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월간 에코스케이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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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공지능, 설계 도구에서 상상력의 인프라로] 조경 설계 자동화의 실험
  • 환경과조경 2026년 4월호

대학 시절부터 컴퓨팅에 관심이 많았다. 학교 작업실에서 밤을 새우며 도면과 패널을 만들던 때에도, 컴퓨터가 인간의 사고를 어디까지 도울 수 있을지 늘 궁금했다. 조경을 공부하면서 특히 오래 붙들고 있었던 질문이 있었다. 우리는 왜 어떤 공간을 좋다고 느끼는가. 사람들은 어떤 장소에서 더 오래 머무르고, 더 편안함을 느끼며, 더 즐겁고 의미 있는 시간을 보내는가. 그리고 그 질문에 대한 답은 과연 전적으로 감각과 직관, 경험에만 의존해야 하는가.

 

학교에서 설계를 배우며 느낀 가장 큰 불편함 중 하나는 설계 평가의 주관성이었다. 물론 설계는 본질적으로 복합적이며 맥락과 미감, 사회적 해석이 함께 작동하는 분야이기에 단순한 정답이 존재한다고 보기 어렵다. 그럼에도 어떤 설계안은 “좋은 공간감을 가졌다”고 평가되고, 어떤 안은 “개념이 약하다”는 이유로 낮은 평가를 받는다. 그 차이가 때로는 설명 불가능한 감각의 언어로만 남는다는 점이 늘 아쉬웠다. 그래서 오히려 다른 방향의 질문을 던지게 됐다. 사람들이 좋아하는 공간, 편하게 쉴 수 있는 환경, 즐겁고 의미 있는 장소에 어떤 패턴과 규칙이 존재하는지 데이터로 읽어낼 수는 없을까. 보행 흐름, 시선의 개방감, 프로그램의 구성, 식재 밀도, 일조와 음영, 주변 맥락과의 관계 같은 요소를 수치로 분석하고, 그것을 바탕으로 더 나은 공간의 해답에 가까이 갈 수 있지 않을까 생각했다.

 

실험의 시작

문제의식이 구체적 계획으로 바뀐 것은 2018년 무렵이었다. 당시는 추론형 AI의 흐름에서 파생된 GAN(Generative Adversarial Network) 기반 생성 기술이 여러 분야에서 실험적으로 등장하던 시기였다. 아직 결과물은 거칠고 불안정했지만, 나는 이미 그때 ‘AI로 조경 설계를 할 수 있겠다’는 가능성을 보았다. 단순히 설계 결과를 보기 좋게 시각화하는 수준이 아니라, 주변 환경과 각종 데이터를 읽고 그것을 바탕으로 설계안을 도출하는 데까지 인공지능을 활용할 수 있다고 생각했다.

 

이 가능성을 졸업 설계에 직접 적용해보고자 했다. 대상지 주변의 데이터를 수집하고 맥락을 분석한 뒤, 이를 입력값으로 받아 대형 공원의 내부 설계를 출력하는 AI를 직접 구축했다. 대상지는 당시 활용되지 않은 채 방치되어 있던 옛 진주역 부지로 설정했다. 주변의 도로, 주거지, 상업 시설, 공원 등 다양한 환경 데이터를 분석해 AI에 입력하고, 그 결과로 설계 도면이 출력되도록 구성했다. 이 작업을 4년간의 조경학과 생활을 마무리하는 졸업 전시 결과물로 내놓았고, 설계자의 이름 대신 AI 모델의 이름을 걸어 출품했다. 하지만 많은 이들은 설계안의 내용이나 공간적 타당성을 면밀히 보기보다 ‘AI가 이것을 해냈다’는 사실 자체를 신기하게 받아들였을 뿐이었다.

 

지금 돌아보면 당시의 성능은 분명 제한적이었다. 데이터도 충분하지 않았고, 모델의 크기나 학습량 역시 지금과는 비교하기 어려울 만큼 작았다. 결과물은 설계 아이디어를 실험하는 수준에 가까웠고, 실제 설계안으로 곧바로 이어가기에는 완성도가 부족했다. 하지만 그 과정은 내게 중요한 확신을 주었다. 설계란 전적으로 감각에만 의존하는 행위가 아니라, 일정 부분은 분석 가능하고 구조화할 수 있으며, 따라서 기계와 협업할 수 있는 영역이라는 확신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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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6년 3월 출시된 구글의 제미나이를 활용해 조경 영역을 가상으로 디자인해 만든 조감도. 30초도 안되는 시간 안에 결과물 출력이 가능해졌다.

