폴더관리
폴더명
스크랩
월간 에코스케이프

월간 에코스케이프
[어제의 대화, 오늘의 재구성] 김선미
사람을 읽고 쓰는 마음
  • 환경과조경 2026년 3월호
[크기변환]R5B_3813.jpg
ⓒ유청오

 

 

김선미 기자와 1박 2일을 보낸 적이 있다. 부여 정원 투어를 함께했는데, 내내 그는 활달하고 호기심 넘쳤다. 가장 눈길을 끌었던 건 정원에서 만난 사람들을 대하는 김선미의 태도였다. 십여 명의 사람들을 마주했는데 허물없이 다가서 이야기를 듣고 사진을 찍었다. 시늉이 아니었다. 기자의 책임감에서 비롯됐다기엔, 항아리정원을 꾸린 사람의 사연을 듣는 김선미의 눈동자가 눈물로 촉촉했다. 투어 이틀 차 아침에는 가림성 느티나무 답사가 예정되어 있었는데, 느닷없이 비 소식이 찾아들었다. 늦잠을 자고 싶은 마음이 있어 잘됐다는 생각을 몰래했다. 다음날 부슬비가 내리는데 도 가림성 느티나무를 찾아 산을 오른 이유는, 여기까지 온 김에 나무를 보고 가는 게 좋지 않겠냐는 김선미의 권유 때문이었다. 미끄러운 산길을 조심조심 다 올랐을 때, 잠을 택하지 않길 잘했다는 생각을 했다. 비안개로 뒤덮인 산의 모습이 기대 이상으로 근사했다. 내가 귀찮다는 이유로 놓쳤을 순간들을 김선미는 꾸준함으로 다 잡아채며 살아왔을 것 같다는 생각을 했다. 김선미와 인터뷰를 하기 위해 만난 곳은 ‘스틸, 타샤 튜더’의 전시장이었다. 정원이라는 키워드를 공유할 뿐아니라, 타샤 튜더의 ‘시크릿가든’이 김선미가 현재 동아일보에서 쓰는 연재의 제목과 같다는 점에서 더할 나위 없는 촬영 장소였다. 김선미는 롯데문화재단 김규림 매니저와 함께 전시를 취재하던 중 내게 촬영지 후보에 대한 연락이 와서, 즉석에서 장소 섭외를 할 수 있었다고 말했다(김규림 매니저와는 한국문화예술교육진흥원을 통해 연을 맺었다고 한다). 마치 우연과 운이 겹쳐진 것처럼 설명했지만, 김선미가 맞닥뜨린 뜻밖의 멋진 순간들은 모두 그의 성실함과 사람에 대한 진심이 빚어낸 것이란 걸 이젠 안다.

 

어제는 뭐했나요?

아침 8시에 관훈클럽의 조찬 모임이 있었어요. 참고로 관훈클럽은 1957년에 창립된 언론인들 모임이에요. 토론을 하기도 하고 답사를 다니기도 하면서 언론 발전을 위해 힘쓰고 있죠. 이날 모임은 2월 23일 유홍준 국립중앙박물관장을 초청해 열릴 관훈포럼을 준비하기 위한 자리였습니다. 패널로 참여할 다른 기자들과 함께 유 관장에게 어떤 질문을 던질지 이야기를 나눴죠. 

 

전 아침형 인간을 넘어서는 새벽형 인간이에요. 보통은 새벽 5시에 기상하고, 이르게 깨면 새벽 3시부터 일과를 시작할 때도 있죠. 보통 10시 반쯤이면 침대에 누워요. 그래서 별명이 신데렐라였어요. 밤 9시만 되면 깨어 있어도 눈을 반쯤 감고 수마에 빠진 상태였거든요. 어제도 5시쯤 일어나 관훈클럽 모임에 나서기 전, 아이들이 먹을 라구 파스타를 만들었어요. 남편은 출장을 갔고 아이들은 지금 방학 중이거든요. 모임을 마치고 돌아오니 까다로운 따님께서 맛있었다고 말해줘서 뿌듯하더라고요.

 

그리고는 내내 오늘 마감해야 하는 칼럼을 썼어요. 수십 번 고쳐 쓴 것 같네요. 벌써 기자 생활을 한 지 30년이 다 되어 가는데도 여전히 글쓰기가 어려워요. 꼭 중요한 마감은 한꺼번에 몰리는데, 이번 주가 그래요. 내일은 탐조 여행을 다녀온 기사를 마감해야 해요. 새를 본 건 참 좋았는데 3,200자 글로 풀어내야 한다고 생각하니 막막하더라고요. 조금이라도 더 좋은 글을 쓰고 싶어서 참고할 만한 책을 왕창 읽었어요. 그러다 보니 평소보다는 늦은 12시 즈음 잠에 들었죠.

 

정말 하루를 꽉 채워서 보냈네요. 김선미 기자는 그야말로 ‘갓생’을 사는 사람의 대표라고 생각해요. 글을 쓰고, 강의를 하고, 인터뷰를 하고, 답사를 가고, 사람을 만나고. 보통의 직장인처럼 9 to 6의 삶을 사는 건 아닌 게 분명해요.

