결하려는 실험으로 치부하고 있었다는 걸 깨달았다. 물론 그 실험이 시민이 참여할 수 있는 열린 형태로 진행되었다는 것에는 동의할 수 없지만 말이다. 두 번째는 옥수역 고가 하부에 들어선 ‘다락 옥수’의 설계자인 조진만 건축가와의 인터뷰다(『환경과조경』 2018년 6월호 p.121 참조). 그는 이 공공 프로젝트를 통해 문화 공간을 만드는 것뿐만 아니라 한 가지 실험을 하고자 했다. 바로 음지의 둔덕을 다양한 식물로 뒤덮인 정원으로 만드는 것. 하지만 이 실험은 설계안을 무시하고 둔덕 가득히 가장 흔한 음지 식물인 맥문동을 식재한 관할 구청 덕분에 수포가 되었다. 그는 “시범사업은 하나의 테스트라는 의미가 크다. … 둔덕에서 어떤 식물이 살아남는지 또 죽는지 살펴보며 데이터를 확보할 수 있었는데, 그 기회를 잃었다. 시범사업이란 성공을 위한 것이 아닌 다음 프로젝트를 위한 시도라는 인식이 확산되어야 한다”는 바람을 전했었다. 앞으로 나아가기 위한 실험에서의 실패는 실패가 아니라던 아쉬움 가득한 그의 목소리가 아직도 생생하다. 모든 실패에 도전이 선행되듯, 성공하기 위해서는 실험과 도전이 필요하다. 하지만 우리는 이미 도전에 실패한 사람들이 어떤 비난을 받는지를 목격해왔다. 실패할 수 있는 용기는 실패해도 괜찮다 여길 수 있는, 다시 도전할 수 있는 여유에서 비롯된다. 맛없는 점심을 먹었더라도 맛있는 디저트로 마음을 달랠 수 있는 여유. 부산현대미술관 수직 정원의 디자이너 패트릭 블랑은 지난 5월 진행한 인터뷰에서 이런 말을 했다. “수직 정원은 정해진 식물 목록으로 만든다기보다 늘 새로운 도전이다. 왜냐하면 찾고자 하는 식물을 구할 수 없기도 하고, 때로는 전혀 생각지도 못한 식물이 나타나기 때문이다. 그때그때 공간에 맞춰서 달라지기 마련이다. 그런 면에서 매번 커다란 도전이다.” 말하는 내내 즐거워하는 기색이 역력했던 그에게 이제야 묻고 싶다. 도전과 실패를 즐길 수 있는 문화는 어떻게 해야 찾아오는 걸까? 각주 1. 이슬기, “경남 소비 트랜드도 ‘소확행’, 경남일보 2018년 1월 23일.
[PRODUCT] 아이들의 상상력을 자극하는 ‘수륙양용 배’ 놀이대
토리TORY는 도토리의 야무지고 옹골찬 이미지에서 따온 말로, 목재를 활용해 다양한 조경 시설물을 생산해 온 비엔지BnG(Blue & Green Landscape Development)의 복합 놀이 시설물 브랜드다. 토리는 주변 환경과 조화를 이룰 뿐 아니라 랜드마크로 기능할 수 있는 조형미를 갖춘 놀이 시설을 만들기 위해 노력하고 있다. 또한 친환경 소재를 이용해 풍차 마을, 중세 마을, 캠핑카, 기린 텐트 등 다양한 테마를 주제로 창의적인 디자인의 놀이터를 개발하고 있다. 바다를 테마로 한 놀이대 중 하나인 ‘수륙양용 배’는 바퀴가 달린 엉뚱한 형태의 배로 아이들의 상상력을 자극한다. 놀이대 위에서 아이들은 선장이나 선원, 때로는 해적이 되어 역할 놀이를 즐길 수 있다. 배 앞머리의 그물 놀이 시설은 아이들의 담력을 키우고 균형 감각을 익히는 데 도움을 주며, 후면의 원통형 미끄럼틀에서는 질서를 지키는 법을 배울 수 있다. TEL. 031-708-0694 WEB. www.toryi.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