월간 『환경과조경』 창간 40주년 기념 조경비평상 가작: 거리에 대한 권리
철거된 ‘르네상스 호텔’과 공개공지, 그리고 이우환의 ‘관계항’
들어가며: 비非–건폐지라는 언어 거리는 대화의 수단이다. 어떤 간격으로부터 생산된 공간은 기호나 음성으로 담아내지 못하는 것을 발화한다. 문화인류학자 에드워드 홀은 인간이 대화에 있어 상대와의 공간을 적극적으로 활용하고 있음을 밝힌 바 있다.1 그의 이론에 따르면 사이 공간은 ‘침묵의 언어’로, 사람은 시각과 청각 그리고 후각을 비롯한 여러 감각 기관을 동원해 거리와 공간이 담고 있는 정보를 인지하며, 그것을 필요에 따라 적극적으로 구사한다.
이는 사람 간의 커뮤니케이션을 넘어 인공적으로 생산된 사물과의 관계를 분석하는 데도 활용됐으며, 인간의 정주 환경을 구성하는 도시 공간의 적정성을 분석하는 것은 그 대표적 사례다. 예컨대 도시를 이루는 길과 건물 사이에 존재하는 다양한 형태의 비–건폐지는 현대 도시가 지녀야 할 공공성에 대한 발화들이 전개되어온 비언어적 커뮤니케이션의 수단이었다. 한국 도시가 이 같은 언어를 습득하기 시작한 건 비교적 근래의 일로, 그 구사력의 수준은 도시를 구성하는 외부 공간의 질을 평가하는 주요한 지표가 될 것이다.
대상: 역삼동 231번지의 공개공지
2021년 1월, 테헤란로 한가운데 조성된 거대한 공개공지는 ‘한 세대를 거친 공개공지 제도가 현 시점에서 어떤 종류의 진전을 보여주고 있는가’라는 물음을 제기한다. ‘역삼 센터필드’(2021)가 들어선 테헤란로 231번지는 건축가 김수근이 설계한 ‘르네상스 호텔’(1988)이 있던 곳이다. 30여 년의 터울을 두고 다른 제도 조건 아래 세워진 두 건물의 대지 점유 방식은 매우 대조적이다. 그 차이는 공개공지에 철거된 호텔의 외벽 일부와 그 경계의 흔적을 남김으로써 더욱 극명하게 드러난다.
공개공지 의무화 전, 올림픽 개막에 맞춰 준공된 르네상스 호텔은 고층으로 갈수록 면적이 줄어드는 형태로 설계되어 상하층의 면적 차이에 따른 몇 개의 옥외 공간을 지니고 있었다. 이러한 기법은 비슷한 시기 서울역 앞에 세워진 ‘게이트웨이 타워’(1991)와 르네상스 호텔 맞은편 건축가 승효상이 설계한 ‘상록회관’(1991)에도 나타난다. 승효상은 상록회관과 르네상스 호텔의 코어(승강기, 피난 계단 등으로 구성된 수직 동선)를 중심으로 저층부까지 여러 겹의 켜가 중첩되는 형식이 지닌 제스처가 당시 백지 상태였던 테헤란로 주변으로 확장되기를 기대했다고 회고한 바 있다. 그러나 이후 테헤란로에 들어선 건물들은 공개공지의 설치 의무화라는 새로운 제도적 조건 아래 세워지기 시작했다. 그렇다면 이 달라진 거리와 공간은 전보다 높은 수준의 공공성을 구현하게 됐는가, 아니면 기존에 지니고 있던 모종의 공공적 가치를 훼손했는가. 이 질문은 곧 각 건물이 생산한 도심 내 외부 공간을 보행자와 시민이 얼마나 자유롭게 전유할 수 있는지, 그로써 이루어지는 ‘침묵의 대화’가 얼마큼 풍요로울 수 있는지 묻는 것이다. 물음에 대한 답은 공개공지 제도의 출처와 한국에 도입된 배경의 간극을 확인하는 것에서 시작해야 한다.공개공지 제도는 뉴욕의 ‘조닝 레볼루션’(1960)에 뿌리를 두고 있다. 제도 입안자는 그로부터 이 년 전 완성된 미스 반 데 로에의 ‘시그램 빌딩’을 통해 국가 기관뿐 아니라 사적 소유의 대지와 건물 역시 공공 영역에 기여할 수 있다는 사실을 발견했다. 그는 시그램이 비슷한 시기 만들어진 다른 건물과 결정적으로 달랐던 지점은 완결된 입방체로 만들어졌다는 데 있지 않았다고 보았다. 미스는 전체 대지 중 건물 전면의 상당 면적을 비워둔 채 자유로운 접근이 가능한 광장으로 계획했다. 이는 대지 대부분을 건물로 점유하고 상층부로 올라갈수록 면적이 좁아지면서 테라스를 형성하는, 소위 웨딩 케이크 형태의 건물과 시그램 빌딩의 가장 큰 차이였다. 이후 뉴욕에는 실외뿐 아니라 실내에도 수많은 공개공지가 설치돼 도시 환경의 질을 높이는 수단으로 기능하고 있다.