워낙 외부 출장이 잦은 일을 하고 있어서 일반적인 직장인과는 다른 루틴으로 일상을 보내는 건 맞아요. 사실 2023년 7월, 지금의 부서로 옮기기 전까지는 더 극악의 하루를 보냈었어요. 주 5일은 고사하고 주 6일, 아침 9시에 출근해 밤 10시 넘어 퇴근이 연속되는 생활을 했었습니다. 일과가 바쁘기도 했고, 데스크 업무와 회의로 인해서 회사 안에서 머무는 시간이 많았어요. 새벽 일찍 눈을 뜨게 된 것도 논설위원 시절에 생긴 습관이에요. 대부분의 언론사들이 새벽 3시부터 온라인에 기사를 업로드하거든요. 샅샅이 기사를 읽어야만 회의 시간에 사설 발제를 제대로 할 수 있었죠. 그때의 기상 패턴이 몸에 배었어요. 덕분에 지금도 아침에 남들이 못하는 일들을 하며 시간을 꽉 채워 보낼 수 있게 됐죠. 여름에는 해가 일찍 떠서 남산을 다녀오거나 자전거로 한강을 달리기도 합니다.

 

콘텐츠기획본부로 자리를 옮기고 나서는 좀 더 시간을 효율적으로 쓸 수 있게 됐어요. 꼭 사무실이 아니더라도 어디서든 내 할 일을 하면 되는 환경에서 일하게 된 거죠. 자유로운 기분이라 좋아요. 논설위원 시절에는 광화문의 전경이 내려다보이고 커다란 책장이 있는 저만을 위한 방이 있었어요. 누가 보아도 멋진 방이었는데 때때로 갑갑함을 느꼈어요. 현장을 누비며 기사를 쓰는 걸 참 좋아했거든요. ‘김선미 기자의 세상엿보기’(1999)라는 칼럼을 연재할 때는 거의 잠을 못 자면서 일했었는데도 즐거웠어요.

 

기자를 인터뷰 생각할 생각에 떨렸어요. 인터뷰 기술이 있다면 배워야겠다는 생각이 들더라고요. 보통 첫 질문에서 무엇을 묻나요.

저와 많이 만나봐서 알겠지만, 제 인터뷰는 문답 형식으로 흘러가지 않아요. 전에 제 인터뷰 녹취록을 본 동료가 인터뷰가 아니라 토크쇼 같다고 하더라고요. 인터뷰에 임하는 자세도 좀 부드러워요. 격식 있게 질문을 던지고 답을 받기보다는 친한 이웃과 수다를 떨 듯 이야기하는 편입니다. 그래서 첫 질문을 정해가지 않아요. 대화의 시작은 그날의 상황에 따라 달라져요. 그 자리에서 피어난 호기심일 때도 있고, 날씨일 때도 있고, 상대의 의상에서 비롯되기도 하고요.

 

첫 질문은 아니고 마지막 질문으로 이런 질문을 한 적은 있어요. 10년 전 쓱SSG 광고를 제작했던 백종열 617프로덕션 감독을 인터뷰할 때였어요. 맨 마지막 질문과 답을 담은 글은 이래요. “그는 자본주의의 중심에 서 있으면서도 기성 시장과 제도에 반하는 모습을 트위터에서 드러내기도 한다. 예술적 스펙트럼만큼 캐릭터가 다면적이었다. 참, 그의 한쪽 귀에는 10원짜리 동전 크기만한 커다란 구멍이 쓱 뚫려 있었다. 그 구멍이 너무 커서 놀라웠다. ―안 아픈가. “안 아프다.””(각주 1)

 

저는 우리의 인터뷰 코너 첫 질문, “어제는 뭐했나요?”가 굉장히 인상적이에요. 누구나에게 같은 질문을 할 수 있고 누구나 답할 수 있는 질문이잖아요. 저도 기회가 닿을 때 이런 공통된 질문을 만들어 해볼까 해요. 그런 날이 오면 『환경과조경』 크레디트를 꼭 밝힐게요.

 

KSM02.jpg
강원도 철원 탐조 여행 기사

 

 

연세대학교에서 신문방송학을 전공했죠. 당시 꿈꿨던 미래 김선미의 모습은 어땠나요. 기자가 되기로 마음먹었던 순간이 있는지 궁금해요.

엄청난 사명감을 가지고 전공을 선택한 건 아닙니다. 어쩌다보니 자연스러운 흐름에 따라 지금에 다다랐어요. 대학에 입학했을 당시에는 신문방송학이 무엇인지도 잘 몰랐고, 재능이 있는지 확신도 없었어요. 그런데 입학 후 치른 첫 시험이 제 인생을 조금 바꿔놓았어요. 신문학개론 시험이었는데, 시험지에 딱 두 개의 질문만 쓰여 있고 그에 대한 답을 자유롭게 풀어놓는 식이었죠. 어느 날 교수님이 저를 호명하면서 일어나라고 했어요. 긴장했는데 다행히도 칭찬이었어요. 이렇게 잘 쓴 답변을 정말 오랜만에 본다고 극찬하셨어요. 전 잘 몰랐는데 글을 잘 쓴다는 이야기를 많이 듣게 됐어요. 학창시절 제 별명이 “학점의 여왕”이었습니다. 한마디로 글 좀 쓰는 모범생이었어요.

 

기자라는 직업도 우연히 시작하게 됐어요. 당시 신문방송학과 졸업생의 인기 희망 직종은 방송 PD였어요. 저는 라디오 PD나 광고 카피라이터에 관심이 많았고요. 기자도 관심 영역에는 있었지만 최우선순위는 아니었죠. 학점이 좋아 지원한 회사 몇 군데에 합격했지만 종착지는 신문사였어요. 문화부나 스포츠부에 가고 싶었는데 뜻밖에 입사 초기부터 정통 사회부 기자 생활을 했습니다. 1990년대까지만 해도 여기자가 극소수였어요. 왜 여기자는 사회부를 안 보내주냐던 선배들의 오랜 투쟁의 결과가 딱 제 시대부터 적용돼 사회부 경찰 출입기자 생활을 꽤 했어요. 정작 프로야구 담당 기자를 해보고 싶던 꿈은 영영 이루지 못했죠. 학교 친구들이나 회사 동기들이 “김선미는 대학교수가 딱인데 무슨 신문기자냐. 6개월 지나면 관둘걸?”이란 말을 많이 했는데 내년이면 신문기자 생활 30년입니다. 제가 생각보다 끈기가 있더라고요. 큰 소신을 갖고 기자 일을 시작한 건 아니었지만, 제 성정과 선택들이 큰 물결을 만들어냈고 그것이 곧 제 인생이 된 것 같아요.

