역사공원 설계,
그 지난한 과정의 서막
잠실 진주아파트 재건축 과정에서 백제 한성기 유구가 발견됐다. 유구를 공원에 이전·복원하는 작업에 착수한 시점이 2022년. 잠실역사공원 설계부터 시공까지 꽉 채워서 4년이 걸렸다. 4,470㎡의 작은 공원을 만드는 데 걸린 시간이다.
2022년은 건축 공사비 상승으로 인해 서울의 여러 재건축 현장에서 조합과 시공사 간 갈등이 생기던 때다. 그중에서도 진주아파트 사업은 뜨거운 주목을 받은 현장이다. 2022년 1월에 시작된 발굴 조사를 통해 진주아파트 남쪽과 동쪽 도로변의 광범위한 구역에서 백제 한성기 유적이 발견됐기 때문이다. 문화유산위원회 심의를 통해 고고학적 가치가 높은 7구역의 21호, 22호 주거지에 대한 조치가 내려졌다. 온전한 상태로 발견된 부뚜막이 포함된 21호는 공원에 이전·복원하고, 규모가 큰 22호는 공원 시설로 재현하라는 것.
여기까지가 설계 착수 전에 벌어진 일이다. 작은 동네 공원에 규모가 큰 유구를 이전·복원하는 것도 쉽지 않을 게 분명했다. 게다가 발주처인 재건축 조합, 문화재 위원회, 송파구청과의 협의와 조정을 통한 설계, 서울시 도시공원위원회, BF 심의 등 넘어야 할 산이 아득했다.
백제 한성기
공부
백제 한성기는 백제가 건국된 기원전 18년부터 서기 475년 웅진(공주)으로 천도하기 전까지 한성(서울)에 수도를 두었던 493년을 일컫는다. 조선 시대에 개경 천도 시기를 제외하면 서울이 수도였던 시기가 510년이니, 백제가 거의 비슷한 기간 동안 한성을 수도로 삼은 셈이다. 역사의 승자인 신라 중심으로 교육을 받은 탓이겠지만, 꽤 가까운 곳에서 긴 역사의 흔적을 접할 수 있었음에도 백제 한성기에는 관심이 별로 없었다. 문화유산위원회 자문회의를 앞두고 풍납토성과 몽촌토성 주변을 답사하고 박물관을 찾고 관련 자료들을 살펴보면서 벼락치기로 공부했다.
이 시기는 백제의 최전성기로 국제 교류에 적극적이었으며 문화 또한 융성했다. 귀족의 화려한 장신구나 예술 작품 외에도, 빗살무늬로 장식한 항아리, 귀여운 손잡이가 달린 시루, 희한한 균형미를 갖춘 세 발 토기, 돌로 만든 예쁜 절구, 그물 추, 동물 모양의 조형물 등 일상 생활용품까지 쓸모에 비해 과하다 싶을 정도로 그 형태가 세심하고 아름답다.
주거지를 만드는 방식은 과학적이었다. 땅을 60~70㎝ 깊이로 파낸 반지하식으로, 목재로 된 기둥과 벽체를 만든 뒤 지붕을 얹는 원룸 형태다. 남측에 출입구를, 북측에 부뚜막을 두었다. 진주아파트에서 발견된 유적은 대략 5세기 전반의 것으로 추정된다.
백제 사람들은 어떤 옷을 입고 무슨 놀이를 하며 시간을 보냈는지, 토성은 어떤 방식으로 쌓았는지, 무엇을 먹고 살았는지, 박물관 자료에서 학술 연구 자료까지 살펴보면서 이 땅에서 살았던 이들의 모습을 상상했다.
공원에서 만나는
역사
발굴 조사 결과 백제 한성기의 주거지 유구 총 68기가 발견됐다. 그 외에 수혈유구(구덩이를 판 흔적), 구상유구(수로 흔적)와 함께 토기류, 석기류 등 총 582점의 유물이 출토됐다. 주거지 대부분은 남쪽에 출입구가 있는 呂자형 및 凸자형이며, 주거 공간의 평면은 육각형의 비율이 가장 높았다. 유구가 발견된 위치는 몽촌토성 서벽으로부터 약 30m, 풍납토성 남벽으로부터 약 90m 떨어진 곳이며, 한강과의 직선거리는 1㎞다. 과거 지형도나 주변 유적의 입지 등을 고려할 때 동서 800m, 남북 900m 길이의 대규모 취락지였을 것으로 추정됐다. 그중 7구역의 21호 주거지는 장축의 길이가 23m에 달하는데, 풍납토성 근처에서 발견된 주거지에 이어 두번째로 큰 규모다.
매일 공원을 지나는 아파트 주민은 오래전부터 이곳이 살기 좋은 주거지였다는 자긍심을 느끼며 일상적으로 역사를 만나고, 처음 온 방문객은 백제의 문화를 매력적으로 체험할 수 있도록 하고자 했다. 우선, 공원의 골격을 몽촌토성의 지형에서 가져왔다. 21호, 22호 주거지 평면을 본래의 크기와 방향으로 배치한 뒤 낮은 구릉으로 감쌌다. 아파트와 면한 부분은 완충 숲으로, 도로와 면한 부분은 열린 광장형 쉼터로 구상했다. 이전·복원하는 22호 주거지에는 비를 피할 보호각을 계획했고, 21호 주거지는 그 형태와 레벨을 활용해 놀이공간으로 만들었다. 안내판에는 유적이 발굴된 뒤 공원으로 옮겨진 과정을 담았고, 공원 입구 바닥에 몽촌토성과 풍납토성과의 관련성을 알리기 위해 대상지의 위치를 지도로 표현했다. 친숙한 일러스트로 어린이들에게 백제의 문화를 전하기 위해 조경가 오형석(디자인 로직)에게 도움을 청했다. 대장장이, 장군, 농부, 귀족 등 백제인의 역사 문화를 접할 수 있는 사랑스러운 캐릭터 그림 안내판을 만들었다.