시그램과 웨딩 케이크의 차이는 곧 공개공지 제도가 도입되기 전 준공된 르네상스 호텔과 그 이후의 건물들 사이에 나타나는 간극과 같은 것이다. 승효상의 말처럼 저층부의 더 많은 대지를 점유함으로써 만들어진 옥외 공간이 도시 가로에 기여하는 하나의 ‘켜’로 기능하려면, 그로부터 보행자와의 거리를 좁히기 위한 충분한 접근성을 반드시 확보해야 했다. 반대의 경우 이는 단지 내부 공간의 질을 제고하는 장치이며, 공공 보행로에 밀착된 거대한 담장으로 세워질 뿐이다. 이 같은 기준으로 볼 때, 승강기와 계단 등 수직 동선이 건물 중심부에 위치해 테라스로의 직접적 접근이 불가능하고 반드시 내부를 경유해야만 하는 르네상스 호텔이 주변의 도시 가로와 보행자에게 제공할 수 있는 혜택은 특별히 없었을 것이다.
문제는 그 이후의 사정 또한 크게 나아지지 못했다는 점이다. 한동안 한국 도시에서 건물 상부의 옥외 공간은 위험한 차도와 거대한 건물로 과밀해진 서울에서 공원을 대신할 수 있는 대안 장소로 여겨졌다. 1980년대 초반까지도 도심 내 외부 공간에 대한 조경계의 논의 또한 ‘옥상 공원’에 집중되는 경향을 보인다.2 김수근 역시 1970년대 여의도 마스터플랜의 보차 레벨 분리 계획과 세운상가의 공중 보행로 등 도심지 대단위 개발 계획을 통해 입체화된 도시 비전을 제시했다. 그러나 이 구상들은 국가의 재정적 한계로 인해 번번이 계획안으로 머물렀다. 결국 도심지 외부 공간의 개편은 개별 필지 단위의 민간 개발을 통해 공개공지라는 전혀 다른 양상과 목적 하에 이루어졌으며, 그 배경에는 1986 아시안게임과 1988 서울올림픽이라는 국제 스포츠 행사가 있었다. 아시안게임을 앞둔 군부 정권은 국가 이미지 제고를 위해 도시 미관을 국제적 수준으로 정비할 것을 지시했고, 당시 서울시가 발주한 ‘서울시 주요 간선도로변 도시설계안’은 한국 도시에 적용된 공개공지 제도의 모태가 됐다.3 외부인에게 가장 노출이 많았던 길목인 을지로와 마포 일대에 집중적으로 각종 면세 혜택을 제공함으로써 필지 단위의 재개발이 일어났다.4 이 시기 『환경과조경』은 ‘빌딩조경’5 섹션에서 도심 내 비–건폐지를 다뤘는데, 당시 공개공지 조경 설계는 대부분 기본 배치 계획 이후 사후적 개입에 머물렀다는 걸 확인할 수 있다. 이때 현대적 도시 경관이라는 외양은 사유지의 공유와 이를 누릴 시민의 권리보다 우선되는 가치였다.
