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월간 에코스케이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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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웃거리는 편집자] 시적 산문의 풍경
  • 환경과조경 2025년 10월호

다음 생엔 오케스트라 연주자가 되고 싶다. 현생에서는 음치, 박치인 탓에 절대 이룰 수 없기 때문이다. 결핍은 곧 동경이 됐다. KBS ‘열린음악회’에 나오는 오케스트라 공연은 늘 매력적이었다. 깊은 골짜기의 산바람처럼 시원하고 웅장한 악기들의 음향도 좋았고, 연미복을 입은 백발 마에스트로의 우아한 손짓에 맞춰 일사불란하게 악기를 연주하는 오케스트라 단원의 몸짓이 움직이는 추상화처럼 보였다.

 

그래서 다큐멘터리 영화 ‘온리 걸 인 더 오케스트라(The Only Girl in the Orchestra)’가 흥미로웠다. 이 영화는 더블베이스 연주자 오린 오브라이언(Orin O’Brien)(이하 오린)의 삶을 조명한다. 1966년 그는 당시 세계 3대 관현악단이라 불리던 뉴욕 필하모닉에 입단한 최초의 여성 연주자다. 지휘자 레너드 번스타인은 음악에 몰입하는 그의 열정적인 태도를 칭찬하며 오케스트라의 한 줄기 빛이라고 평가했다.

 

하지만 순탄치 않았다. 최초의 여성 연주자. 그를 빛나게 만든 타이틀은 오히려 족쇄가 됐다. 당시 뉴욕 필하모닉은 오린을 홍보의 대상으로만 활용했고, 동료 남성 연주자들은 ‘여성’이라는 이유 만으로 무시했다. 또한 여성 탈의실이 없어 매번 화장실에서 옷을 갈아입어야 했다. 온갖 편견과 열악한 환경 속에서 명성에 얽매이지 않고 실력으로 자신의 가치를 입증하며 55년간 연주자로서 치열하게 살았다.

 

특히 연주자로서의 태도가 인상적이었다. 오린은 더블베이스 연주자의 세 가지 덕목으로 돌봄, 재능, 자세를 꼽았다. 날씨에 의한 변형이 잦은 더블베이스를 잘 돌볼 줄 아는 능력, 육중한 악기를 온전히 통제해 자신의 것으로 소화하는 재능을 강조했다. 무엇보다 더블베이스의 본질에 주목했다. 흔히 콘트라베이스로 불리는 더블베이스는 저음역을 담당하며 음악의 전체적인 리듬과 화음 구조를 만든다. 그래서 그는 화려한 기교로 주목받는 것보다 모든 악기가 함께 조화를 이룰 수 있는 음의 기반을 만들려는 자세를 가장 중요하게 여겼다.

 

악기의 본질을 생각하는 오린의 태도를 보며 이번 환경조경대전의 주제가 생각났다. 형태는 무엇을 따르는가. 이 주제는 철학적인 물음인 동시에 동시대 조경 설계의 지향에 관한 화두를 제시한다. 보이지 않는 프로세스도 중요하지만, 결국 보일 수밖에 없는 경관을 설계하는 조경 설계에서 형태가 가진 가능성을 묻는다. 이는 곧 조경가의 태도와 조경의 본질을 향한 질문이다. 조경가는 조경을 통해 무엇을 그리고, 어떻게 구현할 것인가.

 

이 질문에 대한 답을 라이나 바랑재(16쪽)에서 찾을 수 있었다. 발왕산 깊숙한 골짜기의 한옥 호텔. 방치된 배수 체계. 미묘한 경사 지형. 부족한 예산. 해결해야 할 문제는 많지만 전부 다 해결할 수 없는 조건. 영리한 취사선택이 필요한 대상지였다. 오피스박김은 배수라는 시스템에 초점을 맞추지만 시스템에 얽매이지 않았다. U자형 모듈 수로를 통해 공사비를 절감했지만, 단순한 기능으로 접근하지 않았다.

 

보행로, 계단, 입수구와 토출구 등 각 구간의 미묘한 경사에 맞춘 모듈로 시스템을 디자인하고, 낙차를 통해 물의 음향을 극대화하고, 지형과 틈을 드러내는 수로는 미학적 틀이 된다. 공간을 감싸는 긴 수로와 동선 체계를 일치시켜 조화를 꾀하고, 한옥 공간과 색상 톤을 맞춘 억새 군락은 바람에 흔들리며 서걱이는 소리와 함께 초장의 직선적 감각을 보여준다. 결과적으로 시스템에 얽매이지 않는 ‘형태’와 형태를 드러내는 ‘시스템’의 조화를 통해 현상학적 경관을 구현했다.

 

이러한 태도는 오린이 추구한 자세와 닮았다. 모든 악기의 조화를 통해 아름다운 음악을 만드는 것. 이처럼 조경의 근본적 속성도 조화를 만드는 데 있다. 그래서 형태와 기능의 관계성을 단순히 흑백 논리로 접근할 수는 없다. 바랑재는 두 요소가 빚어내는 복합적 관계의 함수를 기반으로 아름답고 조화로운 체계를 구성해 문화적 행위를 산출하는 조경 경관에 가닿고자 했다. 대지에 시처럼 유려한 형태를 그리고, 산문처럼 명징한 기능을 직조하는 경관. 형태와 기능의 조화를 만드는 경관. 나아가 이러한 경관의 이름을 이렇게 부르면 어떨까. 시적 산문의 풍경.