과거와 현재를
동시에 담는 보호각
가장 큰 숙제는 작은 공원에 들어서게 될 20m가량 길이의 보호각 설계였다. 엄숙하고 육중한 보호각이 아니라, 역사라는 무게감에서 벗어난 세련되고 현대적인 디자인이 적합하다고 판단했다. 1차 문화유산위원회 자문회의에서 여러 사례와 함께 최첨단 재료의 활용성과 기대 효과를 설명했다. 문화유산위원들은 전통적 디자인에서 탈피한 개념에 흔쾌히 동의했다. 국내외 사례조사를 하면서 실험적인 파빌리온 프로젝트를 실행한 경험이 있는 건축가 국형걸 교수(이화여자대학교)에게 도움을 청했다. 보호각은 건축물이 아니지만 구조와 형태의 디자인을 동시에 해결해야 했기에 전문가에게 의뢰하는 것이 적합하다고 보았다.
보호각은 ‘플로팅 그라운드(floating ground)’라는 개념으로 설계됐다. 마치 집터가 떠 있는 듯한, 땅의 흔적이 투영된 보이지 않는 랜드마크로 계획됐다. 백제 한성기 주거지의 육각형을 현대적으로 재해석해 기하학적인 형태로 디자인하고, 슈퍼미러 반사면을 통해 땅이 비치도록 했다. 반사면 각도와 높이의 변화를 통해 멀리서도 유구의 바닥면이 보이도록 하였다. 고대의 유적이 마치 구름처럼 떠 있는 것처럼 보이도록 의도했다.
거울 표면에 과거의 유구와 현재 공원의 사람들이 함께 담겨서 과거와 현재를 잇는 다리 역할도 할 수 있다고 보았다. 파격적인 디자인이었지만 조합과 송파구도 긍정적 반응을 보여 설계 의도대로 순조롭게 진행되는 듯했다.
변곡점
가장 큰 이슈는 공사비였다. 애초 어린이공원 공사비가 13억 정도였는데, 보호각의 공사비만으로도 예산 초과가 예상됐다. 조합은 공원 전체 공사비의 상한선을 정하고, 적정선에서 공원 시공비를 책정하는 방안을 요청했다. 당시 조합은 문화유산 발굴 비용 외에도 공기 연장으로 인한 공사비, 금융 비용, 조합원의 임시 거주비용 상승에 따른 어려움을 겪고 있었다. 유산의 가치가 높은 만큼 완성도 있는 역사공원을 조성해야 한다는 문화유산위원회의 의견과 현실적인 어려움이 상충되는 상황이었다. 해결책을 찾고 타협하는 과정은 쉽지 않았다. 협의가 완료된 이후에도 도시공원위원회의 결과를 반영하고, 관리·운영을 맡게 될 송파구와 협의하는 과정에서 공사비가 조금씩 증가했다.
BF 예비 인증 과정에서는 설계변경 문제가 발생했다. 과하다 싶을 정도의 가이드라인으로 인해 출입구 폭, 놀이 공간의 선큰 등 설계 전반에 걸쳐 구조와 디테일의 변경이 이루어졌다. 몽촌토성을 재현한 언덕은 무장애 동선에 적정한 경사도를 맞추기 위해 높이가 1.5m로 변경되었고, 언덕으로 보기에 부족한 모습으로 완성됐다. 설계 완료 뒤에도 공원 인접 근린생활시설의 상가 측은 대형목이 간판을 가리지 않도록 식재 설계를 변경하고, 공원에서 상가로 접근할 수 있는 동선을 만들어줄 것을 요구했다. 의견 수용을 위해 조합 및 구청과 협의하여 설계변경을 진행했다. 원고를 쓰고 있는 지금은 현장 심의로 이루어지는 BF 인증 본심사를 앞두고 있다. 아직 경계의 끈을 늦추지 않아야 한다. 끝날 때까지 끝난 게 아니다.
