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월간 에코스케이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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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편집자가 만난 문장들] 사람들은 주로 앉을 곳 많은 장소에 모여 머문다
  • 환경과조경 2026년 7월호

거리의 도시. 바로셀로나는 거리에서 많은 일이 일어나는 도시였다. 내가 머문 곳은 에익샴플레(Eixample) 지구, 일데폰스 세르다(Ildefons Cerdà)가 계획한 곳이다. 에익샴플레는 카탈루냐어(각주 1)로 확장을 의미하는데, 무한히 확장하는 도시를 구현하겠다는 세르다의 의지를 담은 지명이다. 그는 뜻을 이루기 위해 엄격한 위계와 중심이 없는 도시를 구상했고, 그 결과 한 변의 길이가 113.3m인 정사각형 블록, 20m 폭의 도로, 격자형 도로망이 탄생했다. 블록을 가득 채운 건 ㅁ 모양으로 배치된 건물이다. 한가운데 빈 공간은 안뜰이다. 옆벽이 맞붙은 건물의 특성상 부족한 자연 채광과 환기를 돕고, 커뮤니티가 공유하는 오픈스페이스를 통해 쾌적한 주거 환경을 제공하려는 전략이었다.

 

반듯한 도시는 보행자에게 상냥하다. 자꾸 등장하는 횡단보도가 성가시지만, 그마저도 용서된다. 차도는 좁고, 거리는 넓다. 건물보다 더 크게 자란 나무에 종종 연보라색 꽃이 피어 있었다. 한국의 벚꽃처럼, 바르셀로나의 봄을 알리는 꽃이라는 자카란다 나무 아래에는 꼭 벤치가 있었고, 각양각색의 사람들이 앉아 있었다.

 

사실 벤치는 어디에나 있었다. 대로변은 당연하고, 뜬금없어 보이는 길 한중간과 건물 앞에 숨은 그림찾기처럼 벤치가 있었다. 가게의 테라스석은 다투듯 거리를 채우고 있었다. 가게 안이 비어 있어도 테라스석에 앉기를 원하는 사람들이 길게 줄을 섰다. 벤치가 없어도 길에 앉기를 포기하지 않는다. 건물 앞, 계단 턱, 심지어는 바닥에도 주저앉는다. 거리가 모두의 쉼터 같았다.

 

여행 3일차, 함께한 가우디 건축 투어 가이드에게 줄곧 궁금했던 걸 물었다. 아직 목격하지 못한 안뜰의 존재에 대해서였다. “구글 맵을 켜서 도시를 살펴보면 주차장이 없단 걸 알 수 있어요. 그래서 많은 사람이 안뜰을 주차장으로 개조해 사용하고 있어요. 녹지가 줄고 있죠. 바르셀로나는 공원도 적은 도시에요.” 과연 그랬나. 검색해보니 바르셀로나가 달라진 건 ‘슈퍼블록’(각주 2) 프로젝트를 시작하면서부터였다. 슈퍼블록의 목표는 ‘공간의 민주적 배분’. 차량 통행을 제한함으로써 확보된 공간에는 보행자와 자전거, 또 놀이와 녹지를 즐기고 싶어 하는 이들을 위한 시설이 들어섰다. 33㎞의 가로와 21개의 광장을 포함한 21개의 녹지 거리가 조성됐다.(각주 3) 내가 이곳에서 만난 벤치들 역시 그 산물이었다.

 

지난 5월, 나들이 장소로 서울숲이 아닌 보라매공원을 택했다. 축제의 분위기도 좋지만 친구들과 떠들고 피크닉 음식을 먹기에는 앉을 곳이 넉넉한 편이 좋으니까. 지난해 서울국제정원박람회 당시에 좀 심심하다 싶었던 정원의 하부 식생이 자라 풍성해졌고, 형형색색의 꽃이 소란스럽다고 느껴졌던 정원은 한층 차분해져 있어서 좋았다. 망설임 없는 걸음의 목적지는 그늘목 쉼터. 각종 벤치들이 모인 이곳에는 사람들이 각양각색의 자세로 머문다. 운동장을 향한 바테이블에는 묘한 간격으로 의자가 놓여 있다. 덕분에 한 명도, 두 명도, 세 명 이상의 사람들도 함께 어울려 앉을 수 있다. 그 뒤에는 넉넉한 개수의 테이블과 의자가 있다. 공원과 함께 나이를 먹어온 나무 아래에는 목재 평상이 놓였다. 평상 한가운데를 가르는 비스듬한 등받이는 앉는 것, 눕는 것, 아빠다리를 하고 기대는 것등 다양한 자세를 수용한다. 햇볕이 뜨겁게 차지한 자리를 빼고는 사람들이 가득하다. 그 풍경을 볼 때면 도시사회학자 윌리엄 화이트의 말을 곱씹게 된다. “사람들은 주로 앉을 곳 많은 장소에 모여 머문다.”(각주 4) 아무리 매력적인 요소가 있어도 앉을 자리가 없으면 사람들이 오래 머물지 않고, 다양하고 유연한 앉을 공간이 많을수록 공공 공간의 인기가 높아진다는 그 말을.

 

정원박람회가 남긴 흔적 중 그늘목 쉼터가 가장 마음에 든다. 공원에는 정원보다 더 많은 의자가 필요하다고 생각하다가, 그늘목 쉼터는 단순히 기성 제품을 몇 개 골라 설치한 게 아니라 이 장소에 맞는 쉼터 설계를 조경가에게 의뢰한 결과물이라는 사실을 상기했었다. 시가 주최하는 대규모 행사가 아니었다면 과연 맞춤형 앉을 자리들이 조성될 수 있었을까. 그 물음을 떠올린 뒤로는 정원박람회의 정원보다 행사에 동반되는 기반 시설 정비들이 궁금해졌다. 올해 박람회에서 공원 밖으로의 연장을 시도한 이음정원이라는 키워드의 등장에 눈을 반짝였던 이유다.


**각주 정리

1. 바르셀로나는 12세기부터 15세기에 이르기까지 아라곤 왕국의 핵심 지역이었던 카탈루냐 공국에 해당했던 곳이다. 고유의 법과 문화를 유지해왔지만, 스페인 왕위 계승 전쟁을 통해 자치권을 상실했다. 그 뒤로도 독자적 언어와 문화를 지닌 지역으로서 강력한 중앙 집권화 시도에 저항해 왔고, 그 영향으로 스페인어보다 카탈루냐어를 쓰는 사람이 더 많다.

2. 2016년 바르셀로나는 도시를 차량 중심에서 사람 중심으로 재편하기 위해 ‘슈퍼블록’이라는 도시 공간 혁신 모델 도입을 시도했다. 3×3 형태의 9개 블록을 만사나(Manzana)라는 하나의 생활 단위로 묶어 관리하며, 블록 내부에는 보행과 휴식을 우선하는 구조를 만든다.

3. 이삼섭, “車 없앤 자리에 공원… 사람들 머무니 상권 ‘활짝’”, 「무등일보」 2025년 12월 19일.

4. William H. Whyte, The Social Life of Small Urban Spaces , The Conservation Foundation, 1980, p.28.