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월간 에코스케이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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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슬기로운 공원 생활] 우리에게 수변 공원이 필요한 이유
  • 환경과조경 2026년 3월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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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6년 겨울, 망원한강공원 놀이터에서 슬로프 너머 바라본 한강 야경

 

 

산 vs. 바다 그리고 물

산과 바다 중 무엇을 더 좋아하냐고 묻는다면, 나는 단연코 후자다. 더 정확히 말하자면, 꼭 바다가 아니더라도 강과 하천을 비롯한 물의 경관을 산보다 더 사랑한다. 그 이유에 대해 오래전부터 생각해 보곤 했다. 일단은 등산보다 평지를 유유히 걷는 게 체력적으로 편하다. 산을 오를 때는 점점 더 무거워지는 발걸음에 집중하다가 주변 경치를 놓치곤 하지만, 물가를 거닐면 청각적으로도 상쾌할뿐더러 실시간으로 시야에 들어오는 풍광 하나하나에 매료되면서 발걸음이 느려진다. 어느새 한가로운 산책자가 되어 아름다운 장면과 소리를 눈과 귀, 마음속에 담고 핸드폰을 들어 (훗날 나의 기억이 되어줄) 사진을 찍기도 한다. 두 발과 두 손은 내 영혼의 고양을 돕는 도구다. 그렇다. 힘 쓰기보다 힘 빼고 마음 살찌우기를 좋아한다. 그러기에 수변 공간을 거니는 것만큼 좋은 취미가 없는 셈이다.

 

수변 공원을 찾는 이유

종종 나만의 사색을 위해서든 친구와 얘기하기 위해서든 수변 공원을 찾곤 하는데, 때로는 걷기 만 하고 때로는 자전거를 타기도 한다. 이런 취미가 생기게 된 건 내가 사는 동네에 오래전부터 있었던 불광천이 2002년 서울월드컵경기장 개관을 앞두고 생태 하천으로 복원됐기 때문이다. 이 복원 사업은 서울 전체로 확대됐고, 곳곳의 지천과 한강공원은 갈수록 더 긴밀하게 연결됐다. 그리고 2009년 불광천의 자전거 도로와 산책로가 분리되면서 자전거를 타고 불광천(월드컵천)을 따라 홍제천(성산천)과의 합류 지점으로, 한강 어귀로, 망원한강공원 또는 난지한강공원으로 향하는 더 안전하고 빠른 코스가 조성됐다. 은평구에서 마포구로 이어지는 이 코스는 자전거로 시원하게 즐겨도 좋지만 천천히 산책하며 천변의 식생과 동물들을 음미할 때 훨씬 더 깊은 감각을 제공한다. 봄철에는 도로변에 벚꽃이 흐드러지게 펴서 사진 찍는 인파로 가득해지고, 이파리들이 떨어진 겨울철에는 군락을 이루며 중첩되는 잔가지들의 풍광은 마치 눈송이의 육각형 결정처럼 순수한 패턴으로서 눈에 들어온다. 하마구치 류스케 감독의 영화 ‘악은 존재하지 않는다’(2024)에서 묘사하는 겨울철 나뭇가지들의 패턴마냥 이 생태 하천의 주변 식생은 악의 없는 생명의 신비를 소박하게 드러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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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6년 봄, 2026년 겨울의 불광천 수변

 

난지한강공원보다 망원한강공원 

그렇게 불광천과 홍제천을 지나 한강 어귀로 접어들면 모종의 해방감이 느껴진다. 마치 긴 강을 따라 바다로 접어든 것처럼 이 해방감은 천변을 거쳐 온 시간이 길수록 배가된다. 구보자들이 쉼 없이 옆을 달려갈 때 나는 그 지류가 본류로 합쳐지는 홍제천교 위에서 강 건너 건물들의 스카이 라인과 바로 앞 버들나무 밑 오리 떼를 번갈아 바라본다. 여기서부터는 야경이 좋아서 황혼녘의 태양이나 한밤중의 달을 보기에 안성맞춤이다. 홍제천교에서 오른쪽으로 가면 자전거 타기 좋은 난지한강공원이 나오지만 왼쪽의 망원한강공원을 더 좋아한다. 