일상 속
현장박물관
우여곡절 끝에 일상에서 매일 만나는 작은 동네 공원에 천육백 년 동안 땅에 묻혀 있던 백제의 유구가 현장 박물관으로 다시 태어났다. 공원 관리는 송파구 공원녹지과, 문화유산 관리와 해설은 문화예술과와 문화유산과가 맡을 예정이다. 민간 발주처, 국가유산청, 서울시, 송파구 등 설계 참여 주체의 지향점은 조금씩 달랐지만, 조율의 결과물은 하나의 공간으로 남았다. 역사도시경관은 인위적인 개입을 통해 변화를 수용하면서 과거와 현대가 나란히 있을 때 만들어낼 수 있다고 믿는다. 개발이라는 도시 변화 속에서 과거의 흔적을 어떻게 다뤄야 할지, 미래 세대에게 어떻게 전해야 할지는 여러 분야가 함께 고민해야 하는 숙제다.(각주 1)
진행 김모아 디자인 팽선민
서영애·황혜성 인터뷰
역사는 가장 현대적인 것
옆에서 더욱 선명해진다
글 김모아 기자
‘사업 대상지에서 문화유산이 발견됐다.’ 겪어본 사람이라면 긴장할 수밖에 없는 문장이다. 잠실역사공원의 경우, 문화유산위원회 심의 결과에 따라 네 개의 대안 중 어린이공원이 들어설 예정이었던 땅의 용도를 역사공원으로 바꾸고, 발굴된 유구를 이곳에 이전·복원하는 3안으로 조건부 가결이 됐다.(각주 2) 펼쳐질 어려움이 예상되는 상황이었는데도 설계를 결심하게 된 이유가 궁금하다.
서영애(이하 영) 아파트 사업 현장에서 나온 유구를 이전해 역사공원을 만드는 일이 전무했던 터라 걱정이 컸다. 주변에 조언을 구하니, 아파트 조합뿐 아니라 문화유산위원, 관련 심의 등 수많은 관계자와 소통하고 설득하며 설계해나가는 과정이 쉽지 않을 거라며 대부분 만류했다. 고민이 길었지만, 결국 한 번도 해보지 않은 일에 도전하고 싶다는 결론에 다다랐다. 박사논문 주제가 “역사도시경관으로서 서울 남산”이었고, 평소 역사도시경관에 관심이 컸던 점도 결심의 이유였다. 공원의 규모가 크지 않으니 여러 관계자들의 의견을 조율해 설계의 큰 틀을 잡는 작업만 잘 마치면, 후반 작업은 어렵지 않을 거라는 꿈같은 생각을 했었다.
황혜성(이하 혜) 사업에 대한 소식을 들은 게 2022년 6월, 무려 4년 전이다. 오래전이라 어떤 마음으로 작업을 시작했는지는 잘 기억나지 않는다.
영 황혜성 부소장이 아닌 척 하지만, 늘 어려움에 도전하는 걸 좋아하는 사람이다. 덕분에 어려운 프로젝트, 힘든 프로젝트를 자주 하게 되는 것 같다. 아파트 사업 현장에서 나온 유구가 백제 시대의 주거 양식이 남아 있는 터라는 점이 흥미롭다. 과거 집터였던 곳이 현대의 새로운 집터가 된 셈이다.
덕분에 백제 시대 주거 양식을 실컷 공부했다. 현장에서 발견된 문화유산의 가치가 우리의 예상보다 더 컸다. 발굴된 주거지 중 21호와 22호는 특히 잔존 상태가 양호했다. 21호 주거지는 장축이 23m인 초대형 유구로, 현재까지 발견된 유구 중 두 번째로 큰 규모다. 22호에서는 매우 온전한 상태의 부뚜막이 발견됐다. 불을 지피는 화구, 불 위쪽으로 토기를 걸 수 있도록 제작된 구조물이 남아 있었다. 백제 시대의 주거지는 반지하 형태로 바닥을 평평하게 다지기 위해 ‘불다짐’이라는 방식을 사용했는데, 그 흔적인 검은 자국이 그대로 남아 있었다. 대상지 동쪽 올림픽공원에서 발견된 유구들과 풍납토성, 몽촌토성의 위치를 고려했을 때, 이곳에서 발견된 유구들을 고위층의 집터로 추정할 수 있었다. 과거에도 이 땅이 살기 좋은 집터였음을 보여주는 증거였다. 고고학적 가치가 높다보니 문화유산위원들의 관심이 높았고, 22호 주거지는 이전·복원하고 21호 주거지는 공원 시설로 활용할 수 있도록 재현하게 됐다.
유적을 이전·복원한다는 게 정확히 무슨 의미인가.
영 우선 유물, 유구, 유적의 정의를 살펴볼 필요가 있다. 유물은 문화유산 중 빗살무늬토기처럼 운반이 가능한 물질 자료다. 반면 유구는 건물지, 고분, 주거지와 같이 장소에서 분리되지 않는 잔존물이다. 땅에 딱 붙어 있는 문화유산 형태라 생각하면 이해하기 쉽다. 유적은 유물과 유구를 아우르는 포괄적 개념이다. 우리가 대상지에서 이전·복원한 대상은 유구에 해당한다.
문화유산 ‘이전·보존’은 말 그대로 유구를 떠서 그대로 옮기는 것을 말한다. 그 과정에서 문화유산이 손상되지 않도록 하는 여러 작업이 필요하고, 일정 시간 동안 보관할 장소도 마련해야 하니 이전에 드는 시간과 비용이 막대하다. 잠실역사공원의 유구는 ‘이전·보존’이 아닌 ‘이전·복원’해야 할 대상이었다. 그에 따라 22호 유구 중 부뚜막은 실물 그대로 이전해 왔고, 나머지는 문화유산발굴복원팀이 작업한 3D 스캔 자료를 바탕으로 복원됐다.