이후 30여 년 동안 지속적으로 조성된 공개공지의 모습은 도시 공간의 주인으로서 시민의 부재를 적나라하게 드러낸다. 자유로운 접근과 이용이 어려운 위치에 있거나, 거대한 조형물 또는 시설물이 설치되어 있으며, 입구가 폐쇄되고 주차장과 영업장으로 점유된 공개공지에서 시민들이 머물 자리는 찾아보기 어렵다. 이러한 문제는 오랜 기간 지속되었고, 르네상스 호텔 철거 이후에 대한 기대는 이를 해결하는 데 있었다. 분명한 건 압도적 규모의 공개공지에 의해 과거 호텔의 옥외 공간이 차지했던 대지의 상당 부분이 보행자가 접근할 수 있는 장소가 됐다는 점이다. 그럼에도 달라지지 않은 건 여전히 검은 양복을 입은 관리 요원들에 의해 통제된 행동만이 허가되는 공간이라는 점이다. 센터필드의 공개공지에서 자전거를 끌고 걷거나 스케이트보드를 타는 행위는 제재 대상이다.6 서울은 또 하나의 그럴듯한 도시 경관을 얻게 됐지만, 공공 공간에 대한 관심과 관리는 여전히 부족하고, 건물이 얻는 용적이나 높이의 혜택에 비해 공개공지가 도시 가로에 기여 하는 바는 아직 미약하다. 사유지의 일부로 만들어진 이 장소에 대한 권리가 시민 누구에게나 주어진 것이라는 인식에 아직 도달하지 못했기 때문이다.
*환경과조경411호(2022년 7월호)수록본 일부
각주 정리
1. 에드워드 홀, 최효선 역, 『침묵의 언어』, 한길사, 2013.
2. 민현식, “생활하는 장소로서의 옥상조경”, 『환경과조경』 1984년 10월호; 윤승중 외, “옥상조경 어떻게 할 것인가”, 같은 책.
3. 강병기, “이달의 건축환경문화 작품해설”, 대통령자문 건설기술·건축문화 선진화위원회, 2006년 9월.
4. 박정현, “올림픽 파사드: 체면, 가면, 입면”, 『올림픽 이펙트: 한국 건축과 디자인 8090』, 국립현대미술관, 2021.
5. 황기원, 이규목 외, ‘빌딩조경’, 『환경과조경』 1987년 5월호. 정영선의 ‘한국전력공사’를 비롯한 6건의 빌딩조경 사례를 소개한 전후로 약 2년간 12개호에 걸쳐 빌딩 외부 공간을 다뤘다.
6. 건축비평가 이언 보든(Iain Borden)은 스케이트보드를 타는 것을 비지배적 공간 전유의 한 예로 들었다. …… 지배 세력은 이윤지향적 이용의 논리, 동질화의 목표, 도시 공간의 통제라는 맥락에서 개인의 저항적인 이용을 특히 ‘스케이트 스토퍼(skatestopper)’라는 형태로 저지하려고 한다. 우베 레비츠키, 난나 최현주 역, 『모두를위한 예술?』, 두성북스, 2013.
정평진은 건축 전문 잡지에서 기자로 일했다. 여러 매체에 도시와 건축에 관한 글을 쓰며 설계경기 아카이브 ‘스코어러(scorer)’를 운영하고 있다. 서울시립대학교에서 건축학을 전공했다.
[편집자가 만난 문장들] 세상을 번역하다
페이퍼 워크, 프랙티스, 보이드, 매스, 마운딩, 라이프스타일……. 매달 나를 괴롭히는 단어의 목록이 길어진다. 『환경과조경』의 편집 지향점 중 하나는 외래어를 한국어로 순화하는 것인데 이 작업이 생각보다 만만치 않다. 신기하게도 조경에 대해 알면 알수록 더. 나열한 단어들을 한국어와 짝지어 보자면 페이퍼 워크-서류 작업, 프랙티스-실행/실천, 보이드-커다란 빈 공간, 매스-덩어리, 에지-가장자리, 마운딩-언덕 만들기, 라이프스타일-생활 양식 정도다. 완전히 틀린 건 아니지만 미묘하게 뜻이 빗나가거나 구구절절 설명하고 있다는 느낌을 떨칠 수 없다.
외래어+한국어 형태의 합성어가 등장하는 경우 더욱 곤란하다. 건물이나 공간의 규모에서 비롯한 감각을 흔히 ‘매스감’(매스+감각)이라 표현하곤 한다. 커다란 건물이 주는 느낌, 거대한 건물의 크기가 자아내는 분위기, 큰 건물이 주는 감각, 머릿속으로 몇몇 문장을 나열하다 죄 없는 교정지를 노려 보며 빨간 펜을 내려놓는다. 그대로 두자, 결정하고 다음 문장에 집중하려 노력하지만 자음과 모음이 마음 어딘가를 쿡쿡 찔러대는 건지 속이 껄끄럽다.