 

창업, 공동주택 조경 설계에서의 실험

졸업 설계 이후에도 이 시도는 멈추지 않았다. AI 를 통해 조경 설계의 더 나은 해답을 찾으려는 연구를 계속 이어가기 위해 창업을 결심했다. 성능을 높이기 위해 여러 조경설계사무소에 찾아 가 조언을 구하기도 했다. 현업에서 어떤 방식으로 설계가 이루어지는지, 도면에는 어떤 규칙이 숨어 있는지, 실제 프로젝트에서는 무엇이 중요하게 작동하는지 배우고 싶었다. 운 좋게 몇몇 실 무자로부터 도면 데이터와 조언을 얻기도 했다. 그 시기에는 지금처럼 공개된 데이터가 많지 않았고 AI 설계를 진지하게 논의하는 분위기도 아니었기 때문에, 하나의 프로젝트를 이해하기 위해 많은 발품을 팔아야 했다. 하지만 그 과정은 기술 연구 못지않게 중요했다. 설계는 결국 현실의 제약과 기준, 사람의 의사결정이 중첩되는 과정이라는 점을 더 분명히 이해하게 되었기 때문이다. 


지속적인 연구 끝에 한 대기업과 협업할 기회도 생겼다. 이를 계기로 대량의 주택 단지 도면 데이터를 바탕으로 본격적인 연구를 수행할 수 있었다. 이 시기의 경험은 매우 중요했다. 그전까지는 제한된 사례와 실험적 접근에 가까웠다면, 이때부터는 훨씬 더 실제적인 조건 속에서 AI 설계의 가능성과 한계를 검증할 수 있었기 때문이다. 특히 당시의 AI는 모델 크기와 학습량의 한계로 인해, 복잡한 맥락과 다양한 변수가 얽힌 대규모 공원 설계보다 일정한 규칙과 반복 구조가 존재하는 공동주택 조경 설계에서 더 나은 성능을 보였다. 공동주택 조경은 출입구, 보행 동선, 시설 배치, 수목 배식 등에서 비교적 명확한 규칙과 제약 조건이 존재한다. 제한된 공간 안에서 일정 수준의 질서와 기능성을 확보해야 하므로, 당시 AI가 패턴을 학습하고 결과를 도출하기에 더 적합한 영역이었다. 


실제로 이 연구를 통해 공동주택 외부 공간에서 동선 체계나 출입구 주변 공간 구성, 제한 된 범위 내의 수목 배치 등과 같은 항목에서 의미 있는 결과를 확인할 수 있었다. 인간 설계자가 오랜 경험을 통해 익혀온 일부 설계 규칙을 AI가 어느 정도 따라가고 있다는 점도 확인했다. 다만 한계 역시 분명했다. 생성된 결과를 바로 실시설계 도면으로 활용하기에는 무리가 있었다. 설계의 완성도, 도면의 정밀도, 실제 시공을 고려한 디테일, 예외 상황에 대한 대응력 등에서 부족함이 컸다. 결국 이 기술은 대기업과의 공동 연구 결과물로 정리됐고, 관련 내용은 특허로 남겨둔 채 해당 연구는 일단락됐다. 당시에는 아쉽기도 했지만, 동시에 기술의 수준이 여기까지 왔 다는 사실만으로도 충분히 의미 있는 진전이라고 느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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구 진주역 주변의 거주 구역, 도로, 기존 시설물을 데이터화해 인공지능 입력값으로 설정한 데이터 시각화 자료

 

그리고 현재, 생성형 AI의 등장

그로부터 몇 년이 지난 지금, 상황은 완전히 달라졌다. 생성형 AI의 발전 속도는 예상보다 훨씬 빨랐다. 생성형 AI는 문자, 이미지, 영상, 코드, 3차원 데이터까지 넘나들며 설계 실무 전반에 빠 르게 스며들고 있다. 모델의 크기는 비약적으로 커졌고, 처리할 수 있는 정보의 양도 크게 늘어 났다. 이전에는 개별 패턴을 흉내내는 데 머물던 기술이 이제는 문맥을 이해하고, 복합적인 조건 을 함께 고려하며, 더 나은 결과를 추론하는 방 향으로 발전하고 있다. 렌더링 이미지 생성은 물론이고 동선의 이해, 공간 해석, 환경 분석, 다단계 추론까지 가능해지면서, 과거에는 개별 실험으로만 가능했던 작업들이 이제는 하나의 연결된 설계 흐름 속에서 다뤄질 수 있게 되었다. 내가 한동안 특허와 연구 결과로만 남겨두었던 시도가 이제 훨씬 더 높은 완성도로 보다 손쉽게 실현 가능한 시기에 들어선 것이다. 