문화유산을 다루는 작업을 처음하다 보니 겪은 웃지 못 할 일화들도 있었다. 조경은 토목, 전기, 건축 등 다양한 분야와 함께 협업하며 일하는 경우가 많고 책임자들이 모여 업무를 어떻게 진행해나갈 것인지 논의하는 데 익숙하다. 유구 이전·복원이 필요하니 문화유산 발굴복원팀과의 협업이 필요했는데, 업무를 어떻게 나눠서 진행해야 하는지 명확히 아는 사람이 없었던 것이다. 처음에는 갈피를 잡지 못했지만, 현장에 지속적으로 방문해 이야기를 나누며 그 틀을 그려볼 수 있었다. 조경이 공원 시설로서 유구 주변을 두르는 펜스와 보호각을 조성하고, 그 안을 채울 내용물은 발굴복원 팀이 담당한다. 공원으로의 문화유산 이전·복원에 대해 참고할 사례가 많지 않아서 혼란스러웠다.
문화유산 하면 예스러운 이미지를 떠올리기 쉽지만, 잠실역사공원은 형태와 소재에서 현대적인 느낌을 지향한 것으로 보인다.
영 유산에 대한 패러다임이 보존 중심에서 현대적인 활용성 측면으로 전환되고 있다. 유네스코는 원형을 훼손 없이 보존하는 데 집착했던 과거와 달리, 유산이 생성된 역사적 배경, 환경, 시대에 변화하는 정신적 가치까지를 문화유산의 ‘진정성’ 범위로 보고 있다. 유산 보호를 위해 사람과의 접촉을 차단하는 전문가 중심의 수동적 보존에서 탈피해, 인류의 지속가능한 발전을 위한 자원으로 유산을 활용하는 방향으로의 전환을 꾀하고 있다. 한양도성의 경우 문화유산이 외기에 노출되어 있다. 여름의 무더위와 겨울의 한파에 노출되고, 살얼음이 얼었다 녹으며 흙이 더 부서지기도 한다. 하지만 이마저도 시간의 흐름에 따라 자연스럽게 변화하는 가치로 보게 된 것이다. 도시가 변하듯 유적도 허물어지거나 변하는 것이 당연하지 않나.
역사도시경관의 주요 개념 중 하나는 도시의 변화를 부정적으로 보지 않는 것이다. 도시는 변하기 마련이고 시대에 따라 그 쓰임새도 달라진다. 유적 역시 그와 함께 변해가는 게 자연스럽다. 올해 초 튀르키예의 안탈리아에 다녀왔는데, 로마 시대의 유산인 아스펜도스 원형극장을 활용하고 있는 모습이 인상적이었다. 매년 발레, 오페라 등 다양한 공연이 열린다. 과거와 현대가 공존하는 모습이 문화유산을 더욱 빛나게 만들고 있었다.
이제 우리가 가장 지양해야 하는 건 조선의 돌로 만든 유적에 현대의 돌을 얹어 복원하는 방식이다. 문화유산의 가치와 진정성을 모두 훼손하는 일이다. 존 러스킨이 “복원이라 부르는 것은 파괴의 가장 나쁜 수단이다”라고 말하지 않았나. 역사경관을 만들 때에는 먼 미래를 함께 고려해야 한다. 과거의 유적 위에 역사를 모방하여 복원하면, 몇백 년 후 후손들이 유적을 오해하게 된다. 어느 시대의 유적인지 혼란을 겪게 되는 것이다. 하지만 유적이 허물어지게 두거나 혼동할 수 없는 현대적인 방법으로 유적을 보존하게 되면 시대 분별이 가능해진다. 유적의 주요 소재가 돌이라면, 문화재를 복원하거나 보존하는 데 필요한 시설의 주요 소재로 돌과 전혀 다른 철, 유리 등을 사용하는 방법도 있다. 가장 현대적인 것을 역사적인 것 옆에 둘 때 역사가 빛나게 된다고 믿는다.
참고한 사례가 있다면.
영 잠실역사공원의 유구 크기와 가장 비슷한 규모의 유적을 보호한 사례로 ‘새로운 광화문광장 조성사업구역 내 발굴 유적’과 ‘사헌부 문 터’를 살폈다. 보호각을 한국 전통 가옥의 처마 곡선을 살려 디자인하면서도 현대적으로 풀어내고 기둥을 인근 나무와 비슷한 두께와 높이로 조성한 점이 인상 깊었다.
한양도성유적전시관은 2017년 개최된 ‘남산 회현자락 한양도성 현장 유적박물관 설계공모’를 통해 조성됐다. 공모 당선작으로 ‘임시적 층위, 엄격한 잠정성’(협동원건축사사무소+감이디자인랩)이 선정됐는데, 한양도성의 보호각을 드러내기보다 기존의 경관에 스며드는 최소한의 개입 방법을 택했다. 기둥과 지붕으로만 이루어진 가벼운 구조물의 보호각이 한양도성 성곽 유구와 남산의 능선을 따라 자연스럽게 흘러가도록 설계했다. 잠자리의 날개와 같이 남산의 능선과 한양도성의 성곽과 조응하며 상승하는 이미지로 설계했다는 점에서 유산의 현지 보존 과정에서 주변 경관을 적극적으로 고려한 사례로 보았다.