영어의 동사를 명사처럼 쓰면서 발생하는 문제도 있다. ‘마운딩’이 딱 적절한 예인데, ‘마운딩을 만들었다’와 같은 오류는 ‘언덕을 만들었다’로 바로잡으면 된다. 그렇다면 ‘조형 마운딩을 제안했다’는 어떨까. 물론 ‘조형적 언덕을 만들자고 제안했다’로 고쳐 쓸 수 있지만, 필자 고유의 문체와 본래 문장 길이가 만들어내는 리듬감을 살리며 글을 다듬기 쉽지 않다. 결국 빈도수를 해결책으로 삼는다. 언덕 만들기보다 마운딩이라는 표현을 쓰는 사람이 많아지고 그 뜻을 모든 사람이 이해하는 데 문제가 없다고 판단하면, 마운딩을 조경 동네에서 통용되는 보통명사로 삼기로 마음먹는 식이다.
‘세상을 번역하다’는 번역가 황석희가 명함 뒷면에 새긴 글이다. 이 감성적인 문장은 번역의 본질
을 꿰뚫는다. 과장이라 생각할지 모르지만, 번역은 단순히 단어를 치환하는 걸 넘어 어떤 세계를 깊이 파고들어 이해하고 이를 다른 세계의 사람들에게 설명해주는 일에 가깝다. 대상에 대한 탐구 없이 진행한 번역은 세상을 왜곡한다. 영화 ‘데드풀’의 자막 작업을 하며 ‘괴물’이라는 단어를 사용한 황석희에게 “엑스맨이라는 작품은 1960년대 인종차별을 메타포로 만들어졌다. 다름의 차이를 인정하는 데서 출발한 영화니 돌연변이 사이에선 괴물이란 말 사용하면 안 된다”는 메일이 도착한 것처럼.1
한창 이번호 특집을 점검하던 중, 오픈스페이스의 순화어 발표 소식을 들었다. 문화체육관광부와 국립국어원이 선정한 단어는 ‘열린 쉼터’. 고개를 갸웃할 수밖에 없다. 우리에게 오픈스페이스는 “건물·구조물 등이 많지 않고 거의 대부분이 비건 폐지로 유지되는 토지를 총칭해서 말하며, 공원‧ 녹지를 포함한 녹지공간의 개념”이며 “공원‧녹지‧운동장‧유원지‧공동묘지 등 공지가 많은 시설과 농지‧산림‧하천‧호소 등 건축물로 건폐되어 있지 않은 비건폐지를 의미하는 광의의 녹지”이니 말이다.(토지이음 용어사전) 더욱 당황스러웠던 건 국민 2천여 명을 대상의 설문에서 93.1%의 응답자가 열린 쉼터가 적절한 순화어라는 데 동의한 점이었다.
오픈스페이스는 조경뿐 아니라 도시, 건축 분야에서도 널리 쓰는 말이다. 대중이 의미가 대폭 축소된 열린 쉼터에 고개를 끄덕였다는 건, 우리가 만든 오픈스페이스가 그들의 마음에 가닿지 못했다는 뜻일 테다. 우리의 바람과 달리 광장, 공원, 산림, 녹지축은 서로 상관없는 각개의 공간으로 읽힐 뿐이다. 사방으로 트여 있고 누구나 자유롭게 누릴 수 있는 오픈스페이스의 카테고리는 슬프게도 우리의 머릿속에만 존재한다.
김영민 교수의 말처럼 단어의 의미는 소급적으로 발생하고, 사후에 만들어질 수밖에 없다(48쪽). 그러므로 조경의 의미는 조경이 행한 일, 즉 조경이 만든 공간과 시스템에서 비롯할 것이다. 결국조경의 의미를 바로 세우기 위해서는 조경의 이름으로 좋은 것을 만들고, 사람들이 이를 궁금하게만드는 수밖에 없다. 교과서적 해답이지만 모범적 해결책은 가장 명쾌하고 기초적이며 해냈을 때 큰 효과를 낸다. 움베르트 에코는 ‘번역이란 실패의 예술(translate is art of fail)’이라 말했다. 세계의 경계를 뛰어넘는 완벽한 해석은 있을 수 없다. 하지만 이를 예술로 만들어나가는 건 단어 주인의 몫이기도 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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각주 1.송길영, “[에스.티. 듀퐁클래식에 새긴 그의 스토리]번역가 황석희”, 포브스 코리아, 2018년 5월 23일.
