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월간 에코스케이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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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비인간으로 도시 읽기] 도시의 가로수, 버스 안에서
  • 박소영
  • 환경과조경 2026년 6월호

월, 수, 금요일이면 6512번 또는 6515번 연두색 지선버스를 타고 수영장에 간다. 수영장을 가려면 봉천역과 서울대입구역 사이에 있는 남부순환로를 지나야 한다. 관악구에 속한 이 남부순환로는 다른 구간과 조금 다르다. 사각으로 전정한 플라타너스들이 줄지어 서 있다. 누군가는 그 나무들을 ‘메로나’라고 부른다. 직육면체로 잘린 연두색 수관(canopy)이 아이스크림 막대를 닮았다는 것이다. 여름이면 나타나니 그 역시 메로나스럽다.

 

연구를 위해 가로수에 대한 인터뷰를 했을 적에, 두 명의 인터뷰이가 이 길을 언급했다. 공통적으로 이 네모반듯한 가로수들은 두 사람 모두에게 강렬한 인상을 남겼다. 감상은 엇갈렸다. 한 사람은 그 풍경을 “신박하다”고 했다. 맨날 지나다니던 길인데도 가지치기 이후 갑자기 새로운 걸 발견한 느낌이었다고. 다른 한 사람은 “레고블록 같았다”라며 인상을 찡그렸다. 마치 빌딩의 부속품처럼 나무가 박혀 있는 것 같았다고, 그래서 갑갑했다는 것이다.(각주 1)

 

그제야 그 나무들을 다시 보게 됐다. 버스가 봉천역에서 서울대입구역 쪽으로 나아갈 때, 창밖으로 네모난 초록 덩어리들이 슝슝 지나간다. 잎의 흔들림이 보이는 게 아니다. 평평하게 잘린 녹색의 면이 먼저 눈에 들어온다. 한 그루 한 그루가 보이기보다 직사각형이 보이고, 그 평면이 길을 따라 이어진다. 버스가 속도를 내면 그 형상은 길게 늘어난다. 빨리 지나갈 때 오히려 직사각형이 또렷해지는 것 같기도 하다. 8차선 도로의 너비만큼 나무들은 크고 연속적으로 시야에 들어온다. 창밖에는 매끈한 녹색 파노라마가 펼쳐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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봉천역과 서울대입구역 사이 남부순환로 사각으로 전정된 플라타너스들이 길을 따라 네모난 초록 입면을 만든다. 2025년 8월. Ⓒ네이버 지도

 

 

도서관 가는 길, 낙성대로 가로수길은 또 다른 인상을 남긴다. 학부 시절 낙성대역에서 관악02 마을버스를 타고 대학 도서관으로 올라가곤 했다. 4차선의 좁은 길은 울퉁불퉁했고, 어린이보호구역을 지날 때면 버스는 속도를 낮췄다. 덕분에 창밖을 여유롭게 감상할 틈이 주어졌다. 창밖에는 은행나무 가로수가 있었다. 이들은 꽤나 너른 품을 가지고 원추형의 자연스러운 모양새로 자라고 있었다. 남부순환로처럼 네모난 평면이 펼쳐지는 길은 아니었다. 대신 제 방식대로 봄에는 신록이, 여름이면 녹음이, 가을이면 노란 물결이 펼쳐졌다. 내게 이 길은 계절을 느끼는 장소였다.

 

한 인터뷰이는 그 길을 좋아했다. 특히 여름이 좋았다고 한다. 그가 떠올린 장면은 이렇다. 버스 안은 에어컨이 빵빵해서 아주 시원한데, 바깥은 햇빛이 쨍쨍하고, 나무는 완전히 파아랗고 무성하고, 매미 소리까지 광광 들리는 길. 버스 안의 몸은 쾌적하고 가만한데, 창밖은 기운이 넘친다. 선글라스를 끼고 조깅하는 사람도 보인다. 건강한 그들의 모습도 장면에 한몫을 한다. 나무와 햇빛, 사람과 소리가 한데 뒤섞여, 길 전체가 왕성하게 살아 있는 것처럼 보였다고 한다.

 

* 환경과조경458(2026년 6월호)수록본 일

 

**각주 정리

1. 이 글에 실린 인터뷰는 내 석사논문에 자세히 묘사되어 있다. 박소영, 『도시 가로수의 경험에 대한 환경미학적 연구』, 서울대학교 석사학위논문, 2022, 3장과 4장 참조.



박소영은 도시에서 인간과 식물의 마주침을 탐구한다. 조경과 미술사를 공부하다 식물에 도취되어 천리포수목원에서 열한 달, 서울식물원에서 열두 달을 보냈다. 대학원에서는 식물에서 출발해새, 가로수, 길고양이와 같은 도시의 존재들을 쫓아다니고 있다. 낮에는 연구와 텃밭 생활을 하고, 밤에는 진을 마시며 식물과 관계 맺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