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억 속에만 묵혀뒀던 메덩골정원의 풍경을 드디어 소개한다. 프레스투어 버스에 올랐던 날이 2024년 9월이니, 벌써 1년도 더 된 일이다. 그때 광화문역 근처에서 출발한 투어 버스는 한 시간을 달리고도 목적지에 도착하지 못했다. 메덩골정원이 자리한 곳은 양평, 지도를 켜보면 양평군과 횡성군 한중간의 등고선에 ‘메덩골정원’이라는 글자가 박혀 있다. 주변이 휑하다. 마우스 휠을 열심히 굴려 확대와 축소를 거듭해도 띄엄띄엄 보이는 산의 이름, 캠핑장, 펜션 두어 개가 전부다. 목적지에 가까워질수록 정비가 덜 된 도로의 표면은 울퉁불퉁해졌다. 내비게이션을 켜고 달렸음에도 길을 잃은 버스 기사가 투어 가이드와 이야기를 나누는 모습을 보며 걱정을 했더랬다. 대중교통으로는 절대 올 수 없고, 주변에 둘러볼 만한 관광지가 없는 이곳까지 정원을 보러 찾아오는 사람들이 얼마나 될까. 꽤 적지 않은 입장료 이야기까지 들었을 때는 이 정원을 기획한 사람이 누구인지 궁금해졌다.
정원의 모습은 내가 예상했던 것과는 좀 달랐다. 입구가 유치하게 꾸민 포토존이 아니라 좋았다. 메꽃을 형상화한 BI 조형물이 메덩골정원의 시작을 알리고 있었다. 간결한 형태와 무광의 검은 메탈 소재가 어우러져 모던한 분위기가 풍겼다. 길은 야트막한 오르막을 따라 이어졌다. 자연히 시선을 위로 하고 걸었는데, 눈앞에 펼쳐진 건 분절된 정원이 아닌 작은 마을이었다. 길이라 생각한 곳이 정원이었고, 숲인 줄 알았던 곳도 정원이었고, 담장 사이로 비죽 몸을 내민 소나무, 흐르는 물까지도 정원이었다. 민속촌과는 달랐다. 철저히 전통을 따르는 정원으로 설계하지 않았기 때문이었다. 이재연은 전통의 재해석이라는 표현은 메덩골 한국정원과 어울리지 않는다며, 이곳은 그저 한국적 정취를 담은 정원이라 이야기했다. 나는 왜 당연히 조선시대 정원을 재해석해 만들었으리라 짐작했을까. 아마도 조선시대 정원의 재해석이 불가능하다고 은연 중 생각해왔기 때문 아닐까. “조선은 정원을 가꾸려는 마음과 정원을 즐기고 싶은 욕망은 있었지만 고도의 정원술은 없었던 시대라고 생각”(각주 1)한다던 박희성의 말이 머리 깊숙이 각인된 게 분명했다.
첫눈에 좋다고 생각한 곳은 남도돌담길이었다. 구불거리는 돌담이 계단식 논처럼 차곡차곡 쌓여 있고, 그 안에는 논밭에서 볼 법한 작물들이 자라고 있었다. 그게 꼭 타국의 사람이 짧게 여행하며 본 논밭의 풍경을 콜라주로 만들어놓은 것처럼 느껴졌다. 청보리가 그라스처럼 흔들렸다. 논밭이지만 절대 논밭은 아닌 신기한 곳이었다. 보기 좋고 아름다운 자연은 뒷산으로만 시선을 돌려도 이미 가득했고, 그 무엇보다 먹고 사는 문제가 가장 시급했던 민초들이 진짜 가까이 두고 정원처럼 가꾸고 돌봤던 식물은 작물일지도 모르겠다.
군데군데 놓인 바위에 자꾸 눈이 갔다. 거대한 바위가 마당 한가운데에, 연못 한복판에, 길 곁에 무심하게 놓여 있었는데, 원래 그곳에 있던 자연처럼 보이기도 했다. 특히 바위를 한데 모아 만든 유생돌정원이 인상 깊었다. 큰 바위를 비정형적으로 배치했을 뿐인데 왜 철저히 설계된 정원으로 느껴지는지 궁금했다. 나름 열심히 뜯어보며 생각했는데, 유생돌정원 앞의 경주솔밭과 뒤의 취병루가 서로의 존재를 더 돋보이게 만드는 듯했다. 물론 어떤 돌을 어떤 방향으로 놓아야 할지 거듭 살피고 논의한 이재연과 이시희의 노력이 기본 밑바탕이다.
메덩골정원 홈페이지에 접속하면 낯설고 어렵게 느껴지는 문장이 화면을 채운다. “메덩골정원은 철학자 니체에서 영감을 받아 탄생한, 6만 평 규모의 세계 최대 인문학 정원입니다.” 니체와 인문학과 정원의 접점은 잘 모르겠지만, 그래도 메덩골정원에 많은 사람이 오기를 기대한다. 그래야 이재연의 실험이 유효한지 아닌지를 논할 수 있을 테니 말이다. 구스타프 말러는 전통을 넘어선 혁신을 시도한 체코의 작곡가다. 전통에서 벗어난 경로를 꾀하는 말러를 막아서는 이들에게 그는 “전통은 재를 숭배하는 것이 아니라 불꽃을 보존하는 것이다(Tradition ist Bewahrung des Feuers und nicht Anbetung der Asche)”라고 말했다. 한국정원을 만들기 위해서 그 뿌리를 찾는 일에 소홀해서는 안 되겠지만, 재로 남은 조선시대의 정원만을 뒤적이는 일 또한 해답으로 보이지 않는다. “훨씬 더 화려하고 정교할 거라고 짐작되는 고려, 백제, 신라의 정원을 제대로 알지 못한 채”(각주 2)로는 더더욱.
**각주 정리
1. 김모아, “어제의 대화, 오늘의 재구성: 박희성 미지근함의 미학”, 『환경과조경』 2025년 2월호, p.104.
2. 위의 글, 같은 쪽.