 

글 솜씨가 좋은 줄 몰랐었다니 의외입니다.

확실한 건 어린 시절부터 책벌레였어요. 부모님이 이제 그만 자라고 불을 끄면, 이불 속에 숨어서 책을 읽는 아이였거든요. 덕분에 초등학교 3학년 때 시력이 너무 나빠져서 두꺼운 안경을 쓰게 됐죠. 그날 아빠가 “선미는 눈이 예쁜데, 안경으로 눈을 가려야 한다는 게 너무 속상하다”며 우셨어요. 그럼에도 불구하고 계속 읽었습니다. 집에 너무 책이 많아서 엄마 아빠에게 월급 받아서 저렇게 책만 산다는 잔소리도 꽤나 들었어요. 이제는 도서관을 자주 이용합니다. 특히 남산도서관에 자주 가요. 글을 쓸 때 책을 많이 읽으면서 아이디어를 얻고 생각을 전개하는 편이거든요. 지난주에도 열 몇 권의 책을 빌려왔어요.

 

‘김선미 기자의 감성크로키’(2004, 이하 감성크로키)를 읽으면서 옛 향수를 느꼈어요. 2000년대 초의 감성과 당시 유행했던 ‘미드’와 ‘영드’들이 떠오르더라고요. 아름다운 것들을 탐미하고, 나만의 톡톡 튀는 문체를 사용하고, 해외의 문화가 묘하게 넘실대고, 취향을 넓히고 좁히는 데 망설임이 없는 태도 같은 게 너무 좋았어요. 그 한복판에서 자신이라는 줄기는 아주 견고하게 서 있고요. 그래서 김선미의 특유의 감성과 문체를 만드는 데 가장 큰 영향을 미친 매체가 궁금해졌어요.

제가 딱 싸이월드 세대에요. ‘던바의 수’의 원칙에 따르면 인간이 맺을 수 있는 사회적 관계의 최대치가 150명이라고 하더라고요. 저는 그보다 더 많은 사람을 궁금해했던 것 같아요. 싸이월드를 엄청 열심히 했는데, 제 일상을 공유하는 것보다 사람들이 소통하는 방식에 관심이 많았기 때문이에요. 싸이월드는 제 욕구를 해소하기 좋은 채널이었고, 그만큼 영향도 많이 받았어요.

 

국제선의 기장이었던 아빠 덕분에 로망을 가졌던 국가에 자주 갈 수 있는 기회도 얻었었죠. 대학 시절 요시모토 바나나의 책이 인기였거든요. 『키친』을 읽고 일본 문학에 관심이 생겨서 아사다 지로의 책을 접하게 됐습니다. 『철도원』, 『장미 도둑』을 특히 좋아해요. 아사다 지로가 야쿠자 출신 소설가인데 평범하지 않은 삶 속에서 만난 여러 사람과 경험 때문인지 정말 다양한 인간 군상과 삶을 다루거든요. 책들을 몽땅 읽고 그 세계를 직접 보고 싶다는 마음에 자주 비행기를 탔죠. 도쿄나 오사카 같은 도심보다는 니가타 같이 조용한 분위기의 시골을 주로 찾았어요. 프랑스에는 고등학생 시절부터 매료되어 있었습니다. 대원외고를 다닐 당시 제 전공이 불어였으니 당연해요. 

 

「동아일보」의 주말 섹션인 ‘위크엔드’ 팀에 배치되면서부터 프랑스를 더욱 자주 방문할 수 있게 됐죠. 프랑스의 패션과 와인 같은 문화를 살피고 건축가, 미술가 등 사람들을 꾸준히 만나면서 한 국가에 대해 깊이 탐구할 기회를 얻었죠. 그때의 경험을 묶어 『지금, 여기, 프랑스』(미메시스, 2019)라는 책을 펴내기도 했습니다.

 

제 글에서 두 가지 향이 풍긴다는 사람들이 있었어요. 프랑스 같이 잘 알지 못하는 먼 이국에서 느껴지는 아스라한 감정이 느껴지는 동시에, 한편으로는 오사카 골목길에서 날 것 같은 사케 냄새가 난다고 하더라고요. IMF라는 시대적 배경의 영향도 있던 것 같아요. 이국의 문화에 대한 동경과 거칠게 드러나진 않지만 잔잔하게 묻어나는 슬픔이 병치되어 있는 것 같다는 평이었죠. 결은 달라도 제임스 설터, 가즈오 이시구로, 파트릭 모디아노의 글을 좋아하니 그로부터 받은 영향도 있을 수 있어요.

 

스스로는 늘 사람과 소통에 대한 관심이 제 글의 핵심이라고 생각해요. ‘감성크로키’를 연재하던 시절에는 카페에 가서 사람들을 관찰하는 게 일과였어요. 사람들이 어느 정도의 데시벨로 어떤 몸짓을 하면서 무슨 대화를 나누는지 살폈죠. 의무에 의한 일도 아니었고 지겹지도 않았어요.