스페인의 몰리네테 유적 보호각(Molinete Archaeological Site Shelter)은 포럼, 공중목욕장, 주거 유구 등 복합적 고고학 층위를 포함한 유적을 일사·강우의 피해에서 보호하는 동시에 공공적 활용을 병행하기 위해 조성한 지붕형 보호각이다. 아만-카노바스-마루리(Amann-Canovas-Maruri)는 보호각을 독립된 덮개로 설계하는 대신 도시공원과 유적을 연결하는 연속적 지붕 구조로 해석했다. 금속 구조의 대스팬 지붕은 유적 전면을 포괄하며 기둥을 유적 외곽에 집중 배치함으로써 고고학적 층위에 대한 물리적 간섭을 최소화했다.
중국의 저우커우뎬 베이징 원인 동굴 보호각(Zhoukoudian Peking Man Cave Protective Shelter)은 강우, 동결, 융해 작용에 장기적으로 유적을 보존할 수 있도록 제안됐다. 칭화대학교 건축설계연구원(THAD)은 대공간을 덮는 셸형 지붕 구조가 지형을 따라 흐르도록 설계했다. 구조는 최소 접지점으로 지지되며, 프리패브 시스템을 적용해 향후 해체가 가능한 가역성 원칙을 반영했다. 프로젝트를 총괄한 건축가는 이 보호각을 “유적 위에 놓인 건물이 아니라, 유적을 보호하기 위해 형성된 하나의 구조적 풍경”이라고 설명하며 보존 원칙이 형태 생성의 출발점이 되었음을 강조했다.
보호각의 주요 소재인 슈퍼미러가 주는 이미지가 강렬하다. 그 때문에 공원과의 강약 조절이 필요했을 것으로 보인다.
영 설계를 시작할 시점부터 잠실역사공원의 주인공은 유구가 되어야 한다고 생각했다. 공원의 역할도 중요하지만, 사업비가 넉넉지 않아 강약을 조절해야 한다면 유구에 가장 큰 힘을 실을 계획이었다. 그래서 보호각 기획에 큰 공을 들였다. 대상지 규모가 크지 않은 점을 고려해 독특하면서도 세련되고, 가볍고 날렵한 형태의 보호각을 설치하고자 했다. 국내 사례에서는 적당한 안을 찾을 수 없어 ‘빅 캐노피’ 쪽으로 시야를 넓혔다. 지금껏 국내에서 시도해보지 않은 형태와 소재로 만든 사례를 담은 프레젠테이션을 준비하면서, 문화유산위원들을 설득할 수 있을지 걱정이 많았다. 문화유산위원들이 진중한 분위기의 보호각만을 좋아할 거라는 생각은 편견이었다. 예상보다 큰 호응이 돌아왔다.
보호각의 개수와 형태가 한 차례 크게 변경됐다.
영 처음으로 제안한 안은 스페인의 몰리네테 유적 보호각의 연속적 지붕 구조처럼 작은 모듈 형태의 캐노피를 유구뿐 아니라 공원 전역에 펼쳐내는 것이었다. 캐노피가 모여 보호각이 되기도 하고, 놀이 시설과 잔디마당 위를 덮는 그늘막이 되기도 하고, 때로는 벤치 위 퍼걸러로 기능하는 식이었다. 캐노피의 기본 형태는 원형, 유구의 형태에서 따온 정육각형 두 가지로 제안했다. 문화유산위원은 물론 송파구청도 이 제안을 반겼지만 문제는 공사비였다. 보호각 시공에 드는 비용이 공원 전체 조성비를 훌쩍 뛰어넘는 상황이었다. 현실적인 안을 다시 고민하기 시작했다.
보호각은 건축물로 분류되지 않기에 조경가도 설계할 수 있다. 그러나 기둥을 최소화하면서도 날렵하고 가벼운 보호각의 구조 설계를 해낼 수 있는 전문가를 초대하고 싶었다. 그때 떠올린 사람이 건축가 국형걸 교수(이화여자대학교)였다. 그와는 남산 예장자락 재생사업 설계공모를 함께하며 연을 맺어 최근 뚝섬 유휴 교각 경관개선 설계공모도 함께했다. 국형걸이 틈틈이 선보여온 파빌리온 프로젝트를 눈여겨봐왔고, 그가 이 보호각 설계에 딱 맞는 건축가라는 확신이 들었다. 사업 기간과 과정을 생각하면 터무니없이 적은 조경 설계비 일부를 외주 디자인 비용으로 책정해 국형걸에게 보호각 의뢰를 맡겼다. 그 결과 너무나도 만족스러운 보호각 디자인이 완성됐다.
주거지 유구의 형태인 육각형을 토대로 삼고 슈퍼미러라는 소재를 통해 과거 문화유산과 현재 공원에서 다양한 활동을 벌이는 사람들의 모습이 한 번에 담기도록 했다. 초기 디자인이 그대로 시공까지 이어졌는데, 시공 중에 흰색 기둥이 배경이 되는 아파트 하부의 짙은 색과 이질적인 느낌이 들어서 짙은 색으로 변경했다. 보호각 내부에 자연광이 드는 창을 놓았는데, 덕분에 슈퍼미러가 더 반짝이고 보호각 하부에 있음에도 불구하고 유구가 어둑해 보이지 않는다.
여러 관계자가 관여하는 사업에서 중심을 잃지 않고 설계하는 일의 어려움을 안다. 문화유산위원과 재건축 조합, 공원을 관리하게 될 송파구청 사이에서 갈등을 조율하고 합의된 결과물을 만들어나가는 일이 쉽지 않았을 것 같다. 특히 보호각과 관련된 논쟁이 꽤 길게 이어졌다고 들었다.
