새에 관심이 생기면서 동네 하천을 걷는 길이 더욱 즐거워졌다. 불멍, 물멍만큼 힐링되는 ‘새멍’을 할 수 있기 때문이다. 첨벙첨벙 고개를 숙여 얼굴을 물에 담갔다 떠오르는 청둥오리 무리들, 줄줄줄 줄지어 이동하는 흰뺨검둥오리 가족들에게서 시선을 떼기란 쉽지 않다. 꼼짝도 않고 먹이를 기다리는 왜가리, 햇빛을 반사해 희게 빛나는 쇠백로에게도 눈길이 오래 머문다. 덤불 사이를 오가는 참새나 뱁새들의 재잘대는 수다에는 절로 귀를 기울이게 된다. 수면을 스치고 재빠르게 자리로 돌아오는 물총새, 물가를 총총총 뛰어다니는 알락할미새까지 보는 날이면 어느새 사진첩은 새 사진으로 한가득이다.
새 중에서도 가장 많이 보는 새는 비둘기(각주 1)다. 사람들 발에 채일 듯 길거리를 걸어 다녀 ‘닭둘기’라는 멸칭으로 불리는 바로 그 새 말이다. 그런데 하천이라는 자연에서 보는 비둘기는 도시 풍경 속에 있을 때와 느낌이 사뭇 다르다. 먹이를 찾아 고개를 움직이며 정신없이 걸어 다니는 아스팔트의 비둘기와 달리, 하천의 비둘기들은 대체로 한가롭다. 한편에 자리를 잡고 앉아 부리로 깃털을 고르거나 졸린 듯 나른한 표정으로 눈을 깜빡이며 볕을 쬔다. 무리로 있을 때는 한 번씩 휙 날아올라 하늘을 한두 바퀴 빙 돌고서 다시 쪼르륵 내려앉기도 하는데, 감히 두루미나 기러기의 군무에 비할 수는 없지만 규모가 작은 것 치고는 꽤나 장관이다. 하천에서는 비둘기 깃털 색도 색다르다. 맑고 푸른 물과 잔디로 배경을 바꾸니, 칙칙하고 우중충해 보이던 회색이 오히려 깔끔하고 세련되어 보인다. 햇살까지 비추면 보라와 초록이 어우러진 목덜미 빛깔이 더욱 신비롭고 매혹적으로 느껴진다.
비둘기는 어떻게 도시의 새가 되었나
참새, 까치, 까마귀, 박새, 직박구리. 도시에서 흔히 볼 수 있고 이름도 친숙한 새들이다. 그럼에도 ‘도시의 새’를 딱 하나만 꼽으라면 나는 주저 없이 비둘기를 고를 것이다. 비둘기를 좋아하든 싫어하든, 한국은 물론 전 세계 도시민 대부분이 아마 같은 생각일 것이다. 어쩌다가 비둘기는 도시의 새가 되었을까? 이 질문에 답하려면 지금의 도시를 상상조차 할 수 없었던 수천 년 전으로 거슬러 올라가야 한다. 인간이 농경 생활을 시작하던 그 먼 옛날, 비둘기와 인간이 처음 만났던 시절까지 말이다.
당시 우리 조상들은 야생 동물을 길들이고 인간에게 유리한 특성을 가진 개체를 골라 번식을 시켰다. 여러 세대를 거치며 이 동물들은 자연의 상태와 유전적으로 달라질 만큼 큰 변화를 겪었고, 동시에 인간의 삶터에 깊이 뿌리를 내렸다. 우리가 ‘가축(家畜)’, 말 그대로 ‘집에서 기르는 동물’이라 부르는 개, 소, 돼지, 닭 같은 동물들이다. 언뜻 이들과 다른 것 같지만, 사실 비둘기도 가축이다. 비둘기의 먼 조상인 ‘바위비둘기’는 고고학적 증거에 따르면 3,000년에서 10,000년 전, 메소포타미아 문명의 발원지인 초승달 지대에서 최초로 가축화된 것으로 추정된다.
그렇게 사람의 손에 길들여진 비둘기는 인류 역사 내내 인간과 함께해 왔다. 중세까지 제법 유용한 먹거리였고, 질 좋은 비료인 배설물도 귀한 자산으로 여겨졌다. 전신과 전화 같은 통신 수단이 상용화되기 전에는 소식을 전하는 용도로 쓰여 편지와 메시지를 날랐다. 또 한때는 특이한 외형의 관상용으로, 또 경주용으로 개량 열풍이 불기도 했다. 그렇게 긴 시간에 걸쳐 비둘기는 다양한 목적으로 쓰이며 세계 곳곳으로 퍼졌다.(각주 2) 도시를 만드는 과정에서 인간이 비둘기를 끊임없이 ‘생산’해온 셈이다. 그 시간 동안 여러 이유로 사람의 손을 벗어난 비둘기들이 곳곳에 자리를 잡고 개체군을 이루었다. 비둘기는 ‘야생’에서 ‘가축’이 되었다가 다시 ‘재야생화’된, 아주 독특한 경로를 밟아온 동물이다.