 

KSM03.jpg
김선미의 쓰는 공간

 

 

그런 관심이 가장 잘 드러나는 연재가 ‘김선미 기자의 세상엿보기’입니다. 연재 마지막 글이 인상적이었어요.(각주 2)

그 시절부터 기사의 핵심은 현장이라고 생각해왔어요. 직접 눈으로 확인하지 않고 통계나 다른 사람의 글만을 바탕으로 쓰는 글은 죽은 기사예요. 지금도 취재거리가 생기면 바쁘더라도 늘 현장에 갑니다. 현장에 가면 사람들이 있거든요. 책이나 인터넷 속 자료에서는 찾을 수 없는, 사람들이 진짜 들려주는 이야기를 들어야 살아 있는 기사를 쓸 수 있습니다. 또 신기하게도 그들과 이야기를 나누다보면 머릿속에 두루뭉술하게 떠다니던 생각들이 정리되고 기사의 가닥이 잡히기도 합니다.

 

김선미의 장점은 호기심이 많고 도전하는 데 망설이지 않는다는 점이라고 생각해요. 기자라는 직업을 백방으로 활용해 여러 삶을 즐기고 있다는 생각도 들어요. 수많은 배역을 연기하는 배우처럼요.

매순간 주어진 역할에 최선을 다하다보니 일어나는 일 같아요. 패션 기자로 일할 때의 별명이 당시 유행했던 드라마 ‘섹스 앤 더 시티’의 등장인물 중 하나인 캐리 브래드쇼였어요. 캐리처럼 아담한 사이즈이고, 패션 기자이니 그 세계 속 인물이 되어야 한다는 생각에 과감한 차림새로 현장을 활보하며 전 세계 패션위크도 취재 다녔어요. 돌이켜보면 최선을 다하지 않은 순간이 없어요. 경제부 기자일 때는 경제를, 패션 기자일 때는 패션을, 문화부 기자일 때는 문화를 진심으로 대했어요. 아, 그러고 보니 어떤 분야를 맡든 예술을 사랑한다고 ‘아트 러버’로 불렸네요. 매사에 우열을 가리지 않는 편이에요. 또 배움이 되지 않는 경험은 없다고 생각해요. 세상의 모든 일들을 취재나 앞으로 있을 취재의 밑바탕이 될 거라 믿고 임하는 편이죠. 생각해보니 기자라는 직업이 어찌 보면 배치되는 부서에 따라 인생이 달라지는 것 같아요. 그래서 배우처럼 그 순간에 주어진 역할에 따르는 삶을 살 수 있는 거겠죠.

 

워낙 활동적인 사람이라 그런지 쓰는 모습이 잘 상상되지 않아요.

집에 틀어 박혀 쓰며 괴로워하는 사람입니다. 제 글의 강점이 쉽게 잘 읽힌다는 점이라며 쓸 때도 어렵지 않게 술술 써내려갈 거라 말하는 사람이 많더라고요. 그런데 사실 전 너무너무 고민을 많이 하고 괴로워하며 쓰는 스타일입니다. 기사 마감이 몰린 주에는 “또, 한 십 년 늙었다”라고 중얼거릴 정도로요. 몇 번이고 첫 번째 줄로 돌아가 글을 새로 쓰기를 반복하기 일쑤예요. 그러다 보니 쓰는 데 소요되는 시간도 엄청 길죠.

 

누군가의 조언을 듣고 몸을 움직이며 머리를 비워보려고도 해봤어요. 글에 매몰됐던 날의 저녁, 지끈거리는 머리도 식힐 겸 저녁에 수영을 갔는데 헤엄치는 내내 글에 대한 고민만 했습니다. 그러다 퍼뜩 아이디어가 떠오르기도 했는데, 수영장에는 펜도 노트도 없으니 기록할 방법이 없었고 수영을 마치고 나왔을 때는 이미 기억이 휘발된 뒤였어요. 손이 자판을 두드리는 흐름에 맡길 때가 많아서 내 손이 어떤 글을 쓸지 나도 궁금하다는 생각을 하곤 합니다.

 

『정원의 위로』(민음사, 2024)의 경우에는 카페에서 썼던 글인데, 언젠가부터 집이 더 편하더라고요. 옷방의 벽장 자리를 비워 버지니아 울프의 자기만의 방을 생각하며 제 작업 책상을 놓기도 했어요. 지금은 그 자리에 다른 가구를 놓으며 책상이 사라지는 바람에, 거실과 안방을 오가며 글을 쓰고 있습니다. 또 워낙 이런저런 책을 읽고 뒤적이며 글을 쓰는 스타일인데, 제가 참고하는 책들이 크고 두껍거든요. 그러다 보니 집에서 쓰는 게 편해지더라고요.

 

KSM04.jpg
2026년 2월 26일, 프랑스 파리 7구 로댕 미술관에서 열린 디올 쇼 를 본 뒤 김선미가 꽃집에서 사 온 시클라멘 화분. 취재 기사에는 이렇게 썼다. “얼마 전 시클라멘 화분을 새로 집에 들였다. 평범하 다고 여겼던 시클라멘이 유독 아름다워 보이기 시작했기 때문이다. 아름다움은 자연에서 오지만 의미를 입히는 건 사람이다. 꽃은 그 자리에 있지만, 해석은 늘 우리 몫이다.” 김선미, “디올 패션쇼에 왜 시클라멘이 등장했을까 [김선미의 시크릿가든]”, 「동아일보」 2026 년 2월 15일.

 

 

‘김선미의 시크릿가든’(2024, 이하 시크릿가든) 연재를 시작하기 전에도 광화문광장 같은 오픈스페이스에 관심을 갖기도 했고, 마음 닿는 대로 걸었더니 정원 여행 중이기도 했잖아요. 결정적으로 정원에 마음을 빼앗긴 순간이 언제인가요.