영 멀리서 보면 자신의 목소리만 높이는 상황이라고 오해하기 쉽지만, 가까이서 그들을 만나 이야기를 듣다 보면 모두에게 각자의 사정이 있다는 걸 알게 된다. 문화유산위원의 입장에서 대상지는 고고학적 가치가 정말 높은 부지다. 이러한 유구가 발견되었을 때 개발 사업 자체가 취소되는 경우도 드물지 않다. 하지만 과거 여러 사례를 통해 문화유산위원들은 사업 자체가 취소될 경우 재건축 조합이 어떤 피해를 입게 되는지 충분히 알고 있었다. 문화유산 보존을 위해 개발을 막기보다는 잠실역사공원이라는 새로운 형태의 오픈스페이스를 만들어 국민은 물론 아파트에 입주하게 될 주민에게도 가치 있는 공간이 되기를 바라는 마음이었다. 그만큼 공원에 대한 기대감도 높았다. 국형걸의 보호각 디자인을 제안했을 때, 문화유산위원들이 얼마나 큰 호응을 보내왔는지 모른다. 완성도 높은 공원 조성을 위해 22호 주거지 유구는 물론 공원 시설로 해석해 재현한 21호 주거지 유구에도 보호각을 설치해주기를 바랐다. 두 개의 보호각이 설치되어 잠실역사공원의 가치가 높아지면, 이 과정에 함께한 아파트 입주민도 자긍심을 갖게 될 것이라는 의견이었다.
반면 재건축 조합은 공사비에 대한 부담을 크게 느끼고 있었다. 한창 설계를 진행하던 때가 코로나19 팬데믹과 러시아-우크라이나 전쟁의 여파로 건설 자재비가 급속히 상승하던 때이기도 했다. 이러한 상황에서 몇십 억에 달하는 보호각을 두 개나 조성하라는 요구는 압박으로 느껴질 수밖에 없었다. 자칫 큰 갈등으로 이어질 수 있었지만, 끊임없는 대화와 조율을 통해 22호 주거지 유구에만 보호각을 설치하는 것으로 합의할 수 있었다.
혜 보통 큰 개발 사업을 진행할 경우 CM건설사업관리자을 두는 경우가 많은데, 이 재건축 조합은 조합원들이 직접 사업을 진행했다. 가장 젊은 조합원의 나이가 예순 정도로, 지긋한 연령대의 모임이었다. 조합원 대부분이 이 지역에서 살아온 토박이였고, 건설 관련 직종에서 일했던 분들이 많았다. 자신의 의견만을 고집하는 분도 있었지만, 건설 사업에 대한 이해도가 높은 분들이 우리의 사정을 이해하려 노력했다.
보호각 내부에 기둥을 두지 않았다.
영 백제 시대 주거지의 경우, 지붕을 지지하기 위해 집 한가운데 일렬로 기둥을 설치하는 것이 일반적이었다. 이 기둥이 설치됐던 자리를 그대로 활용해 보호각 기둥을 설치하면, 문화유산의 의미를 더욱 부각할 수 있을 것이라 기대했다. 그런데 유구에서 기둥의 흔적을 찾을 수 없었다. 지붕의 크기를 고려하면 기둥 없이 지지가 불가능한 구조라 의아했다. 아마 아직 풀지 못한 미스터리가 남아 있는 모양이다. 보호각 내부에 기둥을 두지 않으면, 보호각의 하중을 버티기 위해 그 형태가 두꺼워지기 마련이다. 이를 구조적으로 잘 풀어 가볍고 날렵한 형태로 디자인해준 국형걸 교수에게 감사할 따름이다.
몽촌토성의 기존 지형을 살려 만든 마운딩이 인상적이다. 언덕이라기에는 그 높이와 형상이 조금 소극적이라는 생각을 했는데, BF 인증 요건에 맞춰 조정한 결과라는 이야기를 듣고 아쉬워졌다.
혜 몽촌토성의 지형을 본떠 유구와 어린이 놀이 공간을 감싸는 형태의 언덕을 조성할 예정이었다. 처음에는 꽤 높은 언덕을 계획했었다. 언덕 둘레는 물론 꼭대기까지 이어지는 순환 보행로를 만들고, 가장 높은 곳에서 잠실역사공원과 주변 경관을 한눈에 감상하게 할 요량이었다. 넓지 않은 공간에 언덕을 조성하려다 보니 그 위로 놓이는 보행로의 폭이 좁고 경사가 가파를 수밖에 없었다. BF 인증 요건을 맞출 방법이 없었다. 과감히 높은 언덕을 포기하고, 보행로 사이의 녹지를 나지막한 언덕으로 만들어 공원 안으로 들어설수록 그 높이가 점차 높아지도록 했다. 시공 단계에서 제대로 실현되지 않아 안타까울 뿐이다.