오늘날의 생성형 AI는 예전처럼 단순히 거친 아이디어를 뽑아주는 수준에 머물지 않는다. 대상지 분석 결과를 정리하고, 요구 조건을 이해하고, 설계 방향을 제안하고, 이미지를 생성하고, 수정 방향에 따라 결과를 변주하는 일까지 하나의 흐름 안에서 수행한다. 사람의 설계와 AI의 설계를 단번에 구분하기 어려운 수준의 시각 결과도 빠르게 생산할 수 있다. 무엇보다 중요한 것은, 이제 AI가 단순한 시각화 도구가 아니라 사고 과정의 일부를 함께 담당하기 시작했다는 점이다. 예전에는 사람이 먼저 모든 구조를 만든 뒤 AI가 일부를 보조했다면, 지금은 조건을 함께 해석하고 대안을 함께 탐색하는 방식으로 협업 구조가 바뀌고 있다. 


그렇다면 인공지능이 결국 조경가를 대체하게 될까. 나는 그렇게 보지 않는다. 오히려 이 질문은 기술이 등장할 때마다 반복되어온 익숙한 질문에 가깝다. 공간은 결국 사람이 살아가는 환경이며, 좋은 공간의 기준은 단순히 아름답게 보이는 이미지 한 장으로 결정되지 않는다. 어떤 장소에 어떤 기억이 쌓여 있는지, 누구를 위한 공간이어야 하는지, 무엇이 더 공공적이고 더 지속 가능한 선택인지 같은 문제는 여전히 사람이 판단해야 한다. 오히려 AI가 설계자의 역할을 없애기보다 바꾸게 될 가능성이 더 크다고 본다. 모순되지만, 모든 부분을 정량화해 AI로 공간을 설계 할 수 있을 것이라 생각한 과거의 나와는 반대로 공간에 대한 평가와 방향이 주관적 관점으로 제안되어야 한다는 것을 이제야 깨닫게 된 것이다. 


이 생각은 현재 IT 기업을 운영하면서 더 분명해졌다. 최근 몇 년간 가장 극적으로 변한 직군 중 하나가 개발자라는 점을 가까이에서 목격 했다. 예전의 개발은 검은 화면 앞에서 문법과 구조를 하나하나 직접 입력하며 코드를 작성하는 일이었다. 그러나 생성형 AI의 발전 이후 개발자들의 일하는 방식은 크게 달라졌다. 이제 많은 개발자는 코드를 작성하는 사람이라기보다 무엇을 만들어야 하는지 정의하고, 문제를 구조화하고, 여러 대안 중 어떤 방향이 맞는지 판단하는 사람으로 바뀌고 있다. 손으로 직접 입력하는 시간은 줄어들었지만, 오히려 더 큰 문제를 다루는 데 더 많은 시간을 쓸 수 있게 됐다. 다시 말해 실행의 비용은 낮아졌고, 판단과 주관의 중요성은 훨씬 커졌다. 


조경도 비슷한 방향으로 움직일 가능성이 높다. 인공지능이 평면을 생성하고, 이미지를 만들고, 대안을 무수히 변주해낼 수는 있다. 하지만 어떤 공간이 이 사회에 필요한지, 이 장소의 기억 을 어떻게 보존하고 갱신할 것인지, 누구를 위한 공공성을 우선할 것인지, 이 환경이 미래 세대에게 어떤 경험을 남겨야 하는지는 여전히 인간이 판단해야 할 문제다. 조경은 단지 보기 좋은 장면을 만드는 일이 아니라, 사람과 생태, 도시와 지역, 시간과 기억이 만나는 환경을 구성하는 일이다. 그렇기 때문에 설계의 핵심은 결과물의 형 상이 아니라 질문을 설정하는 능력에 있다. 인공 지능은 많은 답안을 빠르게 만들어낼 수 있지만, 무엇을 물어야 하는지까지 스스로 정하지는 못한다.