‘시크릿가든’의 소개 문구가 있어요. “모네의 정원, 하루키의 숲을 찾아다니고 있습니다. 정원과 숲이 건네는 위로가 고맙습니다. 그곳에 깃든 계절의 감각과 인생을 나누고 싶습니다.” 정말 제 마음을 그대로 풀어낸 글입니다. 한때 사춘기를 겪는 딸로 힘들었던 시기가 있었어요. 그 시절 새벽에 일어나 한강을 걷거나 남산을 올랐어요. 산을 오르는 행위가 주는 평온함이 있었습니다. 단순히 오르는 행위에 집중하다 보면 다른 생각이 사라지기도 하고, 점점 밝아지는 하늘의 색이나 팔과 다리를 스치는 식물들에도 시선을 두게 됐죠. 그렇게 숲에 관심을 갖게 됐어요. 내 주변의 숲부터 시작해 전국팔도의 식물원, 수목원, 정원까지 다니게 됐어요. 숲 해설가 자격증을 따게 된 계기가 되기도 했습니다.

 

여러 장소를 다녔지만 정원에는 숲이나 식물원, 수목원과는 조금 다른 매력이 있었어요. 정원을 만든 사람들의 이야기에 마음을 빼앗긴 거죠. 앞서 말했듯 저는 사람 자체에 관심이 많은 사람이거든요. 정원주들의 이야기를 들어보니 사연 없는 사람이 없더라고요. 타샤 튜더도 발랄하고 소녀 같은 할머니로 알려져 있지만, 그에게는 어린 시절 부모의 이혼과 자신의 이혼 등 인생의 굴곡이 있었잖아요. 다만 자신만의 즐거움과 행복을 찾아 정원을 꾸리고 전원생활을 담은 그림을 그렸던 거고요.

 

이러한 세계를 딸에게도 보여주고 싶다는 생각으로 무작정 차에 태워 사유원, 경주 천년숲정원 같은 곳들을 함께 다녔어요. 그때 이미 정원에 몸과 마음을 보듬는 힘이 있다는 걸 알고 있었던 거죠. 어떤 순간이 있었다기보다 경험이 축적되면서 서서히 제 마음을 빼앗아간 것 같아요. 사실 글을 쓰는 일 자체가 제게 치유의 행위이기도 해요. 쓰면서 괴로워하긴 하지만 온전히 내 이야기와 감정을 글로 박제하고 나면 무언가가 해소됐다는 느낌이 들거든요. 취미인 수영도 그렇고, 얼마 전 취재차 경험한 탐조도 좋아하게 되었는데, 생각해보니 제가 범명상적 활동에 끌리는지도 모르겠어요. 정원도 그런 측면이 있어요. 직접 가꾸면서 또는 감상하면서 물아일체가 되니까요.

 

현재는 정원 애호가를 넘어 서울대학교 박사과정에서 조경학을 공부하고 있죠. 정원과 조경은 사실 많이 다르잖아요. 그럼에도 불구하고 조경이라는 학문에 관심을 갖게 된 계기가 있나요.

정원에 관심을 갖게 된 순간부터 성실한 모범생 김선미의 장점을 십분 발휘해 정원과 관련된 다양한 서적을 읽었어요. 그 과정에서 ‘조경미학’이라는 존재를 알게 됐는데 가슴이 뛰더라고요. 전공하고 싶었던 학문 중 하나가 미학이었거든요. 지금 지도교수인 배정한 교수님에게 조언을 구했더니 박사과정을 권유하셨어요. 교수님의 연구실에 예술사를 전공한 분도 있고, 조경을 전공하지 않았지만 석사와 박사과정에서 조경을 공부하는 사람이 있다는 말씀이 제게 용기를 북돋았습니다. 내가 정말 조경을 공부할 준비가 되어 있을까 확인하기 위해 몇몇 수업도 들어봤는데 너무너무 흥미로웠습니다. 결심이 서자마자 준비를 시작했어요. 마음먹으면 바로 실행하는 행동파거든요. 대학원 입학 고민을 하던 때가 9월이었는데 면접이 10월이었어요. 한 달 만에 텝스 시험에서 시작해 면접 준비까지 완료해야 했어요. 무모한가 싶었지만 결국엔 입학했습니다.

 

아직 연구 주제를 명확히 정하진 못했지만 정원과 미학에 대해 이야기하고 싶어요. 지금까지 한국조경학회 학술대회에서 두 번 발표를 진행했었는데, 첫 번째는 유리코 사이토의 일상 미학을 적용해 영화 ‘퍼펙트 데이즈’를 분석했었습니다. 두 번째로는 현대 정원 이론에 나타난 정원의 고유성을 분석했고요. 지금은 어떤 틀 없이 관심이 생기면 이것저것 다 들여다보고 있는 중입니다.

 

KSM05.jpg
김선미가 펴낸 다섯 권의 책

 

 

조경학을 공부하기 전의 정원과 지금 바라본 정원은 다른가요.

다르게 보이죠. 전에는 정원에 가면 눈에 띄는 식물들의 이름들이 궁금했어요. 그런데 어느 순간부터 개개의 식물보다 정원 자체를 바라보게 되더라고요. 시야가 넓어진 기분이에요. 생전 관심도 없던 바닥 포장재를 보기도 하고요. 작년과 재작년에 싱가포르 취재를 갔는데 제가 가로수의 상태를 관찰하고 있더라고요. 신기한 기분이었어요. 덕분에 점점 글쓰기가 어려워져요. 친한 선배나 후배가 가끔 기사 너무 어렵게 쓰지 말라는 이야기를 하더라고요. 글에 힘이 들어가고 있는 것 같다면서요. 개인적으로 너무 무거운 글을 쓰고 싶지 않거든요. 정원을 바라보는 관점이 달라졌더라도 누구나 정원을 산책하듯 가볍게 읽을 수 있던 ‘시크릿가든’이라는 연재의 정체성을 잊지 않으려 노력하고 있습니다.