신의 눈으로
아모레퍼시픽미술관, ‘안드레아스 거스키’ 전
어떤 현상을 마주할 때 우리는 선택을 한다. 전체적인 구조를 볼 것인가, 작은 디테일을 살필 것인가. 모두를 눈에 담기에 순간은 너무 짧다. 하지만 찰나를 포착하는 사진이라면 어떨까. 안드레아스 거스키(Andreas Gursky)는 거시적 형태와 미시적인 디테일을 동시에 다루는 사진가로 불린다. 관객을 압도하는 그의 거대한 사진은 주로 현대 사회의 장대한 풍경과 인간의 눈으로 포착하기 어려운 자연 현상을 담고 있는데, 사진에 한걸음 가까이 다가서면 사회와 자연의 구조 속에 가려진 미미한 인간의 삶을 자세히 들여다볼 수 있다. 지난 3월 31일 아모레퍼시픽 미술관에서 국내 최초로 거스키의 개인전(‘안드레아스 거스키’ 전)이 열렸다. 인류와 문명에 대한 통찰을 담은 거스키의 대표작 40점과 처음 공개되는 두 점의 신작 ‘얼음 위를 걷는 사람(Eisläufer)’과 ‘스트레이프(Streif)’가 전시됐다.
안드레아스 거스키
거스키는 1955년 독일 라이프치히에서 태어났다. 상업 사진 작가인 아버지와 초상 사진가로 활동한 할아버지의 영향을 받은 그는 고등학교를 졸업하기도 전에 다양한 사진 기법을 익혔다. 하지만 거스키의 마음을 사로잡은 건 상업 사진도, 초상 사진도 아니었다. 포토저널리스트를 꿈꾼 그는 1977년 에센에 있는 폴크방슐레에 입학한다. 그곳에서 독일 주관주의 사진 작업의 대가인 오토 슈타이네르트(Otto Steinert)를 만난 그는 사물을 지각하는 법, 포토저널리즘의 시각과 다큐멘터리적 방법론을 배웠다. 1981년에는 뒤셀도르프 쿤스트 아카데미에 들어가 독일 현대 사진의 미학과 전통을 확립한 베른트 베허와 힐라 베허(Bernd and Hilla Becher) 부부에게 가르침을 받은 거스키는 ‘유형학적 사진’의 기초를 다졌다.
세상을 꼭 닮은, 세상에 없는 풍경
세상의 수많은 소재 중 거스키의 이목을 잡아끈 것은 산업화의 산물들이었다. 공장, 크루즈 선박, 아마존 물류 센터 내부, 미국 대형 소매점 같은 현대 자본주의 사회를 대표하는 사물이나 장면을 유형학적 시선으로 포착해 사진에 담았다. 그의 사진은 세상의 일부를 그대로 옮겨 담은 것처럼 보이지만, 사실은 세상 어디에도 없는 풍경이다. 거스키는 완벽한 수직, 수평 구도를 원했다. 파리 최대 규모의 아파트 건물을 찍은 ‘파리, 몽파르나스’(1993)는 건물 건너편 두 군데 시점에서 촬영한 이미지를 조합한 것이다. 그 과정에서 거스키는 소실점을 제거해 모든 창문의 크기가 같아 보이도록 연출했다. 그 결과 거시적이면서도 건물의 내부 디테일과 균일한 격자 구조 속에서 살아가는 수많은 개인의 삶을 살필 수 있는 이미지가 탄생했다. 미색과 검은색의 수평선이 반복되는 ‘벨리츠’(2007)는 독일 벨리츠의 유명한 아스파라거스 밭을 촬영한 것이다. 하늘에서 수직으로 땅을 내려다보는 시점은 직선 구조를 부각하고, 관람객의 머리에서 지평선의 존재를 휘발시켜 버린다. 하지만 수평선이 어긋나는 곳을 살피면 아스파라거스 수확에 여념이 없는 사람들의 존재가 보인다. 그 순간 기하학적 패턴으로 보이던 이미지가 다시 사진으로 느껴지기 시작한다. 전체와 디테일을 한 번에 담아내는 그의 사진은 관람객과의 거리에 따라 시시각각 변화하는 매체가 된다.