 

인공지능, 사고 확장과 검증의 도구

앞으로 조경가의 역할이 더 중요해질 것이다. 다만 그 역할의 성격이 조금 달라질 것이다. 이제 조경가는 더 많은 시간을 ‘어떻게 그릴 것인가’보다 ‘무엇을 제안할 것인가’에 써야 한다. 어떤 공동체가 필요한가, 어떤 휴식이 오늘의 도시인에게 필요한가, 어떤 외부 공간이 돌봄과 교류, 회복을 가능하게 하는가, 기후 위기 시대의 조경은 어떤 성능과 감수성을 동시에 가져야 하는가 같은 질문 말이다. 인공지능은 그 질문을 실험해볼 수 있는 강력한 도구가 될 수 있다. 수많은 대안을 빠르게 비교하고, 서로 다른 조건의 시나리오를 검토하며, 사용자 반응과 환경 데이터를 결합 해 설계의 방향을 검증할 수 있다. 조경가는 그 과정을 통해 더 넓은 범위의 가능성을 탐색하고, 더 근거 있는 제안을 할 수 있게 된다. 


물론 경계해야 할 점도 분명하다. 인공지능은 학습 데이터가 가진 편향을 답습할 수 있고, 그 럴듯해 보이는 결과를 내놓더라도 실제 맥락과 맞지 않는 경우가 많다. 특히 조경처럼 장소성과 시간성을 중시하는 분야에서는 피상적인 이미지 생산에 머물 위험이 크다. 보기 좋은 조감도 한 장이 좋은 공간을 보장하지는 않는다. 따라서 우리는 인공지능을 ‘자동 설계 기계’로 받아들이기보다, 사고를 확장하고 검증을 도와주는 도구로 다루어야 한다. 기술을 맹신하는 태도도, 반대로 두려움 속에서 무조건 배척하는 태도도 모두 생산적이지 않다. 중요한 것은 도구의 능력이 아니라, 그것을 사용하는 사람의 질문과 태도다. 


돌이켜보면 내가 조경과 인공지능의 접점을 처음 상상했던 이유도 결국 같은 곳에 닿아 있 다. 더 나은 공간에는 분명 어떤 규칙과 패턴이 존재할 것이라고 믿었다. 하지만 지금의 나는 그 규칙을 찾는 일이 단순한 정답 찾기는 아니라는 점도 함께 이해하게 되었다. 사람들의 삶은 너무 나 다양하고, 공간의 의미는 사회와 문화, 시대에 따라 끊임없이 달라진다. 


인공지능 시대의 조경은 인간 대 기계의 대결 이 아니라, 더 나은 환경을 만들기 위한 협업의 문제에 가깝다. 반복적인 비교안 작성과 표현 정리, 방대한 자료 검토와 옵션 조합에 쓰이던 시간이 줄어들수록, 우리는 오히려 더 본질적인 질문에 에너지를 쏟을 수 있게 된다. 사람들에게 진정으로 필요한 환경은 무엇인지, 편안함과 즐 거움, 기억과 공공성을 품은 공간은 어떤 모습이어야 하는지, 앞으로의 도시와 주거 환경에 어떤 외부 공간이 요구되는지를 더 깊이 고민하고 제 안하는 일이 중요해지는 것이다. 그런 의미에서 인공지능은 조경의 정답을 대신 말해주는 기술이 아니라, 더 나은 질문과 더 많은 가능성을 열어주는 도구다. 


과거의 나는 데이터를 통해 좋은 공간의 규칙을 찾고자 했지만, 이제는 그 규칙이 고정된 하나의 답이라기보다 사람과 장소, 시대의 조건 속에서 끊임없이 조정되고 탐색되어야 하는 것임을 이해하게 됐다. 조경과 인공지능의 만남은 아직 시작 단계에 있다. 그러나 분명한 것은, 과거에는 막연한 상상이었던 일이 이제는 실제로 가능한 수준이 됐다는 사실이다. 그리고 그 변화는 반복된 설계를 AI가 찍어낸 빈약한 복제의 양산이라는 비극이 아니라, 오히려 더 풍부한, 조경가의 본질적인 고민들이 녹아든 수준 높은 공간들이 만들어질 수 있을 것이라 기대한다. 결국 인공 지능은 조경을 대체하는 기술이 아니라, 조경이 더 넓은 가능성을 가지도록 돕는 협업의 기술이다. 

 

신진욱은 서울대학교에서 조경학을 전공했다. 대학 시절부터 인공지능을 활용한 조경 자동 설계 가능성에 관심을 두고, 학부 4학년 때 ‘파프리카’ 팀을 창업해 AI 학습용 데이터 수집과 설계 자동화 연구를 진행했다. 설계 자동화에 대한 관심을 다양한 산업으로 확장해, 현재는 ‘플래닝고’를 창업하고 AI 기반 3D 제품 구성·설계·견적(CPQ) 자동화 솔루션을 연구·개발하는 팀을 이끌고 있다. 기술을 통해 설계와 의사결정의 방식을 혁신하는 일을 지속적으로 탐구하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