 

자신만의 정원 감상법이 있다면요. 어떤 정원을 좋다고 느끼는지도 궁금합니다.

질문을 듣고 보니 최근에 정원을 자주 가지 못했다는 생각이 드네요. 우선 자연스러운 정원을 좋아합니다. 과하게 꾸며 뽐내는 정원, 설계 철학이 너무 거창한 정원, 자신의 개성 없이 남을 모방한 정원에는 마음이 가지 않더라고요. 독창적인 정원이 가장 아름답게 느껴져요. 최근 자연주의가 유행이라 피트 아우돌프의 식재 기법으로 꾸민 정원을 자주 만나는데, 단순히 따라하는 것에 그치다 보니 다 비슷비슷해 보이더라고요. 기억에 남지 않아요. 완벽하지 않아도, 서투르더라도 자신의 스타일이 묻은 정원을 훨씬 더 좋다고 느낍니다. 정원이 패션과 비슷한 측면이 있어요. 사람마다 체형이나 그 장점이 다른데, 유행하는 패션과 그 옷을 잘 소화하는 사람을 그대로 베껴 입는다고 내 것이 되지 않는 것처럼 말이죠.

 

정원 꾸리기를 두려워하는 사람들을 보면 20년 전 신라호텔에서 열렸던 제프 레섬(Jeff Leatham) 플로리스트의 플라워 쇼케이스가 떠올라요. 물이 가득한 유리 화병에 꽃잎을 뜯어 넣기도 하고 꽃 자체를 잠수시키는 신선한 퍼포먼스를 선보였었죠. 그의 파격적인 디자인을 지켜보면서 예술의 세계에서는 틀을 두지 않아도 되겠구나 생각하게 됐습니다. 헛간도 아름다운 정원이 될 수 있어요. 잘 가꾼 정원만이 정원이라 생각하지 않습니다. 정원을 만들고 있는데 아는 것이 없어 망설이고 있는 사람이 있다면, 그냥 마음과 손이 가는 대로 우선 해보라고 말해주고 싶습니다.

 

최근 들어서는 공공 녹지의 중요성을 깨닫고 있어요. 한때 가족과 프랑스 파리에 살았던 적이 있는데, 아이들의 안전을 위해 치안이 좋은 동네에 머무르려다보니 월세는 비싼데 집은 협소하기 그지없었죠. 집이 답답하니 밖으로 향했어요. 매일같이 아이들과 함께 공원 잔디밭에 나와 돗자리를 깔고 그 위에서 시간을 보냈거든요. 그렇게 ‘슬기로운’ 공원 생활을 하다 보니 현장에 일하러 나온 파리시청 녹지과 공무원과 친해지기까지 했어요. 그 사연을 페이스북에 올렸더니 친구들이 댓글을 달았어요. “누가 기자 아니랄까봐 붙임성도 참 좋지.” 그때의 기억이 참 좋아요. 내 손길이 묻은 나만의 작은 정원도 좋지만, 누구든 편하게 머물러 자연을 즐길 수 있는 공공의 장소가 꼭 필요하다는 생각이 들어요.

 

김선미가 정원에서 발견한 가장 큰 키워드는 ‘위로’겠죠. 『정원의 위로』(민음사, 2024) 책을 펴자마자 목차부터 훑어봤어요. 누군가는 정원과 위로를 빤한 키워드의 만남이라 생각하겠지만, 저 역시 정원에는 치유의 힘이 있다고 믿어요. 다만 이를 과학적 데이터로 어떻게 증명할지가 어려운 문제더라고요. 관련하여 느낀 바가 있다면 이야기를 들려주세요.

정원에 위로의 힘, 치유의 힘이 있는 건 분명합니다. 그런데 개인의 차원에서 정원으로 인해 나의 병증이 얼마큼 호전됐는지 증명하기는 어렵죠. 저 역시 ‘시크릿가든’과 여러 글들로 정원이 가진 힘을 이야기하고 있지만 과학적 근거로 내세우는 데는 한계가 있습니다. 현재 국립산림과학원의 자문위원으로 활동 중인데, 살펴보니 산림 치유에 대한 높은 관심에 대응하기 위해 여러 사업을 추진하고 있더군요. 하지만 현재 국내에서 추진 중인 ‘정원 처방’의 사업 밑바탕이 될 데이터를 축적하는 데는 아직 미흡한 것으로 보였습니다. 결국 전문가의 힘을 빌려야 한다고 생각합니다. 미국, 싱가포르, 캐나다 의료계에서 점차 정착되고 있는 ‘자연 처방’3 사업들은 국립 병원과 긴밀히 협업하며 진행 중이거든요. 전문 의료진들과 연구 교류를 통해 녹지의 의학적 효과를 증명할 수 있는 데이터를 축적했으면 합니다. 의료기관과 함께하는 과정에서 보험수가 적용 여부를 논의하는 기회를 자연스럽게 만들 수 있기도 하고요.

 

작년 서울국제정원박람회는 보라매공원에 111개의 정원을 조성했어요. 눈과 마음을 즐겁게 해주지만, 오랜 구상과 고민 아래에서 계획된 공원에 영구적으로 존치될 정원을 깊은 고민 없이 배치한다는 생각도 들어요. 올해에는 그 대상지가 서울숲으로 정해졌는데 여러 정원이 들어서면 구조적 변경이 불가피하다는 걱정이 듭니다. 이러한 상황을 어떻게 바라보고 있는지 궁금해요.