비둘기는 도시에 성공적으로 적응했다. 아니, 오히려 도시가 비둘기의 번성을 도왔다고 하는 편이 더 정확하겠다. 이유는 크게 두 가지다. 첫째, 비둘기는 건물 의존성이 매우 높다. 조상인 바 위비둘기는 원래 절벽과 바위 사이에 둥지를 짓고 살았다. 도시는 이런 습성을 가진 비둘기에게 익숙한 공간을 제공한다. 간판 뒤편, 옥상 구석, 베란다 같은 돌출 구조, 각종 구조물 사이의 ‘도 시의 틈’이 비둘기에게는 훌륭한 보금자리가 된다. 비둘기 눈에는 높은 건물과 빌딩 숲이 조상 대 대로 살아온 거대한 절벽처럼 보일지도 모른다. 둘째, 비둘기는 도시에서 먹이를 얻기 쉽다. 본래 비둘기는 땅에 떨어진 씨앗이나 열매를 쪼아 먹는다. 도시의 길거리에는 사람들이 무심코 흘리고 버린 ‘인간의 흔적’, 즉 먹을 것이 넘쳐 난다. 인구와 보행자 밀도가 높고 식당과 음식물 쓰레기 배 출이 많을수록 비둘기 개체 수가 많다는 연구 결과들이 이를 뒷받침한다.(각주 3) 하천에서 비둘기를 쉽 게 볼 수 있는 것도 이런 이유다. 비둘기들은 사람들이 두고 간 과자 봉지 주변에 모여 만찬을 벌이기도 하고, 산책로 옆 잔디밭에서 식물의 씨앗을 쪼아 먹기도 한다. 그러나 무엇보다 하천에는 비둘기가 몸을 숨기고 머물기 좋은 ‘다리’가 있다.
다리 아래에서 비둘기의 세상을 보다
다리는 끊어진 곳을 잇기 위해 만든 도시 인프라다. 사람들은 차로, 자전거로, 또 걸어서 지나다닌 다. 그러나 바로 그 다리 아래에서는 전혀 다른 세상이 펼쳐진다. 다리 아래는 비둘기에게 꽤 이상적인 공간이다. 의도하여 설계된 것도, 특별한 용도가 있는 것도 아닌, 그저 위를 지탱하는 구조물에서 ‘우연히’ 만들어진 공간이 바로 비둘기의 은신처가 된다. 상부 구조 아래 거더(girder), 교대와 교각 위, 교량 받침 사이, 다리 이름이 적힌 표지판, 각종 배관까지 온갖 돌출된 구조물이 비둘기의 쉼터이자 삶터다.
이처럼 위와 아래가 다른 다리의 양면성에 흥미가 생겼고, 틈나는 대로 서울의 하천을 돌아다 녔다. 청계천, 홍제천, 불광천, 정릉천, 중랑천, 우이천, 안양천, 양재천, 도림천 ……. 하천을 따라 걷다가 다리가 나오면 멈춰 서서 비둘기가 있는지 살폈다. 비둘기는 기대를 저버리지 않았다. 어둡고 음습한 다리 아래, 어김없이 비둘기가 있었다. 비둘기가 많은 곳은 배설물이 켜켜이 쌓여 있기도 했고, 엉성하기로 소문난 둥지도 여러 번 봤다. 다리 아래에서 머물러 좀 더 오래 들여다보면 다채로운 장면이 펼쳐진다. 인간의 시야에서는 잘 보이지 않지만 비둘기는 구조물 안쪽을 꽤 자주 드나든다. 아마 그 안이 자기만의 보금자리이거나, 거기에 알을 낳았을 것이다. 나름의 명당이 있 는지 비둘기들끼리 자리다툼도 빈번하다. 날개를 펴고 달려들며 상대를 위협하기도 하고, 막무가내로 옆의 비둘기를 밀어내기도 한다.