영 21호 주거지 유구를 재해석한 어린이 놀이 공간도 안전 문제로 대폭 수정되었다. 본래는 유구의 아궁이 터가 있던 자리를 활용해 아궁이 놀이터를 만들 계획이었다. 이곳에서 발견된 토기와 토우 등 유물을 모방한 장난감 그릇들을 배치해 아궁이에서 밥을 짓고 노는 소꿉놀이를 즐기게 해, 백제 시대의 문화를 자연스럽게 습득하게 한다는 의도였다. 하지만 예산과 안전 문제 등으로 유구의 형태를 본뜬 땅의 형태와 지면보다 60㎝ 정도 낮은 선큰 공간, 백제 시대의 주요 놀이 문화를 보여주는 바둑에서 영감을 얻어 만든 바둑판 놀이터만 남았다.
선큰 형태인 놀이 시설의 경계를 좌석으로 활용했는데, 이 좌석 뒤편 녹지에 백제 시대의 생활상을 엿볼 수 있는 일러스트를 새긴 안내판을 설치했다. 본래는 좌석과 안내판을 일체형으로 디자인할 계획이었는데, 여름철 무더위에 달아오른 안내판에 의해 아이들이 화상을 입을 수 있다는 점을 고려해 계획을 수정했다.
혜 BF 인증 절차는 크게 예비 인증과 본 인증으로 구분된다. 준공에 들어가기 전 사업 계획이나 설계 도면을 토대로 예비 인증을 받고, 공사 완료 후 1년 내 본 인증을 진행하게 된다. 현재 잠실역사공원은 본 인증을 아직 받지 않은 상태다. 내심 걱정이 된다. 공사를 진행하던 중, 공원과 맞붙어 있는 상가에서 뜻밖의 요구를 해왔기 때문이다. 상가와 공원을 바로 연결하는 보행로를 만들어달라는 것이었다. 공사 진행 중에 벌어진 일이라 상황이 급박했고, 급하게 조성한 램프의 경사도가 BF 인증 요건에 부합하지 않을지도 모른다. 본 인증 심사에서 통과하지 못하면 요건에 맞춰 재시공을 하는 수밖에 없다.
영 BF 인증 제도는 장애인과 노약자를 비롯해 여러 보행약자를 포용하는 디자인을 실천한다는 점에서 바람직하다. 하지만 디자인의 실효성을 높이려면 제도적 보완이 필요해 보인다. 우선 인증에 소요되는 시간이 너무 길다. BF 인증 심사에만 보통 7개월가량이 쓰인다. 또한 예비 인증과 본 인증 심사를 진행하는 심의위원이 다르다. 이로 인해 본 인증은 예비 인증을 받은 도면이 제대로 시공되었는지 확인하는 데 집중하기보다
새로운 지적 사항이 발생하는 과정이 될 확률이 높아진다. 무엇보다 가장 빨리 개선해야 할 점은 명확한 심의 기준을 마련하는 것이다. 심사 범위가 애매한 경우도 있고, 주관적인 해석에 따라 인증 여부가 결정되기도 한다. 무엇보다 심사를 진행하는 전문성을 갖춘 BF인증심의위원회를 갖추는 것이 중요해 보인다. 공간을 장애인의 시선으로 바라보는 동시에 심사 대상에 대한 이해도가 높은 심의위원을 양성할 수 있는 교육 개발 등의 노력이 병행되어야 가능한 일일 것이다.
안내판에 그려진 일러스트에 애정이 깊어 보인다.
영 아이들의 시선에서도 흥미를 유발할 수 있는 일러스트를 담고 싶었다. 일러스트의 대가인 조경가 오형석 소장(디자인로직)에게 부탁했는데, 아궁이에서 밥을 짓는 사람, 무기를 만드는 대장장이, 바둑을 즐기는 사람들 등 당시 문화를 잘 담아낸 아기자기하고 귀여운 일러스트들이 도착했다. 내 마음은 물론이고 문화유산위원들의 마음도 쏙 빼앗아 놓았다. 백제 시대에 융성했던 해외 교류와 학문적 우수함을 보여줄 수 있는 일러스트가 추가되었으면 한다는 의견이 제기됐다. 그 결과 책 읽는 문인과 교역에 나선 커다란 배에 탄 사람들의 모습이 담긴 일러스트가 추가되었다. 일러스트 아래에는 그 내용을 엿볼 수 있도록 그림의 제목을 붙여두었다. 제목 아래에 자세한 설명글을 써 넣으려 했었는데, 아이들이 마음껏 상상력을 펼치고 궁금한 점은 스스로 찾아보는 자기 주도 학습을 시도하도록 제목만 남기는 게 좋겠다는 문화유산위원의 의견을 수렴해 삭제했다.
혜 일러스트가 담긴 안내판과 잠실역사공원에 설치된 안내판을 모두 직접 디자인했다. 점자 안내판의 경우, 손으로 만져 인식하는 안내판이므로 촉지하기 좋도록 미세하게 뒤로 기울였다. 안내판 역시 BF 인증을 받아야 하는 범위에 포함되기 때문에 관련 사항을 세세히 공부했다.
보존이라는 단어를 들으면 가장 먼저 떠오르는 장면은 어둑한 전시실 안, 그 누구의 손길도 닿지 못하게 유리 쇼케이스 안에 대상을 가둬놓은 모습이다. 세균이나 유독 물질은 물론 빛, 공기 등 대상에 해를 끼칠 수 있는 모든 것을 차단한 채로 말이다. 그 모습이 지루하게 느껴질지 몰라도 보존에 가장 최적화된 형태임은 맞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이 문화유산을 ‘공원’이라는 공간 속에 녹여 보존해야 하는 이유는 무엇이라 생각하는가.