마침 서울국제정원박람회의 조직위원으로 활동하고 있어요. 서울시 담당 공무원분들이 무신사나 영풍문고 같은 기업들의 참여를 열심히 끌어내고 있어요. 그런데 최근에 정원 배치 계획이 담긴 지도를 받아보고 마음이 복잡해졌습니다. 수십 개의 정원이 공원을 빼곡하게 메우고 있더라고요. 공원의 여백이 사라지는 건 아닌가 걱정이 됐습니다. 물론 개원 20주년을 맞이한 서울숲에는 어느 정도 정비가 필요합니다. 하지만 공원은 정원의 합이 아니잖아요. 수십 개의 정원이 공원에 조성된다는 건, 편안히 돗자리를 펴고 앉을 수 있는 여유로운 녹지가 줄어드는 것, 또 여백이 있는 녹색 풍경을 바라볼 기회가 적어지는 것의 가능성을 내포합니다. 올해 서울숲에 조성되는 작가정원들은 시민들이 앉는 공간을 많이 만들려고 하더라고요. 그 밖의 정원들도 편히 앉아 마음을 내려놓을 수 있는 공간으로 조성되기를 바랍니다.

 

이미 기능을 잘 수행하고 있는 공원이라면 더 신중한 접근이 필요합니다. 뉴욕에서 정원박람회가 개최된다면 센트럴파크에 정원을 만드는 형식으로 진행되진 않을 것 같거든요. 이미 녹지가 풍부한 곳에 꽃을 더하기보다는 정말 일상에서 녹지를 만날 기회가 부족한 소외 지역에 정원을 만들고 환경을 정비하는 게 더 의미가 있을 것 같아요. 그런 점에서 이번 박람회에서 서울숲보다 오히려 성수동의 고가 밑 환경이 어떻게 바뀔지 기대하고 있어요.

최근 서울국제정원박람회를 설명하는 문구로 ‘천만의 정원’이 추가되었더라고요. 아마 천만 명의 사람이 서울숲의 정원을 찾아오기를 바라는 마음이겠죠. 정원박람회의 목표가 ‘정원 문화의 확산’에 방점을 찍고 있다면, 단순히 방문객의 숫자가 많아지는 데만 집중해서는 안 될 겁니다. 한국 사회가 너무 숫자에 집착하고 있는 것 같아요. 최근 TV를 켜면 온갖 오디션 프로그램이 쏟아져 나오는데, 정원박람회는 그런 자극적인 방향으로 흐르지 않기를 바랍니다. 정원박람회가 대중들이 정원에 좀 더 가까이 다가갈 수 있는 계기를 만든 건 맞습니다. 이제 정원에 대한 관심이 충분히 높아졌으니 좀 더 성숙한 형태의 정원박람회를 고민해야 할 때라 생각합니다. 지금까지 정원박람회가 개최됐던 공원들이 지금은 어떻게 활용되고 관리되며, 주변 지역에 어떤 영향을 주고 있는지 되돌아봐야 합니다.

 

‘꽃’박람회와 ‘정원’박람회가 어떻게 달라야 하는지 고찰해볼 필요도 있어요. 한국인 대부분이 사실 자신의 정원을 가져본 적이 없잖아요. 그렇다 보니 정원박람회라는 행사의 역할에 대한 공감대도 형성하지 못했고, 정원이라는 장소 자체에 대한 개념도 개개인마다 달라요. 이제는 정원이 무엇인지, 또 국가나 시의 차원에서 만드는 정원은 어때야 하는지 구체적으로 이야기해야 하지 않을까요. 그 화두를 던지는 역할을 정원박람회가 해야 할 필요가 있습니다.

 

제 안에서도 여러 생각이 충돌해요. 정원박람회가 반드시 필요한 행사인가 싶다가도, 자신의 손으로 직접 식물을 돌보며 정원을 꾸리고 싶어 하는 사람들을 만나면 그들의 욕구와 갈증이 제 예상보다 훨씬 커서 놀라곤 하거든요. 결국 필요한 건, 완성된 정원을 제공하는 것이 아니라 정원을 가꾸기를 원하는 사람들에게 그 소망을 실천할 수 있는 땅과 여건을 마련해주는 것이겠죠. 하지만 도심에는 늘 땅이 부족하니 해결하기 어려운 문제입니다.

 

정원박람회를 계속해 나갈 거라면 장소를 좀 더 신중히 택했으면 합니다. 공원보다는 소외된 동네가 박람회 개최지 후보가 되었으면 좋겠어요. 고시원 밀집지 한 구석의 공개공지나 독거노인이 모여 사는 동네의 오래된 공원이라든지요. 진짜 시민들의 일상과 밀접한 버스정류장이나 횡단보도 주변의 가로를 주인공으로 삼을 수도 있지 않을까요.

 

정원박람회 열풍과 정원도시 붐이 일면서 요새는 ‘정원’이란 이름이 붙은 다양한 사업이 이곳저곳에서 펼쳐지고 있어요. 하지만 그 속을 들여다보면 정원이 정원으로 존재할 수 있는 사업인지, 지속가능할 수 있는지 의문이 듭니다.

시민들의 정원에 대한 관심이 급격하게 치솟으면서 겪는 성장통이라 생각합니다. 정원에 대해 잘 모르는 건 시민뿐만이 아닙니다. 현재 다양한 정원 사업을 펼치고 있는 산림청도 공공사업으로 만드는 정원이 어떠해야 하는지 고심 중인 것 같습니다. 정원에 대한 개념과 문화가 제대로 자리 잡지 않은 상태에서 우선 사업을 추진하다보니 질적으로 훌륭하고 사회에 정말 필요한 정원을 만들기보다는 ‘양적’ 증가를 목표로 하는 사업이 많은 편이죠.