*환경과조경410호(2022년 6월호)수록본 일부
한강 수변 공간 재편
국가 경쟁력 강화를 위한 한강변 공간구상
지난 5월 9일, 서울시는 ‘국제경쟁력 강화를 위한 한강변 공간구상’에 대한 입찰 공고를 냈다. 주요 내용은 한강변 주요 거점 간 연계 방안 및 통합 구성안 마련, 한강 일대 교통 인프라 및 녹지 생태 도심 확충 방안 구상, 한강변 간선도로 개선과 연계한 신규 공간 확보 및 활용 방안 마련이다. 이를 통해 ‘한강변 관리 기본계획’ 을 보완할 계획이다.
한강은 서울의 중심을 동서로 가로지르고 있어 구조와 기능적으로 중요한 역할을 한다. 서울시는 지난해 ‘서울비전 2030’에서 수변 중심 도시 공간 구조 개편을 통해 한강의 수변 공간을 새로운 활력 거점으로 조성하겠다고 밝힌 바 있다. 또한 2022년 3월 발표한 ‘2040 서울도시기본계획(안)’에서도 시민 삶의 질을 높이고 서울의 도시 경쟁력 강화하기 위한 6대 공간 정책 중 하나로 ‘수변 중심 공간 재편’을 제시했다.
서울시는 이번 계획을 통해 한강을 중심으로 주요 중심지 간의 상호 연계를 강화하고, 수변 공간을 활성화 하는 등 한강 중심의 도시 공간을 구현하기 위한 효과적 전략을 마련할 계획이다. 이를 위해 여의도~용산, 성수~잠실, 마곡~상암 등 한강변 주요 거점 간 기능적·공간적 연계 및 통합 방안을 구상하고, 주요 거점의 특화 발전을 지원하기 위한 수변 거점 조성 방안을 주요 정비 사업과 연계한다. 또한 한강을 활용한UAM(Urban Air Mobility) 등 미래 교통 수단 운영 방안, 수상 교통 기반 등 교통 인프라, 시민 여가·문화 공간 활성화를 위한 생태 거점 조성 등 녹지 생태 도심 연계 방안을 모색하고 있다. 강변북로 등 한강변 간선도로 관련 계획을 검토해 유휴 공간을 파악하고, 자투리 공간을 활용한 수변 공간 구상도 함께 추진한다.
*환경과조경410호(2022년 6월호)수록본 일부
[기웃거리는 편집자] 연결을 기다리는 모스 부호
다독가는 아니지만, 책 수집을 좋아한다. 수집하는 책의 종류는 크게 두 가지다. 헌책이거나, 헌책이 될 운명을 기다리고 있는 새 책이다. 헌책은 사장님이 직접 타 주시는 맥심 커피가 어메니티(?)로 나오는 단골 헌책방에서 주로 구매하는데, 이유는 제각각이다. 사장님의 책 광고에 혹하거나, 제목에 끌려서, 아니면 책에 적힌 낙서가 웃겨서 구매했었다. 헌책이 될 예정인 새 책은 주로 시집이나 잡지가 대부분이다. 책장에 나열된 시집의 시적인 제목만 읽어도 뭔가 시인이 된 것 같다. 월별로 정리된 잡지를 보면 그것에 깃든 동업자의 노고를 잘 알기에, 전자책으로 살 수도 있지만 늘 종이 잡지로 본다. 설령 내가 만들지 않았을지라도.
수집가라고 했지만, 실상은 나일론 수집가에 가깝다. 안 그런 이들도 있지만, 보통 수집가들은 자신의 물건을 귀하게 여기고 잘 팔지 않는다. 이와 다르게 현실적인 이유로 꾸준히 책을 팔아야만 했다. 나의 작고 소중한 책장은 많은 책을 감당할 만큼 크지 않기 때문이다. 컴퓨터 휴지통 비우듯이 한 번씩 꽉 찬 책장을 비워야 할 때면 그간 안 읽었던 책을 장소와 시간을 불문하고 벼락치기로 허겁지겁 읽었다. 그래서 무슨 책을 읽었는지 기억이 잘 나지 않는다. 세상의 모든 벼락치기는 약간의 후유증을 동반하는 것 같다. 매번 이러지 않아야겠다고 결심하지만, 새해에 다짐하는 금연 약속처럼 부질없다.
최근 나일론 수집가가 아닌 진짜 수집가의 집에 다녀왔다. 바로 정릉의 최만린미술관이다. 최만린 작가는 한국 추상 조각의 개척자로 불렸으며, 2020년에 타계했다. 미술관은 그가 오랫동안 터전을 잡고 작업실 겸 집으로 썼던 정릉 자택을 개조한 곳이다. 큰 규모를 자랑하는 미술관은 아니라서, 30분이면 모든 공간을 둘러볼 수 있다. 정원의 중앙에 위치한 아담한 연못과 빨간 벽돌로 세운 담을 에워싸고 있는 초록빛의 나무들. 조경에서 자주 쓰이는 언어로 표현하면 위요감이 충분했다.