여러 이유 중 서울시 최초의 함상 테마파크라는 서울함공원 때문은 아니다. 일반인들에게는 퇴역 군함을 구경하는 게 색다른 경험일 수 있겠지만 해군 출신인 내게는 그리 특별할 것도 없다. 군인 시절의 거친 맛을 되새기기보다는 차라리 그 옆 선착장 편의 시설에서 최적의 레시피로 조리 된 라면을 맛보고 강물 앞에서 유유히 커피를 홀짝이는 게 훨씬 더 위로가 된다. 그럼에도 이 한 강을 마치 바다처럼 보이게 한다는 점에서 퇴역 군함의 전시도 나름의 의미는 있다. 그 밖에도 놀이터에서 아이와 함께 노는 가족을 보고 한낮에 기타를 메고 텅 빈 낚시터를 빙빙 돌며 노래 연습 하는 아저씨를 만나 인사하는 것도 이 공원만의 정감이다. 


무엇보다 내가 망원한강공원을 찾는 진짜 이유는 그곳에 내가 사랑하는 조망 공간이 있기 때 문이다. 그곳은 한강과 바로 접한 작은 경사면이다. 원래 이 슬로프는 카약을 띄우기 위한 용도였 지만 조망객들과 동선이 겹치는 문제가 있었고, 근처 한강 버스 선착장이 개장하면서 2028년까 지 수상 스포츠 용도로 사용되는 건 중단된 상태다. 


소중한 취미이자 최고의 치유제, 물멍 

물 자체보다 물에 대한 관조 내지는 물을 통한 사색을 좋아한다. 물장구를 치거나 수상 스포츠 를 즐기는 건 (심지어 군함 체험은 더더욱) 내 취미가 아니지만 물 앞에서 생각의 흐름에 빠져드는 이른바 ‘물멍’은 나의 소중한 취미이자 최고의 치유제다. 물멍은 뭘 치유하는 걸까. 정신 분석에서는 물을 모성적 이미지이자 잃어버린 원초적 사랑을 대체하는 은유로 해석한다. 가없는 모성애의 은유인 물은 인간의 고통을 씻는 성스러운 세례의 질료이기도 하다. 지크문트 프로이트는 『문명 속의 불 만』(열린책들, 2020)에서 로맹 롤랑이 종교의 근거로 내세운 ‘대양적 느낌’에 대해 그게 유아기적 원초 성으로의 퇴행일 수 있다는 무신론적 관점으로 응수했지만, 『바다의 철학』(이유출판, 2020)의 저자 군터 숄츠에 따르면 그리스 이전의 자연 철학부터 헤겔과 니체에 이르는 근대 철학까지 바다는 늘 철학의 바탕이었다. (다만 플라톤 같은 철학자만 바다를 싫어하고 정복하려 했을 뿐이다) 물론 그 철학자들의 정열처럼 바다의 거센 파도까지 사랑하지는 않지만, 적어도 반짝이는 윤슬과 헤엄치는 왜가리와 오리 가 남기는 잔물결, 물가의 나무들 사이를 오가는 새들의 몸짓을 보며 깊어지는 내 마음의 변화와 추억은 사랑한다. 


물의 경관의 중요성 

관조와 사색을 위한 물의 경관은 훌륭한 건축에서 빠지지 않는 조경 요소이기도 하다. 알람브라 궁전에 반사 연못이 없었다면, 루이스 칸이 설계한 소크 연구소의 부지 한복판에 태평양을 향해 흐르는 물길이 없었다면, 안도 다다오의 명화의 정원에 물이 흐르지 않았다면, 미스 반 데어 로에 의 바르셀로나 파빌리온에 연못이 없었다면. 과연 그 건축물들이 그렇게까지 아름답게 느껴질 수 있었을까. 가스통 바슐라르는 『물과 꿈』(이학사, 2020)에서 물을 바라보는 우리의 눈조차 물웅덩이이며 우리는 눈 속에서 물을 꿈꾼다고 말한다(영화 ‘카사블랑카’(1942)의 명대사 “당신의 눈동자에 건배”가 괜히 나온 게 아니다). 그의 표현에 빌리자면 물은 “대지의 눈”이고, “시간을 바라보는 대지의 도구”다. 물이 없는 건축은 대지의 눈이, 시간을 바라보는 눈이 빠진 건축이나 다름없다. 물의 존재야말로 인간 의 환경에 시간의 감각을 더해주는 것이다. 