 

정원 문화가 무엇인지도 하루 빨리 논의되어야 합니다. 문화라 하니, 막연히 공연이나 예술, 미술 전시와 연계된 사업을 펼쳐야 한다고 오해하는 경우가 많습니다. 정원 문화의 핵심은 사람들이 정원을 직접 가꾸며 생명체가 탄생해 자라나고 스러지는 과정을 직접 목격하는 기회를 마련해주는 것인데 말이죠.

 

그럼에도 불구하고 주거와 사회 공간에 대한 관심이 높아지는 현상은 매우 긍정적으로 바라보고 있습니다. 결국 좋은 정원 사업을 추진하기 위해서는 좋은 전문가, 진정성 있는 기업과 함께하는 것이 해답이 될 수 있다고 믿습니다. 그간 문화부, 경제부, 사회부 등 다양한 부서에서 기사를 쓰며 느낀 것이 있어요. 기사 작성을 위해 그때그때 최선을 다해 공부하며 기사를 쓰지만, 벼락치기식으로 습득한 지식은 금세 휘발되더라고요. 결국 좋은 기자의 역량은 각 분야의 전문가가 누구인지 파악하고 있는 것이라고 생각합니다. 어떤 분야의 사람이든 자신만의 맨파워로만 해내려고 하면 좋은 성과를 내기 힘듭니다. 이제 정원도 어떤 분야와 접목해 일할 것인지, 또 어떤 전문가와 함께 협업할 것인지를 고민할 시기라고 생각해요. 다른 분야 전문가들의 말에 열린 마음으로 귀 기울일 준비도 해두어야 합니다.

 

요즘에는 무슨 일을 하고 있는지 궁금해요.

에세이를 쓰고 있습니다. 6월 출간을 목표로 막바지 원고 작업에 매진하는 중입니다. 그리고 기사 마감을 거듭하고 있습니다(웃음). 철원 탐조 여행 취재 때 만난 외국인 부부와 연락을 주고받고 있어요. 한 번의 만남이 긴 인연으로 이어지는 걸 기자 생활의 보람이자 즐거움이라 느끼고 있습니다. 앞으로도 쭉 쓰는 작업을 계속할 것 같습니다. 박사 논문 쓰기도 포함해서요. 참, 김모아 기자가 인터뷰를 하고 유청오 작가가 사진을 촬영한다는 말씀을 들었을 때 왠지 든든했어요. 저도 “김선미 기자가 인터뷰한다니 믿음직스럽고 설렌다”는 말을 들을 수 있도록 더욱 노력해야겠어요. 늘 누군가에게 묻던 제가 이번 기회에 감사한 질문들을 받으면서 제 삶의 방향이 좀 더 선명해졌어요. 고맙습니다.


**각주 정리

1. 김선미, “[김선미 기자의 談담] 쓱 한 번으로 시선을 붙잡다…“광고에 사람의 온도를 넣고 싶었죠””, 「동아일보」 2016년 3월 7일.

2. “서울 청담동, 서울역, 황학동 등을 배경으로 부드러운 미셀러니 형식으로 시작된 이 칼럼은 점차 인물 중심으로 바뀌면서 이산가족, 결식아동, 젊은 증권재벌, 탑골공원 박카스 아줌마 등 우리사회 구석구석에 눈길을 돌렸습니다. 서울 무교동 구두닦이, 탈북자 비서관 김형덕씨, 때밀이 학원의 아줌마들과 고층빌딩의 줄타기 아저씨들, 서울 신림동 난곡마을 사람들, 한때의 권세가 무색하게 지금은 가난한 전직 국회의원 할아버지, 강한 생활력의 제주도 해녀, 고국을 그리워하는 젊은 재일교포, 육아휴직계를 내고 아기를 키우는 남자, 직업소개소를 통해 일본으로 시집가는 한국여성 등이 이 칼럼을 통해 소개됐습니다. 특히 타고난 가난으로 어려서부터 막노동판을 전전하고 루프스 등 각종 질병으로 힘들게 살아가는 도시소시민 박영숙(34)씨가 이 칼럼에 소개된 것을 계기로 각계각층으로부터 도움을 받은 것은 흐뭇한 일입니다.”, 김선미, “‘김선미 기자의 세상엿보기’를 마치며”, 「문화일보」 2001년 12월 20일.

3. 자연이 건강에 구체적으로 어떤 효과를 주는지 연구해, 약 대신 자연 속 활동을 치료법으로 권장하는 개념이다. 숲과 녹지가 현대인의 만성 질환인 스트레스와 불면증, 고혈압, 우울증에 어떤 효과를 줄 수 있는지 살펴 “공원에서 명상을 2시간 이상 할 것”, “근처 정원에서 일주일에 두 번씩 30분 이상 산책을 할 것”과 같은 구체적 처방을 내린다.


김선미는 2023년부터 「동아일보」에서 ‘김선미의 시크릿가든’을 연재하고 있다. 「동아일보」에서 논설위원, 뉴센테니얼본부 크리에이티브랩 팀장, 편집국 문화부와 산업부 차장 등을 거쳐 현재는 콘텐츠 기획본부 부장이다. 최근에는 국내에서 가볼 만한 24개의 정원을 소개한 『정원의 위로』(민음사, 2024)를 펴냈다. 산림교육전문가(숲해설가)이자 서울대학교 협동과정 조경학 박사과정을 수료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