특히 2층 오픈 아카이브 방이 좋았다. 수집에 대한 최 작가의 세심한 정성을 엿볼 수 있었다. 평생에 걸쳐 최 작가가 수집해온 자료가 한쪽 벽면을 채우고 있었다. 영수증, 설계도, 사진, 잡지 및 신문 기사 등 각종 자료가 가지런하게 파일철로 정리 되어 있었고, 맨 아래 칸에는 최 작가와 관련된 글이 실린 잡지가 가득 채워져 있었다. 글이 실린 잡지의 지면에는 일일이 책갈피를 꽂아두었고, 책등에는 해당 지면의 쪽수가 적힌 스티커를 붙여 두었다. 『환경과조경』도 그중 하나였다. 잊고 지냈던 초등학교 동창을 지하철역에서 만난 것처럼 반가웠다. 다행히 열람이 가능해서, 후배 동업자(?)로서 기쁜 마음으로 1990년대의 『환경과조경』을 읽다가 왔다.
집에 돌아오면서 문득 잡지의 역할에 대해 생각해봤다. 흥미로운 것들이 넘쳐나는 시대에서 종이 잡지는 비인기 장르다. 대기업 중고 서점에서는 잡지가 상품성이 없다는 이유로 받아주지도 않는다. ‘그런데도 왜 잡지를 만들어야 할까?’ ‘종이가 종교도 아니고, 무조건 종이 잡지를 예찬해야만 하는 걸까?’ 꼬리에 꼬리를 무는 질문에 늘 답을 하지 못하고, 어영부영 넘어가기 일쑤였다. 그런데 진짜 수집가의 집에 다녀오고 나서 약간의 힌트를 얻었다. 물론 디지털 기술이 더 방대하고, 간편하고, 오래 보관할 수 있는 것은 부정할 수 없다. 하지만 종이를 넘기고, 책갈피를 꽂고, 메모를 하는 것은 기술로 설명할 수 없는 영역이다. 수집가의 손때는 다른 이가 짧은 시간 내에 흉내 낼 수 있는 것이 아니다. 그런 점에서 잡지는 살아있는 아카이브이자, 누군가와의 연결을 기다리고 있는 모스 부호일지도 모른다. 일면식 없는 최 작가와 내가 잡지라는 공통분모로 연결됐던 것처럼. 조경의 어제와 오늘을 기록했던 『환경과조경』은 올해 7월 40주년을 맞이한다. 우리의 아카이브가 시간을 넘어 또 다른 누군가에게 닿을 수 있는 모스 부호가 되기를 바라며 마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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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편집자가 만난 문장들] 너무 바삐 이별하느라 못한 말이 있어요
어디에나 있을 법한 이야기다. 가정 형편이 넉넉지 않았던 엄마는 상업계 고등학교에 입학했다. 욕심부릴 엄두도 못 낸 대학교는 엄마보다 다섯 살 어린, 집안의 장손이 대신 갔다. 그 시절에는 흔한 일이었지만, 다들 그렇다는 사실이 충분한 위로가 될리 없었다. 못다 이룬 학업에 대한 꿈은 자식만큼은 질릴 정도로 공부를 하게 만들겠다는 열망이 되었고, 나는 또래 친구들보다 바쁘게 초등학생 시절을 보냈다. 학교를 다녀와 복습하고, 학원을 다녀오고, 예습하고, 잠시 TV를 보고, 학습지를 풀고, 책을 읽으면 밤이 됐다. 그래서 불행했다고 말하려는 건 아니고, 그 덕에 뜻밖의 취미를 갖게 됐다는 이야기다.
당시 유행하던 영어 학습지는 테이프를 들어야만 풀 수 있었다. 마이마이는 내가 처음으로 갖게된 휴대 전자 기기였다. 그때 라디오의 존재를 알게 됐다. TV는 허락받아야 볼 수 있었지만, 라디오는 몰래 들어도 티가 안 났다. 친구들이 흥얼거리는 대중가요도, 코미디 프로그램의 유행어도 전부 라디오로 알게 됐다. 공테이프를 사서 좋아하는 노래가 나오면 잽싸게 녹음을 했는데, 타이밍을 잘못 맞추면 DJ의 목소리가 같이 섞여 들어갔다. 처음에는 망쳤다고 괴로워했지만, 한참 시간이 흐른 후에 테이프를 재생하니 노래에 얽힌 사연이 함께 떠올라 오히려 즐거웠다.