영 앞서 말한 대로 문화유산 보존에 대한 패러다임이 바뀌며 여러 국가가 박물관과 같은 비일상 속 공간뿐 아니라 일상에서 역사를 만날 수 있는 환경을 마련하려 노력하고 있다. 그중 공원은 일상과 가까우면서 비일상적 콘텐츠를 녹여내기 좋은 장소다. 원형 그대로의 문화유산을 보존하는 역할을 박물관이 한다면, 공원은 자연스럽게 일상 속에서 유적을 만나며 사람들의 인식을 바꾸어놓는 역할을 할 수 있다. 지금까지 유적을 조명하는 공원들은 일반적으로 문화재를 중심 삼아 주변에 공원 시설을 놓는 형태로 조성되었다. 문화유산을 중심으로 한 놀이 시설을 마련하고 색다른 보호각을 조성한 잠실역사공원이 좋은 사례가 되어 공원의 새로운 가능성을 보여주기를 바란다.
잠실역사공원처럼 민간 사업지에서 문화유산이 발견된 경우, 온전히 민간 사업자가 문화유산 발굴에서부터 이전, 공원 조성에 이르기까지 수십 억에 달하는 비용을 감당해야 한다. 게다가 이 과정을 조율하고 진행하는 데 필요한 가이드라인의 부재로 인해 실효성 있는 공원을 만드는 데 어려운 점이 있다. 새로운 유형의 사업에 대한 제도와 국가의 적절한 개입이 필요하다고 본다.
끝으로, 아파트 입주 시기를 맞추기 위해 동절기 시공을 하게 되면서 설계한 대로 하부 식재 공사가 제대로 이루어지지 못하고 봄을 맞이해 아쉬움이 많이 남는다. 설계 의도 구현에 대한 디자인 감리는 현장에서의 돌발 상황, 예산이라는 현실적인 문제에 대응하기 위해 꼭 필요한 제도다. 특히 민간이 조성하고 기부 채납한 후 공공이 관리하게 되는 역사공원은 여러 영역의 전문가 협업으로 이루어지므로 시공상의 중재자 역할이 더 중요하다. 디자인 팽선민
**각주 정리
1. 설계, 시공에서 아쉬움도 있지만 유사한 사례를 찾기 어려운 역사 공원이라는 점에서 학술적 기록이 필요하다고 봤다. 이 글은 발굴조사보고서(도원문화재연구원, 2024)를 중심으로 여러 문헌과 심의자료 등을 참고했으며, 상세한 참고문헌의 출처와 설계 과정은 “백제 한성기 역사공원 설계”(『한국조경학회지』 54(2), 2026, pp.122~134)에서 찾을 수 있다.
2. 2022년 5월, 문화유산심의회의가 열렸다. 발굴된 유적에 대한 4개의 보존 방안이 제시됐다. 1안은 현지 보존으로 설계변경이나 인허가를 전면 재검토해야 한다. 재건축 사업 자체가 불투명해지는 결과다. 2안은 문화유산을 발견된 위치에 보존하는 안이다. 위치 변경 없이 수직 이동을 통해 재건축 아파트 지하층에 보존하는 안이지만, 관리 주체가 아파트 주민이 되어 지속적인 민원이 발생하는 단점이 있다. 4안은 문화유산을 공원에 이전·복원하고 전시홍보관을 설립하는 것이었다.
글 서영애 기술사사무소 이수 소장
사진 유청오
조경 기술사사무소 이수
문화 유산 발굴 도원문화유산연구원(서길덕)
건축 국형걸(이화여자대학교 교수)
전기 가은이앤씨(오현철)
토목 로뎀(구광석)
BF 인증 지유(이미영)
안내판 일러스트 오형석(디자인로직)
시공 대의건설
발주 잠실 진주아파트 주택재건축 정비사업조합
공원 관리 송파구 공원녹지과
위치 서울시 송파구 신천동 20-4 일원
규모 4,470㎡
완공 2026. 5.
기술사사무소 이수는 2007년 1월 5일 문을 열었다. 서영애, 황혜성, 정경화, 이명금, 김지은, 이수현이 함께 일하고 있다. 공원, 정원, 기타 외부 공간의 조경 계획과 설계를 주로 하며, 학술 및 정책 연구도 병행한다. 작은 쉼터에서 도시까지, 기획에서 상세 설계까지, 다양한 범위와 깊이의 일을 함께, 열심히 하고 있다.
서영애는 기술사사무소 이수 소장이다. 서울시립대학교에서 학부와 석사를, 서울대학교에서 박사학위를 받았다. 연세대학교 건축 공학과에서 겸임교수로 학생들을 가르치고, 도시경관연구회 보라(BoLA)에서 공부하고 있으며, 이수에서 오래된 좋은 사람들과 함께 일하고 있다.
황혜성은 기술사사무소 이수의 부소장이다. 서울여자대학교 원예생명조경학과를 졸업하고 설계를 시작했다. 에코플랜, 라인조경, 피엠디조경기술사사무소에서 실무의 기본기를 다졌다. 2010년부터 기술사사무소 이수에서 일하고 있다. 사진 속 인물은 왼쪽부터 서영애, 김지은, 황혜성, 정경화.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