밀려난 쪽은 별수 없다는 듯 비켜주거나, 다른 데로 날아가 버린다. 구애하는 비둘기도 제법 흔하게 볼 수 있다. 목덜미를 잔뜩 부풀린 수컷이 몸을 낮춘 채 암컷 주위를 빙글빙글 맴도는데, 내가 본 것만 세면 성공률은 그리 높지 않다. 귀찮다는 듯 계속 피해 다니던 암컷이 날아가 버리면, 수컷은 금방 몸이 홀쭉해져서 한동안 멍하니 있다가 다른 상 대를 찾아 나선다. 반면 어느 가요의 노랫말처럼 짝을 지은 비둘기들은 다정하다. 서로의 깃털을 골라주거나 부리를 맞대며 애정을 나누는 모습을 보고 있으면 사랑꾼들이 따로 없다. 다리 위를 바쁘게 지나가는 사람들은 자신의 발아래에서 다투고 어울리고 서로 사랑하며 인간과 다름없는 하루를 이어가는 비둘기들이 있다는 사실을 모를 것이다.
자주 찾던 어느 하천에는 비둘기들이 유독 좋아하는 자리가 있었다. 다리 아래를 밝히기 위해 설치된, 가로 60㎝, 세로 40㎝ 남짓한 사각 벽조명 위의 좁은 공간이었다. 네댓 개가 일정한 간격으로 나란히 있었는데, 조명마다 비둘기가 한 마리씩 앉아 있었다. 불이 꺼진 낮에도, 환하게 켜진 밤에도 마찬가지였다. 왜 하필 저기에 앉아 있을까. 선뜻 이해가 되지 않았다. 사람들이 자주 지나 다니는 길목인 데다가 키 큰 사람이 손을 뻗으면 닿을 만한 높이였다. 몸을 충분히 숨길 만큼 깊지 도 않았고, 조명이 켜지면 눈이 부시지 않을까 싶기도 했다.
나는 비둘기가 되어 보기로 했다. 어느 수의학자가 오소리의 감각으로 세상을 이해하겠다며 직 접 땅굴을 파고 지렁이를 먹어봤다지만, 차마 그 조명 위에 올라앉을 수는 없으니 상상으로 비둘 기가 되어보았다. 이 자리는 다른 비둘기에게 방해받지 않고 혼자 여유롭게 앉아 있을 수 있다. 양 옆은 트여 있지만 뒤로는 단단한 벽이 있으니 주변을 살피기에도 좋고, 사람들이 자주 지나다니 는 것이 오히려 안전하다. 조명 빛이 눈부시기는 해도 따뜻하고, 플라스틱 감촉도 나쁘지 않다. 이 런저런 생각이 꼬리에 꼬리를 물었지만, 결국 인간의 추측에 불과했다. 비둘기가 될 수 없는 나는, 그 조명 위에 직접 올라앉는다 해도 이 새를 완전히 이해할 수 없다.
몇 달이 지나 오랜만에 그곳을 다시 찾은 날이었다. 멀리서도 빛이 유난히 밝게 느껴져서 가까 이 가보니 조명이 새것으로 교체되어 있었다. 이전 것보다 훨씬 얇은 디자인이었다. 비둘기도 없었다. 한 마리도 보이지 않았다. 다시 자세히 보니 새로 설치된 조명 위에 투명한 아크릴판 같은 것이 비스듬하게 얹혀 있었다. 평평한 면을 좋아하는 비둘기의 습성을 이용해 앉지 못하도록 한 것이다. 다리 아래 비둘기를 아무도 신경 쓰지 않는다고 단정했던 건 나만의 착각이었다. 누군가도 이 비둘기들을 보고 있었구나. 그 사람도 왜 비둘기가 저기에 앉아 있는지 나처럼 궁금해 했을 것이다. 나는 쪼르르 앉아 있던, 절로 웃음이 나던 그 풍경을 다시 볼 수 없다는 생각에 서운했지만 한 편으로 반가운 마음도 들었다. 결과적으로 비둘기는 내쫓겼지만, 다리 아래 비둘기를 바라본 사람이 나뿐만이 아니었다는 사실이 조금은 기뻤기 때문이다.
도시의 틈, 도시라는 품
사람들이 도시의 새에게 손길을 건네는 일이 이전보다는 잦아졌다. 공원이나 동네 뒷산에서 새를 관찰하고 기록을 남기는 사람들도 많아졌고, 공원 나무에 매달린 인공 새집도 눈에 많이 띈다. 조류 충돌 문제가 널리 알려지면서 세계적으로 이를 줄이기 위한 가이드라인이 마련되어 자외선 반사 유리나 충돌 방지 패턴 같은 장치들도 도입되고 있다. 건물 옥상에 새를 위한 녹지를 조성하 거나 속이 빈 벽돌 모양의 설치물로 건물에 둥지 공간을 만드는 해외 사례들도 전해진다.