중학생이 되고 나서는 집중이 더 잘된다는 핑계로 심야 라디오를 들었다. 하늘이 회보라빛에 가까운 새벽, 그즈음 흘러나오는 방송은 낮과 달리 차분하고 축축했다. 가끔 별것 아닌 이야기에도 서러워졌다. 라디오는 조금 이상하고 그래서 재밌는 우체국 같았다. 수많은 이가 보낸 사연을 가득 쌓아 두고, 누군가에게 대신 말을 전하고, 위로나 조언의 말을 건네기도 하고, 덧붙여 노랫말을 답장처럼 들려주는 곳. 신기하게도 그 사연에는 주인이 없어 보였다. 누구누구 씨 하고 이름을 불러도, 그게 모두의 이름 같아서 DJ가 들려준 말과 노래들을 내것으로 삼곤 했다. 약속된 시간이 되면 주파수를 맞추는 작업이, 나와 같은 많은 사람을 만나러 갈 준비를 하는 일 같았다. 그래서 깊은 밤에도 외롭지 않았다.
나무요일 뉴스레터를 보낼 때 라디오 DJ가 된 기분에 젖곤 했다. 특히 누군가에게 말을 거는 듯한 문장을 쓸 때는, 더 그랬다. 뉴스레터 발행 목표를 두 가지로 설명하자면, 첫째는 정성껏 만든 잡지 콘텐츠를 널리 알리는 것이었고, 둘째는 독자들의 삶에 좀 더 가벼운 형태로 깊숙이 침투하는 것이었다. 점심시간을 지나 조금 나른하다 느낄 때쯤 울리는 새로운 편지가 도착했다는 노크 소리. 알림을 듣고 ‘일에 집중도 잘 안되고 졸린데 한 번 읽어볼까’ 하는 마음으로 열어보는 데서 시작해 자연스럽게 일상의 루틴으로 각인되는 편지가 되기를 꿈꿨다. 봉투 뜯는 게 귀찮아 내버려 둔 잡지를 뉴스레터를 보고 펼쳐봤다, 기대한 바와 다르겠지만 잡지 콘텐츠는 종이 잡지로 보는 게 더 편하고 뉴스레터용 콘텐츠만 읽고 끈다 등 소소한 피드백을 받을 때면, 오랫동안 기다린 답장을 받은 것 같아 기뻤다. 내용이 긍정적이든 부정적이든 상관없이 말이다. 하지만 즐거운 와중에도 고민을 계속했다. 뉴스레터가 잡지 콘텐츠를 널리 알리는 데 효과적인지, 오히려 『환경과조경』의 모든 채널을 섭렵하고 있는 독자에게 피로감을 주고 있는 것은 아닌지 영 자신이 없다. 때마침 온라인 서비스 개편과 함께 나무요일 뉴스레터는 잠시 휴식기를 갖는다. 채 10이라는 숫자도 채우지 못하고 5호에서 안녕을 말하게 되어 아쉽지만, 딱 반절 왔으니 나머지 반을 더 나은 모습으로 채우겠다고 약속드린다.
라디오와 닮았다고 생각하며 열심히 시청한 TV 프로그램이 ‘이소라의 프로포즈’와 ‘윤도현의 러브레터’였다. 일주일에 한 번씩 만나는 프로그램은 느릿하게 주고받는 편지 같았다. 초 단위로 달리는 댓글과 달리 일주일 내내 사연을 읽고, 그 사연을 생각하고, 사연자에게 보낼 음악을 고심하는 가쁘지 않은 소통. 이소라의 프로포즈 첫 회에서 소개한 엽서 한 장을 잠시 이별하게 된 뉴스레터 구독자에게 보내는 인사말로 대신한다. “당신, 지금 뭘하고 계세요? 제가 없는 가을은 쓸쓸하지 않나요? 슬프지 않나요? 전에, 제가 달리는 차 속에서 당신께 불러드린 노래 기억하나요? 너무 바삐 이별하느라 못한 말이 있어요. 사랑해요. 일산에서, 이소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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