이렇듯 물의 경관은 그냥 아름다운 게 아니라 기억을 통해 시간을 바라보게 하는 영혼의 창이다. 자크 라캉은 대학생 시절 어느 시골 마을에서 젊은 어부의 고기잡이배에 탔다가 물 위를 떠다 니며 반짝이는 정어리 깡통을 바라본 일화를 들려준다. 그때 동승한 어부가 “저 깡통은 널 바라보지 않아”라고 했던 말을 라캉은 추후에 회상하며 그 깡통이 실로 자기를 응시하고 있었다고 말 한다. 무슨 의미일까. 어부의 말은 부르주아 대학생의 자의식이 어촌에서 통하지 않는다는 이야기 였지만, 라캉의 말은 자신이 정말 그런 뜨내기의 처지였음을 물 위에 정처 없이 떠도는 깡통에게 서 느꼈다는 얘기다. 깊이를 헤아릴 수 없는 드넓은 물의 경관과 그 위에 부유하는 사물들은 실로 우리를 바라보는 무한한 타자의 심연이다. 물멍은 무의식적으로 이뤄지지만 그 무의식 속의 타자 는 늘 우리의 지난 시간을 반추하게 만든다는 점에서 우리의 응시를 되돌려주는 것이다. 물은 침 묵하지만 그 침묵을 응시하는 자에게 그가 잊고 있던 타자의 기억을, 그를 기억하는 자연의 시선 을 되돌려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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물과 함께 흐르는 우리의 시간 

몇 년 전 아버지를 여읜 한 친구가 장례식을 치르고 몇 주가 지나 문득 내게 연락해 왔다. 밤에 나 를 픽업하러 오겠다며 어디든 가자던 친구를 나는 망원한강공원으로 데려갔다. 눈앞에 강물이 흐르는 슬로프의 한편에 앉아 편의점에서 사 온 맥주를 마시며 얘기를 나눴다. 삼삼오오 흩어져 앉은 사람들 사이에서 로맨티시스트였던 아버지의 다감함을 추억하는 친구의 얘기가 흐른다. 까만 하늘에 달 이 떠 있고 나는 고인의 생전 순간들을 떠올리며 말없이 흐르는 물 을 바라본다. 등 뒤에 버스커의 노랫소리가 들려온다. 뒤편 놀이터에 서 지나간 옛 노래가, 우리가 학창 시절에 듣던 노래가 흐르고 있다. 


강물만 흐르는 게 아니다. 시간이 흐르고, 우리의 생이 흐르고, 나의 생각도 흐른다. 불의 철학자 헤라클레이토스마저도 말했듯이 만물이 흐르고 있음을 새삼 느낀다. 하지만 이 모든 흐름을 자각하 는 것은 어쨌든 지금 여기의 순간이다. 시간은 우리의 인식을 초월한 어딘가에서 일직선으로 흐르는 게 아니란 얘기다. 굽이굽이 지천의 흐름을 따라 본류에 이른 그 순간, 그 깊고 무한한 심연의 응시를 마 주하는 순간에야 비로소 우리의 시간을 돌아볼 수 있게 된다. 우리 에게 물의 경관이, 수변 공원이 필요한 이유다. 


조순익은 건축 전문 번역가이자 자유 기고가다. 『걷기 좋은 도시』, 『바이오필릭 라이프』, 『아키텍트하다』, 『현대 건축: 비판적 역사』(공역), 『현대 건축의 이해』, 『건축이 중요하다』, 『정의로운 도시』, 『건축의 욕망』 등을 번역했다. 저서로는 『보는 기계와 읽는 인간: 건축 문화 텍스트 읽기』(2019)가 있다. 『건축평단』의 편집위원이며, 주로 정신 분석과 문화 비평의 관점에서 건축 현상을 해석하는 데 관심이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