하지만 이 ‘새’에서 비둘기는 제외다. 비둘기는 도시에서 배제하고 싶은 새의 대표, 대명사다. 벽조명 위의 투명판처럼 버드 스파이크(bird spike, 새가 착지하지 못하도록 하는 뾰족한 가시 모양의 설치물), 촘촘한 방조망 등 비둘기가 도시에 발붙이지 못하게 하는 장치들이 곳곳에 설치되고 있다. ‘비둘기에 게 먹이를 주지 마세요’라는 현수막 문구는 너무 많고 익숙해져서 눈에 띄지도 않는다. 비둘기가 다정한 눈길을 받지 못하는 건 너무 흔하고 너무 가까이에 있기 때문일 것이다. 인간의 생활 공간까지 들어와 먹이를 찾는 모습은 성가시고, 배설물과 깃털은 지저분하다. 질병을 옮긴다는 공포도 실제 위험성에 비해 부풀려진 채로 반복되기만 한다. 불과 수십 년 전만 해도 비둘기를 돌보며 먹이를 주는 일이 여유와 교양의 상징이었다는 사실은, 이제 머나먼 옛날이야기가 되어 버렸다.
비둘기를 바라본다. 비둘기를 본다는 것은 새 한 종을 관찰하는 일을 넘어, 우리가 무심코 지나치는 도시의 틈을 보는 일이다. 인간이 의도하지 않은 틈, 그곳에 비둘기가 산다. 비둘기뿐 아니 라 우리가 미처 알지 못하는 여러 비인간 생물이 그 틈에서 함께 살고 있다. 그들은 따로 또 같이, 발을 붙이고 뿌리를 내린다. 인간이 도시에 그들을 위한 자리를 내어주지 않기에 그들은 스스로 틈을 찾는다. 내쫓기더라도 또 다른 틈을 찾아 자리를 옮길 뿐, 그들이 도시를 떠날 수는 없다. 이 도시가 만들어지기 훨씬 이전부터, 이곳이 그들이 살던 고향이기 때문이다.
벽조명 위의 명당을 잃은 비둘기들도 어딘가로 자리를 옮겼을 것이다. 어디로 갔는지 알 수 없지만, 또 다른 틈에서 잘 살아가기를, 그 틈이 비둘기에게 ‘품’이 되기를 바란다. 어쩌면 도시란, 이렇게 서로를 완전히 이해하지 못하는 존재들이 저마다의 틈을 겹친 채 함께 살아가는 곳이 아닐까. 미처 보지 못하는 틈까지 품을 수 있는 것, 그것이 인간과 비인간 생물이 함께 살아가는 도시만의 방식은 아닐까.
**각주 정리
1. 정확한 명칭은 ‘집비둘기’다. 일반적인 쓰임에 따라 이 글에서는 ‘비둘기’로 칭한다.
2. 전 세계 280개 지역에서 외래종 개체군이 최초로 기록된 연도 데 이터베이스를 살핀 연구를 보면, 곤충 등 여러 동물 종과 관다발 식물을 제치고 가장 많은 지역에 퍼진 종이 놀랍게도 바위비둘기였다. Hanno Seebens, et al., “Around the World in 500 Years: Inter-regional Spread of Alien Species Over Recent Centuries”, Global Ecology and Biogeography 30(8), 2021, pp.1621~1632.
3. Daisy Lewis, Jonathan Losos, and Elizabeth Carlen, “Pigeon Density Varies with Environmental Factors Across a European and North American City”, Urban Naturalist 79, 2025; Jeffrey Brown, et al., “No fry zones: How Restaurant Distribution and Abundance Influence Avian Communities in the Phoenix, AZ Metropolitan Area”, Plos one 17(10), 2022 등을 참고할 수 있다.
조혜민은 동물을 좋아하지는 않지만, 동물에 관심이 많다. 인간과 비인간 동물의 관계에 대해 공부하고 생각하며 특히 도시에서 살아가는 이들을 눈여겨본다. 어느 날 느닷없이 비둘기에 시선을 빼앗겨, 오랜 시간 인간과 함께한 비둘기의 시간을 짚는 책 『도시인 들을 위한 비둘기 소개서』(집우주, 2024)를 썼다. 평소 비둘기를 기록하러 도시 곳곳을 돌아다니곤 한다. 서울대학교 환경대학원 환경계획학과 석사과정을 졸업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